‘읽는다‘는 것에 대하여,『읽는 인간』

제겐 의외의 집중력을 선사하는 만족스러운 독서 스팟이 있는 데, 그건 코인 빨래방입니다.

“(49)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과 같은 레벨이 아닙니다(이 역시 살아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죽은 지식의 집적을 말합니다. 대형 대학 강의실에서 열리는 지루한 개론 강의를 떠올려 주십시오).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사람은 발견을 합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결국은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지요. 그런 기회를 움켜쥘 독서법이 있다는 것을, 사이드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안에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 정신의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그곳에 발을 들였다. 이 사람이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고 쓸 때 나도 글쓴이의 옆에서 그의 마음이, 그의 정신이, 둘도 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에 함께하고 있으며 그와 보조를 맞춰 전체적인 정신의 움직임을 경험하고 있다고 사이드는 말하고 싶은 겁니다.
우리는 책 전체를 읽으며 실제로 방금 사이드가 말한 예를 잇달아 만나게 됩니다. 사이드의 정신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계속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마치 뭔가 새로운 극장으로 이끌리듯 자신도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정신이 되어 사이드와 함께 있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책을 읽는 행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훌륭한 지성과 두뇌를 동기화하기 매우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죠.



오에와 사이드는 근사한 읽기 친구이며, 나 역시 #읽는인간 인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아주 뒤늦게 만나거나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토록 지독하게 읽는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나도 못지않게 지독해지고 싶어지는 데… 아마도 친구가 말릴 것 같으니 일단 비밀🤔

내가 읽는 것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친구가 읽는 것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리하여 내 읽기가 친구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런 선순환.

종족으로서의 ‘읽는 인간’이 가진 장점이 있다면 어떤 훈련의 시점을 지나 읽기가 정말로 중요해지기 시작하면 읽는 것 외의 다른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진다는 것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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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23 14: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인 빨래방에서 책을 읽는 모습으로 김혜수는 주지훈을 사로잡습니다. - 드라마 <하이에나>

공쟝쟝 2023-10-23 14:22   좋아요 1 | URL
뭬야? ㅋㅋㅋㅋㅋ 정말요? ㅋㅋㅋㅋㅋㅋ(안봄..) ㅋㅋㅋㅋㅋㅋㅋ 저의 우아한 모습을 볼 사람은 없는 반백수의 월요일 대낮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10-24 08:08   좋아요 1 | URL
김혜수는 일부러 주지훈이 좋아하는 소설책을 준비해서 똭!!!!
저도 코인 빨래방 배경 사진을 보고 <하이에나> 드라마 생각했어요.ㅋㅋㅋ
요즘 코인 빨래방에서 썸이 많이 일어난다던데.....
월요일 말고 주말을 공략하세요.ㅋㅋㅋ

공쟝쟝 2023-10-24 10:21   좋아요 0 | URL
아놔... 유튜브 봤자나요...ㅋㅋㅋㅋㅋㅋ 주지훈...홀랑 넘어가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에 빠지나봅니다.
하지만 제가 읽는 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 성의 변증법..... 막 이렇고.... 책 목차 힐끔 본 뒤 주지훈은 쭈글 대면서 도망가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10-23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인빨래방 30분 세탁, 30분 건조 아닌가요? ㅋ 저도 가끔 무료할때 빨래방에 갑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3-10-23 18:51   좋아요 2 | URL
저는 500원 더써서 40분 건조 합니다ㅋㅋㅋ 건조기에 수건 돌리면 호텔 수건되거든요 ㅋㅋ

책읽는나무 2023-10-24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는 인간>도 몇 년 전 시작했다가 끝을 못봤고.....ㅜㅜ
갑자기 읽는 인간 읽고 싶어지는군요.ㅋㅋ
일단 읽어내야 될 책 두 권을 어찌어찌 끝내놓고 생각해봐야겠어요.^^

공쟝쟝 2023-10-24 10:24   좋아요 1 | URL
저도 끝 못내는 병을 앓고 있어서 ㅋㅋㅋ 무슨 맘인지 넘 알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빌린 책은 일단 먼저 끝을 빨랑 다 봐버리거든요 (산 책은 언제고 읽을 수 있으니 읽다가 안읽고 ㅋㅋㅋ)
이상한 모순입니다... 하긴 마감이 나를 일하게 하지... (-_-);;; 읽다 말기란 평범한 인간의 숙명인 것입니다.
한 작가만 3년 동안 읽고 그러는 건 오에나 할 수 있는 일...

유부만두 2023-10-24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어요. 오에는 책 읽을 때 술 안 마신다는 것만 기억나요.

공쟝쟝 2023-10-24 11:45   좋아요 0 | URL
저는....... 오에 선생의 영어 공부법을 베껴보기 위해서 읽기 시작했.... 그처럼 영어를 공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숙연,,,🥺😭)
 

“(10)그는 자신의 투쟁에 관해 이치를 따지고, 분노에 관해 논증하고, 이를 일반화하는 일이 옳지 않으며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어떤 정치적 실천에 진리의 가치를 부여하는 데 사유를 이용하지 말 것*그는 이렇게 썼다”



- 한 철학자를 설명하는 단지 한 문단안에 이토록 많은 모순.은 사실 모순이 아니다.


책 표지의 금붕어에 대한 이야기(회의주의자의 사유방식)가 이론적 문장들(아마도 에피스테메에 대한 은유)이 잠시 언급된다. “(11)그 시대의 사람들을 그들도 모르게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가두었던 일반적 진리들” 


은 내게 

푸코의 젊은 연인이 쓴 소설 속 일화를 떠올리게 했다. 

푸코(소설 속 뮈질)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 빨간색 금붕어가 되고 싶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대답했다. “아가, 그건 불가능하단다. 넌 찬물을 싫어하잖니.” 내 말에 아이가 깊은 혼란에 빠지는 것 같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그럼, 아주아주 잠깐 동안만요. 금붕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나 알고 싶거든요 (는 에르베 기베르의 소설에 등장하는 푸코-뮈질-에대한 엄마의 이야기.) 


너는 찬물을 싫어하잖니 

그렇긴 하지만 금붕어의 생각이 궁금해요 


이래저래 정신 없던 한 주를 정리하는 금밤. 하이볼. 맥스봉.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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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22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붕어의 생각이 궁금한 아이 푸코, 에피스테메와 하이볼을 한 자리에 모아낸 쟝님의 글,^^ 그래서 자꾸 놀러옴 !

공쟝쟝 2023-10-23 15:06   좋아요 1 | URL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

12N5 2023-10-23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공쟝쟝님 유튭 기다리....고 있... 어요^^

공쟝쟝 2023-10-23 15:08   좋아요 1 | URL
아!! 기다려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올해 독서 결산영상은 약속드릴게여!!! 😝

공쟝쟝 2024-02-06 15:34   좋아요 0 | URL
12N5님 ㅋㅋㅋ 저 다시 유튜브 올렸습니다 ㅋㅋㅋ 약속지켰다리용~~ (대체 독서 결산을 2월에 하다니 ㅋㅋㅋ)
https://youtu.be/-wOjdnO4PoE?si=7RF8jmh3r3TobUmO
그래도 이 기다림 잊지 않고, 영상 무지무지 노력했다는 거 ^^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넘나 읽고 싶었는 데 절판 되었던 (게다가 중고 거래에는 험악한 가격으로 풀려있던) 폴 벤느의 푸코에 관한 저작이 역자의 ‘개정판 옮긴이 후기’를 첨부해 두터워 진 채로 등장했다. 




다정한 이웃이 몸소 출간 소식을 알려주셨고 비슷한 날짜에 나온 푸코의 문학관 <거대한 낯섦>(과 그를 읽기 위한 사드…ㅋㅋ)보다는 폴 벤느의 푸코가 더 읽고 싶어서, 진짜 손 부들부들 하면서 샀다(장바구니에서 다른 거 무시하고 딱 이것만 사는 게 너무 어렵다. 뒤에는 알라딘 본 투리드 무지 노트와 홉스). 



운동 다녀와서 래핑 벗기자 마자 이 감격적인 소식을 알리는 바이다! (아.. 내일 마감인데 🥺😩)


목차를 살펴보니 눈이 가는 부분은 약 60페이지(책 360페이지)를 할애해 전개된 개정판의 역자 후기 <푸코를 불태워야 하는가?>다. 진짜 침도 안 삼키고 순식간에 읽어내리다가, 일단 워워~나 자신을 말리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일시정지 시켰다. 한마디로 *2021년에 있었던 기 소르망의 <푸코의 소아성애 폭로 스캔들>에 대한 글*이라고 할 수 있는 데… 그래서 푸코가 했냐고 안 했냐고?라고 묻고 싶은 분께 읽는 즐거움을 빼앗지 않기 위해 진실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겠으며.  


다만 만약 누군가 -쟝쟝, 너는 푸코가 페도필리아라도 사랑할 거냐?


라는 질문에 대한 현시점의 대답을 한다면.


나는 *푸코가 아주 엄밀하고 다면적인 ‘철학자’*(스스로는 지난 세계의 철학을 상대화시키며 아니라고 주장했지만)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좋아한다는 것 이다. 요점은 ‘철학자’라는 거다. 내게 있어 ‘철학함’의 수준이 아니라, 철학‘자’의 지위를 획득하는 조건이 있다면. 삶을 살다가 마주치는 문제 의식에 대해 사유를 통해 얻어낸 어떤 개념의 획득(언어를 갖고 싶다라고 나는 종종 표현한다)인 것 같다. 아주 거칠게. 그건 타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능하며, 꼭 고급스러운 글씨가 아니라도 그렇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상의 철학자다.



어제부터 시작된 푸코 <감시와 처벌> 강독에서 조난주 선생님은 책을 ‘무엇을 정치화 할 것인가?(혹은 일상을 정치화하기)’라는 질문을 안고 읽어보자고 하셨는데. 내가 앞으로 정치화하고 싶은 질문은 취향이다. 즉, 취향은 정치적인 문제다. “정치 : 일상적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모종의 권력 관계”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 문득 내가 읽기 좋아하는 종류의 글은 그런 글이란 생각. (일단 여기서 매듭) 


푸코의 독특한 성적 취향 역시 그렇다. 장난처럼 푸코는 나를 사랑할리 없는 게이라고 놀리…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가 복잡하게 사유를 전개할 수 있었던 ‘위치성’(지도와 달력이라고 푸코는 표현한다)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다. 매번 장난쳐서 미안한데… 뭐, *장난할 수 있음*도 엄밀하거나 권위세울 필요가 없는 *내 위치성*이라고 해두자. (이러다 기 소르망 꼴 나겠네ㅋㅋㅋ 하지만 전 유명하지 않습니다. 더 유명해지기 위한 위치성을 획득해야 하는 처지라면 또 모를까.) 


여하튼 지금 나는 무진장 바쁜 상태에서 점심 먹을 시간을 쪼개서 책을 훑다 말고 이걸 쓰고 있고, 천천히 곰곰 읽고 싶다는 욕망을 뒤로한 채, 재출간을 기다렸던 책 <푸코, 그의 사유 그의 인격> 소식과, 그것을 바로 구매해 버린 나의 훌륭한 구매력…(-_-;;; 책 살돈 버느라 책 볼 시간 없다는 비극과 함께)을 자랑합니다… 히히 


다 쓰고 나니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책 <푸코 그의 사유, 그의 인격> 개정판 역자 후기에서 내가 푸코의 사생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에 대해 맞춤한… 몇 가지 문장들을 인용해 오는 걸로. 글 급 마무리. 


“(252) 하지만 소르망과 밀러는 푸코의 사유와 저작이 개인적 성향(특히 성적 지향)의 직접적인 표출이자 행동의 합리화 혹은 자기 변호라는 지극히 통속적인 시선에 머무른다. 이는 푸코가 제기하는 철학적 논점들을 사생활의 모래밭 속에 묻어버리고, 그의 사유에 대한 설명을 전기적 환원론의 좁은 쇠 우리 안에 몰아넣는다.


<미셸 푸꼬의 수난>의 그 밀러 맞다ㅋㅋㅋㅋ 자기의 성적 판타지 푸코한테 투사했다고 디디에 에리봉에게 대차게 까인 것 같지만 정작 앨휘봉씨는 자신의 학자적 판타지를 투사했다고 푸코의 반려인 드 페르는 생각한다는 인터뷰를 읽었음. 그리고 내 생각에 이런 모든 인터뷰들에 무덤에서 나온 푸코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장기하 주의) “그건 니(들) 생각이고” 


해석될 여지와 비밀도 많은 이 철학자의 일생은 어떤 서사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치명적 매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식의 읽기가 내게 필요하지는 않다. 내 경우 타인들의 규정에 쉽게 휘둘리는 내 삶을 바꾸기 위해서 푸코를 읽고 있는 중 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민감함과 취약함 그걸 스스로 부수고 싶어 하는 신랄한 부분에 대해 동일시를 하게 된다.


“(266)이러한 불일치는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 기원을 찾으려면 어차피 확인 할 수도 없는 ‘의식의 심층’을 들여다보려 애쓰기 보다는, ‘역사의 표면’을 있는 그대로 짚어가는 편이 훨씬 생산적일 테다. 달리 말해 푸코 개인의 충동, 욕망, 성향을 제멋대로 추정하지 말고, 그의 사유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며 말과 글로 질서 지어졌는 지를 파악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뜻이다.”

- 폴 벤느, <푸코 그의 사유, 그의 인격> / 이상길, <푸코를 불태워야 하는가? -철학자의 섹슈얼리티, 섹슈얼리티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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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10-19 16: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자 후기의 제목은 보부아르가 쓴 ‘사드를 불태워야 하는가?’의 오마주 같습니다. 동서문화사판 ‘악덕의 번영’ 서문격으로 그 번역이 실려있는데 번역이 헬이라 그런가 하여간에 저 책은 새 번역판 나오기 전에는 (아니, 나오더라도!) 적어도 저 번역판은 불태웠으면 싶은 게 사드 독서 마지막 후기였습니다...우리 사드 나 보부아르 안 읽는다고 강제로 연결시켜 줌...

공쟝쟝 2023-10-19 17:00   좋아요 2 | URL
아 그렇네요! 확실히 그렇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그 번역도 재번역 되었다면 사드 전집 살 의향이 있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사드… 읽다가 보부아르…가시는 역행자 반님이네요ㅋㅋㅋㅋ 고은 읽다가 최영미 맞고 그러는 거죠 뭨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0-19 17:33   좋아요 1 | URL
셋다 아니 넷다 안 사요 안 사 ㅋㅋㅋㅋㅋㅋ

우끼 2023-10-19 22:0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제 사드 가져가실분!!! 이거 아름다운 가게 가져다 줄 수도 없다… ㅠ 아름답지 않아요

공쟝쟝 2023-10-19 22:19   좋아요 2 | URL
사드 폭탄돌리기냐며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끼 2023-10-19 23:14   좋아요 2 | URL
무료로 드립니다!!! 무료무료!!!(무료로 줘도 안가져가냐며.. 쓸쓸) 심지어 펼치지도 않았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10-20 10:12   좋아요 2 | URL
사드 동서문화사판-거절/ 성귀수 새 번역-흠 좀 궁금...ㅋㅋㅋㅋ안 본 1권이면 더 궁금...(사드 마니아 놓을 생각 없는가 자네여...)

우끼 2023-10-20 11:21   좋아요 2 | URL
1번 동서판입니다 ㅠㅠ 아주 빳빳해요 한번 펼치고 지지 하며 닫음(대체 왜 산거지… 몹쓸 호기심)

공쟝쟝 2023-10-20 12:36   좋아요 1 | URL
피학은 가학을 필요로 하죠. 여러분의 성향 잘 알겠습니다. 아직연구가 덜 끝났지만 지적 호기심은 일종의 마조히즘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지배할 사드를 찾아…
저를 변명하자면..
1. 푸코의 사드 궁금
2. 보부아르의 사드 에세이 읽고 싶음
3. 그래서 사드를 봐야하는가? 내 정신세계에 사드를 꼭 넣어야 하는가? (갈등 중)
저는 달라요!! *몹쓸* 호기심의댁들이랑 다르다 ㅋㅋㅋㅋ (차별화 ㅋㅋ)
4. 하나더 추가하면 어쩐지 고급 독서가는 사드는 봐줘야할 것 같다.
5.19금 책 구매해본적 없음. (애서가로서 새로운 경험..)

쓰다보니 이유 계속 만들어지네… 곧 사것구만 쩝..

우끼 2023-10-20 19:49   좋아요 1 | URL
19금 필요하면 굳이 사드말고 웹소설 많은데요!! 거기도 연구자료 수두룩합니다!! 사드보다 훨 친절한 변태들이 나오고요.. 팔리는 소설은 개연성없이 친절한 놈들이 나와야 해서 .. 나를 지배할 거면 친절해야 한다 이거에요 ㅠㅠ 자본가놈들은 친절할 수 없는데…
근데 전 사드고뭐고 가학적인거 싫음… 이미 삶이 이 기후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너무 가혹해요

공쟝쟝 2023-10-21 01:59   좋아요 1 | URL
저도 가학적인 것 싫어요. 저가 피학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가학적인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그 고통이 당연한 줄 알았어요. 저도 싫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제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작동해요. 왜 지배받기 싫은데 지배받고 싶은가. 저와 다른 성향의 인간에겐 이런식으로 작동할 테죠. 왜 지배하고 싶은데 (완전히) 지배당하는 인간은 싫은가. 가학/피학 이분법이 아니라. 가학이 원하는 자율성 피학이 원하는 타율성…. (아직 잘 모름) 거기에 인간의 어떤 현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추측. 그것을 저는 개념의 언어로 파악해야 속이 시원해하는 형해화된 인간이지만, 실은 대부분은 감각하면서 실존안에서 고심하며 분투하며 살아간다는 것.
우끼님 자본가는 친절해요. (물론 맥락입니다) 노동자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제게 느껴지는 어떤 여유와 친절이 있다면… 그건 제가 제 일을 자본가(사업가)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예요…. 좀 슬프지만?… .

우끼 2023-10-21 10:08   좋아요 1 | URL
아아.. 자본가는 친절해야하는 사람에겐 친절하죠 ㅠㅠ 노동자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에겐 가혹하지만요 그게 시스템이 하는 일이니까요 ㅠㅠ 그래놓고 노동자가 부당함을 말하면 불친절하다 하는 세계…눈에 보이지 않으면 부당함을 알려 하지도 않으면서 부당함을 가시화해도 노동자를 탓하는 세계에서 산다는게 참
이렇게 말하니 페미니즘이 왜 또 평등을 말하는 학문인지 알겠다 싶은게 이 평등을 말하려는 사람들이 시스템에 당하는 구도가 비슷하네요
다만 이 세계에서 살려면 자본가 마인드로 살 수밖에 없다고 요구하는 것도 세계가 교육하는 방식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 사람의 위치성이 어떠하든

독서괭 2023-10-19 17: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살돈 버느라 책 볼 시간 없다는 비극 -> 여기에서 눈물 한번 훔치고요,, (크흡)
쟝쟝님의 흥분이 느껴지네요. 푸코읽기 응원합니다!!
...그래서, 답은 뭐예요? 진짜 페도필리아입니까? ㅋㅋ

공쟝쟝 2023-10-19 19:07   좋아요 2 | URL
비밀입니다! ㅋㅋㅋ 푸코식으로 진리 게임이라고나ㅋㅋㅋㅋ
(댓글 달 시간은 낸다!!)

2023-10-19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9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9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9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9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10-19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홉스야 안녕? 여전히 스크래쳐는 깨끗하규나.

공쟝쟝 2023-10-20 08:06   좋아요 1 | URL
홉스 스크래처 뒤집었어요 ㅋㅋㅋ 냐옹!

유부만두 2023-10-19 23: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가 인터셉트해서 먼저 읽어버릴까… 생각만 했습니다.

잠자냥 2023-10-20 00:00   좋아요 1 | URL
인터셉트!!!

공쟝쟝 2023-10-20 08:06   좋아요 0 | URL
허뤼업!!! 하 읽고 시풔요 😭😭
 
불행한 여자의 글쓰기와 마음의 구멍

반백수는 하던 일을 중간에 내려놓고 평일 낮부터 영화 세 편을 연타로 때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SIWFF 올해로 3년 째 꾸준히 참석(?) 중인데, 생각지 못한 영화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어 매년 우산 들고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도 다르지 않아 영화 세편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엔 비가 그쳤더군.


글 쓰는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들 위주로 골랐다.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아니 에르노. 중간에 <질투는 나의 힘>은 동명의 시를 떠올리며. 세 편의 영화 각각 다른 의미로 만족스러웠는 데, 까먹기 전에 쓱쓱 써볼까 싶어 노트북을 켰다. 긴 글을 예상합니다.



1.

잉게보르크 바흐만 : 사막으로의 여행 (2023)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7431



- 아니 그러니까, 어…언니 잠깐만요… 하…. (나의 한줄 평)

전후 독일 문학계의 독보적인 여성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연애 실패담을 다루고 있는 영화. 친구가 좋아하는 여성 작가라는 것 말고는 아무 정보 없이 봤다.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지금도 안 외워지지만. 영화는 한번 더 보고 싶다. 시인이 이별이 가져다준 앎을 통찰해 낼 때!!! 사랑을 누가 말리는가 했다. 여튼 잉게 온냐. 제가 책 다 찾아 읽을 거임😘


개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혹은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에 이름 붙인 것을 ‘사랑’이라고 하자​​. 어디서 베낀(읽은) 것 이 분명하긴 한데, 출처가 기억나지 않으니 공쟝쟝 임의의 편집 각주다. 그렇다 사랑. 사랑은 대체 무엇이길래~~  


나는 요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하는 데(사랑을 하고 있다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성애, 모성애, 팬덤, 신앙을 포함해.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 태어나며 무엇 때문에 겉잡을 수 없어지는 가.랄까. 


자신이 부족하게 느끼는 부분(그것은 결핍, 취약함, 부족 지점, 감추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는 당장은 없다는 지점에서 어쨌든 ⊖의 성질을 띤 것 같다)을 가지고 있는 타자를 마주쳤을 때 화르륵 타오르는 것이 아닐까. 여하튼 사랑의 시작은 투사다. 민감한 작가들은 이 심리학 개념을 몰라도 그 역동과 진실을 안다. 실제로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부족하다는 것은 조금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내 안에 있는 것. 대상으로 인해 촉발된 나 자신의 대단히 강렬한 변화에의 의지. 그 원료가 없다면 촉발되지 않는다.


내게 일어났던 사랑이란 그랬다. 


결국에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으로의 성장과 변화이겠지만. 내게 필요하다는 그 인식을 주체 스스로 셀프로는 해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인간은 그런 특징(스스로는 스스로를 볼 수 없다)을 가지고 있다라고 추측함. 추측만 함. 


때문에 ⊖(결여)가 아주 크거나, 변화의 의지가 아주 클 때. 사랑의 체험이란 치명적이고 강렬해지는 것 아닐까. 모든 변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니…. 욕망, 그건 고통과 함께하는 일종의 열락. 변화란 본질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 기투. 


사족 붙이기. 육중한 내 몸을 사랑에 던지고 하기에 본인은 근육과 기력이 없으므로… 코어도 없고요… (오늘도 필테쌤이 때찌때찌 쟝쟝님쟝쟝님쟝쟝님 내 이름만 천 번 부름.) 나의 기투는 몸을 극도로 사리는 정신적 기투로서(몸을 사린다고 하지만 책은 몸으로 읽는 것 입니닼ㅋ) 기왕이면 *이미 죽은, 책을 쓰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하였는 데… 이는 현실 사랑에 상처받거나 파멸하지 않기 위한 최고의 방어 전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꺄륵. 


재능 있는 두 여남 작가의 (그렇다 작가의 사랑이다!!!) 치명적인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천자를 할애하였다😮‍💨. 영화가 보여준 사랑의 시작은 그런 모습이었기에. 


시인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스위스의 극작가 막스 프리슈를 만나 사랑에 뿅 빠져버린다. 친구는 그녀를 말리지만 그녀도 막스도 막무가내다. 당신의 시를 다 외웠어요. 너 없으면 나는 글을 쓸 수 없어. 짐 싸서 살림을 합치고.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끝내주게 충만한 날들이… 



얼마 못 간다 ㅋㅋㅋㅋㅋㅋ


아침 마다 두개골을 울려대는 그의 타자 소리.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식사 준비와 설거지. 젊고 아름다우며 재능이 출중한 여자 시인은 심지어 박사(검색 결과: 바흐만 언니 하이데거랑 비트겐슈타인으로 논문 쓴 사람)에 당시로는 드문 비혼주의자 여성였음에도. 이국에서 고립되어 남자에게 기를 쪽쪽 빨린다. 시를 쓸 수가 없어!!!


헤어지는 방법을 모르겠는 연인은 왜 그렇게 싸울 때 똑같은 모습일까. 영화를 보면서 현타가 오지게 왔다. 


자기보다 똑똑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판타지, 열등감과 독점욕. 남자는 사랑을 미끼로 지배하려들고 길들이려 하고, 여자는 사랑받고 싶어 참다가 반항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다 그로 인해 포기된/한 것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나에게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던 그/녀는 이제 없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작가와 작가가 만나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이 주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생각해 볼 요량이라 더 적지는 않도록 한다). 또 그와 열정을 나누다가 그의 재생산 노동을 담당하게 되어버린 넘치는 재능에 걸려 넘어지고만 숱한 여성 예술가들에 대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의 잉게 언니는. 막스의 영감으로만 머무르기엔 너무 잘난 여성이시다.


인상 깊었던 장면 1. 자신을 철저하게 대상화한 그의 (숨겨진) 일기를 읽으며 그녀가 비분강개하는 장면. (막스가 잘못했지만 그래도 지못미…)


재현 윤리에 관한 두 작가의 언쟁이 이어졌는 데, 대단히 철학적이며 젠더적이었다. 감독의 생각이 반영된 연출과 각본일테지만, 작품세계와 인물들에 대한 공부와 이해가 근간이었을 듯. 자기가 뭘 쓰는 지 모르고 막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바흐만은 시인 이전에 철학을 공부하는 여성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뭘쓰고자 하는 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를 정확하게 다루고자 했던 이이의 책들을 찾아 읽어봐야지 마음 먹음.


장면2. 그녀가 이별 후 보게된 지독한 사랑에 대한 뼈 아픈 인식을 동행자에게 들려주는 장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토록 치열한 종류의 앎을 내게 준다면, 사랑. 해볼만한 것이지 않을까. 어쨌든 바흐만은 전후 독일의 시인이다. 무슨 말이냐면, 파시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란 이야기다. 대략 이런 종류의 대사였는데 (기억이 잘 안난다. 지금부터는 내 뇌피셜주의) 


“파시즘이 무엇인지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고 난 여기는 데. 최초로 세상에 나타났을 때는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 였을거예요. 아마.” 


대체 어떤 지독한 사랑을 해버렸기에 거기서 파시즘을???🫢이 아니다. 책 <가부장제의 창조>를 떠올리긴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랄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멀리 아우슈비츠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무엇인가를 똑바로 보면 되는 거라고. 만약 그것을 정직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현실의 아우슈비츠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에, 또 너무 심오해지네. ㅋㅋㅋ 그리고 또 인상적이지 않을 수가 없는 장면은. (지금부터 스포주의) 바흐만이 프리슈와 헤어지고 아주 심한 트라우마 상황을 타개하고자 사막으로 떠나서… 


나를 이용하고 길들이려하고 가스라이팅한 유럽 부르주아 지식인 중년 남성의 억압에서 벗어나서 모래바람 맞으며 자유야!!!(실제로 이런 대사ㅋㅋ) 외치는 일에 꼭 필요했던 것은 함께 떠나줄 젊은 남자…인 것 나 이해한다. 


그런데, 굳이 거기서. 


아니 그러니까, 어…언니 잠깐만요… 하… 젊은 남자 세 명과 한 침대를 꼭… (두명은 사막에서 만난 아랍계) 그 것은 영화적 설정인가 실화인가. 실화든 픽션이든 중요하지 않다. 내 안의 유교걸은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으어어어… 으으… 하…!!! 이거 성별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나를 상처준 나쁜 년을 잊기 위해 중년 남자 작가가 팬이라며 접근한 젊은 여자 애인을 데리고 멀리 동양까지 떠나 현지에서 맘에 드는 여성 두 명. 총 세명의 여성에게 한 침대에서 서비스를 받으면…. 



써지지 않던 시가 써지는가요? 🤷🏻‍♀️


그렇지만 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여/남을 떠나서 성립이 안되는 게ㅋㅋㅋ 그리고 가부장제란 인류 보편의 억압인게(정말 파시즘의 원형답다) 이 젊은 남자 아랍인들은 금발의 그녀랑 자고 싶어 드릉드릉 플러팅 함. 난 남자가 너무 좋아. 젊은 남자를 사랑해!!를 숨기지 않는 잉게언니는 이때다 하면서 너 콜? 나 콜! 잤잤잤!! ㅋㅋㅋ 그렇다. 이 장면은 서비스를 받았다(?)기 보단 좋은 교환(?)이었던 것! 


아. 섹스란 무엇인가. 여남사이에 정말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 사랑으로 시작해 섹스로 끝나는 글을 써댈 것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좀 해!! 라는 언니들의 말이 멀리서 메아리 치듯. 들려온다. 



2.

질투는 나의 힘 (2002) 

박찬옥 감독



박해일 예쁘다. 근데 이게 왜 여성 영화? (나의 한줄 평)

진짜 왜 여성 영화제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감독이 여자라서? 배종옥이 주체적으로 성생활을 영위하는 여성이라?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남자 영화(알탕이라고까진 못하겠지만)다. 필립 로스의 소설을 읽을 때 느낀 그런 기시감이 들었는 데…ㅋㅋㅋ 여기서 박해일이 사랑하는 것은 배종옥이나 서영희가 아니다. 박해일은 질투의 대상인 문성근(편집장)을 사랑한다. 이건 내 과도한 해석이 아니라 리얼 참 트루다. 


화제의 장면(?)이 있다면 아마 “누나, 나도 잘해요.”하면서 하는 장면 일텐데. 그러니까 박해일은 누구랑 섹스를 하는 거냐. 누나랑? 아니지. 편집장한테 바람맞고 홧김에 순진한 처자(서영희)랑 자는 것도 그래. 나는 묻고 싶다. 얌마. 너는 누구랑 하는 거냐. (박하사탕도 그렇고 2천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한계다. 상처받은 남자 위로해주는 건 그 옆의 기구한 팔자의 여자.)


그러니까. 인간은. 왜.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지어는 착취하는 권력에게(일수록) 그토록 인정받고 싶어하는 걸까. 앞의 주장(?)과 일맥 상통하는 것인데. 우리는 정말로 내게 있지만 내게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박해일이 사랑하는 것은 그 자신을 멋대로 부릴 수 있는 문성근의 권력이고 거기서 나오는 매력이다. 편집장 곁을 서성이며 편집장의 여자들에게 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느냐 괴로워할 게 아니라 걍 편집장에게 가서 사랑해달라고 하세요. 제발. (그리고… 영화는… 결국…)


(미모에 묻히지만 <살인>부터 <헤.결>까지 박해일은 한남 그 잡채들을 연기해왔다. 이 영화도 그러하다 ㅋㅋㅋ)


내가 이입이 되었던 사람은 당연히 박해일이 먹버한 K-장녀 서영희 였는 데.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가족. 사랑하지만 사랑해주지 않는 남자. 그녀가 사랑한 것은 박해일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구원이었겠지. 원가족에서 다른 가족으로의. 오랫동안 많은 여성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방법이지만. 그런 종류의 구원(특히 결혼)은 환상이다. 인류가 한쪽 성별에게 5천년 동안이나 가스라이팅해 온 구원 서사인데, 신자유주의 덕분에 파탄나고 있는. 이제는 로맨스에서도 안써먹는 진부하고 재미없는 결말. 


2020년대의 대한민국, 서열 경쟁에서 탈락된(진입할 의지조차 상실한) 대다수의 젊은 남성들은 더 이상 여자에게서 위로와 우쭈쭈를 바랄 수 없게 되었다. 구원서사 폐기하고 어디 한번 제대로 능력으로 경쟁해 보자는 여자들만 득시글. 천만명이 1인 가구, 그 중 절반이 빈곤층이라는 한국은.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지 못함을 불가피하게 알아차린 여남들이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발명해내지 않으면 천천히 멸종할 것이다. 


3.

슈퍼 에이트 시절 (2022) 

아니 에르노, 다비드 에르노-브리오 감독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1370


- 아니!! 에르노의 아들들이 계속해서 잘생겨지기만 한다... (나의 한줄 평)

30대의 아니 에르노(아직 작가로 데뷔하기 전 ~ 두편의 소설을 낸 후)의 가족 생활이 담긴 홈 비디오다. 남편이 10년간 찍었고, 이혼하면서 남기고(버리고) 간 필름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아들이 편집하고 에르노가 코멘트를 달아 나레이션 했다.


인상 깊었던 대사는 “책 하나로는 인생이 바라는 만큼 달라지지 않는다”


와, 이 대작 <빈 옷장>(요즘 읽고 있음)을 출간하고 에르노 성림이 쓰셨다는 일기의 문장 되시겠다. 하… 대가 답다!!! 역시 사람이 야망이 있어야 한다. 종의 복수 정도는 염두하고😤 책 출간 정도는 뭐 걍. 그게 인생의 목표일 순 없지. 암요. 그래도… 책 쓰는 거 아무나 못하는 건데🥹 그럼 몇 권을 써야 인생이 달라지나요… 구질구질 내 인생도 달라지는가?


화질이 좋지 않은 70년대의 필름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두 어린 아들들의 깨발랄한 장면과 대비되는 아니 에르노의 표정들인데. 모든 장면에서 (행복했다는 나레이션을 덧붙이는 순간에도) 그녀의 표정은 시종일관 우울해 보였다. 소설을 쓰고 난 후에는 더더욱. 



그러니까 내가 언제나 불만을 품게 되는 그 문장.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그러므로 내가 언제나 반목하게 되면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절반의 문장.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 는. 


그림같은 여행지에서. 잘생기고 부유한 남편과 아름다운 두 아이와. 육아를 거들어주는 엄마와 함께 살며 안정적인 자기 직업까지 있는 이 젊은 여성이. 심지어 오랜기간 마음 먹어왔던 소설을 써내고 그것으로 인정까지 받은 상황에서. 누군가 찾아와 당신만큼은 행복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고 당위처럼 따져 물어도 할말이 없을 판국에.


영상 속 그녀는 어색해 보였고, 사람들과 섞이지 못해 어정쩡해 보였고, 무엇보다 우울해 보였다. 


오랫동안 나는 글을 쓰기를 주저했다.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그 문장 때문에.

그러다가 나는 썼다. 글을 안써도 행복하지 않아서. 

그리고 이제는 쓴다.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문장을 부수고 싶어서.


행복은 무엇인지.

여자는 누구인지.

글이란 어떤 건지. 

쓴다는 것은?

하나하나. 집요하게. 따지고. 물어가면서.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하다. 




누군가가 행복이라고 정해놓은 문법들 속에 정확하게 들어있는 한 여성. <얼어 붙은 (그) 여자>는 행복하지 않았기에 글을 썼을 것이고, 글을 쓰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게된 것은 아닌가 되물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썼다. 


나는 이 영화에서 글을 쓰는 30대의 어떤 여자를 보았다. 행복을 느껴야할 곳에서 행복하지 않은. 영광은 아주아주 멀리 있고, 삶은 아주아주 가까이 있고, 써야만 하는 것은 써야할 테고, 쓰는 것이 사랑하는 것임과 동시에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면서. 그러나 자신에게 솔직하기로 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써야만 한다고 느꼈던. 아름다운 이국의 여행지에서는 서랍에 있는 원고를 떠올리며, 모든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순간에 멀찍이 서서 좀 처럼 신나하지 못하는 한 여자. 



사랑한다. 필름 속 그녀의 멜랑꼴리를. 행복에 적응할 수 없음을. 사색 중인 딱딱한 표정을. 

써야 하는 자신 안의 소명을 따랐던. 마침내 승리하는 그녀의 삶을. 


그리고 용기를 내서 이런 문장을 쓴다.

써야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쓰는지 당신은 아직 알지 못한다. 

영화 속의 아니 에르노 처럼. 


덧, 억압의 표징들이 명확한, 이제는 사라진 사회주의권 나라들의 실제 풍광에서 당시 느꼈던 바들에 대한 회고도 이 영화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소설가 아니 에르노와 영화는 일관되다. 그녀는 정말로 그녀가 쓸 수 있는 것을 썼다.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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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낫을 든 자웅동체 아메바의 9월 책 쇼핑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10-14 14:20 
    왜 때문에 오늘이 연휴의 마지막 날인 것인가. 보다 놀라운 것은 뭐 했다고 벌써 시월인가. 징글징글한 가족들과 딱 붙어 지내다가 (중간에 두 번 다퉜음) 서울에 올라오니 아, 이제 진짜 가을인가. 안되겠다. 뭐라도 써야겠다. 뭐라도 쓰자.“(40) 삼십 대 후반, 굉장히 가슴 아프고 특별하게 쓸쓸한 사연을 겪은 이후 나는 자웅동체 아메바처럼 혼자 씩씩하게 살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 <잘 돼가? 무엇이든> 이경미새벽 기차를 함께 타
 
 
단발머리 2023-10-14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대해서는 나는 엮인 글을 썼지롱 ㅋㅋㅋㅋㅋ 물론 에르노에 대해서만 썼지만요. 암튼....


그렇지만 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여/남을 떠나서 성립이 안되는 게ㅋㅋㅋ 그리고 가부장제란 인류 보편의 억압인게(정말 파시즘의 원형답다) 이 젊은 남자 아랍인들은 금발의 그녀랑 자고 싶어 드릉드릉 플러팅 함. 난 남자가 너무 좋아. 젊은 남자를 사랑해!!를 숨기지 않는 잉게언니는 이때다 하면서 너 콜? 나 콜! 잤잤잤!! ㅋㅋㅋ 그렇다. 이 장면은 서비스를 받았다(?)기 보단 좋은 교환(?)이었던 것!


요 부분 읽다 생각난 거는 이 지구상이요. 우주 말고 지구상에서는 ‘금발의 파란눈의 유럽 여자만‘ 가지는 위치성이 있잖아요. 그니까 여성으로서 최상품? 그래서 이게 가능한 거 아닐까요. 흑인 포함 우리 유색인(우리가 무슨 색연필이냐, 아무튼)에게는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저는 여성,을 마지막까지 억압할 부분은 ‘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에 대한 불안. 두려움. 잉 언니는 그걸 타파하고 싶었던 거겠죠. 그러는 거 사실...... 엄청 피곤한데.....

공쟝쟝 2023-10-16 20:45   좋아요 1 | URL
그 엮인 글이 넘나 아까워서 부러 가지고 왔어요ㅋㅋ!!!

여성으로서 최상품......... ㅜㅜ 그러네요. 으잉 정말 그러네... 뭐라고 말로 표현을 못하겠는 데요, 사실 입에 담기가 걸끄러운 진실인 것 같아요. 적절한 예시일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이 참 너무 컸는데요, 되게 미안했거든요. 실은 나 조차도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대상화했던 것 같은 마음. 저렇게 이쁘고 사람들이 다 사랑해주는 데도 힘들구나.. 뭐 이런?!? 근데 그런 거 아니잖아요. ..... 정말로 정말로 아니잖아요. 억압은 달콤한 부분도 있죠. 정말은.

성적 해방. 잉언니도 아니 에르노 언니도 그걸 타파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근데 그 타파 좋은데.... 현실적으로 섹스가 그렇게 풍족한 자원이 아니라서.. 게다가 이젠 목숨도 걸어야하고요 ㅋㅋㅋ 아, 그러니까 저는 정말로 공쟝쟝의 섹탐(하다가 맘)을 지적인 의미로다가... 하다가 이걸 내가 왜 읽고 있냐(현타가 와서) 일시 중단 상태이지만, 연구해야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억압할 부분, 성. 그리고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나타났죠. 최초의 최후의 식민지 맞습니다.

단발님...그러나 여성+여성 또한 사회입니다. 레즈비언 정치경제학을 이민경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크리스틴델피를 만났더라고요.<꼬리를 문뱀>참고. 그리고.. 저는 여성들의 섹슈얼리티까지는 아니지만 경제적 이해 관계를 함께 꾸리는 것도 정말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섹스는 바깥(?)에서 하고 와도 경제적 자원은 여자들안에서 나누는 나름의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델피를 더 읽어야겠어요.

그게 되면 언젠가는 여남사이의 섹스도 해방되겠죠. (와...... 이상주의 쩐다)

서곡 2023-10-14 14: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잉에(게) 역 배우, 이 영화는 못 봤지만 출연작 몇 개 봤어요 페이퍼 쓸까말까 하던 영화가 전부터 있었는데 쟝쟝님으로부터 기 받아서 이 달 안에 써 봐야겠습니다 ㅎㅎㅎ

공쟝쟝 2023-10-14 15:04   좋아요 1 | URL
서곡님의 예술 레퍼런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영화도 이제야 이해하면서 쪼매 볼것들만 추천작 중심으로 챙겨봐서 (너무 좋음), 배우 연기 좋았어요.! 그리고 이 감독이 <한나 아렌트> 감독이라고 하더라고요. 여성서사 전문 ㅋㅋ 아 오늘 한나 아렌트 봐야할 것 같고.. 근데 저는 알라딘 하느라 오전을 다 날렸고 ㅋㅋㅋ

서곡 2023-10-14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뉴 저먼 시네마의 이른바 ‘홍일점‘이시죠 로자룩셈부르크 영화도 만드셨고요 전에는 저도 영화제 영화관 자주 다니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그냥 집구석 ott로 자족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3-10-14 15:18   좋아요 1 | URL
서곡님. 저는 ........ 영화를 <방구석1열>로 배운 그런 여자입니다! 부비적. 그래도 김혜리랑 이동진 정성일 책은 읽었어요. 영화는 안보고요!! 책을 읽었어요. ..... 저는 시도... 평론으로 읽어야 이해해요,...(푸하하하)
그래서 뉴 저먼 시네마! 하시는데 너무 멋지다. 서곡님. 로자 룩셈부르크 영화도 만들었다고요?
방금 주연 배우 필모 찾아봤는데, <청년 마르크스>에서 예니로 나오신 분이네요. 인상적이었는데... 연기 잘하는게 아니라 작품선택 너무 철학적이네... 멋져... 나의 지적 여정은 이제 독일시네마로까지 넓어지는가..(그만햇!!)

서곡 2023-10-14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럼요 모든 게 다 책으로 가능하지 않습니까 ㅋㅋ 한나 아렌트와 도나 해러웨이 다큐영화도 전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했었죠 영화제에 가야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있어서 가끔은 여전히 가고 싶긴 합니다 ㅎㅎ

공쟝쟝 2023-10-14 15:40   좋아요 1 | URL
우와…. 서곡님💛😆😆🩷🥹🩷🧐 오늘의 발견이다! 시네필 서곡님의 여성영화 사랑과 아렌트의 생일!

은오 2023-10-14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님은 이제 서재부터 챙겨라!

공쟝쟝 2023-10-14 15:39   좋아요 1 | URL
서재에 좋은 선생님들 너무 많다!! 🥹

독서괭 2023-10-14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어도 없고.. 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 코어근육 키우기 위해 몇달째 홈트 중인 독서괭💪
잉게보르트, 아니에르노 보면서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가 생각나네요. 그렇다고 굳이 남자 세명과?? 는 저도 유교걸 반응하지만 ㅋㅋㅋㅋ

공쟝쟝 2023-10-16 20:06   좋아요 0 | URL
홈트로 만약 코어와 복근이 생긴다면 … 제게 꼭 알려주세요 괭님 😻😍😭🥹~ <방해자>는 언젠가 꼭 읽고 싶당!!
 
라캉이 땡기는 토요일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를 찾아가는 라캉의 정신분석
가타오카 이치타케 지음, 임창석 옮김 / 이학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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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물론 증상에는 고유한 고통이 있으며, 증상으로 고통받는 현상을 “그것이 당신답게 사는 방식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완전히 긍정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은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불만족스럽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을 안고 있기에 생기는 것이지, 결코 건강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고,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부담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증상을 제거하여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사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정신분석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가타오카 이치타케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 자체를 멀리하고 경시하는 문화가 싫다. 삶에서 오는 만족감(자신에게 집중하기)을 경험하기 힘든 사회적 조건에서 고통마저 부정하는 것은 그것을 대상화하는 것만큼이나 포르노화하는 것만큼이나 억압적이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는 시구처럼.


지금 당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는 사람과 그래야 하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선뜻 불만족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온몸으로 불만족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만족에 대한 질량/진정성을 구분할 재간은 없다. 나는 안괜찮으므로 종종 괜찮아?라고 묻게되고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다고 말한다. 곰곰 사실은 아니, 나도 좀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좋다. 


그건 내가 아픈 사람이어서인가? 하고 의심했다. 


아니다.


아프다는 것. 자신의 고통을 인식할 만큼까지 스스로를 굳히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살려고 하는 희미한 내 안의 흐느낌을 듣는다는 것이고. 미약한 흐느낌에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자체로 가능성이다. 가능성이기에 취약해 보이고 희미하며 어설퍼 보일 테지만.


도약에는 단절이 필요하다. 아니 단절이 필수다. 애벌레와 번데기와 나비 사이에는 도약이전에 명확한 단절이 있다. 내가 번데기인지 애벌레인지는 나도 모른다. 나비가 되어봐야 안다. 나비가 아닐 수도 있다. 나방, 쥐며느리, 개똥벌레 혹은 매미일 수도 있다. 뭐든 자신이 되면 된다.


희미한 목소리에 집중(그것을 내 안의 신호로 인지하기로 결단한)하는 사람은, 이물감과 당혹스러움, 무력감을 괴로움으로 감지하기도 하며, 찬찬히 들여다 보기 위해 자신 안으로 파고들어야 함을 느낀다. 스스로는 알테다. 너무도 연약하지만 명료한 상태. 나를 구성해오던 내 안의 목소리와 분리되는 기분.  


요는 자유와 불안, 고통과 나다움에는 어떤 함수가 있다는 것. 솔닛의 말대로 고통은 자아의 경계이기도 하다. (물론 라캉의 정신분석은 자아가 아닌 주체[무의식적]를 대상으로 하며 자아개념은 탈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없앨 수 없으며 ‘증상’은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통은 고통이기에 대체로 무의식의 영역에 묶여있다. (타자가 아니고서는 스스로 인식할 수 없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안과 바깥은 정확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다. 내 안은 내 바깥이다. 목구멍부터 똥구멍까지 어쩌면 인간은 하나의 구멍이므로 선명하게 구분하는 것도 오만같다.


주절주절 써대다 보니 글이 길어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라캉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이 책의 미덕은 “(7)과도한 도식화를 두려워하지 않음”이므로 책을 추천합니다. 물론 본인의 무의식이 두려운 사람은 안보겠지만 ㅋㅋㅋ


나는 내 무의식에 치열한 편이고… (알기 싫은 것을 모르고저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집요하거나 긁어파는 성격(이 없는 건 아님)과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나를 살지 않은 탓으로 고통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은 건강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 임을 수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정상/비정상을 구분하거나 사회의 인정이나 열악한 위치(대체 그것을 누가 평가하는가?) 때문 만은 아니다. 혹자는 스스로 알아서 ‘사는 방식’을 터득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자신이 완전체라면… 대체 왜 사는 거지? 죽음은 인생의 완성이다!) 


제 나름의 고유한 사는 방식은 누구도 완벽히 알 수 없으며, 죽을 때까지는 모른다는 것. 모른다는 것 앞에서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태어나버린 이상 누구나 자신의 ‘사는 방식’을 발견해야 한다는. 당위로서의 행복/건강/정상의 추구가 아니라 나를 사는 방식. 그것이 증상, 고통의 보다 분명한 존재 이유라는 것을 나는 이제사 아주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느낀다. (프로이트로 돌아가자!!!) 


고통. 그것을 질환, 병, 박멸해야 할 해충처럼 다루며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지구를 타자화한 현시점의 인류가 바로보지 못하는 거대한 무의식일지도.


고통에는 이유가 있다.

감정(몸의 반응)에는 분명 까닭이 있다.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발견해낸 ‘사는 방식’이라면 사는 방식일 것이다. 

그것들을 내쳐온, 보려 하지 않은, 내 안의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음이 정말은 내 무의미한 고통의 의미였음을. 


의미의 절단.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 라캉과 관련한 글들을 읽을 때 나는 깊이 위로받는다. 지금의 ‘사는 방식’을 옹호받는 느낌이라 그러하다. 장난처럼 나는 생라캉이라고 농담을 던지지만. 그의 사상이 퍽 마음에 든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저런 현상들 중에 내가 가장 못마땅한 것은 인간 저마다에게 있는 고유한 감정이나 심리적인 숙제들에 라벨링을 붙여 질환으로 여기는 언어의 생산인데… 


나 조차도 실은 그런 언어에 깊이 침윤되어 있었으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을 벼려나가 보마 한다. 


나의 불행에 대한 처방이 나의 안정일 수는 없다.

같은 밀도로 나의 행복에 대한 처방이 나의 안정일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언어들은 애초에 같은 언어였겠지.


내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불안정이다. 불안정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미세한 지점.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나로 사는 방식은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 많이 휘청거리는 것은 독이기도 하고 약이기도 하다. 가장 안정적인 상태는 누워있는 상태지. (물리적으로 나는 오래 누워있는 편이다.) 스우파 2를 동생들과 종종 본다. 아름답고 멋진 춤은 불안정의 안정이다. 


- 내가 나한테 너무 미안해요.


나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타인들의 언어로 나를 괴롭힌 나를. 


나의 언어 세계는 통증이 인식의 조건이며 가능성이다. 비움이 곧 채움이며. 상처가 곧 사랑이다. 과정에서 오는 성장의 기쁨을 알아가는 중이다. 

2023-09-27

정신분석은 주체의 진리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이는 환자의 "문제 행동"을 소멸시키거나 환경에 대한 적응을 통해 자아를 강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오늘날의 이른바 "마음의 치료"와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지배되는 지식의 체계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주체의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정신분석의 길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신분석이란 표면적인 제 증상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주체가 "사는 방식"의 핵심을 파고 들어가는 실천입니다. 문제는 진리가 드러나는 단면을 "잘라내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진리를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미[작용]signification의 영역을 넘어선 무의식의 영역이 드러나게 됩니다.
-😀 정신분석의 목적 - P6

무의식이 시니피앙으로 구성되는 한 무의식은 시니피앙의 ‘법’에 따라서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은 "문법"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결국 무의식은 그저 혼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인 구조를 가지며, 그곳에서는 어떤 규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무의식을 혼돈으로 파악하는 자아 심리학과 라캉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아는 무의식을 억압하고, 이러한 ‘법’을 못 본 척합니다. 나아가 자아는 상상적 인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계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의 목적은 이미지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무의식의 ‘법’을 분명히 볼 수 있도록 환자를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라캉의 무의식은 언어적인 구조를 가진다. - P151

라캉은 그런 본능론을 일축했습니다. 그 대신 그는 그것을하나의 ‘체험’으로 상정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물’의 체험입니다. 향락의 기원은 ‘사물’의 체험에서 유래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우리 모두는 태어남과 동시에 바로 ‘사물’을 체험합니다. 이러한 원초적인 체험을 한 후에 우리는 죽음 충동에 이끌려 향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설명해보겠습니다. ‘사물’의 체험이란 원초적인 만족 체험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 😀 사물의 체험, Ruti 식으로 말하면 큰 사물the Thing의 울림인 듯. - P240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① 자신이 어떤 형태로 향락을 얻을 것인가라는 점이며, 또한 ② 욕망에 의한 변화를 만들려면 어떤 ‘여백’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점으로 이러한 점들이 인생의 의미나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환상이란 바로 향락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이며, 또한 욕망의 지표를 지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환상이 지시하는 이러한 규정이 인생의 이정표가 되는 셈입니다.
환상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섭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환상이란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종교는 인생의 지향점을 제시해줍니다.

​- 😀 아... 정말 도식화 너무 심하게 해서 라캉 다 이해해버린 듯 ㅋ - P263

351
다양한 고통은 결국 모든 인간이 대타자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중략)원래 대타자는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절대적인 의지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타자는 그 구조상 결코 ‘최고의 행복’을 주지는 않습니다. (중략) 이러한 실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대타자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에 의지 하지 않고 독자적인 "행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특이성"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것입니다.
- 😀 내 말로 풀자면 정신분석 최후의 표적은 대타자에게 찔끔찔끔 반항하는 삶 아닐까요. 그렇다면?! 나는 이거(아무도 안시킨 돈도 안되는 공부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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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12-29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씨 너무 예뻐요. 쟝쟝님!
책은.... (먼 산) 나도 이 책은 읽어보고 싶어요. 파란색이 너무 예뻐서요.
그러나 읽어야 하는 책은 <라캉, 사랑, 바디우>라는 점을..... 굳이 강조합니다. (핑크색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2-29 12:03   좋아요 1 | URL
글씨 객관적으로다가 안이뿌다!!! 그 책 폈다가… 드라마로 퇴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