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출구 1
허새로미 지음 / 봄알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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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었다. 드디어.정말로. 

일단은 박수를 치고 시작하자. 

👏👏👏👏👏👏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박수로는 안되겠다. 소리 질러!! 

예에에에에~🗣🗣 🗣 🗣  

더 크게~~ 와아아아아🤩🤩🤩🤩🤩


삶은 각자가 사는게 맞고 원래 인생 혼자왔다 혼자가는 거지!!!라는 말에 고개 끄덕 하면서도 언제나 ‘함께-곁-관계-연대-연결’ 등의 단어에 이미 눈물이 맺혀있어버리는🥺 나는 도시보다는 시골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왔고, ‘핵가족 사회로의 급변’이던 90년대에 할아버지ㆍ할머니ㆍ삼촌ㆍ고모들이라는 대가족을 굴리느라 부모님만(!)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살림밑천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만(!)한 4남매의 장녀였다(느껴지겠지만 4남매란 아들로라도 자신의 갈린 삶을 보상받아야했던 엄마의 슬픈 인정투쟁이었다). 내 무의식 속 가족이란 모부의 삶 모두를 갈아넣어봤자 겨우겨우 시끄럽게 골골대며 굴러가는 가성비 나쁜 고물기계의 모양이었다. 


삶을 갈아 넣을 필요가 있나? 고물 기계는 폐기처분해야하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잘리듯 깔끔히 썰리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니더라. 고물기계는 싫었다. 그러나 모부의 삶까지 폐기처분하고 싶지는 않았다. 갈린 건 내 삶이 아니라 모부의 인생이었을 따름이었고, 고물이었을지언정 그들이 세상에 따져묻지 않고 성실히 몫을 다하는 책임감을 발휘한 덕에 난 성인이 될 수 있었으니까. ‘너 하고픈거 하고 살아’라는 말을 주 양육자에게 들어보지 못한채로 어느곳에서든지 너무도 쉽게 강한 책임감을 느껴버리는 성인으로 자란 것은 좀 문제였지만.

 

***


모부가 가족이라는 시끄러운 고물기계를 부지런히 굴린덕에 19년의 생존에 성공했다. 이따금 찾아오는 무기력의 나날들은 삶의 의미를 찾게되면 괜찮아 질거라 다독였다. 너무 많은양을 책임지려 하지만 않는다면 이 기계를 고쳐써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행사에 몇 차례 불려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너를 사랑하고말고가 아니라 내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야. 상견례까지 마친 상태였는 데, 파혼하고 함께 살던 집에서 뛰쳐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마침 다니던 직장도 잠시 그만둔 시점이어서 굶어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2백만원을 빌렸다. 누군가 내 삶을 내려다본다면 그 무렵이 가장 막막해 보이겠지만, 정작 나는 선명했던 것 같다. 혼자가 되자. 먼저 혼자가 되어본 뒤에 함께를 선택하자.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의 내가 대견하다.


“(196) 스스로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을 때, 타인에게 나의 무게를 너무 맡기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 때 타인과 나 사이에 물리적, 정신적인 거리를 두는 것은 여자와의 관계에서도 좋은 전략이라 나는 믿는다. 헤어지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중심을 잡고 건강해지기 위해서다.”


나는 나를 믿기로 했고, 가끔 드는 비참한 기분에 취해있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다. 쉬운 상대에게 심리적으로 기대거나 하소연으로 해소해버리는 것을 꾹 참았다. 그건 그냥 내 기분만 좋을 뿐 문제를 이성적으로 볼 수는 없게했다. 혼자 웅크리고 앉아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고 방법을 생각해야했다. 특히 동생들과의 연락을 자제하고 만남을 두달에 한번 꼴로 한정했다. 굶어죽지 않았다. 데리고 나온 고양이도 굶기지 않았다. 이따금 불안할 때는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그리고 이내,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 


“(7) 추석에 추리닝 차림으로 집을 뛰쳐나왔을 때 나는 서른 다섯 살이었다.” 


물리적으로 더하여 정신적으로 혼자가 된 것은 정말로 지금이 처음이다. 나누어 쓸 필요 없는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도 처음인데다, 이 공간을 만들어내고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기 위해 2년의 시간동안 죽어라고 일만했다. 그러니까 혼자를, 내 공간을 만끽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까지 포함해 갖추게 된 것은 작가님처럼 나 역시 서른 다섯이다. 남들은 혼자가 지겨워 결혼을 선택한다는 나이. 언제나 휩쓸리며 살아온 나에겐 이제라도 혼자되기 좋은 나이, 반칠십. 


피곤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말똥말똥한 자립의 기분은 뭐랄까. 이대로 영원히 혹은 더할나위 없다, 라고 생각한다. 혼자는 외로움이 아니라 충만함이다. 약간의 심심함과 무한대의 자유다. 이러한 상태를 만끽해본 적도 없이 결혼제도에 편입되어보려고 했던 미련했던 그때의 나여, 이젠 정말 아디오스.


“(87) 딸들에게 하나의 위로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그저 태어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기엔 지극히 복잡한 곳이다.

정상가족, 혈육의 정, 참고 용서하는 착한 딸, 그 무엇도 단 하나의 정답일 수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을 돌볼 의무가 있다. 혈육에서 떨어져 나온 딸도 혼자 잘 살아남아 제 길을 간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는 더 잘 살고 더 건강하고 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이제까지는 상상도 못 해보았을 만큼 더욱 그렇게 되어야 한다.”


물론 외로움에 유난히 약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외동으로 자라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했다는 친구들이 느꼈다던 고독감을 상상해본다. 상상이 잘 안간다. 되려 곁을 내어주고 맛있는 걸 해 먹이고 옆에 뉘어 머리를 매만져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뭘까, 고독감을 상상하는 것보다 돌봄을 내어주는 상상을 하는 것이 편한 뇌구조란(뭐긴, K-장녀 DNA). 그 때까지 내가 겪은 관계에서의 고통은 외로움보다는 무거움이었는 데, 나는 사람들이 호소하는 괴로움을 내 것처럼(혹은 내가 해결해줘야하는 것처럼)느끼곤 했다. 그런 유형을 ‘조력자 증후군’이라고 호명하여 설명한 책을 읽고선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안쓰던 독후감을 다 써서 올렸고 그게 알라딘 서재의 시작이었다.


***


오늘의 내가 무려 한달이 넘도록 고독한 1인 식사 메뉴를 고민하기까지(요즘 가장 고심하는 외롭고 힘겨운 정신적 노동이다)… 솔직히 난 혼자였던 적이 별로 없다(군중속의 고독이야 많았다). 대학생활도 기숙사에서 시작했고, 거의 항상 자매들과 함께 살았고, 주변에는 외로움이 느껴질 때 쉽게 절취할 수 있는 우정과 우정 비슷한 관계들이 언제나 있었던 것 같다. 소통이 수월하지 않아 차라리 혼자인게 더 나을 가짜 관계들도 많았다. 혼자여본 적이 없으니 부러 의식적으로 혼자가 될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사람들도 나를 혼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혼자있지 못한다가 아니라 혼자일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187) 원가정의 36평 집에서 신혼의 28평 아파트로 옮긴, 그런 인생을 사는 평행우주의 내가 있다면 지금의 나를 보고 인생 망했다고 슬퍼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매트리스에서 침대로의 변화가 인생의 분수령이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마을을 짓겠다는, 지금 여기서부터 진짜 집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이다. 원룸이나마 내가 고른 집에서, 이만 원짜리지만 내가 조립한 가구를 들이고 내 방식대로 동선을 구성하고 배치한 집에서 나는 의외로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 내가 한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런데 나는 아주 작은 공간에서도 간단한 물건을 가지고 적절하게 살림을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게 공간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오랜 무기력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가족으로부터 분리되고야 깨달았던 것이다.” 


언젠가 알라딘에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혼자가 된 나만의 공간에서 난 의외로 청소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어지른 것이 명확한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빨리 치워서 제자리에 두고싶다. 동생이나 친구들이 왁자지껄 놀다 간 다음에는 바로 청소기를 돌려서 집을 원상복구 한다. 있을 곳에 있을 것이 있다는 것은 안정감이고 그 안정감이 좋아서 바로바로 정리한다. 


오랜기간  정갈하고 단아한 사람들이 부러웠는 데, 정갈함 품위 뭐 이런 것들은 원래부터 자기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기능하기 쉽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누가 어질렀는 지 분명하지 않았던 대가족의 집, 아껴쓰고 나눠쓰는 것이 기본값이었던 물건들. 제자리에 두어진 물건을 가져다 쓰기보다는 마지막으로 쓴 사람을 찾아서 물건을 찾는 게 룰이었던 환경에서 아무래도 정갈하기는 어려웠겠지. ‘단정히 유지함’이라는 책임이 뒤따르는 소유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중이다. 좋아하는 걸 사야지. 기왕이면 좋은 것을 사야지. 취향 비스무리 한것들도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136) 혼자가 된다는 데에는 뭔가 상처를 후벼 파는 데서오는 것 같은 쾌감이 있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이거구나, 결국 혼자가 되었구나,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것. 나는 혼자가 되기를 택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 어떤 MBTI 성격 유형이나 별자리보다 확실한 타입이 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포영화에서 악당이 죽었을 때 그가 진짜 죽었을 거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이 악당의 시체를 건드려보고 찔러보고 총으로 몇 번이나 쓴 다음에도 갑자기 살아나서 덤비지 않을까 주의 깊게 살피는 이들이 결국 혼자 살게 되는 사람들이다.”


혼자인 게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 불완전한 사람인 것 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왜 사람들은 혼자를 혼자로 그냥 두지 못하는 걸까(외로움의 투사?). 특히 혼자인 여자에게 어떤 사연을 기대하는 걸까(사연 없다고요). 그러니까 혼자가 됐지, 라고 후려치거나 어떻게든 짝지어주고 싶어 안달복달 하는걸까. 아무런 이유없이(지금까지 쓴 것들이 다 이유 아니던가?ㅋㅋㅋ) 살아보니까 혼자가 더 완전하고 좋았어요(!)도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꾼다. 물론 “나만 솔로..” 따위를 개그라고 하고 있던 시절을 내가 살아와버렸고, 나의 사회용 페르소나는 그런 드립으로 대처하는 것을 가장 수월하게 여기지만(이건 고쳐야겠다)...

 

몸이(마음 말고 몸이요..) 외로워서 누군가의 체온이 그리울 때도 있었고, 결혼은 그렇다치고 왜 연애는 안해요?라는 질문에 받아칠 워딩을 마련해야할 것 같아 심각해지기도 했었지만, 내가 느끼는 가장 밑바닥에 흐르는 ‘혼자’의 두려움이란 ‘앞으로 영원히 아무도 나를 안좋아해주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인 것 같다. 이 책 136페이지를 읽으면서 이내 그 심연도 별거 아닌 것이 되었다. 맞네. 뭐, 아무도 나를 안좋아해주는 것은 원래부터 그랬네. 어떡하지?가 아니라 상태였다. 그냥 그런 상태로 계속 있었던 거라. 앗! 유레카!!!! 어쩌지? 가장 큰 두려움을  방금 제거해버렸어!!🤭 이제 나는 더욱더 완전해졌다 우하하하!!🤣


그리고 덧붙이면 아무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싫다.


최근에 자매들과의 카톡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 데

나 : 구남친이 결혼한대. A가 B랑 결혼했대. C랑 D랑 사귄대. 왜 나빼고 다들 사랑하는 걸까..

동생 : 질문을 바꿔봐. 언니, 그들과 결혼 하라면 절대 안할거잖아. 

나 : 어. 때려죽인대도 안해.

동생 :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동네친구랑 이런 대화도 했었다.

나 : C가 나를 좋아하는 상상만으로도 C가 싫어졌어. B와 D가 대단한거야. 사랑..뭘까...?

친구 : 짚신들이 제 짝을 찾은 거죠.

나 : 짚신으로 사느니 왼쪽뿐인 닥터마틴이 되겠어.

친구 : 갑자기,,, 닥터마틴?

나 : 은근 비싼신발.

친구 : 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상태가 아무가 나를 좋아하는 상태보다 더 낫다는 것까지 밝혀져버렸고. 남은 것은 돌봄이다. 노후와 돌봄에 대한 생각은 좀 더 깊이 생각해야할 주제이지만 최근 읽은 정희진의 문장을 인용해와 볼까 한다. 


“(203)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팬데믹의 대안으로 돌봄 윤리에 관심을 보이지만, 이런 흐름은지금 여기의 ‘여성 해방’과는 거리가 멀다. 팬데믹의 결과로 또다시 여성들이 강도 높은 보살핌 노동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의 내용은 그 자체로도 재평가해야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돌봄이 공적 영역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 자체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인류가 욕망하는 주된 가치인 물질적 풍요와 경쟁과 승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많은 가치 중에 ‘돌봄’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돌봄 노동의 의미와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가 필요하고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론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 정희진,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미래의 돌봄은 개인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착실히 준비해가겠지만, 인생은 항상 뒤통수를 치는 법이니까 구조적으로도 인식론적으로도 고민해볼 것.


***


사실 이 책의 백미는 정상가족(원가족) 안에서 저자가 느꼈던 분열과 그것에 대한 분노, 이해하려는 노동을 하지 않겠다,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선명한 선언들에 있다. 독후감으로 그 이야기를 써볼까도 생각했는데  내가 지난 몇년 동안 이곳 알라딘 서재라는 공간에 맥락이 닿아있는 주장과 감상들을 거듭해서 써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미 계속해서 선언을 해왔고, 그 다짐들의 결과로 ‘드디어 혼자’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결국 원하는 것(=혼자)을 얻어낸 지금의 나는 모부에게 더는 이전과 같은 화가 나지 않는다. 방향이 분명한 섬세하게 분석된 화를 느끼고, 그래서 덜 억울하다. 용서했냐고? 글쎄.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용서할 필요는 없고, 가부장제를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용서한 건 아닌데- 해석이 달라졌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이 충만함의 시간이 지속되어 더 너그러워진다면 무식해도 책임감만큼은 강한 개인이었던 모부들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해질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역시 먼 훗날의 일일테다. 


“(137)나는 원가족을 떠나 여자들과 새로운 관계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모든 관계는 사실 등가교환이고 협상이고 거래라는 해석은 상당 부분 진실이다. 주기만하는 사람은 없고 받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어떤 대화도 한쪽이 떠들기만 해서 잘 굴러가지는 않는다. 어떤관계도 매번 한쪽만 식사를 계산하거나 운전대를 잡아서는 동등해질 수 없다. 그러면 자원과 돌봄을 주고받을 대상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상호작용하고 거래해야 했던 이들이 우리가 여태 살아온 지옥을 만들어 왔다면, 혈연관계로 얽힌 누군가, 직장에서 마주쳐야만 하는 누군가, 혼인 관계에 있는 누군가와의 자원 교환이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했다면 이제는 누구와 무얼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결정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시간이 내 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많은 관계가 시작도 되기 전에 망가지고 말 것이다.”


용서할 필요도 없는데 시간까지 내편이라고 말해주는 허새로미님 덕에 마음이 너어무 편해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매님 이젠 제가 이 복음을 전파하겠습니다. 나는 이 책을 혼자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여남 상관없이 정상가족 혹은 혈연이라는 구조안에서 자기 자신을 해쳐본 경험이 있는 누구라도 읽었으면 좋겠다. 안죽는다. 인연 끊는다고 패륜 아니다. 이해할 필요없다. 이해하려는 순간이 상처받는 순간이다. 상처를 허락하지 말것, 특별히 더 친밀한 관계에서. 용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여유가 없다면 만들어내서라도!!) 적극적으로 혼자되기를 “(92)뼛속까지 혼자가 되”보기를 권한다. 혼자여서 좋은 것은 세상이 혼자를 반기지 않는 덕에 언제고 하산하고 싶으면 ‘함께의 속세’로 돌아가도 된다는 거다. 


나는? 나 역시 열린 결말이다. 겨우 혼자가 되어본 (만 2년이 좀 더 넘어가는 시점) 약소한 혼자력이지만 당분간은 하산할 생각이 없다. 어쨌든 혼자이기를 선택해본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남들에게는 너무 쉽다고 여겨지는 일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던 적이 많았다. 손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편하고 달콤한 관계들을 부러 제쳐놓고 고립되는 것이 특히 그랬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뼛속까지 혼자가 되고 나서야 함께 있을 때 가장 외로웠고 그 함께있는 외로움의 상태가 가장 취약한 상태였다는 걸 알았다. 그러므로 외로울까봐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은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석달만에 만난 동네 친구는 네가 혼자이기를 원하고 그 안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것 만큼 누군가와 연결되어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을 적대적인 어떤 것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니까 두가지는 다른 영역인거라는 거지? 어느 하나가 어느 하나를 줄이는게 아닌. 하지만 ‘나’라는 자원은 한정적인데? 느끼는 행복감에 대해서 말이죠. 질적으로 다른 행복감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오케이, 그렇다면 열린 결말하겠어. 그러나 대화와는 별개로 지금의 나는 충분히 더 혼자인 것을 잘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상태를 지속시키느냐 마느냐는 능력밖의 일이 되지만, 이 상태를 만끽하지 못하는 것은 내 능력안에 있는 일이다.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좋아. 봄날의 곰만큼. 

아들의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란 얼마나 단단하고 평온한 것일지 상상해본다. 식탁이나 저녁상의 자기 자리를, 자기 발언권을, 혹은
*자기의 음식에 대한 권리를 기각당하거나 미리 양보해야 한다는 염려를 조금도 하지않고, 모자란 반찬이 있거나 누군가 음식을 흘렸을 때에 식사하다 말고 일어나야 한다는 지각이 전혀 없이, 아무 말이나 해도 혹은 아무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아도되고 그저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자가 누릴 온전한 감각. 그런 상태에서 누릴 맛과 냄새 그리고 위장이 채워지는 행복감. 그는 자기 바로 옆에 앉은 누이와는 딴판으로 다른 식사를 매일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의 아들들이 제 손으로 마늘 한 번 까보지 않고 집밥 집 밥 노래를 부르는 데엔 이유가 있다. - P34

그러나 우리는 공동체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이 말하지 않고도 전달되어야 했고 너무 많은 감정이 그저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로맨스 혹은 사랑으로 시작한 것이 가족만큼 무거운 것이 되어선 안 된다는 비명을 엄마는 평생 질렀다. 아빠는 그 비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로맨스에 납치당해 삶을 걸머진 여자가 지르는 크고 작은 비명을,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당연히 하는 잔소리나 푸념 같은 것이라고 온 세상이 이해했다. 엄마와 아빠 모두 왜 이렇게까지 삶이 무거운지, 미래가 두려운지, 실체도 없는 불특정인에게서 꾸중을 듣거나 경멸을 당할 거라는 환청을 들으며 사는 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 그렇게 사니까’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세월을 보내고 나서는 다음 세대에게도 ‘다 그렇게 산다’는 주문을 반복했다. 정확한 대상도 없는 데 속도는 너무도 빠른 분노와 더께가 얹힌 억울이 집안 공기에 항상 흘렀다.* 그걸 배운 나도 주변에 화풀이를 했다. - P56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저주와 앙심을 품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자기방어에 가깝다.
다른 관대하고 훌륭한 딸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용서하지 않고 살아지는 삶도 숭고한 것이다. 용서하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아서 외로워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존엄은 혼자 죽기 위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합당한존중을 주지 않는, 언제나 꿍한 채 내가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빚지고 있다고 믿는 가까운 이들에게 투항하느니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편이 낫다*. 남이 나를 한 대 치는 것은 용서해도 내가 남을 한 대 치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딸들의 불균형한 정신은 세상의 온갖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토대다. 나는 남의 정강이를 걷어 차지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나의 정강이를 걷어찬 인간도 용서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 거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 - P88

나는 언젠가 아무렇지 않은 듯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아마 용서하는 법에 대해 쓰게될 거라고, 많은 이가 그렇듯 이해와 존중과 그리고 마침내 용서와 합일로 가는 위대하고도 사적인 여정에 대해 쓰게 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느라 혼자인 삶에 대해 함부로 쓰기 시작할 수 없었다.* 언젠가 상담을 받고 책을 읽고 먼 나라의 해변에 앉아 모든 진실을 깨달은 후에 편안해지리라, 많은 영화에서 그렇듯 홀가분하게 응어리를 내려놓고 ‘건강한거리’를 유지하는 가족이 되리라고 상상했다. 엄마와 싸우고 남동생에게 쌍욕을 퍼붓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내가 어렴풋이 환상처럼그렸던 화해와 이해와 용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
내가 지금 아는 것은 가족을 용서하고 가족에게 이해받고 딸로서 어떤 승인을 얻으려는 노력을 온전히 포기한 후에 내가 잠을 잘 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90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나는 사정을 정확히 설명하고분명히 사과하고 무엇보다 상대에게 충분한 거리를 제공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나를 빨리 용서하라고 닥달하지 않고 혹은 어떻게 하면 좀 과장을 보태 전부 내 책임은 아닌 것처럼 만들까, 어떻게 하면 불쌍하게 보일 수있을까 하는 비열한 트릭을 쓰지 않고 오직 정직하게 나의 과오를 마주하기로, 반대의 경우라면 화가 났을 때바로 반응하지 않고 최소 하루 침묵의 시간을 갖기로.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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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4-19 0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복음에 전파당할 것만 같은 강력한 끌림!!!!!!!!

공쟝쟝 2021-04-19 16:58   좋아요 1 | URL
하하! 저는 비약이 심하더라도 끝까지 주장하는 글들이 좋은 것 같아요. 물론 현실에서는 조심스럽고 서성이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지만요!! 오소서!!

새파랑 2021-04-19 0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요한건 행복~!혼자가 된 공쟝쟝님의 행복한 생활을 응원하겠습니다~!! 봄날의 곰처럼 좋으시길 ^^

공쟝쟝 2021-04-19 16:59   좋아요 2 | URL
여기다가 출처 밝혀야겠다 :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미도리 네가 좋아 봄날의 곰만큼˝

단발머리 2021-04-19 09: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누가 어질렀는지 분명하지 않았던 대가족의 집, 아껴쓰고 나눠쓰는 것이 기본값이었던 물건들. 제자리에 두어진 물건을 가져다 쓰기보다는 마지막으로 쓴 사람을 찾아서 물건을 찾는 게 룰이었던 환경에서 아무래도 정갈하기는 어려웠겠지.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 나의 지인이며, 내 이웃이며, 내 친구에요!!!
쟝쟝님의 혼자 선언 완전 응원해요!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이리 와요! 와락!!!!!!!!!!!!!!!!!!!!!!!!!!!!!!!!!!!!!!!!!!!!!!!!!!!!!!!!!!!!!!!

공쟝쟝 2021-04-19 17:05   좋아요 3 | URL
와락!!!!!!!!!!!!!!!! x 10000 단발님의 훌륭하고 디테일한 칭찬!! 이 마을에서 칭찬 재능 가장 뛰어나신 분!
맨날 나 쓴다? 쓴다? 외치고 게으름 부리지만 그래도 주1회 꾸준히 써 올리는 것은 단발님 칭찬이 커요. 고마와용 😂

수이 2021-04-19 09: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곰이 들판에 앉아 캔맥주를 깐다. 씨익 웃는다. 혼자라는데 왜 이렇게 멋진지....... 나 옆자리에서 같이 캔맥주 까면 안 될까나?!

공쟝쟝 2021-04-19 17:07   좋아요 2 | URL
당연히 되쥬~~~~ㅋㅋ 어제 저는 봄날의 검은 곰이 되어 한강에서 캔맥주를 두캔 마셨습니다. 다음엔 광화문 근처로 갈께요. 돗자리 갖구 나와!!!

미미 2021-04-19 10: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기숙사 생활 저의 로망이었는데...
봄날의 곰 어감이 너무 좋네요!
열린결말 파이팅!!!!!

공쟝쟝 2021-04-19 17:08   좋아요 2 | URL
그릏지요! 열린결말이지요! 섣불리 뭔가를 선언하면 안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경험상) 희진샘 맨날 자기 페미니스트 아니라고 하는 데도 이유가 있을거야 ㅋㅋㅋ

바람돌이 2021-04-19 10: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혼자가 되어보는 것 참 해보고 싶었는데 그냥 집에서 결혼으로 장소가 옮겨지다보니 결국 못하고 말았네요. ㅎㅎ
공쟝쟝님의 혼자 됨을 축하드립니다. ^^

라로 2021-04-19 16:57   좋아요 4 | URL
저도 혼자가 되어보는 것 못 해보고 결혼 한 것이 많이 후회되었는데요!!^^;;
공쟝쟝님 혼자 되심 감축드립니다!!! 멋진 당신!!!

공쟝쟝 2021-04-19 17:15   좋아요 3 | URL
윤종신같은 사람두 있으니 참고하시구~ 시간은 우리 편이니 아마도 긴 생애에서 앞으로도 넉넉히 하실 수 있으실거고, 두분처럼 곁에 누군가들을 두고도 충분히 혼자일 수 있다면 그것 만큼 좋은 삶도 없겠지요? 전 잘 휩쓸리는 성격(?)이라 물리적인 단절이 꼭 필요했지만!! 각자의 삶에서 적절한 혼자되기 기술들로 읽고 쓰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멋진걸로 해요!! ㅋㅋㅋ

2021-04-19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9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9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9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4-19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심 멋지신 공쟝쟝님! 혼자이지만 늘 주위를 기웃거리는 저와는 달리 혼자서도 완전한 멋진 포스 뿜뿜!!

공쟝쟝 2021-04-21 13:26   좋아요 1 | URL
하루에 1분씩이나 마음 챙기시는툐툐님두 멋쟁이. 우리 모두는 각자 멋쟁이 뿜😘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이연 지음 / 미술문화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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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과연 내가 그림을 그려도 될까?

지금 나는 당장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 대답을 해주고 싶다. 당연하지, 뭐라도 그려! 종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크레파스 닳는 일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뭐든 그려. 네가 지금 아끼고 있는 그 크레파스는 나중에 영영 찾을 수 없으니까 있을 때 마음껏 좋아하는 색깔을 써둬. 

물론 이런 대답을 해줄 미래의 내가 곁에 있었을 턱이 없다.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림은 특별한 사람이나 그리는 것 아닐까?

남들보다 겨우 조금 더 잘 그리고 좋아할 뿐이야. 마음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을 거야. 나에겐 해야하는 일들이 있어. 그림은 시간 낭비야……. 하며 살았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 낭비를 하는 학생, 그것이 바로 나였다.”


내가 좋아했던 크레파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퍼석퍼석 바스라질 것 같은 군청색, 반짝반짝 은색, 그리고 유난히 무른 재질의 상아색. 좋아하는 색깔의 크레파스가 닳는 것이 조바심났다. 짧아져가는 크레파스들 사이에서 걔들만 유난히 키가 컸던 기억이 난다. 또 내가 좋아했던(유행했던) 코디네이터 스티커. 정작 제일 좋아하는 스티커는 떼고 붙이는 게 아까워 가지고 놀지를 못했다. 한쪽에 붙여놓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먼지가 묻든 말든 신나게 옷 입히고 보관용은 따로 두세개씩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코디 스티커 모으기를 관두기로 했다. 자꾸 더 갖고 싶어지면 안될 것 같아서, 나는 코디 스티커 놀이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생각해버렸다. 


왜 어릴 때는 좋아하면 아껴야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가난의 문제와 따로 떼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좋아했던 그 색깔의 크레파스들을 아끼느라 정작 그림에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도화지 위에 실컷 색깔을 덧입힐 수가 없는, 나는 언제나 희미하고 옅은 그림을 그리는 아이였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다른 모든 종류의 크레파스도 다 닳아질 정도로 써본 기억이 없다. 아끼고 참는 어린시절의 내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울화통이 터진다. 좋아해도 되는데, 갖고 싶다고 떼를 써도 됐을 텐데, 그게 맞는 나이였는데, 그렇게 했었더라도 그때의 받은 만큼의 사랑은 다 받았을 텐데. 나의 양육자들은 착하다고 혹은 똑똑하다고 더 줄 사랑을 더 주시는 분들도 덜 줄 사랑을 덜 줄 분들도 아니었다는 걸. 


넉넉하지 못한 형편의 자식 많은 집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갖고 싶은 것을 말하기도 전에 양보를 배운 나는 내 몫을 주장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내것을 요구하는 건 동생들에게 돌아갈 부분을 줄이는 것이었다. 떼를 써서 갖는 것보다는 괜찮다고 말하고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편했다. 그래도 좋다면, 어쩔 수 없이 좋다면? 그건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참았다. 허락된 것 까지만 좋아했다. 허용되는 범위까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미안해지지 않는 수준까지만. 


엄마는 내가 그린 그림들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그렸던 그림들. 스물 몇살 때 아직도 그걸 갖고 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다. 엄마의 이야기는 그랬다. 사는 게 너무너무 바빠서 신경을 하나도 못쓰다가 청소하러인가 네가 1학년 때 학교에 처음 갔는데, 교실 뒤 벽에 걸린 운동회를 주제로 한 그림 중 눈에 띄는 그림이 보였다고 했다. 달리기를 하는 1등 아이가 머리를 젖히고 하늘을 보는 그림이었다고 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구도의. 어떻게 어린애가 이런 생각을 하지?하고 이름을 보니까 그게 내 그림이더란다. 그때 내딸이 그림을 잘그리는 구나 처음으로 알았다고 했다. 그거 알았는 데, 왜 한번도 그림을 그려보란 말 안했어? 니가 공부도 제법 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엄마는 내 백점 맞은 시험지나 성적표는 안갖고 있는 데, 내가 그렸던 그림들은 모아두고 계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정말 뜬금없이 엄마가 한 번 미술학원에 가보겠느냐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거의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였다. 딱 한 달. 스케치북에 삼각뿔 명함을 넣으면서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두 달째를 등록해야했을 때 엄마가 한번 다녀봤으니까 됐지? 더 다니고 싶어? 물었을 때, 나는 이제 해봤으니 괜찮다고 했다. 아침에 모닝콜로 영어회화를 배우는 영어교실이 유행하고 있으므로, 학원비가 있다면 영어를 할래. 중학생이 되려면 영어가 필요하다고 하잖아. 나는 영어를 배웠고, 그림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중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미술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했을 때 “미술 입시는 돈 많이 들지않아?” 물어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엄청 슬펐던 것 같다. 아마 부러웠던 걸 거다. 그날 혼자 걷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 걸 보면.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 걸 나 자신에게까지 숨겼다.


한참 상담을 받던 서른 살 무렵  <철들고 그림 그리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때 생애 처음으로 스케치북을 샀던 것 같다. 어쩐지 계속 곁눈질하던 그림의 영역에 도전! 두달 동안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림이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지금은??????

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읽게 되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ㅋㅋㅋㅋㅋㅋ  그러려고 그런게 아닌데… 왜, 나. 그림 5년 동안이나 안그렸어? (응, 남는 시간에 책 읽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백수가 되면 하고 싶은 일 1위에 드로잉이 있었는 데 백수되고 한달 째. 여적지 스케치북도 안샀다는 거지롱. 이거 읽으면 그림 그릴 마음 들 줄 알았는 데… 막상 그리려니 엄청 겁이난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머뭇머뭇 하는 것은 겁이 나서다. 그림 배우고 싶은 데. 인터넷 클래스도 신청했는 데. 이제 시간도 있는 데… 왜 선뜻 못 시작하겠지? 아. 문제다. 문제. 


“(24)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멋진 일은 대개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 여정은 험난하다. 그럴 때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지금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이 사실을 계속 떠올려야 한다.” 


무언가가 좋아지면 일단 참고 보는 이상한 습벽은 여전히 은은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전부 그런건 아니고, 특정 대상에 대해서. 이를 테면 나는 정말 좋아하는 책은 읽다가 중간에 덮는다. 오래오래 읽고 싶어서. 혹은 더 잘 읽고 싶어서…. 그렇게 꽂혀만 있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네??… 그리고 드로잉이라던가(사실 이건 게으름도 조금 있음)… 역시 must가 항상 먼저인 인간은 want나 like에도 must를 도입해줘야 한다… -_-;;;;


나 자신도 놀랄만큼 변한 부분도 있다. 사람에 대해서가 그렇다. 사실 이 분야 - 사람 좋아하는 것 티 안내고 잘 참기- 만큼은 정말 대장이었는 데, 어느순간 부터는 ‘참지않기 노력’이 빛을 발해 요즘엔 시시때때로 고백할 수 있어졌다. (이성애뿐만 아니라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그런데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건 입밖에 낼 수록 더 커지는 것 같아서- “좋아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이 더 좋아져버린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잠깐 멈춰 생각해봐야하는 인간인지라 왜, 어디가,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를 생각한다. 메모해본다. 때때로 나의 투사였음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걸 걷어내고 나면 더 잘 보이고, 그럼 더 구체적으로 좋아진다. 마음이 또 커진다. 그렇게 되기를 반복.. 큰일났다. 늦게 배운 도둑질처럼 - ‘좋아하는 거 좋아하기’의 방법을 알아버린 나의 요즘은… 어떻게 이걸 모르고 살았지?!!! 와, 맙소사! 좋아하는 마음은 닳아지지 않는거였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참지 않을 수록 더 깊어지는 거였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용감해지고 나니, 좋아하는 것들로 내 세계가 그득해져버린 느낌이다. 고심해서 고른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내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기분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한다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영원히 살고 싶다, 잠이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


7살의 나에게 돌아가서 그 크레파스를 실컷쓰라고

11살의 나에게 돌아가서 미술학원에 등록하라고

15살의 나에게 돌아가서 너 그거 부러운거라고, 참지말고 그냥 연습장에라도 드로잉을 하라고 

말해줄 수는 없으니-


35살의 내가 나에게 말한다.

너, 참지말고- 좋아하고, 참지말고- 사랑하고, 참지말고- 읽고, 쓰고, 

이제는 참았던 그리기를 시작해보라고. 

좋아하는 걸 참지 않기 시작한 이 세계는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지기만 하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세계라고. 


하하. 내일은 스케치북을 사와야겠다. 



가끔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재능과 영감이 아니라 감정을 견딜 비위라는 생각이 든다. - P53

나는 아니다. 거의 다큐에 가까운 생각들만 한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보다 기존에 있는 것을 꼼꼼히 관찰하는 일이 더 흥미롭다.
- P139

나는 네가 그래서 더 좋아. 사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가 뾰족하고 모나서 늘 누군가랑 부딪히는 그 부분, 거기에 진짜 내 모습이 있다. - P142

난 젊은 것치고 이상하리만큼 규율을 지키는 사람이네? 이 고약함이 나의 개성이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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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09 07: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걸 한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거 같아요. 아직 그림 그리기에 늦으신 건 절대 아니라는..그림 그리는 공쟝쟝님을 응원합니다^^

공쟝쟝 2021-04-09 08:32   좋아요 4 | URL
파랑님 ㅋㅋㅋ 알라딘의 새로 나타난 연쇄댓글응원마...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4-09 09:03   좋아요 3 | URL
모르는 글에는 댓글을 달수가 없어요 ㅎㅎ

다락방 2021-04-09 08: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응, 그래요.
참지말고 좋아하고, 참지말고 사랑하고, 참지말고 읽고 쓰고!!

너무 좋네요, 쟝님. 너무 좋은 리뷰예요.
:)

공쟝쟝 2021-04-09 08:32   좋아요 4 | URL
참지 않고 좋아해주셔서 정말 좋아합니다🥰

물감 2021-04-09 08: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는 좋아하면 아껴야 된다고 생각했다는 말... 공감해서 울컥했어요.
그림이 정말 좋았지만 집안 사정을 생각해서 포기했었거든요.
친구는 같이 예고에 가자는데, 집이랑 멀어서 싫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한 제가 얼마나 비참하던지요 ㅎㅎ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1-04-09 09:57   좋아요 4 | URL
너무 빨리 어른스러운척 하려던 어리고 안타깝고 예쁜마음을, 이제는 다큰 (늙어가는...?) 내가 토닥토닥 보듬어줘야죠. 저도 종종 물감님 리뷰를 읽습니다! ㅎㅎㅎ 더 자주 교류해요 :)

바람돌이 2021-04-09 08: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7살 11살 15살의 공쟝쟝님에게 마음이 짜안.... 그래도 35살의 공쟝쟝님이 있어 좋네요.
관심가던 책이 더 보고싶어지는 리뷰입니다.

공쟝쟝 2021-04-09 09:59   좋아요 3 | URL
하지만 정작 이연님의 유튜브는 한두개 정도 봤다는.... ㅋㅋㅋ 잘잘라님이 예찬해 놓았는 데 이 책은 판형이 좋습니다. 이연님 유튜브 보신 분이면 더 좋아할 것 같고요!!

붕붕툐툐 2021-04-09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진짜 너무 멋져요~ 좋아하는 걸 알고 좋아하는 걸 표현하고 이젠 그걸 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는데도 크레파스 닳는 건 왜그리 아까웠는지.. 그냥 뭐든 아끼는 성격이었는데도 이글에 공감이 가는 건 왜일까요? 암튼, 그대 너무 멋지십니다~🙆

공쟝쟝 2021-04-09 12:2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걸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지만, 정말 알아버려서 넘나 넘나 넘나 다행인것!!!! 언제나 저자신만 가득한 독후감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툐툐님^^

수이 2021-04-09 1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사랑을 하면 창작욕이 솟아난다는 그 말이 진리인 거 같습니다. 쟝쟝님 작품을 열렬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약한 그림 속 쟝쟝님 개성이 한껏 드러나있는 그림이라면 아 우리 엽서 만들어 팔까요?

공쟝쟝 2021-04-09 12:21   좋아요 1 | URL
사랑과 창작욕?ㅋㅋㅋ 행복한 연애를 하면 글을 쓰지 않는다고 ㅋㅋㅋㅋ 하던데... 대신 여자는 망한 연애를 할 수록 글을 엄청 잘 쓰게된다고.. 어떤 친구가 그럽디다요?! 전 그래서 당분간은 글을 좀 못쓰기로 했습니다.. 꺄아~~~~.

수이 2021-04-09 12:23   좋아요 2 | URL
글 쓰지 말고 그림 그려 ㅋㅋㅋㅋㅋ 어마무시한 작품이 나올거야

공쟝쟝 2021-04-09 12:26   좋아요 1 | URL
연필을 놓은지 35-11 어언 24년...다음주부턴 예술혼의 열정으로 다시 태어나겠어..!! (이번주는 밀린 책읽자...)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나 백순데...왜 책 계속 밀리지??ㅋㅋㅋㅋ

수이 2021-04-09 12:30   좋아요 2 | URL
백수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법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제일 바쁜 때잖아. 열렬하게 찰나를 즐기오.

syo 2021-04-09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닦달했더니, 보람있다? ㅋㅋㅋㅋㅋㅋㅋ
쟝님은 뭔가 채근하면 좋은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이구나? ㅋㅋㅋ

공쟝쟝 2021-04-09 16:38   좋아요 1 | URL
해야하는 것을 먼저 하는 인간.... (일케 생겨먹었다) 나에게 압박을 다오...

mini74 2021-04-09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 몫에 대한 죄책감. 맞아요. 저는 지금도 그래요 절 위해 무언가를 산다는게 항상 불안하고 뭔가 변명하고. 좋아하는 것 실컷하시길 *^^*

공쟝쟝 2021-04-10 11:31   좋아요 1 | URL
미니님 저두 그래요!!! 적어두고 곱씹고 되뇌이지 않으면 또 금새 변명하고 있을까봐 노력합니다. 우리 허락되는 한에서 만큼은 좋아하는 거 실컷 하자구요!!!

단발머리 2021-04-12 0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림 그리는 걸 원했던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 맘이 뭔지 쪼금 알것 같아서....
어린 쟝쟝님 많이 위로해주면서 이제 참지 말고 맘껏 그려요. 읽고 쓰고요.
기대주고 우량주에요, 우리 쟝쟝님. 무슨 말인지는 알거라 생각하고요 ㅎㅎㅎㅎ

공쟝쟝 2021-04-19 16:55   좋아요 1 | URL
왜 하루는 24시간이고 저는 잠이 많을까요? ㅜ_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읽고 쓰고 그릴거 투성이인데... 오늘 하루도 병든 닭처럼 졸고만 있다... 응?!!

Millie 2021-04-17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참기만 했던 어렸던 나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무조건 하고 싶은거 다 하세요~!

공쟝쟝 2021-04-19 16:56   좋아요 1 | URL
이승미님 안녕하세요! 정말요. 이제 제가 죄책감을 느껴야할 사람은 그 시절의 저인 것 같네요. 힘내서 하고픈거 실컷 할게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5-07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
좋아하는거 실컷하기 !
담번 페이퍼는 스케치북 공개 하귀 ^ㅅ^

그레이스 2021-05-07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새파랑 2021-05-07 16: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당선 리얼 축하드립니다 ~!!^^

모나리자 2021-05-07 19: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당선작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행복한 불금과 주말 보내세요~^_^!!

이하라 2021-05-08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05-08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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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조금(어쩌면 많이) 심각해졌다. 그제는 술을 마셨다. 낮에는 점심에 막걸리를 세잔 마셨고, 한참 산책을 하고 수다를 떨다가 드라이한 칵테일을 한 잔 마셨다. 다정한 이를 바이바이 보내드리고 봄기운이 살랑 좋아서 대책없이 좀 더 걸어다녔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북플의 독보적 알람이 17000보를 걸었다고 알려주었다. 어쩐지 종아리가 좀 당기는 느낌이더라니. 


집에 들어오니 술기운이 가셔 있었고, 어쩐지 좀 더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트로 나갔다. 좋아하는 다크코젤이랑 칭따오를 집어들었다. 오늘의 독서는 글렀고, 주말에 맥주마시면서 보려고 남겨둔 <퀸스갬빗>을 마저봐야겠어. 안주는 만원짜리 동네피자로 하자! 피맥피맥 꺅~ 머릿속에 피자와 맥주의 조합을 떠올리니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스크 안에서 어찌나 환하게 웃고 있었는 지, 아 정말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아무에게나 쉽게 보여줄 수 없는 함박웃음을 마스크뒤로 감추고 따끈따끈 피자를 사서 들어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곳은 작은집 내집🎶 앗싸. 세수를 마친뒤 나의 흥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둠칫둠칫 💃🏻 앗싸앗싸~ 고양이가 쟤 또저런다?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우리 함께 행복하자, 그대 함께 쉘위댄스? 앞발 마주잡고 함께 추었다.😹 행복은 두배가 되었다. 세배로 만들기 위해 맥주를 땄다. 캔 딸깍~ 치이익~ 유리잔에 꼴꼴꼴~ 


“(19)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사랑하는 소리소리~~ 꿀꺽꿀꺽~~ 조타조타~~ 피자피자~~ 땐스땐스~~ 이젠 넷플릭스~~~~


를 틀었는 데... 초천재 체스선수 엘리자베스 하먼이 맥주를 꼴깍꼴깍 퍼마시며 담배를 뻑뻑 피우며 나와 똑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정정합니다. 사실 그녀의 춤은 아름다웠고, 제가 추는 춤은 개다리 춤이었습니다. 또 저는 집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맥주 캬- 피자 쩝쩝- 두조각째의 피자 위에 피클을 올려놓으며, 하먼을 보며 생각했다. 아, 안돼. 베스. 그만 마셔. 넌 약도 하잖아.. 아... 안돼..... ㅜㅜ




그러나 저러나 삽시간에 두번째 맥주 캔을 따면서 뜨끔은 했었다. 아, 저..... 그러니까.. 하먼의 저 패턴. 분위기 좋은 상태에서 한잔 하고 들어와서 뭔가 그 기분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술을 한보따리 사오는. 혹시라도 부족할까봐 넉넉히 챙겨두어야 안심스러운 마음. 그리고 내일이 쉬는 날이라면 넉넉한 그걸 기어이 다 퍼마시게 되지.


“(23) 내 마음은 한구석은 그런 초조함을 인식했다. 지난번에 저녁 식사를 할 때 와인이 한 병뿐이어서 그걸 4~5명이 나누어 마셨다는 사실을 불안하게 떠올렸다(…) 마음속 어두운 구석에서 불안이 깊어갔다. 또 다시 그 곳에서 술부족이라는 낭패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술 때문에 안절부절 못한다는 걸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 술쟁이들에게 마시는 도중에 술이 떨어진다는 것은 ‘낭패’다. (‘낭패’라는 표현 너무 찰떡..) 낭패를 당하지 않기위해 술을 마실 거면 이빠이 쟁여두어야 하는 것이다. 근데 알콜중독 아닌 사람들은 그걸 낭패라고 생각 안하나요?... 그러니까. 나 설마 알콜중독이야? 라고 의심하게 된 것은 <퀸스캠빗>에서 술에 쩔어가는 하먼의 모습이 뭔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딱 한잔만’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상황. 안마시면 안마셨지 마시면 홀랑 다 퍼마셔야 하는 취한 상태에서의 기이한 집착은.. 그르니까.. 저 드라마 속 알콜 중독자의 모습은....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어라라라...?


갑자기 자기검열 발동해서 한 캔 반까지만 딱 마시고 사랑하는 다크코젤을 눈물을 훔치며 (내가... 내가 술을 버리다니..) 개수대에 비우고... 드라마를 마저 다 보았다. 드라마는 넷플릭스의 명성답게 개 띵작이었다. 질생각 없는 천재 여주인공이 직진 노빠꾸로 계속 다 이겨버리니까(역쉬 천재는 자기자신과 싸울 뿐), 나도 갑자기 호승심 마구 돋아서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다 읽어버리겠숴!!!! 하고 삼십페이지 읽고 꿈나라로... 💤 (일반인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항상 패배하지.)


***


일어나서 아침에 달리기를 했어야 했는데, 밍기적 거리다보니 비가 내렸고 전날의 성찰이 떠올라 <드링킹>을 읽기로 하였습니다. 이 책은 ‘캐럴라인 냅’이라는 여성 저널리스트가 쓴 알콜중독에 관한 자전적 에세이로서 맥주 반캔이면 극락에 가계시는 저의 자매님이 꽤 오래 전 저에게 친히 권한 책입니다. “난 술 못마셔서 술 찬양은 이해가 잘 안됐는 데, 그래도 어떤 부분은 정말 공감이 되더라? 근데 언니는 술고래니까 분명히 더 와닿을 거야.”


...

....


별로..  ... 와닿지 않았다. 정말이다. 

왜냐면 난 술을 몰래마시지 않고, 매일 마시지도 않고, 술먹고 막막 남자를 막막 만나고 막막 일케 절케 그짓말을 막 하고, (여... 이미 이렇게 난 다르다며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증상중에 하나여..) 그르지 않아!!!!!!!! (내적 비명🙀) 


그치만 이 언니 글을 어찌나 잘쓰시는 지, 구구절절 공감이 자꾸 가서 (특히 술에 대한 사랑고백이..).. 하마터면 책을 읽다 말고 술을 마실 뻔 하였다. (정말로 꾹 참았다)


“(85) ‘거절이라니? 난 한 잔 더 마실 거야. 술 마시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기분 좋은 일이잖아.’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베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식사 때 와인 한 잔을 마시면, 더 따라주려고 해도 술잔 입구를 손으로 막았다.

“아냐, 됐어. 이미 충분히 마셨어.”

충분하다니?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술이라는 보험을 찾고 또 찾는다. 첫 잔을 마시고 따뜻한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것, 그걸 강화하고 증대하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치 따뜻한 취기.. 그것이지... 평소 손발이 차가운 편인 저에게 술이란 것은 따스함. 바로 그것. 그리고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그것임돠.. 물론 여름엔 맥주의 시원함.. 고것.. 그런데 술잔 입구를 손으로 막는다니요? ... 충분하다니요?.. 충분한 취함이란 무엇입니까? (나 정말 모르겠어..)  충분한 한.잔.?


“(101) 맥주 몇 잔을 마시면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미간을 쪼그라들게 하던 것, 손을 멈칫거리게 하던 것, 아무리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가려움증 같던 것이 스르르 씻겨 내려갔다. 그의 전 존재가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알렉스가 AA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자, 사람들이 사방에서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그거야.’

내가 아는 모든 알코올 중독자에게 공통되는 신념의 방정식이있다. 그것은 ‘불편 + 술 = 불편 없음’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기 변화의 수학이 탄생한다.”


돌이켜보면 난 술을 마시기 전에는 확실히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술이라는 무기가 생긴 이후 부턴 달라졌다. 나는 술 마시면 누구라도 다 친해질 수 있어!!! 라는 근거없는(-_-) 자만심으로 20대를 허비했다. 20대의 나는 알콜중독이라기 보다는 관계중독이었고, 당연히, 언제나, 언제나 그 관계들에는 알콜이 있었다.


“(104) 나는 그런 순간이 좋았다. 이 세상이 아주 단순한 것들로 환원되는 순간, 나하고 샘, 그리고 술잔 두 개만 있으면 되는 그런 순간들이. 그밖에 모든 것은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았다. 술은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하는 최고의 방법,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알코올이 주는 힘은 엄청났다. 술을 마시고 나면 갑옷이라도 두른 듯 여유롭고 강력한 버전의 나로 다시 태어났다.”


아. 그러니까. 어디까지부터가 관계중독이었고 어느 순간부터가 알콜중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술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내가 맺고 쌓아온 그 많은 인연들이 과연 생겨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을 거라는 결론에 가닿는다. 질풍노도의 이십대를 지나온 나는 나를 끈끈하게 옭아매던 많은 관계들로부터 이별했고, 모든 것이 정리된 이후부터는 나 자신도 놀랄만큼 술을 마시지 않기는 했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보니. 


이후에 만든,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관계들에도 역시.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술이. 


있었네...?


***


책을 읽다말고 정말로 진심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절정은 175페이지의 질문지였다. 11개에 체크했다. 그럴리 없어.. 다시해봤다. 아무리 나 자신에게 관대하게 체크해도 9개 였다. 


“(177) 예라고 답한 항목이 9~21개인 사람은 (알콜중독의)중기 단계로, 대개 2년에서 5년 정도 이어진다.”

뭐, 중기라고요?? 그래도 후... 다행이다.. 5년 남았네? 안도 하고 바로 다음페이지 


“(178) 그때 나는 15개의 질문에 ‘예’라고 답하고서, ‘앞으로 5년 정도는 남았군’ 하고 생각했다. 술과 깊은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는 자신이 하는 불장난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네???????????!!!!!!!!!!!!!!!!?? 이 엉망진창 공감 안되는 저자와 내가요?? 똑같은 생각을요? 

ㅋㅋㅋ??????? 맙소사...🙀(멘탈 터져나감) 망했다.. 나는 알콜중독이다. 것도 중기다... 

5년 남았대.. 


이 엘리베이터는 탑승하는 순간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 비교군이 되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로서.... “(295)직장이 있었고(얽.. 전 지금 직장도 없는데요?), 집도 날리지 않았으며(집도 전세자금 대출임), 친구도 많고(많...지는?), 정상적인 생활의 여러가지 지표를 잘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는 바닥이 아니라며 위안을 삼는 모습이 바로 내모습이여... 그러니 나여, 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야합니다. 내리면 바닥은 치지 않아요.


여튼. 그렇습니다. 거기, 제 독후감을 읽으며, 나는 너같은 알콜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 


“(26) 나같은 사람을 일컬어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라고 한다. 겉에서 볼 때는 아무 문제 없고, 유능하며 단정하다. 그 밑은 진흙탕 처럼 혼탁하고 온갖 비밀로 들끓지만, 그런 모습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고도 적응형일 수 있습니다. 5년 남았을 수 있어요!!!! 

바로 내가 그래!! ㅜㅜㅜㅜㅜㅜㅜ


입맛이 썼다. 책을 덮고 으찌나 입맛이 썼던지, 한동한 멍해져 있다가- 이글을 끄적끄적 하고 있는 데, 곱씹을 수록 입맛이 쓰군. ㅎㅎㅎ ㅎㅎ ㅎㅎㅎ


ㅎㅎㅎ

ㅎㅎㅎㅎㅎ

ㅎㅎㅎ


여하튼 빼박 중기-고도-적응형-알코올-중독자 가 되었으므로.. 

이제 울며 겨자먹기로... 술을 끊..지는 못하겠어요... 정말요.... 그럴 생각이 안든다니까? .... ㅜㅜㅜㅜㅜ 


“(64) 별을 마시는 기분이다

메리 카가 회고록 <거짓말쟁이 클럽>에 인용한 그녀 어머니의 말이다. 메리 카는 어린 시절 도자기 컵에 적포도주와 세븐업을 섞어 마시고는, 마치 빛이 비쳐오는 듯이 온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내 존재의 한복판에서 해바라기가 둥그렇게 피어나는 것 같았다”고 썼다. 그 구절을 읽을 때 나는 그녀의 표현에 완전히 공감했다.” 


나 이거 너무 잘알... 아무래도 내 존재의 한복판에서 피어나는 해바라기는 ㅜㅜ 포기할 수가 없..어... 따싯... ㅜ_ㅜ.. 줄여보겠습니다. 근데 저 정말 일주일에 한번씩만 마셔요.. 고생한 나에게 보상해주자고..(이봐, 그게 문제라고 책에 적혀있잖아!) 여튼 5년 뒤에 이 글을 읽으며 머리를 쥐어뜯을까봐 걱정이지만.. 2년에서 5년 사이에 혹시 제가 알코올로 인한 정서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거덜랑 무릎꿇고 참회하고 갱생해 볼게요, 캐럴라인 냅 작가님. 


그런데, 가만. 다 읽고 앞날개에 지은이 소개 봤는데..

저자 이토록 어렵게 술은 끊었는 데 마흔넷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 무엇? 🙀

냅 언니.. 담배는 못끊은 거? (덜덜... 이 시점에서 이를 꽉 깨물었다....)

언냐..내가 요새 좀 (나가기) 귀찮아서.. 담배 끊을까 생각중인데.. 

만약에 끊게되면 그건 정말 언니 덕분일거야.. 


***


잘쓰인 에세이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민낯까지 아주 솔직하게 까밝히고 쓰는 요런 종류의 글쓰기 요새는 나름 대세인 것 같아서 조금 식상한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마주보지 못했던 내 문제와 얽혀 있었기에 심각하게 읽었다.


“(118~119) 알코올이 자기 존재감 혹은 성감과 생각보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많은 여자가 적어도 나같은 여자들은 상충하는 수 많은 감정(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고, 합일을 바라면서도 매몰될 것을 겁내고, 경계선을 설정하는 일에 불안해하는 감정)을 마비시키려고 알코올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깊이 이야기되지 않았다. 

술 취했을 때는 거절이라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진다. 그것은 술 때문에 파티나 데이트 같은 특정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져서만은 아니다. 술 마시는 일은 자기 존재감 형성이라는 더 크고 버거운 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감 형성이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좀 더 어렵고, 특히 술을 마시는 여자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드문드문 ‘연애-사랑에 실패하는 알콜중독자 여성’의 입장에서 쓴 여성주의적 통찰도 보였고. 그 부분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별 다섯개를 찍어볼까 했는 데, 하나 깐 이유는...


“(328) ‘내 인생의 어느 지점부터 나는 나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로 여기며 살았어. 아주 우연히 혼란과 분노와 우울함에 찌든 사람으로,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술에 빠져지내고, 엉망으로 연애하고, 우울함에 허덕이는 건 내 운명인지도 몰라. 글 쓰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고통, 이를테면 입장료 같은거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입장료가 위험할 정도로 비싼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높은 업무 능률을 과시할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한심하기 짝이 없을 때도 있었다. 우울증이나 숙취에 휩싸인 날은 정신을 집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헤드라인이나 사진 캡션 말고는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문득 겁이 났다. 내 직업 영역은 그때까지 타격을 받지 않은 유일한 분야였고, 글은 나를 이 세상과 연결해주는 가장 확고한 수단, 진정성을 지닌 관계를 열어주는 단 하나의 열쇠였다. 나는 12구경 엽총으로 자살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생각했다. 또 마흔다섯 살에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 에이지도 생각했다. 어둡고 무거운 체념이 나를 감쌌다. 마치 상자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식의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요즘엔 좀 별로다....... 응, 글쓰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니.. 얽, 언냐, 그거 날 좀 부끄럽게 했어... 아닌가, 이런 것!까지! 쓸 수 있어서 더 대단한 건가? (으응?) 그르니까... 물론 모두 하루키처럼 살수는 없지만 (왜! 하루키 같은 자도 저렇게 자기관리 하면서 잘사는 데!!!) 꼭 엉망인 삶에 다가 글쓰는 자의식 연결짓지 말았으면..... 나는 행복해지려고 글쓴단 말야! ㅜㅜ 글쓸 때 행복하단 말야!!! ... ㅠㅠㅠ 우이씨...ㅠㅠㅠㅠ 행복해지자 좀!!!! 저런거 읽으면... 괜히 읽고 쓰는거 좋아하고 그러면 인생 함께 진창에 처바르면서 망쳐야 할 것 같잖아!!!! 


엉망인 글을 읽는 거는 좋은데, 글쓰려고 엉망을 살아야 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뭐랄까... 뭔가.........겁내 재밌게 읽다가 막판에 항마력이 딸렸다.. 알았어..알았어... 어.. 그만해.. 좀 피곤해졌음. 이건 내가 늙어서인가.. 서른살이 넘으니까... 저런 종류의 예술에 대한 관점(?)... 너무 오그라든다.. 그리고 성장서사 편에서도 말했는 데, 내가 옹호하고 봐주는(?) 개망나니는 어디까지나 서른다섯살 미만인 것 같다. (지금 내나이가 기준이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신에게 관대한 편!)


하지만 정말 재밌게 읽었고요!

다음 책 바로 빌려왔음다~ <명랑한 은둔자>라니 제목 참 좋다.

제가 요즘 칩거중인데요, 과연 명랑해질 수 있을 것인가? 요 에세이도 잘 읽어 보겠음다!!


그리고.. 과연 저는 <드링킹>읽고 술 대신 담배끊는 독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거 써놓고 바로 담배 피우러 갈거지롱 메롱~)

유머는 전형적인 방어 수단이다. 나는 유머라는 장치로 거리감과 자기 아이러니를 만들어 벽을 치고는, 진실로 깊은 감정은 마음 깊은 구석에 꼭꼭 감춰두었다. 바로 그곳, 마음속 깊은 구석이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의 비밀스러운 본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나 같은 사람이 음주와 관련한 진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잘 숨긴다는 것은 별로 큰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일을 아주 멋지게 해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한 진실(사무실에 앉아 메모를 휘갈기고, 서류를 작성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렇듯 멀쩡한 겉모습 뒤에 들끓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그리고 자신에게도) 숨긴다는 사실이다. - P33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남자를 사랑한다. 술을 마시고, 술 마시는 남자를 사랑한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사귄 적이 단 한번도 없다.내 인생에 데이트란 것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술을 싫어하는 남자와 사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술 마시는 남자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알코올은 두려움을 잠재우고, 거짓 행동을 하게 하고, 가기 싫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술은 행복한 섹스가 있는 로맨스의 길도 열어준다. 여자의 섹스에서 알코올은 너무도 튼튼한 결합재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 P127

그녀는 술 마시고 그냥 섹스했다. 내면에 들끓는 감정에 ‘입 닥쳐!‘라고 일갈한 뒤, 그냥 섹스를 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나름대로 효과적이었다. 술에 취해서 아무하고 하는 섹스는 맨정신으로 섹스할 때 느끼는 불안감 없이도 친밀감에 다다를 수 있다는 환상을 주었다.
당신이 만약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한다면, 자신은 그런 관계를 맺을 자격이 없다거나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그것을 원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알코올은당신에게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알코올이 그런 오만 가지 갈등을 녹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밀한 관계를 받아들이고싶어 하는 당신의 마음을 힘있게 긍정해준다. 인생? 받아들이자.
깊은 유대감? 받아들이자. 어루만짐도, 위로도, 사랑도 모두 받아들이자.
그러나 슬프게도 술 취한 상태에서 낯선 사람과 섹스를 하며 얻은 자기 긍정은 술기운이 사라질 때 함께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 P120

이런 것은 사소한 사건이고 어떻게 보면 사건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자꾸 반복되다 보면 우리의 세계상도 어떻게든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날마다 자기 가슴을 빤히 들여다보는 남자와 가까운곳에서 지내다 보면, 이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아마 나는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분노가 금기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자라난 만큼, 그 분노가 힘을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다른 방도를 몰랐기에 술을 마셨다. 일상에서마주치는 이런 두려움과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때는 정말 알 수 없었다. - P158

존과 앤드리아처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는 그 관계를유지하고 발전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것, 그들 또한 이따금 자신들의 관계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는 것, 상대의 한계를 받아들이려고 고투한다는 것,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욕구를 모두 만족하게 해줄 수는 없다는 실망감을 이겨내며 산다는 것, 이런 것은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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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03-28 22: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찌 이리 찰떡공감의 드링킹 이야기를.. ㅎㅎ

공쟝쟝 2021-03-28 22:57   좋아요 2 | URL
드링킹을 하지 않았다면 드링킹을 읽고 찰떡처럼 공감하지는 못했겠죠? (이 무슨 해괴한 모순이란 말인가..)

새파랑 2021-03-28 2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드링킹을 좋아하면 읽어봐야 하는 책 같아요 ㅎㅎ 언젠가는 담배를 끊으실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공쟝쟝 2021-03-29 07:40   좋아요 2 | URL
안돼 ㅋㅋㅋ 응원하지마세요 ㅋㅋㅋㅋㅋㅋ 안 끊을 거니까 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3-29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 난 공쟝쟝님의 글이 너무 조타~ 뭔가 살아있어!!! 이렇게 잘 쓰면 글 쓸 때 행복하지, 암요 암요! 전 알콜중독은 아니고 관계중독은 맞는데, 이 책 읽고 술이 너무 벌컥벌컥 마시고 싶을 거 같아요. 무섭지만 궁금하다~ 뭐가 이길까요?ㅎㅎ

공쟝쟝 2021-03-29 07:43   좋아요 2 | URL
중독없이 사는 현대인이 더 무서버요 ㅋㅋ 그러니까 우리 정상이야!!! 첨엔 저도 마시고 싶어서 근질근질했는 데 읽다보니 엄청 심각해졌어요.. 아름다운 에세이입니다.. 아름다워요 ㅋㅋㅋ 사랑햇고 아름다웠고 다시 보지말자 알콜이여.. 근데 글 잘써거 사랑이 느무 아름답게 느껴져...

psyche 2021-03-29 0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 마시면 안 마셨지 마시면 홀랑 다 퍼마셔야하는‘ 집착 때문에 술을 절대 박스로 사지 않던 시절이 있었죠. 아 옛날이여. 나이가 드니 저절로 집안에 술이 있어도 딱 맥주 한 두캔 정도만 마시게 되네요. 몸이 안 따라주니 저절로...ㅜㅜ

공쟝쟝 2021-03-29 07:50   좋아요 2 | URL
그거슨 다퍼마셔본 최대치가 박스라는 임상을 자신에게 해보았다는...말인 건가요...? 어머나🤭 저도 한두캔으로 행복해지는 가성비있는(!) 삶으로 😳

기억의집 2021-03-30 09:35   좋아요 2 | URL
전 딱 한캔이요. 삼년 정도 강도 높은 노동일 했는데.. 그때 아줌마들하고 진짜 술 많이 마셨어요. 일 끝나면 언니 우리 한잔만 하고 가자~ 이래서... 일 끝나고 술 한잔 마시면서 윗대 뒷담하고 이러다보니 술이 늘더라구요. 그리고 지금은 오전알바해서 그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저도 술을 많이 사다 놓지 않게 돼요. 갈증나면 물을 마셔야 하는데 맥주캔을 따서 주책없이 마시더라구요. 술은 자제가 안되면 치명적인 유혹이 되는 거 맞더라구요...

공쟝쟝 2021-03-30 16:4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기억의 집님... 주책없지 않아요, 노동의 시름은 역시 맥주죠 크흐흐 술을 사다놓지 않고 계신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한캔씩은 즐기세요 🙌🏻🙌🏻

psyche 2021-03-31 02:59   좋아요 1 | URL
저는 한창 때는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서 박스로 사다 놓지 않았었어요. 그 순간이 있는데 그걸 넘으면 정말 집에 있는 술을 다 끝장내야 했거든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남은 술을 다 버려버리는 부분이 나오더라고요. 아니면 다 마시니까. 그 마음이 정말 공감되었어요. 하지만 전 돈이 아까어서 버리지는 못하고 사지 않는 방법을 택했던 거죠.
이제는 맥주가 박스로 있어도 자제가 저절로 되네요. 좋은 건데 조금은 서글프기도 ㅎㅎ

공쟝쟝 2021-03-31 09:16   좋아요 0 | URL
폭음은 역시 젊음의 상징인가봐요..?🙄 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저도 과도한 폭음을 하지않은지.. 보름... ?(아직 젊나봅니다)ㅋㅋㅋ 저도 스티븐 킹처럼 술 버렸으니(맥주 300미리)ㅋㅋ 프시케님 본받아 이제 갱생해서 절주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창 나이 지났거든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1-03-29 0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크 코젤과 칭따오를 같이 좋아하는 분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취향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다니 공쟝쟝님을 진정한 주당으로 추천합니다. ^^ 아 저는 안궁금하시겠지만 칭따오쪽입니다. ㅎㅎ 술로 이룰 수 있었던 성장사를 보면서 제 얘기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 또 술을 부르는 글인데 저도 오늘 이미 피맥을 하고 온지라 자제 자제 모드!!!

공쟝쟝 2021-03-29 07:52   좋아요 2 | URL
헐... 피맥 진리죠... 코젤과 칭따오는 뭐 단짠단짠 이런 거랍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칭따오에겐 코젤이 안주 코젤에겐 칭따오가 안주 이렇게 마실 수도 있어요..(나여...)

수이 2021-03-29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은둔자 다 읽고 드링킹으로 넘어갑니다. 은둔자 다 읽었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ㅋㅋㅋㅋ 다음에는 밥 다 먹고 술 마십시다👯‍♂️

공쟝쟝 2021-03-30 09:02   좋아요 0 | URL
드링킹하고 은둔하는 저와 반대시군요 ㅋㅋㅋㅋ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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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닌 참 낙천적이야.”
그게 싫다는 것인지 좋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말투로 동생이 말했었다. 응? 모처럼의 칭찬인가? 귀를 쫑긋했는 데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비아냥이었다. 살면서 본성이 낙천적인 사람 딱 두명 봤는 데 OO과장님이랑 언니야, 차암~ 맑아~ 사람이. 왜, 그게 싫어? 아니, 걍, 그런 사람들 보면 부럽다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꼬였나 싶다는 거지.

어쨌든 낙천적이지는 않은 동생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자기는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나랑 이야기하면 자기가 부정적인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그래서 자신과 뜻이 맞는 부정적인 친구를 사귀었는 데 둘이 아주 죽이 잘맞아서 세상을 비관하고 타인을 혐오하고 특히(!) 지인의 뒷담화를 하며 공감하는 게 정말 즐거웠다고. 덧붙여 둘이서 내욕도 많이했다고ㅋㅋ. 한동안 그 친구한테 홀딱 빠져있었는 데, 어느 날 친구 만나러가는 것을 매우 피로해하는 자신을 느꼈고 얘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자주 만나면 안되겠다 싶어졌다나?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응^^, 그게 내가 너와의 만남을 한달에 두 번으로 제한하는 이유야. 동생에게 큰 깨달음을 주신 그분에게 감사함을 느꼈다ㅋㅋ

내가 낙천적인가? 스스로한테 물어봤다. 아닌데? 난 불만 많은데?라고 생각하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 때 선생님이 써주는 가정통신문(?)에 ‘낙천적임’이라고 적혀있던 기억이 빼꼼났다. 그 때, 그 말이 뭔지 국어사전 찾아봤거든. 초등학교 저학년때 부터 낙천적이었고 지금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낙천적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 맞겠다는 결론이다. 슬픈 노래도 좋고 슬픈 영화도 좋고 특별히 슬픈 드라마는 내가 애정하는 장르지만 그건 취향인거고, 현실의 나는 대체로 잘 웃고 잘 떠드는 긍정가인 것이다. 가끔 세상에서 제일 시니컬한 독설가 모드를 장착하기도 하는 데 그건 가끔이고(-_-) 그러고 난 날에는 항상 이불킥을 한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고 생각하며).

청춘시절 좌파사상에 심취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자기계발형의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장점을 보고 교훈을 찾는 게 싫은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수월하다. 그걸 낙천적이라고 하는 걸까? 싫어하거나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게.

“(28)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살아있는 개인을 미워하지 말자는 개인적인 결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말하는 장강명쪽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장강명씨는 결심을 해서 실천하고 계신다지만 살아있는 내 앞의 개인을 미워하지 못하는 건 나에게 성격에 가깝다.  그건 나에게 고나리질과 폭언을 일삼는 류의 개인에게도 마찬가지고(그걸 학대라고 인식한 것도 멀지않은 과거의 일이다) 대놓고 무시ㆍ질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랬었다. (으음, 그랬었군.)

왜 그래? 라고 묻는다면 - 글쎄,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해하고 나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는게 맞다. 사회생활이건 일상생활이건 당장 손절 할 수 없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워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이해하는 데에 에너지를 재빨리 쓰고 덜 미워하는 것이 ‘나’라는 한정적인 자원을 경제적으로 쓰는 거다, 라고 생각한다. 이래서 밉고 저래서 싫고 보단, 이런 저런 싫은 점도 있지만 요론조론 괜찮은 점도 있지 뭐. 나한테 다 맞을 수는 없는 거지 뭐~ 가 편하다. 물론 부작용도 많다. 나를 향한 대놓고 공격의 말들마저 튕겨내지 못하거나(그말도 맞긴 해), 아주 작은 친절을 확대해석(이런 좋은 점도 있었네) 할때도 있다는 거지. 확실히 스톡홀록 증후군에 취약한 성격인 것이다.....

일례로 얼마전에 단톡방에 회사에서 일어난 요론조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었는 데, 친구들이 다 내 대신 분노했다. 기분 안나쁘냐며 나더러 순둥이라고까지 했다. 아, 순둥이....... 망했다. 나는 자본주의에 길들어졌다. 그렇지만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이 정도로 기분이 나쁘면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죠?

“(29) ‘인류를 사랑하는 건 쉽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건 어렵다’는 명언이 있다. 내 기억에는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 아니면 <피너츠>에서 나온 스누피의 대사다. 어쨌든 이 말에 썩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와 인간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 인류를 사랑하고 인간을 미워하는 것보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류를 미워하는 편이 더 낫다. 아주 더. 굉장히 더. 쓰는 장강명과 말하는 장강명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좇같은 화풀이의 대상이 될 때. 매일 얼굴을 봐야하는 너를 미워하는 것보다 이 상황이 가능하게 하는 세상이 싫다고. “화내서 미안.” “괜찮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되니까.” 오해하지마. 너를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것이 가능해지는 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뜻이야. 착각하지마. 너라는 사람이 괜찮다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정도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괜찮다는 뜻이니까. 언제나 맥락을 읽는 것은 중요하단다.

“(54)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전자도 쉽지 않지만 후자는 매우 어렵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윤리에 대해서는 보편 규칙을 기대해 볼 수 있으며, 온갖 암초 같은 딜레마를 넘어 우리가 어떤 법칙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의는 끝까지 그런 법칙과는 관련이 없는, 문화와 주관의 영역에 속해있을 것이다.”


그가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감수성을 키웠겠지만, 굳이 그 감각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피곤하게 눈치 볼 필요가 없으며, 눈치 볼 상황이 적어질 수록 눈치에 속하는 감수성은 도태되었을 테니- 아마 영원히 내 언어의 맥락은 읽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길 바란다.

그러니까.... 이런 나는
정말로 낙천적인 걸까.
순둥이인가.
내 앞의 개인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일까.
.....
세가지 다 생존의 기술로 터득한 방법인 것 같은 데....
음.. 이게 진짜 착한거야?

*

지구멸망, 재기, 자살, 인류애 폭망, 그 인간 쓰레기라는 말을 달고 사는 동네 친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자리 대화 상대 중 한명이다. 그가 얼마나 개인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며, 착실히 노동하고, 일을 야무지게 처리할지는 안봐도 비디오처럼 알 것 같다. 그냥 봐서는 멀쩡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입을 열면 달라지지. 아직까지 나는 그 이상으로 인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우리의 대화는 엄청난 블랙코메디 같아서 평소에 착한(?) 내가 구구절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야하는 이유를 막 설파하면, 친구는 온갖 근거들을 들어 우리모두가 자살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럼 넌 왜 자살안하는 건데요? 그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깐요. 와하하하. 나는 그 친구를 만나면서 나를 덜 미워하는 방법을 배웠다. 어쩌면 그 친구는 나를 만나면서 사람을 조금은 덜 미워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인생은 단짠단짠. 세상은 소리없는 아우성. 내가 아는 최악의 인류멸망찬성론자가 비건을 지지하는 페스코 생활을 하는 것은 일관적이면서 신기하다. 나는 말하곤 한다. “저기요, 당신 누구보다 인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고 계신데요?”

이건 글을 쓰며 내려보는 어떤 결론인데.
난 내 앞의 개인을 미워하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성격은 종종 방향을 잘못틀어 나를 미워하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더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나를 더 미워하다간 내 앞의 개인마저 미워하게 될 판이다.
어쨌든, 미움이라는 건 어디론가는 가야한다.
그렇다면?
인류를 미워하기로 한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류를 미워하는 편이 낫다.
역시
그편이 낫다.


*

장강명 에세이에 장강명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으니 또 장강명을 안좋아하는 이몸이 나서서 에세이 대해서도 몇마디 더 적자면

“(131) 이제 나는 내 이상형에 대해 안다. 맥주와 책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 인생의 두 가지 낙인데, 그중 어느 하나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즐길 수 없다면 참 아쉬울 것 같다. 그런데 맥주와 책을 다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 정도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대한민국 인구의 10퍼센트 미만일 것이다. 나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확실히 전 인구의 10퍼센트 미만이다. 그러니까 나 정도로 맥주를 좋아하고 동시에 책도 좋아하는 사람은 백에 한 명도 안된다.”

엄마, 나 장강명 이상형됐어... 하아.... 심지어 대한민국 일프로야.

그리고 놀랍게도

“(306) 나의 친구여, 플라톤이 뭐라고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네. 중요한 것은 ‘파이드로스’라는 책에 무어라 적혀있느냐가 아니라, 문자의 영향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앎이지.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그 앎으로부터 제각기 다른 거리로 떨어져 있기에 가르침은 맞춤식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네. 바로 대화이지. 사실 그것이 책의 함정이기도 하다네. 책과는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말일세. ....”

장강명 에세이에도 테스형이 등장해.. 읔큭큭큭..

말하고 듣는 인간, 읽고 쓰는 인간 사이에서의 진지한 고찰 -읽고쓰는 인간을 은근 위에 올려놓지만-이 돋보이는 이 에세이를 구입해 읽은 것은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동 제목의 팟캐스트 때문이다. 사실 싫어했던 작가였던 장강명에 대한 시선이 바뀐 것은 팟캐스트 속 ‘예의’를 갖추는 ‘말’하는 장강명의 인간적 매력 때문이었다. 글과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글보다 사람이 나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222) 분노의 포도 같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팔을 한 짝 잃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 지금은 말하는 일과 쓰는 일에서 오는 수입이 달리는 자전거의 양쪽 페달 같다. 두 페달을 번갈아가며 열심히 밟아야 프리랜서 글쟁이라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달린다.”
“(228) 50년 뒤의 독자들에게 존중받으려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테다. ... 가끔은 내가 당대를 굉장히 못마땅해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세상이 너무 좋고 아름답고 옳은 방향으로 제대로 굴러간다고 보는 사람은 중요한 글은 못 쓸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과 정면으로 싸우는 작가이고 싶다는 장강명을 응원한다. 작가 장강명이 세상과 불화하려면 미디어에 좀 덜 노출되어야 할텐데, 세상이 책을 안사읽으니 문제긴 문제다. 하지만 또 생계를 도외시 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같아보였다)이라 페달밟듯 산다고 하니 미디어에 좀 덜 나오시도록 나도 열심히 벌어서 책사서 한국문학 응원할게요! 힘내요!! 장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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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1-0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밑줄도 몇 군데 겹치고 막 읽고 이 리뷰 읽으니 너무 생생해... 쟝쟝이는 쟝걍명이 이상형이다...밑줄...나도 책이랑 맥쥬 좋아한다 첨부.........ㅋㅋㅋㅋ나도 부정적 에너지의 인간이라 뱀파이어가 되지 않도록 여기 멀리서만 쟝쟝님을 사랑하기로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11-08 22:12   좋아요 1 | URL
노노 장강명의 이상형이 나야!! 내 이상형 장강명 아니야 ㅋㅋㅋ 오독했어!!!

반유행열반인 2020-11-08 22:15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같은 의미로 쓴 건데 잘못 읽히게 썼네요. 쟝쟝이는 쟝걍명이’의’ 이상형이다 로 정정합니다. 심심한 송구함을 전합니다 ㅎㅎㅎㅎ

공쟝쟝 2020-11-08 22:16   좋아요 1 | URL
그리고 반님도 자동 장강명의 이상형이 되었다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1-08 22:18   좋아요 1 | URL
아 난 이상형보다 닮아서 꼴베기싫은 배다르고 씨다른 여동생쯤 될 듯....(그게 왜 동생이냐 ㅋㅋㅋㅋ) 쟝님도 책장 설치 정리 넘넘 수고 많았어요!!!! 이제 쟈쟈!!!!!!

다락방 2020-11-09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훗날 우리 본 것도 글 좀 써주면 안돼요? (그렁그렁)

공쟝쟝 2020-11-09 23:21   좋아요 0 | URL
영화보고ㅠ내려간 바닥이 아직 회복되지ㅜ않았소...

단발머리 2020-11-09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으네요. 내 앞의 인간을 사랑하는 게 더 낫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장강명 작가님 꼭 이 글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쟝쟝님 응원받아 힘내서 또 새로운 소설 썼으면 좋겠네요. 동시대를 넘어서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장작가도 응원하고 우리 순둥이 쟝쟝님도 응원해요!!!

공쟝쟝 2020-11-09 23:22   좋아요 0 | URL
세상과 불화하는 짝 장작가 짝 힘내라 짝!

수이 2020-11-09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착하고 착하고 착한 우리 순둥이 쟝쟝님아 더 낙천적이어도 괜찮아. 더 낙천적일 수 있을 거 같아, 쟝쟝님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꺅 이 글 읽으니까 소주 마시고 싶어졌어

공쟝쟝 2020-11-09 23:22   좋아요 1 | URL
소주엔 역시 치아바타를 감바스에 찍어먹어야죠 ㅋㅋㅋㅋㅋㅋ 응?

syo 2020-11-09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들 읽네, 읽어야 하는가!! 에세이의 달인인 쟝님의 안목을 믿고 간다

공쟝쟝 2020-11-09 23:24   좋아요 0 | URL
소설가들 에세이는 노잼이던 데, 장강명님의 에세이는 유잼ㅋㅋ 작가 본인이 스트레스 안받고 쓰는 장르가 분명해요..

죤보통 2020-11-20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

공쟝쟝 2020-12-10 21:4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Book]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 행복의 ㅎ을 모으는 사람
김신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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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이맘때보다는 좀 전이 좋다. 1월의 중순쯤? 동지가 지나고, 점점 더 추워지겠지만 조금씩 해가 길어질 것이고, 추울수록 봄을 기다리게 되는 웅크린 시간.


*


모두들 추워 바삐 집에 들어가니까, 집을 좋아하는 나도 덩달아 집에 바삐 들어가도 되서 좋다. 바깥의 기온으로 깡깡하게 언 손을 쑤욱 덥혀놓은 방바닥에 밀어넣었을 때, 사르르 간질간질 손가락이 녹는 느낌이 좋다. 얼어있는 코나 귀가 녹는 느낌도 좋고, 잠깐 창문을 열었을 때 찬 공기가 한바퀴 휭 돌고 나가는 환기의 순간도 좋다. (집안이 식으면 안되니까 잽싸게 문을 닫아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귤이고, 귤이 왜 좋냐면 역시 귤은 깎을 필요가 없고, 접시에 이쁘게 담을 필요도 없고, 설거지가 나오지도 않으며,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만 알아서 제 몫을 까먹을 수 있고, 껍질도 잘 말려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니깐!~ 게으른 개인주의자 들에게는 정말 안성맞춤 과일 아니겠나요? 그리고 귤은 박스로 떼와서 겨울내내 실컷 먹어야 한다. 바깥에 내놓아서 차갑게 식은 귤을 담아서 까먹는 다. 냠냠. 역시 배깔고 누워서 귤 까먹으며 책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폭신폭신 무릎 담요를 덮고 반쯤 눕듯 앉아 자울자울 졸음을 조는 겨울 주말의 고즈넉함 정말 좋다. 고양이와 함께라면 금상첨화다. 고양이 찹살떡을 만지면서, 마성의 인스타나 들여다 보다가, 너무 누워만 있는 것 같으면, 제일 좋아하는 패션인 벙벙한 후드티를 뒤집어써 떡진 머리를 감추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겨울에는 역시 길거리 음식이 최고다. 김 모락모락 오뎅도 맛있고, 막 찍어낸 팥앙금 붕어빵도 맛있다. 계란빵도 맛있고, 닭꼬치도 맛있꼬.. .. 그리고 소주가 맛있다. 추운 날엔 소주한 잔, 국물 한 입, 쨘 하고~ 캬캬 하고~ 한잔, 두잔, 세잔 하고 나면 몸이 따뜻해진다. 그때, 속이 덥혀질 때~ 알딸딸 해질 때! (거기서 멈춰야 한다!!) 소주 앞에서만 할 수 있는 마법의 수다를 떨고, 발그레 해진 볼을 하고 술집을 나왔을 때! 눈이 내리는 거다.


펄펄~ 고요하게 혹은, 막 쌓이라도 할 것 처럼 펑펑. 그럼 욕을 하는 거지. 에씨, 내가 너랑 눈을 맞다니. 정말 싫다! (불안정 애착유형) 하지만 너 말고 눈, 눈이 좋으니까. 지금 꽤 행복해! 난 눈이 좋다. 이토록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를 적어내렸으나, 결국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좋아서.



*


올 겨울엔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았다.

이것이 온난화인가.. 눈은 내리지 않는 데, 백신이 없다는 감기는 돌고, 잊을만 하면 미세먼지 공격으로 마스크는 필수였다. 제대로된 눈을 한번도 구경하지 못한 채로 이번 겨울을 지나며 정말 지구가 멸망할 때가 된건가봐절반의 아쉬움, 그리고 절반의 기대(멸망을 무서워하면서 원함..ㅋㅋㅋ)라는 오묘한 감정이 섞인 카톡을 보냈었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의 밀린 업무들이 걱정이 되어, 부스스 좀비처럼 회사를 나가는 길.


드디어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고 있다.

그것도 하얗게 펑펑펑.

천천히 고요하게.


주말에도 분주한 지하철과는 대조적인 고요한 눈날림에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나풀거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면서, 아주 잠깐 행복했다.


혼자있는 사무실 창밖으로 여전히 흩날리는 눈을 보면서 지금 떠오르는 책은 

김신지 작가님의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작가님의 구구절절한 여름사랑에 겨울주의자인 나는 겨울에 대해서 적어보마했었다

물론 눈이 안내려서 오랫동안 까먹고 있었지만.

 

*


불행한 기분이 들때 글을 쓰며 해소하는 습관이 있어서, 행복할 때는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지금 느끼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조근조근 쓰는 것 만으로도, 행복에 진하게 머무를 수 있구나 하고. 이 글을 쓰고 나면, 금새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휴일없는 휴일의 휴식 같은 글쓰기다.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기왕이면 망설임 없이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좋다. 다 별로라거나 다 좋다고 하는 대답보다. 가장 편애하는 하나의 계절을 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구체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일 테니까.

출근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자꾸 늘어나다 보면, 쉽게 잊게 된다. 일 바깥에도 삶이 있다는 걸. 그래서 틈틈이 일상에 여백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매번 다짐한다). 일과 일 사이, 스스로 ‘틈’을 만들지 않으면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은 영영 못 하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말리고 싶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행복의 기쁨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아무리 대단한 성취나 환희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마련이므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기쁨을 한 번 느끼는 것보다 다양하고 자잘한 즐거움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한 삶에는 훨씬 유리하다는 것.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그렇게 되뇌며 나는 책의 한쪽 귀퉁이를 접어두었었다.

그러니 우리가 보낼 이 겨울도, 눈이 아주 많이 오는 겨울보다 눈이 자주 오는 겨울이기를. 그럼 좀 더 자주 사진을 찍고, 좀 더 자주 나누고픈 순간을 전송하며, 좀 더 자주 창문에 붙어 서서 웃게 되겠지.

이를테면 나는, 어딘가에 마음을 쏟은 하루를 살면 그것을 기억하기 위한 또 하루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인생은 정말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기억들로 이루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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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16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펄펄 날리는 눈 보며 휴일 없는
휴일의 휴식같은 산출물 잘 읽었습니다. 쟝쟝님은 겨울을 좋아한다 귤도 좋아한다 끄적끄적....ㅋㅋㅋ

공쟝쟝 2020-02-16 18:09   좋아요 1 | URL
이제 집가용 ㅎㅎ 휴식 해야지~!! 주말 잘 보내세용😔

반유행열반인 2020-02-16 18:56   좋아요 0 | URL
짧지만 알차게 푹 두껍게 휴식하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비연 2020-02-16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출근이라니. 그래도 혼자 있는 사무실 창밖으로 눈을 바라보는건 운치있으리라 믿어보며. 이번 겨울 마지막 눈 같죠...?

공쟝쟝 2020-02-16 18:11   좋아요 0 | URL
운치 너무 있어서 눈물이...🥺눈이 너무 안와서 섭섭했던 겨울이었어요.. 아쉽게도 지금은 그쳤어요 흑흑 ㅠ

다락방 2020-02-17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름이 제일 좋고요 눈을 싫어해요. 어제도 눈 오는 거 보면서 ‘어우.. 내일은 오면 안되는데..‘ 했고 오늘 아침에 눈 오는거 보면서 ‘으으 길 미끄럽고 차 막히겠다‘ 생각하면서 싫어했어요. 아아 저란 인간은 낭만을 모르는 인간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2-24 08:04   좋아요 0 | URL
눈이 낭만적인건 제가 눈에 안당해봐서(?)일지도 ㅋㅋㅋ 다락방님은 어쩐지 여름 파 일것 같앗어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2-22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에서부터 쟝쟝님~~~ 오호~~~ 다시 봤어요. 전 겨울 싫어하고요. 초봄도 싫고, 가을도 싫고 ㅠㅠ 저도 다락방님처럼 여름을 제일 좋아해요.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걸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귤 이야기 읽으면서 제가 물개박수 쳤어요. 그걸 좀 알아주세요.
쟝쟝님 얼른 한가해져서 이렇게 재미진 글 많이 써주면 좋겠어요.

공쟝쟝 2020-02-24 08:05   좋아요 0 | URL
아니 의외의 여름파!!! 그쵸, 귤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수박은 수박은 역시 공동체주의자의 과일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