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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정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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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함무라비를 정주행하던 중이다. (임바른 판사님 얼굴 정주행하는 것 같기도.) 너무 신파적이지만 그 오글+진지함이 포인트인 드라마다. 매 회 어려운 길 가시면서 꿋꿋한 박차오름 판사가 순진하던 (-.-)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해 찡해하면서. 그리고 생각하지. 아, 나 민폐였구나. 심지어 민폐를 눈치도 못채는 순진한 민폐!!!

드라마에 아주 잠깐 정의, 그리고 그를 실현할 힘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아직 덜 봐서 추후 전개는 모름) 모처럼 힘, 정의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샐쭉 웃음이 났다. 부끄러움인지 쓴 웃음인지 웃으면서도 오묘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겠던 시절 나는 힘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은 권력의지이기도 했다. 어쩜 매번 관계의 눈치를 보느라 힘을 느끼기도 전에 겁부터 집어먹었더랬지. 여튼 정의롭기엔 너무 쫄보였던 나와는 다르게 당당하게 정의롭고 가진 힘을 잘 활용하는 이들이 멋져보였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함께 지내며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적은 수의 훌륭한 이들을 제외하고 대개는 정의를 외치다 그 자신이 정의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혹은 정의라는 큰 진영 안에서 헌신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거나. 이도저도 아닌 나는 기가 쪽-빨려서는 점점 그들과 멀어졌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러가지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든다.

나와 훌륭한 이들과 정의가 되어버린 이들의 심리적 차이점을 엿볼 수 있을까 싶어서 제목을 보자마자 엄청 읽겠노라 별렀건만- 빌려보길 다행.. ‘정의’에 대한 논의도 그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에 대한 진지한 분석도 없다.

책에서 말하는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이란 내가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상한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 ㅡ 악플러들 혹은 꼰대들,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듣는)귀가 없는 사람들ㅡ이었다. 책에 나오는 용어로 정리하면 그들은 ‘인지복잡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게 책의 간단한 내용이다.

쯥... 굳이 이 제목이 아니어도, 굳이 풍부한 일본사례들이 아니어도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은 시중에 널렸다. 읽으면서 여기서 언급되는 사람들에게 과연 ‘정의’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나도 싶기도 했다. “자기 주장이 매우 강한 사람” 정도가 더 적당하지 않나.

뭐 내용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무나도 젠더 영역에서 업데이트가 안된 학자의 글이었다는 것. 일본인 임을 감안해서 봐도 들고 있는 예시들이 쓸데 없이 후지다. 응? 정의고 뭐고 일단 저자 당신의 인지복잡성이 더 단순한 것 같으신데요?

누워서 폰으로 끄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길게 썼는데.. 이렇게 길게 독후감 쓸 필요 없었지 싶지만... 빌리고 읽는 데 시간낭비한 것 같아서.. (보통 이런 책은 읽다 시간아까워서 덮는데 오늘 들고 나간 책 이거 한권이라거 읽을 게 없어 ㅠㅠㅠ 다 읽음)... 다른 사람은 저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는 정의로운 ㅋㅋ 마음에...

솔직히 별 아깝긴 한데...
제목을 저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댓글로 연예인 혼내는 것에 열올리는 이들의
심리구조가 궁금하신 분들에겐 훑을 만한 책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름의 인지 복잡성을 가지고 별을 하나 달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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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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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믿고 읽는, 정혜신 선생님의 글. 그녀의 글을 읽으면 홀가분해지고, 따뜻해지고, 몸이 편안하게 이완된다. 또르르 눈물 한방울 흐를 때도 있다. 이번 책 역시 그랬다. 뭐랄까, 그냥 눈가는 대로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뿐인데, 나 자신이 조금은 선량해진 것 같은 느낌.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이용하거나, 자신을 드러내거나 내 상처 먼저 봐달라고 아우성치기 바쁜 요즈음의 세상에서 ‘존재에 주목’한다는 이야기야 말로 이데아처럼 들린다. ‘공감’이라는 단어도 ‘힐링’만큼이나 식상하고.

이 책은 다르다. 존재와 사람을 ‘제대로 귀중하게 대할 줄 아는’ “존재”가 세상에 있긴 있구나! 안심하게 된달까. 읽으면서 사그라들던 인류애가 바짝 불 당겨질 만큼 ‘정혜신’이라는 치유자가 고맙드라. 타인을 어루만질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정말로 모/처/럼 생각했다. (😒좋은 사람?? 이 헬조선에서 그게 가능해?? 냉소하길 어언 4년째.....)


*

섬세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선생님은 ‘공감’과 ‘치유’ 노하우를 대거 전수해주신다. 존재에 주목하는 방법, 존재의 과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대화도중 해볼 수 있는 질문들, 공감/감정노동의 차이, 경계에 대한 인식까지. 그 원리와 예시를 모은 내용들임에도 ‘방법서’처럼 읽히지만은 않는다. 글에 깊이 감응할 수 있었던 것은 치유자 정혜신의 기술보다 ‘마음’ 그 자체, 태도 그 자체였다.

“(249) 다양하게 깎인 수많은 입체적인 면면들 때문에 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빛깔과 분위기가 달라지는 예각의 크리스탈 조각 같은 존재가 사람이다. 그런 존재를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둔각으로 뭉개는 일은 자신에 대한 폭력인 동시에 자기 은폐나 억압,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무지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문장은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와 애정이 없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거라. 🤔 수많은 입체적인 면면들. 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빛깔과 분위기가 달라지는..(크흡, 눈물 닦고..). 아, 사람이란 정말 그렇다. 나도 그러니까!!
그러니 뭉개지 말자. 뭉뚱그리지 말자. 쉽게 “(106)충조평판(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따위 하지말자.

“(295)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 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네네. 잘못했어요. 안하도록 노력할게요, 혜신쌤.ㅠㅠ (내가 바로 왕년에 바른 말 대장). 
마음의 영역에서 계몽이란 결국 폭력과 다름없다는 말. 명심하겠습니다!

*

“(117) 공감과 관련해 일종의 클리셰가 있다. 공감은 누가 이야기할 때 중간에 끊지 않고 토 달지 않고 한결같이 끄덕이며 긍정해주는 것,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전혀 잘못 짚었다. 그건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이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지친다.”

어쩐지.......대화가 힘들더라..... 나 자신아, 그 동안 공감을 빙자한 감정 노동 하느라 고생 많았다.

“(187) 누군가에게 공감자가 되려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상처도 공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하는 일의 전제는 공감 받는 일이다. 자전하며 동시에 공전하는 지구처럼 공감은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자기도 주목받고 공감 받는 행위다. 타인을 구심점으로 오롯이 집중하지만 동시에 자기 중심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야 가능하다.
공감은 본래 상호적이고 동시적인 것이다. 지구가 자전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공전을 멈추거나 공전을 하느라 힘이 빠져서 자전을 쉬면 자연의 모든 이치가 깨지듯 공감도 마찬가지다. 상호성과 동시성을 잃으면 공감도 없다.

자전과 공전원리에 입각한 ‘공감’ 해설. 넘나 적절하시다. 이해가 쏙쏙 되었다. 샘은 정말 최고 만렙힐러시다. 나같은 쪼렙은 ‘공감자’가 되기 이전에 내 상처부터 주목하기로 한다. 앗, 공전은 커녕 자전도 잘 안된다. 😨

자전할 에너지도 없다. 혜신샘에게 공감 받고 싶다. 어렵사리 벌려놓은 내면의 상처들을 평가, 구경 당했던 지난 날들이 떠오른다. 그러게 누울자리 보고 뻗었어야.... (다시 눈물 한 번 더 닦고) 그래 나야, 괜찮다. 가까운 이들에게 이 책을 읽혀서 나를 공감시키고, 내가 자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좀 받아야겠다. (이 극단적 이기주의 무엇..ㅋㅋ?!?)

*

요즘의 출판시장 트렌드는 ‘거리두기’‘포기하기’‘그만두기’등등 인 것 같다. 노오력과 자기착취를 독려하는 강박적 자기개발서들만 넘쳐나던 몇 년전의 모습보다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나는 좀 외로웠다. 물론 나를 괴롭히는 관계와 일들로부터 달아나는 것은 용기다. 그러나 상처에 겁먹어 거리두는 것에만 전전긍긍하고 싶지는 않았다. 관계에서 지혜롭게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어려워했던 관계들을 톺아보았다. 그랬구나, 나의 잘못도 많았지만 그들의 잘못도 없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 밖에. 속마음을 나누기 쉽지않는 세상이니까. 나 포함 우리 모두는 다시 배워야 한다.

옆에 있는 이들의 존재에 주목하고 싶어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욱 섬세해지기를 마음먹었다. 책으로 배운 적정 심리학으로 나와 누군가를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한껏든 저녁!!이었는데.. 옆에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 두 마리만.. 똥치워달라고 냐옹하고 있었다....

인간 관계.. 책으로만 배우면....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 줄 사람이 없...게 되는 건가.. (현실자각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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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참 좋았어요.
읽으면서 따뜻한 느낌도 들었고, 어렵지 않게 쓰여진 책이라는 점도 좋았던 것 같아요.
쟝쟝님, 오늘 설날입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 가득한 한 해 되세요.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공쟝쟝 2019-02-05 23:36   좋아요 1 | URL
따뜻한 이 책만큼 따뜻한 서니데이님, 황금 돼지의 해 복 많이 챙기시기를❤️
 
꿈에게 길을 묻다 - 트라우마를 넘어선 인간 내면의 가능성을 찾아서
고혜경 지음, 광주트라우마센터 기획 / 나무연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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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꿈 속에서 비행기가 꽝꽝 떨어지곤 했다. 뒤에서 꽝, 앞에서 꽝, 산너머에서 빌딩 뒤에서 꽝! 소리만 들리고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곤 했다.
돌이켜 보면 네가 믿었던 것들이 이제는 추락했다는 내면의 암시였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후로도 몇 년동안 수 십번 (기억 못하는 것까지 합하면 수백번) 비슷한 내용의 꿈을 꾸었다.
내가 믿었던 것들을 어렵사리 포기하고 난뒤, 거짓말처럼 나는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았다. 


*

좋은 꿈을 꾸면 로또를 사는 우리들은 꿈이란 미래를 내다보는 계시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사실 꿈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과거와 현재가 나에게 보내는 어떤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난 종종 기억에 남는 꿈을 꾸는 날이면 그 때 느낀 감정과 은유들을 해석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잘 몰랐던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항상 완벽하게 깨닫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꿈을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

518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7명의 아저씨들은 30년이 넘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심각한 악몽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고 겨우 잠들거나, 불을 키고 자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나. .. 생의 1/3은 잠을 자는 것이 인간의 생리이니 그들은 적어도 10년의 시간을 악몽 속에서 고통받아왔다. 깨어있는 시간인들 괴롭지 않았을까. 518이 사건으로서의 상처였다면, 살아남은 이들이 겪어낸 세월은 그야말로 생지옥.


광주트라우마센터는 그룹투사 꿈작업가 고혜경을 불러 그분들과 꿈 분석-치료를 시작한다. 잠을 자고 꿈을 꾸고 꿈을 적고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바꿔 꾸면서 그들의 사회적-개인적 트라우마를 조금씩 달래가는 과정의 녹취를 묶은 책이다.
꿈작업 참여자들은 모진 고통을 겪은 이들이지만 꼭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읽고 공감할 수 있다.
왜 아닐까. 우리모두는 연결되어있으므로- 사회의 상처는 모든 개인의 상처의 다른말이다. 나는 그들의 증언과 그들이 꾸는 꿈에서 놀랍도록 일치하는 경험과 꿈들을 발견하곤 했다.

*

악몽은 나쁜 꿈이 아니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매우 시급한 문제를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며,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는 무의식의 붙잡음이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꿈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결국 스스로와도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p.119)
보세요, 뭔가 할 수 있지요. 어떤 상황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내셨어요. 가위에서 벗어날 힘이 내 안에 있어요. 마비가 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건 내 안에 마비를 풀 힘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꿈 상황을 기억하는 것이고요. 고통이나 두려움에 압도당하면 그 사실을 잊게 되지요.
518때 고문당한 분들 아니면 이와 유사한 극한사황에 처해서 그 뒤에 트라우마를 앓는 분들이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 같아요. ‘인간은 절대 무력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무력했다면 지금까지 살아 계시지 못할거예요.


무척 감명깊게 읽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었다. 특히 자면서 악몽을 꾸는 사람, 비슷한 꿈을 되풀이해 꾸는 사람, 자주 가위에 눌리는 사람들은 꼭 읽었으면. (현실적 팁 제공)
또한 현재 우리에게 산재한 구조적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해결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약간은 다른 장르의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도 좋다.

한동안 인류애도 떨어지고, 역시 인간은 지옥인가 절레절레 했었는 데- 읽으면서 잠시.. 아주 잠시(!) 사람에 대해 긍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만에 까먹었다고 한다.. 인류애 지못미..)

덮고나면 “트라우마를 넘어선 인간 내면의 가능성을 찾아서”라는 책의 부제가 더 또렷이 보인다.
우리의 내면엔 우리가 감지한 것 보가 더 강한 힘이 있어, 우리는 반드시 우리를 극복할 것이다. 알기 쉽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단단한 인간 내면의 세계를 책으로나마 경험해 보시기를.


“(p.274)
김광현 : 518때 기동타격대 활동을 했던 제 동지들 중에서 민재, 석홍이, 창규란 친구가 죽었어요. 둘은 국립묘지에 들어갔는데, 안타깝게도 한 명은 구묘역에 있지요. 평상시에도 가끔 생각나면 밤중에 그놈들을 찾아가곤 해요. ... 또다시 잠들었는데, 이번에는 평소처럼 술을 사들고 망월동에 갔어요. 세사람 무덤에 가서 술을 비웠는데, 문득 우리 넷이 한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더군요. 다들 별말 없었는데, 석홍이만 막 울었어요. 나만 많이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요. 그러더니 자기는 먼저 가야겠다면서 일어나버리더군요. 그 친구를 막 붙잡다가 깨어났어요.
...... 공중파에서 제 이런 이야기를 촬영해서 방영한 적이 있어요. 거기 나온 저를 보면 미친놈에 알콜중독자, 정신병자에요.
..
고혜경 : ..... 꿈이 전개되는 자리가 망월동 묘지여서인지 꿈 자체가 생사와 시공을 초월해요. 이 긴 세월 혼자서 술 사들고 묘지를 찾아와 독백해오던 입장이 되어보니, 이 독백에 드디어 친구들이 화답해주는 듯 해요. 저는 이 자리가 제 안에서 일어나는 화해의 자리 같아요. 그동안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우정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드디어 그 전환이 일어나요. 30여 년 지나 다시 만난 우리에게는 우정이 더 소중해요. 친구들이 나를 염려하고 위로해주는 장면은 뭉클해요. ˝너 힘든 것 알아, 그동안 짊어진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알아.˝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줘요. 그런데 이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요. ˝그간 애 많이 썼다.˝ 드디어 내가 나 자신에게 친절해져요. 이는 긴 세월 내가 나에게 하지 못했던 말이에요. 친구들한테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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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그런말을 했었다. 사람이 겪어버린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란 이미 와장창 깨진 유리조각 같은 것이라서 한쪽에 치워둬야 한다고. 그걸 완전히 없던 일로 할수는 없고, 이미 일어나 버린 것이기에 상처 이전의 삶으로 돌아 갈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질하고 걸레질하여 한쪽에 모아두고, 무심코 밟지 않도록 넘어다니거나 비껴 다녀야 한다고.

심리치료는 그 유리 파편들을 잘 쓸어 담아 보이는 곳에 치워두는 작업이며, 이후에 우리는 그걸 인식하고 헤집어 밟지 않으려 노력하며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어쨌든 적어도. 상처가 일상을 초과하지 않도록. 그 것이 나의 평범한 하루를 해치지 않도록. 삶은 날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펼쳐져 있는 그 일과 사건들을 분초 단위로 겪으며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라서.

*

2월 이후, 미투 이후.. 사실 어쩌면 페미니즘에 감응하기 시작한 이후 부터, 한쪽으로 치워둔 상처들을 자꾸 다시 헤집는 느낌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해 할 수 없었던 사건들, 사건들 속의 그들, 감당할 수 없었던 문제들, 문제들 속의 각 개인들.

그 땐 그것이 상처인 줄 몰랐으나,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상처받아 왔으며, 언제부턴가 시작된 무기력과 우울감, 되풀이 되는 꿈들도 시작을 좇아가니, 그 날들 이후였다.

그때 나는 정확하게 분노 했어야 하는 데,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분노할 대상과 타이밍을 잃어버리고, 내 잘못과 부족을 탓했다. 페미니즘의 언어를 알고 서야 조금은 정확하게 분노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너무 극찬했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사람의 이면. 사람이 가진 다양한 얼굴.

*

인간에 대한 희망을, 사회에 진보에 대한 확신을,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혀가며 힘주어 말할 수 있었던 때가 있다. 내가 겪은 사람들이 너무 따뜻해서 였을 것이다. 따뜻했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전부. 내 전부 같은 좋은 이들이 좋았다. 우리를 괴롭히는 적들만 없으면 우리가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공통의 적을 미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낭만적인, 한껏 사랑할 수 있는, 그럴 수 있었던 날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지독한 패배주의.

*

가끔은 내 안에 이렇게까지 서늘한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괴적인 냉소로 내 사람들을 공격할 때가 있다. 난 그런 내가 싫다.

그런가 하면 또 그는 나다.
해결되어야 하는 어떤 지점이 있는 것인지, 한 쪽으로 치워놓은 채로 조심조심 피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
사실은 정신적으로 힘들다.
겨우 슬픔으로 바꿔 놓은 감정이 다시 날이 서게 끔 하는 상황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싸움을 포기하고 싶다. 그런데, 누군가들은 계속 싸운다. 나는 포기하려던 것을 다시 움켜잡고 그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사실은 분노할 마음의 에너지가 없을 뿐더러.. 방향도 방법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를 좀 해야겠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

그나마 내가 마지막으로 기대는 것은 지금의 상황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며 변화할 것이라는 것. 그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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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 서툴면 서툰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지금 내 마음대로
서늘한여름밤 지음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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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었던 내 우울증의 증상은 ˝감정 없음˝ 남들은 내가 신경질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는 나는 감정없음. 기운이 좀 나서 감정이 생기면 그걸 분노, 눈물, 웃음으로 격하게 방출. 

서밤님 말대로 사막처럼 온도조절 안됨.

성격 좀 고치라는 진심어린 충고들이 다 튕겨졌는 데, 고치고 어쩌고 할게 아니라- 지나고 나니 그냥 나한테 내가 좀 더 관대했으면 됐을 텐데 싶다. 잘 안들렸으니까. 좋은 충고도 나한테는 송곳같은 상처였으니까.


"P. 85-91 우울증이 있었던 이야기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데, 솔직히 마음의 폐렴 정도이지 싶다. 폐렴의 증상은 생의 에너지를 조절할 수 없는 느낌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뭔가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정서적으로 완전히 탈진해 버렸다. 그때의 감정은 ‘감정 없음‘이었다.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아무것도 없는 그 진공의 느낌.
생의 에너지가 조금 생기면 그것을 감정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그 중 슬픔이나 우울은 생의 에너지가 가장 적게 드는 감정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느낌보다는 슬픔이든 뭐든 있는 게 나았다.
기분이 까닭없이 좋아질 때는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는 데, 무엇도 나를 잡아주지 않고, 언제라도 곤두박질 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 기분을 더욱 증폭시켰다.
...
기분이 곤두박질칠 때는 끝이 없었고 비명을 질러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진공. 도저히 온도조절이 되지 않는 사막 같은 마음.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다. 위로받거나 이해받는 것도 피곤했기 때문에. 나는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노력했다.
마음의 빈자리가 생기는 게 무서워 뭐든 쟁여두려 했다. ... 돌아보면, 어느 수준까지 관리하는 것은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 우울을 걷어낸 마음에는 듬성듬성 못자란 부분이 많다. 지금은 마음의 나무를 심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내 마음도 울창해지겠지...
...
적절할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때는 도움받을 여력마저 없었다. 여기에는 다 담아내지 못한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나 많은 노력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다시 재건 중이라는 것."


대체적으로 잘 살아왔고, 잘살고 있으며,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 나지만, 갑자기 울컥, 기억과 감정들이 쏟아져 내릴 때가 있다. 이마 저마 많은 것들이 있지만, 관통하는 딱 한가지 후회는 ‘스스로한테 좀 더 잘해줄 걸.‘

나한테 가혹했던 순간들, 절체절명 아등바등 백척간두 같던 날들, 비어있는 스스로를 애써 의미있게 포장해보려던 시간들이 아쉽고 후회된다.

나를 독려하고, 나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나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은, 앞으로 30년간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득하기도 하지만 기분 좋기도 한 일이라서, 옛날보다는 훨씬 더 내일이 기대 된다.

이제는 영혼의 동반자 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서밤님의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헤쳐왔던 나의 문제들이 나혼자 겪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나와 비슷하게 또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위로 받았던 시간들.


˝대단한 포부 따윈 없고 멀리도 못보지만, 한치 앞은 보려고 노력한다.˝
˝세상에 망한 인생은 없다. 인생은 망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아직은 모르지만 적어도 싫어하는 것을 하고 있지는 않다. 새로운 삶에서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빛나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견디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끌어다가 지금을 밝히는 데 쓸 것이다. ˝


너무도 위로가 되었던, 그녀의 띵언들을 명심하고!!
오늘도, 내일도.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P.106-109
˝나는 이제야 내 인생을 스스로 그려보겠다고 붓 들고 있는 데, 시작부터 큰 그림은 아무래도 무리다. 큰 그림을 그리겠다고 망설이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작은 그림들을 거침없이 그리는 게 즐겁다. 작고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누군가와 나눈다. 대단한 포부따윈 없고 멀리보지도 못하지만, 한 치 앞은 보려고 애쓴다. 언젠가 지금의 작은 그림들이 모여 큰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아니어도 뭐 어쩌랴. 순간순간 만족스러웠으니까 됐지 뭐. 언젠가 남들의 큰 그림에 자괴감이 드는 순간도 올 수 있겠지. 그런 순간에 작고 즐거웠던 조각들이 나를 지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P.131
엄마는 남에게 싫은 소리 하고 싸우는 걸 싫어했다. 그 억눌렀던 화는 자식들에게 돌아갔다. 습관적인 정서적 분풀이. 이걸 끊어내려고 나는 엄마한테 지랄을 했다. 물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용서할 수는 없었다. 쉽게 용서된 폭력은 쉽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엄마를 위하고 싶지만 그게 나를 학대하는 방식이라면 싫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분풀이 대상이 될 생각은 없다. - 어른의 좋은 점은 엄마와 정서적 물리적으로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

P.152
네가 이렇게 얘기 해줬다
˝네 오른쪽 눈은 반달처럼 예쁘고 왼쪽 눈은 아몬드처럼 예쁜 걸.˝
내 눈은 여전히 짝눈이고, 짝눈이 아니었더라도 미녀는 아니지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짝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예쁜 눈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너는 나를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서 내 모든 것을 바꿨다.

P. 138
사람들은 다양한 정서를 느끼며 산다. 그런데 나는 정서를 덜 느끼며 살려고 노력했다. 외면하고 억압하려고 했다. 나에게 정서란 다양하거나 유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게 편했다. 그래서 이성에게 인생 몰빵! 오직 이성이 이끄는 삶만 살아왔다. 그래서.. 이제와 이러고 있다. .. 용기내어 마주해보려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양한 정서를 잘 느끼게 됐으면 좋겠다.

p.214
내일이 괴롭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히 안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아직 잘모르겠지만 적어도 싫어하는 것을 하고 있지는 않다. 우습지, 그만두면 모든 게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그래, 어쩌면 나는 그 때 끝나 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1년전 오늘부터 새로운 삶을 일구고 있다. 그 새로운 삶에서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하고 싶은 것들을 계획한다. 남의 눈치를 보는 대신에 스스로를 살핀다. 빛나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견디지 낳는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끌어다가 지금을 밝히는 데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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