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 / 문학사상사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연애 이야기, 이별 이야기는 흔하다. 내 연애 이야기와 내 이별 이야기는 겪는 나에게는 특별할 수 있겠지만 그게 이야기가 되는 순간 흔한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까 그 흔한 걸 안 흔한 이야기처럼 쓰는 것은 필력. 그 흔한 걸 재미있게 연출해서 내가 특별해지던 사적인 경험들을 떠올려지게 만든다면(세상 모든 찌질 남들의 영화라고 불리는 <500일의 썸머>처럼) 그게 바로 연출력, 입담. 이야기 꾼. 재담 꾼 그런거 아니겠나. 올해에 만난 두번 째 대머리(첫 대머리는 푸코) 닉 혼비는 이 소설로 인해 내게 그런 작가가 된 듯 하다. 


20대 때 나의 영화 메이트인 동생과 여러번 심심할 때 마다 보면서 큭큭댔던 한국 로맨스물이 있는 데 이시영, 오정세 주연의 <남자 사용 설명서>다. 이 영화 혹시 아는 사람 있나요? 이거 진짜 약빨고 만든 미친 영환데… 지금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아마 지금봐도 재밌을 것 같긴 함)  오정세가 진짜 드럽게 찌질하게 나온다. 지금이야, 오정세가 연기의 신이되어 모르는 이가 없지만 그때는 그다지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다. 뭐랄까… 하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난 배우 오정세를 좋아(?)하게 되었는 데(배우로서 좋다는 거지 그 역할이 좋다는 건 아니다)… 하. 




글로 쓸까 하다가... 짤로 대신한다. 


그리고… 잠자냥 추천의 <하이피델리티>에서 나는 이승재(오정세 분)의 원본(?)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올해의 OOO페이퍼를 맞이하여, 올해의 찌질남도 뽑아보는 추세인듯 한데 

다 덤벼라. 나에겐 롭이 있다. 


자.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까 그냥 소설 287페이지를 긁어와 보자.

p.287

"상관없어. 그냥 알고 싶어."
"뭘 알고 싶은데?"
"그게 어땠는지."
로라가 벌컥 성을 냈다. "그 섹스는 섹스 같았어. 그게 달리 뭐같았을 거라 생각해?"
이런 대답조차도 나에겐 상처가 됐다. 난 그게 전혀 섹스 같지도않았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것이 훨씬 더 지루하고 불쾌한어떤 것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게 좋은 섹스 같았어, 아니면 나쁜 섹스 같았어?" 
"뭐가 다른데?"
"그 차이를 알 텐데."
"난 네가 딴 여자랑 잤을 때 어땠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잖아."
"아니, 물었어. 난 기억한다고. '그래서 즐거웠나 보지?' 했잖아."
"그건 진짜 궁금해서 물은 게 아니잖아! 있지, 우린 이제 잘 지내 좀 전에도 아주 좋았고, 여기까지만 하자." 
"좋아, 좋아. 우린 좀 전에 아주 좋았는데…… 몇 주 전에 다른남자랑 잘 때보다 더 좋았어, 아니면 딱 그만큼만 좋았어, 아니면덜 좋았어?"
로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발, 로라. 그냥 아무 말이라도 좀 해봐. 거짓말을 해도 좋아. 
그걸 들으면 내 기분이 한결 나아질거야. 너한테 더 이상 질문도 하지 않을 거고."


지난한 주인공 롭의 잤냐잤어잤냐잤어어땠냐어땠어가 지쳐갈 무렵 우리의 여주인공 로라는 말해준다. 니께 더 작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은 지 좀 되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마 롭은 니께 더 작다고 하는 순간 그 질문을 그만 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대답을 289페이지에서 했다는게 문제 ㅋㅋ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이다. 말 다했지?)


그러나 이 진부하고 찌질한 이야기를 눈 흘기면서 읽더라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작가 닉혼비의 장점이라면 장점인 것 이다. 닉혼비의 다른 책 <어바웃 어 보이>에서는 결혼 이야기나 질척임이 필요없는(?) 안전한 연애를 하기위해 싱글맘 들이랑만 사귀는 한량 윌이 등장한다. 롭 역시 도통 발을 뺄 수 없는 일에 연루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윌과 비슷하다. 무엇도 책임질 생각이 없는 심드렁한 이 치들은 삼십대 중반이 넘었지만 비혼이고, 자신이 루저인 걸 알지만 개선할 의지가 별로 없다. 윌은 아빠의 인세로 먹고 살고 롭은 잘나가는 변호사 여친한테 빈대 붙어서 산다. 근데 참 뭐랄까… 이 인간들… 둘다 찌질하긴 한데, 뭐랄까 내면에 뒤틀림이 없다. 찌질하다는 데에 있어 아주 번듯하다ㅋㅋㅋㅋㅋ. 번듯한 찌질함이라고나. 참, 내, 이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해. 설명하지 말자.


여자 주인공 로라는 롭 보다 한 다섯 수 정도 더 보고 있는 것 같고, 아주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찌질함을 탑재한 롭을 다 내려다 보면서 한심스러워 하면서도 귀여워하는 듯 했다. 음. 그게 귀여우면 안되는 데. 이미 성공한 변호사 궤도에 오른 자신의 성취가 있는 그녀는 그만 눈이 발바닥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오, 불쌍한 로라. 


책은 시종일관 팝뮤직 애호가인 롭의 미춰버린 입담으로 끝없이 씌여있기 때문에 계속 큭큭 거리면서 읽게 된다. 

내 경우 아, 이 청순하게 찌질한 새끼.. 이러면서, <남자 사용 설명서>의 승재를 보는 것 처럼 보고 읽었다.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주말에 부모님 본가에 갔다가 꼼짝없이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러가게 된 롭. 싱글. 36살.


p.156

“픽앤믹스에서 사탕을 종류별로 다 쓸어 담는 이본과 브라이언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난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고 뼈가 덜덜 떨리는 경험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남자가 내게도 자기도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보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남자’는 뻐드렁니에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고, 더러운 황갈색 겨울 점퍼와 무릎 부분이 닳아 반질반질해진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그 또한 이십 대 후반임에도 부모 손에 이끌려 <하워즈 엔드>를 보러 왔다. 그는 내게서 동병상련을 느꼈기에 그 가공할 엷은 미소를 보냈던 것이다. 난 그게 너무 심란해 에마 톰슨에게도 바네사 레드 그레이브에게도, 그 밖의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을 땐 이야기를 따라 잡기 어려울 만큼 영화가 흘러가버렸다. 어쨌든 끝에 가서는 누군가의 머리 위로 책꽂이가 쓰러졌다. 

‘세비남’의 미소가 ‘내 인생의 밑바닥 순간 톱5’에 들었다는 것까지만 말하겠다. 나머지 네 가지는 잠시 머릿속에서 달아났다. 내가 그 ‘세비남’만큼 비참하지 않다는 건 안다. 요점은, 그와 나의 차이점을 그는 대번에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고, 난 안다는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또 나만 웃긴건가)  이렇게 웃기게 쓰는 데, 아무리 화자가 별로라도 끝까지 안 읽을 수가 없지 않나? 그리고 … 아니, 이렇게 쓰다니 아니?! 이런 부분들도 진짜 많았다. 내가 소설의 문외한이라서 그럴 수도 있는 데,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쓴 소설을 본적이 없어가지고요. 예시 하나.


p. 297

난 우리가 예전처럼 서로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며 우리 사이에 틈이 생겼고 하는 등등의 얘기를 다른 식으로 말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우린 예전처럼 서로 같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 틈이 생겼어요.’”

“왜 그렇게 바보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거야?”

“따옴표를 붙였다는 뜻이야. 새롭게 이야기하는 법을 찾는 중이라고. 네가 아기를 갖든가 헤어지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을 돌려서 할 방법을 찾는 것 처럼 말이야.”

“내가 언제 그랬어?”

“농담이야.”


ㅋㅋㅋㅋ 이것도 나만 웃겨? ㅋㅋㅋㅋ


기억 나는 에피소드. 롭의 본업은 ‘열혈 음반 수집광’들을 위한 음반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인데 (돈을 당연히 못번다. 이것은 마치 누구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알라딘 서재에서 즐겁게 놀다가 인구 30만 미만의 지방 소도시에 동네 서점을 열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 데, 그게 뭐냐면 15년 후에 어렴풋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굶어 죽겠지.) 다른 건 다 심드렁해도 음악 취향 하나 만큼은 너무도 확고한 나머지 자기같은 음악광 너드들하고만 놀다가 어느 날 번듯한 로라의 변호사 친구들네 집에 초대 받게 되고. 


따뜻한 환대와 진심 어린 대화 속에서 로라의 지인들이 정도라면 “내 남은 평생 매주 두 번씩 만나고 싶을 정도”라고 까지 호감을 느끼지만, 집안에 꽂힌 티나 터너, 빌리 조엘 등등의 컬렉션을 보고 “독성이 강하고 너무 끔찍해서 무쇠 상자에 담에 제3세계 매립장으로 떠나는 배에 실어야한다”고 생각하며 어떤 신념을 시험받고 마는 데.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책을 선물해주며 (다섯 페이지 읽고 팔고 말았다. 인스타 감성의 에세이였다. 제목도 기억 안남.) 자기도 독서를 좋아한다고 했던 어떤 사람 생각이 나네. 그래서 무슨 책을 좋아하는 데요? 인생 책이 <미움받을 용기>였던 그와의 대화를 위해 난 그 책을 읽어보았지만(좋은 책이었다. 그런데 인생 책이라고 할 것 까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책 읽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던 것 같다. 책은 내가 읽으면 되는 것이기도 하고… 살면서 내가 만난 책 많이 읽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 지긋한 학자들이었는 데, 학문 빼고는 별로(어쩌면 하나도) 존경스럽거나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이 배운 인간과 배우지 않은 인간 사이에서 어떤 질적 다름이 있다고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성실하고 착실하며 시간 약속을 잘지키는 사람,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성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건 어떤 취향이라는 세계가 확고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 인 것 같고. 이젠, 아무리 그래도 한달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이나 오로지 베스트 셀러만 읽는 사람하고는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했다. 이 소설은 취향이 확고한 사내의 취향 만으로는 살 수 없는 나이 36세에 겪는 성장 소설(얘도 성장소설..)이다. (근데 성장 맞니? 이건 반성장… 아니니…?)


롭이 느꼈을 당혹스러움을 나에게 빗대면 이런 거다. 어떤 대화가 잘 통하고, 번듯하고, 시간 약속을 잘지키며, 성실하고, 섹시한(ㅋㅋㅋ) 남자를 만나서 그 사람 집에 초대 받아 놀러갔는 데. 그의 책장에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과 함께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정의란 무엇인가>가 꽂혀있는 거지. 소설은 김훈의 <칼의 노래>와 무라카미 하루키꺼 아무거나 한 권으로 하자. 저기요... 우리 (만난적도 없지만) 헤어지자. 


뭐 주절 주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썼는 데,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고 덕분에 수 백곡의 오래된 팝송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이 책의 가장 큰 반전이자, 찌질한 너드남들을 귀여워만 해서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의 마지막 <작품 해설>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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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2-29 11:41   좋아요 4 | URL
오늘도 고퀄 댓글로 제게 즐거움을 주시는 에로이카님.
1) 썸머는 취향, 찌질 이런 것 보다는... 진부한 연애 이야기를 진부하게 만들었지만 잘 만든 (사적 경험들이 왈칵 쏟아지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예로 들었어요. 제가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만든 로맨스영화는 분명히 있거든요. 책 하이피델리티도, 그런 맥락에서 잘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토이 가사속 지질함, 건축학 개론의 찌질함, 소설 속 롭이나 오정세가 연기한 찌질함을 저도 귀여워하는 편이지만... 쉽게 모에화되는 걸 좀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모두 찌질한 시절을 살아오지만, 여성의 찌질함(비교 쉽게 거칠게 그걸 속물근성-정도라고 이야기 해봅시다. 그런게 있다기 보다는요. 김치녀 담론으로요.)과는 다르게 남성의 찌질함은 귀여워서 용서되는 것이 있거든요. 그 자신들도 용서하고 남자도 용서하고 여자들도 용서하고... 용서가 참 쉬워....
3) 찌질함에 대한 보다 엄밀한 정의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ㅋㅋㅋㅋㅋ
‘자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은 시간 약속 입니다. 제가 만난 자신이 너두도 중요했던 사람들 (ㅋㅋㅋ 이건 찌질하다기 보다는 찌질이 극복되지 않고 혹은 찌질을 깨닫지 못한채 계속 승승장구해온 캐릭터들의 일반적 특징인듯 하네요)은 타인의 시간을 아까워해주지 않더라고요. 딱 그거. 취향이나 정치적 견해, 젠더관점 이런거 다 내려놓고... 내 앞의 사람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것이 제가 설정할 수 있는 인간다움(?)의 시작 지점이고 출발점 이라는 뜻으로 적어 봤습니다.

다락방 2021-12-29 1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남자사용설명서 뭔지 모르는데 저 장면 보니 어떤 분위기일지 어떤 찌질함일지 확 오네요 ㅋㅋ
그런데 잘 모르겠어. 나는.. 나는 안그럴까? 나는 안찌질할까? 막 나도 물어보고 싶을것 같은데, 그런데 대답 듣기 싫어 안물어보게 될 질문 같아요. 역시 연애는 안하는게 장땡이여... 안하면 찌질해질 일도 없다.....

공쟝쟝 2021-12-29 11:5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찌질의 스펙트럼이 이렇게나 넓다 ㅋㅋㅋㅋ 저 영화 다시 보고 비평좀 해봐야겟네요 ㅋㅋㅋㅋ 제가 거의 유일하게(?) 즐겼던 로맨스….

그레이스 2021-12-29 14: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닉혼비의 영국식 유머감각이라고 해야하나요?
따라갈 수가 없네요 ^^

공쟝쟝 2021-12-29 18:12   좋아요 1 | URL
글로 웃기는 것을 연마중인 괴상한 관종인 저에게 - 닉혼비라는 소스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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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양장) 헤르만 헤세 컬렉션 (그책)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옮김 / 그책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어떤 이에게는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 한 번도 방랑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사주를 보면 꼭 그런 말을 들었다. 관운 때문에 꽉 짜여진 일을 하는 게 적성에 맞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했다. 나, 시대를 잘못 태어났구나. 과거의 인류—세상이 더 넓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전제) 한 가지 일만 하는 삶, 그렇게 매일 매월 매년을 반복하는 삶—를 질투한다. 선택지와 가능성이 소거된 충실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고르는 게 싫다. 살기도 빠듯한 데 고르느라 시간 쓰는 거 싫다. 인생은 어차피 한 번이기 때문에 가장 다양한 삶도 가장 단순한 삶도 결국 한 번의 삶이고 같은 무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가장 단순하고 싶다.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매진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소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걸 하고 싶다고. 무언가 한 가지에 꾸준히 열심인 삶, 그것의 반복의 반복의 반복. 그런 것을 담은 이야기에 곧잘 매료되곤 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할 수 있는 돈 주는 일이라면 일단 받고 보는 생계형 엔잡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패터슨>. 패터슨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의 하루가 똑같기 때문이다. 방랑하고 싶지 않다. 변수의 세상을 맞닥 뜨리는 것은 즐겁기보다는 피곤한 일이다. 혼자 훌쩍 계획하지 않은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여행지에서는 늘 생각한다. 아, 집에 가고 싶다. 누워서 책이나 읽고 싶다.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기나긴 하루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장점임에는 틀림없지만 익숙한 것들에도 충분히 애정을 느낀다.

나는 언제나 떠나보내는 것을 어려워했고 헤어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정착하고 싶었다. 뿌리내리고 싶었다. 언젠가 아빠가 가장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아빠 본인은 자신을 가리키는 자조 섞인 말이었을 테지만, 나는 못난 소나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과거를 곱씹고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 한 발짝 떨어져서 이해하고 분석하기를 즐기는 사람. 경험이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사람. 무엇을 느끼기보다는 누군가가 무엇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것이 더 생생한 사람.

그리하여, 모든 감각을 다 느끼고 살 수 있는 삶을 다 살아낼 것처럼 휘몰아치는 골드문트의 방랑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것은 나르치스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다만 나는 나르치스처럼 생겨먹은 쪽에 더 가깝고, 그런 나 자신에게 불만 또한 별로 없다. 시대를 잘못 만나 안전히 뿌리내릴 공간을 위해 끊임없이 삶을 변용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고단할 따름이다.

덧, 자신을 골드문트라고 주장하는 알라딘의 서재의 퐐모님이 계신다. 로맨티스트 (…난봉꾼) 골드문트가 장미 가지를 물고(…) 여자한테 연애 수작 거는 장면이 나온다. 아아. 그 순간 떠오른 것은 퐐님의 프사. 그 인자한 미소와 입에 문 한 떨기 장미…가 떠올려지며… 항마력이 딸렸다. 내 상상 속이었지만 안 본 눈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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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러니에 대한 각주 (골드문트처럼 살고 있는 나르치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1-12-08 01:32 
    (소설을 읽고 흐르듯 쓴 독후감https://blog.aladin.co.kr/jyang0202/13141476에 달린 댓글이 내 아이러니에 대한 주석을 조금 더 덧붙이고 싶게 만들었다. 이 글은 소설에서 경험한 질문을 사회학자의 에세이를 통해서 엮어 생각해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독후의 감. 하지만 인용은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이 더 많으므로 이곳에 엮어둔다.) 나는 나르치스다. 경험하기보다는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만
 
 
유부만두 2021-12-02 07: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덩달아 저도 상상하고 말았습니다…
퐐모님의 프사에 장미 한 송이.

공쟝쟝 2021-12-02 09: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낭만이 아주 베사메무쵸 느낌이랄까... 표정도 그렇ㅋㅋㅋㅋ

Falstaff 2021-12-02 08: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장미꽃 입에 문 것도 나옵니까? 하도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군요.
장미 가지 입에 물고, 탱고를 췄을까, 안 췄을까, 아, 무지 궁금합니다. 이왕이면 한 판 추었으면 더 좋겠는데 말입죠. ㅋㅋㅋ
이 책, 공장쟝 님의 하이 틴 시절에 읽었다면 별 다섯 개도 모자랐을 거라는데 십만 원 겁니다!!!!

공쟝쟝 2021-12-02 09:35   좋아요 3 | URL
과연 그들은 언덕에서 탱고를 한 판 추었을 까요 아니면 그것이 아닌 다른 무엇을....? 궁금하면 읽어보시구랴. (퐐님 흉내내기)
맞아요. 헤세는 진짜 십대에 읽어야지 꿀잼!인 작가라는 생각이들어요. 십대때 읽었으면 골드문트처럼 살아야한다!!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구. 그래도 언제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좋아하는 고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흐흐흐흐~

잠자냥 2021-12-02 09:53   좋아요 2 | URL
아니, 탱고 춘 기억 없는데...... 이것 참 궁금허네...

공쟝쟝 2021-12-02 10:03   좋아요 1 | URL
장미꽃 입에 문 치명남의 원본이 골드문트였을까요? 저는 그것이 궁금해벌임...

새파랑 2021-12-02 0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공식 골드문트 ㅋㅋ 이 책도 빨리 읽어봐야 겠어요~ 저는 약간 역마살이 있는데 ㅎㅎ 폴스타프님도 프사만 저렇지 하이틴 시절에는 꽃미남 이셨을듯 합니다 ^^

Falstaff 2021-12-02 09:1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하이틴 시절 대입 본고사 수험표에 붙혔던 뽀샵하지 않은 명함판 사진은 다른 분은 모르겠고, 잠자냥 님이 보신 적 있습니다. 유일하게 댓글 다셔서 기억하고 있습지요.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2-02 09:37   좋아요 3 | URL
새파랑 // 저는 도화살.... (훗)
퐐님 // 서재 뒤져보면 나와요?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잠자냥님 자기만 그런거 알다니!!

Falstaff 2021-12-02 09:42   좋아요 3 | URL
당연히 지웠지요. 애초부터 딱 이틀만 공개하겠다고 했습지요. ㅋㅋㅋ

공쟝쟝 2021-12-02 09:49   좋아요 3 | URL
아, 정말 맺고 끊는거 젤잘알... 이 밀당 아는 골드문트...

잠자냥 2021-12-02 09:52   좋아요 4 | URL
히히히. 맞아요. 난 그 시절 골드문트의 얼굴을 안다오. 우린 그런 사이라고!
그런데 내가 요즘 방랑하는 퐐~골드문트 생각할 땐 그 얼굴에 배나온 알라딘 서재 프사랑 합쳐서 생각한다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12-02 10:37   좋아요 2 | URL
하하하 전 그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퐐님 사진을 보았습죠. 아주 강렬해요!!

Falstaff 2021-12-02 10:41   좋아요 2 | URL
아니, 유부만두님도 보셨다는 말씀입니까? 그걸 기억하신단 말씀이세요? ㅋㅋㅋㅋ
˝파르라니˝는 아니었는데요. ^^;;;

공쟝쟝 2021-12-02 12:21   좋아요 0 | URL
하... 너무 궁금하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사진 고이접어서 나빌레라 해버리신 골드문트님... 다시 보여주세요.. (떼잉..)

에로이카 2021-12-02 09: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패터슨>을 그런 이유로 좋아하셨군요? 나는 그 영화를 왜 좋아했나 생각해봤더니, 애덤 드라이버가 분한 시 쓰는 운전사의 그 일상적인 차분함 속에 나오는 시들 때문였던 것 같아요.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 모르겠는데... 공쟝쟝님 이 리뷰를 생각하다 걸으며, ‘행복‘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정의가 떠올랐어요. 내가 아는 행복의 정의 중에서 가장 공감했던 것이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데요. 행복은 일상의 노동(고통, 지루함, 비루함)에서 벗어날 때의 그 느낌, 그 해방감에 있는 것이라는 내용였던 것 같아요. 퇴근길의 행복, 금요일 오후의 행복, 방학을 맞는 행복 등... 그리고 여행은 여행을 가기 전과 막 떠날 때가 제일 좋은 것과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공쟝쟝님의 ˝방랑 안하고 싶음˝이 그런 행복 때문인가 잠시 생각했어요. 그리고 리뷰 다시 봤는데, 이 리뷰에는 아이러니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엔잡러의 아이러니, 잘난 소나무의 아이러니... 감상이 길었습니다. ^^

공쟝쟝 2021-12-02 10:02   좋아요 2 | URL
당연히 패터슨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그가 시를 쓰는 장면이죠. 생계를 위한 일상을 살면서 삶 한 조각 남겨놓고 자신만의 예술을 하는 삶을 언제나 동경하고, 저 역시 그렇게 살고 싶어합니다.
요즘의 제 행복은 응시입니다. 혹은 음미인가? 혼자서 가만히 무언가를 골똘할 때, 항상 그저 그랬던 것이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 좋고요. 그런 시간을 저한테 준지 얼마 안되서 그런 시간에 오래오래 머무르려 노력하는 듯합니다. 에로이카님의 긴 댓글은 저를 골똘하게합니다. 그러니 저의 아이러니를 언제든지 분석해주십시오 ㅎㅎㅎㅎㅎ

바람돌이 2021-12-02 1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공쟝쟝님 유튜브 보러 들어가서 이 책 읽으시는걸 봤지요. 소개해주신 김겨울씨 유튜브보다 공쟝쟝님이 더 재밌었다는건 안 비밀... ^^
이 책은 10대 때 가장 강렬하게 읽을수 있는 책이라는데 한표 보탭니다. 저도 10대 때 이 책 읽고 골드문트앓이를 호되게 했다죠. 나의 현실은 나르치스인데 꿈은 골드문트인 사람에겐 특히나 강렬한 포스를 선사한 책이었어요. ^^

공쟝쟝 2021-12-02 12:56   좋아요 1 | URL
저는 나르치스인데 뭔가 … 골드문트처럼 살아요(지방러의 서울 생활은 떠돌이…)ㅠㅠㅠ 저주받은 나르치스…. 그래서 차라리 내가 골드문트였다면… 좀 갠찮았을 텐데… 이렇게 생각해본 소설 이었어요 ㅋㅋㅋ 참 바람돌이님 글 저번에 읽었어요 ㅎㅎ 축하드려요! ㅋㅋㅋ

나뭇잎처럼 2021-12-06 16: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패터슨>. 과연 울집 강아지가 제 습작노트를 그렇게 가루로 만들어버려도 패터슨처럼 peaceful 하게 강아지를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패터슨 다시 보고 싶네요.....

공쟝쟝 2021-12-07 12:03   좋아요 0 | URL
왓챠에서 사라졌어요 ㅠ_ㅠ 어딜가야 볼 수 잇나 나의 패터슨..... 저도 영화보고 곰곰히 생각해봤는 데요, 만약 저의 고양이가 제 글들을 다 없애 버렸다면 엉덩이 팡팡 두대 때리고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후 또 다시 쓸거 같아요. ㅋㅋㅋㅋ (없어져도 상관 없다는 소리) 그냥 쓰는 동안이 좋더라구요. 전.
 
빅 슬립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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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스타일(!) 이라는 것을 구축한 책이라고 놓고보면 탁월한 구석이 있었다. 시대적 아쉬움이 있어도 볼만한 건 볼만한 거고, 이를테면 영화 <베테랑>은 지금봐도 재밌으니까. 우리는 즈그들끼리 다해먹는 2천년대 중반~2010년대 중반 한국영화를 알탕영화라 부른다. 그리고 소설 <빅슬립>은 알탕물의 시조새급이 되시는 것 같다.

고독한 사립탐정 33세(나이가 귀엽다) 필립 말로. 거친 세상의 자기만의 원칙이 있는 사내. 는 담배도 많이 피우고 근무 중에 위스키도 많이 마셔서 알콜 쩐내 날 것 같은 데, 히스테리에 시달리는 섹쉬한 그녀들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으려하지. 하지만 원칙있는 남자답게 잦은 유혹들을 물리치며ㅋㅋㅋ 의뢰인 스턴우드 장군(한국 영화였다면 그는 박근형 아니면 이경영이다)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 


이 책의 해설에서 하루키가 극찬한 문장의 아름다움은 번역본이라 내가 느낄 수가 없고 소설이 주는 분위기 혹은 인물이 주는 호감이라도 있어야 했을텐데… 분위기는 뭐(그렇지만 언제고 여자한테 위로받을 수 있는 도시 남자의 고독한 분위기 따위 내가 알게 뭔가) 그렇다치고 주인공이 느끼해. 흑. 흑. 나도 모르게 계속 이병헌을 상상하며 읽었다. 물론 진짜 친절하게 읽으면 필립말로는 황시목(조승우)과 인데, 황검사야 설정상 감정이라도 없지… 이 남자는. 응, 모르겠어. 그 시절의 윤리가 작동했다고 생각해도 하나도 안멋있어. 사실 소설 중반에 지금으로치면 주인공과 경찰이 불법 촬영물 브로커의 범죄를 덮어주는 셈이었기 때문에 읽지말까 하다가 잠자코 읽음. 욕하려고. 하드 보일드. 하드 보일드. 이런게 하드 보일드란 말이지.

요즘에 챙겨보는 넷플릭스 드라마중 <구경이>가 있는 데, 이영애가 황정민 역할이면 김해숙이 이경영 역할이라고. 성역할만 바꿔치기 했는 데 초 맛집되었다고 극찬하는 걸 누가 공유해줘서 읽고 무릎 탁쳤다. 이 여자들이 다해먹는 탐정 드라마는 싸패범인이 불법촬영물 제작자랑 성매수범 다 죽여버린다. 세상이 좋아져서 내가 이런 드라마도 보는 데, 그리하여 포르노 사진 따위 원본 필름만 제거하면 되던 순진한(?)시대의 쿨내 진동 사립탐정 필립 말로에게 이입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진짜 이게 원본이구나 하고 읽었다. 말로 나오는 다른 거 한 권 정도는 더 볼 수 있는 아량이 남았다. 아, 나는 관대하기도 하지. 아무튼, 맛 보았네. 하드 보일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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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1-24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시목 얘기 하시니까 읽어보고 싶잖아요.

공쟝쟝 2021-11-24 10:37   좋아요 1 | URL
황시목의 원형 ㅋㅋㅋ 나빼썅 ㅋㅋ (나 빼고 다 썅놈, 나는 차거운 도시의 고독한 지능형 늑대, 아우~~)

건수하 2021-11-24 09: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그 원작이었어요? 어제 <마이네임> 이야기하며 요즘 이렇게 성별만 바꿔치기해서 많이 나온다는 얘기했는데 이것도 그렇군요!

쟝쟝님 손글씨가 좋아요 :)
베어앱에 맥에 아이패드 쓰시는 쟝쟝님이다..!

공쟝쟝 2021-11-24 10:38   좋아요 2 | URL
제가 마이네임은 안봐가지고요 ㅋㅋㅋ 그 구경이는 산타라고 아주 조신하고 이쁘고 어린 머스마를 이영애가 데리고 다닙디다. 눈 요깃감이 되지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1-11-24 1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찌찌뽕. 저도 방금 제 페이퍼에 구경이 얘기했는데 여기에도 뽝-

저는 필립 말로 좋아하지만 쟝님이 필립 말로 별로라고 쓴 리뷰도 좋네요. ㅋㅋ
그리고 필립 말로 시리즈 다 읽은 사람으로서 조승우도 이병헌도 말로라는데는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상상한 말로는 그 둘의 이미지와 완전 안어울리고요, 제가 생각하기로 필립 말로로 적당한 사람은
두구두구둥
바로바로
.
.
.
.
재이슨 스태덤!!


그럼 이만. 빨빨룽!

건수하 2021-11-24 10:12   좋아요 2 | URL
현빈이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재이슨 스태덤을 몰라 찾아보러갑니다 ㅎㅎ

다락방 2021-11-24 10:19   좋아요 2 | URL
네이버에 재이슨 스태덤 검색하면 아마 제 글만 수두룩 할겁니다...........(뭔가 좋아하면 오래 진심인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로가 성격이 까칠하고 말도 별로 없는데 영화 <트랜스포터>에서 재이슨 스태덤이 맡았던 역과 겹쳐져요. 그래서 저는 말로는 재이슨!

공쟝쟝 2021-11-24 10:25   좋아요 2 | URL
내게 제이슨 스타뎀은 잭리처 ㅋㅋㅋㅋㅋ 필립말로 싸움 못할거 같이 생겼는 데욬ㅋㅋㅋㅋ

건수하 2021-11-24 10:32   좋아요 2 | URL
아, 트랜스포터!!

그렇게 생각하면 필립 말로가 갑자기 넘 멋있어지는거 같은데요 ㅎㅎ

공쟝쟝 2021-11-24 10:41   좋아요 2 | URL
트랜스포터… 하지만 저에게 제이슨 스타뎀은 스파이의 멍충이 대머리인 것이다. 근육질 멍충이 대머리 ㅋㅋㅋㅋ 육체파 ㅋㅋㅋㅋ
필립말로는 라고슬? 하죠 라고슬.. 아니야 라이언 고슬링보다 더 쫌더 찐하게 생겼는데 날렵한 근육남 없나 ㅋㅋㅋ

다락방 2021-11-24 10:59   좋아요 2 | URL
스파이의 멍충이 대머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내가 이 캐릭터를 너무 좋아해서 반박할 수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사랑해 재이슨 스태덤 진짜 짱짱 사랑해. 누나가 싸랑한다...(누나 아님)

공쟝쟝 2021-11-24 11: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영원히 소환되는 제이슨 스타뎀 ㅋㅋㅋㅋ

다락방 2021-11-24 11:19   좋아요 2 | URL
나 스파이 여러번 봤는데 또 봐야겠어요. 아 너무 좋아 진짜.

수하 님, 멜리사 맥카시 주연 <스파이> 보셨어요? 그 영화 엄청 재미나고요, 거기에서 우리 재이슨 스태덤의 똥멍충미를 보실 수 있습니다!! 멍충미가 뿜어져나와요. 팡팡터짐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11-24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또또또 드라마 보면서도 그림 그렸다...!

그나저나 정말 필립 말로 33세! 무엇? 완전 귀요미 나이네. ㅋㅋㅋ 서른셋에 그렇게 폼잡았단 말입니까? ㅋㅋ

공쟝쟝 2021-11-24 12:14   좋아요 1 | URL
아니 진짜 수갑 채워진 채로 여자한테 키스해줘 하는 데 이 느끼 무엇 ㅋㅋㅋㅋ 33세의 폼인데 30년대라그렁가 ㅋㅋㅋ 아주 귀여워서 ㅋㅋㅋ 주디 치워라마 ㅋㅋ

독서괭 2021-11-24 1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른셋 진짜 젊네요 젊어 ㅎㅎ 뭔가 고독미를 풍기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나요?
이 페이퍼에서 얻은 결론은 구경이 보고 싶다.. 재밌겠다..

공쟝쟝 2021-11-24 12:15   좋아요 3 | URL
봐주자 구경이!! 여자 나오니까 으리로 ㅋㅋ

scott 2021-11-24 1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맥과 아이패드로 무장한 공장쟝님이 언급 하셨으니
구경이 봐야 하놔 ㅋㅋㅋㅋ

공쟝쟝 2021-11-24 14:58   좋아요 2 | URL
내 무장 좀 비싸…. ㅋㅋㅋ 전 구경이 밥먹으면서 봐요 ㅋㅋ

mini74 2021-11-24 12: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구경이 너무나 열심히 보는 ㅎㅎ 킹덤 중전의 발연기가 넘 발전해서 장하다 하며보고있죠. 근데 구경이보면 맥주 땡기고, 술꾼도시여자들 보면 소주 땡기고. 이러면 안되는데 싶어요 ㅎㅎ

공쟝쟝 2021-11-24 15:00   좋아요 3 | URL
김혜준 연기 킹덤에서 못했다고 그러는 소문을 들었는 데, 전 정말 못느껴가지고 ㅋㅋㅋ 왜 사람들이 발연기라고 하는지 아직도 이해 못하는 1인. ㅋㅋㅋ 여기서는 연기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전 배우보다는 작품안의 캐릭터를 더 집중해서 보는 편이라… 이경이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너, 좋은 빌런이다…
 
태평양을 막는 제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7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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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수업을 듣다보면 맨 먼저 배우게 되는 용어가 있는데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이다. 익숙한 개념인 기회비용은 넘어가고, 매몰비용은 간단히 말해 ‘이미 발생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다. 합리적 투자자는 발생한 매몰비용을 향후의 투자에 포함하지 않은채 의사결정을 하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은 그닥 합리적이지 않다. 매몰비용에는 지금까지 투자한 것에 대해 아까워하는 이른바 ‘본전심리’가 뒤따른다. 그리하여 비합리적인 우리들은 본전이라도 되찾아보고자 뻔한 결말이 예상되는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매몰비용의 오류’ 되시겠다.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 합격 못할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고시공부, 제 때 손절하지 못해 물을 탔음에도 계속해서 물을 타고있는 주식(혹은 코인🥲)……. 그게 무엇이 되었든(투자, 직장, 관계…) 여기저기 ‘존버’를 외치는 너도 나도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어쩌면 희망을 가진 모든 인간은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오류’가 아닌 그냥 인간 본성…?

이렇게 적었지만 나는 ‘손절’을 잘 못하는 축에 속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오랫동안 그랬다. 투하한 에너지와 마음이 아까워서도 있겠지만 무엇이 ‘손해’인지 잘 알지 못해 더 그랬다. 이런 나에게 최근 아주 손절을 잘하는 분야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책’이다.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패스. 세상엔 좋은 책이 너무도 많고, 좋은 책만 읽기에도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다. 별로인 책을 읽을 수록 대기 중인 다른 책을 읽을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지금 읽기엔 아니다 싶은 책은 읽은 게 아까워도 바로바로 덮어버리게 되었다. 일찍이 책처럼 인간을 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라고 생각하지만 별로 후회되지 않는 걸 보니 난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나보다.

소설 <태평양을 막는 제방>에는 ‘손절’이라는 개념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압도적인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가 젊음을 갈아넣어 사들인 불하지는 수시로 침범하는 바닷물 때문에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엄마는 바다를 막는 제방이라는 근사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사람들을 동원해 실행에 옮긴다. 당연히 제방은 무너진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틈만나면 빚을내 다시 제방을 쌓을 궁리를 한다. 그 사이 자라난 아들 조제프와 딸 쉬잔은 그런 엄마를 지겨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삶을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 항상 좋은 선택을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 옳은 삶이라고 여겼다. 어떤 선택을 후회하기보다는 그 선택이 후회없는 선택이 되도록 더 열렬히 에너지를 쓰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확고히 믿었다. 후회없는 선택을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 이런 태도야 말로 ‘손절’ 따위는 모르는 만용이라는 걸, 될 때 까지 판돈을 쏟아 붓는 일종의 도박심리라는 걸 그땐 잘 몰랐다. 세상은 뭔가를 정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정진하고 매진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No pain no gain,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 따위의 말들은 참고 견디기를 부추겼다. 누가 살짝 이마에 딱밤이라도 때리면서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고, 선택은 책임지는 것과 관계 없는 일이라고, 대부분의 선택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고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쨌든 그걸 몰라서 참 좋은 젊음을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했다.

선택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허우적 대다 겨우겨우 빠져나와 보니 알것도 같다. 잘못된 선택보다 더 잘못된 것은 잘못된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라는 걸. 지금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어떤 선택의 의미가 내 안에서 자꾸 커지고 비대해진다면, 그것은 매우 경계해야할 ‘본전 심리’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내 선택이 잘못된 것 이라고 인정하는 습관을 들일필요가 있다. 그보다 앞서 삶을 선택으로 바라보는 습관적인 관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삶은 선택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있는 것들 중에 고르는 것도 아닐뿐 더러, 고른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선택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좋은/옳은/괜찮은/건강한 선택에 집착하게 되고, 이를 증명하려 할수록 삶은 더 구렁텅이에 빠지게 마련이다.

“(355)어느 길로 다가가든 결국 어머니의 가장 고통스럽고 생생한 곳을 건드렸다. 이제 더는 어머니에게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실패들은 엉킨 그물처럼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너무도 긴밀하게 이어져 어느 하나를 건들면 무조건 다른 것이 다 따라왔고, 매번 어머니를 절망에 빠뜨렸다.” 


사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들은 안다. 그가 지금 자신을 갈아 넣으며 매몰비용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 대부분이 사랑하는 가까운 이들의 자멸을 말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실패가 치명적일까봐 걱정되어서라기보다는 그 기획의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동조자 혹은 원인제공자. 어쩌지 못해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인생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변해버린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의 몰락을 차라리 기다리게 되는 경지에 이르고 만다. 모두 함께 결국 무너질 제방을 쌓는 것. 그것은 가족에 대한 은유인가? 쉬잔과 조제프 역시 아집으로 점철된 엄마의 기획을 말리지 못한다. 그것이 엄마를 망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고마는 남매의 이야기는 완고한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를 바라보는 모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리석은 선택과 매몰비용의 오류에 관한 이야기로 소설을 읽어볼까 싶었다. 글을 쓰다 보니 이 책은 경제ㆍ재테크 분야에 꽂혀있는 ‘똑똑한 투자 안내서’가 아닌 ‘문학’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태평양을 막는 제방이라는 엄마의 투자는 성공하지 못했을지언정 그녀의 인생이 실패한 것 같지는 않다.

“(145) 더는 어머니를 원망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삶을 무한히 사랑했고, 삶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치유 불가능한 희망이 지금의 어머니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바로 그 희망에 절망했다. 그 희망이 어머니를 마멸시키고 부서뜨리고 발가벗겼다. 그나마 희망을 내려놓고 쉬게 해 주던 잠도, 어쩌면 죽음까지도 그 희망을 넘어서지 못했다.”


‘치유 불가능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실패자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단순하면 안되지.
무엇보다도 삶은 투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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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실 옆에 놓인 실선과 나란히 가는 점선 같은 삶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04-29 19:42 
    보부아르와 엄마의 관계가 궁금해서 읽었는데, 기억에 진하게 남은 것은 뒤라스 편이다. 소설 <태평양을 막는 제방>을 읽으면서 느꼈던 ‘압도적인 엄마’가 실제 뒤라스 삶에서의 어떤 모습였는지 형체를 갖게 되니 마르그리트의 글쓰기가 아프게 느껴졌다. “(14) 글쓰기는 유일하게 어머니보다 힘이 센 것이었어요.”​편애하는 엄마, 아빠를 열렬히 사랑하는 엄마, 사랑받고 싶어하는 엄마. 아들밖에 모르는 엄마. (이 책의 소피 카르캥에 따르면) 그런 엄
 
 
잠자냥 2021-10-27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손절’이라는 개념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압도적인 엄마 ㅋㅋㅋㅋ 공감합니다.
그 어머니가 뒤라스 엄마를 모델로 한 것이니, 그 엄마는 결코 삶에서 실패한 것은 아니겠죠.
게다가 아들도 그 징글징글한 엄마를 글케 사랑하고... 그만하면 성공한 인생? ㅎㅎ

그나저나 ˝삶은 투자가 아니다.˝ 띵언이다. 띵언!

공쟝쟝 2021-10-27 09:49   좋아요 3 | URL
그러나 잘한 투자는 삶에 분명 도움이 된다 ㅋㅋㅋ

공쟝쟝 2021-10-27 09:51   좋아요 3 | URL
잠자냥님 덕분에 읽게된 좋은 소설입니다. 역시 믿고있는 잠자냥픽! 너무도 개성적인 ‘어머니‘ 앞에서 저 역시 뭔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엄마가 반지 팔러 돌아다닐때 엄마 그만해!!!!!! 제발!!!!!!!!!!!!!!!!!!! 하면서 잠깐 책 덮었음 ㅋㅋㅋ 삽질하는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문학이 이런 식으로 알려주는 군요. 소설 더 많이 읽을께요!! 뒤라스가 아닌 뒤라스 엄마 내 마음 속에 저.장!

잠자냥 2021-10-27 09:54   좋아요 3 | URL
난 그리고 이 작품에서 아들이 만난 그 여자 너무 멋졌음...
반지 사주고 다시 반지 준 그 여자.. 그 재력...캬.....

쟝쟝은 소설 좀만 더 읽으면 완벽해.... 완벽....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0-27 10:00   좋아요 3 | URL
저두... 아들이랑 그 여자랑 너무 관능적인 거예요.. 뭐랄까 얘들 왜이랴? 이럼시롱 봤음 ㅋㅋ 뒤라스 하면 따라붙는 <연인>도 이런 관능일라나? (그러나 나이많은 남자와 어린 소녀의 조합은 뭔가 싫다...)
아.. 말일이 다가오니까 소설이 더 읽고 싶구 그르네요 ㅋㅋㅋ (커피 타놓고 페투 앞에 앉음)

다락방 2021-10-27 11: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캬- 리뷰가 진짜 너무 좋다 너무 좋아. 딱이다. 이렇게 잘 읽히다니. 크- 취한다.

저는 마지막 엄마의 삶이 실패한 게 아닐거라는 구절 읽고 인용문 읽으니 뜬금없이 줌파 라히리 단편 소설 <지옥 천국> 생각나요. 그 단편은 진짜 저의 패이버릿 인데요, 거기에서 ‘엄마‘가 프라납 삼촌(진짜 삼촌은 아니고 그냥 같은 나라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삼촌은 당연히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랑 결혼하고 그러거든요. 소설 마지막에 엄마가 죽으려고 해요. 마당에서 천으로 자신을 감싸고 거기에 불을 붙이려는데, 이웃집 여자가 날씨였나, 아무튼 사소하게 말을 걸어주는데, 그 말 걸어주고 대답하면서 자살을 그만둡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소설이에요.

완전히 다른 이야기 같은데 왜 저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쟝쟝님, 소설 계속 읽으세요. 더, 더 읽으세요, 더!!

공쟝쟝 2021-10-27 11:34   좋아요 4 | URL
커피타 놓고 <페미니즘의 투쟁>앞에 앉았다가 잠깐 알라딘 한다는 것이 점심 시간이 되어가는 시점, 서재지옥에 헤엄치고 있는 나는 <제2의 성> 댓글(채찍) 요정이 되고 말았다.

저는 다락방님이 읽어주는 소설들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너무 좋을까봐 아껴두기 작전 아십니까?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랬어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나중에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아직까지 올해의 소설은 <내 이름은 루시바턴>인데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동생한테 선물해줬거든요? 동생이 이런 책 더 없녜요. 그렇게 우리 자매는 인생책을 공유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너무 겁이나요. 다락방님이 입이 마르도록 사랑하시는 줌파 라히리가 스트라우트보다 더 좋아서 <인생책>의 자리에서 루시바턴이 밀려날까봐요 ㅋㅋㅋ 올해는 ㅋㅋㅋㅋ 루시바턴으로 정했거든요? 다음해로 미루겠습니다... (핑계한번 거창해 ㅋㅋㅋㅋ) 아시죠? 그러고 보니 작년 올해의 소설 <티끌같은 나>였던거. 오늘의 북플 알림이, 작년의 오늘 이 책을 다 읽었다 알려주네요. 아아, 그대 사랑해요!

새파랑 2021-10-27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몰비용에 대해서 잘 배웠습니다~! 본전심리는 인간의 본성인거 같아요 ㅋ 머리로는 손절이 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그게 잘 안되는거 같아요~ 이 책이 그런 교훈을 주는군요. 실패한 것 같지 않은 인생이라니 😄

공쟝쟝 2021-10-27 11:39   좋아요 3 | URL
쭉 살펴보니 다른 교훈을 얻으신 분들도 많았지만 ㅋㅋㅋㅋ 저는 읽는 내내.. 엄마... 제발 ...손절..손절...손절좀해... ㅜㅜㅜㅜㅜ
이러면서 읽어가지고 남는 것은 지난여름 물타기 하다 망한 제 코인... (손절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이제 코인 따위... 그리고 내가 손절하자마자 아주 오늘날까지도 오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떠올려지며...ㅋㅋㅋ 왜 우리는 제때 손절을 못하는 에 대한 깊은 탐구를... 얼토당토 않게...
그런데요, 인생이라는 게 참 오묘한 것이. 존버하다가 대박나는 경우도 가끔은 있어가지고요. 살아봐야 아는 것 같아요.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1-10-27 14: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호~~~투자에 관한 소설인가요?
저번에 잠자냥님 서재에서 본 듯도 해요~^^
어쨌든 바빠서 딱 여기까지 댓글 남기공(넘 바빠요~바빠!!!!....바쁜척하기 넘 바쁨)
앗!! 코인!!! 이웃집 언니 작년 여름 그거 하던데....그 언니 시작할 때 엄청나게 설명 해주길래 멍~하니 듣다가 갑자기 그 언니가 한숨 푹푹 쉬길래 어뜨케??해주다가....생각해 보니 그동안 잊고 살았네요??
내일 만나면 물어봐야 겠어요.
손절했었는지 어떤지....ㅋㅋㅋ

공쟝쟝 2021-10-27 19:55   좋아요 3 | URL
아니요.. 투자에 관한 소설 아니예요....ㅋㅋㅋ 읽고 나니 소설 속 엄마 코인했으면 큰일 나셨을 거 같아서...ㅋㅋㅋ
코인은.... 제 지난 페이퍼에 많습니다... 올 여름 뜨겁게 과몰입하고 -30%에서 손절했습니다... ㅋㅋㅋ

갱지 2021-10-27 14: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몰비용이 무서워 재고 또 재느니, 차러리 꼴리는대로 쏟아버리는게 후회가 없다- 는 걸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은 투자가 아니라는 귀결의 마무리 단락이 참 좋습ㄴ다.

공쟝쟝 2021-10-27 19:57   좋아요 2 | URL
인생을 살아봐야 안다는 것이 참 슬픕니다. 백살 넘게 살아야 한다고 하니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잘 살아가봐야쥬.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ㅡ^

mini74 2021-10-27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몰비용 심리학책에서 봤었던 기억이 ㅎㅎ 울엄마는 저보면 본전생각나실거 같은 ㅎㅎ 매몰비용덕에 제가 쫓겨나지 않고 무사히 클 수 있지 않았을까요. ㅎㅎ 물론 저 도 중간중간 쓸모있을 듯한 뉘앙스의 사기도 치며 ㅎㅎ 그 어머니 인생은 실패하지 않은 것 같다니 솔깃 ! 이 분 책은 연인만 읽은 *^^*리뷰가 넘 재미있습니다 ~

공쟝쟝 2021-10-27 19:58   좋아요 1 | URL
자식한테 본전 기대하면 안되쥬 ㅋㅋㅋ 정작 <인연>은 안읽었는 데, 언젠간 읽겠죠.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붕붕툐툐 2021-10-27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몰비용은 오류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어요~ 책만이라도 과감하게 손절 하시는 거 저랑 통합니다~ 헤헷~

공쟝쟝 2021-10-27 20:00   좋아요 1 | URL
그 오류 안저질러본 인간 없을 거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과감하고 재빠른 손절로 오늘치 독서량을 확보했다!! 헤헷!
 
어바웃 어 보이 - 개정판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술을 마신다. 취한다. 지금의 나는 대책없이 낙천적이다. 술 먹으면 언제나 걱정이 사라진다. 술을 먹는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것은 음주중의 독후감이다. 음독후감(?) 이상하다. 아무튼. 그러고 싶은 날이고 그래도 상관없는 날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불안과 초조는 영혼을 잠식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무언가를 시작할 때 딸려오는 당연한 불안이다. 문제는, 지금의 나는 이 당연한 불안함을 오롯이 혼자 감내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는 거다. 그건 뭐냐면, 지금까지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기댈 곳이 있었다. 뒤바꿔 말하면 반발 걸쳐있는 느낌의 선택이었다. 혹은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의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최악은 아닌 차악의 선택, 적어도 스스로에게 변명할 거리는 되는 선택들로 인한 시작 말이다. 

이번의 시작은 조금 다르다. 여느 때처럼의 잘 모르는 것들에게 나를 던지는 미지의 시작임은 맞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등떠밀려서의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고 그리고 선택의 결과가 결국 혼자서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다르며,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내가 혼자이고 이 불안함을 시시콜콜하게 나누던 익숙한 관계들이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내겐 아무도 없으니까, 훠이 훠어이- 불안함- 외로움이여, 떠나가버렷!!! 팔로 휘적휘적하다가 좀 대책이 없는 날엔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취해있으면 불안이 조금은 사라졌거든. 그런데 또 술을 신나게 퍼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불안으로부터 도망칠래? 응!!!!! 그러고 싶지만 그 댓가가 또 다른 형태의 중독인 건 싫어. 그럼 도망치지 말자. 그냥 이 불안을, 불안을 나눌 수 없음을, 그로인해 딸려오는 외로움을 쓰자. 불안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불안을 상기시키는 술을 마시자. 하고 아주아주 맛있는 칵테일(보드카:토닉워터:주스)을 만들어서 마시면서 앉아서 이걸 쓴다. 술을 마시면서 불안을 집중검토하며 글을 쓰면 불안을 술로 잊어버리는 건 아니게 되잖아? 내일 일어나서 지우지 않길 바라며. 혈중 알콜농도는 체온은 1도 정도 상승한 느낌이며 눈이 뻑뻑하나 글씨가 읽히고 글을 쓸 수 있는 수준. 

“(358) 삶은, 결국 공기 같았다. 윌은 이제 더 이상 그 사실에 일말의 회의도 없었다. 들어오지 못하게 막거나, 거리를 둘 수도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걸 숨 쉬며 사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렇게 건더기다 많은 걸 폐로 흡입하면서도 질식해 죽지 않는지 미스터리였지만, 이 공기는 서걱서걱 씹히다시피 했다.”

사실 나는 괜찮다. 그 어느 때 보다 괜찮다. 20대 내내 심각하게 매달렸던 관계중독에서도 벗어났고, 나를 들들 볶아대며 끊임없이 고나리질 하던 전 직장에서도 벗어났으며, 언제나 무언가를 나누기엔 대화가 너무 부족했던 가족으로부터도 벗어났고 (사실 아직 남은 여분의 기대를 완전 철회하기 위해 노력중이며),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던 연애에서도 가까스로 탈출했다. 

지금 내 집 구석구석에는 자유, 자유에 대한 열망들이 이곳 저곳에 옹골차게 붙어있는 데,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게 자유였다는 건 동시에 내가 얼마나 자유롭지 않고 속박당하기를 (자처했을 수도) 익숙해 했던 인간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괜찮지 않던 때도 나는 스스로를 괜찮다고 다독였고, 정말로 괜찮아졌을 때는 정말 더 괜찮다고 떠들어왔으며, 상대적으로 요즘의 나는 가장 괜찮지만, 앞으로 더 괜찮아진다면 지금의 나를 생각했을 때, 그 때 안괜찮았구나 싶겠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는 괜찮음이란 이것은 내가 느끼는 나만의 고유한 어떤 상태이고 상황이므로, 나는 괜찮다. 

저절로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괜찮아지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그리고 그건 잘했어!라고 나한테 말해줄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상태에서 나의 괜찮음은 레알 팩트 진심 찐. 그런데 나를 상대화해 보면 나의 고유함을 배제하면, (사실 나는 나 자신의 상처에 대해 누구보다 무덤덤해지길 원하는 편이다) 나는 엄살쟁이다. 엄살쟁이일 것 같다. 엄살쟁이인가? 아 몰라. 그러니까. 내 인생의 스크래치 정도로는 말짱해야 정상인 것처럼 느낀다. 골절이 아니라 스크래치고, 설령 골절이라고 해도 뼈 다 붙은 만큼의 시간이 흐른 거다. 그래서 세상이 뒤틀리고 기이해보일 때가 있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렇게 건더기가 많은 걸 흡입하면서도 질식해 죽지 않는지 미스터리다” 

윌은 직업이 없고 부양가족 없고 부양애인도 없고 부양묘도 없는데 부양 아파트는 있다. 유명 캐롤송을 작곡한 아버지 덕에 부유하지 않지만은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인세 수입이 있다. 기본소득이랄까. 내가 그토록 원하던 삶이랄까. 어쨌든 세상에나 그런 경제적 상황에서, 뭐 아주 대단한 인간이 될 법도 한 시간과 공간의 풍요 속에서 살면서 대단해지지 않고 무사하게 살아간다. 인생이 심심해서 로맨스를 꿈꾸긴 하나 그것이 잘 안되는 인간이다. 그의 인생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은 아주 쿨하고, 하지만 너무 쿨내나서 귀찮을 거리를 만들지 않고, 그에 딸려오는 외로움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섹스도 좀 필요하고 그래서 귀찮지 않을 로맨스와 섹스를 제공해줄 여성을 찾는 그런 상태의 도시남이다. 또 다른 주인공 마커스는… 마커스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데 슬슬 취기가 글을 쓰기 피곤해질 올라와서 좀 지친다. 아무튼. 내가 소설을 통틀어서 가장 감동받은 마지막 부분을 적고 잠을 자야겠다. 

음.. 쓸까했는데 너무 스포같아서 안되겠다. 아무리 취했어도 소설의 핵심을 알려주는 일을 할 수는 없다. 비슷한 페이지로 대체한다. 

“(378) 아빠, 상관 없어요. 정말이에요. 상황이 나빠지면, 아빠를 믿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중략) 정말 저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철 덜든 백수 도시남과 너무 일찍 철든 것도 같아보이는 왕따 소년의 우정 이야기다. 그리고 사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그렇게 대단한 일(커트코 베인의 자살?)은 소소하게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일어나더라도 금새 소소해지거 마는 것이다. 해프닝, 해프닝.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을 수 밖에 없는 문체(이걸 영국식 유머라고 하나), 혼자서는 결국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하찮음과 그 하찮은 사람들이 인연으로 엮이는 과정, 정말로 소중했던 것들이 소중하지만 유일하지는 않게 된다는, 그러니까, 언제나 소중한 것들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유일해서 소중한 것은 아니며 변할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 바뀌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의지해서 살아갈 것이라는 다소 서늘한 소년의 통찰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사람과 존재들이 소중하다. 그러나 이것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고 소중해서 변하지 않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나 조차도 변할 것이니까. 다만 나는 배울 수 있는 사람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들을 배우고 그들의 흔적을 내게 남기겠지만 그들을 내 마음속에 박제시키고 나와 그들의 변화를 막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거야. 나를 망쳐온 것이 그 유일, 영원에 대한 고지식함임이란 걸 이제는 좀 알아졌거든. 계절의 변화처럼 관계의 변화 역시 그냥. 받아들일 거야. 받아들인다고 해서 지금의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변하냐, 그건 또 아니야. 소중, 유일, 영원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기. 

뭘썼는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써보는 것도 괜찮은 걸? ㅎㅎㅎ 음주독후감 끗.

덧, 좋았던 문장들 베껴쓰기는 나중에…. 혈중알콜농도가 잠을 부르옵니다.  

(나중에 다시 베껴썼사옵니다.)

"나와 좀….. 그렇게 다르지 않은 여자요." 마커스가 외교적으로 말했다.
"글쎄다. 행운을 빈다." 카트리나가 말했다. "우리 중 절반은 평생을 우리와 좀 그렇게 다르지 않은 사람을 찾아 헤매고도 아직도 못찾았단다."
"그렇게 어려워요?" 마커스가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지." 마커스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로 진심 어린 말투로 피오나가 말했다.
"안 그러면 우리가 왜 다 독신이겠니?" 카트리나가 말했다. - P371

아주 솔직히 말해서(월에게 윤리적 신념 비슷한 게 하나라도 있다면, 설문지에서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건 대단히 나쁜 일이라는 것이었다) 스포츠카를 갖고 있는 남자가 여자들에게 멋지게 보인다고 아직도 믿고 있었다(-2점). 그렇긴 해도 점수는 …… 무려 66점이었다! *설문지에 따르면 그의 쿨한 지수는 영하에 달했다! 그는 드라이아이스였다! 그는 눈사람 프로스티였다! 저체온증으로 죽어버릴 지경이었다!*
이 설문지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윌은 그런 생각까지 할 여유가 없었다. 남성 잡지에서 쿨하다고 판명해준 건 그의 생애에서 뭔가 이루었다고 할 만한 일에 가장 근접한 사건이었고, 이런순간은 소중하게 만끽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하! 영하보다 더 쿨해지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는 잡지를 덮어, 목욕탕에 보관하고 있는비슷한 유의 잡지더미 위에 갖다 올려놓았다.
—😲 아놔 문체 보소, 김혼비 작가님이 이름을 혼비에서 따올 만큼 사랑한다던 영국식 유머의 시작되시겠다. - P14

윌은 한참이 지나서야, 말 그대로 독신으로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은 ‘아이’가 딸려 있기 때문에 서로 어울릴 길이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무심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친척과 친지 들에게 물어보고 다녔지만, 지금까지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윌이 아는 사람들은 아이가 딸린 독신녀를 한 사람도 모르거나, 행여 알더라도 전설적으로 한심스러운 로맨스 전력을 지닌 윌한테 소개해주기를 꺼렸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 예기치 못한 먹이 기근에 대한 이상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 네드라는 두 살짜리 아들을 만들어내서, 아이를 키우는 독신남녀 단체에 가입한 것이다.
—😲 예쁜 싱글 맘과 섹스하려고 싱글 맘카페 가입한 윌.. 그의 뇌는 청순했다!! - P50

"누가 있나 볼까요… 청색 셔츠 입은 여자 보이세요? 아들이 다른 사람 애라고 남편이 의심을 해서 헤어졌대요. 음…… 헬렌…지겨운 얘기예요……… 남편이 직장에서 바람이 났고요……… 모이라는…… 남편이 집을 나갔고…….… 수잔나 커티스는 …… 아마 남편이두 집 살림을 했다죠.……"
똑같은 테마로 끝도 없는 변형이 이어졌다. 갓 태어난 아기 얼굴을한번 흘낏 쳐다보더니 떠난 남편, 새로 온 직장 동료 얼굴을 한번 흘끗 보고는 떠난 남편, 그냥 무작정 떠난 남편, 갑자기 윌은 모이라가 로레나 보빗을 신성시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수지가 배반과 기만의 죄목들을 줄줄 다 읊고 났을 때쯤이 되자, 그는 주방 칼로 자기 거시기를 팍 잘라버리고 싶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 ㅋㅋㅋㅋㅋ - P55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다른 얘기를 하자."
하지만 한참 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파이프위에 앉아서, 너무 뜨거워지면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 이 장면 너무 귀엽고 좋아 - P305

그 두 글자는 ‘의미’였다. 말하자면, ‘그래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요?’ 라든가 ‘제가 보기엔 아무 의미도 없어요’ 라든가 ‘전혀 무의미해요’라고 할 때의 의미 말이다(마지막 문장에서는 ‘무의미’ 이지만, 역시 중요한 건 ‘의미’ 부분이고 하니)…… 인생에 대해 논하면서, 특히 인생을 끝장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논하면서 빌어먹을 ‘의미’ 얘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윌은 도무지 그 ‘의미’를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뭐 그럭저럭 괜찮을 때도 있다. 가끔 새벽 두 시에 매직 머시룸 -환각 효과가 있는 버섯의 일종-옮긴이-을 먹고 나서 머리에 폭탄 맞고 아무 생각이 없을 때, 어떤 미친놈이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스피커에 귀를 박고 있다가 ‘의미’를 논하려 하면, 그냥 ‘그런게 어딨냐. 입이나 처 다물어라’라고 해주면 된다. 하지만 불행에 찌들고 방황하다 못해 수면제 한 병을 몽땅 삼키고 영영 잠들어버리려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 P312

피오나 같은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해버리는 건 살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윌이 피오나와 껄끄러운 관계라 해도, 솔직히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생각은 전혀 없었다.
피오나 같은 사람들을 보면 일은 정말 화가 났다. 다른 사람한테도 재를 뿌리기 때문이다. 고고하게 현실을 초월해서 사는 건 쉬운 일이아니다. 기술도 있고 배짱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나 자신까지 그들과 함께 끌려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고개를 물 위로 내놓고 숨을 쉬고 있기만 하면 된다고 윌은 생각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거다. ... 그에게는 붙잡고 물 위에둥둥 뜰 수 있는 밝은 사람이 필요했다. 피오나같이 발목을 잡아끄는 무거운 짐은 필요치 않았다. 정말 미안하지만,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 P313

"아빠, 상관없어요. 정말이에요. 상황이 나빠지면, 아빠를 믿을 수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고맙다."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저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는 정말로 괜찮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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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21-09-10 01: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난 이 영화만 잼있게 봤어요.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도 안 나네요. 보드카 토닉에는 크랜베리 주스가 좋습니다… ^^

공쟝쟝 2021-09-10 09:23   좋아요 1 | URL
크랜베리주스라… 아이참, 이 곳생활은 정말 적절한 정보들로 가득합니다.

얄라알라 2021-09-10 04: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취했어도 소설의 핵심을 알려주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진정, 고수의 자세이십니다! 알라딘 서재의 우아한 에티켓!

공쟝쟝 2021-09-10 09:24   좋아요 1 | URL
후후 아침에 일어나서 읽어보니 취한저는 안취한 저보다 낫네요 ㅋㅋㅋ 스포일러까지 생각하다니 ㅋㅋㅋ

다락방 2021-09-10 05: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으- 저도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에요! 여분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저 역시 늘 말하고 다니는데 닉 혼비가 이 소설로 그걸 해줘요. 정말 너무 좋아요, 이 소설! 마커스가 둘만으로는 안된다고 부족하다고 하면서 관계를 더 만들려는 게 진짜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듯했지만 너무 좋았어요!!

공쟝쟝 2021-09-10 09:24   좋아요 0 | URL
.. 이렇게 또 한 사람의 대머리를 나에게 심어주고 간 다락방님…

새파랑 2021-09-10 07: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음주를 많이 안하신거 같은데요? 너무 잘 쓰셔서요 ^^ 공쟝쟝님의 글에서 고민이 많이 느껴지네요. 괜찮아지기 위해 하신 노력이 꼭 만족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 다락방님 저서에서 본 책이네요 😆

다락방 2021-09-10 09:1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제가 쟝쟝님께 읽기를 권해드린 책입니다. 이만 총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9-10 09:27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이 알려주셔서 보드카 마셨어요! (이제 여름이 가기도 했고 ㅋㅋㅋ) 그리고 조금만마셔도 취하니까 아주 괜찮아서 종종 애용하려합니다! ㅋㅋㅋ
다락방… 그걸 제가 안썼네여. 똑똑한 ai 다락방추천작 ㅋㅋㅋ 아오 미쳐 ㅋㅋ 또 그걸 여기다가 티내 ㅋㅋ

새파랑 2021-09-10 09:37   좋아요 1 | URL
역시 술잘알 공쟝쟝님이시네요. 술은 보드카~! 저요새 이유경작가님의 명저를 읽고 읽어야할 책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ㅋ

붕붕툐툐 2021-09-10 07:1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생애 첫 음주독후감을 읽는 독자라 행복하네요~ 완전 미래의 제가 쓸 것같은 내용이라 깜짝 놀랐고 어머어머, 하며 읽었어요! 완전 공감 백배! 지금 조금 좋아진 이 상태를 괜찮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 삶은 결국 현재뿐이니까 지금 괜찮으면 정말 괜찮은 것! 쟝쟝님께 애정과 존경을~😘

공쟝쟝 2021-09-10 09:28   좋아요 2 | URL
괜찮지만 괜찮지않은 부분도 있잖아요? 그걸 인정해주자 싶었어요. 더더 괜찮아지기를 바랄뿐! 툐툐님 금요일이예요! 오늘두 힘😍

잠자냥 2021-09-10 09: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이, 이거 술 마시고 쓴 거 아닌 거 같은데, 쟝쟝 뻥쟁이~~~

그나저나 영화 <어바웃어보이>에서 제가 가장 부러운 점은 휴 그랜드 아버지 직업(에서 나오는 수입)... ㅋㅋㅋㅋ

공쟝쟝 2021-09-10 09:35   좋아요 3 | URL
보드카 120ml 🤫(술 조절하려고 재면서 마심) ….
그쵸 ㅋㅋㅋㅋ 가장인상적인건 윌의 삶.. 영화는 아직 안보고 왓챠평 봤는데 윌 = 미래의 장범준 자식 이라는 댓글 보고 빵터졌어요 ㅋㅋ

잠자냥 2021-09-10 09: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우울해지면 닉 혼비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추천합니다.

공쟝쟝 2021-09-10 09:39   좋아요 1 | URL
대머리 닉혼비에게 빠지고 싶지 않아 🥲 그러나 이미 빠져든 거 같다 😭😭😭 다른 책도 이 책만큼 좋겠죠?

잠자냥 2021-09-10 09:45   좋아요 2 | URL
그대가 <하이 피델리티> 를 펼치면 병맥주(330ml) 나발 불면서 온갖 락음악 들으며 책 읽게 되리라.......

다락방 2021-09-10 10:10   좋아요 2 | URL
저 하이 피델리티 영화로도 봤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닉 혼비 하이 피델리티랑 또 뭐다라 무슨 서평집이랑 봤는데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는 안봤네요. 그거 찾아봐야겠어요. 호호.

공쟝쟝 2021-09-10 13:54   좋아요 1 | URL
아놔 ㅋㅋ 오늘 갬성은 하이피델리티 인데? ㅋㅋㅋㅋㅋ 병 나발.. 병나발이라…

오거서 2021-09-10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취중인지 의심… (제가 의심이 많은 편 ^^;) 오타 없고 막힘 없는 문장을 보면서 술이 쎈지 또 의심해요. 저도 한 번 시도한 적이 있는데 엉망진창이더라구요. ㅎㅎ
낙천적인 마음을 다칠 만한 좋지 않은 일로 술을 마신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

공쟝쟝 2021-09-10 09:42   좋아요 2 | URL
딩동댕! 술이 쎕니다!! 그리고 술은 낙천적이어지기 때문에 마십니다. 일상은 서걱거리고 술을 마시면 서걱거리는 호흡이 원활해집니다… 이렇게 댓글을 적다보니 제 음주패턴이 살짝 걱정.. 스럽네요…
표지는 별로이지만 좋은 책입니다^^

잠자냥 2021-09-15 1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쟝쟝님 순식간에 닉혼비 마니아 8위 등극. 곧 1위 하실 듯..... 그대는 대머리 수집가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9-15 18:28   좋아요 1 | URL
……대머리 수집가……. 치욕적 오명이다……… 닉혼비 네 이놈!!!

scott 2021-10-08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이달의 당선 추카~~
오늘 맥주 마시는 날 ^.~

mini74 2021-10-08 1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1-10-08 16:28   좋아요 2 | URL
저도 축하^^

그레이스 2021-10-08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10-08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독서괭 2021-10-08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축하드려요~^^

러블리땡 2021-10-09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축하드립니다 ^^

공쟝쟝 2021-10-09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즐거운 독후 생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