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의 첫인상

11월에 뽀갤(?) 벽돌책. 각주 포함 800페이지의 위용을 자랑하는데, 무려 양장본 임에도 이책 되게 가볍다.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한국 책은 돌가루를 섞어서 종이에 손 베고 살인무기로 쓸 수 있다고 비판한 기억이 있는 데, 프로그램 이후로 어쩐지 요즘 나오는 책들은 점점 가벼워지는 모양새다. 덕분에 내 손가락은 안전할 예정. 그래도 부피가 있으므로, 들고 다니다가 발등을 찍을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집 식탁위에서만 읽기로 한다. 요즘 식탁을 책들에게 내주고 정작 식사는 동생한테 얻은 티테이블(밥상)에서 하고 있다 ㅋㅋㅋ

“ (p.10)팔루디는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진행되는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반동에 ‘백래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분석의 대상으로 객관화함으로써 페미니즘을 둘러싼 오해와 거짓말을 분쇄할 수 있는 관점과 언어를 제공했다. “사회 진보와 변화 등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뜻하는 ‘백래시’야 말로 페미니즘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표현이었던 셈이다.“

모든 혁명에는 반혁명이 따른다. 모든 항쟁 뒤에는 거센 탄압이 따라온다. 가까운 우리 현대사에서 “광우병 반대 촛불”이 “촛불좀비”로 “518 항쟁”이 “광주폭동”으로 프레임 씌워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항쟁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므로, 기득권을 잃게 되는 이들은 이를 저지시켜야 한다. 새로운 것을 얻으려는 이들의 간절함보다 잃지 않기 위한 자들의 발악이 더 거센 법이다. 때문에 역사는 종종 역진한다.

그것은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 반페미니즘적 공격이 “여성의 불행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게(p.10)”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운동과 항쟁은 이기는 것이 변수고 지는 것이 태반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안다.
때때로 ‘정신 승리’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때는 힘과 실력이 부족했다’고 이야기는 할지언정 ‘싸움 자체를 자책(부정)’하는 현상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페미니즘에 따라오는 반동은 후자의 정서가 더 강했던 모양이다. 이는 때리는 남편을 증오하기보다는 ‘자책’을 더 많이하는 가부장제하의 여성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묘하게 겹치는 것 같다. 그게 가슴 아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정말로 믿게 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싸움이 필요하고, 또 그 역사가 축적되어야 하는 것일까.

“(p.15)하지만 여성 노동자의 고통과 과로는 페미니즘의 실패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기획의 산물이라 보는 게 더 정확하다. 팔루디의 말처럼, 여성들의 비참과 불행은 페미니즘 탓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충분하지 않은 탓일 뿐이다.”

2006년 백래시 15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팔루디는 우익(공화당)계열의 네오페미니스트들의 페미니즘 탈취보다 “시장이 페미니즘으로 구사한 유인 상술(p.27)”을 더 걱정한다.

음. 나 역시 그렇다. 엄마부대(그러고 보니 요즘 안보이네요. 주옥순 대표님)는 안무서운데, 확실히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류의 언설이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어정쩡하게 불안한 것이다.

“(p.27)경제적 독립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구매력이라는 황금사과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매력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카드빚과, 터져 나갈 것 같은 옷장, 그리고 절대 끝나지 않는 허기를 안겨줄 뿐이다. 허기가 절대 채워지지 않는 건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결정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황금 사과로 변신했다. 이 자기 계발은 주로 외모와 자부심, 그리고 젊음을 되찾으려는 헛수고에 바쳐진다. 그리고 공적 주체라는 페미니즘의 윤리는 언론의 관심이라는 황금 사과로 탈바꿈 했다.”

얼마 전 페미계의 머모님 정희진 왈 “신자유주의 시대 페미니즘의 나아갈 길 같은 것은 없다”고 하셔서 대절망(?)했던 기억이 생생하기에 많은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닦아놓은 길을 되짚는 것이 새로운 길을 찾아헤메는 불안감을 조금은 덜어주지 않을까 하며 읽어갈 생각이다.

멋진 해제글을 써주신 손희정님 말대로 “페미니즘에 모두를 거는 열정보다는 나가 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기술(p.17)”을 되새기며...첫날이므로 서문까지만. (응?)
책도 나가 떨어지지 않고 읽어보겠습니다. 내일/월요일은 좀 바쁘고 화요일엔 1장 읽어야지. (라고 쓰면 읽겠지?)

“환멸은 출발점이다. 실망과 패배는 다르다(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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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소녀시절 그리고 [백래시]
    from 게으른 독서생활자의 수기 2018-12-06 17:38 
    확실히 영화 “비밀은 없다”는 인상적이었다. 아주 여러 부분에서 ‘존띵작’이다라고 생각했지만, 특히 영화가 소녀들을 다루는 방식이 좋았다. 나 역시 그 시절을 겪어 왔으므로, 아주 잘안다. 소녀들의 세계는 우리의 많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 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며, 낭만적이지” 만은 않다. 못됐고, 잔혹하고, 거칠고, 영악하고, 또 복수심에 들끓지. 그게 반항처럼 보이기도 하고. 음.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페미니즘 적인 대사를 찾기 힘들 것 같다
 
 
다락방 2018-11-04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작이 좋습니다! 저도 오늘 내에 가능하면 작성할 예정이에요. 자, 쭉쭉 나아갑시다!!

공쟝쟝 2018-11-04 12:13   좋아요 0 | URL
락방님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영차영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