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조차 참 따뜻한 _ 한강
여수의 사랑 - 개정판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7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수가 그리워서 사들였다. 또박또박 한 편씩 아껴 읽는 동안 작가 한강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소년이 온다’ 정도를 제외 하고 지금까지 읽은 한강의 소설들은 아리까리 난해하다고 생각했었다. 아직 나에게 그 책들이 열릴 때가 아닌가 보지. 지금 나에겐 20대의 한강이 더 잘 맞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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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소설을 꺼내 읽는다. 정선의 결벽이 그립고, 인규의 어머니의 절규가 생각나고, 또 <어둠의 사육제> 속 베란다 풍경들을 생생히 떠올리고 싶어서. 나는 이 소설이 그립고 또 아린다. 내 고향 여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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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더 된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가족-타인-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무의식 밑바닥에 잠궈둔 ‘나’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문제의 해결이나 치유의 형태로 성급히 이어지진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러나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데에서는 일치하는 태도로- 지켜볼 뿐이다. 어떤 단단한 인내도, 대단한 깨달음도, 드라마틱한 해결도 없다. 새로운 관계로 이어지는 가능성?! 따위 없다. 응시. 지켜봄. 천천히 곱씹으며 들여다 봄. 타인은 거울일 뿐이다. 나의 고통을 비추는, 혹은 그 자신의 고통에 허덕이는. 그러나 타인이 없다면 나 또한 나의 상처를 들여다 볼 수 없다. 없었다. 나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채로 원인 모를 어떤 병증에 허덕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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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점이 초창기 한강의 어떤 탁월한 인간과 관계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스무살의 한강은 깨달았지만 난 이제 겨우 서른에서야 알듯 말 듯한. 고통에 대한 태도, 앓음을 응시 하는 것에 대한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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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관계를 집어삼키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내가 요즘 타인을 대하는 방식.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아픔을 가진 존재로서 평등해지기, 관계 혹은 이질감에 대해 조급한 해결없이 머무르기, 당신의 앓음으로 인하여 아니라고 거부했던 내 상처와 병을 깨닫기. 그러니까, 그 깨달음 없이 - 무엇을, 어떤 것을, 누구를 안다고/해결한다고 할수 있을까.
용감함의 덧없음. 자신을 모르는 자가 휘두르는 무기.
젊은 나는 그것으로 인해 전진해왔으나, 중년을 향해가는 나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조금은 거창하게) 한때의 인류는 그것으로 인해 발전해 왔으나, 지금의 인류는 더는 용감하지 않을 것. 해결하기 전에 멈추어 바라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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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였나. 한강은 글을 쓸 때, 여전히 직접 손으로 쓴다고 했던 것 같다. 94년의 무려 첫 소설집이므로 그녀는 더욱더 원고지에 꾹꾹 눌러썼으리라. 한문장, 한단어, 토씨하나 대충 쓰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소장각. 구매각. 일독각. ~
장범준의 여수밤바다 만큼 좋을 여수의 상징?!? (이라기엔 너무 우울한가....😭) 한강의 여수의 사랑! 꼭 읽으세여. 두번 읽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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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잘 적어보고 싶었는 데, 다 적고나니 무척이나 어수선한 글. 무언가 아주 깊숙히 느낀 걸 표현하고 싶었는 데 ㅠㅠ 이걸 쓴 나만 이해할 수 있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듯한 독후감ㅋ 킁~ 그래도 여하튼 썼다는 데 의의를. 인상적 문장은 나중에 추가할 예정. 가을맞이 사흘에 한권 읽고 이틀에 밀린독후감 한 편 쓰기 시전중인데 쓰는 건 역시 너무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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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10-21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 너무 공감되네요. 저도 대학 때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읽으며 그 축축 처지는 세계가 아리까리했는데...그땐 아직 열릴 때가 아니었나 봅니다. 공장쟝님 글 읽으니 다시 시도할 용기가 생기네요-

공쟝쟝 2018-10-22 16:35   좋아요 1 | URL
오 검은사슴... 좀 쉬었다 읽어야 겠어요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