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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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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봄에 나는 없었다 - 애거사 크리스티 (포레, 2014)


1. 햇볓이 쨍쨍 내리쬐는 사막 한 가운데. 당신은 볼 거리도, 읽을 거리도, 즐길 거리도 하나 없이 완벽히 고립됐다.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고, 산책을 나가봤자 철조망에 둘러쌓인 경계선만 보일 뿐이다. 이곳에서 온전히 나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과연 내가 아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의 괴리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나에 대해 파고들면 느낄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앞에만 보이는 감정- 엄청난 기쁨? 슬픔? 아니면 행복?


2. 조앤은 행복을 운운하는 로드니에게, 행복보다 중요한 다른 것들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의무감이라고, 조앤은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조앤은 일전에 로드니의 귀농계획을 반대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충분한 돈이 벌리지 않으리란 이유에서였다. 부모로서, 또 남편으로서의 의무감. 아이들을 위해 충분한 돈을 벌어주는 직업을 가지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다. 결국 로드니는 조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충분히 유능하지만 점점 지쳐가는 로드니의 모습은, 그가 진정 원하는 직업이 변호사가 아님을 말해준다. 조앤이 말한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다. 조앤은 그 의무감에 자신을 모두 던진 것을 당연하고, 남편까지 함께 하기를 종용했다. 그 ‘의무감’은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토니는 분명 농장을 좋아했을 것이다.


3. 부모의 희생, 참 씁쓸한 말이지만 어느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까지 부모의 뜻대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농사를 짓겠다는 토니에게, 로드니 아래로 들어와 변호사 일을 이으라고 말하는 조앤. 항상 부모에게 쌀쌀맞게 구는 에이버릴과 버릇없이 자란 바버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부모의 생각대로 자라주길 바라는 건 부모의 욕심일까, 아니면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답을 얻고자임일까. 로드니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조앤은... 부모와 자식간의 도리가 아닌, 그저 가치의 등가교환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지.


4. 조앤은 며칠 간 깨달은 것들 -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너무 강조했다는 것을 로드니에게 고백하고, 그와 함께 새 삶을 살기 원한다. 로드니가 자신을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줄 거라고 굳게 믿는다. 이전보다 더 솔직하고, 타인의 말을 더 귀담아들으며 살리라고 다짐한다. 다소 과장하자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겠다. 하지만 새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는 집에 도착한 후 잠깐의 고민 끝에 금세 사라지고 만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사람은 그 열기 때문에 쉽게 불타오른다. 조앤은 불같이 인간적 영감을 얻었지만... 이 순간적인 열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냉각되어버린다. 결국 용서를 빌리라는 조앤의 결심은 다시 마음 깊숙히로.


5. 기차 안에서 사샤는, 로드니가 자신을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줄 거라는 조앤의 말에 그건 성인(聖人)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침울하게 말한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조앤의 마음 속엔, 자신이 앞서서 변하고자 하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으로 로드니라는 변명거리를 만들었지만 사샤의 말처럼 그건 성인들이나 가능한 일이고, 로드니는 성인이 아닌 그냥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결국 조앤의 행동과 사고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로드니가 아닌 그녀 자신밖에 없다. 아니,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이가 아무리 성인이라 할지라도 구도자 자신을 온전히 변화시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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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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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 나를 찾아줘 - 길리언 플린 (푸른숲, 2013)


(스포일러 포함)


  사실 책 제목은 별로였다. 출간 직전, 길리언 플린이라는 이름을 수없이 들었어도 딱히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었다. 때마침 데이빗 핀처감독 - 영화 장르 : 핀처! 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어내는 대단한 감독이 소설을 기반한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뭐, 그래도 책을 볼 생각은 안 들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의 소름돋는 연결을 보고선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홧김에 전자책으로 사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에이미가 실종되고 닉이 범인으로 몰리는 전반부와, 에이미가 어떤 일을 꾸몄고 겪는지 묘사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영화는 두 부분의 재미를 적절히 나누어 치우침이 적은데, 소설은 전반부가 후반부에 비해 읽는 재미가 떨어진다. 영화를 본 뒤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에이미의 어이없는 트릭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반전되는데, 사실 이 부분은 소설이나 영화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고 ‘아, 그랬구나. 충분히 납득할 만하네’라는 인상을 줄 뿐이다. 오히려 서사적 압축을 통해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한 것은 영화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소설은 겉으로 소시오패스의 면모를 보이는 에이미와 그에 붙들려 한껏 고통받는 닉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표현한다. 이야기를 끝없이 전복시키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많은 감상이 소시오패스의 어처구니없는 복수와, 언론의 부당한 이미지 메이킹에 대해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설의 근간은 에이미다. 물론, 날것의 그녀가 아닌 만들어진 그녀다.


  영화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소설에서의 에이미는, 부모님이 자신을 모델로 하여 쓴 ‘어메이징 에이미’ 시리즈와 비교당하며 산다. 만약 현실의 에이미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소설 속 에이미는 그런 일에는 하나도 주눅들지 않고 새로운 교훈을 얻고, 독자에게도 교훈을 준다. 그럴수록 현실의 에이미는 주눅들어가고 자연히 열등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물론 에이미가 닉에게 한 짓은 결혼 후 닉의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벌인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닉이 ‘어메이징 에이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소설 속 자신을 미워하던 그녀였지만 정체성을 잃고 오히려 어메이징 에이미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가상의 캐릭터였건만, 결국에는 자신이 직접 ‘어메이징 에이미’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에이미의 모습이 못내 슬프다.


  이 이면에는 세상에 대한 복수도 엿보인다. 에이미를 에이미 자체로 보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진짜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이것이 소설이 담은 이야기다. 평생 가짜의 삶에 살던 이가, 세상을 향해 이게 진짜 나라고 외치는- 처절하고 슬프고 절절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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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회사 이틀휴무로 집에 가려고 가방을 싼다
우선 읽고 있는 책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을 넣고(아 두껍고 무겁다!)
담주까지 읽어야 하는 책(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들)도 집어넣는다 (이 책도 두껍고 무겁다 하아)
비소설만 가지고 가면 뭔가 심심하고 지루해질 것 같아서 소설(죄와 벌 상, 열린책들판)을 넣으려다가 이내 욕심이라는 걸 깨닫는다
벗뜨 크레마 샤인에 담긴 죄와 벌이 있기에 샤인을 넣는다 (근래 추운 날씨에 먹통이 되는 일이 빈번한 샤인)
(경제학강의도 전자책으로 다시 사려다가 돈아까워서+어려운 비소설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강박감 때문에 이내 포기. 그러나 책 무게를 느낄 때마다 갈등한다...)
일기장 겸 낙서용 몰스킨노트에 독서기록장으로 쓰는 몰스킨 북저널도 한 스푼 첨가.
블루블랙 큉크 잉크가 담긴 싸구려 만년필도 한자루.
샤오미발 겁내 무거운 보조배터리까지 가방에 넣으니 쉣, 아 무거워 레알 진짜 무지하게 무겁다.
물욕과... 이틀 동안 읽을 책을 세 권이나 가지고 가는 과욕과 허세를 버릴 때다.

토요일 저녁시간, 강남은 엄청 막힌다...
15분을 달려 양재~강남 돌파!
일산은 언제 가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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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의 역사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지음, 이상해 옮김 / 까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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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 베스트셀러의 역사 -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까치글방, 2014)


베스트셀러에 대한 간단한 소고.


1. 사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에게 베스트셀러를 권하면 다들 손사래를 친다. 자기는 많이 팔리는 책보다는 나만의 책을 읽겠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맞다. 대중에게 잘 읽히는 대부분의 책은 다소 읽기 쉬운 면이 있다. 프랑스 콩쿠르상도 처음에는 많이 팔리는 책을 배제했다고 한다. 많이 팔린 책은 그들에게 실패작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이런 의견이 일면 수긍가기도 한다. 어른을 위한 색칠놀이라든가 가계부 쓰는 법에 관한 책이 상위권에 있는 목록을 보자니, 대체 이 사람들은 뭘 보고 이런 책들을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와 반대도 있다. 대중이 잘 받아들이는 책은 과연 수준이 낮은 책인가? 베스트셀러는, 엘리트 순혈주의와 대중 중심주의를 적절히 혼합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적당히 고귀하고, 적당히 천박(?)한.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2. 베스트셀러의 장점은 지금 이순간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힐링류가 판치던 시절에는, 분명 우리가 힐링을 간절히 바라고 무언가 바로잡아지길 바랐다는 점이 확연히 보인다. 또한 비교적 쉬운 책 읽기가 가능해 독서에 첫걸음을 딛게 도와준다. 많은 이들이 읽는 책이라면 그만큼 대중의 시야에 맞는 책이란 뜻이고, 이는 누구든 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그냥 책 고르기 쉽게 만들어준다. 딱히 고민할 필요 없이 남이 고른만큼만 딱 고르면 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진짜 엘리트라면, 베스트셀러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게 아니라, 그에 관련된 더 좋은 책을 추천해주면 된다.


3. 베스트셀러의 단점은 여럿 있지만 저질스런 상품화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만드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특히 요새는 마케팅이 판치는데, 이는 한번 베스트셀러에 들면 노출효과로 계속 팔리기 때문에 어떻게든 베스트셀러 목록에 책을 올려놓고 싶어한다. 사재기가 가장 저렴하면서도 잘 먹힌다. 나처럼 책을 가늠하는 눈이 낮은 사람은 베스트셀러라는 존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책 좀 읽는다는 말을 듣고는 싶은데 주변의 많은 이들이 한 책을 샀다고 한다면 나도 거기에 질새라 책을 사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책은 누가 샀는지는 알 수 없고 그저 판매량에 기인한 베스트셀러 목록으로만 보여지기에, 결국 나는 그 목록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 같은 소비자들이 많기에 한번 목록에 올라가면 쉬이 내려오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한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호기심에서라도 그 책을 한번 더 쳐다보기 마련이다.


4. 베스트셀러 목록은 책을 그저 그런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문학적 삶을 돈만 지불하면 누구나 끼어들 수 있는 스포츠 경기로 제시해버린다. 누가 좋은 책을 출간하느냐가 아닌, 누가 많이 팔리는 책을 내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베스트셀러를 쭉 보면 알겠지만, 많이 팔린다고 좋은 책은 아니고 좋은 책이라고 많이 팔리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팔기 위해 매번 똑같은 인물, 비슷한 배경과 주제, 사건을 가지고 책을 내봤자 잠깐일 뿐이다. 그렇게 ‘생산된’ 베스트셀러는 신속성을 특징으로 하기에 결국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다. 이런 특징이 가장 강한 작가는 기욤 뮈소다. 판타지 멜로 장르를 널리 퍼뜨린 건 정말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매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구성은 정말 참을 수 없다. 이는 내가 연애를 안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5. 미국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마케팅의 저력을 강하게 보여주었다면, 요즘에는 규모가 큰 쇼보다는 작은 입소문이 꽤나 강하다. 트위터나 블로거들이 유명세를 타니 그들에게 서평을 맡기는 일도 파다하다. 영상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드라마셀러나 스크린셀러 등도 등장한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툴레인 어쩌고의 책은, 사실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런 동화책을 읽을 시간에 고전이나 인문학서적을 하나라도 더 쳐다보리라는 굳건한 의지만 다져주었다) 마케팅은 더더욱 마이크로화해져서, 요샌 팟캐스트도 출판계에 꽤나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특별히 기억나는 예. 빨간 책방에서 다룬 이언 매큐언의 <속죄>인데, 알라딘에서 이를 노린 건지 아니면 그냥 때가 맞았던 건지 딱 반값 세일을 하면서 출간된 지 몇 년 된 소설이 베스트셀러 1위에서 한참 논 적이 있다. 모순적이지만 이번에 읽은 <베스트셀러의 역사>도 역시 빨간 책방에서 다룬 책이다. 세일즈 포인트가 2,000을 조금 넘긴 것으로 보아 빨책의 영향도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 역시 이동진의 힘이란. (음?)


6. 누군가 추천해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건, 독자가 책을 고르는데 주관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때까지 소수만 읽던 좋은 책을 읽게 만들거나 적어도 사게 만든다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속죄>는 분명 이언 매큐언의 걸작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가 유명세를 탔어도 책은 잘 팔리기에는 다소 대중적이지 못했다. (이는 판형과 편집, 그리고 책의 두께가 한몫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이 참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던 책이오, 하고 이동진과 김중혁이 추천하니 많은 사람들이 아, 이런 책도 있구나, 책을 한번이라도 더 들춰보게 된다. 물론 소문이 만드는 파급력은 엄청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좋고 나쁘게 확연히 갈릴 수 있지만, 독자가 생각하던 책의 진입장벽을 조금 허무는 꽤나 큰 장점이 있다.


7. 그런데 이런 추천사가 독자를 속물로 만들 때가 있다. 속물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읽고 사유하거나 탐미하려는 생각이 적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취향에 맞는 책을 산다. 특히 엘리트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 책을 사서 읽고 싶은 게 아니라, 책장에 책등이 잘 보이게 예쁘게 꽂아둔다든가, 근사한 식사 자리에서 화제에 올리기 위해 그저 장서해둘 뿐이다. 독서에 대한 기만이고, 자신에 대한 확실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독서에 대한 자기방어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기사에서 말하길, 고전은 지금 읽는 책이 아닌 ‘다시 읽고 있는 책’이다. 절대 처음 읽는다고 말하면 안된다. 그러면 남들이 자신을 엘리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리라 여기기에.


8. 호기심과 속물주의가 적절히 섞이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절대 읽히지 않는 베스트셀러가 탄생한다. (이는 스테디셀러도 포함되는데, 사실 스테디셀러라고 해봐야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아마 많은 가정집 서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5%도 채 안된다고 한다. <시간의 역사>가 가진 불명예는 이번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출간되면서 옮겨가지 않았을까.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은 죄다 이 책을 사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 (물론 나도 샀다) 800쪽이 넘는 이 책,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읽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이 책을 ‘마르크스보다 크다(Bigger than Marx)’고 광고했는데,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얼마나 읽었을까.


9. 베스트셀러에 대해 짤막한 생각을 써봤는데 글쎄, 결국 마무리는, 알아서 잘 봐라다. 베스트셀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읽든 안 읽든 어차피 독자 마음이다. 읽으면 어떠리 안 읽으면 어떠리, 읽는다고 멍청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맘 가는대로 읽으면 장땡이다. 어차피 책이야 읽는 재미만 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거기서 교훈을 얻는 건 독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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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위조사건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8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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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헤밍웨이 위조사건, 조 홀드먼


(스포 있음)


  확실히 흥미로운 소설임은 인정해야겠다. 무거운 마음을 환기시키고자 잠깐 들었는데,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으니 말 다했다. 작은 판형에 다소 큰 글씨, 250쪽으로 중편소설분량이지만 이토록 집중력있게 읽은 소설은 오랜만이다.


  이야기는 사기 공모로 시작한다. 헤밍웨이의 아내는 한 기차역에서 그의 초기작품을 모두 도난당한다. 잃어버린 원고를 위조해서 떼돈을 벌어보려는 사기꾼 캐슬, 영문학자 존 베어드, 존의 아내 리나, 그리고 도발적인 팬지가 등장한다.


  1/3까지는 사기 사건일 뿐이다. 존은 헤밍웨이가 초기에 쓰던 타자기를 구하고, 타자기 글씨의 미묘한 배열, 그의 소설적 습관까지 흉내내어 이야기를 지어낸다. 평이하게 나가던 이야기는 존 앞에 나타난 헤밍웨이에 의해 순식간에 SF로 흐르게 된다.


  존이 가짜 원고를 완성하고 세상에 내놓는 순간, 세상에 정해져 있던 미래가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고 헤밍웨이는 말한다. 아마 이 헤밍웨이는 시간선의 질서를 지키는 ‘무엇인가의 존재’인 듯 보인다. 헤밍웨이는 미래를 제대로 돌려놓고자 존을 죽인다.


  하지만 존은 그도 모르고 헤밍웨이도 모르는 이유로 다른 시간선에서 부활한다. 부활은 아니고, 일종의 평행우주에서 존재하는 다른 ‘존 베어드’로 깨어난다. 거기서 다시 헤밍웨이를 만나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는 또 다른 우주로 넘어간다. 과연 존은 원고를 완성할 수 있을까. 모든 우주에서 그가 죽는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헤밍웨이라는 실존적 인물과 아내가 원고를 잃어버리는 실제 사건을 적절히 버무려 몰입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존이 다른 우주로 갈 때마다 달라지는 자신의 과거와 주변 인물들을 비교하는 것도 한 재미다. 특히 시간을 거슬러 진실(?)을 되감기 형식으로 표현하는 후반부의 24장이 백미다.


  어려운 설명 없이 흘러가기에 약간은 소프트한 SF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평행우주 개념도 적절히 사용했다. 다만, 결말부가 조금 붕 뜬 느낌이다. 해설이 아니었으면 결말을 조금 해석하기 힘들다. 소설 안에서 설명과 묘사가 조금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사람들이 SF를 어려워하고 즐기기 쉬운 스페이스 오페라만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텍스트 자체가 주는 힘은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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