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만인가, 회사 독서 동호회 모임을 가졌다. 회장님이 요새 일이 너무 바빠 동호회 일에 신경쓰기 힘들었다고 한다. 요새 회사 돌아가는 걸 보니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동호회 활동하기도 힘든데, 동호회마저 독서가 주제니, 이해할 수밖에 없다.


몇 개월만에 신입 회원이 들어왔다. 교육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라서 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하셨다. 그외에는 책을 그닥 읽지 않는다. 30명 남짓한 회원 대부분이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동호회에 가입했다고 한다. 동호회 창립 멤버로서 같이 즐기고 싶지만 객관적으로 레벨 차이가 나니 모임이 쉽지 않다. 물론 나도 책을 그저 읽어내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모임 후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동호회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간단히 토의했다. 바쁜 와중에도 회장님이 몇가지 생각을 해오셨다. 아직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가볍게 만화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같이 만화 카페에 가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동호회 활동도 할겸 회원끼리 친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거기에 각자 만화를 선택한 이유(아무런 의미 없이 진짜 그냥 이유)와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말 하기 정말 부끄럽지만 동호회에서 그나마 책과 친한 내가 몇 의견을 냈다. 계획을 세워서 장기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회장님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시작하잔다. 사실 잘난척하려고 뱉은 말이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긍정적이어서 내심 놀랐다. 졸지에 동호회 컨텐츠 담당자가 될 기세다.


내 의견은 대부분 다른 독서, 작문 수업에서 따왔다. 지금 하는 토론 수업이나 관심 있는 수업을 적용해봤다.


책 선정

우리 동호회는 격주로 만난다. 한번은 자유 도서, 다른 주는 지정 도서로 활동한다. 자유 도서 주에는 평소에 읽고 싶거나 전에 읽었던 책을 가져와 얘기를 한다. 허나 지정 도서는 강제성과 귀차니즘이 발동해 참여 회원 수가 비교적 적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지정도서 선정이다. 어떤 책을 골라야 회원 두루두루를 만족시킬까. 초창기에 <총균쇠>를 골랐다가 한 달 동안 아무도 읽지 못해서 애먹었던 이력이 있어 민감한 부분이다.

베스트셀러 중 눈에 띄는 책을 고르자고 말했는데 베스트셀러를 믿기 힘들다는 의견을 들었다. 잘 고르면 된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의견을 내니 ‘누가 잘 고를 수 있냐’는 반론이 나왔다. 예스24 블로그나 알라딘 서재를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독서 토론처럼 일정 기간의 책을 미리 선정해보자고도 했지만 이 역시 누가, 어떻게 흐름에 맞는 책 선정을 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벽에 막혔다. 어려운 부분이다.


매일 읽기

여러 독서 커뮤니티나 교육원에서 진행하는 활동이다(거의 베껴오기급). 아무래도 회원 대부분이 책을 읽고 싶어서 왔기에 조금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반강제로라도 매일 읽기를 습관화하면 책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카톡방을 만들어 자정이 지나기 전까지 그날 읽었던 책과 쪽수, 가장 눈이 갔던 문장이나 단락을 소개한다. 일주일에 한번 참가자가 잘하고 있나 통계를 낸다. 단, 이 통계를 게시할지 말지는 조율해야 할 부분이다. 단순히 목표를 위해 책을 펴는 게 나쁘다는 의견도 있어 고심해볼 문제다.


독후활동

독서는 독후활동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에 반대하지만 독서만큼 독후활동도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허나 우리 동호회원들이 누군가. 나를 비롯해 아직 책을 읽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초보자이다. 책 읽기도 어려운데 독후활동 - 대부분 독후감과 서평, 독서토론으로 알고 있는, 어렵고 머리를 쓰는 일을 해야 한다니 부담감에 목이 매어온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독서 메타북에서 항상 언급하는 한 줄 감상 쓰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책을 읽고 평점을 매긴다. 재밌다, 감동적이다, 지루하다라는 평을 하고 그런 생각이 든 부분이 어디었는지만 간단히 말하면 된다. 단, 처음에는 서로 무한 긍정만 해야겠다. 우린 아직 초보자니까 말이다. 항상 글로만 간단한 독후감을 써오던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자유연상 글쓰기

동호회 이름은 ‘독서’를 걸었지만 독서와 글쓰기는 한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는 독후감이나 서평을 떠올리고 난이도의 장벽 때문에 글쓰기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에 나는 자유연상 글쓰기를 말했다. 동호회 모임 한 시간 동안 어떤 주제를 두고 무작정 글을 쓴다. 문법, 형식은 신경쓰지 않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써내려가면 된다. 미리 써오는 글은 안 된다. 잘 쓰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자유연상 글쓰기의 목표는 잘 쓰기보다는 ‘그냥 써내려가기’이다. 자기 이야기를 쓰다가 울음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글.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차차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다 쓴 글은 그대로 집에 가져가지 말고 동호회원과 함께 낭독해보자고 했는데 이건 조금 거부감이 드나보다.


회의에서 잘난척 하려다가 말이 길어지고 어느새 동호회 에이스(나 따위가… -_-) 가 돼버린 나로서는 퍽 난감한 일이다. 그저 유유자적 재밌는 책 읽기만 해와서 더 그렇다. 같은 독서 초보로서 동호회원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스마트폰, TV, 게임보다 책이 더 재밌다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글쎼, 잘 모르겠다. 좋은 말은 실컷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같이 즐기는 건 결국 실천의 영역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책이 아니라 재밌는 놀이 수단으로 느낄 때까지, 열심히뿐 아니라 재밌게 해나가야지. <이젠, 함께 읽기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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