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새해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2017이라는 숫자가 꽤나 어색했는데 지금은 익숙하다. 짧게나마 매일 뭔가를 기록해서인지 하루하루를 잊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말과 이번달 초에 생각했던 책 읽기, 일기 쓰기는 꾸준히 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물론 서너번은 그날 하지 못해 다음 날 기록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지만, 어쨌든.



여행 도중 혼자 지내면서 책 읽기를 즐겼지만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놀라운 인연이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다. 당시 나의 내면에는 타인의 접근을 쉽게 만드는 개방적인 측면과 어딘지 모르게 연약한 구석이 있었고, 이 때문에 과거 경험하지 못한 방식과 차원으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이는 믿은과 인내심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나를 맡겨보는 실험이기도 했다. 서두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호기가 오면 붙잡는 그런 실험이었다.
- 위대한 멈춤 158, 159쪽. 2부 3장. 여행.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책에서.

올해 겨울 휴가로 설연휴를 택했다. 4일의 연차 사용과 대체휴일까지 겹쳐 환상적인 9일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길게 쉬면 다른 친구들은 해외를 다녀오던데, 이번에는 작년 추석에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설에는 자중하려고 한다.
설 연휴 앞 5일(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을 내리 쉬면 어디를 갈까 응당 고민해야 하지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베베 꼬이던 시기였다. 설비 업무를 한 달 정도 하면서 이제 좀 적응한다 싶으니 바로 다음 달에 공정 근무를 하라고 하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한까지 치달았다. 부서를 옮기고 설비 근무를 볼 때도 회사를 떠나고 싶었지만 12월 말은 말 그대로 죽고 싶었다. 아무 의미없이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때에 휴가를 생각하니 오히려 막막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어디 쳐박혀서 며칠 동안 마음대로 지내는 건 어떻냐고 자문했다.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지내며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읽고 싶을 때 읽는다.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일행 없이, 오롯이 나만 방에 앉아 스스로 침잠하기.
생각만 해도 좋았다. 앞으로의 시간에서 아무런 돌파구도 실마리도 찾지 못할 때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지내는 시간은 얼마나 기쁠지 상상했다. 전국의 북스테이를 찾다가 결국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종일 책에 파묻힐 수 있는 파주 지혜의숲 위의 지지향을 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정신도 조금은 말짱해졌다. 완전히 혼자 지내자고 했던 휴가도 여자친구와 다녀올 예정이다. 같이 가는 대신, 절반은 함께 절반은 혼자 지낸다고 선언했다. 처음 침잠을 선택한 것을 긍정해준 그이기에 이번에도 흔쾌히 승락했다.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구절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 혼자 지내면 무슨 의미일까.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생활이 반복된다면, 아니,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 밖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공간에 나와 책만 있다. 서로 얘기하고 놀고 때로는 윽박지르며, 그냥 있는다. 내 안으로 파고들어 다른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허나 밖을 걸어다니며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분명이 큰 의미이다. 구글맵에 의존하지 않고 되는대로 걷는다. 때론 길을 잃고 해매다가 멀리 걸어오는 타지인에게 물어물어 다시 아는 곳으로 돌아온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길, 모르는 광경.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상황들이 덮쳐오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여행의 맛이다. 그대로 우리 인생의 예견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나의 시간‘이지만 당장 1분 앞만 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발걸음이 향하는대로 다니면서 공기와 바람과 풍경과 사람과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나를 조금씩 깨닫고, 그렇기에 다른 이가 궁금해지고 그들에게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시간. 멀찌감치 떨어져 타인을 바라보는 시간. 남을 보면서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걷고 싶다. 멋있고 예쁜 광경을 찾으려 애쓰며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 않고, 그냥 발바닥이 땅에 닿는 그 느낌을 느끼며, 조금 더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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