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02)


1. 근래 감정적으로 엄청나게 흔들렸다. 낮 시간에 회사에 머무르는 동안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퇴근하고서 집에서 혼자 의자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침울하고 때론 울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 흔들림이 겨우 맘춘 나에게 <감정의 성장>이란 책이 말 그대로 성장이 될지, 아니면 내 한계와 무력감을 깨닫게 해 독이 될지 모를 책이었다. 이미 비슷한 주제의 심리학 서적을 많이 읽어왔고 다들 핵심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이런 책들은 여러 예시와 그것을 다룬 태도는 조금씩 다르기에 그 ‘다름’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2. 


> 언젠가 가방을 샀는데 그 안에 ‘사용 및 취급 주의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설명서를 읽으며 우리도 각자에 대한 취급 설명서를 갖고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_7쪽


하지만 우린 이런 설명서 따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을 대할 때 무례하게 굴기도 한다. 아니, 남이 아니라 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애먹고 스스로 속상할 때가 많다. 이 책은 직접 이런 설명서 역할을 해주지는 못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달리 사람은 모두 같은 설명서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독자에게 설명서를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하나의 가이드를 제시해준다고 해야 할까?



3. 사람은 이성과 감성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짧은 세월이라도 여러 경험을 해보니 실상은 감성(감정)이 주로 나를 이끄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바른 마음>에서처럼 감정은 커다란 코끼리고 이성은 그 위에 앉은 기수다. 이성이 아무리 채찍질해도 감정은 뭔가 충족되지 않으면 커다란 덩치로 제멋대로 움직이기 일쑤다.



4. 책은 마음속에 자기 삶을 이끌어온 감정인 핵심감정을 말하면서 시작한다. 이 부분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인사이드 아웃’의 확장판이자 해설편을 읽는 느낌이다. 감정의 토대가 되는 핵심감정을 이야기할 때마다 애니메이션 안에서 무너지는 핵심감정의 섬이 떠올랐다. 내 핵심감정은 무엇일까? 이것들은 어떻게 형성됐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는 나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 만약 그 길이 잘못됐다면 핵심감정이 이끄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5.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서 매번 내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한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그날 있었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떠올라 끝없이 후회하고(41쪽) 고통은 반드시 혼자 힘으로 극복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168쪽).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무서워 아예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한다거나(185쪽) 대인관계로 고민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을 고립의 늪에서 건져내주기를 바라는 식이다(231쪽). 이런 고민을 말한 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많은 사례를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고 다소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만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는 건 아니었구나, 라고 말이다.



6. 하지만 이런 사례를 읽고 안도감을 느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베스트셀러로 한참 잘 팔렸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지만 사실 ‘공감’ 그 자체로 끝맺음났다는 것이 아쉽다. <감정의 성장>에서도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이론이 마음에 대해서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지적 만족으로 끝나거나 자기 이해를 위한 내면 탐구가 현실도피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자기 위안과 공감도 좋지만 더 나아가 현실과 단절되지 않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생각해보기도 해야 한다.



7.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개인은 물론 자신의 주변과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내가 아닌 주변으로 돌리거나 나를 구원해줄 사람을 찾으려고 한없이 기다린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면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스스로 찾아야 할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다(231쪽).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아도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풀어나가느냐의 시발점은 결국 나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사안이 무엇이든 결국 해결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8. 항상 안되는 것. “감정을 성숙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않고 그 감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127쪽).”



9. 많은 책에서 봐온 내용들이어서 큰 울림은 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환기시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나름 좋았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서 나는 어떤 핵심감정에 영향을 받는지, 그게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한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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