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 대중문화 속 법률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1
김지룡.정준옥.갈릴레오 SNC 지음 / 애플북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부터 정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으로 잡혀들어갈까? 하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책에서 간단히 답을 요약해주는데,

> 데스노트인 줄 모르고 이름을 쓴 것은 아무 죄도 없다. 데스노트일지도 모르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과실이다. 데스노트일지도 모르는데 ‘데스노트면 어때’라고 남의 이름을 쓴 것은 미필적 고의지만, 고의성이 있으므로 살인죄에 해당한다. 형법에서는 “죽으면 어때”와 “죽이겠다”를 똑같이 무거운 범죄로 생각한다.

란다. 모르고 하면 죄가 없지만, 세상에 데스노트의 존재가 충분히 알려졌다면 그때부터 과실의 유무를 판단하게 된다. 실제 법에서는 이렇게 이분법적인 판결은 하지 않겠지만, 법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은 서문에서 법이란 전문적인 과정을 밟지 않으면 공부하기 힘든 것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대중문화 중 친숙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의 이야기와 법을 섞어 법을 더 흥미롭게 바라게 만든다. 데스노트부터 시작해 괴물로 변신해 소동을 피운 헐크,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해리포터, 악당과 싸우느라 건물을 부순 스파이더맨,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는 홍길동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인물들과 작품을 통해 법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판단하는지 말해준다.

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이기에 책의 에피소드 전체가 재밌고 새롭게 다가왔는데, 그중 몇가지를 꼽아보자.

1. 재산 피해는 민법이 담당하고 몹쓸 짓은 형법이 담당한다. 난 이 사실을 책을 읽고나서 처음 알았다. 아무리 이과에 공대를 나왔다 하더라고, 시민으로서 교양을 전혀 쌓지 않았다는 방증이리라... 그리고 헌법은 가장 높은 법이란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2. 때로는 우리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생각나는 몇가지만 적어보자면, 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과잉방어를 해 살해한 사건이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어느정도 갈피가 잡혔다.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벗어난 후에 계속 공격해 상대를 다치게 하면 과잉방어로 인한 상해죄가 성립되는 셈이다. 집주인이 느낀 감정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가장 쟁점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의 반려견을 죽였을 때 재물손괴죄로 판결이 나는 케이스다. 애견인들에게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이겠지만, 아직 우리나라 법에서 반려동물은 재산으로 취급된다고 한다. 남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리(?)했으니 재물손괴죄가 나오는 것이다. 반려동물이 재산으로 취급되느냐 마느냐의 사회적 함의와 함께 현재의 법이 완벽하지 않고 충분히 바뀔 여지가 있음을 말해준다.

3. 민법은 유추적용할 수 있지만 형법은 유추적용을 금지한다. 형법은 법에 정해진 문구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비슷한 것을 들이대는 일은 허용하지 않는다. 형법에서 ‘이러이러한 것은 범죄다‘라고 규정한 것만 범죄가 되고, 그에 따른 벌도 법에 정해진 대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죄형법정주의라고 한다. 형법의 이런 특성 때문에 우린 때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보기도 한다. 저게 왜 징역 3년밖에 안되지? 왜 쟤는 불구속이야? 법원은 순수하게 법전을 바탕으로 판결내리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겠지만, 이럴 경우 자칫하면 감정에 따른 인민재판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죄형법정주의를 이렇게 말한다. 참 어려운 지점이다.

> 그래서 평범한 이들이 주인이 된 근대사회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죄형법정주의를 형법의 근본 원리로 택했다. 죄형법정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 하나는 형법에 규정된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그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범죄자로 처벌하지 않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즉, 형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국민에게 무한한 행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다. 또 하나는 범죄자는 형법에 정해진 형벌의 범위 내에서만 처벌한다는 것이다. 법에도 없는 가혹한 형벌을 마음대로 내릴 수 없게 만든것이다.

4.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발상을 전환하지 못한다 느낀 지점은 두발자유에 대한 장이다. 머리를 기르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건,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에 속한다. 머리 길이 제한은 이런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므로, 머리를 기르려면 ‘기본권의 제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런데 머리를 기른다고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사회질서, 국가안보, 공공복리에 악영향을 미치는가? 결국 교칙에 의해 머리길이가 정해진다. 그렇다면 교칙은 헌법을 넘어설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학교는 머리를 기르면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머리 길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학생들은 두발자유와 성적이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데 애를 먹었다. 실상은 **두발 규제를 주장하는 쪽에서 두발 자유와 탈선이나 사회질서 유지, 공공복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셈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내가 자라면서 응당 누려야 할 기본권을 지키지 못하고 시키는대로만 했는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생각조차 못했는지, 설사 잘못을 알았더라도 그저 순응만 했는지, 많이 반성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요새 학생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가지 이야기만 나열했는데 책 안에는 정말 많은 서브컬쳐 이야기를 법과 적절히 버무려 흥미롭게 풀어낸다. 딱딱하게만 생각했던 법을 이렇게 쉽고 재밌게 풀어낼 수 있다니, 아이디어와 기획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법을 조금 더 쉽게 알아보고 싶은 이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물론 책 안에서 틀린 내용이 있겠지만 그건 더 깊게 공부하면서 차차 알아내면 되니까. <지대넓얕>의 법 버젼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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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8-09-0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렇게까지는 생각 못해봤는데,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