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쓸쓸할 때가 제일 제정신 같애. 그래서 밤에 더 제정신 같애.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 제목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 해요? 

나 여기 왜 있어요?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 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 없을까?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애.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 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 몰랐는데 나 운전할 때 되게 다정해진다. 희한하게 핸들 잡자마자 다정해져. (...) 

  내가 사람들 틈에서 오바하고 있었나 봐. 혼자 있으니까 되게 차분하고 다정해져. 

- 혼자 다정한 건 뭐야?

- 몰라. 그냥 혼자 다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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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22-05-15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 내 얘긴 줄 알았네.....

Joule 2022-05-15 13:58   좋아요 1 | URL
염미정 라인인가요.

한수철 2022-05-17 04:19   좋아요 0 | URL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인물관계도를 검색하고 왔네요.ㅎㅎ^^

아마도 ˝혼자 다정해˝라는 말에 꽂혔던 것 같은데..... 아무튼 뭐 그렇다고요.

Joule 2022-05-17 11:22   좋아요 0 | URL
ㅋ 그럼 염창희! 저도 염창희!
 

라지가 돌아왔다. 석 달 전 죽은 줄 알았는데. 벌써 서른 번도 넘는 환생이지만 매번 살아 돌아오는 라지를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엄마 껌딱지였던 진식이가 풀죽은 모습으로 패기와 어울려 다녔던 것도, 라지가 최근 거처로 삼았던 집 앞을 내가 기웃거렸을 때 라지의 기척이 나지 않았던 것도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뒷베란다에 나갔다가 습관처럼 창 밖을 내다보니 눈에 익은 삼색 고양이의 뒷모습이 고양이식당 앞에서 서성거린다. 소리나게 방충문을 열고 닫아 라지를 부른다. 라지는 쳐다보지 않고 그냥 식당 앞에 예쁘게 자세를 고쳐 잡고 앉는다. 기다릴테니 내려오라는 뜻이다. 오늘따라 늦게 일어난 터라 출근 준비에 마음이 급했지만 여차하면 전화해서 연차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는다.


3년 전 중성화수술 이후로 라지는 나와 사이가 멀어져 거처를 옮기고 내가 주는 것은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 해도 먹지 않으며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도 알은척은 해준다. 내가 사는 다가구주택 단지에 가끔 마실도 오고 나를 보면 반갑게 야옹~ 인사도 하고 달려와서 자기를 쓰다듬게도 해준다. 그래도 눈만은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자면 라지의 결심 같은 것인 듯하다. 라지의 그윽하고 따뜻한 시선이 그립기는 하지만 괜찮다. 내가 라지에게 잘못했으니까.


배가 고플 것 같아서 먹든 안 먹든 국물이 걸쭉한 파우치 두 개를 종이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라지는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고 아무리 오랜만이라고 해도 너라는 인간을 섣불리 믿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한참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할짝할짝 국물을 핥는다. 고맙다. 나는 라지가 먹기 편하라고 접시를 들어준다.


3년 전, 그러니까 삼월이가 태어나기 전, 라지가 중성화되기 전, 내가 아직 취준생이었을 무렵, 라지와 나는 둘이서 함께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라지도 나도 딱히 서로가 마음에 들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세상에 둘만 남아 버려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돌아다니는 무리처럼 우리 사이에는 적당한 마음의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라지는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아와 기다렸고 나는 라지에게 손을 흔들며 우리는 즐겁게 계절들을 통과했다. 어떤 날들에는 솟구치는 애정에 숟가락으로 라지의 밥을 떠먹여줄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라지는 아기처럼 얌전하게 숟가락을 핥았다. 라지의 접시를 들고 있는데 가만히 그때 생각이 났다.


밥을 먹고 있는 라지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우리 엄마 같다. 늙은 우리 엄마. 물론 우리 엄마는 라지처럼 상냥하고 노련하고 유능하지 않다. 그래서 한때 나는 정말로 라지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나도 라지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었다. 나의 늙어가는 엄마를 보면서는 아무렇지 않은데 왜 나이든 나의 고양이를 바라보며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까. 라지는 제 양을 다 먹고 그대로 돌아서 떠난다. 나중에 출근하면서 보니 라지가 근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나는 항상 라지가 어디 사는지 궁금하다. 그런 걸 보면 라지는 내 친구가 맞는 것 같다.         

 


2021. 4. 25.(일) 오전 11:21  라지와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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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생 여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어머니는 그 말을 싫어했다. 현모양처, 알뜰한 당신, 어머니 손맛 같은 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와 노인이 합해진 의미에서의 할머니로만 대해지는 것 역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희생과 헌신, 고향의 이미지, 경제적 무능, 부지런함과 절약, 쇠약함과 퇴행, 그리고 지혜로움 같은 미덕까지. 어머니는 자신이 힘들게 살아온 것은 맞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동정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누나는 어릴 때 같은 반의 고아원 아이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불쌍하다고 말했다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 불쌍한 게 아니라 너보다 운이 나쁜 거다. 뭐 그런 식으로 혼났는데 누나는 어린애가 어떻게 알아듣느냐며 지금까지도 억울해해했다. 어머니는 관공서의 현수막에 적힌 어르신이라는 표현도 호들갑스럽다고 싫어했다. 귀여운 할머니라는 말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틀니를 아무데다 빼놓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것은 싫어하면 안 되는 물건이었으므로 귀엽게 여기려고 노력했고 결국 성공했는데, 귀여움은 그처럼 너그럽게 보아주거나 기특한 느낌인 경우에 쓰는 말이라는 거였다. 

   어머니는 '할머니 같다'라는 말 못지않게 '할머니 같지 않다'는 말에도 거부반응을 보였다. "내가 인자하게 대하면 할머니라서 그렇다고 하고 냉정하게 대하면 할머니인데도 그렇다고 하고, 결국 할머니가 인자하다는 생각은 안 바뀌지. 근데 내 성격이 냉정한 것하고 할머니인 것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그럼 누가 잘못 생각한 거겠냐. 그 사람들이냐 나냐."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까탈스러워요."  형은 어머니가 보통의 어머니답지 않은 말을 할 때면 곧잘 짜증을 냈다. "그래봤자 할머니는 할머니잖아요." 어머니는 곧바로 대꾸했다. "내가 할머니지만, 그 사람들이 아는 그 할머니는 아니야. 그러니까 아는 척 좀 하지 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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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왜 연작소설이지? 갸우뚱. 이야기의 장소가 뉴욕이라는 공통점밖에 없는데.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건 그냥 뉴욕을 배경으로 한 단편집이다. 


-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창작과비평)

- 장미의 이름은 장미 (문학동네)

-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릿터)

- 아가씨 유정도 하지 (악스트)


재미있는 건 작품의 질이랄까 재미랄까 그런 게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과연 은희경이다!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걸 왜 썼지? 뉴욕에서 나 살아봤다 티내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래서 도대체 편집자는 뭘 한 거지. 이런 작품을 그냥 받아서 싣는다고? 하긴, 은희경이 은희경이라서 어쩔 수 없었겠다. 은희경이 은희경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걸. 나의 순위는 이랬다.


1위. 아가씨 유정도 하지 (악스트)

2위.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릿터)

3위.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창작과비평)

4위. 장미의 이름은 장미 (문학동네)


희한한 게 메이저 계간지에 실렸던 단편들은 별로고, 신생 계간지에 실렸던 단편들은 빛난다. 특히 '아가씨 유정도 하지'는 정말 은희경의 귀환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잘 썼다. 괜찮다. 이렇게 계속 써주세요. 은희경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은희경에게 기대하는 게 바로 이런 은희경스러움인데, 은희경 아직도 한참 더 쓸 수 있겠구나. 은희경의 이야기를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구나. 더 써줬으면 좋겠다. 더 읽고 싶다. 뭐 그런 감정이 들었던 작품. 이 단편 하나가 책 값의 70%를 해냈다. 


반면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버려도 될 단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은희경이 이름 없는 작가이고 좋은 편집자가 붙었다면 되게 재미있었을 이야기. 은희경 키보드에 delete 키가 없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이야기를 한참 쳐내고 그다음을 써달라고요,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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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씌워 두었던 먼지 수북한 비닐을 걷어내고 골조도 조금 손을 봐서 새 비닐을 씌웠다. 비닐을 씌워 두어야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사료와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비바람에 사료도 덜 눅눅해지고. 고양이들이 사료를 바닥에 흘리기도 하고 바람에 흙먼지며 낙엽이며 담배꽁초 등속이 날아와 바닥이 지저분해지므로 못해도 일 년에 두 번은 대청소를 해야 한다. 벽돌이며 구조며 다 들어내고 큰 빗자루로 바닥 전체를 다 쓸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이 조금 거슬려도 못 본 척 눈 감아줄 마음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고양이 식당은 마땅한 자리를 찾기도 어렵지만 항상 주변이 청결하도록 꾸준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식당이 지저분하면 식당 때문에 고양이 때문에 주변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하기 쉽다.




고양이 식당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도 안 된다. 좋아 보여서도 안 된다. 그래서 가장 좋은 엄폐물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벽돌이나 방치된 화분 들이다. 하얀 새 그릇도 안 되고, 보들보들한 털이불도 안 된다. 특히  패브릭은 위생적으로도 불결해 보여서 고양이 식당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자재다. 누군가 우연히 고양이 식당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살림으로 근근히 목숨만 부지할 정도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래도 모진 마음, 미운 마음, 못된 마음, 배아픈 마음이 덜 들 테니까. 이번에는 바람 먼지가 덜 들어가게 입구를 벽 쪽으로 조금 틀어서 냈다. 




사료, 물, 그리고 가끔 주어지고 대부분은 비어 있는 특식 그릇. 내일 저 그릇에는 삶은 닭고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날은 따뜻하고 맛있는 닭고기를 먹어서 고양이들은 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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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5-0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형 구조의 매력을 발견합니다. 한눈에 왜 아늑하고 세련되어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보이나 했더니 아치형 틀, 아케이드 구조였어요. 고양이도 고양이지만 고양이 식당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고려하고 계산해야하는군요.

Joule 2022-05-09 13:15   좋아요 0 | URL
요즘 건축물의 구조에 심취해 계신 모양이에요^^ 저에게는 안 보이는 걸 보시는 것 같아요. 하긴, 그 맛에 책 읽고 공부하죠.
고양이 식당은 밥을 먹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고양이들의 탈주 퇴로도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고양이가 밥을 먹으면서 조금 눈을 들면 주변을 살필 수 있어야 하고, 고양이 뒤쪽은 열린 공간이되 그 끝에 담장이 있으면 좋아요. 담장은 고양이들의 고속도로 같은 곳이니까.

hnine 2022-05-15 15:20   좋아요 0 | URL
저의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joule님 포스팅 내용과 별 관련없는 엉뚱한 댓글을 제가 달았었네요. 이렇게 즉흥적일때도 있다니 ^^
고양이는 개와 참 다른 것 같아요. 저희 아파트 뒤 축대 담장을 타고 고양이들이 움직이는 것이 제 방 제 책상에서 아주 잘 보인답니다. 고속도로 같은 곳이라는 말씀이 얼른 이해가 되요.

Joule 2022-05-15 15:18   좋아요 0 | URL
좋은데요. 즉흥적인 댓글이었다니.

책상을 아주 명당 자리에 두셨네요. 담장을 따라 걷는 고양이가 보이는 책상이라니.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