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동상이 있는 바닷가쪽 어민시장에서 반찬 하나 깔지 않고 대게를 먹는 것도 좋지만 바다 반대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주문진의 동네를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좀 오래되고 낡은 굽이진 동네 골목을 만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골목이 디게 깨끗해요. 아주 낡고 오래되었는데 골목이 깨끗하다, 사실 이것이 강릉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주문진은 강릉시 주문진읍이니까요. 거의 모든 갈림길에서 거의 모든 갈림길로 가고 싶어서 저는 아주 혼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날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으므로 일단 무조건 북쪽으로 향합니다.




걸어요 걸어요.





마을을 빠져나와 농로를 지나고 조금 한참(조금이라는 거야, 한참이라는 거야?!) 걷다 보면 나와요. 향호가. 





향호는 우연히 지도에서 보고 찾아간 곳이에요. 아주 넓은 호수. 바람 소리가 아니 바람에 사부작거리는 풀 소리가 그리고 새 소리가 그리고 가끔 물 소리가 아주 잘 들리는 곳. 호수 주변을 빙 둘러 나무 데크가 되어 있어 아주 한가롭게 생각에 잠기며 느긋이 걸을 수 있는 곳. 강릉에 경포호가 있다면 주문진에는 향호가 있는 것인데 경포호보다는 향호가 저는 더 좋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바우길 13구간이더라고요. 향호와 향호 저수지를 어우르는. 이름도 과연 바람의 길.


향호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 향호교가 나옵니다. 향호교는 사람만 다니는 낡은 다리예요. 향호교 옆으로는 자동차들이 신나게 쌩쌩 달리는 자동차 도로가 있는데 향호교를 건너며 자동차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깨소금. 내가 건너는 다리는 낡았어도 한적하고 고요한데 저 다리는 붐비고 시끄럽거든요. 한 뼘밖에 안 되는 향호교를 지나면 바로 주문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굴 다리가 있어요.





여기를 빠져나가면 이제 바다가 나와요.




이렇게.




그리고 주문진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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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6-0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동네 골목이,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그냥 내가 사는 동네 골목이고 우리 집도 저 가운데 한 집이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향호라는 이름이 특이하네요.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소설을 쓴다면 남자 주인공, 아니 여자 주인공 이름이어도 좋겠어요.
바람 소리 속에 들리는 새소리라니, 꺅~~~ (좋아서 지르는 함성입니다. 저는 요즘 새소리가 그렇게 좋아요)

Joule 2017-06-08 17:20   좋아요 0 | URL
저는 외딴 집에 살아서 잘 몰라요^^ 새 소리 좋아하시는군요. 집 앞에 공원이나 숲 하다못해 나무들이라도 좀 무성하면 새들이 많이 날아오더라고요. 예전 집에서는 침실 옆에 전봇대가 있었는데 어느 날은 새 두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하도 수다를 오래 떨길래 제가 창문 열고 한마디 해준 적 있어요. 그만 좀 떠들지, 하고요 ㅋㅋ 못 들은 척하고 다른 데 쳐다보고 있다가 민망했는지 날아가더라고요. 그러더니 그 이후로는 창문 옆에서 좀 덜 떠들더라는.

향호는 풍경도 좋지만 뭐랄까 소리가 참 좋은 곳이었어요. 다음에는 바우길 3구간을 따라 향호저수지까지 다녀와볼까 해요.

hanicare 2017-06-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해 쪽은 오래된 골목들이 어찌나 정갈하던지.(저도 처음 강원도 가서 놀란 점이에요.)
바다만 차갑고 맑은 게 아니라 그 골목에 부서지던 햇빛도 깨끗했어요.
여기서라면 약간 가난해도 정결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왜 이렇게 나는 글을 못 쓸까요. 끙끙...아휴...표현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늘.

(지금 사는 곳은 너무 지저분합니다.
거리에 탁탁 가래를 뱉는 사람들, 곱게 핀 꽃나무에 먹던 빙과류 음료병 던져버리고 가는 애들.
차창을 열고 한 움쿰 내장을 뽑아내듯 가래 내뱉고 가는 사람들-저품질 인두껍들.
악한보다 저런 사람들에게 더 살의를 느껴요.
자기 집 거실 바닥에 그러진 않겠죠?)


Joule 2017-06-08 18:08   좋아요 0 | URL
말씀대로 골목에 부서지는 햇빛이 참 깨끗하죠. 그 구절 읽는데 장면이 눈에 선히 그려졌어요. 동해도 그렇게 정갈하고 깨끗하군요. 그렇다면 동해에 가서 좀 오래 둘러봐야겠어요! 이쪽 지역이 삼국시대 이전에 동예가 있던 곳이었잖아요.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들이 참 괜찮다고 옛기록에도 남아 있는 지방.

근데 또 속초는 좀 다르더라고요. 속초는 희미하게 세기말적인 풍위기가 살짝 났던 인상. 골목에 정갈하게 부서지는 햇빛 같은 것도 없고요. 그래도 음식 솜씨는 강릉보다는 속초가 조금 더 낫지 않나 싶어요. 춘천은 말하나마나 정말 꽝이고요. 춘천, 시끄럽고 답답하고(분지처럼 산으로 빙 둘러져 있어서인지) 서울과 가까워서인지 물가는 비싸고 음식은 별로고.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먹어본 중에 제일 맛없는 닭갈비를 춘천에서 ㅋㅋ 춘천에 갔다가 도착하고 1시간도 안 돼서 빨리 강릉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아주 혼났던 기억이 ㅋㅋㅋ

거리에서 뱃속에서부터 끌어모은 듯한 가래침 뱉는 아저씨들 보면 정말 까무라치겠어요 더러워서. 마음 같아서는 목청 높여 ˝더러워!˝ 하고 소리치고 싶죠 ㅋㅋ 저는 위생관념은 특별히 투철하지 않은데 공공질서 공중도덕 이런 강박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청 심해서 그래요. 초등학교 때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 중에 하나가 조회 시간에 애들이 줄을 똑바로 안 서는 것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