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만난 스타벅

"아이쿠! 스타벅이 일어났군." 삭구 작업자가 말했다. "스타벅은 힘센 일등항해사야. 좋은 사람이지. 신앙심고 깊고. 모두 일어났으니 나도 일을 시작해야겠어." 이렇게 말하고는 갑판으로 나갔다. 우리도 뒤따라 나갔다.
이젠 환하게 해가 돋고 있었다. 곧이어 선원들이 둘씩 셋씩 배에 올랐다.
삭구 작업자들도 일을 시작했고, 항해사들도 기운차게 움직였다. 육상에서는 몇 사람이 마지막 물건들을 배에 싣느라 바빴다. 그러는 동안에도 에이해브 선장은 자기 방에 틀어박힌 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제22장
메리크리스마스
마침내 정오가 다 되어 삭구 작업자들이 모두 배에서 내려가고, ‘피쿼드호가 부두에서 바다 쪽으로 뱃머리를 돌린 뒤, 언제나 세심한 채리티 아줌마가 보트를 타고 와서 마지막 선물- 이등항해사이자 시동생인 스티브에게는 나이트캡, 급사장에게는 예비용 성경책을 주고 떠난 뒤, 말하자면 모든 게 끝난 뒤, 펠레그와 빌대드가 선실에서 나왔다. 펠레그가 일등항해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스타벅, 모든 게 잘 끝났나? 에이해브 선장은 준비가 다 됐네. 방금얘기를 나누고 왔는데, 이제 육지에서 들여올 건 없겠지? 자, 그럼 모두 소집하게 여기 고물 쪽에 집합! 망할 자식들아!"
"아무리 급하더라도 그런 모독적인 말은 삼가게, 펠레그." 빌대드가 말했다. "하지만 스타벅, 자네는 가서 우리가 시킨 대로 하게."
도대체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이제 막 배가 떠나려는 참인데, 펠레그 선장과 빌대드 선장은 마치 공동 지휘자인 양 뒷갑판에서 기세 좋게 명령을내리고 있지 않은가.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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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의
주요작품세인즈버리 윙(1200~1500년대)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비너스와 마르스Venus and Mars)⑥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암굴의 성모Virgin of the Rocks)

웨스트 윙(1500~1600년대)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gelo Buonarroti(그리스도의 매장 The Entormbment)(미완성 제단화)②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대사들The Ambassadors〉

노스윙(1600~1700년대)⑥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④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63세의 자화상 Self-Portrait at the ageof 63)

이스트 윙(1700~1900년대)TIP④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해바라기Sunflowers)④ 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Bathers at As-nieres)THE2122노스윙North Wing2018.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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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서 흥미를 돋우는 역동적인 작품은 왕의 사자사냥이라는 부조물이다. ‘중동에 무슨 사자가?‘라는 생각이들 수 있지만, 약 3000년 전의 이집트는 사막이 아닌 초원지대였다. 그 때문에 민가에 사자가 출몰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사자는 악의 화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아시리아 왕들은 주기적으로 사자를 사냥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초원에 나가 사자와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은 아니었다. 병사들이 사자를 몰아 넣으면왕이 멋지게 등장해 사자를 사냥하는, 일종의 스포츠 퍼포먼스였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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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주버님인 고흐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을지향했습니다. 고흐의 예술관과 가장 잘 어울리는 미술관이 바로 국립 미술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해바라기‘를 국립 미술관에 양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어떤 그림도 귀하의 갤러리에서 ‘해바라기‘보다 더의미 있게 빈센트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바라기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도 이 작품이 그곳에걸리기를 바랄 것입니다.‘
-요한나와 국립 미술관 관장이 주고받은 편지에서요한나의 말처럼 고흐가 원했던 건 모두를 위한 예술,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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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무신경했다!

가령, 어머니가 죽은 뒤 몇 주 동안 그녀의 체크무늬 앞치마가 부엌문 뒤 고리에 여전히 걸려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일은 마치 상처에 소금이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날 화나게 했다. 어머니의 세면용품과 분첩과 머리빗이 고의로 욕실 녹색 선반 위에 남아서 날 조롱하쓰던 옷장 서랍을 열 때마다 얼마간 내 얼굴에 계속 풍기던 그녀 냄새의 메아리마저도. 모든 것이 나를 무기력한 분노로 몰아갔다. 마치 그고 상처 입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책들도. 그녀의 신발들도. 어머니가녀의 스웨터가 어떻게든 내 스웨터 더미로 기어들어가서 비열하게 이를 보이고 웃으며 고소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한 번의 포옹도 없이, 한마디 설명도 없이 떠나간 어머니에게 화가 났다. 결국, 어머니는 물 한 잔 건네지 않고, 미소도 짓지 않고, 약간의 사과도 두세 마디 유쾌한 말도 없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문간에 선 택배 배달원, 행상과 헤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이별에 무신경했다. 내 모든 유년 시절에 걸쳐 어머니는 결코나를 식료품점이나 이상한 앞뜰이나 공원에 홀로 남겨두고 떠난 적이 없었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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