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신화
한승원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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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원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접했다. 《키조개》 《멍텅구리배》와 같이 바다를 벗삼아 살아가는 이야기들과 《추사》 《초의》 《흑산도 하늘길》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엮은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읽은 《사람의 맨발》은 신격화된 존재에서 실재적 인간의 고뇌로 거듭나는 붓다의 삶을 잘 구성해 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와 같이 주로 한승원 작가의 장편을 읽었던 셈인데,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과 분위기는 작가의 고향인 남도 바다를 배경으로 오고 가는 구수한 남도 말씨에 여성성을 자연스럽고 농밀하게 스케치하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당시로 돌아가 최대한의 상상력을 끌어와 집중적으로 인물과 당대의 사정을 교차식으로 엮어 내는 점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라고 하겠다.

 

 한승원 작가의 등단(登壇) 50주년을 맞이하여 자전 소설집이 탄생했다. 모두 열 세 편으로 대부분 처음 접하는 소설들이다. 196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들로 작가의 고향 장흥을 배경으로 바다의 내음이 물씬 묻어나고 누이이고 어머니와 같은 여성성을 농밀하게 그려냈다고 본다. 1960,70년대 지금과 같이 복닥거리지 않은 어촌의 풍경들로 당시의 기혼 남.녀 간의 삶과 사고방식에 지금과 같이 '딱' 떨어지는 이해타산보다는 이심전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주고 받는 시절을 그려냈다. 그것은 내 유소년 시절의 분위기와 교차되기에 마음 한 켠으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내 고향 작가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인지 동향의식을 자아내곤 했다. 그 시절 내 고향 마을과 근동의 마을 사람들의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구름이 남으로 북으로 흘러가는 모습과 흡사했다.

 

 열 세 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니 한 세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시 껴안고 보듬는 듯한 느낌과 오묘하리만큼 비현실적이고 과감하리만큼 노출신이 예술성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주저 앉어버리는 느낌 사이에서는 시대적 이념과 주류 이데올로기에 막혀 '쓰다가 만 편지' 꼴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그러나 다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극히 시대의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막혀 표현의 자유가 막혀 버리지는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한승원 작가는 인간의 속성과 진보된 예술성 사이를 잘 묘사하고 소화해 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여순 반란 사건)로 리얼감 있게 그려 내고 있었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인물,사건,배경을 잘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 듣고 배우고 관찰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동물과 달리 사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한승원 작가의 소설 열 세 편은 이 작품의 제목마냥 야먄과 신화가 뒤섞인 이야기들로 되어 있다. 현실 고발, 자극성 있는 작품들을 추구하는 현 시대와 비교한다면 이번 작품은 한 세대 위 어른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야만과 신화적인 관점에서 그려 놓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갖은 것 부족하고 배운 것 얄팍해도 늘 인정과 동병상련이 살아 있었던 따스한 시대의 이야기가 주마등과 같이 스쳐 지나간다. 그 안에는 여성성이 소리없이 뭇 남자들을 품어 주고 있는 것과 같다. 작가는 가까운 바다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그려가고 있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시대의 생각과 이념에 역주행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던 갑남을녀들이 모인 세상이다.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지혜까지 습득하는 멋진 작품을 대해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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