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사라지는 시대 - 디지털 기억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
애비 스미스 럼지 지음,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요즘 손으로 생각과 논리를 정리하고 통합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극소수에 불과하지 않을까 한다. 일상과 일 속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겪었던 바를 붓가는 데로 또는 논리와 허구를 뒤섞여 두뇌와 손이 쌍두마차가 되어 글이 완성되던 시대는 꽤 오랜 옛날의 일처럼 되어 버렸다. 게다가 인류 문명은 늘 진화되어 오고 앞으로도 진화되어 갈 것일진대, 인류의 지적 재산이라고 할 만한 기록물들이 이제는 디지털 기계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일상화된 현대사회는 점점 복잡한 과학 기술의 발명 덕택으로 가능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디지털 기계 장치에 수록되고 적출되며 기록으로 남게 되는 운명은 아닐런지.

 

 기록 기술의 발명은 6,000년 전 점토판(粘土版)의 발명에서부터 파피루스 두루마리, 인쇄, 사진,음향 녹음, 이동 가능하고 지극히 쉽게 손상되는 초소형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모두, 종으로서 우리의 성공을 좌우할 방대한 지식 저장고의 규모를 늘려왔다. -p6~7

 

 내가 사회 생활의 단초라 할 학창 시절을 1970년부터 1980년대, 그리고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는 21세기 초입에 이르기까지 기억의 저장고라 할 수 있는 페이퍼 작업들은 대부분 디지털 기계에 의존하게 되고 말았다. 페이퍼 작업을 꼭 해야 할 분야, 그것들이 즐기고 그리워하는 일부 계층과 사람들은 여전히 디지털 기계를 멀리하고 페이퍼 작업을 즐기고 예찬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류의 지적 재산이 종이에서 디지털 기계 장치로 옮겨져 가는 것은 넓게 볼 때 유익한 점이 많다. 바로 저장 능력과 정보 생산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저장 능력은 1990년대 초 월드와이드웹이 발명되고 소셜 미디어가 성장하면서 인류의 기록물은 한층 더 제고되어 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던 기록물과 청취물들이 IT기기로 대체되면서 현대인들의 세상살이 호기심과 삶의 풍경은 하나의 기계에 빨려 드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시.공간을 불문하고 틈만 나면 IT기기에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기억이 과연 인간의 두뇌에 의해 생성한 생각과 감정, 논리를 이겨낼 수 있을까. 한정된 저장 능력, 정보의 생산 능력은 뛰어나다 해도 과연 얼마나 공고하고 안정적일까.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디지털 기억은 자칫 잘못하면 손상되기 쉬어 불안하기만 하다. 디지털 기기에 의한 기억의 산물들이 비록 생산성과 저장 능력, 초스피드함 등 우월성과 편리성 등이 있겠지만, 디지털 기억은 아날로그 기억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인류의 지적 재산인 집단 기억은 수많은 세월 속에 집적한 인간의 경험과는 견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방대한 지식, 기록, 권력과 문화가 뒤섞여 인류의 삶을 지탱해 왔던 것으로 인식한다.

 

인류의 문명의 변천사 가운데 변곡점이라 할 메소포타미아의 문자 발달, 고대 그리스의 도서관 발달, 그리스와 로마 문예의 부흥, 금속활자 발명, 18세 계몽 운동으로, 이것은 지식을 행위 동사로, 즉 진보하는 것으로 개조하고, 국가의 책임을 정보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까지 확대했다.

-p22~23

 

 인류의 삶의 편리함과 효용성에 맞추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류의 지적 재산을 디지털에 맡겨도 될까를 두고 애비 스미스 럼지 저자는 인간의 기억의 저장고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변천.발전되어 왔는가를 짚어 주고, 현대사회의 총아로 불리는 디지털 기기에 의한 인류의 지적 재산의 집적이 과연 인간의 기억에 의한 기록과 어떠한 함수 관계를 갖었는지, 그 운명적 결합을 역사적 관점, 시사적 관점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무심코 디지털 기기에 쏠려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개개인이 배우고 겪은 바를 머리로 생각하고 정리하여 기록한 것들과 앵무새마냥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으로 기록되는 것들에 대해 가던 길을 멈추고 재고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인간의 기록물은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이 적절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특히 저자는 지식의 조직화를 통제하라는 점에 힘주어 말하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하고 소유할 영향력을 지닌 사적 주체들 사이에서 정보 양도가 이루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맡아 관리할 탄탄한 비영리 기관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집단 기억상실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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