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X언니 키키
백요선.김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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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돈 벌려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요”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재력이 있는 분과의 소개팅을 여러 번 주선해주신 어르신이 계셨다. 겉보기로는 내가 온실 속 화초처럼 보이긴 하나 보다. 돈 걱정 없이 잘 살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실제로는 돈 때문에 쩔쩔매며 합법적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 때 사람들은 많이 놀라더라. 나는 한 번 감춘 적이 없었는데도. 


『나의 X언니』는 열 살 터울이 난 선배 얀니와 후배 백배가 money&art를 매개로 만나게 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가족관계와 돈에 대한, 생에 대한 통찰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돈생’은 만만치 않았다. 팔방미인치고 제대로 하는 것 하나도 없다는 말에 ‘제대로’는 특히 내게 돈 쪽인지, 돈 버는 데만은 재주가 없어서 돈 이야기를 좀 알려줄 선배를 오래오래 찾아 헤맸다. 안타깝게도 다른 데는 멘토가 잘 되어주던 책들도 돈 분야에서만큼은 멘토가 되어주지 못했다. 『나의 X언니』는 그래서 나에게 조금 아픈 책이다. 나에게도 ‘얀니’같은 언니가 있었다면 내 ‘돈생’이 덜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홀로 슬프고 외롭고 아팠던 나에게도 ‘얀니’가 너무나 필요했다. 


X언니, 얀니가 나에게 준 것은 무엇보다도 돈에 대한 자유였다. 돈을 탐욕으로 보지 않고, 돈을 동반자로 보며, 돈을 운용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준 것. 무엇보다 물건에 매이지 않고 적게 소유하며 물건에 자유할 수 있는 모습이 가장 멋있었다. 물론 그녀 자체가 멋있고 예쁘기 때문인 것도 크겠지만 (나는 그녀의 실물을 본 적이 있다.) 얀니의 매력은 비단 『나의 X언니』에 드러난 모습 정도가 아니다. 얀니는 정말 그릇이 큰 사람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그릇이 크다. 그래서 그녀가 거둔(?) 사람은 비단 백배뿐이 아니었을 것, 거기에 나 같은 사람도 비쭉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백배와 많이 닮은 인간인지, 나는 백배가 쓴 돈-글에 엉엉 울고 말았다. 


“운이 좋은 편이라 또래보다 늘 조금 더 벌었는데 그게 나의 자부심이었다. 내가 먹고 마시는 돈을 스스로 마련한다는 사실, 돈이 주는 자유를 일찍부터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돈을 경멸했다. 운이 좋았다고 해도 돈을 버는 행위에서 오는 피로함을 일찍부터 경험했기 때문이다. 돈을 번다는 건 더럽고 치사할 때도 있었다.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이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방학이면 친구들은 캐리비안 베이다, 유럽이다, 놀러들 다니는데 꼬박꼬박 학원으로 출강할 때는 더욱 그랬다. 소비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내 ‘시급’이 떠올랐다. 이건 내가 학원에서 두 시간 버텨야 벌 수 있는 돈이군. 


계속 돈을 벌어야 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집은 갈수록 점점 더 망해갔기에 용돈을 풍족하게 받을 수 없었다. 특히나 내가 10대일 때 우리 집 가난은 절정에 달했다. 사춘기에 맞게 된 ‘가난의 직격탄’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유년 시절에 경험한 약간의 풍족함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백화점 브랜드, 여름 캠프, 아파트가 사라진 자리에 지하상가, 발신이 끊겨버린 전화기, 반지하가 자리를 차지했다. 


가난은 나를 점점 더 계산적이고 냉소적으로 만들었다. 절대로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어떻게든 받지 않고, 남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칼같이 계산해서 꼭 되갚아주었다. 이런 깔끔함과 조숙함 때문인지 친구들은 나를 부잣집 딸로 자주 오해했는데 내버려두었다. 가난만큼은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의 결핍을 채우려 산다. 얀니도 백배도, 그리고 나도 다 돈이라는 결핍을 채우려 아등바등했다. 그리고 얀니와 백배는 그 과정에서 적절한 채움을 얻은 듯. 나는 얀니에게서 무엇보다 충만함을 느꼈다. 아참, 이 책에는 돈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연애팁(나는 은퇴했지만 ㅠㅠ), 삶을 정리하는 법, 사람을 바라보는 법, 가족간의 관계 등...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맞다, 돈이란 것도 자유로워야 할 삶의 일부가 아닌가. 얀니의 큰 사랑과 매력, 거기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랑이 큰 사람은 동생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한다. 나를, 그리고 또 누군가를. 어쩌면 이 힘센 책이 그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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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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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거리가 쏟아지는 책의 작가가 있다. 분명 마음의 결이 같아서다. 와, 정말 어쩜 이렇게 어떤 부분에서는 비슷한 경험을 가졌을까 하지만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은 그 분은.... 나는 SOLO 8기에서 상철이 영식을 보고 “영식님은 저(상철)의 상위 버전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곽아람의 『공부의 위로』를 보고도 나는 또 같은 생각을 했다. 작가님이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고 매료된 장면이 나와 꼭 같다는! (나도 E동 101호에서 슬라이드를 세팅하고 스크린은 어둡게, 계단식 좌석의 상위층은 밝게 스위치를 잘 조절해서 칭찬을 받곤 했는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책을 빌리곤 (혹은 복사하곤) 했는데! 종강시험이면 화면에 뜬 슬라이드 도판을 보고 달달 외워 쓰는 시험을 보곤 했는데!) 하지만 그 분의 미술사 공부와 나의 미술사 공부는 밀도가 다르다. 이게 바로 서울대 인문학의 존엄이구나 싶은 교양의 상아탑에 존경과 부러움이 가득했다. 정말이지... 이건 갑(甲)이다. 영원한 갑님이다!​


운이 좋아 대학을 제 나이에 진학했고, 운이 나빠 공부보다 돈 벌러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운이 좋아 공부하는 것이 행복했고, 운이 나빠 공부를 잊었다. 고되고 힘들었던 대학시절을 운의 탓으로 변명하면서 내가 가장 비겁하게 군 것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았다는 것.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개 나보다 높은 곳을 보았으며, 멀리 뛰었고,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내가 비록 그들의 고아(高雅)한 기준에는 못 미치는 인간일지라도, 곁에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자극이 되었고 눈이 트였다. 대학이라는 공간뿐 아니라 친구들 하나하나가 새롭고 귀한 세계였다.” _ 9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문 : 중국어


내 곁에도 가득했을 높은 곳을 보는 친우들, 멀리 뛰는,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이들을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대학에서 손에 꼽을 만큼 귀한 친구들을 얻었지만 내게는 그들 외에 볼 에너지가 없었다(고 변명했다). 4.0이 훌쩍 넘는 성적표를 쥐고 의기양양 대학을 나왔지만 아무데서도 원치 않았던 예술대 학생의 운명을 원망하기에 나는 세상에 너무 교만하고 내 인생에 무책임했다. 초점을 놓친 흐린 눈으로 발버둥치다가 간신히 들어간 파트타임 잡의 월급봉투 앞에서 나는 드디어 겸손해질 수 있었다. 항상 ‘밥벌이’를 말하는 곽아람 작가는 얼마나 일찍이 겸손했던가, 나는 항상 월급봉투 앞에서 비굴하고 굽신거렸다. 하지만 그 굽신거림이 단 한번도 우아하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직장을 가진 이후로 집어던진 미술도구 앞에서 부끄럽기는 해도 품위 없다고는 생각한 적 없다. 내게 ‘밥벌이’는 그런 것이다. “사회생활을 거듭하면서 세파에 찌들어 나 자신이 너무나 더러워진 것만 같을 때,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될 때” 나도 작가님처럼 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지금도 너무나 눈물이 난다.


“사회생활을 거듭하면서 세파에 찌들어 나 자신이 너무나 더러워진 것만 같을 때,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될 때, 맥베스 부인처럼 수백 번 그 손을 씻어도 도무지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때는, 울면서 읖조렸다.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혀 있을지라도,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 _ 14 함께 읽는 법을 배우다 : 독일 명작의 이해


이 귀한 책 덕분에 20년을 거슬러 내가 공부했던 노트를 펼쳐보았다.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노트도, 이사의 흔적으로 사라진 노트도 있어 남은 것은 단 둘뿐이다. 나도, 그 시절 (공부를) 그렇게 사랑했고, 그렇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왔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는 dignity인데, 나는 디그니티가 있는 사람을 흠모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노트가 나의 디그니티 한 조각이라면, 『공부의 위로』는 곽아람 작가의 높은 디그니티 한 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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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 내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트
이소영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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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화가(日曜畵家)라 불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5, 나인 투 식스로 생계를 성실히 유지하고,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자신의 취미, 혹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예술가라 부르지 않는다. 예술로 밥 먹고 살 수 없는 본인을 직장인이라 부르는 겸손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고, 나 역시도 그 부류의 인간이다. 우리는 예술가이고 싶지만 진짜 예술가가 아니라 생활이 우선인 용기 없는 사람들이라는 내면의 위축감이 있고, 그럼에도 시간을 쪼개 뭔가 계속 생산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라는 마음이 있으므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이 눈물 나게 좋았던 이유가 그래서였다. 세관원을 하여 르 두아니에(Le Douanier)’로 불렸던 대표적인 일요화가 앙리 루소로부터 시작하여 청소부였던 헨리 다거, 우체부였던 페르디낭 슈발과 루이 비뱅, 가정부였던 세라핀 루이 등 화가로서 인정받기를 감히 욕심내지 않고, 세간의 유행에 눈을 돌리지 않으며, 시간을 귀히 여겨 끊임없이 작고 간결한 (앤 라이언)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물론 이 책에는 착실하게 자기 세계를 다져간 조용한 화가들, 세파 가운데 생존조차 버거울 때 살고자 그림을 그린 화가들, 흑인 노예였기에 세상에 남긴 메시지가 거의 없는 화가. 정신적인 붕괴로 인하여 괴이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도 나온다. 그러나 토레스 가르시아를 설명하며 기록한 이소영 작가의 이야기처럼 나 역시 삶의 물결이 비슷한 예술가를 만나면 나는 더 그의 삶을 돋보기를 가지고 바라본다.” 오늘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쉽고, 이 세상에 뭔가 남기고 싶어 몸서리를 치며 시간을 쪼개 쓰는 사람들. 뉴욕까지 미술 유학을 왔지만 생활비를 버느라 막상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 ‘3×3’ 미니 캔버스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 안에서 그리는 그림으로 기쁨을 누렸던 강익중과 우리와는, 살아있을 때 종래 유명해지고 세상에서 인정받고 찬사를 얻었다는 것 이외에 무엇이 다를까?

 

목적 없이 못 배겨서 하는 창작의 생활. 누가 알아봐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저 삶 자체로 만족하는 그들이, 언젠가 그들의 삶이 아름다웠다 말하며 서랍에서 꺼내 주는 이 앞에서 얼마나 부끄럽고, 또 얼마나 감당할 수 없이 기쁠까. 이소영 작가의 초록빛 온아(溫雅)한 눈이 어찌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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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 - 사랑과 기억에 관한 가장 과학적인 탐구
이고은 지음 / 아몬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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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사랑이 이제는 너무 싫다. 사랑에 심신(心身)을 불태울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한 걸 떠나 아깝다. 일에 지쳐 나가떨어졌을 때 쓸쓸한 사랑의 온기가 간절하다가도, 어느 순간 사랑에 진절머리날 때도 있다.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은 이런 어른이에게 딱 적절한 사랑의 균형을 보여준다. 잔잔하고 그윽하게, 그 사랑을 헤아려볼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는 심리학은 사실 보다 과학에 가까운, 차가운 학문이다.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으로 공부하는 인지(認知) 심리학자가 자기 사랑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해석하여 내어보내는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전시(展示)하는 것이 아니라 발산(發散)하기 위해서. 이 겸손한 사랑의 모습이 하 잔잔하여,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 같은 마음을 가졌던 사랑의 기억을 되돌리고, 다시금 그러한 기억을 만들고 싶어 사랑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누군가와 이 책을 함께 읽기 위해 당신은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으리라”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 어쩌면 이다지도 정확한지.


“상대를 아름답고 지적인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면 그 사람은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아름답고 지적인 사람으로 행동한다. 서로 선순환의 궤적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좋은 관계는 상대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뇌는 환경과 상황을 파악해 그에 맞는 가장 타당한 행동을 선택한다. 상대를 ‘소중하게’ 대하면 그는 정말로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 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상대란 불가능하지만 내 마음에 만족스러운 사람은 가능하다.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만큼은 흡족한 사람일 수 있다. 운명적인 사랑이란 건 없지만 사랑의 운명은 두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내 깊은 곳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에세이란 장르가 좀 그렇다, 속살 아닌 속살을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럽기 그지없다. 에세이의 옷을 입은 심리학 교양서가 이미 낯설지 않은 이 시절, 진짜 에세이다운 심리학 에세이가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이 아닌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본다. 마음을 감정을 기억을 고스란히 열어 보이는 것이 에세이라면, 이 책이야말로 심리학자의 감정과 기억을 솔직하게 열어보인 에세이가 아닌가 싶고, 그 안에 저자의 학문적 기억이 드러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싶고. 예시로 첨부된 반가운 학자들의 이름을 눈에 담으며 과거에 담아두었던 그들의 연구들을 기억하고, <참고문헌>을 통해 저자가 공부한 흔적을 읽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특히 『소모되는 남자』등으로 유명한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높은 마음’ 연구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어 기뻤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돈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높은 마음’이 기본 값으로 세팅되어 있다고 했다. 또한 높은 마음이 익숙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각종 사고나 중독 문제를 비롯해 여러 범죄를 덜 저지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랑의 수명은 영생이지만, 사실 사랑은 언젠가 사멸한다. 슬프게도 우리의 유한한 기억 때문에, 기억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진다. 소설가 이승우는 사랑의 숙주가 인간이라고 했지만 사실 사랑의 숙주는 인간의 기억인 셈이다. 벌써 다섯 번째 덮는 책의 마지막 장을 아쉬워하며, 이 사랑의 책을 좀더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이 마음을 기록한다. 이렇게 잔잔한 사랑의 속살들을 닮아갈 새로운 순간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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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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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과거가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분명 의미 있게 읽었던 책도 기억에 희미하고 한 장 두 장 넘기며 만나는 내 연필 밑줄과 필기에 흠칫 놀란다. 옛날 같았으면 완연한 내리막에서 불안해야 했을 나이, 세상이 변하여 아닌 척 한 자기 자리를 유지하며 아직도 내일을 바란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를 다시 펼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건 책을 쌓아두고 치여 사는 이의 특권 아닐까.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1장부터 여러 장의 도판을 제시하며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와 ‘이것은 미술이다’로 저자를 도발한다. 미술사의 틀을 잡으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읽은 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저자는 어떤 미술책이라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라스코 동굴벽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부터 미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두 장의 도판으로 저자의 의도는 쉽게 드러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라고 하지만 뒤샹의 「엘라쇼오뀌」는 미술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외부 주문에 의한, 종교적인 의제를 위한, 생활의 이용 목적을 위한 미술은 미술이 아니다. 작가의 내면에서 일어난 자이의 표현이 미술이라고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 명확한 이야기를 하려고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한 권의 책을 썼다. 물론 뻔한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용어, 미학 이론, 미술창작을 할 수 있는 특권, 아카데미의 영향력, 박물관의 역사, 모더니즘, 아방가르드-대중미술을 이야기하면서 미술의 사회학적 속성을 ‘계급’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한다. 서양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 비판, 고급 취향의 부질없음, 대중문화의 가치 등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가 전혀 뻔하지 않게 서술된다.

물론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최근 책이 아니다. 1995년 작, 역자 박이소가 부지런히 번역했는지 한국에는 1997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나오고 오래되지 않아 역자가 사망해 번역을 손볼 만한 여력이 없었을 텐데도 번역은 훌륭하고 문장은 매끄럽다. 어디 하나 불만이 나올 데가 없다. 중간중간 분홍색 별색으로 첨가한 역자 주(注), 전문용어의 설명은 친절하다. 가격까지 훌륭하다. 표지도 분홍색 별색 1도, 내지는 재생 용지를 사용하고 도판을 흑백으로 인쇄해서 이 저렴한 가격이 나왔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책 내지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도판들이 가득하다. 내지 레이아웃도 칭찬할 만하다. 도판이 글이 흘러가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어 글을 읽다가 앞뒤 페이지를 뒤적거릴 필요가 없이 편안하다. 이미지가 중간중간 크게 들어가 있어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중급 독자라도 술술 읽으며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곰브리치에 밑줄 긋고 서양미술사 교양수업을 착실히 들은 대학 1~2학년에게 추천한다. 서양 남성 백인 중심으로 서술된 곰브리치나 잰슨의 서양미술사에서는 볼 수 없는 여성, 제3국, 대중문화의 이야기가 균형 있게 들어 있는 아주 좋은 책이므로. 좋은 책은 오래오래 살아남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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