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를 즐겨 읽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어쩌다 보니 자꾸만 신간을 꼬박꼬박 읽고 있다. 평범한 독자인 내가 자꾸만 걸려드는 것은 출판사가 아무래도 마켓팅을 무척 잘하는게 틀림없다. 이번에도 어쩌다(이 어쩌다가 늘 의심스럽다)보니 책 소개글을 읽었는데 무척 흥미롭게 들렸다.


 강도에게 어린 딸을 잃고 이혼한 부부가 있다. 이혼후 남편은 애완동물 장례사를 하고 아내는 프리랜서 기고가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전부인이 살해됐다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너무 솔깃한 소개 아닌가. 


일전 몽환화 리뷰에도 썼지만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남자주인공에게 언제나 매력을 느끼는데 이번에는 무려 애완동물 장의사다. 생명의 뒤안길을 소중히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게 틀림없다.과연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매해 몇편의 작품을 써내고 있는 이 작가도 아마 근면하고 과묵하리라 짐작해본다)  

 

사형제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니 유족들의 고통, 가해자의 심리, 사형판결을 받은 피의자의 심정 등 많은 주제가 다뤄지고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사건이 교차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감정적이기 보다 차분히 흘러간다. 작가는 유족의 울분보다 사형제도 대한 다양한 관점을 독자가 검토하길 바란 것으로 짐작된다. 내게도 유족의 입장에서 사형과 사형이 아닌 것이 어떻게 심리적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변호사의 입을 통해 건네진 사형판결을 받은 피의자가 개전의 정을 보이기 보다 그냥 삶을 낙담해버린 것이나 오랜 세월 밝혀지지 않은 범죄가 그 범죄인의 삶을 어떻게 일그러트렸는지, 혹은 전부인을 살해한 뒤 범인의 마음 등이 좀 더 그려졌다면 작품이 풍성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작품에서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전해듣거나 적힌것을 읽거나 그렇다) 같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지만 등장인물의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작가의 작품 중 방황하는 칼날 쪽이나 용의자 x의 헌신 쪽이 내게는 더 좋았다. 


중대한 범죄의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평생 그 짐을 지고 산다. 영원히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모욕과 상실의 감정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지 극복되거나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때린 놈이 발뻗고 잔다는 흔한 얘기에 진실이 있다고 본다. 사형에 처해진다면 적어도 피해자가 죽는 순간에 느낀 공포의 1/10 정도는 되갚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전의 정이라는 것이 반성을 하면 몸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알 길이 없고, 피해자는 그 상처를 평생 가지고 가는데 가해자는 '왜 한번의 잘못으로 평생 꼬리표를 달아야 되는가' 라는 변명은 터무니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가해자에게 자신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가를 깨닫게 할 수 있을까가 교화의 요체일텐데, 백인백답일게 분명하다. 현재 사형을 제외하면 교육, 치료, 노동으로 교화의 방법은 크게 나뉘는거 같다. (제대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잔혹한 범죄자들의 특징엔 '능숙한 자기합리화'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니 30년간 땅을 파게 한다거나 심리치료를 해본다고 될런지는 모르겠다... 이를테면 성폭행 가해자가 죽는 그 순간까지 성폭행 피해자가 느낀 고통을 알게 될 확률이 몇 %일까? 자신이 죽인 사람이 느꼈을 공포를 알 수 있을까? 역시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회에서 그저 격리하는 쪽을 선택하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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