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이라는 남자..

응큼스러운 저 남자의 눈길을 좀 보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런 눈빛을 할 수 있는건지...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정직한 눈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디 남자뿐일까? 말은 하지 않아도 남자가 여자를,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쳐다보며 흘끔거린다는 게 아마도 연애의 시작이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이 영화에서는 우리 주변을 그토록 흔하게 떠도는 사랑이란 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좋아하니까 함께 있고 싶고, 좋아하니까 만지고 싶고, 좋아하니까 같이 자고 싶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으니 어찌된 일일까?  아주 천연덕스럽게 젖었나요? 를 물으며 나는 지금 일어설수가 없으니 잠시만 더 앉아 있다 갑시다,라는  남자의 그 뻔한 작업멘트를 날린다. 여자는 뭔가로 한방 맞은듯한 황당한 표정을 하면서도 마약하셨어요? 한다. 그런데 그 말도 뻔한 작업멘트의 일종으로 들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저 남자, 6년동안이나 사귄 애인이 있단다. 직업도 선생인데다 생긴것도 잘 생겼으니 나름 여자들 앞에 선다는 거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철철 넘쳐났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에게 요즘말로 필이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지겹도록 사랑했던 애인보다는 참신(?)하게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었을까? 애들말마따나 맨날 밥만 먹냐? 뭐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지만 이 영화속에서는 그런 감정위에 또다른 진실을 오버랩 시키고 있다.


끝도 없이 훔쳐보는 저 남자의 시선속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지.. 하지만 무언가 맘과 뜻대로 잘 되지는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창밖만 내다보는 저 여자의 마음속에는 전혀 느낌조차도 없다는 것일까? 굳이 싫은 표정이 없는 걸로 봐서는왕내숭처럼 보여지는데?  그런데 저 여자, 과거가 있단다.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기에 같이 자기도 했던 남자에게서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단다. 그래서 남자를 믿지 못하겠단다. 그래서 마음에 빚장을 걸어버렸단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사랑은 오로지 하나뿐일까? 사랑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만 우리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는 게 내 지론이다. 사랑은 앞에 서는 사람에 따라 그 모습과 향기가 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잽싸게 옷을 갈아입게 마련이라는 거다.

 홍이라는 여자..

그렇다면 이 여자.. 내숭의 여왕같은 표정으로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또 궁금해진다. 괜찮은 남자같은데 다시 시작해봐? 에이, 남자라는 게 다 똑같지 뭐.. 어쩌면 이렇게 마음속으로 재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싫지않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미친척 차버리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가끔 한번씩 만나는 순간마다 그 남자의 진실이 보여지게 된다면 여자는 십중팔구는 마음을 열게 되어 있다. 일종의 보상심리처럼.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도 함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그 차갑던 과거를 따스하게 안아주고자 하는 남자의 진실앞에서 여자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다. 잘 될까?



결론은 없다. 잘 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잘못된 것도 없다. 언제나 항상 현재진행형인 사회적인 편견앞에서 우리는 결코 무릎 꿇어서는 안된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여자라고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걸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여자의 'NO'속에는 'YES'가 함께 들어 있다고 착각하는 남자들의 그 어리숙한 선입견에 과감하게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여자로서의 자아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내식대로만 받아들여 해석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따스함보다는 내면의 아픔까지도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며 그것이 또한 진정한 사랑은 아니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 연애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아주 짧고 굵게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만 연애를 시작할 수도 있고, 자신의 일상 모두를 아끼고 위해주는 그 누군가와의 만남을 꿈꾸며 시작되는 연애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배제된 만남에 대한 경고장같은 영화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뻔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되는 연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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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이 제대로 들어난 소재.. 그러나 그런 불륜조차도 포옹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
우리의 삶은 예정되어지지 않음의 연속이다. 그랬기에 다가오는 모든 순간들이 희열 또는 아픔일게다.
처음부터 내것이라고 넙죽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모여 종내는 모두 내것으로 산화되어져 버리고마는.. 그래서 아픔일 수도 있고 행복일 수도 있는.. 그래서 넙죽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더 망설여지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이 너무도 싫었던 때가 있었다. 사랑이 다시 찾아오면 오던 길로 가리라던 어느 여가수의 노래처럼 그렇게 저기 멀리쯤에서부터 그 사랑이 보여지는 것이라면 차라리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은데... 알 수 없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속을 두드리는 물음표의 방문을 받게 된다. 사랑은 아픔일까?
화면혹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모습은 처음에는 기쁨이었다가 나중에는 슬픔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슬픔으로 짓눌렀던 사랑이 나중에는 기쁨으로 승화되어져 웃게 만드는 그런 모습도 있다.
하지만 낯설음이었다가 설레임으로 변화되는 그 사랑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향기롭다.
어떤 영화에서는 그렇게 외쳤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지만 사랑도 변한다. 시간이 가는데 그 시간이 사랑을 그냥 놔둘리가 없다.
그 시간속에서 변해가는 그 모습 또한 내가 간직해야할 사랑이 분명할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미흔... 12월 24일 밤의 충격으로 마음을 닫아버린 여자. 빨래를 개고 있던 미흔 앞에서 빨리 끝내고 자면 안되느냐고 보채던 남편을 행복하게 바라보던 그 여자의 불행은 낯선 여자가 찾아왔던 그날밤부터였다. 그 낯선여자가 아주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이었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여자 미흔의 일상을 만들어주던 행복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지.. 6개월 후 그들이 다시 자리잡게 된 낯선 소도시의 그림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우리가 언제나 꿈꾸며 살아가는 그 평안을 거기서 찾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서는 그 풍경처럼 그렇게 낯설지 않은 행복.. 내가 어쩌면 그런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행복은 없는 것 같다. 슬픔에서부터 삶의 환희는 비롯되어지는 거라던 그 여자, 미흔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을 울리는 걸 보면 말이다.  서글픈 가족사의 비애를 안은 채 버려진 텅 빈 그 집에서 그녀가 바라보았던 깨진 액자속의 젊은 부부처럼 우리의 모든 사랑이 어쩌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2월 24일 이후로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떼어내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쓰던 그녀의 표정없는 시간들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그 여자속에서 숨쉬는 모든 시간들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스스로를 포기해버리던 순간들이 너무도 안스러웠다. 저 여자 어떻게 해! 어떻게 하면 좋아!

최 인규... 이런 게임 한번 해보실래요?  서로 원할 때 만나고 섹스도 즐기고... 하지만 이 게임에는 어떤 규칙이 있답니다. 사랑한다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지는 거예요...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었고 그 여자 미흔은 이렇게 물었었다. 왜 그런 게임을 해야 하죠? 그런 게임을 하는 여자들도 있나요? 그랬던 그들이 결국 그 게임에 빠져들게 되는 상황이 왠지 껄끄럽지가 않다. 괜찮은 외모를 가졌고 직업이 의사인, 속된 말로 얘기해서 정말 선수(?)같은 그 남자 인규의 꼬임에 빠져버린 것도 아닌 것 같다. 타락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여자들만이 빠져들 것 같았던 그런 게임에 그녀 스스로가 뛰어들게 만드는 그 남자 인규의 속성은 무엇이었을까? 왠만한 사랑은 시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순을 밟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면 그 다음은 뻔하다. 원점회귀.. 다시 자신을 버리기위해 아니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태로 되돌아가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남자 인규속에도 보여줄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던 깊은 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절망속에서 헤어나기 위해 어쩌면 그런 게임에 도전장을 던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표현할 수 없었던 그런 아픔을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 남자 인규에게 주문을 걸어주고 싶었었다. 다시 한번만 그 게임에서 고의적인 항복을 외쳐보라고...

密愛... 아이러니하게도 미흔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던 상황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와 그녀가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을 되돌려주고자 한다. 어쩌면 미흔에게는 하나의 반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살갗을 뚫고 올라오던 두려움속의 희열을 그녀는 평생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반항적 일탈이 그녀 깊숙히 각인되어져 그녀에게는 삶을 살아내는 하나의 버팀목으로 자리할거라는 생각을 한다. 정말로 그랬다. 그 좁은 나비마을에서 딱 한사람 남편만 빼놓고 그들의 밀애를 모두 알아버렸을 때만해도 그들 두 사람에게는 별로 달라질 게 없었다. 떠나보지도 못한 채 끝내야 했던 그들만의 원행은 그녀에게서 그 남자를 빼앗아갔지만 그 남자와 함께 했었던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남아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아난 듯 하다. 여덟살 먹은 딸아이에게도 자신의 과거 때문에 속죄하듯이 그녀 곁에서 머물렀던 남편에게도 어떤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어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 그냥 그녀의 곁에 머무는 일상같은 존재로만 보여졌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물먹은 스펀지마냥 미흔역을 한껏 품어 안은 김윤진의 연기는 정말 끝내준다. 역시 멋진 배우다. 그녀가 발산해냈던 이미흔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별스러울 것도 없이 그저 평범한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안이 무언가로 꽉 채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던 영화였다.  오늘 무슨 날이신가봐요, 혼자서 사진을 찍으시는 걸 보면? 아니요... 그냥 사진이 없어서요... 사진관의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 평안이 묻어있다. 그녀 미흔에게 더이상의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다.

넌 나하고 놀 수 없어.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그런데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많이 잊혀진 말인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지는 거야. 넌 내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따분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밝아질 거야. 네 발자국 소리가 다른 발자국 소리와 다르게 들릴 거야...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이렇게 말했었다. 길들여진다는 건 행복한 일일까? 여우의 말처럼 길들여졌을 때 찾아온 행복은 너무 익숙해 느끼지 못하는 행복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시간속에서 행복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또다시 길들여지기 위해 방황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규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그 사랑의 종착역인 결혼을 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처음과 똑같아질 뿐이라고... 하지만 미흔은 끝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그 연인을 가슴속에 품었으니 행복하겠다...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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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과 최루가스가 길거리위에서 엉겨붙어 싸우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학생이라면 그런 시위 한번쯤은 해야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념이 춤을 추고 그 너울거리던 춤사위에 숨이 막혀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던 사람들도 있었다.  행동을 하는 사람과 그 행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했던 사람들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이렇게 훌쩍 지나와버린 그 시간들속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행동하는 사람들의 질서였다고나 할까?  아무리 이념만을 외쳐대고 그 이념속에 묻혀 사는 그들이었다고는 해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차마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던 그들만의 질서를 기억한다. 한쪽으로는 화염병을 던지며 한쪽으로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 화염병의 피해속에서 피신시키고자 했었던 그들의 질서...  눈 밑에 치약을 바르면 덜 따가울 거라며 교복입은 채 출입금지였던 다방안으로 피신했던 여학생에게 다방주인이 내밀던 그 치약을 기억한다.

오현우... 행동하는 사람의 대표격인 인물설정으로 보여진다. 자신 스스로가 판사앞에서 '나는 사회주의자요' 라고 외칠 수 있었던 그의 가슴속에서 활화산처럼 솟아올랐던 그것은 '잠시만이라도 나만 바라봐주면 안되겠느냐' 던 그녀의 눈길조차도 외면해야 했다.  수배자.. 그리고 피신.. 외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정되어지지 않았던 동거는 또다른 이름의 삶을 잉태한다. 함께 있음으로 평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사치였을까?  그의 살갗에 내려와 앉던 그녀의 사랑이 어쩌면 그에게는 바늘처럼 따가운 고통으로 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랬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고통이 다시금  지나왔던 그 길을 바라보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수감되고 함께 행동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용서할 수 없었던 남자는 결국 왔던 자리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빗속에서의 이별.. 어쩌면 그들이 흘려야 했던 눈물이 비로 승화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그런데 왜가니?  하던 여자의 독백이 빗속에 묻혀버리길 바랬는데 그 목소리가, 그 눈길이 빗속에 선명하게 자국을 남겨버린다.  수감.. 그리고 17년.. 모진 고문속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간간히 전해져 오는 그녀의 그림속 아이가 그에게는 무슨 말을 전해줄 수 있었을까?  세월은 참 무심하다. 이념도 행동도 그 세월속에서 무디어지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런게 아니라 그 세월이 무디어지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변해가는 게 세월일테니 말이다.

한윤희...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을 껴안을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찾아 든 한 남자에게 그녀는 말했었다. 이불이 하나밖에 없지만 머물러도 좋다고. 그리고 그들은 한이불속에서 머문다. 그 시간들이 행복이라는 이름을 달고 찾아왔다고 그녀는 생각했지만 '떠남'을 전제로 해야했던 그 남자에게는 그녀의 행복조차 펌프물처럼 그렇게 쏟아져 내리고 말지.. 된장국을 끓이고 두개의 밥그릇에 밥을 담고 상추쌈을 싸서 함께 먹고 싶다는 그 소박함조차도 현실은 인정해주기 싫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오래가지 못할 그녀의 삶을 이유로 그 남자를 떠나보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방황끝에 다시 외진곳의 추억속으로 되돌아와 그림속에 자신의 시간을 덧칠해 버렸을 때 그녀의 삶은 시한부였다. 그와 그녀를 닮은 아이를 키워주던 그녀의 엄마는 아마도 시간의 그림자였을 게다. 그 시간이 커가는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엄마의 생명과 아버지의 고통을 받아 먹으며 달려가고 있다.  그녀의 죽음.. 그 남자의 출소.. 다시 찾은 그곳.. 그리고 회상..

회상... 잊을 수 없었던 그녀의 여운을 찾아 되돌아 온 그들만의 정원. 너무도 오래된 정원속에서 그는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그녀의 시간들에 대해. 그리고 그 시간들이 아픔이었지만 결국 사랑이었고 행복이었다는 것을.  오직 당신밖에 사랑하지 못했노라던 그 목소리가 환영처럼 만들어낸 그녀의 영혼.. 그녀가 그의 어머니가 있는 집을 찾았을 때 가져왔던 오래된 그의 사진이 그녀의 그림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삶을 놓아버려야 하는 민머리 그녀곁에 나란히 서서. 그렇게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고 다시 둘이 되어야 했던 그들이 그녀의 그림속에서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결코 다시 둘이 될 수는 없었노라고.. 사랑은 그렇게 그녀의 가슴속에서 우물같은 깊이로 머물렀었나 보다.  그 남자, 오현우는 그녀가 남긴 두레박으로 회상속의 사랑을 퍼올릴 수 있을까?  이미 지나가버린 그 회한의 시간을 퍼올릴 수 있을까?  은결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아이가 훌쩍 커버려 그들이 사랑을 나누었던 그 때의 나이로 그의 앞에 섰을 때 그는 알아버렸다.  그가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것은 사랑이었노라고. 그리고 이제는 그 두레박의 끈을 놓칠 수 없다고.

오래된 정원... 이 영화는 사실 너무 깊지 않았나 싶다. 보여주는 장면속에 깔아놓은 복선의 흐름이 너무 가파르다. 회상과 현실속으로 건너가는 돌다리를 건널 때 주의깊게 살펴봐야만 한다. 건너야 할 돌의 넓이와 돌과 돌사이의 간격을 잘 파악하지 않으면 물 속에 빠져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이념과 타협하지 못한 자가 겪어내야 했던 삶도, 이념과 타협하며 살아냈던 자의 삶도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 없다. 어느것도 옳다 말할 수 없으며 그르다 말할 수 없을테니.  영화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빌려 말해주고자 하는 것조차도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으니 그것은 온전히 속울음일 뿐이다.  시대가 만들어낸 이념의 희생자는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변화는 우리가 겪어내야 할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복잡함을 떠나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단지 여자는 아주 작은 행복 한자락만을 붙잡고 싶어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남자, 홀연히 떠나야 했을 뿐이라고...

모를 일이다. 사랑이 왜 그렇게 엇박자를 좋아했는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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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けんきですか...

많이 회자되어지던 말이다. 일전에 모 방송프로에서 남자배우가 강 저편을 보며 외쳐대던 장면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일본영화에 대한 느낌이 참 좋아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나와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 깊숙한 곳의 감성까지 찾아가 울림을 주는 그 느낌이 참 좋아서 보기 시작했던 일본영화는 책으로 본 것은 어지간하면 영화로 다시 보지 않는다는 나만의 규칙을 깨뜨리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만큼 다가오는 느낌들이 참 좋았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려내는 그 감각이 좋았던 영화도 있었고 사랑을 너무 몽환적으로 그려주지 않아 어쩌면 다가가기 편했던 영화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이 대부분 좋았기에 그에 못지않게 나의 기대감도 컸을 것이다. 사랑했던 연인을 그리워하는 한 여자가 눈속을 헤쳐나오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한 여자의 사랑보다는 그 사랑을 잉태하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는 구성인 듯 하다. 겨울 산에서 조난당해 죽어야 했던 약혼자를 못내 잊지 못하던 여자는 그의 추모식날 옛연인의 집 앨범속에서 그의 옛주소를 알게 되지만 지금은 국도가 되어버렸다는 말에 아쉬워한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그곳으로 편지를 보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되돌아오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예의같은 건 아니었을까?  이미 없어져버린 주소로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내야 했던 그녀의 마음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하지만 우연처럼 답장이 온다. 옛연인과 같은 이름의 발신자로부터...

사랑이라는 건 어쩌면 지나가버린 시간속에 존재하는 흑백사진 같은 건 아닐까?  사랑에 대해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본다. 사진첩을 펼쳐볼 때마다 바로 어제의 일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곁으로 다가오는 지나버린 시간속의 일들은 참.... 허망하다.  눈물같다.  어느날 불현듯 내가 알지 못한 채, 느끼지 못한 채 흘러내리는 그런 눈물같은 게 사랑은 아닐까?  이 영화속의 주인공은 차라리 옛연인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그랬다면 그 사랑을 영원토록 가슴속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었을 테니까...  같은 이름을 가졌던 옛연인의 동창생과 자신이 너무도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고는 알 수 없는 절박함에 괴로워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을 사랑해주는 선배와 함께 옛연인이 잠들어 있는 그 산을 향해 출발한다.

되새김질 할수록 사랑은 아픔으로 다가오는 건가보다. 어쩌면 잊을 수 있는 마음조차도 사랑이라는 듯이... 옛사랑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다가올 사랑에게 문을 열어주기 위하여 찾아갔던 곳에서 그녀가 이렇게 외쳤지...  おけんきですか... 잘 지내시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외쳐대는 그녀의 속울음이 나는 너무도 슬펐다. 그 밖에 또 무슨 말을 할까? 결국 사랑했으나 그 사랑을 온전히 갖지 못했던 그녀의 지나간 시간들이 어쩌면 미웠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바라보았던 사랑도 눈치채지 못한 채 보내야 했던 또 하나의 사랑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을까? 주인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해 방황해야 했던 사랑이 이 영화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깜깜한 밤이 너무 어두워 차라리 흔들리며 빛을 내려보내는 가로등처럼 그렇게 허황하게 서 있다.  이 편지는 당신이 간직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옛연인과 같은 이름의 동창생에게 그동안 주고 받았던 편지를 돌려보내야 했던 그녀의 서글픔이 고스란히 눈처럼 그렇게 쌓여 있었다.  잘 지내시나요?... 나도 이제 당신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은 추억을 먹고 사는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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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행복을 꿈꾼다.  어떤 상황이던간에 그것이 행복으로 마무리 되기를 원한다. 그 행복으로 인하여 타인에게 불행이 온다한들 나의 행복을 밀어낼 수 있을만큼의 용기는 없을 것이다.  여기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그렇다. 저마다 꿈꾸는 행복의 크기가 달랐고 저마다 생각했던 행복의 끝이 달랐다. 그래서 문제였다. 오직 나하나만을 생각했었던 행복이 그 행복으로 엮여져 있을 사람들에게는 아픔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서민기 (최민식)...  은행원이었지만 지금은 실직상태다. 아내도 있고 5개월 된 딸 서연이도 있다. 조금 불안하지만 헌책방의 구석진 자리에서 주인장의 구박을 받으며 연애소설을 읽는 재미도 괜찮다. 시간되면 맡긴 아이를 찾으러 가고 퇴근해서 오는 아내를 기다리면 된다.  이 남자를 보면서  쫓기듯 살았던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심리를 원하고 있었을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의 아내가 충분히 생활을 이끌어갈만 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생활속에 서서히 젖어들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날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게 되고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기까지 아내에게 그가 원했던 것은 아이에게 '좋은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좋은 아내'는 이미 포기했다는 말일수도 있겠다. 누구나 한번쯤은 부정하고 싶은 아픔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나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않다고 생각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가 꿈꾸어 왔고 지금의 그가 꿈꾸는 해피앤드는 무엇일까?  

최보라 (전도연)... 아마도 영어학원 원장이지 싶다. 여자로써는 나름대로 커리어 우먼이다.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대학시절 애인이었던 남자와 우연하게 재회를 하게 되고 그들의 불륜은 시작된다. 아니 이건 순전히 세상속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불륜이라는 말이다. 그들에게는 결코 불륜이라는 말이 용납될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고 5개월 된 딸이 있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떠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 게다. 단지 옛사랑의 그림자에 푹 빠졌을 뿐이다. 단지 옛사랑이 전해주는 그 달콤함이 좋았을 뿐이다. 어쩌면 그렇게 즐길 수 있다는 순간 자체가 그녀에게는 일탈의 기쁨쯤으로 느껴졌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남편에게서 그녀의 불륜에 대한 낌새를 알아채기 시작하면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려고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안스럽다. 이미 떠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는 거, 생각처럼 그렇게 쉽진 않을테니까. 그녀는 왜 그런 사랑을 꿈꾸었을까? 그리고 그녀가 그렸던 사랑의 해피앤드는 어떤 것이었을까?

김일범 (주진모)... 오피스텔에서 혼자 산다. 우연히 만난 대학시절의 애인에게 모든 걸 올인했다. 그녀에게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무엇이라도 줄 것같은 그녀의 태도를 보면서 그는 나름대로의 일상을 만들어 간다. 그녀의 물건을 사고 그녀의 아이를 맞아 들일 준비도 하면서.. 착각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착각도 아니고 집착도 아니라고. 오직 순수한 사랑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어찌보면 착각과 집착을 만들어내는 게 상대방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걸 불륜의 남자와 여자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려고 하는 애인을 바라보면서 그는 아마도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보일리가 없다. 결국 선을 넘었고 그녀의 아파트까지 찾아가고 말았다. 그는 단지 옛사랑을 다시 찾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꿈꾸었던 해피앤드가 너무 슬프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해피앤드...  서로 다른 해피앤드는 이미 끝났다. 아픈 아이를 안고 돌아오던 남편 서민기는 아파트 복도에서 포옹하고 있던 두사람을 보면서도 '좋은 엄마'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했을 것이다. 아주 간절하게.. 하지만 김일범은 끝내 그녀 최보라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론은 죽음이다.  두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남편 서민기는 살인을 계획하고 확실한 알리바이를 만든다. 살인현장에서 발견되는 김일범의 체모... 이 모든 게 사랑했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면 모순일까?  홀로 남은 남편 서민기가 욕실에서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던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는 사랑이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한 남자의 해피앤드만 남았다. 그의 해피앤드는 과연 어떤 것일까? 

최민식... 그가 하는 연기는 참 능청맞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에게는 《올드보이》의 이미지가 너무 깊게 각인되어진 듯 하다. 이 영화속에서 아내를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올드보이속의 최민식을 떠올린다. 특별히 대사가 많은 것도 아닌데 그저 그가 채워주고 있는 장면들은 꽉 차 보인다. 이렇다하게  돌출되어진  장면도 없어보이는데 그가 그 영화속에 있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배드신... 파격적이다. 전도연과 주진모의 배드신은 단 두 번뿐이었던 것 같은데 상당히 인상깊다. 대역배우를 썼든 직접 연기를 했든 그건 상관없다. 밀회를 즐기는 그들만의 환희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애인의 모든 것을 갖고 싶어했던 그녀의 질투심, 그녀의 질투심이 불러 일으킨 그 남자의 착각과 집착 또한 잘 그려져 있다. 세 배우의 연기... 정말 멋졌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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