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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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세상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23년 전의 비탈섬이고요. 사이다이지 출판의 초대 사장님인 사이다이지 도시로 씨를 찾아온 갑작스러운 죽음에 얽힌 일이죠.” (-203쪽)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살인사건이 존재한다. 23년전에 있었던 살인과 어제 일어난 살인은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르다. 외딴섬, 그리고 유언장 개봉을 위해 모인 가족들. 그들 중의 누군가는 살인자였고 그들 중의 누군가는 죽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돈'이 원인일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살인이 일어난 것일까?

그 외딴섬에는 가족들을 위한 별장이 있다. 책표지에 나와 있는 바위섬이다. 그런데 저렇게 뾰족한 바위섬에 어떻게 별장을 지었을까? 섬의 한면이 저렇게 깎아지른 절벽일 뿐 다른 쪽에서 보면 그저 비탈진 섬이라고 나온다. 바람과 파도가 거세면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섬이다. 그렇다면 추리소설의 배경은 완벽하게 깔아졌다. 이제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며 범인을 잡아내면 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언장 개봉을 위해 모인 사람들 중에는 가족외의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탐정, 유언장을 읽어줄 변호사, 그리고 제를 올려줄 법사다. 추리소설인데 탐정이 안나올 수 있나?(뭐, 안나오는 경우도 있긴 있다) 살인사건이 났으니 이제 가족중의 누군가는 살인자가 된다. 그러나 이 가족, 전혀 흔들림이 없다. 단지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던 '그 때의 비밀'이라는 말에만 흔들릴 뿐. '그 때의 비밀'에 대한 단초를 꺼낸 사람이 죽었을 거라는 건 미리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탐정은 그 '비밀'로 인해 살인이 발생했음을 직감하고 '비밀'을 풀기 위해 심리전으로 들어간다. 그래야 현재 일어난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밀',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엄청난 것이길래 살인까지 일어났던 것일까?

“확실히 그렇게 볼 수 있는 상황이군. 발이 미끄러져서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내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23년 전 사건 때와 완전히 똑같은 전개인데. 정말로 그럴까?” (-274쪽)

태풍으로 인해 꼼짝없이 섬에 갇히게 되던 날 살인은 일어났다. 살인이 일어나던 날 밤, 그 가족중의 어린 딸이 공중에 떠 있는 빨간 도깨비 귀신을 봤다고 말을 하지만 누구도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또다른 누군가가 빨간 도깨비 가면을 쓴 사람을 보게 된다. 그리고 탐정은 알게 된다. 23년전의 사건과 상황이 어느정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공교롭게도 죽은 사람이 탐정이 몇 년동안 수소문해서 찾아냈던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시체는 참혹했다. 강하게 후두부를 공격당했고 갈비뼈까지 부러졌다. 도대체 이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런 와중에 탐정은 입이 가벼운 법사에게서 23년전의 또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세 명의 중학생이 외딴섬 근처로 밤낚시를 왔다가 겪게 되었던 희안한 이야기를. 낚시 도중에 보았다던 귀신과 흑룡의 이야기를.

일전에 북다에서 출판되었던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우케스의 <이상한 그림>이다. 이상하게 그려진 그림과 얽힌 사람들, 그 사람들의 심리를 다루고 있었는데 정말 흥미로웠었다. 그 북다에서 다시 일본추리소설을 소개하고 있기에 냉큼 손이 갔던 책이다. 하지만 <이상한 그림>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던 듯 하다. 트릭과 얽힌 구성들은 이채로웠지만 설명하듯 이어지는 이야기의 짜임새에서 긴박함이나 조여드는 맛은 없었다는 게 솔직한 평이다. 문화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작가의 노련함은 있었겠지만 반전에서조차 추리소설의 매력인 짜릿함은 없었다. 외딴 바위섬과 그 섬에 자리한 기묘한 저택이라는 자극적인 배경만이 시선을 끈다. 일본전래동화 <모모타로>는 그저 조금 거들뿐이다. 물론 개인적인 관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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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 단편소설 모음집
알퐁스 도데 지음, 김이랑 옮김, 최경락 그림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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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세대라면 아마도 세계명작전집 한번쯤은 읽어봤을 게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세계명작을 읽혔는지... 그 이유를 최근에야 알았다. 그것조차도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 혹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세계명작 한권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사 책을 읽지 않았다해도 영화 또는 연극과 같은 형식으로 많은 작품이 우리곁에 머물러 있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고는 해도 그많은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이 책속에도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존재한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루쉰의 고향이 그렇다. 다시 읽은 세계명작단편집은 나이 들어서 읽으니 어렸을 때 읽었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찾아와 좋았다. 읽으면서 여유로움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야말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책방에 가면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에 먼저 눈길이 간다. 오래토록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각각의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인간 군상들, 또 그들의 끝없는 탐욕과 위선을 볼 수가 있다. 다양한 인간의 심리를 책을 통해 만나게 된다. 깊숙히 감춰둔 인간의 어두운 면과 그 반면 희망이나 사랑과 같은 밝은 면도 함께 볼 수 있다. 이미 오래전에 쓰였음에도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 어디든 사람 사는 건 똑같다는 말일 터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인간의 기본적인 근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알퐁스 도데의 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모파상의 목걸이는 항상 안타까움을 남긴다. 친구였음에도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자존심이었을까? 그 알량한 자존심으로 인해 평생을 목걸이값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을 여인을 생각하게 된다. 포의 검은 고양이는 지금 읽어도 무섭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여전히 감동을 준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지금도 많이 좋아하는 작품중의 하나다.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즐거운 가든파티가 열리던 날, 집 아랫쪽의 동네에서 초상이 났다. 아이들과 아내만을 남기고 젊은 사람이 마차에 깔려 죽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가든파티를 취소하지 않았다. 어린 딸 로라는 마음이 켕겼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엄마는 남은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아 로라에게 초상집으로 보낸다. 남은 음식이었다는 것 때문에 로라는 또한번 마음이 켕긴다. 어린 로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과 죽음 앞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화려하게 치장된 모자와 드레스가 부끄러웠다. 로라는 울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돌아오는 로라에게 오빠는 이렇게 말한다. 로라야, 인생은 다 그런 거야...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다. 마음이 서글펐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또한 그렇게 말해야 할 것이기에. 인생은 다 그런 거야.

이 책에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별, 기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와 목걸이,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와 어셔 가의 몰락,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 그리고 20년 후, 앙드레 지드의 탕아 돌아오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밀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너대니얼 호손의 큰바위 얼굴,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빅토르 위고의 가난한 사람들, 루쉰의 고향,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이렇게 20편이 실려 있다. 이만큼을 살았어도 아직 배울 게 많다.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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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부부 범죄
황세연 지음, 용석재 북디자이너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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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제발 좀 죽어주지 않을래? 책띠에 있는 저 한마디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략 난감. 평생토록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던 부부, 하지만 헤어지면 남보다 못하다는 부부.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다. 죽여버리고 싶을만큼 미울 때도 많다. 그런데 직접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있다. 귀신은 뭐하나 저 인간 안잡아가고. 뒤돌아서는 뒷통수에다 확, 그냥! 주먹 몇 번 그러쥐고. 그런 부부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는가를 한번쯤은 물어야 한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안나고, 핑계없는 무덤도 없다는데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인들 있을까?

소설집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많이 망설였지만 부부범죄라는 주제가 시선을 끌었다. 별 기대없이 첫번째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읽기 시작하면서 바로 빠져들었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강하게 다가왔다. 짧은 소설속에 어쩌면 그리도 강하게 메세지를 담아냈는지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던 책이었다. 어디서 읽었음직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책의 말미에 작품해설을 읽으며 아하, 했다. 현재의 우리가 직면한 사회의 문제들을 하나씩 들춰내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이채로웠다. 저자의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인다.

치매 노인의 심리를 다룬 <결혼에서 무덤까지>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왔을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범죄 없는 마을 살인사건>은 씁쓸한 맛을 남긴다. 맞서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에게 끝없이 휘두르는 폭력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그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명패 따위가 열개, 스무개 걸린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20년간 단 한 건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마을’이라는 명분으로 인해 한 가족이 끝없는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을 폭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이는 누구였을까? <비리가 너무 많다>와 <개티즌>을 통해 현시대의 우리를 보게 된다. 장난으로 '들켰다, 튀어라!' 라는 메세지를 무작위로 보냈더니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우리의 주인공. 마누라에게 손벌려가며 살아야 하는 잘 풀리지 않는 인생, 그렇게라도 한번 해보자고 명단을 작성했다. 가장 비리가 많을 것 같은 부류만 골라 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들켰다. 그러니 입막음용으로 돈을 보내라.' 세상에 돈벌기가 이리 쉬웠단 말인가? 우리 시대에는 정말로 비리가 너무 많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 한마디가 제 발등을 찍은 도끼가 될거라는 걸. 개티즌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혹은 재미삼아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회의 단면을 그렸다고 짐작했다면 얼추 정답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어떤 추리물로 태어났을까? 그 외에도 한적한 시골집을 구매한 후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 <보물찾기>, 아내의 불륜에 대한 복수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모텔에서 살인을 하게 되는 안타까운 남자의 이야기 <내가 죽인 남자>는 정말 기발하다. 다 읽고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재미있는데 너무 짧아! 별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추리형식으로 만들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작품해설에서 변증법적 소설이라는 말이 자주 보였다. 무엇인가를 변증법적으로 접근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토론으로 해결해보자는 뜻이라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 추리의 끝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어쩌면 그래서 짧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더 공감하며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정말 흥미진진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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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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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들과 함께하면서 싯다르타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자아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길들을 걷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아를 죽이는 길을 걸었다. 고통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고난을 겪으면서, 고통과 굶주림과 갈증과 피로를 극복하면서. 그는 자아를 죽이는 길을 걸었다. 명상을 통해서, 감각을 비워 일체의 상을 버림으로써. 그는 이러저러한 길들을 배웠다. 수천 번씩이나 자아를 버렸고,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이나 자아를 떠난 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나 자아를 떠나는 길들을 걸었음에도 그는 그 길이 끝나면 다시 자아로 되돌아오고 말았다.(-32쪽)

브라만으로 살며 날마다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명상 중에 깊은 회의에 빠진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 최고의 스승들,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결국 싯다르타는 참나를 찾기 위한 길을 가기로 한다. 그의 길에 친구 고빈다가 따라 나선다. 고행수도승이 된 두 사람은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죽이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 명상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 올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그러던 중 그들은 고타마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고 위대한 성인이라는 그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번뇌를 극복하고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고타마. 제따와나 숲에서 고타마를 만났으나 싯다르타는 그의 제자가 되지 않고 깨달음의 순례를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고빈다와 헤어진다.

오! 이제 더 이상 싯다르타가 나에게서 빠져나가게 하지 않겠어. 더 이상 참나니 세상의 번뇌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나를 죽이고 갈가리 찢어서, 그 조각들 배후에서 어떤 비밀을 찾아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요가베다의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아. 아타르바베다의 가르침도, 금욕주의자들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나 자신에게서 배울 거야. 나 자신의 제자가 되고,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고 싶어.(-65쪽)

가르침을 통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싯다르타는 다시 세속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창녀 카말라와 함께 지내며 대상 카마스바미에게서 부를 습득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고자했던 싯다르타. 많은 돈과 여인들과 술에 찌들어버린 싯다르타는 어느 날 문득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역겨움을 느끼고, 꿈을 꾸게 된다. 카말라가 기르던 새가 울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새장을 열어보니 새가 죽어 있었다. 싯다르타가 죽은 새를 길 위로 내던지는 순간 큰 슬픔이 느껴진다. 꿈에서 깬 싯다르타는 깊은 슬픔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음을 느낀다. 삶을 무가치하게, 의미없이 보내버렸음을, 그의 손에는 살아 있는 것도, 뭔가 소중한 것도,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두고 떠난다.

고빈다야, 나는 돌을 사랑할 수 있어. 그리고 나무도 사랑할 수 있고, 나무껍질 한 조각도 사랑할 수 있어. 사람들은 사물들을 사랑할 수 있어. 그러나 말은 좋아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 가르침은 단단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아. 색도 없고, 모서리도 없고, 향기도 없고, 맛도 없어. 가르침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말뿐이야. 네가 평화를 얻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거야. 무수히 많은 말, 그것이 너의 평화를 방해하는 거야. 구원도, 미덕도, 윤회와 열반도 역시 단순히 말뿐이지. 고빈다야, 우리가 열반이라고 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단지 열반이라는 말만 있는 것이지.(-216쪽)

마침내 싯다르타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카말라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얻게 되고 부모로써의 고뇌를 한번 더 알게 되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셨던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삶의 모든 정의는 인간의 의식만으로 정해진 것이다. 싯다르타의 말 속에서 말로 된 가르침은 그저 말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또한 '네 안의 부처를 죽여라' 라는 말도 생각나게 한다. 싯다르타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또다른 자신을 찾게 되었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 자신을.

헤르만 헤세는 “나는 나의 믿음에 대해 종종 고백해왔으며, 그 믿음을 책을 통해 밝히고자 했다. 그 책이 바로 『싯다르타』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학문에 친숙했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신문화에 심취했다고 한다. 실제적으로도 그의 작품을 통해 불교 사상에 대한 관심과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헤르만 헤세가 선교사의 아들이었고 신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는 말을 보면서 故최인호 작가의 <길없는 길>이 떠올랐었다. 작가 역시 카톨릭 신자였음에도 <길없는 길>이란 작품속에서 대한불교계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는 경허스님의 업적을 따라가고 있음이다. 우리는 보통 석가모니를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속에서는 고타마와 싯다르타를 따로 분리했다. 불교의 '不二' 는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아마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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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하 인간 - 노력하고 성장해서 성공해도 불행한
제이미 배런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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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이 자기계발서라 한다. 그런데 그 자기계발서라는 책의 내용은 어떤가? 다 거기서 거기다. 똑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잘 팔릴까?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를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물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노력했고 그 결과로 성공했는데도 왜 불행하다고 느낄까? 이 책은 바로 그 시점에서 묻고 있다. 자기계발에 그토록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당신을 한번쯤 되돌아 본 적이 있느냐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해지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가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거꾸로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로 남은 삶을 망치기도 한다. 자기 자신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자신을 타인이 인정해 줄리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기이한’ 자기계발을 그만두라고 말한다. 우리가 계발해야 할 것은 능력이 아니라 치유력이며, 쟁취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는 성공이 아니라 만족이라고. 저자 역시 30대에 진입하기 전, 작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 번아웃을 맞았으며 다이어트와 폭식증 사이를 오가다가 기피 증세가 생기기도 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는 수치심과 자책감을 동력으로 삼는 완벽주의가 우리를 옭아매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기준이 아닌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왜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한 곳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지극히 소수인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현실을 만드는 주제는 당신의 마음이다. '괜찮다'는 건 손에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다. 손아귀에 잡히는 듯하다가도 손가락 사이로 스멀스멀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같다. 당신이 남의 삶에 대해 뭘 얼마나 아는가? '더 낫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질문해라.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경계하라. 당신이 소비한 것은, 결국 당신을 지배한다.(-133쪽)

언젠가는 내 인생도 나아질 거라고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계획도 수없이 세웠다. 그 계획의 기준은 내 나이였고, 경험이었고, 스스로 느끼는 자격이었으며 '이미' 일어났어야 마땅하다고 느끼는 일들이었다. 나는 남들의 삶을 내 삶의 바로미터로 삼았다. 남들에게 일어난 일이 내겐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남들보다 못하다는 증거였다. 그게 내가 인생을 생각할 때 사용한 공식이었다.(-224쪽)

똑같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똑같은 동기부여 영상을 보고, 똑같이 한곳만을 바라보고 노력하는 것이 어떻게 ‘자기’계발일 수 있을까? 이 말은 정말 커다란 울림을 준다. 사회는 우리에게 더 많은 소비를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가스라이팅을 한다. 태어나 자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하나의 기계처럼 키워졌다. 배운대로 하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가르쳐준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저자는 더한 노력과 경쟁의식이 무참하게도 번아웃의 연료료 쓰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썼다는 '멋진 신세계'를 읽어 보라. 우리를 기가 막히게 기계화 시키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까닭인지 사회의 기준에 대해 그다지 많은 관심은 없다. 그러나 많은 이가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행복'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있다면 아마도 '만족'이 아닐까 싶다. 목소리 높여가며 떠드는 사람들에게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기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기준도 중요하다. 自重自愛, "스스로를 귀중이 여기고 스스로를 사랑하라." 는 말이 새삼스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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