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풍경... 사람이 있는 풍경일까? 사람들이 만들어낸 풍경일까? 사람풍경이라는 제목속에서 왠지 낯선 유혹을 느끼게 된다.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그런 것들.. 심리 여행 에세이라는 부제 또한 나를 멈칫거리게 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언니, 사람풍경 읽어보셨죠?" 라는 후배녀석의 단 한마디에 무언가로 한 방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왜였을까?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제 3자의 이름을 빌려서 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작가는 이 책속에서 오롯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아니 나만큼은 정말 다 보여주지는 않았을거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된다면 작가는 아마도 두번다시 글을 쓸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나 자신과의 만남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감하게 또다른 나와 부딪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속의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끄집어 내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따지고 든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한다면 하나의 약점처럼 작용할 그런 것들이 밖으로 나오는 게 싫은 것일게다. 이중생활..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와의 차이점 앞에서 간혹 당혹스럽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혹은 보여주지 못하는 내 안의 나는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해도, 아무리 허물없이 지내는 그야말로 기쁨과 슬픔을 다 나누어가지는 친구라해도 100% 자신을 보여준다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과감하게 자기 자신에게 메스를 들이댄 작가의 용기에 감탄했다. 자기안에 꽁꽁 숨어버린 또하나의 자기를 불러내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낯선 타지에서 낯선 얼굴과 마주하고 낯선 이름들과 섞이고 가끔은 그들에게 밀려 시선속의 내침을 당하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또하나의 나와 타협해야했던 까닭은 아니었을까? 작가가 지나쳐왔던 어린 시절속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잃어버려야만 했던 것들, 잊고 지내야만 했던 것들, 그것도 아니라면 잃어버린 척, 잊어버린 척 그렇게 내버려둬야 했던 모든 감정들이 그 속에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안에 들어와 또하나의 나로 들어앉아버린 것들.. 그런 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작가의 마음이 나는 너무도 부러웠다.
너무 어렵지 않게, 하지만 너무 쉽지도 않게 써내려간 내용들이 나와는 너무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같은 세대라는 이유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나로써도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어린날의 기억들이 또한번 나를 찾아왔던 까닭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댄 작가와는 달리 나는 아직까지도 내 안의 나와 마주친다는 것에 대하여 그야말로 왕공포증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 마지막이 될 것만 같다는 그 공포증앞에서 나는 달려가다가도 우뚝 멈춰버리고 만다.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지레 짐작하는 그 순간을 이겨낼 자신이 나에게는 아직 없다. 그래서였을까? 첫장을 넘기고부터 마지막장을 덮기까지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콕콕 찌르는 어떤 것들이 있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랬다는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속에서는 기준을 뒤집어버리는 내용이 많다. 억압된 분노를 이야기하며 혹시 당신 주변에 사려 깊고 헌신적이고, 충직하고 성실하며 항상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남을 위할 줄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며 이웃과 무엇이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이상형처럼 생각해왔던 모습을 하며 사는 사람.. 그들 내부에는 분노가 억압되어 있으며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를까 봐 자신의 손목을 절단하는 듯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정말 놀라웠다. 누구에게나 억압된 분노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 많은 감정들을 다 표현하고 내뱉으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해답처럼 제시되는 글을 보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다른 사람들이라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는 거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고통의 가장 큰 불씨는 바로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 하지만 무조건 내 탓으로 돌려 참으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가만히 문제 안으로 파고 들어가보면 자연스레 알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환경을 들먹이며 우리의 감정속을 헤집어 놓는다. 분노, 우울, 공포, 불안, 무의식, 사랑같은 기본적인 감정들에 대하여.. 질투나 시기심, 중독, 분열, 의존, 자기 자신과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회피성이나 타인을 받아들여 나의 일부처럼 만들어버리는 동일시 현상같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하여 선택했던 생존법들에 대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거기에는 또한 작가 자신이 겪어야했던 시행착오와 아픔도 함께 따라온다. 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한길로 공감하기를 택했던 글은 정말 좋았다(이 좋은 공감하기가 타인을 나의 일부처럼 만들어버리는 동일시현상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방식을 수정하기 위한 변화의 시간도 필요하리라는 말 역시도 공감한다.
여행이라는 말은 참 좋다. 그 여행이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핑게거리와 변명거리를 뒤로 한 채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나를 만나기 위한 도전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산행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너무 멀기만 하다. 하나씩 버리기 위해 찾아가는 곳에서 나는 과연 그렇게하고 있는가 되묻고 있다. 행여 그 마음들이 또하나의 족쇄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내면서.. 즐기지 못하는 삶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생각없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이 내게만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 같은 그런 때는 너무도 화가 났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나는 아마도 더 깊은 어둠속으로 파고 들었을 것이다. 저 깊은 우물같이 어두운 내 마음속 어딘가로.. 언제쯤이면 내 안의 나와 웃으며 타협할 수 있으려는지...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