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5년 3월 20일 E411 고속도로에서 보았던 개에게...

우리가 버린 개, 가엾은 개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런 개를 생전 처음 보았기에 그 충격이 더 컸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문장이다. 어떤 개가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치명적인 사고를..... 그것을 보고 여섯 사람이 멈춰 섰다. 달리던 차를, 달리던 자전거를.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개가 진짜로 버려진 개였는지, 그 개가 실제로 존재했었는지조차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그 여섯 사람의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개의 이야기. 그 개를 보았던 날 문득 찾아왔던 어떤 감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머문다. 고속도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던 개는 여섯 사람에게 무엇을 묻고 갔을까?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힘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개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었고, 그 개를 통해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인식했다는 것이다. 여섯 사람 모두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트럭 운전사도, 좋아하던 여신도를 찾아 헤매는 늙은 사제도, 애인과 이별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여자도, 일하던 가게에서 해고 당한 동성애자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과부와 모든 불만을 먹는 것으로 해소하던 과부의 딸도 그 개를 통해 소리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사냥개 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질주하지만 사냥개 떼는 없다'는 말이 우리의 현실을 빚댄 말이 아닐까 싶다. 힘든 시간은 우리를 외롭게 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없는 현실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말했던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누구도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강요한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는 저 고속도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는 개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묻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고,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제목만 보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이 책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다. 책의 뒷표지에 써있는 추천글조차도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어차피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테니까. 다만 이 책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만은 살짝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 날은 개의 날이었을까? 허상과 같은 개를 달리게 하여 자신의 살을 돌아보게 하였으나 고작 여섯 사람만이 차를 멈추었을 뿐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서글프게도 이 책에서는 아웃사이더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희망을 말하기에는 왠지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시간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차라리 그 개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섯 개의 이야기마다 붙여진 소제목이 자꾸만 시선을 붙들었다. '별 수 없음'을 인지하고 결국엔 '영원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던 이야기의 끝에 희망보다는 절망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이 남아 있다. 역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기에는 가볍고 밝은 이야기가 제격인가? 차라리 그냥 단순히 잃어버린 개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더 좋았을까? /아이비생각


사냥개 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미친 듯이 달려가는 개. 다만 사냥개가 없고, 아무도 추적하지 않고, 당사자만 있다. 우리도 꼭 그런 식이다. 완벽한 건강을 갖고 아주 편리한 일상적인 지식을 갖춘 젊은이인 우리들은 숨이 차도록 달린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를 추적하지 않으며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 우리를 찾지 않는다. 직업상의 이동의 필요가 냉혹한 힘으로 이동시키는 이 자동차들 안에 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인가? (- 11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화 속 한자, 한자 속 신화 : 자연물편 - 딸아 한자 공부는 필요해, 문제는 문해력이야. 신화 속 한자, 한자 속 신화
김꼴 지음, 김끌 그림 / 꿰다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자 공부는 필요하다. 지금 누가 한자를 쓴다고? 라고 말한다면 그 생각부터 얼른 바꿔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불교 문화이기도 하지만 한자 문화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한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말을 이해하는가이다. 책의 표지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문해력은 중요하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한자는 모두가 어려워한다. 한자를 배우거나 공부하는 방법이 여러가지인 이유다. 먼저 부수를 배우고 익혀 거기에 맞는 한자를 공부하기도 하고, 사자성어를 공부하며 한자를 같이 공부하기도 한다. 서로 반대되는 말이나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를 엮어서 외우기도 하고, 같은 음인데 다른 뜻을 가진 한자(동음이의어)를 따로 공부하기도 한다. 글자에 맞게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공부하기도 하지만 기억하는데는 연상법만큼 좋은 게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한때 치기 어린 도전으로 일본어를 배운 적이 있었다. 일본어 역시 한자로 된 글자였기에 한자를 모르면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와는 한자의 글자체가 달라 내친김에 학창 시절에 배웠던 제대로 된 한자를 공부해 보기도 했었다. 한자 공부하기에는 신문만 한 게 없었는데 지금도 옛날처럼 신문에 한자가 많이 섞여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이 책은 한자의 필요성을 깨달은 아버지가 딸에게 쉽게 한자를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책이다. 노래를 만들어 배우는 방법도 좋긴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옛날 이야기나 신화를 들려주며 한자 공부를 함께 한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에서는 해, 달, 별, 하늘의 4방위를 맡은 四神이나 비와 구름, 바람 등의 자연물에 관련한 신화가 많다. 옛날에는 인간의 모든 일이 날씨와 관련이 있었다.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다. 자연물에 하나의 상징을 붙여 그들을 달래가며 살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자연물마다 갖고 있는 이름과 이야기가 각각의 특성을 갖는다. 섬나라인 일본에 팔백만의 신이 있다는 말도 지형적인 것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뜨거운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예와 항아의 이야기, 견우와 직녀 이야기처럼 낯익은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목차에서 보면 신화한자, 비교한자, 심화학습, 요소한자 등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구분해 놓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요소한자가 가장 흥미로웠다. 國의 원형 글자가 或(혹시 혹)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或은 戈와 口의 회의자로 제정일치 시대의 최고 권력자인 임금의 입을 창으로 지키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或이 가진 '혹시'나 '만약'이란 뜻은 가차이다. 혹시 모를 적의 침입을 대비해서 지키는 모습에서 '혹시'라는 뜻으로 가차 한 것이라 한다. 그런 걱정과 의심을 하는 마음이 惑(의심할 혹, 미혹할 혹)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란 뜻일 터다. 그렇게 되니 나라의 뜻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囗(에워쌀 위)를 추가하여 나라 國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囗는 성벽을 그린 것이다. 한자 사전에서 에워쌀 위 자를 찾아 보면 圍로 나온다.부수가 囗(큰입구몸)이다. 或자가 원래 나라를 뜻하니 거기에 土를 붙이면 지경 域이 되고, 땅의 가장자리라는 뜻을 지닌 지경 境이 된다. 그래서 國境이다. 함께 해서 좋은 사람은 벗 朋, 마음과 뜻이 잘 맞는 사람은 벗 友로 표현한다는 것이 이채롭다. 비슷한 또래의 친한 벗을 이야기하는 朋友도 있다. 거기에서 오륜의 하나로 친구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다는 뜻의 朋友有信이 나왔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한자 공부는 어렵다.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공부다. 하지만 한자를 배워서 손해 볼 건 하나도 없다. 세상 이치를 깨닫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한자를 공부했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한자에 대해 바르게 배우고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런 방식도 괜찮겠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마음가짐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읽었다. 하나 하나 그림을 떠올리면서. '짓다'의 어근 '짓'이 집의 옛말이라 한다. 처음 알았다. 책 속에는 '집'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따스함이 공존한다. 옛말에 거적때기 같은 집이라도 내 집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집은 우리에게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 작금의 시대가 품고 있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층 아파트야 더 말 할 필요가 없다. 가끔 생각했었다. 아파트를 5층 이상은 지을 수 없도록 규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냐하면 나무보다 높지 않은 건축물이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이다. 어느 정도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탄소 중립이니 친환경이니 하는 주제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한옥이라 정의하는 한국의 전통집에 대해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저자의 말은 울림이 크다. 저자의 말처럼 서울 가회동 민가나 북촌의 살림집이 우리의 전통 건축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 동네는 일본인들에게 이 나라 땅을 빼앗기기 싫어했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곳이다. 사유의 공간이었다던 하이데거의 오두막을 그린 그림이 시선을 끈다. 오두막 뒤에 전나무, 가문비나무가 시커멓게 서 있다는 곳. 한번은 보고 싶어진다. ​

저자는 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이다. 나무의 특성을 파악하고 분류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하다. 습기에 강하고 잘 썩지 않는 밤나무는 강도가 뛰어나 건축재로 사용하기에 더없이 훌륭하다고 한다. 19세기 노르웨이의 통나무집은 작지만 정겨운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염가 주택의 대량 보급이 필요했던 미국에서는 경량 주택이 일반 주택의 시작이었단다. 나무만 있다면 누구나 지을 수 있었던 집. 그런 경량 주택이 우리 나라로 유입되어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여기저기에 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값싸고 편리한 쪽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기우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나무가 천연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공감한다. 도연명이 <귀거래사>에서 읊었던 초가집이나 황희 정승이 살았다던 비 새는 집, 세 칸 도산서당, 법정 스님의 산중 토굴을 소개하면서 작고 초라하지만 빛나는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집이 재산으로 취급되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남다른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거적때기 같은 내 집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 맞춘 집이라야 하는 작금의 우리 사회는 저자의 말처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물론 아파트가 아닌 형태의 집도 많다. 요즘에 와서 많은 사람이 꿈꾸는 전원주택처럼. 이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집의 형태는 다양하다. 세기의 건축가가 지은 집, 외딴 숲속 철학가의 오두막, 휘황찬란한 왕비의 궁전, 마주 앉으면 무릎이 맞닿는 시인의 집, 골목길에 즐비하던 아무개의 양철집, 그리고 아파트. 그저 이름과 평수로만 이야기되는 아파트는 사람의 온정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지방에 갈 때마다 많아지고 있는 아파트를 품은 풍경이다. 뜬금없는 곳에 덜렁 떨어진 듯이 한 두 동 지어진 아파트의 풍경은 정말 생뚱맞다. 거두절미하고 이 책을 통해 여러 건축물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름값을 하는 건축물도 있고, 그 주인의 이름때문에 유명해진 집도 있다. 숲 속에 지어진 작은 집도 있고 멋보다는 기능과 목적에 맞게 지어진 집도 있다. 여러 형태의 집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의 발길이 얼마나 바빴을까 싶기도 하고. 사진보다는 그림으로 보여주니 조금은 이채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집을 짓는 사람이다. 8평 집으로 이사할 꿈을 가진 사람. 언젠가 나무로 작은 집을 지어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저자 역시 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무집, 이라는 말은 그 속에 알 수 없는 따스함을 품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한자부터 일반 상식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공부를 했다. 세상에서 이름값하는 건축물의 이미지를 볼 수 있었고 그에 따르는 설명은 재미었었다. 시대에 따라 혹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변해가는 집의 형태도 소개한다. 말로는 친환경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값싸고 편리한 쪽을 선택하는 인간의 모순은 영 껄끄럽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유랑자의 삶을 그렸던 영화 <Nomadland>가 떠올랐다.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걷기의 세계 - 뇌과학자가 전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의 경이로움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뚜벅뚜벅, 저벅저벅, 타박타박, 터벅터벅, 어슬렁어슬렁, 살금살금, 가만가만.... 모두가 사람이 걷는 모양새를 표현한 말들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걷는 모양새는 각각이다. 보폭이 넓은 사람과 좁은 사람, 속도가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처럼.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걷기 예찬론이다. 목록을 살펴보면서 이크, 이건 아닌데 싶었다. 걷기가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는 것 쯤은 누구나 다 안다. 걸으면 왜 건강해지는가에 대한 것 역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유산소 운동이 새로운 뇌세포를 증가시킨다는 것도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왜' 보다 '어떻게' 가 궁금했다. 어떻게 걷는 것이 좀 더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가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긴 이것저것 따질 필요없이 무조건 걸으라는 말도 있긴 하다. 걷는다는 것은 일단 몸을 움직인다는 말이니 그것도 일리는 있다.


걷기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77쪽) 가장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이제 걷기는 일부러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하나의 운동이 되어 버렸다. 개탄 할 일이다. 인류와 침팬지의 중요한 차이점은 인간이 유인원보다 더 멀리 걸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러니 문명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목록에서 보면 사회적 걷기라는 부제가 보인다. 걷기는 사회성을 그 중심에 담고 있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살기 좋은 도시들의 가장 큰 장점은 걷기 좋다는 것이다.(-132쪽) 도시 설계자 제프 스펙의 말이라고 한다. 걷기는 그 도시를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길이 존재한다. 올레길, 둘레길, 하늘길, 삼남길, 해변길 등등. 걷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이지만 그 목적에 의해 생김새도 소재도 완전히 다르다. 걷기에는 안전성도 뒤따라야 한다는데 도시의 길들은 그렇지가 않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된다는데 그렇게 생겨난 길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도시들이 생각해 낸 것이 녹지공간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공원이다. 그러나 공원이라 불리워지는 그런 곳들조차도 이 책의 앞부분에서 강력하게 주장했던 뇌의 기능을 충족시켜 주기엔 뭔가 아쉬운 점이 많아 보인다. 결국 무질서한 도시 개발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능할까?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게 이 시대에 가능하겠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이런 주제의 책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걷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걸으면서 나 자신과 대화를 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런 책을 읽는 나는 그렇지가 않다. 우울증이 심할 때가 있었는데 걷기를 통해 치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걷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쓴 이들처럼 걸으면서 나 자신과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걸으면서 그저 하늘을 보고 나무 냄새를 맡으며 피부를 스치는 바람을 느낀다. 가끔씩은 주저앉아 들꽃을 바라보며 이름도 물어보고 대답해주지 않으면 찾아보기도 하면서. 최근에는 적어도 1시간 정도는 습관처럼 걷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은 집에서 걷는다. 제자리 걸음이지만 머리속에는 이미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펼쳐져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자연을 느끼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말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걷기는 그런 것이 아닐까? 어떤 큰 목적이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그런 것. 걷다가 가끔은 의자에 앉아 쉬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말을 수첩이나 핸드폰에 적기도 한다. 걷기의 올바른 자세부터 시작하여 얼만큼을 걸어야 걷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혹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걸어야 한다는 등의 말도 참 많다. 그러나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 맞는 만큼 걸으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에게 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걷기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어 왔다가 어쩔 수 없이 앉아서 뇌 강의를 들은 그런 느낌이 든다. 약간은 진부하고 딱딱하다. 만 보를 채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남들이 부여하는 거창한 의미가 없어도 나의 걷기는 계속될 것이다. 걷기에 대한 과학적인 고찰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자.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바람만이 꽃을 피우는 건 아니다. 겨울에도 꽃이 피지 않는가. 겨울에 피는 꽃들은 경이로움을 갖는다. 추운 계절인데도 꽃을 피웠다고, 쌓인 눈 속에서 꽃을 피웠다고. 경이로움과 예쁨, 딱 거기까지다. 그런 것들 속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건 어쩌면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시집을 통해 우리가 마음의 위안을 받는 것은 그 시집 전체가 아니라 시집이 품고 있는 한두 개의 겨울꽃 같은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해서 제 주인인 시인의 이름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세상 밖으로 나온 후에 말 꽃보다 이름 꽃이 더 빛나는 경우도 있고 말 꽃과 이름 꽃이 똑같이 빛나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사람들 각자가 만든 언어의 정원으로 옮겨진 말 꽃은 여간해서 시들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지 않을까? 행복한 일이며 감사한 일일 것이다.


아주 짧게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던 '풀꽃'이라는 詩는 자신을 불러준 주인의 이름을 세상 밖을 불러내 빛을 발하게 했다. 그리고 정원이 만들어졌다. 아주 작은 꽃들이 심어진. 말 꽃과 이름 꽃이 함께 빛났던 풀꽃 정원. 시집의 제목을 보면서 어쩌면 시인 자신을 향한 당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한다. 나조차도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저 시집의 제목이었던 까닭이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요즘 들어 주문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던 말. 길 위에는 시인이 걸어왔던 삶의 여정이 있을 텐데 굳이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시인이 이번에는 소리를 크게 냈으니 그리 알아 달라고 한다. 조금은 의외구나 싶겠지만 시인의 마음 크기, 조바심과 서글픔과 안타까움이 또한 그러하니 살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를 겪었던 시간이 오롯이 담겨있는 까닭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한 줄 한 줄 썼다던 시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던 시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늙은 시인의 하루 하루가 넘기는 페이지마다 살아 숨쉰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고,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보자고. 미사여구 없이 넘어가는 날들은 담담하다. '채송화' 라는 시를 옮겨 적어봤다. 시인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던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채송화

난쟁이 꽃

땅바닥에 엎드려 피는 꽃

그래도 해님을 좋아해

해가 뜨면 방글방글 웃는 꽃

바람 불어 키가 큰 꽃들

해바라기 코스모스 넘어져도

미리 넘어져서 더는

넘어질 일 없는 꽃

땅바닥에 넘어졌느냐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거라!

사람한테도 조용히

타일러 알려주는 꽃

시인의 시선은 누구라고 말 할 것도 없이 항상 낮은 곳을 향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길도 주지 않는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찾아낸다. 몇 번을 봐도 시인의 '발견'이라는 것은 참 놀랍다. 보는 동안 어느새 다가가게 된다. 끝도 없이 들었을 질문에 시인은 시를 통해 이렇게 명쾌하게 대답을 해 준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이번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 보석을 주우신 듯한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