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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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카가와 요시타카는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토목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세계적 교각으로 평가받는 세토대교등의 설계및 시공의 총책임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고대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역사학의 시각이 아닌 토목건축학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로마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그의 저서로 고대 고마 번영사를 3부작으로 엮은 <수도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 <도로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 <오락과 휴식으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가 있다. 이 책은 그 세권의 책을 한권으로 묶은 게 아닌가 싶다. 옮긴이의 말을 빌면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된 원서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에서의 출판을 목적으로 집필한 것이라 하는데 고대 로마의 문명이나 로마인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토록 세심하게 관찰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게 쉽진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학이나 토목건축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는 흥미를 끌지 모르겠지만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어 살짝 지루한 맛도 없지않았다.

 

영화 <벤허>의 전차 경주,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사 경기는 상당히 자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되어진다. 죽음을 각오한 전차 경주의 스피드와 검투사의 잔혹한 경기 장면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굳이 이 책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영화속에서 우리는 위정자들의 간악함을 볼 수가 있다. <빵과 서커스>라는 책의 제목은 빵은 식량이요, 서커스는 오락을 뜻한다. 당시의 위정자들이 시민들을 위해 내밀 수 있었던 최선의 조치이기도 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왕정으로 시작했다. 공화정과 제정을 거쳐 오현제 시대를 겪다가 나중에는 동서로 분열돼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먼저 멸망했다. 오현제 시대에 현재의 유럽연합 영토보다 더 큰 영토를 갖고 있었다. 제국시대만으로도 500년을 지속했다는 로마는 세계유산으로 남겨진 유물, 유적이 1052건이 된다고 한다. 약 2000년의 세월을 버텨냈다는 말인데 그만큼 로마는 인류문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주자였다. 그토록이나 풍성한 문화를 가졌던 로마의 멸망이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라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빵과 서커스>는 고대 로마의 시인 유웨날리스가 오락을 일삼던 대중을 풍자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로마의 흥망성쇠가 담겨있는 말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튼튼한 성곽도시에서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 싸인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았다. 로마가 번성할 때는 100만명의 사람들이 사는 초과밀 도시였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모여살게 되면 아무래도 불평불만이 쌓이게 된다. 그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내세운 방침이 눈길을 끌었다. 첫째, 화재의 위험에 대비해 석조건물을 지을 것. 둘째, 도시내 교통 혼잡을 없애기 위해 상하수도를 지하화 할 것. 셋째, 고층 주택과 포장도로로 효율성을 높일 것. 넷째, 폐쇄된 공간인만큼 오락거리를 제공할 것. 다섯째, 고도의 건축기술(석재나 콘크리트)로 성곽을 만들 것..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고대 사람들의 생각이었음에도 현재의 우리 생활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로마의 주민들은 이민족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저항하기 보다는 성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그랬던 것일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랬기 때문에 먼 훗날의 우리가 그 시대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앞에 언급한 다섯가지의 방침만 보더라도 당시의 문화가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당시의 수도교는 견고했다. 그만큼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있기도 했다. 수도사용료는 기본적으로 무료였지만 개인주택으로 수도관 시설을 끌어들였을 경우에는 사용료를 받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을 위해 도로변에 공동수도를 마련하기도 했고 말이나 가축을 위한 음수장도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하수도 시설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상하수도의 처리가 용이했던 고층주택의 1층은 임대료가 높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고층에 살았다. 그들은 폐수와 분뇨를 항아리를 이용해 지하배수로에서 처리해야 했는데 법으로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창 밖으로 투기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스운 생각이겠지만 하이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한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웬 똥벼락이람! 어찌되었든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로마의 영토가 분할되면서 기술의 전승이 끊기게 되고 로마의 수도 기술은 사라졌다.

 

그 많던 오락과 휴식시설은 결국 기독교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공공욕장도 나체조각상도 기독교가 힘을 얻게 되자 자취를 감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문화는 어찌되었을까? 만신전에서 유일신신전으로 바뀌었으며 종교건축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네로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큰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마침내 313년 공인을 받게 되고 이후 수많은 교회와 성당이 세워졌다. 이탈리아, 터키, 아르메니아, 이집트등..... 전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는 로마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세계유산으로 1052건이나 남아 있다고 하니. 빵과 서커스에서 서커스에 해당하는 오락의 형태로 투기장, 극장, 전차 경주장이 있었다. 휴식시설로는 공공욕장이 있었는데 그것들의 대부분이 정치가들의 인기몰이에 이용되었다는 것은 주목해 볼 만 하다. 상당히 저렴했던 휴식시설의 이용료조차 부족분은 모두 국가가 부담할 정도였으니. 로마가 검투사 경기를 중시한 까닭조차 시민에 대한 통치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정리가 될 것 같다. 고대 로마에는 수많은 철학자와 작가 그리고 기술자가 있었다. 로마인들은 민족이나 국가에 상관없이 좋은 문화라면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전파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많은 국가와 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실용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콘크리트를 발견했으며 로마법에서 서양법률을 가져왔다. 로마의학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등도 그들의 말 라틴어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기록을 토대로 지금의 우리가 반복된 역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愚問을 하게 된다. 만약 로마가 망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愚問은 항상 잘나갔던 역사의 끄트머리에서 시작하는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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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야 -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다이앤 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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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답답하다.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느낌이다. 혹시라도 話者가 지은이라면 속시원하게 뱉어내지 못한 속울음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아파해야 할 것 같다. 해 전 겪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오랫동안 감춰왔던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쓴 첫 소설,이라는 말이 보여서 하는 말이다. 책을 읽는내내 그랬다. 회복하기 위한 글이었다면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아픔을 표현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기에는 뭔가 부족해보였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토록 오랜동안을 숨겨두었던 이야기니 한숨에 다 털어낼 수는 없었겠지... 시간을 두고 좀 더 들여다보며 달래야 할 일이겠지만 안타까움이 많이 남았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다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절이 그랬다고는 하나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고주망태가 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엄한 밥상이나 뒤엎고 아내와 자식에게 손찌검을 하고... 엄마는 또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것을 고스란히 다 받아내야만 했는지... 그래놓고는 모든 댓가를 자식들에게 뒤집어씌웠지. 그 힘겨운 일상은 오롯이 자식들의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끝내는 아픔으로 남았지... 그 아픔이 고스란히 자식들의 울타리안에서 훗날까지 숨쉬며 살아갈 거라는 걸 그때는 생각조차 못했겠지... 그런 삶을 살았으니 이제 내게 보상하라는 듯 자식들의 상처는 외면해버리는 話者의 어머니도 이해가 되고 맏이로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숙명처럼 생각했던 話者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한다. 하지만 이왕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 좀 더 욕심을 부려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없다. 되돌릴 수 없기에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남겨진 무언가를 주섬주섬 줍는다. 주운 것들은 교훈이라 불리고,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들어온 것들은 추억이라 불린다. 주머니에 들어오지도 않고 줍지도 못한 것들은 후회라고 불린다. (-100쪽)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았다. 로야가 무슨 의미였는지를. 로야가 話者의 어린 딸 이름이기도 하지만 페르시아어로 '꿈'이나 '이상'을 뜻한다는 걸.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학창시절이었지만 그녀는 공부를 놓지않았다. 어쩌면 결국 떠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 그렇다. 참 잔혹하다. 주인공은 여전한데 배경만 바뀐다. 그러니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닐 거라고 머리를 흔들어도 한 켜 한 켜 쌓였던 세월의 흔적은 지워내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안의 아이와 마주 설 용기를 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그녀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 책표지의 이 말은 여전히 내게도 크나큰 울림이기에.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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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을 알고 나니 사회생활이 술술 풀렸습니다
함정선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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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놓치고 있던 것들의 정체를 이제야 알게 된다. 책속의 말처럼 맞춤법 하나 틀렸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맞춤법 틀리는 게 법을 어기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맞춤법 하나 틀림으로해서 그 사람의 호감도가 좌우될 수는 있다. 가끔 주변에서 맞춤법을 꼼꼼하게 잘 챙기는 사람을 보게 되면 뭘 그런 걸로? 하기보다는 와아,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거야? 하게 된다. 맞춤법이 틀렸다고 지적해주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렇게 짧은 글을 쓰면서도 나는 국어사전을 찾아 헤맨다. 혹시나 틀렸을까 싶어서가 아니라 이게 맞는거야?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건 띄어쓰기다. 어떤 조사는 붙여야하고 또 어떤 조사는 띄어써야 하는데 너무 자주 헷갈린다.

 

궁금한 마음에 맨 뒤에 있는 부록 '당신의 맞춤법 실력은?'부터 풀어보았다. 점수는? 조금 더 분발합시다! 씁쓸하다. 내가 겨우 이정도였어? 하는 마음에 말 그대로 좀 더 분발하기로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틀린 걸 또 틀린다는 거다. 바보처럼. 책을 읽으면서 일부러 소리내어 읽었다. 다시 잊지 않으려고. 또 틀리지 않게 내 기억속에 붙잡아두려고. '율'과 '률'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하게 된다. 늘 오락가락했던 '왠'과 '웬' 사이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사실 '율'과 '률'은 똑같이 비율을 나타내는 까닭에 항상 자신이 없었다. '율'은 앞의 명사가 모음이거나 받침이 'ㄴ'일 때 쓴다. '왠지'라는 말 외에는 '왠'이 붙지않는다. 다시말해 '왠일이니'가 아니라 '웬일이니'가 맞는 말이다. '오랜'이나 '오랫'이나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오랜만'은 '오래간만'의 준말이고 하나의 단어인 반면, '오랫동안'은 '오래'와 '동안'이 결합해 만들어지면서 사이에 'ㅅ'이 들어간 합성이이다. 그 뜻이 분명하게 다르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정말 더 분발해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겹쳐지던 장면이 있었다. 미디어세상이다. 미디어라는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모든 매체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어떤가!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우리의 말이 변형되고 있다. 옳은 길로 가야한다고 말해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세태가 그렇다고만 말할 뿐 마치 그렇게 가야 한다는 듯이 너도나도 모두가 같은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음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런 말들을 만들어내는 세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올바른 이정표를 보여줘야 할 매체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언론이 제 갈길을 찾지 못하니 모두가 방황한다. 서글픈 일이다. 언어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 라이프 트랜드를 대변하는 요소라고 보았다던 이 책의 저자는 그 때문에 신조어나 세대 특유의 언어 등에 대해 관심이 컸으나 그렇게 다양한 언어들이 우리말 맞춤법이 망가지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맞춤법 관련 기사를 연재했다고 한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으나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져 소설 대신 기사를 16년째 쓰고 있다는 저자 함정선에게 응원을 보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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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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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무도 그냥 나무가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깊고 깊은 정글속에서 살고 있는 커다란 나무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 나무로조차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다시 태어난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되었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존재감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든.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울었다. 영혜였다가 인혜였다가 때로는 영혜의 남편이었다가 인혜의 남편이었다가. 종잡을 수 없는 감정때문에 격해지기도 했고, 알 수 없는 감정때문에 슬퍼지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강력한 충격을 받았을 때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질환을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그러나 트라우마라는 것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오랫동안 숙주의 몸안에 또아리를 튼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그 때가 다가오면 서서히 또아리를 풀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의 숙주였거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존재들조차 트라우마의 확실한 정체를 인식하지 못한채 삶을 영위한다. 그리고 쉽게 말한다. 자신이 배운대로,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아주 짧은 근거를 제시하며.

 

사람들은 틀에 가두고, 틀에 갇히는 걸 좋아하는 것일까? 채식주의자.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인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오해와 질타를 받았던 영혜에게 그들은 채식주의자라는 굴레를 씌워버렸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얄팍한 틀에 영혜를 가두고 어째서 남들처럼 살지 않느냐고 손가락질을 했다. 단 한번도 영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단 한번도 영혜가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를 살펴보려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들이 생각했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것만 각인시키고자 했을 뿐이다. 강제로 벌려진 입속으로 고기 한 점이 들어왔던 순간 끝내 손목을 그어야 했던 영혜를 애처롭게 바라봐준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긴 사연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만.

 

많은 심리학 서적이 있다. 그리고 심리학의 대부분은 트라우마를 다룬다. 그것도 어린 시절의 나, 혹은 내 안에 있는 나와 마주서기를 요구하면서. 그러나 그들 역시 너무나도 통계적인 관찰만 하고 있을 뿐이다. 나만큼은 너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왜일까? 그들 역시 정해놓은 틀속에 가두려고만 할 뿐이다. 그래서 심리학에 관한 책이나 설문조사 따위는 이제 믿지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내내 너무 아팠다. 마치 그런 부류의 서적에 방점을 찍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까지 들여다볼 줄은 몰랐기에. 이렇게까지 깊은 속울음을 드러낼 줄은 몰랐기에. 다같이 힘들었는데, 너만 힘들었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 너만 그렇게 저 멀리로 도망가고 있느냐던 인혜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처럼 나에게 들려왔다.

 

이 작품은 영국의 맨부커상을 받았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문학상으로 꼽힌다. 1969년에 처음으로 제정되어 영국연방 국가에서 출간된 작품을 쓴 작가에게만 수여되었으나, 2013년부터 전세계의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번역가의 역할이 클 것이다. 그러니 작가와 번역가에게 동시에 수여된다는 점도 짚어줘야 할 것 같다. <채식주의자>는 2016년도 수상작이다. 상금이야 얼마가 되었든 우리의 작가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건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책이다. 감히 내 짧은 소견으로 책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미뤄두었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에...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아야 할까 망설여진다. /아이비생각 (책표지의 그림이 너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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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쇄 기념 에디션)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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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글에는 그리고 삶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책표지에 있는 말이다.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이 참 좋았다. 책을 볼 때 제목에 낚임을 당하거나 혹은 끌림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은 끌림쪽에 속한다. 언어의 온도라는 게 뭐 별 것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따뜻한 말이나 차가운 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다르게 불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끌렸다. 어쩌면 이 책속에는 따스한 말들이 가득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표지의 색깔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多言이 失言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30쪽)

요즘 쓸데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사는 것 같아, 라는 느낌이 들어 가끔 내가 하는 말에 대해 돌이켜볼 때가 있다. 정말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고 살았다고 느껴질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허탈감이다. 내가 뱉어놓은 말이 혹여 나에게 되돌아와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뱉은 말로 혹여 아파하는 사람이 없기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내가 했던 말이 남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나이들수록 겸손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어찌보면 싫고 좋음이 너무 확실한 탓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말이 남에게 상처를 줄까봐 조심스럽다. 그런 까닭인지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편이 훨씬 편할 때도 있다. 특히나 가까운 사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게 말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라는 말과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의 말을 빌어본다면 사과를 뜻하는 단어 'apo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다. 사과의 한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사과의 謝사에는 본래 '면하다' 혹은 '끝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過과는 지난 과오다. 지난 일을 끝내고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행위가 바로 사과인 것이다.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니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한다고 말을 하곤 하는데 그 진심어린 사과가 어떤 것인지를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래저래 상대방을 향한 헤아림이 필요하다. 관심과 배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昨今의 우리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말이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이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몸뚱어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우주만 한 크기의 사연 하나쯤은 가슴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한 사정과 까닭을 너그럽게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게 현실인 듯하다. 우리 마음속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매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일까. 가끔은 아쉽기만 하다. (-63쪽)

책을 읽다가 문득 작가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책날개를 찾아보니 이채로운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띈다. 을 쓰고 책을 만든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쓴다. 고민이 깃든 말과 글에 탐닉한다.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꽃을 올려놓는다. 언제 태어났는지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항상 나오는 말보다 멋진 수식어들이 내게 다가온다. 색다른 소개글에 이끌려 그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 <말의 품격>, <언어의 온도>,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일상에서 놓친 소중한 것들>,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등이 있다. 많은 책의 제목을 보면서 문득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이 없는데 그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던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은 당신처럼 이렇게 따스한 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조금씩 메워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결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아니라고. 당신말처럼 희망을 버린 것이 체념이라면 아직은 체념할 때가 아니라고. 이렇게 주제넘은 대답을 하고 싶어지는 건 마치 설득력있는 한 권의 시집을 읽은 듯한 책의 여운때문이다. 책을 덮기 전 작가의 말을 되뇌인다.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싸워야 할 대상이 차고 넘치는데 '나'를 향해 칼끝을 겨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신과의 싸움보다 자신과 잘 지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292쪽) 요즘 내 삶의 목표이기도 하여 왠지 나를 응원해주는 말처럼 들려 좋다. 한 권의 책이 쓸쓸한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아이비생각

 

짚고 넘어가자. 전체적인 느낌이 아무리 좋았다해도. 이 책은 사실 뒷심이 부족하다. 뒤의 몇 쪽은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굳이 아팠다는 걸 글로 옮기면서까지 쪽수를 채워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급하게 마무리하면서 그저 끄적거렸던 글들을 가져다놓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쪽수가 많다고해서 그만큼 짙은 여운이 길어지는 건 아니다. 읽고나서야 알았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 걸. 그러나 어차피 나는 베스트셀러라는 걸 믿지 않는다. 스테디셀러라면 모를까. 그래서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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