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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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인물, 유비. 후흑厚黑이 천하를 통치한다는 말이 재미있다. 후흑이란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이 시꺼멓다는 뜻이다. 후흑학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천하의 영웅호걸이란 후흑에 뛰어난 자들이라고 후흑학에서 정의를 내렸다는데 조조는 心黑의 고수요, 유비는 面黑의 고수로 보았다. 자신의 속마음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나관중이 지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소설은 청나라때 모종강이 다시 엮은 것이라 한다. 나관중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전후 맥락이 이해되는 범위에서 내용을 전개한 반면 모종강은 촉한 정통론에 입각하여 재편집하면서 조조를 악인으로, 관우와 제갈량을 신적인 존재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마치 사실인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저자의 말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지식인들의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까닭이다. 잘못된 아홉이 사실이라고 떠들면 진정한 하나는 묻혀버리는 대중 심리의 활용, 그리고 이를 통한 정치적 역사적 공고화. 이는 비단 문학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삼국지연의>는 이 부분에서 최고이자 최선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117쪽) <삼국지연의>로 인해 발생한 오해와 억지가 마치 진실처럼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는 걸 보면 중국인들에게 삼국지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관우는 무공이 뛰어난만큼 자만심도 높았다 한다. 자만심이 충만한 자는 질투와 시기심도 그에 못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훌륭한 인물로, 재물신으로까지 추앙받게 된 것은 그의 고향 산서가 소금생산지였기 때문이었다. 소금은 옛날부터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가가 관리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이 보장되어지니 정부와 상인들은 서로 결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산서 출신인 관우를 상징적인 인물로 내세운 것이다. 게다가 <삼국지연의>의 저자인 나관중도 동향 출신이었다. 현관을 죽이고 강호를 떠돌았다는 이야기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왠지 껄끄럽다. 이제야 중국인들이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중국의 역대 왕들도 忠義를 지켰다는 관우를 내세워 신하들에게 충성을 강요하기에 딱 좋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천성적 기질이 개인일 경우에는 공자의 편이지만 집단일 경우에는 순자의 편을 든다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시선을 끌었다. 찾아보니 순자의 정치사상이 강력한 유가사상의 완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후대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한다. 맹자의 성선설을 비판하고 성악설을 주장했던 순자. 통치이념으로써의 유가사상이라는 말에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소설이되, 소설 이상의 의미를 담은 『삼국지연의』를 길 위에서 만나다!"

"중국의 삼국지 현장에 대한 관심과 여행에 집중하다!"

삼국지 기행을 읽기 전 자꾸 시선이 가던 책의 소개글이다. 귀기울여 듣던 저자의 삼국지 해설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현장을 통해 해설하는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역사적 맥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七實三虛는 커녕 三實七虛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저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의 현장 곳곳에서 역사서와 비교하며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으며 그 모든 사실이 이채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삼국지 현장에 대한 관심과 여행에 집중하다,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아울러 변해가는 중국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니 저자의 발걸음에 桑田碧海나 隔世之感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시대의 유물과 유적을 살펴보면서 느꼈을 저자의 감동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이렇게 책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준 것을 고맙게 여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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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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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영화관에서 홍콩 영화나 대만 영화가 많이 상영되었다. 그 배우들이 광고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때의 인기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부류의 영화였지만 오빠를 따라 읽었던 <영웅문>과 <삼국지>로 인해 영화의 재미를 알게 되었었다. 그 때는 故고우영의 만화도 꽤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수호지나 초한지도 그의 만화를 통해 읽게 되었던 책 중의 하나다.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이 책은 답사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연의>를 의미한다. 연의는 1800여 년을 이어오며 많은 부분이 역사적 상황과 다르게 각색되었다. 이를 일러 七實三虛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三實七虛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동안 민중에게 사랑받고 국가적으로 장려한 까닭은 무엇인가.(-19쪽)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나 생각해 봤을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명확한 이분법적 세계관, 즉 '선과 악'이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역사책이 아닌 소설책, 그러나 소설책이되 소설로만 읽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삼국지>라 한다. 이야기는 황건적의 난으로부터 시작된다. 정권은 부패했고 백성이 감당해야 할 조세는 너무 많았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농민들. 폭정에 시달리던 민심은 폭발했고 그것이 바로 황건적의 난이었다. 주력군이 1년만에 괴멸하였음에도 흩어진 잔당들이 1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농민들의 원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농민들을 도적으로 몰아 토벌하고자 내달렸던 자들이 바로 삼국지의 주인공들이었던 것이다. 조조가 그랬고, 유비가 그랬고, 손견이 그랬다. 백성을 위하고 세상을 편하게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은 정권 유지를 위한 말에 불과할 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고 싶어진다.

중국어 중에 '인민'이라는 말이 있다. '인'은 성 안의 사람을 말함이고, '민'은 성 밖의 사람을 말한다. 성 안과 성 밖의 세계는 너무나도 달랐다. 관우가 살았던 곳도 성 밖이었다. 백성들을 학대하던 현관을 죽이고 도망자가 된 아들에게 걸림돌이 될까봐 그의 부모는 우물에 투신했다. 그렇게 몇 년을 강호를 떠돌았다. 중국에서 관우는 신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삼국지 최고의 주인공은 역시 관우일까?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는 사당 '관제묘'는 우리나라에도 많았다. 서울풍물시장 입구의 동묘가 바로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忠義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새삼스럽게 눈길을 끈다. 소설에서 관우의 얼굴빛을 붉은 색으로 표현한 것은 색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별하는 관습때문이었다. 붉은 색으로 충성스런 인품을 표현했던 까닭이다. 그와는 반대로 조조의 얼굴빛이 흰색인 것은 사악함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다분히 소설적인 묘사다. 유비, 관우, 장비 세사람이 도원결의를 하였다는 사실은 역사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단지 소설적인 표현일 뿐이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장면에 열광하는 걸 보면 알 수 없는 기운이라도 있는 것일까? 황권이 미약해지고 외척과 환관이 득세를 했다. 조정은 문란해지고 그 틈을 파고 들어 자신의 입지를 굳힌 인물이 동탁과 원소였다.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갈라놓았던 초선이라는 여인이 허구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유비도, 조조도 공부를 싫어했다는 말에 실소했다.

『삼국지』에 가미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들을 철저히 살피고 정사(正史)와 연의를 비교해 실어 독자들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책 소개글에서)

이 책에서는 '촉한정통'이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사실 유비보다 훨씬 뛰어난 지략과 정책으로 국가를 운영했던 조조는 냉철한 현실주의였다. 그럼에도 악인으로 평가를 낮췄던 것은 중국인의 내면에 '촉한정통'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 의리와 명분을 중시했던 '성리학'이었다. 그 성리학의 중심점에 유비가 있었던 것이다. 명분을 중시했던 '성리학'이 우리의 조선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음은 말 할 필요가 없다. 제갈량은 출사 이후 적벽대전까지 줄곧 철수와 후퇴만을 반복했다는 것을, 그 어떤 전투에서도 이긴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제갈량의 이미지는 소설가 나관중이 만들어낸 이미지였을 뿐이었다는 말에 왠지 모를 허탈감이 인다. 기행에서 만나는 유적들은 역사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그리고 허구적인 것들로 나뉜다. 이를 잘 가려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게다가 복원되어진 유적마져도 옛 풍취를 느낄 수 없다면 그 답사길의 여운은 고스란히 기행자의 몫이 된다. 관광이 돈과 직결되는 세상으로 변하면서 유물과 유적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옷을 입기도 한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풀어 오른 풍선과 같은 스토리텔링은 가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니 찾아가는 이의 '앎'이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도 누누이 말하고 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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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생 - 새이야기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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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충蟲선생을 흥미롭게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鳥선생이란다. 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저자는 말한다. 벌레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사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고. 그래서 더 읽고 싶은 욕구가 일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나무가 많아 산책길에 늘 새소리를 듣게 되니 새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소개하는 새들을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누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새, 아낌없이 주는 새, 산과 물에 사는 새, 세계를 여행하는 새, 먼 곳이 고향인 새... 크게 보았지만 부류마다 어떤 새들이 있을지 어림으로 짐작해 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새들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우리와 함께 사는 새' 까치, 까마귀, 참새, 비둘기. 蟲선생 때도 그랬지만 이번 鳥선생에서도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이 한자였다. 한자를 어려워하는 사람, 혹은 한자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하나씩 익혀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鵲, 까치 작이다. 소리로 알리는 새, 까치.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까치는 기억력이 좋아서 제 영역에 사는 사람들을 다 알아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하라는 뜻으로 운다. 영역을 침범당했으니 동료들에게 알리는 의미인 것이다. 색이 검다는 이유로 우리에게는 푸대접을 받는 새, 까마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까마귀 새끼는 다 클 때까지 부모 곁에 머물면서 가사를 돕는다. 까마귀는 효를 아는 새다. 가족 단위로 집단 생활을 하는 까닭에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먹는 음식으로 더 가까워진 까닭인지 '아낌없이 주는 새' 로 등장한 것이 닭과 오리, 꿩이다. 닭과 오리도 분명 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잡아 가두고 기르며 먹이를 주다보니 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오리 압鴨자는 새 중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맛이 최고라는 의미라 한다. 중국의 얘기다. 꿩 치雉자는 화살처럼 직선으로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꿩 먹고 알 먹기' 란 속담의 유래와 우리가 좀 부족한 사람을 왜 꺼벙이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알고 나니 웃음이 난다. '산과 물에 사는 새' 를 통해 옛날부터 있어 왔던 매에 대한 역사를 배우고 학과 두루미와 황새, 백로와 왜가리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세계를 여행하는 새' 뻐꾸기와 제비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리가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를 배우면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듣게 되는 일본 전국시대의 세 인물에 관한 일화가 있다. 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라,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하라,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성격을 비유한 말인데 그 새가 뻐꾸기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우는 계절이 되어야 운다'는 뻐꾸기의 특성에 빗댄 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하다. 제비 소리가 요즘은 잘 들리지 않는다. 제비 보는 게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이다. 가끔 제비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면 너무 반가워서 어디에 있는지 제비를 찾아보게 된다. 티베트의 조장풍습은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지라 스님과 저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삶과 죽음은 행복과 불행처럼 함께 움직이는 것인데 우리는 그 둘을 자꾸만 떼어놓으려 한다. 남은 자들은 함께 있지만 떠나는 자는 '혼자' 가는 것임으로 남은 자들이 우는 것은 혼자 떠나는 이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하는' 일이라는 말이 마음에 울린다. '머나 먼 곳이 고향인 새' 는 앵무새나 공작, 칠면조, 타조, 그리고 펭귄이다.

처음 천지가 열리고 공空에 기氣가 채워질 무렵, 신은 그 공간을 누구에게 맡길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결국 신은 작은 머리에 날개를 가진 '새' 라는 생물체를 만들어 내려보낸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하루는 텃새들의 지저귐으로 시작하여, 계절은 철새들이 오가면서 바뀌었다. - 책표지에서 -

새를 통해 한중일의 역사와 문화의 일면을 배우게 된다. 역사와 문화뿐일까? 재미있는 설화나 어원, 유래를 찾아 들려주기도 한다. 아울러 우리 삶에 대한 철학도 담겨있다. 공식적으로는 21마리의 새가 소개되었지만 찬조 출연한 새들도 있다. 산책길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딱새와 직박구리의 이야기를 듣지 못해 서운한 감도 있지만 길냥이들에게 희생되어 새끼들이 줄어가던 오리 가족의 이야기는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작년에 우리 동네 어르신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둘기도 그 희생양 중의 하나다. 어쩌면 텃새와 철새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도 있는 기후 이변의 시대를 살면서 지구는 인류만의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새들로 인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안다는 것이 조금은 경이로웠었다. 이 책이 남겨준 여운이 길다. 새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좋았다. /아이비생각

"새는 날개를 빌리지 않는다"

“새도 직선으로만 날지 않는다. 자연과 생명의 길은 직선이 아닌 곡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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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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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벌써 19권의 책이 발행되었다는 말이다. 그 중에서 몇 권이나 읽었을까? 몇 권을 읽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세계문학상이라는 포장지는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읽은 책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을까? 이번에는 또 얼만큼의 몰입도를 불러 올 수 있을까? 은근 기대가 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아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웃음기 싹 빼고 이런 얘기를 한다면 짜증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간간히 웃음을 머금게도 하니 지루할 틈없이 단숨에 읽게 된다.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고령화사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이 책은 아무런 준비없이 고령화사회를 받아들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읽고나면 입맛이 씁쓸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젊은이가 되었든 늙은이가 되었든 어차피 모두가 겪어내야 할 일이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남의 일 보듯 하는 나라의 허울이 분노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세상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치매를 앓던 엄마가 죽었다. 온전치 못한 몸과 궁핍한 생활은 딸에게 죽은 엄마의 연금이 필요했다. 사망 신고를 하지 않은 채 미라가 되어버린 엄마와 함께 사는 딸. 그녀도 산업 현장에서 재해를 당했으나 법은 그녀를 끝까지 보호해주지 않았다. 매달 엄마의 통장으로 들어오던 100만원 남짓한 돈은 이혼했고, 일이 없었던 딸에게는 생명줄이었다. 중년의 그녀를 찾아주는 일은 없었다. 방향제를 사고, 에어컨을 사고, 이웃과의 소통은 끊어지고. "엄마, 나 천만원만 해 줘!" 업친데 덮친 격으로 철없는 딸아이의 협박까지 받게 된다. 701호에 사는 공명주의 삶은 눈물겹다.

하나, 둘, 하나, 둘.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하여 병든 아버지를 부축해가며 운동을 시키는 청년도 있다. 뇌졸중 아버지를 돌보며 대리기사를 뛰고 있는 준성. 그런 아들의 마음도 모르고 아버지는 몰래 술을 마신다. 경찰서에 불려가 술에 취한 아버지를 데리고 오면서 아들은 몇 번이나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 결국 쓰러진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처지가 되지만 입원비와 간병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아들은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온다. 그리고 목욕을 시키려다 그만 일이 터져 버렸다. 넘어진 아버지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죄책감으로 오열하던 준성에게 701호의 아줌마가 찾아온다.

돌봄의 무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을 말한다는 것 만으로도 사치다. 명주와 준성이 그랬다. 한 사람은 50대의 중년이었고 또 한 사람은 20대의 청년이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세상 천지에 홀로 내몰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부모의 죽음을 은폐했고, 사망 선고를 유예시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막다른 길에서 그들이 선택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던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자신이 없다. 따뜻하고도 잔혹한 이야기라고 책의 소개글에 써있지만 이게 정말 따뜻한 이야기일까? 서울의 임대 아파트를 떠나 증평 시골집으로 이사가는 결말은 아름답다고, 끔찍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또 책의 소개글에 써 있는 걸 보게 된다. 심사위원의 말이 껄끄럽게 들리는 건 왜일까? 불현듯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일을 국민이 스스로 해결한다는 내용을 희망이라고 보았다면 그들은 아직 여유있는 사람들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그리고 현실은 힘겨운 사람에게 내일을 꿈꿀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비관적이라고 말하겠는가?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에 닥친 현실이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준성이 자신의 꿈을 지켜주고자 했던 이웃 명주를 만난 것일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주변을 향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느껴져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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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 : 삶의 의미
박상우 지음 / 스토리코스모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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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가르침 중에는 위험한 세뇌들이 많다. 무조건적으로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것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시작도 끝도 모두 ‘나’와 결부되지만 그 ‘나’라는 것이 헛것, 다시 말해 일종의 망상이라는 게 이제는 확연한 진실이 되었다. 수천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깊은 가르침이 21세기에 이르러 과학과 접목되는 놀라운 진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반복적으로 ‘나’를 문제 삼고 있고 그것을 문제 해결의 유일무이한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는 가르침은 사실 석가모니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것이 21세기의 과학자들에 의해 낱낱이 밝혀지는 장면은 참으로 진경이 아닐 수 없다. - 작가의 말 -

책의 제목이 선뜻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은 책표지 뒷면에서 읽을 수 있었던 작가의 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는 에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에세이의 특성상 개인의 사적인 감정들이 많이 보일거라 짐작했지만 다분히 현실적인 언어들이 책속에 담겨 있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어쩌면 우리가 외면했거나 외면하고 싶어했던 주제가 아니었을까?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낡고 오래된 가르침과 세뇌들에 파묻혀버린 것들이란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평행우주, 자아, 시련, 생명, 기도, 사랑, 집중, 약속, 명상, 인연, 행복, 말(언어), 친절, 돈, 맛, 명작, 교양, 학문, 관상, 청춘, 중년, 인생, 노년 등등의 문제들.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이제는 우리도 외면하면 안될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빨간 밑줄이 그어지던 문장이 많았다. 그만큼 공감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일까? 어쨌거나 저자가 제기한 문제점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빨간불이 분명해 보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저자의 질문과 대답은 명쾌하다. 철학부터 과학까지 모든 분야에 걸친 저자의 사색이 담겨 있다. 문학을 다룬 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안타깝게도 세계문학의 한국 이식은 일제 강점기에 맥이 닿아 있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교양과는 별개라고. 그러면서 저자는 책을 읽는 관점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진정 좋은 책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과 인생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고, 그것을 타자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준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명작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화려한 장정, 넘쳐나는 홍보물, 과장된 추천사와는 별개로 좋은 책을 찾고자 하는 독자적인 탐사 과정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132쪽) 또한 외모지상주의에 찌들어가는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일갈한다. 폼 나게 그랜저를 타고 가다가 논두렁에 쑤셔 박히는 인생보다 티코를 타고도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함으로써 자기 인생의 가치와 의미, 보람과 기뿜을 얼마든지 만끽할 수 있다고.(-156쪽)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는 30억 명 이상의 인류가 일상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놀라운 미래 사회를 예견했다는데 그의 저서 『호모 노마드(L'homme nomade)』를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인류의 정체성을 호모 노마드, 즉 '유목하는 인간'이라고 풀어냈다는 저자의 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아이비생각

요컨대 모든 우주론은 증명 불가능한 가설일 뿐이라는 얘기다. (-15쪽)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참 많은 계(界)가 존재한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경계가 무수한 계를 낳아 동물계, 식물계, 인간계가 확연히 구분된다. - 계와 계가 경계를 만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갈등과 쟁투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계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계가 서로 맞물려 에너지 연동이 일어나고 있으나 오직 자신이 속한 계만 존재하는 듯히 행동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계만 앞세우면 드넓은 세상과의 소통과 화합에 근원적인 한계를 노출한다. (-20쪽)

날마다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걸 숨겨야 하는 이중성, 이것이 디지털 문명을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인의 한계인 동시에 비극이다.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기도도 사라지지 않을 터이니 이제는 그것을 더 이상 기도비닉企圖秘匿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도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하고 나약한 모든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52쪽)

21세기는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이다.(-83쪽)

21세기는 무절제한 과잉 인연의 시대이다. 옛날에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손가락만 움직여도 인연이 맺어지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이기 때문이다. 무제한적인 연결로 인연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그것으로 인해 인연의 중요성 또한 인지하지 못한다. 사람의 소중함을 간과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만나니 헤어지는 것도 손가락으로 '삭제'하면 그만.(-90쪽)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구는 지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조건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다.(-93쪽)

21세기, 우리가 살아가는 SNS 감옥은 팡세 시대의 비유가 무차별하게 팽창하고 또한 극대화된 세상이다. 날마다 무차별하게 처형하고 또한 처형당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날이면 날마다 무수한 사람들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막스 밀리앙 로베스 피에르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아이러니가 온 세상에 만연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97쪽)

생각은 길게, 말은 짧게 하라는 말이 있다. 부질없는말, 장황한 말을 경계하는 말이다. 요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말, 맥락을 잃은 말을 한정 없이 늘어놓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KISS 화법'을 중시한다. 'Keep it short & simple'. - 좋은 말보다 말장난이 횡행하는 시대, 진지함과 집중력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말이 곧 사람이다.(-106쪽)

"아무리 튜닝을 해도 티코가 그랜저가 되는 건 아닙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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