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미술관 -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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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림을 잘 모른다. 뭐 그림뿐이겠는가마는. 그러니 아무리 세계적인 예술가의 이름을 들먹여도 공감하지 못한다. 단순히 작가의 이름과 그의 작품만 연결시킬 뿐이다. 그렇다고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렇다할 해설이 없는 작품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고해도,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해도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으면 그것은 그냥 누구의 작품에 머물기 때문이다. 얼마전 <빈센트와 테오>라는 책을 통해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의 작품에서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예상치못한 어떤 순간에 한 작가의 이름과 작품이 느닷없이 내 앞에 설 때가 있다. 에곤실레가 그랬고 프리다 칼로가 그랬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 본 그들의 작품이 절절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혹은 기괴하다고도 말하고, 혹은 외설적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뭔가 결핍되어진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내면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마주볼 수 있었던 그들의 용기가 놀라웠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을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에곤실레는 그의 그림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육체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성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짧은 생을 훑어본다면 그의 내면적인 고통, 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을 그대로 그림에 표현했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그러나 시대가 그렇게 직접적인 표현을 용납하지 못했기에 그는 한때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시선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프리다 칼로는 내면의 고통을 가감없이 표현한 또한명의 화가다. 18세 때 교통사고로 버스의 기둥이 그녀의 몸을 관통하게 되어 크게 다친 후 30여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삶이 어쩌면 그녀의 예술세계를 열어준 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녀가 사랑했던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도 행복하지 못했다. 리베라는 벽면에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며 멕시코 문화운동을 주도하는 유명한 예술가로 프리다 칼로에게 그림을 그리게 만든 원천이기도 했지만 그의 여성편력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프리다 칼로, 그녀는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시회를 보기 위해 침대에 누운 채 구급차를 타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고 한다. 마치 자신의 삶이 다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15세기~ 17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를 지나, 19세기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인상주의, 자연주의를 다루었다. 렘브란트, 세잔, 고흐, 수잔 발라동등이 이 시기에 등장한다. 그 다음으로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를 다루며 루소나 피카소, 에곤 실레, 샤갈, 나혜석, 프리다 칼로등을 등장시켰다. 하나같이 그들에게는 영혼을 불사를 사랑이 있었으며 불완전한 사랑을 통해 예술적인 극치를 선보이게 된다. 단순히 작가와 작품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작품에 대해 친절한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 마치 그림을 앞에 두고 작품해설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이야기와 작품에 몰입할 수 밖에 없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 학창시절에 미술을 이런 방식으로 공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이력도 눈길을 끈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면서 그저 미술이 좋아서 그것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좋아서 미술사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뭣도 모르면서...'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타마라 드 렘피카라는 화가를 알게 된 것도 행운이다. 그녀의 그림을 찾아보고 선이 확실한 그녀의 그림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녀의 말처럼 어디에서도 자신의 작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림임이 분명해보인다.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그림들은 다분히 매혹적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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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 가깝지만 낯선 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2
후촨안 지음, 박지민 옮김 / 애플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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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전 책날개에 보이는 지은이에 대한 소개글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생활문화사 전문가이여 역사학자이자 인문학자. 소소한 물건들의 역사를 통해 시대를 이해하고, 일상 용품의 기원을 찾고 연구하기를 좋아한다. 음식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에 조예가 깊다. "지성으로 음식과 문화를 이해하고, 역사와 전통으로 미식을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를 향한 평가가 상당히 이채로웠고 또한 놀라웠다. 음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면 저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음식을 통해 일본의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 한마디가 흥미로웠던 까닭이다. 사실 나는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인지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지 않는다. 더구나 음식이라는 건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맛있다' 라는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맛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더구나 책의 제목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에 충분했다.

 

일본인은 육식을 하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인은 육식을 불결하게 여겼다. 육식을 하면 몸에서 좋은않은 냄새가 날 뿐아니라 몸과 정신이 혼탁해져 신을 모실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메이지 일왕이 조서를 내려 육식의 좋은 점을 강조했지만 일부 상류층에서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정말 많은 신을 모시는 일본의 전통이나 역사를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육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들만의 요리법을 만들어냈다. 양식과 서양요리는 무엇이 다를까? 서양요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등 유럽국가의 음식이며 양식은 일본식 서양요리를 일컫는 말이다. 크로켓, 카레라이스, 돈가스는 3대양식으로 불린다. <명치대정사> '세상'편에 실렸다는 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양식은 먹는 법에서 만드는 법까지 모두 우리 일본것이다." 도쿄의 유명한 돈가스 가게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지녔다고 하는 걸 보면 그들에게 일본식 서양요리가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할만 하다.

 

소가 인류를 도와 많은 이를 해 주는 것에 감사하여 소를 먹지 않았다는 일본. 그런 그들에게 고베규라는 유명한 소고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외국인이 일본에 정착하면서 소고기를 필요로 했고 여러 번잡스러운 과정을 피해 지금의 시가현인 오우미지역에서 기르던 소를 고베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사실 오우미의 소는 고대 백제와 신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키워 장군이나 제후들에게 바쳤던 것이기도 했다. 고베규에 대한 정의가 흥미롭다. '고베 지역 효고현에서 나고 키워진 소로 한번도 새끼를 낳지 않은 암소나 거세를 하지 않은 수소를 말한다.'

 

우나쥬, 소바, 덴푸라, 스시는 에도의 4대 음식으로 불린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모두 간장이 필요한 음식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장인정신이 자연스러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네가지의 음식이 모두 평민의 요리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교토에서 에도로 수도를 옮기면서 그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 맞춰 탄생한 음식들이기도 하다. 국수의 역사는 한국도 일본도 굶주림과 연관성이 깊다. 일본의 공업화가 많은 농민을 도시로 불러들였고 대부분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는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값싼 음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중국에는 없다는 한국의 짜장면처럼 자유무역항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이 즐겨먹던 값싼 면이 점차 일본 노동자 계층으로 파급되었던 것이 또하나의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스시 역시 초창기 에도시대의 사회적인 모습을 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에서 보면 일본 상류층의 요리는 네 종류로 나눈다. 관가에서 먹던 다이쿄요리, 사무라이 계급이 먹던 혼젠요리, 절에서 먹던 쇼진요리, 다도회에서 제공했던 가이세키요리.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가이세키요리는 승려들이 먹던 쇼진요리에서 비롯되었다. 가이세키란 단어는 원래 승려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따뜻한 돌을 옷속에 품고 있던 선종수행의 한 방법이었다. 나중에 가이세키를 하는 동안 달콤한 먹을거리나 화과자를 함께 먹었다는 것인데 일본인이 좋아한다는 다도에서 공복에 차를 마시면 위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간단한 미소시루와 반찬 세가지 정도로 제공되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는 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일본의 요리에서 가장 으뜸으로 취급되어지는 쌀. 일본의 '쌀'에는 그들의 문화와 종교가 담겨있다. 일본신화속 아마테라스 오오카미는 벼와 연관이 있다. 계속되는 기아를 막기 위해 아마테라스 오오카미에게 제사를 지낼 곳으로 선택되었던 곳이 바로 이세신궁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음식교육정신'을 중시한다. 음식이 산지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배우게 하고 음식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전통채소'까지 있을까 싶다. 채소를 중시한 것은 육식을 멀리했던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교외의 농작물을 통해 도시와 교외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제철음식의 소비자가 되기 위함도 들어있다고 하니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닌 듯 하다. 대만학자의 눈으로 본 일본의 음식문화가 색다른 느낌으로 전해졌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흔해진 세상에서 내 앞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이 있다면 생각없이 장바구니를 채우지도 않을 것이며 함부로 버리지도 않을 것이란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에게도 장인정신이 살아날 것이며 자랑스럽게 여길 우리의 노포가 세계속에 우뚝 설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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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모험 -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맥스 애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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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의 어머니 나무 반 얀트리, 북유럽신화속 세상의 나무 물푸레나무,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구상나무와 호랑가시나무, 세계의 명작 <하이디>속의 커다란 전나무, 토토로가 살고 있던 녹나무, <어린왕자>가 사랑했던 바오밥나무,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었을 때의 무화과나무(보리수나무가 아니었다!), 경복궁 경회루 앞의 수양버들, 성균관 명륜당 앞 은행나무, 봉황이 깃든다는 오동나무, 그리고 동구밖에 서서 마을을 지켜주던 수많은 당나무들... 내 기억속에 자리한 나무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오직 나무만을 보고, 그 나무가 만들어낸 숲에서 살아온 사람은 더 말해 뭐할까?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나무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배울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태계는 작은 변화에도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말을 빌리자면 나무가 베어져 종이가 되고 한 권의 책으로 사라진다는 걸 슬퍼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숲이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해야만 사람들에게 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까닭이다. 숲이 돈이되면 숲의 생존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슬픈 느낌을 주는 말이다. 우리를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것들이 그 중요성을 잃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아닐까 싶어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무심기 프로그램을 만든이가 누구인가를. 인도인 라주선생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 나무심기 프로그램이 바로 그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무심기는 백번, 천번을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삶과 나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무로 인해 숨을 쉬고, 나무에 의해 편안한 잠을 자며, 나무가 주는 열매를 먹기도 한다. 태어남(요람)과 죽음(관) 역시 나무와 함께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왜 나무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일까? 한 비석에 써 있다는 글이 시선을 끈다.

이 생애를 마감한 베자우드beza wood를 기억하며.

여기 한 나무wood가 잠들어 있네.

나무에 둘러싸여, 나무 안에 또다른 나무.

둘러싼 나무는 매우 좋은 나무.

다른 나무에 대해서는 칭찬할 말이 없음.

그야말로 칭찬할게 없는 인간의 존재? 이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 나무의 도움없이 인간이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의 삶속에서 나무를 떼어놓고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종이도 나무에서 나오고, 집을 짓는 것도 나무가 없으면 안된다. 온갖 가구와 기구들을 보더라도 나무로 된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다못해 집을 지켜주는 울타리도 나무였다. 그런 것을 모두 차치하더라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공기를 내어주는 것도 나무가 하는 일이니 인간에게 있어서 나무의 중요성은 정말 대단하다. 나무가 모여 만든 숲을 파괴하면서 기후의 이상현상이 초래되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나무를 베어내는데만 급급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파괴하면서 인공적인 자연을 만들어내는데만 힘을 쏟고 있다. 대서양의 어센션섬의 예만 봐도 인간이 자연의 섭리에 개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 수 있다. 나무는 커녕 풀 한포기없는 황무지였던 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밭을 일구고 작물을 심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런던에서 수많은 나무를 들여와 섬에 심었다. 10년사이에 500그루의 나무가 섬으로 옮겨져 지금 40여종의 수종으로 자라고 있지만 토종 식물의 절반 이상이 멸종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내버려둬야 한다. 자연은 꼭 필요한만큼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선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동물과 식물은 서로 공존한다. 인간만이 그들과 공존하지 못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다. 이 책은 인간과 나무가 서로 공존과 공생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맥스 애덤스는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숲 전문가이다. 인간과 함께 해 왔던 나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무는 후손들을 위해 선택도, 계획도, 계산도 하지 않는다. 그들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거나 진화적 미래를 고려하지도 않는다. 자연은 감정이 개입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85쪽- 그래서 나는 나무가 좋다. 곤충이 등장하기전부터 나무는 지구상에 존재했다. 종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인간은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다. 나무와 더불어 모든 것이 함께 살아간다. 바람도, 곤충도, 새도, 동물도. 그런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나도 살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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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 경제 선언 - 돈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을 찾아서
쓰루미 와타루 지음, 유나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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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이 돈없이 살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없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꿈을 꾼다. 그것을 바꿔 말한다면 돈에 치여사는 삶에 지쳤다는 말도 될 듯 하다. 돈을 쫓아가지 말고 돈이 쫓아오게 하라는 말은 이미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오죽했으면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삶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내려놓기나 비우기와 같은 삶의 형태를 이야기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것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이고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으로 살아가자는 생활방식인데, 사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욕심때문에 쌓아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을 또다시 떠올린다.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에게 자본주의라는 말은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태어난 말이기 때문이다. 이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다보니 결국에는 물질주의, 금전만능주의라는 걸 불러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넘쳐나다보니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기업은 소비자들을 부추겼다. 남들이 가져가기전에 네가 먼저 가져가라고.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집안 구석구석 물건을 쌓기 시작했다. 집이 비좁다고 아무리 큰집으로 옮겨가도 쟁여놓기 시작한 물건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마치 더 큰 물건을 들여놓기 위해 더 큰 집으로 옮긴 것처럼. 너무나 편한 세상, 너무도 흔한 세상에서 살다보니 소중한 것들을 잊게 되었다. 아니 무엇이 소중한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또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물건을 쌓아놓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지금 최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는 '돌이킬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 하지만 묻고 싶다. 정말 그럴까? 실제적으로도 우리 삶의 모든 것은 디지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디지털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단순하다. 컴퓨터의 등장부터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너무 깊숙한 곳까지 관여하는 디지털의 영향력에 저항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아날로그식 감성이 그립다고. 거짓으로 포장되어진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틈새를 파고 들었다. 돈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공유나 대여, 혹은 증여와 같은 제도가 찾아보면 많다고. 봉사를 하거나 공공시설물을 이용하거나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중에는 아직 우리에게 문명이라는 것이 찾아오기 전의 생활방식도 들어있어서 새삼스러웠다. 산업혁명이 있기전의 우리는 정말로 서로 도와가며 살았다. 지금은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향약이나 두레, 품앗이와 같은 것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삶의 형태다. 지금보다 조금만 불편하게 살아도, 지금보다 조금만 부족하게 살아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돈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을 찾아서, 라는 말이 책표지에 보인다. 굳이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헤매지 않아도 내 삶에서 조금만 덜어내면 된다. 조금만 불편하게 살면 된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산다는 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이다. /아이비생각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형태를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말로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가기에 좋은 사회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는 헌법1조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럴까? 뜬금없이 생각난 말인데 엄청나게 궁금해지고 말았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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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역사
에밀리 프리들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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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내 맘대로 뭐든 다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거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밉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고나면 진짜로 뭐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나를 보호해주는 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때가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이해하게 되고, 나 역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공연스레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내가 생각했던대로 풀리는 건 아니었다. 어른이 되고나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던 나의 철없음을 인정해야만 했고, 어른이 되고나니 세상일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에 대해서도 여러번 뒤돌아보아야만 했다. 이 책은 아마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 듯 하다.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둡고 칙칙하다. 열네살의 소녀 린다가 삶의 정체성을 알아가기 위해, 혹은 성에 대한 자신의 의식에 당혹해하면서 나이가 들어가지만 그렇다고해서 린다에게 어떤 확실한 변화가 찾아오는 건 아니다. 열다섯살이 되고, 열여덟살이 되어도 린다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자신의 삶속에서 살고 있다.

 

모두가 떠난 히피공동체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살고 있는 린다의 부모. 그 부모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채 자라는 린다. 책을 읽으면서 말로만 들어왔던 히피문화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1960년대 지지부진한 베트남 전쟁의 상태와 불안한 사회의 영향으로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기존 사회의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며 인간성을 중시하고 물질문명을 부정했던 운동이 '히피'라고 한다. 그들은 원주민인 인디언의 생활방식을 모방하여 자유분방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떠돌아다니는 공동생활과 같은 상징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히피문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 듯 하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린다의 부모 역시 정체성의 혼란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탓에 린다 역시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며 혼자서 숲속을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레오와 패트라가 네살인 아들 폴과 함께 이웃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린다는 폴의 베이비시터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린다에게 다가온 패트라와 폴의 모습은 린다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도만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선전하는 종교(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종교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에 빠진 레오에 의해 아무런 보호조치없이 병을 앓던 폴이 죽게 된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의 삶이 너무나도 달랐던 것. 그리고 세상이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너무도 불합리하다는 걸 그녀는 알게 된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 외로워지긴 했지만 이제 성인이 된 린다는 그 숲속을 떠나 도시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의 뇌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어느정도의 오류를 보인다는 말이다. 자기자신을 지키고 싶은 보호본능이 앞서기 때문일까? 결국 한통의 전화를 받은 린다는 다시 자신이 자란 미네소타 북부 숲속의 오두막으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여전히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풀리지 않는 숙제때문에. 친구 릴리와 그리어슨 선생님은 정말 어떤 관계였을까? 레오와 패트라가 정말로 폴을 죽인 것일까? 엄마는 나를 낳은 엄마였을까? 솔직히 어떤 기법으로 쓰여진 소설인지 잘 모르겠다. 성장소설인지 추리소설인지. 책의 제목으로 쓰인 <늑대의 역사>는 또 어떤 의미인지. 다섯그루의 나무가 서로에게 가지를 뻗어 늑대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책표지의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어떤 말이라도 걸어오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어딘가에 갇힌 것처럼 답답한 느낌을 너무 강하게 전해받았다.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때문인지 몰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지만 린다의 삶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그녀에게 봄이 오기는 올까? 어찌된 일인지 마지막에 보이는 옮긴이의 말이 작은 위로가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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