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담장 속의 과학 - 과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인의 의식주
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3월
평점 :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만들어진 한국인의 의식주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를 과학의 눈으로 읽어내는 법...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한줄로 될까? 누군가는 해야만 할 일, 누군가가 해 주었으면 했던 일이라고 했다. 경험을 토대로 말로는 다 할 수 없으니 이렇게 글로 남겨져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살짝 까치발을 하고 남의 집 울안을 넘어다볼 때의 그 기분이었을까? 내심 기대가 높았던 책이기도 했다. 그 내용이 너무나도 좋았다는 말도 빼놓을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 문화를 접해보지 않은 우리의 아이들은 어떨까? 옛이야기처럼만 느껴지지는 않을까? 속도와 편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이 왠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은이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누군가는 해야만 할,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라던..
住..
집이다. 우리의 삶이 대부분 만들어지고 또 없어지는 공간. 책을 읽으면서도 문득 문득 그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여자들이 주로 머물렀던 안채, 남자가 머물렀고 가끔씩은 손님이 쉬어가기도 했다던 사랑채, 그외의 집안 사람들이 머물렀던 행랑채로 분류되었던 한옥의 정겨움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좌청룡 우백호니 배산임수니 했던 것처럼 집 하나를 얻기 위해서 전후좌우로 지형이나 풍수등 많은 것을 따져야 했으며 작은 것 하나까지 세세하게 마음을 써야 했던 옛선인들의 마음씀씀이를 그런곳이 아니면 만나보기 힘들것이다. 그 집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하는 대문의 높이나 문턱하나에도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던 옛사람들의 풍류를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던 것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들어서는 문을 활짝 열면 안쪽의 문이 다시 보여지는 그런 공간, 닫힌듯하면서도 열린 그런 구도가 나는 참 좋았었다. 달구어진 구들을 통해 오래도록 난방을 유지할 수 있었던 최상의 난방구조 온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도 행여나 재가 날릴까 음식에 대한 마음을 허투루 하지 않았던 부엌의 구조등.. 자연과 벗삼아 또하나의 자연으로 살고자 했던 우리 선조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이야기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지위고하나 지방에 따라 그 구조가 조금씩은 달랐다던 옛가옥들.. 지금의 아파트 구조들이 옛 가옥의 구조를 본떠서 만들었으며 온돌이나 장판 또한 우리가 멀리하기만 했던 옛것으로부터 비롯되어졌다면 그것이 신기한 일일까?
食..
먹을것이 지천이었을 것이다. 간혹 먹을 것이 없어서 이것저것을 먹다보니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그 별것도 아닌것처럼 보여지던 우리네의 먹을거리들이 얼마나 몸에 좋은 음식이었는지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고 그 메주를 이용하여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담아먹으며 미생물과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나 대표적인 신토불이 식품인 김치에 대한 예찬론은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을 것 같다. 어디 김치뿐일까? 발효식품의 효능이야말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 알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어릴적 비오면 장독뚜껑 닫아라, 하시던 엄마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느닷없이 내리던 소나기를 원망하며 야단도 많이 맞았었는데... 김장을 하고 장을 담그면서도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했다던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산에 가면 산나물, 들에 나가면 들나물... 예로부터 봄에 나오는 달래,냉이,씀바귀,쑥 따위가 우리몸에 얼마나 이로운지는 많이 들어 잘 알고 있을테니 자꾸 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만큼 지금은 우리가 멀리하는 옛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끼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웰빙열풍을 통하여 이제 다시 우리곁으로 다가오는 것들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몸에 좋다고 먹는 것들이 피부질환을 불러오고 현대병을 불러왔다고 한다면 믿고 싶을까? 옛것이라고 무조건 내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일게다. 옛것과 지금의 것들이 알맞게 조화를 이룬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텐데...
衣 ..
대표적인 것이 무명, 삼베, 명주였을 것이다. 누에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명주, 목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무명, 식물성재료로 얻을 수 있었던 삼베.. 첫대목을 펼쳐들면 빨래의 역사부터가 시작이다. 그 역사속에서 만날 수 있는 비누의 유래가 재미있다. 또한 염색을 하기 위하여 '잿물에 담그기'와 '햇빛에 바래기'를 되풀이하며 표백했던 과정과 염색의 기술들.. 노랑색은 치자, 붉은색은 홍화, 초록색은 땡감, 검정색은 그을음에서 뽑아냈다던 우리의 천연 염료가 일본으로도 전해졌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도 한단다. 아울러 라이크라,고어텍스,스판덱스등 옷감의 종류라거나 그 옷감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성질을 알아보기 쉽게 잘 분류해 놓고, 옷의 기능성에 대하여 중요하게 다루어준 대목들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좋은 지금은 옷감을 말해주면서 아울러 우리의 옛스러운 의복속에 담겨져 있는 작은 과학들을 비교해보는 것도 참 멋진 일임엔 분명했다. 자연으로부터 옷감을 얻기 위한 과정들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누에를 치고 고치로부터 실을 뽑아내야 얻을 수 있었던 비단, 목화를 심어 그 목화솜으로부터 옷감을 얻기 위하여 실을 뽑는 실잣기와 베짜기, 솜타기등의 과정을 거쳐 얻을 수 있었던 무명, 모시풀의 줄기 껍질을 가늘게 쪼개서 길게 실을 꼬아 베를 짜 얻을 수 있었던 모시나 삼베.. 옷에 얽힌 혹은 옷감에 얽힌 이야기들이 하나의 역사처럼 귀에 쏙쏙 들어온다.
옆으로도 열 수 있고 앞으로도 열 수 있었던 장지문을 처음보았을 때 너무나도 놀라웠었다. 집안쪽으로 없을것만 같았던 작은 마당이 보여지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었다. 옛스러움이 보여주는 정서가 좋아 기회가 될때마다 찾아다닌다고는 했지만 그리 많은 곳들을 찾지는 못했다. 우암 송시열선생의 사적공원안에서 보았던 남간정사와 다산 정약용선생의 생가, 운현궁 이로당의 모습이 떠오른다. 샘물이 대청마루 밑으로 흘러 연못으로 스며들게 했다던 남간정사의 꿈결같은 모습, 집 바깥쪽 사랑채에 길게 뻗어있던 툇마루가 색다르게 다가왔던 다산 생가의 정겨운 모습, 'ㅁ'자형의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던 이로당의 모습은 이채로웠었다. 작은 문고리 하나에도, 창살 하나마다의 조형도, 안마당과 뒷마당을 통하는 바람의 성향까지도, 담장속에 머물렀던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생각하고 조화를 이루어 거기에 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생겨났다고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앞선다. 살아 숨쉬는 집, 살아 숨쉬는 돌, 살아 숨쉬는 독.. 살아 있다는 표현하나만으로도 족할 것 같은 우리의 것들.. 지은이의 말처럼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연적이며 인공적인 모든 환경이나 우리의 생각과 행동, 결과까지 모두 한데 어울려 문화가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아무리 작은것이라 할지라도 필요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을 것이다. 현대에만 억눌려 전통을 고루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전통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의 집을 집이라 부르지 않고 초가집이나 기와집 또는 한옥(韓屋)으로 부르고, 우리 옷을 옷이라 하지 않고 한복(韓服)이라 하며, 우리 음식을 음식이라 하지 못하고 한식(韓食)이라 부른다는 지은이의 말이 가슴 한켠을 아프게 한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