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지나간다 -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 이야기
구효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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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다. 말의 유희로 한바탕 놀고 난 듯한 느낌이다. 된소리 스물네 개로 만들어낸 스물네 개의 이야기에 피식거리며 웃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코끝이 찡한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아팠던 시절이었음이 분명한데도 슬쩍 웃어 넘겨버리고마는 그런 시대가. 그 아픔을 다 이야기하자면 어쩌면 삼백예순날 하고도 5일이 더 걸릴지 모르니까. 뻘, 깨, 빡, 뻥, 깡, 씨, 꿀, 쓰, 빵, 달, 깽, 찍, 땡, 뺨, 쓱, 꽃, 때, 쎄, 떼, 빡, 뼈, 뿌, 떡, 끝... 이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를 나열해보는 것은 그 소리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서다. 어느 정도는 짐작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어쩌면 그리도 찰지고 맛나던지. 전기를 증기, 김치를 금치, 김을 짐이라고 하는 강화도 창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음미해보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소리가 아니다. "계속되던 것이 아주 갑자기 그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이다. 소리가 아닌 모양이라지 않은가. 모양. 그런데 그걸 글로 적자니 소리가 되고 만다. 그것도 아주 된소리. 뚝. 그러고보니 '하늘'도 아무 소리 없는데 글로 적으니 하늘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거 자꾸 재미있어진다. 무엇이든 종이에 글로 적으면 소리가 된다는 게 그렇다. 글은 말이고 말은 소리구나. 그러니까 모든 글은 소리. (-143,144쪽)  말 그대로 소리가 된 글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상당히 독특한 문장체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글에는 은유적 글이 있는가하면 미사여구 하나없이 있는 그대로의 말로 전해지는 글이 있다. 이 책에는 아름답게 꾸미고자 한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글로 소리낼 뿐. 뻘은 그대로 뻘이고, 깡은 그대로 깡이며 깽은 그대로 깽이다. 단지 그 말들이 1인칭 화자가 되어 그 때 그시절의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쑥쑥 빠져드는 뻘에서 게를 잡는 사람들, 늦은 하교길에 80명이 죽었다던 새기재에서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어린 효서에게 달려가고 싶어하는 깡, 달밤에 하릴없이 짓는다고 멋적은 주인에게 얻어맞은 개가 깽, 하고 소리를 낸다.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어서 많은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했던 꽃이 전해주는 새기재 이야기, 목 매달고 죽은 사람들이 길게 내밀었던 쎄는 '쎄가 빠진다'고 할 때의 '쎄'로 그 의미가 혀라는 것, 만신 할미의 굿이 끝나기만 바라며 목을 길게 빼고 있던 동네아이들에게 키 큰 아저씨들이 나눠주던 시루안의 떡, 밀고 밀리던 전쟁통에 한마을에 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죽어갔던 사람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를 알고 있던 뼈, 다같이 어수선한 시절을 살아내고 있었음에도 공연스레 아이들의 '뺨'을 때리던 선생들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가 나이를 말할 때 종종 거론되는 58년 개띠가 있다. 1958년생. 개띠. 그 시절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화도의 창말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이야기이기도 하고 작가의 유년시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958년 개띠는 전후세대다. 베이비붐세대다.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태어났다는 말도 있다. 교육적으로는 '뺑뺑이'를 맨처음 시작한 세대이고, 7080의 통키타 문화를 만들어낸 세대이기도 하다. 10·26사건과 12·12사태를 거쳐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제5공화국을 무너뜨리며 6월항쟁을 쟁취했던 세대가 바로 그들이며 IMF로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직장을 떠나야만 했던 힘겨웠던 세대가 또한 그들이다. 반공과 방첩을 주제로 웅변대회를 했으며, 송충이를 잡거나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해야 했던 아이들. 머리에 이가 있거나 뱃속의 회충과 싸우던 아이들. '콩나물시루'같았던 교실에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공부했던 아이들. 그리고 양 어깨에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짊어져야만 하는 세대다. 낀세대, 그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그들이 올 해로 회갑이라고 한다. 만만치않은 노후를 또다시 견뎌내야 할 세대로 자리잡을 것이다.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스물네 편의 글들을 모은 책이라는 말이 보인다.  연재 당시 된소리 홑글자들이 화자로 등장하는 독특한 내용과 형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는데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하게 된다. 1957년 9월에 태어난 닭띠인데도 1958년 9월에 출생신고를 해서 58년생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는 작가의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 때는 다 그랬다고 한다. 홍역이다 뭐다해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많아 1년동안 잘 살아내면 그 때서야 출생신고를 했다고.  '빵'도 말하고 '쓱'도 말해서 제 글이 살짝 애니미즘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도 같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또 어떻게 그 시절을 떠올릴까 싶네요.(-354쪽) 작가의 말이다. 그 시절은 그만큼 힘겨웠다는 말일게다. 삶은 하나의 경험이고, 추억이고, 기억이다. 그 하나의 경험과 추억이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그 하나의 기억이 한 시대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내 언니와 오빠들의 헛헛한 삶을 들여다 본 것 같아 공연스레 안스러움과 미안함이 느껴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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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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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선진국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덩치만 커다란 아이같다고 많은 지식인이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다른 나라보다 정치, 경제, 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나온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이라고 배웠다. 개발이나 발전의 정도만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후진국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이 달라진다. 경제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정치적이나 문화적인 면을 따지고 들면 여전히 후진국쪽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과도기의 아픔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정도를 넘어선 듯한 요즈음의 대한민국을 보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그 혼란스러움의 와중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昨今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뜯어 고쳐야 하는 뱃사람과 같은 신세다. 우리에게는 부두로 가서 배를 분해하고 좋은 부품으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83쪽) 오스트리아의 과학철학자 오토 노이라트의 말이라고 한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그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암담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토 노이라트의 말처럼 많은 지식인이 존재함에도 (이 책을 쓴 저자도 고려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 지식인들이 올바른 길을 알려주고 있는데도, 그저 말에 그칠 뿐 받아들여지지 않는 까닭이다. 정치가 후진적이라서? 그렇지만 뉴스를 보면서 늘 느끼듯 대한민국보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정치도 매양 그렇다. 그러니 딱히 정치를 탓하기도 그렇고. 그렇다면 딱 한가지 뿐이다. 국민이다. 국민이 깨어있지 않다는 뜻일 터다. 모두를 위해,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나라. 너무나도 편협한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민낯. 이 책에서는 그런 우리의 민낯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국민이 변해야 할 때라고. 국민이 변하면 나라의 체계가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사회적인 약자나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한 제도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 (-216쪽) 는 말을 보면서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사회적인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거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니 내 편 아니면 남의 편, 흑백 논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울림의 미학을 잃어버린 나라. 제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겠다고, 피하지 않고 함께 있겠다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가 있다. 저자는 그런 상황의 실제적인 예를 많이 연구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많은 실례를 보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병들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습을 뉴스를 통해 접하지만 이 책의 소제목처럼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240쪽)

"개개인이 무장을 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원인을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니까요." (-250쪽) 

이 책에서는 사회적인 불안요소, 이를테면 고용 불안이나 소수자를 향한 차별등이 우리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사회적인 불안요소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먼저 치유해야만 한다고. 사회가 개인의 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다, 고 저자는 말한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복직문제라거나 세월호의 유가족 문제, 성소수자나 결혼이주민등의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고. 그러나 하나하나가 아닌 '우리'가 될 때, 서로의 존재가 연결될수록, 사회는 건강해질 수있다고.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배려속에 기쁨과 따스함이 존재한다고. 최첨단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병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게 가능해진다고 해도, 사회의 변화 없이 개인은 건강해질 수 없다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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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느라 길을 잃지 말고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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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이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사랑이란게 있기나 할 걸까? '사랑'은 이미 숨어버렸다. 어디로? 시집속으로, 소설속으로, 혹은 영화속으로. 그리고는 온전한 제 모습을 감춘 채 찾고 있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가면을 쓰고 우리앞에 등장한다. 이정하라는 작가를 만나게 된 건 <우리 사는 동안에>라는 산문집에서였다. 제목에 홀려서. 2002년에 출간된 작품이니 꽤 오래전의 일이다. 이정하의 시집이나 산문집을 보면 영락없이 제목에 홀리게 된다.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혼자 사랑한다는 것은>, <다시 사랑이 온다>,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  삶의 길에서 한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 있을까? 살아가면서 사랑을 한번도 꿈꿔보지 않은 사람, 있을까? 제목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는 그의 작품에 또다시 홀려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는 것도, 보여지지 않는 것도 사랑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가끔 말의 유희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사랑하기에 보낼 수 있었다,라는 말이라거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처럼 그런 말만큼 거짓의 가면을 쓴 것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걸. 그러므로 사랑은 눈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다. 눈을 뜨고 보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 눈 감았을 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없다면 그건 아마도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탈을 쓴 다른 욕망일 뿐이다. (-108쪽)  그의 단점, 그리고 그가 안고 있는 어두운 부분까지 감싸안을 수 없다면 그 사랑은 뻥이다, 공갈빵이다. (-167쪽)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우느라 길을 잃지 않았느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세월의 켜를 늘려가면서도 온전히 내 삶을 살아내지 못한 채 늘 허둥거렸다. 어쩌면 그런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길게, 아주 긴 호흡으로 이 책을 보았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한 줄의 글귀로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지금 마음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지금 세상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고 있다면, 지금 사랑이라는 이름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아주 뻔한 말들이 때로는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니까. 덕분에 이 책에서도 아주 잠깐 언급하고 있는 작품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을>과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아니면 한번쯤은 그 내용을 들어봤을 책이다. 새삼스럽다. /아이비생각

 

 

누구나 조금씩은 눈물을 감추며 살지. 슬픔은 우리 방황하는 사랑의 한 형태인 것을. (-248쪽)

상처를 크게 생각하면 답이 없다. 덧나 죽을 수 밖에. 몸에 난 작은 종기쯤으로 생각하자. 도려내면 되게끔. 밴드 하나 붙이면 될 상처라고 생각해야 쉽게 낫는다. (-262쪽)

바람이야 뭐 별 생각없이 불었을 것이다. 자신 때문에 흔들린 잎새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부는 바람이야 그저 스쳐지나갔을 뿐이었지만 흔들린 잎새만 한동안 그 느낌에 파르르 떠는 거지 뭐. (-200쪽)


목조계단 / 이정하


가끔은

내 삶이 삐걱거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낡은 목조계단,

위태롭게 올라가고 있으나

부축해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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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돼지
심상대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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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림자 놀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저스티스맨>, <우리 사우나는 JTVC 안봐요>... 근간에 내가 읽은 세계문학상 작품들이다. 이 책 역시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김별아의 <미실>이나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도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이다. 사실 베스트셀러나 ㅇㅇ상 수상작이라는 작품을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을 자주 읽게 되었다. 잘 읽혔다. 소설인데도 우리네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느낌을 작품들이 가지고 있었다. 고단한 우리네 삶을 똑바로 바라보는 관점이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또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심상대라는 작가의 이름때문이다. 어디선가 많이 보고 들었던 느낌인데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 찾아보니 많은 작품이 보인다. 여태 그의 작품을 왜 읽어보지 못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낄낄거렸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그 장면들이 머리속에 그려지고 툭탁거리는 그들의 말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아서. 소설의 배경은 빵이다. 먹는 빵이 아니라 감옥, 다시말해 죄수들의 은어로 '빵'이라 불려지는 감방이다. 그러니 당연히 재소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같은 방에 배치된 털보와 빈대코는 59년생으로 돼지띠 동갑이다. 털보는 이곳에 오기 전에 주유소를 했고, 빈대코는 산골마을에서 과수원을 했던 사람이다. 앞으로 감옥살이를 같이 하게 될 사람들에게 신고식을 하면서 그들은 둘이 같은 나이라는 걸 알게 되고 바로 친구가 된다. "우리는 돼지띠 동갑이다! 앞으로는 누가 뭐래도 잘 살아보자. 우리는 죽어도 돼지고 살아도 돼지다!" (-29쪽) 그러다가 나중에 신입이 하나 더 들어오게 되는데 그게 빠삐용이다. 이 교도소에서 한가지 좋은 점은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이름이 박힌 우유가 나오지 않아서, 라고 말하던 빠삐용은 정치를 하던 사람이었다. 이렇게해서 셋은 죽어도 돼지, 살아도 돼지인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꿈을 꾼다.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 국도변에 주유소를 하면서 혼자 살겠다는 털보의 꿈에, 그 주변의 산에서 과수원을 하면서 같이 살자고 빈대코를 슬쩍 끼워주고 나중에 들어온 빠삐용의 조용하고 공기좋은 섬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 거기에 보태졌다. "그래.... 어딘가 있을거다. 정 없으면 우리 셋이 그런 마을을 만들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 (-279쪽)  이 돼지띠 '사장님'들과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재소자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도 눈물겹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돼지띠 친구들의 일상을 쫓아가면서 우리네 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된다. 저마다의 사연을 듣다보면 세상의 비정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들의 어이없는 행동때문에 피식거리기도 했지만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는 말처럼 한편의 희극을 보고 있으면서도 눈물이 나는 듯한 서글픈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세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은연중에 돼지띠 친구들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장을 넘겨가면서 하아~~ 한국사람들이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일단 관등성명부터 묻고 바로 서열정리에 들어간다. 나이가 한살이라도 많으면 형님이 되는 건 당연지사다. 한국에 찾아온 외국인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더 많은 정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으니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게 마련인 듯 하다. 그런 정서가 있었기 때문에 털보와 빈대코와 빠삐용은 서로에게 이렇게 외칠 수 있었던 거다. "힘내라 돼지야!" "그래... 힘내라 돼지!" (-304쪽)  작가는 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을 빌어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보여주고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언제나 슬픈 것이라,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이 말을 한번도 듣지 못했다고 말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한편의 시로 위로받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선택과 결정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 어느 누군가가 전해주는 단 한편의 시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힘내라 돼지>, <울어라 돼지>, <기쁘다 돼지> 등 세권으로 이루어진 연작 장편소설의 첫번째 작품이라는 말이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두번째, 세번째 돼지들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돼지들의 행로에 응원을 보낸다. 힘내라 돼지! 그리고 나도!  /아이비생각

 

 

"天地不仁이라지 않소. 사장님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래도 세상살이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늘이 이 사람 저 사람 가리고 살펴 복을 주고 화를 내리는 게 아니라는 건 우리가 겪어봐 알잖아. 그러니 맘 편히 먹고 여기나 저기나 다 같은 징역살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요."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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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세트 - 전2권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알베르 카뮈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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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우스개소리처럼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단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하고 되묻게 된다. 나라면 그냥 평소처럼 내일을 맞이할 것 같다. <페스트>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의 작품으로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게 했다. 1947년에 쓰여졌다는 <페스트>는 그의 작품 <이방인>과 함께 당당히 세계의 명저속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세계명작에 빠져 닥치는대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느낌이 어땠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도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를 어린 나이에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페스트>에는 인간이 공포에 대처하는 모습과 길들여짐이 함께 하고, 희망과 절망이 평행선을 달리며, 나와 우리가 함께 한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몰고 온 공포가 덮쳤을 때 사람들은 설마했다. 그들은 절망했다가 괜찮아질거라는 희망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그러들기는커녕 사망자의 수치는 겉잡을 수 없이 늘어가고, 어느새 그 상황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오히려 평온함을 되찾게 된다. 인간의 적응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를 보며 페스트를 의심했던 의사 리외.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랑시의 사람들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환자를 돌보며 평온한 듯 평온하지 않은 그의 일상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오랑시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던 랑베르에게 리외는 이렇게 말했었다. "어쩌면 저 역시 행복을 위해 뭔가 하고 싶기 때문"(-54) 이라고.  그의 한마디가 랑베르에게 혼자만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결말을 불러왔지만 나는 랑베르가 탈출시도를 멈추겠다고 말했을 때 왠지 모를 단절감과 절망이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랑베르의 직업이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기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그렇게 오랑시의 사람들에게 공토와 희망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마릴린 체이스의 <격리>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페스트>의 배경이 프랑스의 오랑시였다면 <격리>의 배경이 된 도시는 샌프란스시코라는 점이다.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전염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지쳐갔다. '남의 불행을, 남의 고통을 이렇게까지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이 속히 끝나기를 바랐다. 마음을 다해.  전염병과 맞서 싸우며 끝까지 함께 했던 친구 타루를 희생시키고 드디어 페스트의 기세가 사그러들며 희생자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세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온갖 부조리함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카뮈는 자신을 실존주의 작가라고 규정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아이비생각 

 

화자이기도 했던 의사 리외에게 친구 타루가 했던 말이다.

" - 중략-  그래요. 저는 이 세계를 알아요. 리외, 저는 단언할 수 있어요. 사람은 저마다 자기 안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그 누구도 페스트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자칫 방심하면 다른 사람의 얼굴을 향해 오염된 숨을 내쉬죠. 타인을 전염시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단속해야 해요. 병균은 이 세계의 섭리고, 따라서 치명적일 정도로 자연스럽죠. 그외 것들,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건강, 성실, 결백, 정직, 순수 따위는 의지, 그러니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의지의 산물인 거죠. 존경할 만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죠. 페스트 환자의 삶은 번거롭습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삶은 그보다 훨씬 더 번거롭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로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더군다나 감염된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서는 극도의 피곤을 경험해야 하죠. -중략- " ( -119~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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