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한옥에 살다
이상현 지음 / 채륜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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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집은 단순히 어떤 목적, 말하자면 편리한 생활을 위한 기능적인 대상이 아니다. 이 집은 조상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신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고, 이웃과 함게 어우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는 집을 생활속에서 실천적으로 해석하며 살아왔다. 한옥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미학적 가치와 삶의 실존적 가치는 끊임없는 생성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자연과 든든하게 이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239-240) 책의 말미를 더듬어 일단 결론이 아닐까 싶은 이야기부터 하고 본다. 어찌되었든 한옥의 아름다움에 정말 공감하느냐 묻던 저자의 물음에 명쾌한 답을 드릴 수 없는 까닭이다. 古宅이나 전통가옥을 찾아갈 때마다 그 안에 숨은 의미보다 형태와 형식만 찾아 헤매며 너무 어렵다고 중얼거리곤 한다. 생소한 명칭들은 왜 그렇게나 많은지, 그런것들을 꼭 알아야만 마치 전통가옥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서 어렵게 찾아간 곳에 반발짝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그 많은 명칭들은 가옥을 보러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이나 듣는 이나 그 명칭들앞에서 작아지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보다 한술 더 떠서 이제는 인문학까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내심 불편하기도 했다. 한옥을 그냥 한옥만의 느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한옥에 대비시켜보라고 하니 더 어려울 밖에...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너무나도 서양적인 것에만 물들어사는 지금 우리네의 시선에 맞춰 어떻게든 한옥의 아름다움을 이해시켜보려고 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천천히 책장을 넘기긴 했지만... 설령 그렇다해도 내게는 쉽지않았다.

 

언론매체를 통해 종종 중국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이 사는 문화를 보면서 철저(?)하게 사대주의로 살았다는 우리네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사는 집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한옥이 중국의 사합원에서 비롯되었고 우리의 골목길과 그들의 골목길이 닮아 있다는 말은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런 말을 보게 된다. 중국의 집은 한옥에 가까울까? 아니면 서양 집에 더 가까울까? 대부분 중국의 집이 한옥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서양 집에 더 가깝다. 중국의 주거문화도 마당이 아니라 중정에 의지하고 있어서 집의 특성으로 보면 많은 경우 우리보다 서양을 닮았다. 의외였다. 여러형태로 변형되어지던 사합원을 보면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그 '중정'의 의미를 새겨보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앞쪽으로 돌아가 저자의 말을 되새겨본다. 빛을 들이기 위한 중정의 의미가 서양의 건축물 형태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주거문화가 중국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형식일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나무뼈대를 이용하여 집을 짓는 건축 방법을 빼면 중국이나 일본은 오히려 서구적이라는 것을. 집과 난방시설이 별개인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의 가옥은 집과 난방시설이 하나로 톻합되어 있다는 것, 구들이 우리의 것임을 익히 알고 있었으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까닭에 그것을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다.

 

가끔 전통가옥을 찾아가면 나는 항상 툇마루나 쪽마루에 걸터앉아 처마밑으로 내려앉는 빛과 한동안 노닥거리곤 한다. 살포시 내려앉는 그 햇빛의 따스함이 너무 좋아서. 거기서 그렇게 온종일을 보낸다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전통가옥의 한부분은 사랑채와 마당이다. 특성상 폐쇄적인 듯 보이지만 알고보면 개방적인 그 구조가 나는 참 좋다. 막아놓은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모두가 열린 그런 분위기는 낮은 담장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빛을 받아들여 다시 건물로 쏘아보낸다는 어설픈 설명이 없어도 파란 하늘을 마당안 가득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얼마나 멋있는지... 한옥의 미는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립된 비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 속에서 가치를 가지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기반하고 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는 저자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자연에 가장 잘 어우러지는 선, 그것이 바로 지붕선이란 말에 주목한다. 답사를 갈 때마다 전통가옥을 보면서 쭈욱 뻗어나간 지붕선의 아름다움에 빠져보라는 말은 늘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지붕선이 무엇을 얼마나 아름답게 담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의 가옥이나 궁궐은 그 자체만 보면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조금은 먼 발치에서 바라봤을 때 자연과 어울어진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던 어떤 이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문을 열면 그 주변의 풍광이 집안으로 모두 들어와 그 집과 하나가 된다는 설정 자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죽했으면 借景이라는 말을 썼을까? 경회루내에서 보는 모습이 최고의 借景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가옥에서 바라보는 借景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건 분명한 일일 것이다.

 

저자가 말한 '대충'의 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안성 청룡사의 기둥이 보고 싶어 찾아갔던 때를 더듬어보면서. 기둥도 대충, 대들보도 대충 만든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안에 깃든 목수의 마음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막돌을 주춧돌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생김새를 그대로 기둥으로 썼거나 아무렇게나 생긴 돌로 그 기둥을 받친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움'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의 열풍으로 유행처럼 부석사를 찾아갔던 시절이 있었다. 부석사를 찾았을 때 정말로 배흘림기둥에 기대서 있던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무엇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했었다. 나도 한번 기대서볼까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었는데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다가서고 싶은 우리의 마음, 그것 또한 또다른 하나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문화가 形의 문화이기보다 象의 문화 라는 저자의 말이 가장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形과 象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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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 열린 강좌 2014-07-0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옥연구소 대표 이상현 님의 강연이 있어, 한옥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고자 글을 남깁니다.

저자 초청 열린 강좌 - 이상현(한옥연구소 대표)의『인문학, 한옥에 살다』(채륜서 刊) (7월 15일 오후7시)

장소 : 서울 지하철5호선 마포역 4번출구 앞 불교방송 건물 3층 다보원
일시 : 7월 15일 화요일 저녁 7시
참가 문의 및 신청 : 02-719-2606
네이버 카페(화요 열린 강좌, http://cafe.naver.com/dharin.cafe)

*모두에게 열린 무료 강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