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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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라 반가웠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거나 적게는 한 두살, 많게는 너댓살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사람에게 괜스레 친밀감이 생겨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아마도 서로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는 까닭이리라. 작가는 글로써 대중과 이야기하고, 연사나 강사는 말로써 대중과 이야기 한다. 그런데 요 얼마전 글로써 대중과 만나야 할 사람이 말로써 대중과 만나며 세간의 이슈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글쓰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쉬울수도 있었겠구나...' 싶었지만 보기에 조금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어느정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사람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부터가 어느정도는 편협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을 다시한번 떠올리면서 그의 말에 경청해보기로 한다.

 

말 그대로 터질듯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약간은 생소한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왠지 소설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부드럽지가 않았다. 읽으면서도 뭔가 불편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책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話者 류와 요셉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곰삭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책장을 덮어야 할 지점에서 만난 작가의 말을 통해 아하! 그런거였구나, 싶었다. 아픈 내면을 건드린다는 건 확실히 불편하다. 우리가 애써 감추고 싶어하는 것들을 은근슬쩍 끄집어내서 보여주고자 하는 상황,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렇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 관계의 틀을 형성한다. 관계... 그 말속에 정겨움과 나눔이 들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냉혹하다. 계산되어진 마음들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감추고 싶어하는 불편한 진실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아닌 척,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게 바로 지금의 우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그야말로 태연하게 풀어놓고 있다. 저마다 속내를 감추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저마다 외롭다. 그래서 저마다 쓸쓸하다. 그래서 저마다 찾아 헤맨다. 따스함을.... 별 것 아닌 것에도 큰소리로 화를 내고, 별 것 아닌 것에도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약한 사람일수록 강한 척 한다는 모순을 보게 된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많이 가진 척 한다는 말처럼. 내 안의 모든 걸 드러내며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강한 은유의 장벽을 치는것도 서글픈 일임엔 분명하다.

 

그 관계의 틀속에서 우리가 얻는 건 무엇이고 잃는 건 무엇일까? 자로 잰 듯이 사는 사람도, 헐렁하게 대충대충 사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고통과 상실감 하나씩은 안고 살아간다. 가족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가면서 감내해야할 것은 누구나 다 똑같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말이 '평행선'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평행선 위를 걸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더 멀리가지 않으나 더 가까이도 할 수 없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책에 빠져들수록 조여오는 아픔이 느껴졌다. 오래전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읽다가 그만 눈물을 흘렸던 그 때처럼... 류라는 여자와 요셉이라는 남자가 감추어둔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뜨끔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여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봐주었으면 하는 모순,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들켰으면 하는 모순,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목을 빼고 있거나 곁눈질하는 모순,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하면서도 말해야 알 수 있는거라고 하는 모순,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모순, 사랑이라는 자신만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모순, 있는 척, 없는 척, 모르는 척, 아닌 척, 태연한 척....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나의 관점일 뿐이다.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나로인해 상처입은 마음이 있다면 이제는 그 상처, 아물었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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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2-06-10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h님 얘기 듣고 읽고 싶었는데,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모순, 모든 것이 나의 관점일 뿐이다, 살아가는 방식에는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답이 없다는 말에 무척 공감해요.

은희경이 누군지도 모르고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음에도)예전에 '마이너리그'를 참 재미있게 읽었는지라 좋은 기억이 있어요.

아이비 2012-06-11 12:10   좋아요 0 | URL
가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저를 돌아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역시 내멋대로였구나 싶을 때가 많았답니다.
다녀가신 흔적으로 남은 시간 행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