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一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클로드 모네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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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상사를 찾아가면 나는 법정스님보다 먼저 어느 시인을 사랑했다던 여인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남편과 사별하고 생존을 위해 기생이 되었다는 여인. 그 후로 시인 백석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신분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고 말았다. 분단이 되고 백석은 북으로 갔다. 그 여인을 향한 사모곡까지 있었을 정도라 하니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성공하게 된 여인 김영한은 끝내 백석을 잊지 못했다. 1000억원이라는 돈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고 말했다고 하니. 원래는 고급요정 '대원각' 이 있었던 곳이다.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를 읽고나서 감명을 받은 노년의 그녀가 '대원각'의 부지와 그에 속했던 건물을 법정스님에게 모두 시주하고자 했다. 극구 사양하던 스님께 10년동안 찾아가며 뜻을 밝히자 스님께서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려주셨다고 한다. 그만큼 글의 힘은 위대하다. 그 감동이 얼만큼의 크기였는지 감히 누가 알 수 있다고 하겠는가. 우리는 가끔 한줄의 글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끔 한 줄의 글귀에 위안받기도 한다.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윤동주의 시, '개'다. 단 한줄속에 저렇게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참 놀랍다. 굳이 은유적인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지는 장면이 다가온다. 이런게 詩다. 나에게는. 굳이 어려운 말로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 것보다 이렇게 바로 다가오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이런 글이 나는 좋다. 책속의 그림은 쓸쓸하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詩는 왠지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정월, 이 한겨울에 따스함을 안고 싶었기에 시집 한 권을 손에 들었는데 오히려 더 춥고 외로워진다. 겨울은 그런 계절인가 보다. 그래서 화롯불이 필요하고, 그래서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운 것일게다. 앞에서 언급한 윤동주의 詩를 행을 바꿔서 쓰면 또다른 느낌이 든다. 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이 내렸네, 라고 중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처럼 다가온다.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이 시화집에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함께 들어있다.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난 모네는 소년시절을 영국의 항구 도시인 르 아부르에서 보냈으며 18세때 그곳에서 화가 로댕을 만나 외광묘사에 관한 기초적인 화법을 배웠다. 인상파의 시작이 모네로부터였다. 그의 작품으로 <카미유(녹색옷을 입은 여인)>, <정원의 여인들>, <인상, 일출>, <수련 연못위의 다리>, <수련>등이 있다. 사진으로 보면 아하, 할 작품들이 많다. 시인으로는 윤동주外, 백석, 정지용, 변영로, 노천명, 박인환등의 작품이 실렸다. 그 중에서도 전작과 같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하이쿠였음을 다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겨울 햇살이 지금 눈꺼풀 위에 무거워라 / 다카하마 교시의 작품과, 색깔도 없던 마음을 그대의 색으로 물들인 후로 그 색이 바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라 / 기노 쓰라유키의 작품이 실려있다. 기노 쓰라유키는 헤이안 시대의 가인이고, 다카하마 교시는 하이쿠 시인이자 나쓰메 소세키에게 영향을 받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하이쿠는 접하면 접할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 윤동주의 '눈' 이다. 이 詩을 읽으니 불현듯 함민복의 '성선설'이란 詩가 떠오른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을 녹이려 가장 먼저 찾았던 따뜻한 아랫목의 이불속같은 따스함을 그려본다.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라고 윤동주는 '못 자는 밤'을 말했지만, 하나, 둘, 셋, 넷..... 밤은 길기도 하다, 고 나의 밤은 말한다.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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