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돼지
심상대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꽃그림자 놀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저스티스맨>, <우리 사우나는 JTVC 안봐요>... 근간에 내가 읽은 세계문학상 작품들이다. 이 책 역시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김별아의 <미실>이나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도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이다. 사실 베스트셀러나 ㅇㅇ상 수상작이라는 작품을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을 자주 읽게 되었다. 잘 읽혔다. 소설인데도 우리네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느낌을 작품들이 가지고 있었다. 고단한 우리네 삶을 똑바로 바라보는 관점이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또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심상대라는 작가의 이름때문이다. 어디선가 많이 보고 들었던 느낌인데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 찾아보니 많은 작품이 보인다. 여태 그의 작품을 왜 읽어보지 못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낄낄거렸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그 장면들이 머리속에 그려지고 툭탁거리는 그들의 말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아서. 소설의 배경은 빵이다. 먹는 빵이 아니라 감옥, 다시말해 죄수들의 은어로 '빵'이라 불려지는 감방이다. 그러니 당연히 재소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같은 방에 배치된 털보와 빈대코는 59년생으로 돼지띠 동갑이다. 털보는 이곳에 오기 전에 주유소를 했고, 빈대코는 산골마을에서 과수원을 했던 사람이다. 앞으로 감옥살이를 같이 하게 될 사람들에게 신고식을 하면서 그들은 둘이 같은 나이라는 걸 알게 되고 바로 친구가 된다. "우리는 돼지띠 동갑이다! 앞으로는 누가 뭐래도 잘 살아보자. 우리는 죽어도 돼지고 살아도 돼지다!" (-29쪽) 그러다가 나중에 신입이 하나 더 들어오게 되는데 그게 빠삐용이다. 이 교도소에서 한가지 좋은 점은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이름이 박힌 우유가 나오지 않아서, 라고 말하던 빠삐용은 정치를 하던 사람이었다. 이렇게해서 셋은 죽어도 돼지, 살아도 돼지인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꿈을 꾼다.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 국도변에 주유소를 하면서 혼자 살겠다는 털보의 꿈에, 그 주변의 산에서 과수원을 하면서 같이 살자고 빈대코를 슬쩍 끼워주고 나중에 들어온 빠삐용의 조용하고 공기좋은 섬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 거기에 보태졌다. "그래.... 어딘가 있을거다. 정 없으면 우리 셋이 그런 마을을 만들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 (-279쪽)  이 돼지띠 '사장님'들과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재소자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도 눈물겹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돼지띠 친구들의 일상을 쫓아가면서 우리네 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된다. 저마다의 사연을 듣다보면 세상의 비정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들의 어이없는 행동때문에 피식거리기도 했지만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는 말처럼 한편의 희극을 보고 있으면서도 눈물이 나는 듯한 서글픈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세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은연중에 돼지띠 친구들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장을 넘겨가면서 하아~~ 한국사람들이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일단 관등성명부터 묻고 바로 서열정리에 들어간다. 나이가 한살이라도 많으면 형님이 되는 건 당연지사다. 한국에 찾아온 외국인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더 많은 정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으니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게 마련인 듯 하다. 그런 정서가 있었기 때문에 털보와 빈대코와 빠삐용은 서로에게 이렇게 외칠 수 있었던 거다. "힘내라 돼지야!" "그래... 힘내라 돼지!" (-304쪽)  작가는 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을 빌어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보여주고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언제나 슬픈 것이라,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이 말을 한번도 듣지 못했다고 말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한편의 시로 위로받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선택과 결정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 어느 누군가가 전해주는 단 한편의 시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힘내라 돼지>, <울어라 돼지>, <기쁘다 돼지> 등 세권으로 이루어진 연작 장편소설의 첫번째 작품이라는 말이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두번째, 세번째 돼지들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돼지들의 행로에 응원을 보낸다. 힘내라 돼지! 그리고 나도!  /아이비생각

 

 

"天地不仁이라지 않소. 사장님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래도 세상살이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늘이 이 사람 저 사람 가리고 살펴 복을 주고 화를 내리는 게 아니라는 건 우리가 겪어봐 알잖아. 그러니 맘 편히 먹고 여기나 저기나 다 같은 징역살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요." (-29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