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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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가 자기보다 훨씬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 상대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무작정 주먹을 날린다. 그 대가로 망신창이가 되도록 두드려 맞지만,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그는 계속해서 상대를 향해 달려든다. 상대는 차츰 그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공포까지 느낀다. 그럼에도 상대는 그를 꺽어 놓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했던 일본과 그 일본을 응징해야 했던 미국의 상황이 아닐까?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으로 돌진했을 때 과연 일본은 스스로도 미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일본제국 패망사]라는 책은 열자마자 그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본의 광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번역되기 전부터 [THE RISING SUN]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태평양 전쟁에 관심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이번에 번역이 되어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분량과 막대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입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끓어오르는 기점이 되는 1936년부터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의 기록을 다루고 있다. 페이지만 무려 1400페이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그 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일본은 잔혹한 군국주의의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책장을 열고 처음 접하는 사진들은 태평양 전쟁의 잔혹한 사진들과 일본의 광기 어린 군국주의의 사진들이다. 그리고 바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폭주하는 1936년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일본의 태평양전쟁의 과정은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 여러 번 접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태평양 전쟁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물론 저자인 '존 톨런드'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무모한 팽창주의를 지적하면서도 시종 일본에 우호적인 필치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일본이 왜 그렇게 무모한 전쟁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매우 세밀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서양인은 도조 장군과 일본 지도자들이 히틀러나 그의 군대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며 마땅히 무슨 벌이든 받고 불행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일본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망가진 재난에서 벗어나 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다시 존중받는 지위를 회복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전쟁 중에 번번이 야만족처럼 행동한 나라와 그 국민을 우리가 어떻게 존중하고 칭찬하게 되었단 말인가? 대체로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 이 책은 그런 의문과 함께 아시아의 지형을 바꿔놓은 전쟁을 둘러싼 물음들에 대한 필자의 답변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리고 싸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P 37)

 

이 책의 1936년의 황도파로 불리는 육군의 젊은 장교들의 반란 사건(2.26사건, 또는 쇼와 유신이라고 부르기도 함)으로 시작한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운 후, 나름 아시아의 강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유럽 열강들처럼 국제공항으로 인한 서민층들의 가난과 자원의 빈곤으로 인해 허덕이고 있었다. 이와 함께 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남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육군 장교들을 중심으로 부폐한 관리를을 암살하고, 군인 중심의 군국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며칠 만에 무산되었지만, 이 사건 이후 일본의 핵심 권력은 대부분 육군 장교들에게 주어지고, 일본 안에는 군국주의적 야망이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알려진 베이징 근교의 일본군과 중국군의 충돌로 인해 중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겉으로는 아시아를 서구의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아시아 전체가 다 잘 살게 한다는 대동아 정책을 주장하며,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난징학살같이 30만 명을 학살하고 강간하는 무자비한 폭력성이 존재한다. 아마 이것이 일본을 본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일본의 지도부는 중일전쟁의 과정에서 적당한 선에서 중국정부와 전쟁에서 타협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쟁의 맛을 본 일선 군인들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질 정도로 폭주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안정을 위협하는 두 가지 맹독 - 게코쿠조와 기회주의-이 다시 나타났다. 중국에서 또 한 번의 큰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육군대신 스기야마가 협상의 문턱을 높여버렸다. 그런 다음 중국 북부 주둔군 사령관이 예기치 않게 고노에와 참모본부의 특별 명령을 거스르고 베이징에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는 일이 벌어졌다. - 중략- 장제스가 진정으로 협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고노에는 평화를 위한 지름길을 택하고 '일본의 이상을 공유하는' 중국인들과 거래하기로 결심했다. 1938년 1월 16일 그는 '제국 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협상을 중단할 것이며 협력을 원하는 새로운 중국 정권의 출범과 성장에 의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P 120)

 

그러나 폭주를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중일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일본은 중국에서의 철수를 결심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고, 히틀러에 의해 영국과 프랑스가 무력화된다. 그러자 일본은 중국에서 철수하기는커녕 중국을 넘어 동남아 지역까지 욕심을 낸다. 저자는 이것을 일본의 기회주의라고 부르고, 이 작전을 '버스를 놓치지 마' 정책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의 전쟁이 1940년까지 질질 끌자, 일본 참모본부는 그해 안에 완전히 승리하지 못하면, 병력을 차츰 철수시키고 중국 북부에 공산주의를 막을 방어부대만 남겨놓기로 비밀리 결정했다. - 중략 - 히틀러의 손쉬운 승리에 도취된 일본군 지도부는 생각을 바꿔 '버스를 놓치지 말자!'라는 구호를 채택했다. 프랑스가 패배하고 영국이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상황에서 석유 및 기타 절박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진격할 때가 다가왔다. - 중략-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한때, 중국에서 물러나는 것을 감수했던 일본군은 유럽에서 히틀러가 얻은 갑작스러운 행운에 유혹을 받고 동남아시아의 자원으로 눈길을 돌렸다." (P 132)

 

물론 이렇게 파국으로 폭주하는 일본에 대한 견제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집단 광기 앞에서 이성적인 목소리는 쉽게 묻혀 버렸다.

 

"버스를 놓치지 마! 정책을 입안한 군국주의자들은 전쟁을 원하지도 않았고 예견하지도 못했다. 프랑스가 패배하고 영국이 자체의 생존을 위해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일본에게 인도차이나는 고무와 주석, 텅스텐, 석탄, 쌀 등의 자원이 넘치는 '길바닥에 놓인 채 누군가가 주워가기만을 기다리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 중략-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마쓰오카의 반발이 있었다. 또 대본영에서 생각이 더 깊은 사람들은 앵글로색슨 국가와 알력을 빚을 것을 예건 하기도 했다. 이 일로 육군 참모총장인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황은 눈물을 흘리며 사직했다." (P 136)

 

이런 과정은 진주만 공습까지 그대로 반복되며 이어진다. 군국주의 집단들이 ABCD국가(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와 전쟁을 통해 태평양으로의 영토를 확대하려고 하고, 미래를 보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이에 제동을 걸려한다. 그러나 한 번 폭주한 군국주의자들은 결국 6척의 항공모함에 300대가 넘는 전투기를 싣고 진주만을 폭격한다. 이 과정에서 도조 총리대신이나 야마모토 함장 같은 군구주의자들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폭주하게 되고, 결국 일본을 나락에 떨어뜨리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의 군국주의의 폭주를 근원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하극상이라고 부르는 게코쿠조이다. 젊은 육군장교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 (할복의 형태로 자주 나타남) 폭주하고, 지도부나 정치인들은 마지못해 동조하는 과정이다. 흔히 말하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폭주하는 기관차에 올라타는 형식이다. 아마 지금의 일본인의 정서의 대부분에도 이런 분위기가 팽배할 것이다. 아베 총리가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동조하며 따라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회주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본의 탐욕이다. 겉으로는 양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회만 되면 승냥이처럼 먹이를 향해 달려든다. 심지어는 그 먹이가 당장은 맛이어 보이지만, 독이 될 것이 분명해도 무조건 달려든다. 당장의 탐욕을 막을 집단적 이성이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주사변, 중일전쟁, 동남아 침략, 진주만 공습 등으로 일본 군국주의가 폭주한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겉으로는 매우 공손하게 보이지만, 조금의 허점만 보이면 승냥이처럼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태평양 전쟁의 원인과 과정을 깊이있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책이지만, 동시에 일본이라는 나라 속에 감추어진 본성을 이해하게 하는데 매우 귀중한 책이다.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에서 저자는 미국적인 시각에서 일본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고  쓰고 있다. 아마 일본의 진짜 적은 미국이 아니고 소련이었고, 미국이 조금만 더 양보했으면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대신 일본이 소련을 견제했을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저자의 시각은 현대 미국이 일본에 가지고 있는 시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대상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그럼에도 저자는 나름 일본의 행동 근본에 있는 그들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자료와 그들의 문화를 통해 왜 그들이 그렇게 무모한 결정을 내렸는지를 깊이 있게 접근을 한다. 이것이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데 너무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일 갈등이 극에 다다르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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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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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 중의 하나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피츠제럴드 생전에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에 인기 있는 있는 작가였던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왜 그렇게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을까? 개인적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바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계층 문화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현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때로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아메리카나]를 읽으며 문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의 작품은 과연 나이지리아에서 인기가 있을까? 이렇게 사실적으로 나이지리아 사회를,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욕망을 그려내고 있는데도 과연 나이지리아에서 읽힐까?'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아디치에의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은 후 읽기 시작했다. 아다치에는 나이지리아의 현대 여성작가이다. 많은 사람이 그녀를 페미니즘 작가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단순히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나이지리아나 아프리카 사람, 더 나아가 흑인들의 전체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한 여성이 나이지리아에서 모두들 동경하는 미국의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마치 화려한 도시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자신을 잃어가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점점 자신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찾아가는 부분도 언급하지만, 주된 내용은 아프리카인으로서, 더 나아가 나이지리아 인으로서 자신을 찾아가는 부분이 더 주를 이룬다.

 

소설의 초반부는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유학 와서 타인이 보기에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페멜루라는 여성의 시각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프린스턴에서 시간강사이지만 교수직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온 아프리카 여성들은 그녀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이지리아를 그리워하고, 나이지리아에서 사랑했던 첫사랑인 오빈제라는 남성을 못 잊어 한다.

 

"그녀의 영혼 속에는 납덩이가 있었다. 벌써 꽤 오래전부터 그녀는 아침마다 피로, 암울, 이성의 무너짐을 느끼는 병을 앓아 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찾아온 형태 없는 갈망, 모양 없는 욕망, 자신이 살 수도 있었을 또 다른 삶에 대한 찰나적 몽상이 몇 달에 걸쳐 서로 뒤섞이면서 사무치는 향수가 되었다. 그녀는 나이지리아 웹 사이트, 페이스부의 나이지리아인들, 나이지리아인들의 블로그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그런데 클릭할 때마다 나오는 것은 또 한 명의 젊은이가 미국이나 영국에서 학위를 따 가지고 최근 금의환향하여 투자 회사, 음반 제작사, 패션 브랜드, 잡지사 혹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남녀들의 사진을 본 그녀는 마치 그들이 자신의 손을 비틀어 열고 그 안에 있던 것을 뺏어 가기라도 한 것처럼 무딘 상실감을 느꼈다. 그들은 그녀의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지리아는 그녀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되었다." (1권, P 17)

 

나이지리아에서 살고 있는 오빈제의 시각에서 묘사되는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영국 유학 후 나이지리아의 거물의 부정한 일을 봐 주며 나름 성공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마치 신기루처럼 여긴다.

 

"레키 고속 도로에 들어서자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차들이 빠르게 움직였고 잠시 후 게이브리얼은 오빈제네 집의 높고 검은 대문 앞에서 경적을 눌렀다. - 중략 - 모든 방이 시원할 테고, 에어컨 통풍구는 조용히 흔들리고 있을 것이며, 부엌은 카레와 타님의 향긋한 냄새로 가득할 것이고, 아래층에는 CNN이 틀어져 있는 반면, 위층 텔레비전에는 카툰 네트워크가 틀어져 있을 것이며, 이 모든 것에는 어느 구우의 침해도 받지 않은 풍요의 분위기가 스며 있을 것이었다. 그가 차에서 내렸다. 걸음걸이는 뻣뻣하고,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그는 몇 달 전부터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 - 가족, 집, 자동차, 은행 계좌 - 때문에 붕 뜬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고 때때로 모든 것을 핀으로 찔러 바람을 빼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그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한 번도 확신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자기 인생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를." (1권, P 43)

 

그리고 소설은 나이지리아에서의 이페멜루의 성장기를 다룬다. 반복되는 쿠데타에 혼란스러운 나이지리아의 상황,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상류층의 사람들은 모두들 미국에서의 삶을 꿈꾼다. 그녀는 아버지의 퇴직 이후 겨우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류층과 어울리게 되고, 누구보다도 미국의 삶을 꿈꾸는 오빈제를 만나다. 그녀는 오빈제를 만나 사랑하고 함께 미국에서의 삶을 꿈꾸지만, 고모의 권유를 오빈제보다 먼저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막상 미국에 도착하자, 미국은 그녀가 꿈꾸는 곳이 아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장군으로 불리는 남성의 애인이자, 잘 나가는 의사였던 고모는 3-4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페멜루 역시 등록금을 내재 못해서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그러다가 겨우 백인 남자 친구를 만나서 그 밑바닥에서 탈출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미국인들이 아프리카너나 흑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신을 비롯한 아프리카너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블로그에 올리며 나름 미국의 차별 문화를 비판하지만, 어느새 자신 역시 그런 문화 속에 빠져 버려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나이지리아로, 오빈제에게로 돌아가는 꿈꾼다.

 

아디치에의 소설은 우리에게는 낯선 나이지리아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기에 나이지리아의 낯선 환경과 문화 종교, 종족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낯선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이 낯섬 속에서 점점 우리와 닮아있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철저한 가부장적인 문화, 남녀 차별의 문화, 계속되는 쿠데타와 부패, 그 부패 속에서 성공하는 사람들과 몰락하는 사람들, 현실도피를 위해 미국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 그리고 막상 미국에 도착하자 자신들이 꿈꾸었던 미국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하는 사람들, 나이지리아에 돌아온 유학생들이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모습들. 이 모든 것들이 한국 사회와 너무나 닮아있다. 거친 나이지리아의 환경과 검은 피부색에 대한 묘사 속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들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낯설고도 묘한 동질감과 이질감이 소설을 읽는 내내 기분을 묘하게 한다. 마치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낯선 음식을 먹으면서 이물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 음식을 맛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거북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 소설은 이렇게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거나 인종적인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주된 뼈대는 이페멜루와 오빈제의 사랑 이야기다. 각자가 서로의 삶에서 허상을 쫓아가다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러기에 문화나 인종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흥미 있게 소설을 읽어갈 수 있다. 이것이 이 소설을 더 멋지게 장식해 주는 장식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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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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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결국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가난 집을 떠나 가톨릭 선교사의 집에 거처하며 공부를 한다. 그곳에서 독실한 신앙을 가지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기업도 이루고, 신문사까지 경영한다. 그는 나름 여러 곳에 기부도 하며 지역 사회와 종교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리더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영 다른 모습이다. 아내와 두 자녀인 아들과 딸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원한다. 딸이 반에서 1등을 놓치면 불과 같이 화를 내고, 자신의 종교적 관습을 조금이라고 어기면 아들과 딸, 심지어 아내에게까지 폭력을 가한다.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대략 그려지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힘겹게 공부해서 성공을 이루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7-80년대의 한국 아버지상을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앞에서 묘사하는 인물은 한국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아프리카 중서부의 나이지리아라는 나라의 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치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의 주인공 캄빌리의 아버지 유진의 모습이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나이지리아를 대표하는 여성작가인 아다치에의 첫 소설이자,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물론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까지가 저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캄빌리는 과자와 음료수 공장, 그리고 언론사까지 소유한 성공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아직 나이지리아 토속 종교를 버리지 못한 아버지와는 인연을 끊을 정도로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아내와 자녀들에게까지 강요한다. 당연히 사춘기인 오빠 자자는 그것을 거부하고 이로 인해 아버지와의 갈등이 심해진다. 또 한 번 반에서 1등을 놓친 캄빌리에게도 아버지를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기를 강요한다. 그럴 때면 캄빌리의 아버지는 항상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고,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지를 강조한다.

 

너는 내가 왜 그렇게 너랑 오빠한테 최고만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니? 너는 이 모든 특권을 누리는 만큼 뭔가를 해야만 해. 하나님이 너에게 많은 것을 주셨으니 기대하시는 것 또한 많단 말이다. 하나님은 완벽을 기대하셔. 나한테는 제일 좋은 학교에 보내 주는 아버지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무와 돌을 신으로 섬기며 세월을 보냈지. 선교단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아니었다면 난 오늘날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야. 나는 이 년 동안 교구 사제의 심부름꾼이었단다. 그래, 심부름꾼. 학교에 데려다주는 사람은 없었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일 13킬로를 걸어서 니모에 갔지. 성 그레고리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여러 사제들의 정원사였고 말이야. (P 64)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강요하는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하고 공부를 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기면 어김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음식을 먹지 않는 공복재의 기간에 캄빌리가 몰래 음식을 먹다가 아버지에 걸린다. 그것을 엄마와 오빠가 감싸주다가 함께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다.

 

"악마가 셋 다한 테 심부름해 달라고 한 거야?" 아버지의 입에서 이보어가 튀어나왔다. "악마가 내 집에 텐트를 쳤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아봤다. "당신은 가만 앉아서 애가 공복재 어기는 걸 모고만 있었어, 미카 은디니?" 아버지가 천천히 벨트 버클을 풀었다. 몇 겹의 가죽으로 만든 무거운 벨트에 차분한 색 가죽을 씌운 버클이 달린 것이었다. 그것은 먼저 오빠에게, 어깨를 가로질러 내려앉았다. 그다음에는 두 손을 들어 막는 어머니의 위팔, 성당 갈 때 입은 블라우스 스팽글 달린 부푼 소매로 싸인 위팔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내가 그릇을 내려놓는 순간 내 등에 내려앉았다." (P 131)

 

이렇게 폭력을 행사한 후에는 꼭 딸을 안고 많이 아팠냐고 묻는다. 캄빌리는 이런 아버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은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아버지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하는 종교적 관습뿐만 아니라, 반에서 1등을 해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런 캄빌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준 사람은 그녀의 고모인 이페오마이다. 이페오마 고모는 같은 가톨릭을 믿으면서도 캄빌리의 아버지와 달리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자녀들도 그렇게 교육을 시킨다. 그녀와 오빠 자자는 이페오마 고모의 집에 열흘간 머물며 고모가 보여주는 자유로운 세상을 맞본다. 그리고 아버지가 만든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안다. 그로 인해서 아버지와의 대립이 더 극단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은 나이지리아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나이지리아는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여러 민족들의 갈등과 정치적 대립으로 자주 군부의 쿠데타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 소설 역시 정확히 어떤 쿠데타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지만, 독재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정권을 잡은 세력은 캄빌리의 아버지의 신문사를 억압하고, 비판적인 사설을 쓴 기자를 암살하기도 한다. 이런 폭력적인 정권의 시대와 함께 또 한편으로 폭력적인 캄빌리의 가정의 모습이 함께 묘사된다. 놀라운 것은 이런 묘사가 마치 우리나라 7-80년대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사회의 폭력과 가정의 폭력이 당연시되고, 그 속에서 항상 폭력을 통해 군림하는 지도자가 있는 것까지 너무나 닮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다치에를 페미니즘 소설가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녀가 페미니즘에 대해 강의한 유튜브 강의는 550만의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그녀를 굳이 페미니즘 소설가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두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녀의 소설은 폭력의 시대, 폭력이 당연시되는 시대에 그 폭력 속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가는 한 여성의 성장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희생되는 것은 캄빌리와 캄빌리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오빠 자자도 마찬가지였다. 나이지리아에도 가부장적인 문화가 존재했고, 그 문화 속에서 여자와 자녀들을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받고 있었다. 소설은 이런 나이지리아의 문화와 독특한 종교적 권위가 존재하는 가정 속에서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캄빌리가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독립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런 캄빌리의 가정의 모습은 한국의 가정의 모습과 닮아있다. 한때는 아버지의 폭력을 당연시 여기는 때도 있었다. 아버지이니 당연히 아내와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것이 아버지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시대가 있었다. 맞는 아내나 자녀들 중에는 남편이나 아버지가 사랑하기에 폭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이런 폭력은 단순히 가정에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심지어 국가 안에서 이런 폭력이 정당화되었다. 리더나 지도자는 당연히 그렇게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위대한 리더나 지도자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이런 폭력과의 힘겨운 싸움이 있은 후에야 우리 사회가 조금씩 그 폭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우리가 싸워야 할 것들을 많이 있다. 아다치에의 소설에서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여자가 남자와 싸우는 것이 아닌, 이런 가부장적인 폭력과의 싸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아다치에의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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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 - 현실 자매 리얼 여행기
한다솜 지음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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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과감히 여행을 떠나는 날들이 많았다. 무언가 삶에서 답답함을 느끼면 만사 제쳐두고 배낭을 들고 산을 오르거나 바닷가에 여행을 갔다.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여행을 한 번 떠나려고 하면 생각할 것들이 많아진다. 지금 남아서 해야 할 것들, 필요한 경비들, 낯선 곳에서 고생할 일들이 떠올라서 쉽게 결정을 못 내린다. 주변에서 휴직을 하면서까지 과감히 몇 달씩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심까지 든다. 그런 존경심을 가지게 하는 자매들을 만났다. [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에서 스스로를 한자매라고 부르는 스물다섯과 서른의 자매이다.

 

이 책은 언니인 한다솜이 동생인 한새미나와 함께 215일간 24개국 54개 도시를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먼저 떠나는 과정부터가 관심을 끈다. 평범한 직장이었던 저자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버킷리스트 1번인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그동안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보게 되었다. 리스트에는 언제 이룰지 모르는 꿈들이 가득했다. 세계여행 가기,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하기, 스킨스쿠버 자격증 따기, 해외로 카페 투어 떠나기... 목록을 쭉 읽다가 이유 모를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서른 살, 나는 무엇을 이루었을까? 나는 지금에 만족하고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 자신에게 물었지만, 무엇 하나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만의 삶이 아닌 그저 남들과 같은 인생을 사는 것 같아 회의감도 생겼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삶을 한번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카페 투어도 하고 마라톤도 완주해보자고. 메모장 한구석에 잠들어 있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깨워 세상으로 꺼내보자고 말이다." (P 19)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의 상황에 너무 큰 공감이 되었다. 언제까지 미루기만 한다면 그 꿈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감히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런 결단에 동조하는 마음이 확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녔던 여행경비를 산출한 것이다. 숙박비나 체류비가 아니라 24개국 54개 도시의 교통경비만 무려 천이백만 원이 넘었다. 그러니 다른 경비들까지 합치면 얼마일까? 자신의 직장, 자신의 시간,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정까지 모두 부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해 간다는 것이 너무 멋지면서도 도전적으로 느껴졌다. 다행히 동생이 함께 가기로 결정하면서 두 자매의 세계여행은 시작한다.

 

첫 번째 여행지는 러시아이다. 러시아에서 유심칩을 구하지 못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 경험, 그래서 숙소를 찾아 헤맨 경험, 그 유명한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탄 경험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유럽과 터키 영국 등 유럽을 여행한 경험들이 나온다. 터키에서는 비행기 표를 잘못 예약해서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강행군하는 이야기도 있다. 때로는 실수와 고생, 그리고 그것들을 한 번에 잊게 하는 황홀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유럽의 여행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이다. 언제가 방송을 통해 본 이후 나 역시 이곳에 매료되어 있었다. 멋진 산과 호수, 그리고 동화와 같은 성들. 나 역시 꼭 한 번 여행해 보고 싶은 곳이다.

 

저자의 취미답게 여행지마다 멋진 카페들을 꼭 들른다. 빠듯한 여행경비에 마음이 조급할 텐데 멋진 카페에서 감미로운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찾아가는 저자의 낭만이 너무나 부럽다. 영국에서는 유명한 '초코 커피'집을 방문한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작고 귀여운 하얀 컵 가득 초콜릿이 가득한 '초코 커피'가 나왔다. 얼른 수저로 커피를 조금 떠서 맛보았다. 다크초콜릿의 씁쓸함으로 시작하여 화이트 초콜릿의 달콤함으로 끝나는,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나는 커피를 음미하며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떻게 하면 나의 세계여행이 더 풍성해질까 생각해 보았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멋진 사진 찍기, 나의 버킷리스트 실천하기,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과 교류하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가 나의 여정을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꼭 카페에 가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P 125)

 

두 자매의 여행은 미국과 남미,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대만과 홍콩을 거쳐 귀국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코타키나발루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석양이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가고 싶어 했지만 아직 못 간 곳이다. 저자의 글과 사진으로나 그곳의 감동을 함께 느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세계 3대 석양으로 유명하다는 탄중아루 해변이다. 빨리 걸어온 덕분에 다행히 일몰 전에 도착했다. 동생과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닷물에 발을 담가본다. 발바닥 부드러운 모래가 느껴지고, 시원한 바닷물이 발등에 찰랑인다. 모래밭에 자기 이름을 쓰고 사진을 찍는 동생이 보인다. 그 유치한 장난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바닷가에 가면 항상 했던 것 같다. 드디어 큰 구름 사이로 석양이 비치기 시작한다. 태양이 수평선과 가까워질수록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이런 풍경에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관경이 펼쳐졌다." (P 371)

 

이 책은 215일간의 긴 여정을 한 권의 책에 담았기에 여행지 한 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느낌 등은 별로 없다. 한 곳 지나가면서 저자가 느꼈던 순간의 느낌이나 감동 등을 이야기한다. 어떤 한 나라나 지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세계여행이라는 큰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저자를 따라서 나 역시 세계여행을 떠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짜로 그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을 보면서 저자의 결단이 부러웠고, 저자가 여행하는 아름다운 경치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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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이야 - 지금보다 더 나은 당신의 내일을 위한 철학 입문서
나오에 기요타카 엮음, 이윤경 옮김 / 블랙피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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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스포츠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등산이다. 한 가지 일에 빠져서 답을 찾지 못할 때 등산을 하게 되면 답을 찾을 때가 있다. 내가 집착하고 있는 그 문제가 전부가 아닌, 그 주변의 상황까지 넓게 보이며 의외로 쉽게 답을 찾는 경우가 많이 있다. 등산을 통해 삶을 넓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도 그런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여러 분야의 독서 중에서 철학서적을 즐겨 읽는다. 철학서적은 다른 책을 3-4권 정도 읽을 시간에 한 권 읽기도 힘들어 독서량은 적은 편이지만, 철학서적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철학을 통해 삶을 조금 더 폭넓고 깊이 있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이야]라는 책도 바로 이런 시각을 철학을 바라보게 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35명의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특정한 분야에 대한 질문에 답을 제시하고 있고, 저자인 나오에 기오타가가 이것을 한 권으로 엮었다. 다른 철학 서적보다 내용이 쉽고, 또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쉽게 읽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사랑은 자연스러운 감정일까?' '인터넷 정보,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대놓고 성(性)을 화제로 삼아도 될까?' '자유경쟁이란 어떤 경쟁일까?' '우리의 삶은 모두 유전으로 결정될까?'와 같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실질적은 문제들을 질문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챕터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 사람들의 대화가 제시되고, 이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이어지고, 결론적으로 이런 문제를 접근했던 철학자들의 사상이 소개되는 방식으로 책이 진행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무리 괴로워도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챕터이다. 빅터 플랭클의 [밤과 안개] 책과 그의 대표적인 사상인 '삶의 의미를 찾는 문제'를 언급하는 내용이다. 이 챕터에서 먼저 두 명이 대화를 한다. 지우라는 사람은 인접 국가에서 일어난 쿠데타와 독재, 그로 인해 탄압을 받는 사람들의 고통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태주는 듣는 둥 마는 중 하면서 자신의 문제만을 이야기한다. 동아리 농구 대회에서 실수를 했다든지, 리포트를 못 내고 있다는 개인적인 사소한 문제 등을 이야기한다. 지우는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하지만, 태우는 오로지 자신의 문제에만 집착한다. 인간은 이렇게 이기적인 존재일까? 인간은 이렇게 자신의 고통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저자는 이런 문제를 통해 고통의 문제에 접근한다. 저자는 빅터 프랭클이 경험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경험과 그의 사상을 이야기하며, 인간은 고통에서 삶의 방향을 전환할 때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프랭클은 '삶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삶'은 수동적인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처하는 상황을 올바르게 마주하고 생동하다 보면 삶의 의미를 생각했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야말로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된다고 여겼다." (P 168)

 

저자는 '아무리 괴로워도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만의 삶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말로 질문의 방식을 바꾼다. 심지어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다른 챕터들에서도 이런 방법이 이어진다. 어떠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할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질문 자체가 틀려 있음을 이야기한다.

 

쩌면 우리가 스스로나 타인에게 묻고 있는 질문들 중 대부분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답을 찾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질문이 틀렸으니 당연히 답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은 한 가지 생각으로만 묻고 답하려는 편협한 생각에 빠진 사람들을 오랜 기간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고민한 넓고 깊이 있는 질문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질문과 접하고 새로운 답을 얻게 한다.

 

이것이 철학이 주는 유익이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이 삶의 문제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에 눌리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으며, 한 발자국 떨어져서 넓게 본다면 새로운 질문과 답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문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철학은 자기개발서처럼 단순히 지금의 삶에 유익을 준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을 통해 인생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가 있다. 그러다 보면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을까? 이 책은 철학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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