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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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신간 [블러드 온 스노우]가 출간되었다. 원래 이 책은 요 네스뵈가 쓰고 있던 [납치]라는 소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납치]에서 주인공은 스릴러 작가인데 1970년대에 [블라드 온 스노우]와 [미드나잇 선]이라는 소설을 섰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요 네스뵈는 소설 속의 소설을 실제로 출간하려는 엉뚱한 생각으로 이 책을 섰다고 한다. 결국 허구의 소설 안에 있는 허구의 소설을 다시 허구의 소설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평상시의 요 네스뵈답지 않다. 우선 요 네스뵈의 책은 두껍다. 그리고 그 두꺼운 소설 안에 치밀한 구성과 반전이 촘촘히 얽혀 있다. 보통 스릴러 소설과 다르게 두 가지 사건이 얽혀 있고, 반전 역시 두 번 이상 일어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매우 심플하다. 살인청부업자인 올라브가 보스에게 자신의 아내를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보스의 아내를 살해하려다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 구조이지만 앞에 이야기 한 것처럼 그 단순한 구조 속에 허구의 세상이 존재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떠오르는 영화 이미지가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상영된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이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보스인 강 사장(김영철)은 자신이 신임하는 부하인 선우(이병헌)에게 자신의 젊은 애인(신민아)을 감시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선우는 보스의 애인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빼앗겨 거짓 보고를 하고 이로 인해 보스에게 버림받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주인공이 죽으면서 독백처럼 떠올리는 이야기 속의 스승과 제자의 대화 내용이다.

어느 날, 제자는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제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스승은 걱정이 되어 제자에게 물었다.
"왜 우느냐?"
"꿈을 꾸었습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그럼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그럼 어떤 꿈을 꾸었느냐?"
"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스승은 기이하여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이하여 눈물을 흘리느냐?"
그러자 제자가 답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요 네스뵈의 소설 속의 주인공인 올라브와 달콤한 인생의 영화 속의 이병헌은 모두 아름다운 꿈을 꾼다. 그것은 보스의 여인을 사랑한 것이다. 여기서 이들의 사랑은 성적인 욕망과는 조금 다르다. 자신의 삶이 너무나 처절하기에 그 처절함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처절함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욕망은 허구를 향한 욕망이다. 실제로 있지는 않는 그들의 환상 속에서 존재하는 세상과 인물과, 사랑을 욕망한다.

주인공 올라브의 사랑을 소설 속의 이야기 구성이 아닌, 그의 성장과정으로 분석하면 크게 세 명이다. 첫 번째는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며 고통을 당한다. 올라브가 컸을 때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고통해서 해방시켜 준다. 그 후 그는 포주나 살인청부업자를 하지만 여자를 때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학대 당하는 여성을 보면 못 견뎌한다.
그래서 마리아라는 여성을 사랑한다. 마리아는 농아이면서 창녀인데 마약쟁이 남자를 만나 그 빚을 갚기 위해 구타를 당하며 몸을 판다. 올라브는 그 광경을 못 견뎌 마리아를 구해주고 대신 빚을 갚는다.
마지막 대상은 보스의 애인이다. 흰 눈처럼 하얀 피부와 고양이와 같은 우아한 자세를 가진 그녀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녀 역시 보스와 보스의 아들에게 학대를 당한다. 결국 올라브는 그녀를 구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한 목숨을 건 대결을 한다.

문제는 이 세 명의 여성에 대한 올라브의 욕망이 모두 허구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마리아도 마약쟁이 남자를 사랑했다. 보스의 애인 역시 앞 의 두 명의 여인처럼 올라브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올라브가 꿈꾸던 사랑은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만들어진 사랑이며, 그만이 꾸었던 달콤한 꿈이었다. 그리고 올라브는 그 달콤한 꿈속에서 죽어간다.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독백처럼 이 소설에서도 올라브는 죽으면서 어머니에게 마지막 독백을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젠 죽을 수 있어요, 엄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는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없어요. 이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지어낼 순 없을 거예요."(P192)


결국 올라브 역시 달콤한 꿈을 꾸었고, 그 달콤한 꿈속에서 죽어간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달콤한 꿈이 슬픈 인생일까? 비록 결말은 슬프지만 눈과 피, 그리고 꿈과 현실의 이중적 대비가 색다른 아름다움을 구성해 내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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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모리 아키마로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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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되고, 벚꽃이 피면 가끔은 대학 신입생 시절이 생각난다. 모든 긴장감이 사라지고,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대학 캠퍼스의 봄날. 당시는 지금 느끼는 삶의 긴장감도,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바심도 없었다. 50분 수업의 10분 쉬는 시간처럼, 그렇게 쉬는 듯이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블랙 로맨스 클럽' 시리즈의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라는 소설의 표지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의 커다란 벚꽃 나무였다. 아침에 강의실로 들어가기 위해서 언덕 위를 걸어가다 보면, 학교 입구에서 오래된 커다란 벚꽃 나무를 만났었다. 벚꽃이 만발할 때는 차마 그곳을 그냥 지날 수 없어서, 나무 밑의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강의에 늦곤 했었다.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 소설은 '술잔'이란 별명을 가진 한때 잘 나가던 아역배우 출신의 '사카즈키 조코'가 '취연'이라는 술 마시기만이 유일한 활동인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조코는 원래 '추리'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이름을 착각해 '취연'에 가입한다. 그리고 두 번이나 유급을 당해 3년 동안 1학년인 동아리 회장인 미키지마 선배에게 약점을 잡혀 계속해서 '취연'에 남게 된다. 조코의 약점이란 그녀가 숨기고 싶은 어린 시절의 연기 경력이다. 어찌 된 일인지 미키지마는 첫눈에 사카즈키 조코를 알아 본다.(이유는 맨 마지막에 나온다.)

그렇게 해서 '취연'과 얽히게 된 그녀는 '취연'을 중심으로 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고, 미키지마 선배의 도움으로 그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사건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추리소설 마니아인 조코는 살인사건과 같은 큰 사건을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로 인한 황당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 그런 사소한 오해들이 인생의 전부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봄날 벚꽃이 만발한 술자리에서 취연의 미모의 여학생 '에리카'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미쓰토리'라는 선배도 사라져 한참 만에 돌아온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에리카는 영영 술자리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분위가 너무나 익숙하다. 대학시절 술자리에서 보면 항상 사라지는 남녀가 있다. 그리고 얼마 후 둘이 사귀던지, 어색한 사이가 되던지... 이 사건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

두 번째 사건은 대학 대항의 야구 경기에서 벌어진다. 취연의 삼수생 오야마 선배가 썸을 타는 여자친구에게 함께 야구를 보러 가자고 요청했다가 바람을 맞는다.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경기와 얼큰하게 취한 학생들, 그리고 그 가운데 벌어지는 미묘한 남녀 관계...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세 번째 사건은 동아리 MT에서 벌어진 미키지마 선배의 옛사랑이 이야기이다. 항상 추억으로 기억되는 대학 MT. 이때면 꼭 졸업한 선배 한두 명이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미키지마와 사귀었던 미우 선배라는 여자이다. 미우는 지금 잘 나가는 여배우이다. 미키지마와 미우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미키지마를 좋아하는 조코는 조바심이 나고... 동아리 MT에서의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과 그 감정 속에 숨겨진 사건들... (글 쓰면서 감정이입이 너무 되는 듯^^ )

네 번째 사건은 대학 축제 때 벌어진 사건... 동아리 퇴출 위기에 빠져서 대학 내 주점도 열지 못하게 된 취연이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을 낸다. 대학 축제의 술판? 문화가 생각난다^^

마지막 사건은 대학교라는 배경을 떠난 조코와 미키지마가 낯선 곳에서 만난다. 그리고 미묘한 사건들 속에서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조코와 미키지마를 중심으로 한 '취연'의 사람들은 어쩌면 한심한 사람들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술판만 벌이는 것이다. 모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시고, 장래나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다. 조코 역시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 낭비인 것 같은 시간들 속에서 그들은 미래를 찾아간다.

그 시절 그런 낭비 아닌 낭비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달릴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기에 봄날이면 그 낭비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다시금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유롭게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들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때의 그 미묘하고 떨리는 감정들이 다시금 찾아올 수 있을까? 봄날의 캠퍼스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이색적인 추리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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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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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는 매우 매력적인 스릴러 작가이다. 인기있는 스릴러 작가들마다 모두 자신만의 색깔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 있다. 데니스 루헤인의 묵직함, 할렌 코벤의 예상치 못한 반전,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북유럽 스릴러 작가들의 어두운 심리 묘사까지... 개인적으로 제프리 디버의 매력은 사건의 현장 속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을 읽는 순간 독자는 마치 마법처럼 제프리 디버가 창조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인질사건을 다룬 [소녀의 무덤]을 읽다가 내가 그 인질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이처럼 제프리 디버의 소설이 현장감이 있는 것은 그만큼 그가 소설을 쓰면서 치밀하게 그 상황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도로변 십자가]라는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에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꼭 읽어보라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터넷 공간이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 제프리 디버가 들이고 있는 노력은 너무나도 세밀하며 치밀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들였을 노력보다, 그 배경을 위해 들였을 노력이 몇 배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아마 10년이 지나도 이 작가의 현장감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제프리 디버가 창조한 '링컨 라임'형사와 그의 파트너 '아말리아 색스'등과 함께 알려진 '캐트린 댄스'이다. 링건 라임 시리즈의 [콜드문]이란 작품에서는 이 세 명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그녀는 뛰어난 동작분석가로서 대화 중 상대방의 몸짓을 보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건은 켈리포니아 1번 도로를 순찰하던 경찰이 도로 주변에 조잡하게 세워진 십자가와 그 앞에 놓이 장미꽃 다발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이 곳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한 십자가로 보고 무심히 지나친다. 다만 십자가에 적힌 날짜가 내일이라는 것에 조금 꺼림직할 뿐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사건에 대한 예고였다. 다음 날 근처에서 테미 포스터라는 매력적인 여학생이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살해될 뻔 하다가 간신히 구조되었다. 캐트린 댄스는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테미 포스터와 인터뷰를 한다. 테미 포스터는 모르는 사람의 범행일 거라고 추측하지만, 댄스는 그녀의 언어와 몸짓에서 무언가를 감추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후 댄스는 테미포스터의 노트북을 조사하다가 그녀가 칠턴 리포트라는 곳에 글을 남긴 것을 발견한다. 그곳은 칠턴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블로그로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과 그에 대한 댓글들이 실려져 있다. 테미는 그곳에서 얼마전 같은 학교 여행생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숨지게 한 '운전자'로 불리는 남학생에 대한 비난의 글을 올렸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금 도로변에 십자가가 세워지고 같은 불로그에 운전자에 대한 비난의 글을 올린 켈리가 살해될 뻔 한다. 댄스는 운전자로 불리는 '브리검'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쫒지만 그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이다. 그리고 칠턴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던 대상들이 차례로 살해를 당한다.



제프리 디버는 이 소설을 통해 살인범을 쫒는 스릴러적 재미와 함께 현대 인터넷 문화가 얼마나 왜곡되더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현대의 대중들은 인터넷에 올라 온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래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감정적으로 사건을 해석한다. 우리나라 역시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건, 얼마 전에 발생한 캣맘 살인사건 등에서 대중이 얼마나 단순하고 감정적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흔히 이야기 하는 신상털기를 통한 마녀사냥식의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대중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블로거의 인기만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점점 지면 신문들이 사라지고 인터넷 기사가 그것들을 대치하면서, 자극적이고 왜곡된 기사들만이 넘쳐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기사들이 올려져 있는 블로거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제프리 디버는 이 소설에서 이런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다. 현대의 블로거 문화와 인터넷 문화의 어두운 단면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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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던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9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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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게이션이 보편화 되기 전까지 주변사람들에게는 나는 '길치'로 유명했다. 한 두 번 간 길은 어김없이 헤매였고, 같은 길을 열 번 정도는 운전을 해야 어느 정도 길에 익숙할 정도였다. 심지어 새로운 일터에 출근할 때는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잘못된 길을 헤맨 적도 있었다. 이런 내게도 희한한 능력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지도를 보는 능력이었다. 어떤 위치에서도 지도를 보면 내가 있는 곳을 단번에 손가락으로 집을 수가 있었다. 이런 내 능력에 놀란 사람들은 내가 왜 길치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독도법의 소유자가 옆 사람의 복장을 터지게 하는 길치라니...


곰곰히 내 자신을 분석한 결과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뛰어난 직관능력 때문이었다. 나는 어디를 운전하든지, 이미 머리 속에 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내가 갈 길을 이 길이라고 확신을 한다. 그 다음에는 어떤 것도 무시한다. 표지판도, 주변 사람의 잔소리도... 오직 내 직관 능력만 믿고 간다. 그러다보니 전혀 엉뚱한 길을 들어서도 그 길이 맞다고 계속해서 앞으로 가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나도 반성을 할 줄 아는 인간이기에 어느 순간 내 직관능력에 대해 점점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내 차로 동료들과 함께 모임의 장소로 가던 중이었다. 이 날도 역시 내 직관 능력은 나에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확실하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로 인해 여러 번 고생을 한 동료들은 목적지가 나오지 않자 분명히 길을 잘 못 들어섰다고 차를 돌리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결국 나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차를 돌렸다. 한 시간이나 길을 헤매인 후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서야 차를 돌린 지점이 바로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역시 내 직관능력은 틀림이 없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우격다짐에 스스로의 직관능력을 믿지 못한 결과였다.



프레드 바르가스의 [트라이던트]라는 소설의 서평을 쓰는 과정에서 서론이 길었다. 여기 또 한 명의 뛰어난 직관능력을 가진 수사관이 있다. '아담스베르그'형사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아니라고 할 때도 뛰어난 직관 능력으로 수사를 밀고 나가 사건을 한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직관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고, 동료들도 그의 직관능력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 그의 직관능력을 자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어느 날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한 여성을 살인사건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사건이 갑자기 그의 뇌를 자극한다. 그 날 저녁 그는 도시의 골목을 걷다가 우연한 공연 포스터를 발견한다.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신 포세이돈(또는 넵툰)이 세발작살(크라이던트, 개인적으로는 삼지창이라는 표현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한다.)을 들고 바다에서 나오는 장면의 포스터였다. 이 두 이미지가 그의 직관능력을 자극하고, 그는 신문의 살인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죽은 여성의 시신에서 배에 세 군데 상처가 나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이 사건이 오래 전에 자신의 동생을 살인자로 누명을 씌었던 퓔장스 판사가 저지른 것이라고 확신한다. 


퓔장스 판사는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의 대저택에 살던 노인이었다. 그는 세발작살로 동생의 애인을 살해하고 동생에게 누명을 씌웠다. 그는 워낙 막강한 권한을 가진 판사 출신이기에 누구도 그를 범인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지만, 아담스베르그는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퓔장스판사의 행적을 쫓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세발작살 자국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18년 전 퓔장스판사가 죽은 후부터 그 사건을 잊어버렸다. 아담스베르그는 이 두 가지 이미지를 통해 죽은 퓔장스판사가 다시 부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직관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는 그가 퓔장스판사에 집착하다가 망상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수사가 교착 상태에 빠지던 중 그는 동료들과 함께 캐나다로 연수를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오솔길을 산책하던 중 미모의 '노엘라'라는 여성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술기운에 정신을 잃고, 2시간 반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그 시간에 노엘라는 세발작살 자국을 남긴채 살해 당한다. 아담스베르그는 퓔장스판사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캐나다까지 쫓아와 노엘라는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아담스베르그가 퓔장스판사에 집착하다가 자신이 퓔장스판사의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는 살인자로 몰려 도망을 다니게 되고, 점점 자신의 직관 능력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과연 지금까지 내가 확신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내가 그녀를 죽였는가? 퓔장스 판사는 내 안의 무의식이 만든 또 다른 나인가? 마치 바다 속에서 넵툰이 세발작살을 가기고 나타나듯, 내 무의식에서 퓔장스 판사가 세발작살을 들고 노엘라는 죽였는가? 아담스베르그는 점점 자신의 직관능력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살인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과연 퓔장스 판사는 죽은 후 부활을 했을까? 아니면 그는 단지 아담스베르그가 만들어낸 망상일 뿐일까?



어설픈 직관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얼마 전까지도 친구들끼리 모이면 마피아 게임이라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피와와 경찰과 시민으로 나뉘어지고, 누가 마피아인지를 밝혀내는 게임이다. 여기서 주변 사람들의 논리력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논리보다 직관을 중요시한다. 나는 논리적인 증거보다 나만의 직관으로 범인을 지적한다. 내가 마피아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마피아인 것이다. 결론은? 대부분 틀렸다! 그럼에도 다음 게임에서 나는 또 내 직관을 믿는다. 어설픈 직관으로 인해 그렇게 곤욕을 치루고서도...


모두들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아담스베르그 형사를 보면서 왜 나는 어설픈 내 직관능력이 떠오르는 것일까? 헤어진 연인인 '카미유'가 부하 형사인 당글라르와 만나는 장면을 보고, 그는 당글라르가 카미유의 숨겨둔 남자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카미유가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고 믿는다. 순간의 직관을 전부로 믿는 모습이다. 그런데 사건해결에서는 왜 그 직관력이 맞는 것일까? 


프레드 바르가스의 아담스베르그 형사 시리즈는 [트라이던트]로 처음 접했다. 그러기에 아직 그의 뛰어난 직관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다만 트라이던트에서는 그의 직관능력보다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그의 직관능력을 보완하는 논리적인 보조관 당글라르, 누나처럼 그를 보호해 주는 한 덩치 하는 부하직원 르탕쿠르, 항상 그의 마른 엉덩이에 관심이 있는 클레망틴 할머니와 할머니 해커 조제트, 그를 감싸는 상관인 브레지용까지... 그의 어설픈 직관능력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빛을 발한다. 물론 사건의 해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의 직관능력에 있지만...그의 어설픔을 훌륭한 부하인 당글라르나 르탕쿠르 조제트....클레망틴, 브레지용... 물론 이 모든 도움은 아담스베르그가 끝까지 자신의 직관 능력을 믿었기에 가능했을 테지만... 이것이 프레드 바르가스의 다른 작품에서의 아담스베르그의 활약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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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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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소설의 팬들에게는 거이 신화적인 존재인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이란 소설을 읽었다. 이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주연으로 [셔터 아일랜드]라는 작품으로 영화화 하기도 한 작품이다. 소설의 원제목 역시 'Shutter Island'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원작부터 읽는 개인적인 습관으로 인해 아직 이 영화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이 소설은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클럽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현재 밀리언셀러클럽 작품이 145번(가노 료이치의 창백한 잠)까지 나왔으니 시리즈 초창기에 출간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구입한지도 오래 되었지만 읽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소설은 허리캐인 태풍이 다가오는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연방 보안관 '테디 데니얼스'가 동료 보안관 '처크 아울'과 함께 셔터섬으로  연락선 위에서 시작된다. 셔터섬은 한 때 군사기지였다가 지금은 살인이나 폭력을 저지른 정신병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쓰이고 있다. 간밤에 그 곳에서 '레이첼 솔란도'여성이 사라졌다.


그들이 섬에 도착하자 부소장과 콜리박사가 그들을 안내한다. A,B,C로 불리는 세 개의 병동은 높은 담과 전기철조망이 둘러쳐 있고, 무장한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특히 C동의 경비는 삼엄했다. 더욱이 예전에 등대로 쓰였던 곳은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그 곳에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레이첼 솔라도'는 B병동 3층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녀가 병동을 탈출하려면 쇠로 된 문을 열고, 층마다 있는 3군데의 감시자를 뚫고, 전기창살을 넘어야 가능했다. 테디는 누군가가 내부 협력자가 있을 것을 알고 섬을 조사하지만 섬의 사람들은 그에게 계속해서 정보를 감춘다. 그리고 그가 사건에 다가가려 하자 갑자기 사라졌던 레이첼이 멀쩡하게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성과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테디는 이 섬이 단순한 정신병원이 아닌, 소련과의 냉전시대에 군사적인 목적으로 인체실험을 하고 있는 장소라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가 점점 섬의 정체를 파악하려 하자 의사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몰고 간다. 심지어는 3일 동안 함께 사건을 조사햇던 동료 보안관 처크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테디의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아무도 처크를 아는 사람이 없다. 만약 처크를 구하려 한다면 그는 정신병자로 몰려 이 섬에 감금되야만 하는 상황이다.




영화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뛰어난 문체와 완벽한 반전을 가지고 있다. 왜 그렇게  '데니스 루헤인'이 스릴러 마니아에게 인기가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책이었다. 마치 고전SF소설의 거장 필립K, 딕의 소설을 읽는 듯한 묵직하면서도 현실과 환상의 혼돈을 느끼게 하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필립 딕은 미국의 SF의 소설가로서, 그의 작품들이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되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이 필립 딕의 작품 중에 [죽음의 미로(A Maze of Death)]라는 소설이 있다. 14명의 사람들이 델멕이라는 행성을 정찰하기 위해 모여드는데, 나중에 그 곳이 지구라는 암시를 준다. 그러다가 다시 그것이 지구가 아닌 그들의 환상 속의 행성임을 깨닫게 한다. 마지막 반전이 놀라운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이 정도까지만...)


이 소설에서도 테디는 계속해서 꿈과 현실 속을 헤매인다. 테디의 아내였던 돌로랜스가 화재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아직도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있다. 수사를 하는 도중에도 죽은 그의 아내는 환상과 꿈을 통해 그에게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꿈 속에서 그녀는 어느새 자신이 찾고 있는 '레이첼'로 변해있다. 꿈 속에서 레이첼은 테디의 돌로랜스가 되어 주기로 하고, 테디는 레이첼의 남편 짐이 되어 주기로 한다. 레이첼이 정신병으로 죽였다던 세 명의 자녀 역시 꿈 속에서는 자신의 자녀가 된다. 꿈 속에서 그는 레이첼을 도와 세명의 자녀를 죽인다. 과연 그것이 전부 꿈이였을까? 아니면 꿈 속에 진실이 있을가? 프로이드 말처럼 그의 꿈은 무의식을 표현하는 것일까?


필립 딕 이후 이처럼 현실과 꿈을 완벽하게 섞어놓은 작가를 만난 적이 없다. 특히 프로이드적인 무의식을 담고 있는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매력적이다. 단지 결말이 안타까울 뿐이다. 소설의 구성상 이런 결말은 필연적이었겠지만, 소설을 읽은 후에도 테디의 결말이 안타깝다. 그는 영원히 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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