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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 : 권력의 기록 1 ㅣ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6월
평점 :
중국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장르 중 하나이다. 어려서부터 삼국지를 좋아해서 집에 있던 삼국지 전집만 열 번 정도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덕분에 삼국지의 인물과 스토리를 거의 외우다싶이 했었다. 조금 크면서 한참 김용의 무협소설들이 재미있게 읽었었다. 당시 김용의 소설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의천도룡기]기나 [소호강호]등은 베스트셀러였다. 특히 [소호강호]를 읽으며 인간이 권력욕으로 인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국에서는 그의 소설들을 연구하는 학문을 김학(金學)으로까지 부르며, 김학 과목이 개설된 대학들까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소설이 단순히 무협소설을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와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대작 중국소설을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있다가, 드디어 김용의 작품에 필적하는 작품을 만났다. 하이옌의 [량야방]이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 마치 김용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순식간에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교한 세계관과 권력싸움의 구도, 치밀한 복선과 허를 찌르는 반전, 그리고 주인공 매장소와 예황군주의 러브라인까지... 마치 독자를 흡입하는 것 같은 강력한 소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서구의 판타지 소설과 중국의 무협소설의 공통점은 소설 속에 현실과 다른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 속의 세계관이 얼마나 정교하냐에 따라서 그 소설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톨킨스의 [반지의 제왕]이나 조지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들은 그 정교하고 치밀한 세계관으로 유명하다. 김용의 소설에서도 소림과 무당으로 대표되는 정파의 8문파와 이에 대항하여 마교나 사파로 언급되는 반대세력의 대결이 김용 소설의 세계관의 뼈대이다. 량아방의 무협소설보다는 역사소설에 가깝지만 앞의 소설들 못지 않은 정교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중국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나라는 '대량'이라는 가상의 나라이다. 대량의 주변에는 이민족들이 있고, 특히 '북연'과 '대유'라는 나라가 위협적인 나라이다. 대량의 수도는 금릉이다. 대량에는 황제가 있고 그 황제 밑에 여러 명의 왕자들이 있지만, 현재의 권력을 양분하고 있는 사람은 공식적인 후계자인 태자와 비록 태자는 아니지만 황제와 자식이 없는 황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예왕이다. 둘은 후계자이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암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소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남자가 금릉에 도착한다. 소철은 단지 가명일 뿐이고, 그의 실제 이름은 매장소이다. 강좌맹이라는 중국 최대 방파의 수장인 강좌매랑으로도 불리는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친구 소경예의 집에 휴식차 머물게 된다.
소설은 태자와 예왕이 매장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접근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들이 매장소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랑야방' 때문이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랑야방은 대량 최고의 정보 집단이다. 그들은 매 번 자신들의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 무예의 등급이 고수 순위와 지략의 등급인 공자 순위, 그 외에도 방파의 순위나 부자 순위, 미인순위를 정한다. 대량의 방파 순위 1위는 항상 강좌맹이었고, 공자 순위 1위는 이런 강좌맹의 수장인 매장소였다. 정작 매장소 자신은 무술은 전혀하지 못하고, 항상 지독한 기침에 시달리며, 조금의 추위에도 한기를 느끼는 병약한 인물이다. 그런데 태자가 누구를 얻으면 차기 대권을 얻을 수 있는지를 량야방에게 묻는다. 정보의 값어치만 치르면 세상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한다는 랑야방은 이런 대답을 내놓는다.
"강좌매랑, 기린기재, 그를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매장소를 전설의 동물 기린에 비유하고, 그를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말을 한 것이다. 이 때부터 매장소를 얻기 위한 태자와 예왕의 실력싸움이 벌어진다. 그런데 정작 매장소는 둘의 사이를 저울지하며 둘 모두를 싸움에 붙이고 서로 피해만 입게 할 뿐이다. 매장소의 의중은 왕자 중에서도 황제의 미움을 받아 한직에 있는 정왕에게 있기 때문이다. 매장소는 정왕을 황제로 만들려고 계략을 꾸민다. 왜 정왕일까? 그것은 매량소의 과거와 연관이 되어 있다. 매장소의 원래 이름은 임수이고, 한 때 7만의 정염군을 이끌다가 반란군으로 몰려, 7만의 병사와 함께 죽임을 당한 황족이었다. 그런 그를 끝까지 친구로 대해 준 사람이 바로 정왕이었다. 매장소는 동료의 복수와 함께, 정왕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 한다. 그로인해 매장소의 지략을 통해 태자, 예왕, 정왕이 황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정치싸움이 벌어진다.
이 소설의 큰 줄거리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황권을 향한 정치와 암투이지만, 매장소와 예황군주의 사랑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는 재미거리이다. 예황군주는 남부를 다스리는 운남왕의 딸로서 아버지 목심이 죽자 아버지의 군사 10만을 이끌고 남부를 지키는 여장부이다. 미모와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황제의 사랑을 받고,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신붓감으로 가지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원래 임수와 약혼한 사이이다. 임수가 죽자, 자신을 도와준 임수의 부하인 섭탁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섭탁이 사라지자 매장소를 통해 섭탁과 만남을 기대하지만, 정작 매장소가 임수인 것은 알지 못한다. 매장소는 예황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녀를 도와준다. 그럼에도 예황이나 주변 사람들은 매장소가 단지 정치적 이득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1권에서 끝내 예황이 매장소가 임수인 것을 모르고 끝나면 어떻게 하나 안타까웠는데, 다행스럽게도 1권 말미에서 예황이 임수인 것을 알게 된다. 둘의 애틋한 사랑이 이어질지 너무 궁금해 2권이 너무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소설은 마치 잘 짜인 퍼즐처럼 매장소의 계략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황제와 태자, 그리고 예왕의 견제는 만만치가 않다. 이와 함께 매장소를 따르는 량야방 2위의 고수인 몽지와 매장소의 호위무사인 비류와 함께 매장소를 제거하려는 암살집단의 혈투가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오랜만에 만난 장대한 스토리를 가진 멋진 중국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