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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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작품 중에서 [일대종사]라는 영화가 있다. 무술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무술영화라기보다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 인물들을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소룡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고 중국인들에게 영웅시되는 엽문(양조위 분)이다. 그러나 영화 내내 주목을 받는 주인공은 따로 있다. 여성의 몸으로 자신의 가문의 무술을 지켜가는 궁이(장쯔이 분)라는 여인이다. 영화에서 궁이는 무술을 통해 엽문과의 교감도 나누기도 하지만, 평생 혼자의 몸으로 가문의 무술을 자키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혼란한 중국 근대 시대에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과 홍콩으로 피난 등이 이어지지만 궁이는 시대의 흔들림 속에서 끝까지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이 영화의 압권은 기차역에서의 궁이와 궁이의 아버지를 죽이고 친일파가 된 일석천과의 대결이다. 시대의 변혁을 상징하는 달리는 기차 옆에서 구시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쿵푸로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매우 처연(凄然) 하면서도 비장(悲壯) 하게 그려진다.

줄리언 반스의 신작 [시대의 소음]을 읽으면서, 전혀 다른 배경과 전혀 다른 주제의 영화인 [일대종사]를 떠올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시끄러운 기차역에서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한 음악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대표적인 음악가로 알려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과 작곡 실력으로 소련의 대표적인 음악가가 되었지만, 스탈린 시대에 계속해서 비판을 당하고 숙청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후르쇼프 이후 그는 더 인정받는 음악가가 되었지만, 공산당의 이념과 본인의 음악 추구에 대한 갈등으로 고통 당해야 했다.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의 제목은 모두 특정한 장소를 가리킨다. 1부는 '층계참에서', 2부는 '비행기에서', 3부는 '차 안에서'이다. 이 제목들은 모두 주인공 드미트리의 인생에서 특정한 시기와 장소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특정한 시기의 장소에서 지나 온 삶을 돌이켜 보는 내용이다. 이 장소들은 매우 함축적인 이미지로서 주인공의 그간을 삶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1부 '층계참에서'는 어느 정도 음악적 성공을 거두고 가족도 이룬 드미트리가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 옆 층계참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주인공이 스탈린 시대에도 인정을 받지만,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형식주의라는 비판에 몰려 숙청의 위기에 몰린다. 그는 엘리베이터 옆의 층계참에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군인들을 예상하며 공포에 떨고 주인공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2부의 '비행기에서'는 중년이 된 드미트리가 미국에서의 공연과 연설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간의 인생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는 숙청 위기에서 어찌 보면 비굴하게 권력층의 예술 방향에 수긍하면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소련을 대표하는 예술가로서 미국에서 공연과 연설을 하고 온다. 그는 미국에서 자신의 예술가적 신념과는 다른 공산당의 이념을 선전 도구로서 연주를 하고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그런 자신의 삶을 돌아다보며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3부에서 '차 안에서'는 이제 노년이 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드미트리가 주인공이 스탈린 사후 권력을 잡은 후르쇼프 시대를 회상한다. 자신의 평생의 동반자 니나가 죽고, 그는 후르쇼프에 의해 러시아 연합 작곡가 조합 의장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시대가 그를 몰아붙인다. 그는 평생 가입하지 않던 공산당에 가입헤 되는 날, 아내가 죽었던 날처럼 슬피 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는 사람을 죽이는 당에는 가입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마지막 신념마저도 지킬 수가 없었다.

각 내용마다 권력자와 시대는 바뀌지만 소설의 시작 내용은 비슷하다.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1부, P17)"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다.(2부, P91))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쁜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3부, P67) 각 시대마다 시대의 권력은 그를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도록 놔두지를 않았다. 심지어는 마지막 남은 예술가로서의 영혼까지도 통제하고 짓밟으려 한다. 그럼에도 드미트리는 묵묵히 시대의 공포와 소음을 뚫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세상은 그를 겁쟁이라고 하고, 드미트리 스스로도 자신을 겁쟁이로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인 줄리언 반스는 그를 겁쟁이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저자는 주인공 드미트리를 자신의 예술을 지키려고 몸부림친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면서도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이중적인 면을 그리고 있다.

"그는 자존심을 지킬 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표현에 불과했으나 정확한 표현이었다. 권력층의 압력을 받다 보면 자아는 금이 가고 쪼개진다.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속으로 영웅으로 살아간다. 혹은 그 반대거나, 아니면,  더 흔한 경우는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속으로도 겁쟁이로 산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은 도끼날에 반으로 쪼개진다. 차라리 산산이 쪼개져 조각들이 한때는 딱 들어맞았음을 헛되이 기억 하려고 애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과연 드미트리가 자신의 음악과 자신의 영혼을 지켰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 노년에 공산당에 가입하고 나서야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만큼 울었다는 것은 마지막 자신이 지켜야 할 것까지도 권력층에 의해 모두 빼앗겼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니다! 울 수 있다는 것, 시대의 소음 속에서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던 것, 그런 망므을 가졌던 것, 그것만으로도 그가 마지막 예술가의 양심은 지킨 것이 되지 않았을까?

몇 천만 명을 학살한 스탈린의 광기의 시대에는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도 혼란스러운 시대는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어떤 예술가는 대우를 받고, 어떤 예술가는 핍박을 받는다. 근대와 현대의 격변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예술 자체보다는 권력과의 관계로 평가절하되기도 하고 과대포장되기도 했다. 과연 권력과 시대와 무관한 예술가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자신의 마지막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을 존재하지 않을까?

줄리언 반스는 전작 [예감을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받았다. 위대한 문학상을 탄 작가가 이처럼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이런 줄리언 반스의 흡입력을 기대하고 [시대의 소음]을 읽는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다. 전작보다 주제는 무거워졌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소설가는 영화감독들이 초기에는 인기를 위해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지만, 성공한 후에는 인기와는 상관없이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주제를 다루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쩌면 줄리언 반스도 이 책에서 진정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시대의 소음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을 삶을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남자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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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이웃 2017-09-0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소설입니다.
번역에 대해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번역자는 번역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엄혹한 시대에 처한 예술가들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평소 궁금했습니다.
저자의 단편을 읽을 수 있어 좋네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왕이 되려 한 남자 외 2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6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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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을 이야기할 때면 [정글북]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정글북]이라는 만화를 자주 보고나 동화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도 나는 그곳의 배경이 아프리카인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이 작품의 저자가 키플링이라는 사람이고, 그가 성장 시절 인도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인도에서 자랐지만, 그에게 인도는 영원히 이해가 되지 않는 숙제와 같은 나라일 것이다. 힌두교의 수많은 신들, 당시에 구석구석 남아있는 인신 제사와 같은 끔찍한 풍습들, 영국인과 인도인의 반목으로 계속되는 암살과 학살... 키플링의 단편집을 읽다 보면 그가 느꼈을 혼돈과 공포가 그대로 소설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느낀다.

이 소설집에는 키플링의 25편의 단편집이 실려 있다. 시기별로 실려 있는데 주로 초기작에는 인도에서 느꼈을 혼돈과 공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초기작인 [백 가지 슬픔의 문]에서는 '풍칭'이라는 인도 노인의 아편굴에서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한 백인 남자의 독백이 그려져 있다. [무서운 밤의 도시]에서는 마치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인도의 뒷골목의 혼돈과 공포를 담고 있다.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이 남은 소설은 [모로비 주크스의 기이한 사건]이라는 작품이다. 마치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연상시키듯 한 영국인이 모래 구덩이 속으로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곳은 전염병에 걸려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인도인들을 버려두는 구덩이였다. 이 소설은 그 구덩이에서 벌어진 괴이하고 공포스러운 일들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초기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는 소설은 [짐승의 표시]라는 책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술김에 인도의 신을 조롱했다가 한 괴기한 문등 병자에게 저주를 받아 점점 짐승으로 변해가는 괴기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얼마 전 읽었던 댄 스미스의 [칼리의 노래]를 연상시킬 만큼 인도의 신들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역자는 이 소설을 해석하면서 키플링의 소설이 단지 인도의 야만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야만성까지 동시에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키플링의 중기나 후기의 소설로 가면 배경이 인도에서 영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바뀐다. 또한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다루는 소설들이 아닌, 남녀 간의 사랑이나 동성 간의 우정 등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소설이 [그린하우 언덕의 추억]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인도에 파병된 영국인 병사가 탈영한 현지인 병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국에서의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 내면의 광기와 사랑의 충돌을 그리고 있는 매우 깊이 있는 소설이다. 읽는 내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연상되기도 했다. 키플링의 소설을 좋아하던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읽고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대해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 있게 읽은 소설은 이 단편집의 대표작이기도 한 [왕이 되려 한 남자]이다. 이 소설은 마치 허황된 꿈을 좇는 것 같은 두 명의 남자가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에 있는 카피리스탄이란 나라에서 왕이 되기 위한 꿈을 까지고 여행하는 모험소설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둘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소총 20정을 가지고 카피리스탄으로 가서 신(神) 행사를 하면서 자신의 군대를 만들고 왕이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묘하게 패러디 하는 부분도 있고, 제국주의의 야망을 비꼬는듯한 내용도 담긴,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가 담기 아주 기묘한 소설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을 받았다. 알고 보니 오래전에 숀 코넬리 주연한 [왕이 되려 던 남자(원제: The man who would be king)]의 원작이었다. 어린 시절에 이 영화를 보고 이런 모험적인 상황을 무척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소설은 끝은 끝없는 욕심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조금은 허망한 결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키플링을 제국주의자이며 동양문화에 대한 색안경을 가진 작가로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자신이 이해할 수 인도 문화와 힌두교 종교의식에 접했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이것이 작가의 내면에 해석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남아서 그의 소설 세계를 지배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책의 역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잠시 가치판단을 중지하고 선입관을 버리고 읽는다면 무척 훌륭한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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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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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읽은 책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었다. 이제 대학생 정도 되었으니 [이방인]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책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프랑스인 뫼르소가 햇살이 따스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내용밖에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지금 읽으면 이 책에서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남들이 이야기하는 그 실존과 부조리를 나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방인을 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이방인을 모티브로 한 소설 [뫼르소, 살인 사건]을 읽었다. 이 책은 [이방인]에서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뫼르소가 죽인 한 아랍인을 모티브로 한다. 알제리 출신의 작가는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알제리 오랑에서 이유도 없이 죽인 아랍인을 '무싸'라는 이름으로 탄생시키고, 그의 동생 하룬을 화자로 내세워 형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의 시작은 오랑의 한 반에서 억울한 죽음 속에서도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잊고 있던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기에 읽으면서 약간의 전율을 느낄만했다.

그 일이 있은 지 반세기도 더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 사건은 분명히 일어났었고 그에 관한 얘기도 많았어.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그 얘기를 하고 있지만, 단 한 명의 망자만을 떠올린다네. 뻔뻔하지 않다. 죽은 사람은 엄연히 둘이었는데 말이야. 그래, 둘이라니까. 한 명을 빼먹은 이유가 뭐냐고? 그야, 첫 번째 사람은 얘기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지. 그것도 얼마나 잘했던지, 자기의 죄를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네. 반대로 두 번째 사람은 가난한 무식쟁이였지. 신이 그를 만든 것도, 단지 총알받이가 되어 한탄 먼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니까. 이름 하나 가질 여유조차 없었던 익명의 존재였던 거야
한마디로 말해주지. 두 번재 망자, 피살당한 그자가 바로 내 형이라네. 형의 흔적이라고는 남아 있는 게 없어, 형을 대신해 여기 이 바에 죽치고 앉아 있는 나 말고는. 결코 아무도 베풀어주지 않을 조의를 기다리며 이렇게 주절거리고 있는 내 꼴 좀 보게. 자네가 들으면 웃겠지만, 이건 어느 정도 내 사명이기도 하다네. 객석이 비어가는 동안에도 무대 위에 침묵 속에 감춰진 내막을 떠벌리는 것 말일세. (P 7-8)

저자는 동생 하룬을 통해 [이방인]이란 소설 속에서 이름도 없이 그냥 뫼르소의 실존 찾기에 죽어가는 한 명의 인물이었던 '무싸'라는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암만 봐도 이 살인 이야기는 그 유명한 문장, '오늘, 엄마는 죽었다'로 시작할 게 아니라,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 그러니까 무싸 형이 그날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한테 했던 말로 시작해야 할 거야, '오늘은 좀 일찍 들어올게.' "(P22)

더 나아가 저자는 무싸라는 인물을 프랑스인에게 이름 없이 학대 당하고 사라져가는 알제리인의 전체적 이미지로 묘사한다. 어쩌면 유럽인에게 학대 당하는 아랍인 전체로 묘사하는지도 모르겠다.

"보다시피 나는 만족하고 있어. 내 머릿속에서나 이 방에서 말고는 형의 이름을 진지하게 불러보지 않은지도 벌써 몇 년이나 되었군. 이 지역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면 무조건 '모하메드'라고 부르는 습관이 있거든. 나는 누구에게든 '무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네." (P 38)

"아니, 오늘은 형 얘기를 하고 싶지 않네. 차라리 여기 있는 다른 무싸들을 한 명 한 명 들여다보면서 평소에 자주 하듯이 상상이나 해보는 게 낫겠어. 저자들은 어떻게 태양 아래에서 발사된 총알을 맞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어떻게 뫼르소 작가와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아직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가 궁금해서 말이야. 저런 인간들이 수도 없이 많거든. 정말이야. 독립 이후로 지금껏 발을 질질 끌고 다니며 해안을 배회하고, 죽은 엄마를 묻고, 자기 집 발코니에서 몇 시간씩이나 바깥을 내다보는 자들 말일세." (P42)


이 책은 알제리인의 시각에 쓰였기에 [이방인]에서 죽은 알제리인의 시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지로서 학대받은 알제리의 역사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지 민족적이거나 정치적이지만은 않다. 작가는 교묘하게 하룬이라는 인물을 통해 뫼르소라는 인물을 오마주하고 있다. 뫼르소가 어머니와 느꼈던 갈등, 삶에 대해 느꼈던 권태, 그리고 살인의 과정까지... 한마디로 알제리인에 의해 재해석된 [이방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소설이었다.

언론과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언론과 미디어가 주목하는 것만을 보게 된다. 또 수많은 정치적 사건이나 이념, 그리고 철학 이론 등이 이슈화되면 그 이슈의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자기 것을 빼앗기고, 내 쫓기게 된다.

이 소설은 거대한 실존주의라는 사상과 위대한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알베르 카뮈의 그늘에 갇혀 있던 아랍인들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하고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보게 하는 소설의 힘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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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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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에서 주인공과 아사코의 세 번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 던 사람들이 우연이라는 접점에서 부딪히게 된다. 마치 거대한 빙하가 충돌하듯이, 멘틀과 멘틀이 부딪히듯이, 두 세계가 겹치게 된다. 한차례의 거대한 충돌이 일어난 후 서서히 두 세계는 멀어지고, 다시 서로의 세계로 돌아간다. 피천득 작가의 글처럼 인생에서 이런 세 번씩의 충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한 번의 거대한 충돌 이후 두 세계는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가 다른 세계에 산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인생을 살아가단다.

중국 작가 장자자의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장자자는 왕가위 감독과 양조위와 금성무 주연으로 유명한 [파도인]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중국에서는 그의 소설도 매우 인기가 있는데. 특히 이 소설은 중국의 웨이보 블로그에서 올린 작가의 시리즈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남녀의 이별 이야기들이 47개가 올려져 있다. 하나같이 가슴 아픈 사연들이다. 이런 아픈 사연들은 작가의 특유의 감각적인 필치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작품마다 하나의 이미지를 강하게 떠오르게 하는 내용들이 많은데, 첫 번째 소설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에서는 모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른다. 도시가 오래되어 모래로 변하는 이미지이다. 작가는 그 모래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래로 변해가는 것은 한때 절실했던 사랑의 순간을 의미한다.

소설에서는 작가인 '나'는 인터넷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인 마오시바와 리즈라는 여자와의 사랑을 이어준다. 마오시바는 리즈에게 청혼하고, 선물로 내비게이션을 선물한다.  그 내비게이션에는 마오시바의 목소리가 친히 녹음되어 있다. 리즈는 운전을 할 때마다 남자친구의 익살스러운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리즈는 선물로 받은 내비게이션을 '나'에게 던져주고 마오시바를 떠난다. 마오시바가 선물을 돌려받지 않았기에 나는 마오시바의 목소리가 나오는 내비게이션을 들으며 운전을 한다. 그리고 마오시바의 절실했던 사랑, 그리고 변해버린 사랑에 안타까워한다. 우연히 마오시바가 리즈에게 프러포즈했던 다오청을 갈 때 다시금 마오시바의 절실한 사랑고백을 듣게 된다.

내비게이션 속 마오시바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어.
그날 마오시바는 구름이 드리운 산 중턱에서 부드러운 풀 위에 무플을 꿇고 그녀에게 말했겠지.
"리즈야, 사랑해."
오늘도 마오시바는 구름이 드리운 산 중턱에서 부드러운 풀 위에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말했어.
"리즈야 사랑해."
다오청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마오시바와 리즈에게는 이미 모래 도시가 되어 버렸어.
사람의 기억은 도시와 같아. 시간은 모든 건물을 좀먹고 높은 빌딩과 도로를 사막으로 만들어버리지. 만약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금세 모래에 파묻히고 말 거야. 그러니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되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뒤돌아보더라도, 앞으로 나가야만 해. (P 22)

소설에는 작가 장자자의 사랑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실화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모호함 속에서 작가의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필치로 펼쳐져 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 소설에 실린 여러 편이 영화화되고 있다니 한국에도 개봉되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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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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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대에 걸친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 소설들을 좋아한다. 이런 소설에는 어김없이 주인공의 광적인 사랑이 등장한다. 가문의 번영과 쇠락의 과정 속에서 주인공의 집착적인 사랑이 대를 이어가며 전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문 소설인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서 최 참판 댁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면서도 길상에 대한 서희의 집착적인 사랑이 등장한다. 칠레의 대표적인 작가의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에서도 4대에 걸친 투루예바 가문의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에스테판이라는 남성이 자신의 아내 클라라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폭풍의 언덕]에서 웨더링 하우스라는 황량한 건물을 배경으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둘의 사랑은 집착적인 사랑을 뛰어넘어 광적인 사랑으로 표현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히스클리프의 광기적인 사랑으로 인해 읽는 동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열세 번째 이야기]는 소설에 대한 미스터리를 다루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영국의 명망 있는 가문인 앤젤필드 가문의 3대에 걸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랑도 결코 평범한 사랑이 아니다. [폭풍의 언덕]처럼 집착적이기도 하며 광기적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 마거릿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자랐다. 그녀는 몇 사람의 전기를 작성하는 것으로 소일을 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당대 최고의 작가인 비다 윈터라는 작가로부터 편지가 온다. 자신의 전기를 써 달라고 초청하는 것이다. 마거릿은 비다 윈터의 전기를 쓰기 전, 그녀의 소설을 읽다가 [열세 번째 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된다. 그곳에는 12개의 소설만 등장할 뿐, 13번째 소설은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그녀가 숨겨 둔 13번째 이야기는 무엇일까?

마거릿은 비다 윈터의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중, 그녀의 본명이 에덜린이며, 에멀린이라는 쌍둥이 자매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둘은 유명 귀족인 앤젤필드 가문의 자손이었다. 그때부터 마것릿은 비다 윈터의 이야기를 통해 쇠락하는 앤젤필드 가문의 3대에 걸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광기적으로 변한 조지 앤젤필드, 그는 아들 찰리와 딸 이사벨을 두지만 오로지 이사벨만을 집착적으로 사랑한다. 그것은 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사벨이 떠나자 아버지 조지는 죽고, 찰리만이 집착적으로 이사벨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사벨이 데리고 온 것은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한 거친 쌍둥이 자매인 에덜린과 에멀린이다. 이 둘은 쌍둥이이면서도 서로에 대한 광기적인 집착으로, 오로지 둘만의 세계에 산다. 그리 외부의 사람들이 둘을 떼어 놓으려 할 때 엘젤필드 가문의 재앙이 시작된다.

과연 비다 윈터는 정말 에덜린 앤젤필드였을까? 그렇다면 에멀린에 대한 에덜린의 광기 어린 집착으로 어디로 갔을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스터리가 점점 더 결론을 기다리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다만 너무나 뜸을 들인 만큼 결론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운 소설이었다. 마치 폭풍의 언덕의 광기 어린 사랑을 다시 보는 듯한 현대 작가 다이앤 세터필드의 엔젤필드 가문의 쇠락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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