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오스카와 보냈다. 오스카 와일드 말하는 거 아니고, 자꾸 현빈 얘길 하게 되는데 현빈 사촌형 오스카(윤상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홉살 소년 오스카. 영화도 나온다기에 더이상 미룰 필요는 없겠어서. 이 책은 [아이리스]에도 나왔다. 김태희랑 이병헌이 소파에서 애정행각을 벌일 때. 그 드라마를 열심히 본 건 아닌데 그 장면은 또렷하게 봤다. 뿐만 아니라 내용에 대한 대화도 얼마간 나눈다. 결국 소통과 치유의 얘기라고 이병헌이 김태희에게 대답해준다. 그때도 아, 그 책.. 했다. 교수님 얼굴이 먼저 떠올랐지만!
사실 토요일밤에 진즉 오스카는 떠나 보내고야 말았지만 그 아쉬움을 말로 다 못한다. 아.. 영원히 안 끝났으면 했다. 다 좋다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구나. 나는 그 반대도 많이 겪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넘어가기로 한다. 좋다면 좋은 거고 안 좋으면 안 좋은 거지 꼭 이유가 있어야 할까? 여기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사실 초판이 나온 2006년도부터 늘 읽기를 시도했다. [아이리스]로 화제가 됐을 때도. 하지만 그즈음의 나는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디에서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쨌든 나와 이 책의 인연은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교수님이 우리 학교에 처음 오신 해. 봄 학기 이론강의를 듣던 해. 그 해 가을의 강의 계획표. 강의 계획표 속에 이 책이 있었다. 많은 책이 강의 1회차부터 마지막차까지 빼곡 했는데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와 이 책이 기억난다. [마담 보바리], [백년의 고독], [율리시스] 비롯한 엄청난 수의 고전소설이 있었고, 아마 그때 이 책을 사뒀을 것이다. 내가 가진 책들은 대부분 그때 샀다. 지금으로선 구판이 되어버린 왼쪽 버전으로.
그리고 나는 그 수업을 듣지 못했다. 않았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마지막 학기였는데 채워야 할 학점이 많이 남아서 비교적 알차게(?) 보이는 자료와 책 빡빡한 수업 대신 좀 더 수월해 보이는 철학과 윤리수업을 택했다. 소설이론이나 감상, 창작 수업이 어렵고 철학이 쉬웠다는 게 아니고 철학과 수업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됐기 때문이다. 통학 시간이 편도 1시간 반, 왕복 3시간이 넘는데 친구들 대부분이 안 오는 학교를 혼자 꾸역꾸역 다니기가 뭐했다. 함정임쌤 수업이었는데 봄학기에 들은 소설이론 수업에 매료 되었기에 좀 더 소수정예인 전공선택 과목을 꼭 듣고 싶었다.
하지만 4학년에 학구열 불태울 의지가 내게는 없었고, 결국은 그렇게 졸업을 했다. 일찌감치 내게 창작 의지(능력은 물론!)가 없다는 건 확인했으니 대학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대학원에 지원하긴 했는데 다른 학교, 다른 전공이었다. 오만한 나는 확신 없는 원서지원, 면접까지 봐놓고 떨어지고도 차라리 다행이라 말했다. 취미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면 대학원은 반드시 그게 아니면 안될 사람이 가야 한다. 거길 갔어도 나는 지금 흔들렸을 것이다. 그건 원래 그런 자리였기 때문이고 지금의 나는 그것에 대해 공부할 생각이 없고 다른 것에 대해 몰두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풍의 언덕]과 미칠듯 잠자지 않고 몰두할 대상을 찾으라는 교수님 말에 집중했다. 어디론가 떠나라는 말도! 그래서 졸업 전 급하게 그녀가 알려준 코드대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아무도 없고 무엇 하나 몰랐지만 오로지 용기 뿐. 다녀온 후의 나는 그 전과는 달랐다. 물론 많은 의미 혹은 다른 의미로.
첫 출간이 2006년 8월. 이 책은 정확하게 그 해에 나왔음을 확인한다. 기억은 틀릴 수 있지만 역시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구나. 시간은 더욱 거짓말 하지 않는다. 못하는 거겠지. 거짓을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람 뿐일 테니까.
왜 이렇게 수다스럽냐! 책 제목이 수상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몇 번이나 절반쯤 읽다가 놓아버렸기 때문에, 그것도 재미 없어서가 아니라 아예 독서 자체가 이어지지 않는 나날들이었으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나는 새삼 심하게 빠져들었다. 아홉살 꼬마.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 아홉살 꼬마에게로 한없이 감정이입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비교적 어린 작가의 기발함이 대단하다고도. 몸이 커버린 어른이 아홉살 아이가 되기가 쉬운 일일까. 난 늘 그게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말은 대체로 산만하게 지내는 편인데(의욕만 가득차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이번 주엔 집중력이 높아져서 책이 잘 읽혔다. 물론 좋은 작품들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내 경우는 그래서는 아닌 것 같고 하여튼 내 집중력과 의지가 짱!(이 말이 하고 싶었음)
헤르타 뮐러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폈다 덮었다 하면서 끝을 못본 채로 몇 년 흐른 책이다. 책상 아래 구석진 곳에 억지로 쌓아놓은 책더미 가장 안쪽에 있었는데 사실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숨그네]는 없다. [마음짐승]도 없다. 리뷰대회 참가하겠다고 샀는데 읽지도 못한 걸 보면 썼을 리도 없고 그런데 책을 펼치면 너무나 익숙한 문장들이 쏟아지는 걸 보니 읽으려고 하긴 했던 모양이다. 신기하네. 더 신기한 건 지겨울 만도 한데 몇 년이나 앞부분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시적 문장이라는 평은 한 치도 어긋남 없고, 있을 만한 자리에 있을 단어와 문장이 놀랍도록 완벽하게 구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란다. 그러니까 이번엔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말테다. 불끈!
리뷰를 쓰고 싶다. 어려울 수록 리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에 의하면 어려울 수록 휘발이 빠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나를 기록이라도 해놔야 의미있는 시간들로 남는다. 한데, 망설이게 된다. 제대로 이해한 걸까. 이게 전부일까. 그러니까 이건 분명 잡담이다. 이 글 어디에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단 말인가. 이래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난 또 뭘 더 할 수 있을까.
모든 책에 대해 이런 식으로 추억을 쓴다면 한도끝도 없을 만치 쏟아질 것이다. 이야깃거리나 역사가 없는 책은 없다. 문득 알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무엇으로든 누구에게서든 영향을 받고 있구나.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에 영향 받고 있구나. 내가 [폭풍의 언덕]을 모든 사랑고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그때 온 밤을 투자해 꼼꼼히 밑줄 치며 읽고나서 작성했던 보고서와 발표 때문이고, 그녀가 수업시간에 보여준 오래된 영화 때문이고, [마담 보바리]를 잊지 못하는 것은 파리와 아저씨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난 아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오스카보다 백 팔십 삼만 배 더 수다스러워질 지도 모른다.
책이 아니고 드라마라면! 드라마 아니고 음악이라면!
책을 좋아해서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건 내가 지어내지 않아도 그들이 이미 이야기 했으므로 그것만 들려주면 되는 일이라 지독히도 쉬운 일. 내게는 가장 쉽고도 즐거운 일.
[지상의 양식]은 금요일밤 자려고 누워 폭풍처럼 읽어내려갔다. 사실은 폭풍읽기는 좀 오랜만이어서, 한 달 내내 영화만 보던 내가 드디어 독서버전을 좀 되찾았나 싶을 정도로 기뻤다.
1월 마지막 날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와 [사라의 열쇠]를 본 후 영화는 도통 들어오지 않아 2월 첫날과 둘째 날에 [마지막 사랑]과 [천국의 아이들] 그리고 [아르테미시아]를 보고 [셜록] 시즌2를 봤다. 그리고 더빙판을 KBS에서 재빨리 하더라, 오호라! 주말엔 일본 드라마 [스트로베리 나이트], [럭키 세븐]도 보기 시작했다. 일드 얘기를 하니 갑자기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밤새 보면서 엉엉 울었던 [남극대륙]이 다시 생각나네^^;; 이동욱과 제시카가 키스하는 [난폭한 로맨스]를 보고 [해를 품은 달]을 보고 [드림하이 2]를 보고 내가 안본 건 이제 [샐러리맨 초한지] 뿐인가. 동생이 그게 엄청 웃기고 재밌다고 꼭 보랬는데!


곧 짧은 감상평이나 페이퍼를 쓰려고!
좋은 영화가 네 편 뿐인 것도 아니지만 네 편 모두 좋은 영화다! [마지막 사랑]은 19금이지만 그래도 좋은 영화! 덕분에 아프리카 희망봉에 대한 로망은 쉽게 접히던데 오래 전 영화니 지금 아프리카는 달라, 이러면서 또 막 꿈꾸고. 언제 갈지도 모르면서 일단 예전 책 찾아놓는다. 찾아와서 새로 읽는다. 다르게 읽힌다.


영화 [마지막 사랑] 중에서
푸하하, 내가 가진 책 중에 이런 게 있다.
책 얘기가 아니라 영화 얘긴데, 후반 30분간 제대로된 대사 없이 아프리카 이방 도시의 생활모습과 사하라를 건너는 장면을 보여준다. 오, 사하라 사막의 황홀함이 이런 것이구나. 이전까지 예술가 부부의 권태로운 일상 탈피 아프리카 여행기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뭔가를 느낄 듯했던 남편(존 말코비치)이 장티푸스로 죽어버린다. 혼자 남은 아내가 계속 여행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 어디론가 간다. 모래 알갱이가 별빛처럼 반짝인다. 낙타는 우아하게 걷는다. 숨소리는 황홀하게 타오른다. 태양이 작열한다. 온 세상이 고요하다. 부드러운 공기가 온 세상의 공기를 휩쓸어 갔다 다시 밀어내는 것만 같다. 그러면 결국 같은 공기란 말인가. orz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ㅉㅉㅉ
당시에 이 책을 로망 섞인 질투로 대충 흘려 읽었다. 이제는 오로지 사심으로 읽어야지. 여행(책이라기엔 뭣하지만)기가 이런 식으로 훗날 유용하게 사용될 줄이야!
그리고 [마지막 사랑]은 약간씩 불편한 오리엔탈리즘 시각만 빼면 아름답고도 슬픈 영화다. 욕망에 관한 영화이면서 떠남과 돌아옴의 영화다. 내려놓아라,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뜨끔하면서도 좋다. 몸으로 부딪쳐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지상의 양식]의 지드처럼.
또 뭐 다른 게 없나 싶어 새초롬하게 이것저것 보다가 결국은.
[성서]를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종교가 없다보니 얘길 들려줄 사람도 없고 그 어떤 시각도 몰라서 나는 성경책도 샀지만 이 책을 제일 편하게 읽어낸다. 이건 '말씀'이 아니라 내겐 그냥 '이야기'이므로.
몇 년 전에 내가 샀던 성경책은 이거였는데. 온라인 서점이 아니라 기독교 전문서적 파는 곳에서 샀었다.

그 사이 새로운 판본으로 개정돼서 나왔지만 내 것도 똑같이 생겼다. 귀여운데 눈 아파서 죽을 것 같은 단점. 여러 사이즈가 있지만 내 껀 좀 작아서 내가 미쳤구나, 이런 기분이었다.
지드가 자꾸 성경 속 '양식'을 비틀고, 나는 원래 성경도 모르는데 비트니까 더 모르겠고, 각주가 백 칠십 만개 달려서 그걸 자꾸 읽다보니 흐름이 끊겨서 더 어렵고. 하여튼 이런 독서.
월요일이 스멀거리고 있다. 모처럼 집에서 시체놀이 한다.
일어나자마자 종편에서 해주는 [나의 결혼원정기]를 보면서 수애의 열애설에 대해 얘기했다.
엄마, 열 다섯 살 이상 차이 나는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왜?
어리지도 않은 여자가 늙어갈 일만 남은 남자를 왜 사랑할까?
본인들이 펄펄 뛰면 어쩔 수 없잖아. 진짜 사랑한다면 축복 받고 싶을텐데 배우들도 참.
같이 자는 현장을 덮칠 수도 없잖아. 아니라잖아. 그냥 믿지 뭐.
뭔가 더 있는데 이건 쓰지 않는 게 좋겠어. 들킬 거야. 들키면 부끄러워..( '')( '')
그래서 나머지는 이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