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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천상의 멜로디 (추천22 댓글11 먼댓글0) 2012-02-06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대부분 끝을 알지 못한다. 그 끝을 어렴풋이 안다고 말하는 이도, 믿는 이도 모두 결국 또렷하게 그 끝을 알 수는 없다. 가봐야 끝이고 끝이 되었을 때 우린 그게 끝인 줄 모른다. 알고나면 이미 늦는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우리마저도 끝이 어딘지 아주 잘 알고,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것을 비극이라 부르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현실을 잘 몰랐던 때와 마찬가지로 도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은 4단계 여행금지국가, 이란은 2단계 여행자제국가로 외교통상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에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1,2,3,4단계 국가가 쭉 나열되어 있는데 일단 두 개만 하자. 죽어도, 반드시, 꼭, 가야할 이유가 없는 곳. 공교롭게도 더 가고 싶고 알고 싶은 곳.

 

이제 그 땅의 여자들이 어째서 그렇게 살아가는지 눈 감고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잘 안다. 하지만 영화와 뉴스를 통해 접하는 게 그들의 실상 전부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전부다. 이보다 더한 상황이 버젓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자꾸 눈돌리게 된다. 채널을 멈추고 찾아보게 된다. 중동,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핍박과 비윤리에 관심가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이슬람 과격파의 비도덕성을 비난하게 되지만 그런다 해서 그곳 여자와 아이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남자들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 한 편의 아프간 영화. 문학으로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연을 쫓는 아이]의 카불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있지만 영화로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천상의 소녀>가 처음이다. 이전에도 아프간 영화는 있었고, 이후로도 있어왔을 것이다. 다만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후 제작되어 칸 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영화가 [Osama]라는 원제의 <천상의 소녀>다. '오사마'는 소녀의 정체를 아는 어떤 소년이 소녀를 감싸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낸 남자이름으로 제목이기도 하다. 감독은 탈레반 붕괴 후 아프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탄압받는 여성과 여성해방투쟁으로 가난에 시달리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주인공 레일라 역의 여자아이는 길거리에서 즉석 캐스팅 됐고, 엄마와 할머니 역할의 배우는 포로수용소에서 만났다고 한다. 소녀는 영화에 출연하겠냐는 말에 영화가 뭔데요? 되물었고, 탈레반 붕괴 후 자신의 영화가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을 알리는 역할을 하리라 믿었던 감독은 국제사회의 무관심에 상처 받았다. 아쉽거나 슬프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나 말 속에 체념이 섞여있음을 짐작했다. 아프간 문맹률은 여전히 높고, 세계의 지원도 미미하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던 감독이 전했다.(이 모든 내용을 감독의 인터뷰 기사로 보았다)

 

이 영화는 투박하고 부석거린다. 모든 거리와 건물이 헐벗었고 늘 폭격 맞는 땅 답게 풀한포기조차 없어 삭막하기 그지 없다. 툭툭 치며 다가오는 흔들리는 화면은 세련되지 않아도 폭발하는 힘을 지녔다. 뼛속까지 진실이라는 명확함이 주는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소녀의 두려움이 서린 눈빛은 또래가 가져서는 안되는 안타까움을 담아낸다. 낯설고 황량한 중동 땅으로 우리를 안내할 때 무려 시적이고도 신비롭다. 금지된 땅, 자유와 생명이 버려진 곳. 그 땅에서 <천상의 소녀>는 탄생했다.

 

폭격으로 아버지가 죽은 뒤 소녀의 집에는 생계를 이을 남자가 없다. 식구라곤 달랑 늙은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레일라 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여자의 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땅의 여자들은 오로지 알라 신이 부여한 자격을 가진 남자에 의해서만 의식주를 이어갈 수 있다. 할머니와 엄마가 레일라에게 제안한다. 가만 있어도 우린 죽을 거고, 들켜도 죽지만 들키기 전까지는 괜찮다고.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 채 떠밀리다시피 남장을 한 레일라는 일터에 나간다. 그즈음 군사훈련 명목으로 남자 아이들이 징집된다. 연약하고 호리하고 예쁘장한 소녀가 우직하고 그악스런 남자들과 소년들 틈에 섞여 있다. 목욕 시간을 무사히 넘기지만 아이들의 놀림과 수근거림이 계속되는 한 들키는 건 시간 문제. 결국 재판이 열리고 공개처형 당할 위기에 처하자 한 남자가 나서 자기가 데려갈테니 아이를 처형시키지 말아달라 하고 재판장에게 받아들여진다. 늙은 남자는 집으로 데려가 꽁꽁 잠긴 빗장을 열고 그녀를 가둔다. 이미 여자와 아이들이 여럿 가둬진 남자의 집. 레일라는 애원하지만 알고 있다. 더이상 자유를 찾지 못할 것이며, 다시는 소년이 무지개를 건너면 소녀가 되고, 소녀가 무지개를 건너면 소년이 된다는, 남자와 여자는 똑같다는 할머니의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거라는 것을.

 

덩치 큰 늙은 남자가 목욕통에 몸을 담근다. 겁에 질린 여자 아이의 다리 아래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이 순간 여자가 된 것이다.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영화는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않은 채 레일라를 내동댕이 친다. 희망적 결론을 염두에 뒀던 감독이 현실적 결론으로 바꾸기로 결심한다. 운명에 순응할 것인가, 대항할 것인가. 순응하면 살고 대항하면 죽을텐데, 이곳이 저곳보다 낫다는 보장이 있을까. 꺾여버린 날개로 모든 여자가 "신이시여, 어째서 여자를 만드셨나요" 만 하고 있기에도, 맞서기에도 이들이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커 보인다. 부당함에 치가 떨린다. 다큐 보다 진한 현실감, 두려움과 공포로 흔들리는 레일라의 눈빛, 황량하게 파괴되고 척박하게 메말라버린 땅을 구경하는 게 내가 한 일 전부다.

 

 

 

 

 

 

 

 

 

 

 

 

 

 

한편,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전혀 다르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구두(운동화)'와 '마라톤' 만으로 아이들의 모든 것을 표현해낸다. 세속에 찌든, 가난이란 이름 앞에 고개 숙이고 자존심 굽힌 우리들을 진짜 천국으로 데려간다. 모든 것은 오빠 알리가 여동생 자라의 구두수선을 해오다 감자 사러 들른 사이 숨겨둔 구두가 없어지면서 시작된다. 자라는 울먹이고, 알리는 자기 운동화를 오전 등교인 자라가 오후 등교인 알리에게 넘겨주면 둘 다 걱정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설득한다. 부모님에게는 숨기기로 하지만 혼이 날까봐 그런 것만은 아니고, 다시 빚을 져야하는 아버지가 걱정돼서다. 알리와 자라에게는 갓난 동생이 있고, 엄마는 허리를 다쳤으며, 아빠는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벌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난을 모르는 이 아이들의 예쁜 마음은 운동화가 도랑에 빠져도, 등교시간에 늦었다며 추궁 받아도 굴하지 않고 그 씩씩함과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돌파한다. 대단하다.

 

어느 날 학교 내 마라톤 대회의 3등 선물이 운동화라는 것을 본 알리는 꼭 동생에게 운동화를 선물해주겠다며 죽을 힘을 다해 달리다 결국 1등을 하고 만다. 중동 그러니까 이란 영화 중에서는 제법 알려진 편이고, 1997년도 영화라 연식도 꽤 된데다, 큰 사건 없어 보이면서도 큰 울림 주는 희망적 주제로 좋은 평을 받는 영화다. 15년이나 지났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요즘 세태에 딱 들어맞기까지! 그저 가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천국의 아이들>은 좀 더 나아가 '구두(운동화)'나 '마라톤'이 철저히 상징과 비유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어른용이래도 손색이 없다.

 

자라가 학교에서 자기 구두로 보이는 신발을 신은 여자아이를 보고도(확신하고도) 말하지 않은 것, 알리에게 알려 함께 그 여자아이의 집 앞에 몰래 찾아간 것, 가난한 여자아이의 맹인 아버지를 보고 발길 돌린 것, 거리낌 없이 여자아이와 친구가 된 것.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것이라기에는 벅찰 만큼 눈부시다. 혼자서 돌파하려 마라톤에 나간 것이나 힘들게 결승선을 밟은 것,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부모님에게 징징대지 않은 것 등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어른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아이들 시선으로 돌파하는 현실과 부조리, 희망에 대한 영화다. 사랑스럽고 어여쁘다. 작은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짠해온다. 시작부터 끝까지 뭐 하나 잘라내거나 버릴 부분 없는 영화.  

 

 

1편의 명성이 자자했다. 대학 때 '부조리'에 관한 설명이 필요할 때마다 단골등장한 작품이었으니! 실제로도 많이 컸겠다. 1997년도면 나도 열다섯 살인데, 알리는 그보다 몇 살이나 어릴지. 극중에서는 아홉 살 정도로 나오는데. 어쨌든 눈물 짠한 그 남자아이도 지금은 20대 청년이 됐겠다. 세월은 마법 같은 것.

 

 

그리고 배경지식은 전혀 없지만 <천국의 아이들 2-시험 보는 날>이 2005년에 나왔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을텐데^^;;

 

일단 이 영화를 확보해 놓고 나중에 봐야지! <거북이도 난다>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도 가지고 있는데 나중에 봐야지! 이러다가 중동으로 가는 여행가방 쌀 것 같기 때문에. 이러다가 조만간 때려치우고 어디로 갈 것 같으니까. 나는 그런 거 잘 하고 이젠 별로 망설임도 없다.

 

우리는 결혼해서 이민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아이 없이 서로만 바라보고 살지, 아님 명절이나 아플 때나 친구들이 자식 자랑하거나 자식 걱정할 때 너무 쓸쓸해질테니 딸 하나만 낳아서 예쁘게 키우자던가,

 

어제 <신들의 만찬>에서처럼(드디어 짜증나는 <애정만만세>와 재미없는 <천번의 입맞춤>이 끝나고 <무신>과 <신들의 만찬>이 시작했다) 평생 지중해 크루즈를 타보자던가(물론 드라마는 국내 크루즈), 연금 꼬박꼬박 챙기든가 아주 나이가 많이 들어서 연금을 퇴직금으로 챙겨가지고 암스테르담에서 묵을 때 봤던 마음씨 좋고 따뜻하고 예의 바르고 지성적인 게스트 하우스의 노부부처럼 늙어가자던가. 뭐 그런 꿈들을 재빨리 실현시킬 수 있다. 있겠지! 있어야지! 있어야 한다.

 

 

 

어째서 중동과 아프리카에 자꾸 관심이 가는지, 일부러라도 국제사회 섹션을 찾아 읽고 여기 봐봐, 이런 일도 있대, 하면서 내 삶으로 자꾸 끌어오는지, 마우스 커서도 아닌데!!! 그래도 이들의 처절한 삶과 고통의 아픔, 자유를 위한 투쟁,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사활을 건 싸움이 절대 내 것이 되지가 않는다. 내 것이 될까봐 두렵지만 내 것이 아니라서 안도하지만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이 때때로 그래서 내가 그들을 즐기는 대상으로 여기는 걸까봐, 그들의 아픔을 통해 조금 불행한 내 삶도 행복하다고 반추할까봐 죄스럽다.

 

학창시절 무용 선생님이 내준 숙제에는 무용공연을 보고나서 써야 하는 감상문이 있었다. 친구들과 무려 학교 바깥으로 어른없이 외출할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너무 기쁜 나머지 문화회관에서 맛난 것도 사먹고(그래봐야 김밤,핫도그,어묵,떡볶이,코코아,음료수 정도였을!) 수다 삼매경으로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들어가 앉은 객석에서의 무용은 사실 지겹기만 한 지루한 예술이였다. 그때 예술은 모두 지루했다. 여중생에게 전위예술은(하물며 그림,음악 또한) 그냥 사람이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스물 두 살에 부산에서 열린 샤갈 전과 달리 전에서 뭔가를 느꼈고, 인상파 거장전을 스물 네 살에 보고는 전율마저 느꼈다. 그 후 유럽 삼대 미술관과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초상화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 고흐와 렘브란트 미술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감동면에서는 단연 벨베데레의 클림트와 쉴레가 최고였다.

 

모르는 예술도 한 번에 눈에 확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 지루했던 무용공연에서도. 4.19를 형상화 시킨 단체 무용이었는데 고요함과 적막함, 소용돌이 치는 분노와 절정, 다시 찾은 희망 순서로 이어지는 멋진 작품이었다. 나중에 붉은 장미 꽃잎이 무대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데 정말 핏빛 절규처럼 여겨져 눈물까지 글썽일 뻔 했다. 무용을 모르지만 무용은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이 영화들이 그때 본 무용과 다르지 않다. 희망과 자유를 가볍게 그리려 하면 할 수록, 오히려 가볍고 발랄하게 현실을 반추할 수록 점점 더 그때 바닥에 떨어지던 붉은 꽃잎이 떠올랐다. 붉은 피, 처절한 욕망, 그것들이 모두 상처와 자유를 상징하고 있음이 또렷이 느껴졌다.

 

 

아픔과 슬픔과 분노 같은 것들이 문화적 코드가 되기란 쉽다. 영화,문학,무용,음악 마저도 그것들을 극복하려 탄생한 부수물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지만 문화란 그게 다인 것이 아닐까 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도록 돕고, 나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내고, 남의 상처를 이해하는, 또는 우리가 이루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소통하고 노력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문화예술이라면, 아프간과 이란 영화는 그 절정에 있다.

 

사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아프리카와 남미 빼고는 세계 지도 어느 대륙이든 한 번씩 발 담글 수 있을 줄로 알았다. 특히 아프리카 희망봉. 쿠바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브라질리아. 칠레, 콜롬비아, 페루. 새들이 가서 죽었다는 로맹가리의 그 페루 말이다. 그러려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필수일텐데 짧은 시간에 되는 게 아니니까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에 나오는 김태희처럼 1년 동안 준비하다 김래원을 두고 휑 하니 꿈을 찾아 가버릴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되어야 하나, 뭐 그런 생각들.

 

같은 것을 보아도 스물 살에 보는 것과 서른,마흔,쉰에 보는 것이 여러가지 의미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며 살았다. 위험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꿈을 키우는 중동은 아프리카나 남미 보다 더 두렵지만 다이내믹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젠 감히 꿈꾸지도 못한다. 초콜릿과 바나나와 사탕수수를 캐내며 살아내는 아프리카와 남미 소년보다 [천상의 소녀] 오사마가 이 순간 내게는 더 안쓰럽다. 일을 해도 목숨 걸고 성별 바꾸어 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거긴 희망이 티끌 만큼도 없는 거니까. 남자에게만 매달려 사는 여자들이 행복한 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탐내면서 곱씹고 신비해 마지 않을 그런 대상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이 곳이 아닌 곳을 사랑한다. 힘은 없지만 그곳이 지금 보다 조금씩 좋은 쪽으로 달라지기를 바란다. 어떤 체제, 전통, 관습에 의해 고통 받고 희생 당하는 이들이 차차 자기 권리를 찾아가서 우리 만날 수 있기를. 작은 기도로 큰 꿈을 바랐다. 나는 그랬다.

 

 

 

 

 

 

 

 

 

 

 

 

 

 

 

 

 




 
 
말없는수다쟁이 2012-02-06 16:58   댓글달기 | URL
선 리플 후 감상요~ (짜장면 곱빼기요~ 말투 같죠? '') <천국의 아이들>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제가 어렸을 때 9번에서 (kbs1) 틀어준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라요. 주일학교인가, 애들이 학교에는 안 가고 성당 같은 데서 공부를 하는데... 영화는 매 달마다 챕터가 구분됐어요. 그리고 주인공 꼬마의 할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있고요. 운동회날 아이가 달리기를 1등으로 들어와서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데 그 순간 할아버지가 모래바닥에 털썩 쓰러져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할아버지의 영혼과 아이가 마주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이 떠오르네요.

요즘에는 알라딘에서 글쓰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고 있어요. 이상하게 알라딘에서 글쓰는 건 완벽한 요리를 내놓아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조금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다른 블로그와는 다르게, 책을 둘러싼 공간이잖아요.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좋은 글들이 많고.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에 대해 어떻게 글을 쓸까,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고요. 조금 더 자유롭게, 솔직하게, 생각하고 표현해야겠어요.

월요일이네요! 저는 감기몸살 기운으로 인해 오늘 하루 방콕행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2-06 17:38   URL
제가 수다쟁이님 글 좋아하지만 코난 보면서 더 그런 생각 했잖아요. 수다쟁이님 글은요, 따뜻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꼭 있어야 할 다음 문장이 그 다음에 오는 것 같아요. 신기해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 안해도 될 것 같아요. 대학 때 저는 인문쪽 전공하는 그러니까 문과생과는 절대 연애하지 말자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저와 비슷한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알라딘에 대부분 책을 좋아하고 책과 비슷한 일하고 관련된 일하는 분들이 많지만, 바깥에 나가면 그와는 상관없는 일 하는 분이 또 얼마나 많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제가 책을 좋아하면 그애는 운동을 좋아해야 해요! 그애는 어려운 책을 저보다 더 집중력 읽게 읽어내거든요. 책을 많이 보지 않아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리고 걔는 공대생이었어요. 저도 '이과반'이었으니까요.

수다쟁이님 보면서 그 생각은 조금 바뀌었어요. 학교 다닐 때 이쪽에 아무래도 남자가 귀하잖아요. 나와 똑같은 동갑내기를 만나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국가 얘기하면서 도서관 데이트를 하고 싶어요. 드라마 [컬러 오브 우먼]에 그런 첫사랑 추억을 지닌 커플이 나오고 있어요. 좋아하는 구절까지 같아서 얘기하며 저 사람이 나고, 내가 저 사람이구나 이렇게 느끼며 사랑했대요. 소중한 첫사랑의 추억이잖아요?!
^_______________^

아파요? 푹 쉬어요. 난 또........ 도서관에............................................ 오늘은 세 시간 자고 8시에 깨서 도로 잠이 안 와서(더 자야 했는데!) 하루 열다섯시간 카운트를 끊으려고 해요! 그러면 고시 붙는다는데.............( '')

말없는수다쟁이 2012-02-06 17:48   URL
아, 저도 도서관 다녀왔어요. 방콕 아니네요 ㅎㅎ
열 다섯 시간 카운트... 힘 내세요. 고승덕은 고기도 갈아먹었대요. (응? ㅋㅋ)

그리고 고마워요, 아이리시스님.
너무 망설이지는 말아야겠어요.

마녀고양이 2012-02-06 19:51   댓글달기 | URL
천국의 아이들이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참 영화가 좋았어요.
그 나라의 영화가,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고, 매일 싸움만 하고 무식한 테러만 일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가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 맞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아이리님, 요즘 글 꾸준하게 쓰네요?
난.... 심드렁 심드렁,,, 아하하, 요즘 좀 그래요... 예쁜 페이퍼 감사, 쪽~

아이리시스 2012-02-07 17:12   URL
영화가 좋았어요! 근데 저 영화들이 극장상영할 때 저는 뭘하고 있었을까요? 만들어진 것보다 훨씬 이후에나 들어왔을텐데 저는 고전을 탐닉하느라 그랬나...............라고 하기에는 그다지 본 게 없고..

이건 쓰기 시작한지 좀 오래된 페이퍼예요! 지금 로만 폴란스키 포함 한 다섯 개 정도 있어요! 바로 써서 올렸다면 글이 이것보다는 짧고 정리되었을텐데. 요즘은 모르겠어요. 쓰는 게 남는 거다 이러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2-02-06 20:59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중동 관련 영화 중에서 기억나는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요.
초딩 때 본거라 내용이 기억 안 나지만 긴 제목이 유난히도 기억이 나네요.
그 때 그 영화를 보면서 중동의 아이들이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아이들이 테러에 의해서 동심이 사리지고 있는 중동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해요.

아이리시스 2012-02-07 17:15   URL
제가 지금 못 보고 있는 게 그건데 좋나 봐요. 좀 다른 시각의 영화도 필요할텐데 매번 현실고발 아니면 아이들의 희망을 노래하는 영화만 10년 넘게 이어지니, 참 그곳도 현실개선이 언제될지 캄캄해요.

중동 아이들이 눈 크고 거슬린 피부에 참 예쁘장하게 생겼잖아요. 그 아이들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 진짜 미치겠어요. 지켜주지도 못할 거면서 그 땅에서 아이들은 왜 그렇게도 낳는 건지..

그래도 태어난 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소이진 2012-02-07 17:06   댓글달기 | URL
저는 중동 관련 영화는 본 것이 없지만 워낙 한비야님의 책을 많이 읽다보니 환경은 많이 접하고 있어요. 아마 중동 여성들이 할례를 받지 않나요? 아니었던가... 하여튼 중동의 삶은 그 어떤 매체로 접해도 뼈 아프네요. 아무리 석유가 많이나고 부자들이 많다지만 하구한 날 전쟁에, 기근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다들 알고있겠지요?

아이리시스 2012-02-07 20:44   URL
저는 지구 세바퀴 반 보고 싶은데 그거 읽으면 진짜 현실도피 같아서 참고 있어요. 오래 참았는데 소이진님은 그거 봤어요? 학교 다녀왔어요? :)

응, 할례는 한비야님이 추천한 [사막의 꽃]을 예전에 읽었어요. 사우디 같은 곳은 진짜 부자나라잖아요. 공무원들이 세 시간 일한다고도 해요. 엄청 큰 집에 살고요. 이건 들은 얘기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항상 사람이 모자란대요. 돈만 있지, 집만 크지, 사회 제반 시설과 문화 시설이 하나도 없으니까 타국에서도 그걸 뻔히 알면서도 선뜻 들어가 살지를 못한대요.

전쟁의 중동 뿐만 아니라 다른 중동도 그다지 살 곳이 못되겠더라고요. 가만 앉아 있어도 석유로 돈을 펑펑 버는데 누가 일을 해서 발전을 시키려고 하겠어요. 자국에서 안하니까 다른 나라가 들어와서 엄한 사업들이나 하고.................(왜 얘기가 이리로............)

맥거핀 2012-02-10 16:32   댓글달기 | URL
<천상의 소녀>는 예전에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수상쩍은 DVD 콜렉션으로 본 영화네요. 뭔가 아주 힘들었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어요. 탈레반을 저주하던 노래도 생각나고..그 이후에 며칠간은 다른 것을 봐도 계속 이 영화가 생각났기도 했구요...그래서 예술은 우리에게 늘 정치적인 태도와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그것을 '좋은 예술'은 끊임없이 묻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2-10 23:30   URL
좀 거북한데요, 전에 <더 스토닝 오브 소라야.M> 보다는 나았어요. 그 투석형은 제가 본 모든 영화 중 가장 끔찍했어요. 그러고보면 저 되게 비위 좋은 것 같은데..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 소녀도 끔찍하게 죽었겠죠? 여자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남자에게 얹히는 거라니, 사실은 그게 제일 곤혹스러운 영화였어요.

그나저나 DVD 콜렉션도 보신다니( '') 우앗, 정말 영화를 사랑하시는군요. 저는 의외로 많이 못 봤는데 제목만 많이 알고있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