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색다르고 덜 알려진 여기 아닌 낯선 곳의 소설을 읽고플 때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찾는다. 스스로에게 책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본래 따박따박이 불가능한 성격이라 사모아둔 것은 아니고 몇 권 가진 게 있는데 그 중 이게 제일 얇아서 읽기 시작했다. 책탑 맨 아래에 있어서 꺼낸다고 먼지 다 뒤집어 쓰긴 했지만. 보기 드물게 이탈리아 여성작가인데 태생은 스위스. 아, 이럴 경우 이 여자는 스위스어를 쓸까, 이탈리아어를 쓸까. 아님 둘 모두를 쓸까. 아참, 스위스는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 등등을 섞어쓰는 연방국가였지. 스위스어란 게 없지. 그러면 어떤 언어로 소설을 썼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긴 해도 오래 가지 않는 단편적 의문이라 책을 펼치고 읽어내려가는 즉시 잊어버린다.
뭘로 썼든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나는 번역된 글을 읽을 뿐이잖아. 아주 오랫동안 내게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나라는 로망이었다. 그걸 어디서 써먹을 거라고 나는 그토록 열을 올렸던가. 베네치아에서 사온 보라색 목걸이가 유난히 반짝이면 나는 로망 속 바로 그 나라로 꿈나라 여행을 떠난다. 내게는 아주 어릴 때부터 머리맡에 있던 불이 켜지는 커다란 지구본과 색색깔로 칠해진 멋진 세계지도와 이제는 세계지도마저 그릴 정도로 달달달 외워버린 국가와 수도이름. 더이상 그것들이 낯설지 않다. 그래버린 나도.
여기 <아름다운 나날>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표제작 '아름다운 나날'과 '프롤레테르카 호'. 두 편의 상관점을 쉽게 찾지는 못하겠다. 완전히 다르지만 또 닮은 구석이 없지도 않다. 일단 주인공이 사춘기 소녀란 점에서 닮았다. 건조하면서 미끌거리는 문체가 닮았다. 배경이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 설산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아름다움이 연상된다는 점에서도. 일단 '아름다운 나날'은 작가 플뢰르 이애기의 자전적 소설이란다. 아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작가 또한 스위스 산골마을 기숙학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름다운 나날>의 배경이 바로 스위스 명문 기숙학교로 그곳에서 체험한 일을 담담하고 절제있는 어투로 회상한다. 회상 대부분의 시간을 전학생 프레데리크를 향한 동경과 열망, 시기와 애증 같은 것을 설명하는 데 쓰고 있는 걸로 봐서 아주 완벽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일곱 살에 기숙학교에 넣어진 '나'의 생활은 그저 폐쇄된 여기숙학교에서의 일상 뿐인데, 아무 것에도 애정을 두지 못하던 나에게 프레데리크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무엇, 시크한 매력으로 똘똘 뭉쳐진 그녀를 닮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기숙학교 전체에서 공부는 물론, 사고하는 방식까지 그녀를 따라잡을 자 없다. 오로지 통제, 박탈, 공허, 고독을 느껴야 했던 여학생들 틈에서 프레데리크를 따라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어째서 그녀여야 했을까. 이기고 싶고 넘어서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도를 넘어 나를 괴롭히곤 했다.
많은 학생들에게 일기장이 있었다. 돋을새김 장식이 달린 일기장. 열쇠가 달린 일기장. 그들은 자신들이 인생을 독차지했다고 여겼다. (p.44)
설명할 수 없는 끌림과 동경으로 나는 프레데리크를 사랑했고, 그애는 나에게 별로 잘 보이려는 관심조차 없었다. 나는 늘, 무엇을 하든 그애를 신경 썼고 그애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먼저 걱정했으며, 그애가 나를 바라봤으면 했다. 나는 여기는 없는, 먼 곳에 있는 엄마로부터 모든 것을 철저히 통제 받고 있었다. 심지어 독일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 독일 애와 방을 함께 썼으면 좋겠다는 편지에 수도원 원장 부인은 나에게 독일인 짝을 붙여준다. 아, 모든 것이 그랬다. 나는 여기 있는 동안 늘 조정 당하고 통제 당하며 엄마가 원하는 데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내 생활의 균형에 금을 낸 것이 프레데리크였다.
그애의 관심을 조금씩 받으며 프레데리크에게 인정 받겠다는 욕구마저 균열이 일어나자 나는 다른 친구를 사귄다. 프레데리크가 관심사에서 아주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지만, 하물며 다른 친구와 정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딘지 모르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는 프레데리크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애는 아버지 부고 소식에 '아듀' 한 마디 작별인사만 남긴 채 떠나버렸다. 나는 헤어짐을 예감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 채 수도원과 학교와 기숙사를 배회한다. 졸업할 때까지 기숙생활은 더이상 달라지지 않았고 졸업식 날 모두 좋은 차로 딸들을 데려갈 때 나는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내려서야 비로소 마중나온 아빠와 만난다.
후에 다시 기숙학교로 돌아왔을 때 더이상 기숙학교는 그곳에 없었다. 언젠가 다시 만났던 프레데리크의 불행도 그즈음에는 더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소녀는 숙녀가, 숙녀는 여자가 되었다. 그러기까지는 금방이었고 무엇도 제동을 걸 수가 없었다. 지난 날들, 무엇에 그토록 목 매고 바랐던가. 프레데리크. 그토록 닮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그녀는 이제 더이상 그 대상이 아니다. 대체 과거의 여러 날들 나를 사로잡았던 프레데리크만의 싱그러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것이었을까. 난 더이상 그때의 나를 마주할 수 없을까. 그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시간들과 나를 이제 어디에 가면 다시 만날 수 있나.
<프롤레테르카 호>는 소녀의 은밀한 비밀일기를 훔쳐 읽는 것 같은 감성적임과는 다른 분위기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와 함께 지중해 일대를 항해하는 프롤레테르카 호를 탄 나의 과거,현재,미래의 독백. 독백이 아니지만 독백 같고, 새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나(아마도 여자)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나를 돌봐준 아버지의 엄마, 아빠와 엄마, 나, 그리고 모든 이들을 둘러싼 비밀들. 배는 그리스 전역을 돌며 이곳저곳을 관광객마냥 누빈다. 베네치아에 정박되었던 프롤레테르카 호는 산토리니, 크노소스 등 지중해를 찍으며 나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확대시켜 나간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보다 깊은 애정은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지켜보되 침묵할 것. (p.115)
사실 아버지와 나는 그다지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그런 적도, 그랬던 기억도 없다. 하지만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한다. 배는 지루하다. 선장과의 첫경험은 나쁘지 않다. 어른들은 늘 여자아이가 이해 못할 비극적인 비밀을 갖고 있지. 나는 그들의 비밀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알게 된다. 진실이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진실을 알기 전과 후가 달라져야 할까.
나는 이해해야만 한다. 진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사악한 열정, 흑사병과도 같이 부부에게 충격을 가져다부었던, 진실에 대한 우상 숭배와도 같은 열정을. 아버지라는 자와 깍듯하고도 열정적인 그 부인. 진실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 진실을 말하는 것. 진실이 아무 소용이 없을 때. 나이 든 자들의 경박한 고집. 그들 두 사람은 만족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것. 그들은 나에게 그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내게 상처가 되었다면 슬픈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진실의 언어를 더 이상 말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p.206)
아빠는 기억을 잃어간다. 나는 진실을 알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와도 부녀관계는 흩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그럴 것이다. 다만 여행만은 또렷하게 남아 내가 살아갈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늘 그렇듯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소녀의 삶은 다시 숙녀로 여자로 그렇게 커가는 것.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
"황금의 기억과 산의 기억이 황금 산의 기억이 된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기억과 자각과 글은 얼마나 뜬금없는 것인지. 그것들의 간격과 시차는 또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불투명한 아름다움. 알프스의 눈처럼 희고 깨끗하면서 차갑고 절제된 소통공간.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 없는 생명력이 바닥에서부터 차고 올랐다. 이름 모를 두 편의 짧은 소설이 말을 걸어왔다. 과거를 딪고 현재를 무기 삼아 미래로 나아가자고. 스케치 없는 투명한 물감이 수채화처럼 번지는 것을 느꼈다. 감수성이 충만했던 소녀시절, 내 곁에 있던 보물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며 밤을 보내고 있을까. 글을 쓸 때 밤이었고, 지금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