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너의 의미 (아이리시스 서재) &gt; 무지개 너머</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category/29032400</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생각하는 어린이</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5 May 2012 20:47:57 +0900</lastBuildDate><image><title>아이리시스</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9771186744765.jpg</url><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category/29032400</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아이리시스</description></image><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거봐, 꿈을 버리면 죽는다니까. - [플래쉬댄스 - 할인행사]</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638003</link><pubDate>Thu, 24 May 2012 01: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6380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92646557&TPaperId=563800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0/51/coveroff/91926465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92646557&TPaperId=56380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플래쉬댄스 - 할인행사</a><br/>애드리안 라인 감독, 제니퍼 빌즈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04월<br/></td></tr></table><br/>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춤은 꿈이고 이유다. 희열도 희망도 열망도 절망도 좌절도 말해야 하는데 젊은 날의 초상에는 앞의 것과 뒤의 것이 늘 엎치락뒤치락 한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막힘없이 술술 말할 수도 서술할 수도 있다. 말과 행위의 괴리는 놀랍도록 부풀어오른다. 꿈에 대해 말할라치면 늘 저지당한다. 죽을 때까지 꿈꾸며 살아야 하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꿈과 청춘이 향하는 곳은 늘 한정되어 있는 시절일 뿐이라는&nbsp;것이 마음에 걸리고,&nbsp;허락되지 않은 꿈꾸기가 점점 창피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간다.&nbsp;모두에게 주어진 형벌처럼 보편적이라 딱히 억울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nbsp;
오랜만에 하얀 페이지를 열어놓고 써야 할 말을 몰라 당황한다. 오프닝부터 음악이 참 좋아서 흠뻑 빠져들었다가 끝나자마자 파일을 찾아서 아이팟에 넣고 재생시켰다. 뮤지컬&nbsp;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도 하는데 중간에 나오는 긴 댄스장면은 볼 때는 몰입했으면서 스토리 방해요소가 아닌가 싶기까지&nbsp;하다. 뒤로 훔쳐보고 앞에서 욕하는 배드걸 굿걸 <BAD girl good>노래가사 같은 느낌이랄까. 음악은 재즈처럼 약간 엇박이 자유롭게 느껴지는데 뮤지컬 음악은 여간해선 호흡,박자,춤이 척척 들어맞아서 규칙 속의 자유랄까, 질서 속의 자유랄까 그런 지점이 있다. 클럽에 가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중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재능은 어떤 재능을 반드시 능가하기 때문에, 쇼핑호스트업계 최초 억대연봉 받는다는 유난희도 온갖 잡다한 지식이 필요한 1대100에 나와 1단계부터 헷갈려하더니 2단계 찬스 합격, 3단계 찬스 탈락 되었다.&nbsp;상위계층 직업(특히 우리나라의 특성)인 의사나 법조인이&nbsp;세상 모든 진리와 지식을 알고 있을 것, 문학적이고&nbsp;예술적이기까지 바라는&nbsp;믿음은 항상 기대를 배반한다. 암, 그래야 공평하지. 시간사용은 상대적이기도 하지만 분명 절대적 한계를 갖고 있다.
&nbsp;
&nbsp;

&nbsp;
&nbsp;
&lt;물랑루즈&gt;를 고3 수능시험 후 당시 단짝이던 짝꿍과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꼈고, &lt;시카고&gt;를 스물 하나 참 예쁠 때 단조로운 일상을 극복해줄 어떤 열정으로 받아들였고, &lt;드림걸즈&gt;는 비욘세보다 제니퍼 허드슨의 꿈이 이뤄지길 원하며 닳도록 OST를 재생시켰다. 그때가 막&nbsp;스물 다섯이었다. 그동안 시간이 정지되었다. 꿈도 역사처럼 진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lt;어크로스 더 유니버스&gt;, &lt;렌트&gt;, &lt;바흐 이전의 침묵&gt;, &lt;사랑은 비를 타고&gt;, &lt;사운드 오브 뮤직&gt;, &lt;피나&gt;, &lt;오페라의 유령&gt;, &lt;하이스쿨 뮤지컬&gt;, &lt;벨벳 골드마인&gt;, &lt;헤드윅&gt;은 봤거나 앞으로 볼&nbsp;영화. &lt;바흐 이전의 침묵&gt;의 장르가 뮤지컬이라니 바흐, 클래식도 뮤지컬로 가능한가. 우와 신기해. 이 영화를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다큐멘터리 영화 &lt;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카페&gt;가 연관검색어에 뜬다. &lt;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gt;을 좋아해서 엄청 기대된다. 왜 모르고 있었지 보다는 어째서 관심갖지 않고 있었지 말하고 싶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nbsp;
존재하는 것이 내 앞에 오는 것과 받아들이는 과정은 본능,직감으로도 가능하지만 우연,필연인 경우도 많다. 피츠버그의 제철공장 용접공 알렉스는 밤에 나이트클럽 플로어 댄스로 일한다. 시간을 팔아 돈을 사고, 돈으로 꿈을 꾸는 것 또한 자본이 지배하는 고단한 사회의 일부일 터, 풋풋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춤과 무용으로 세상을 사로잡으리란 꿈을 안고 언젠가 댄서가 되기를 원한다. 그녀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밤에 꾸는 꿈과 미래를 향한 열정이 있기에 낮의 힘겨운 노동을 즐기듯 견딘다. 견디는 것조차 즐거울 수 있다. 그때 사장 닉이 다가온다. 언제 어디서나 사장님이 문제군. 드라마 &lt;패션왕&gt;의 마지막회는 좌절과 경악의 도가니였는데, 열아홉 번의 설렘과 부푼 꿈이 한 번의 삽질과 실수와 겉멋으로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정해진 결말(미국에서 생긴 일로 결말짓는 건 방송 전 뉴욕 로케이션할 때 찍어왔을테니)에 끼워맞춰 가는 미래가 이 시대 이 청춘(을 비롯한 대다수 노동자와 서민)을 한없이 갉아먹는다. '넌 다른 사람이 벌어다 주지만! 난 내가 벌어야 된다'거나 '너는 사랑만 해도 되지만! 나는 일도 해야 된다'던 강영걸(유아인)의 대사는 이 사회의 치자와 피치자의 근본을 뼈저리게 돌아보게 했다. '그러니까 사랑타령 그만해'라는 말에서 먹고살기 어려우면 사랑조차 철저히 짓밟힐 수 있는 가치라는 사실을 느낀 것도 묘하게 아팠다. 
&nbsp;
춤추는 용접공 알렉스는 순수와 미모와 재간으로 닉을 사로잡는다. 그녀가 뿜어내는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건만, 닉과 사랑에 빠져 그의 도움을 받아 훨훨 날아오를 수 있게 되는 것은 더 큰 행운이다. 축복과 행운은 연타로 온다. 알렉스가 사랑과 꿈을 이룬 건 왕자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낮과 밤 모두를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학습시키는 기분좋은 한 편의 춤이 엔딩으로선 더없이 황홀하다. 꿈과 청춘은 진행중일 때 가장 빛나는 가치임은 틀림없다. 꿈은 이뤄지고 나면 더이상 꿈이 아니고, 꿈이 이뤄지지 못하면 더 아프지만 또 노력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축복이기도 하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가슴을 부여잡았다. 젊음과 음악은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대립각은 일상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다 지극히 사소하기까지 해서 야속한 경우가 많다. '재물'보다 '추억'이 &lt;패션왕&gt;의 이가영(신세경)이 정재혁(이제훈) 보다 강영걸(유아인)을 사랑하게&nbsp;만든 결정적 이유라면, 강영걸의 입에서 '내가 돈이 없니, 뭐가 없니'라거나 '말만 해, 니가 원하는 거 내가 다 해줄게'라는 대사는 나오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그 말이 나온 순간 이 남자가 지금껏 세상에 당하고 또 굴복하고 극복하려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캐릭터의 타당성이 모조리 몰락한다는 어느 방송평론가의 말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것이 곧 사람이었다. 가진 것 없는 이가 생애 처음으로 모든 것을 가지게 됐을 때,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동일하다면 그게 더 반전드라마다. 
&nbsp;
패션,청춘,사랑의&nbsp;코드를 버젓이 내걸고 화려한 걸음으로 모두가 잃은 꿈을 찾아줄 것만 같았던 이 드라마가 진즉에 패션을 버리고, 끝에 비로소 청춘과 사랑 거기다 가졌던 인간성마저 버리고 세상에서조차 버림받는 것을 목격하자 더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어졌다. &lt;아프니까 청춘이다&gt; 같은 제목도, 내용도 뻔한 책이 업계에서도 놀랄 만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뻔하지만 궁금한 것과 호기심, 듣고 싶은 말을 듣는 안도감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짓밟히는 건 동시에 있을 수도 있고, 한 번에 하나씩만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꿈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위로를 듣고 싶은 것이다. 돈도 잃고 사랑 앞에 당당하지 못해 술 취해 서럽게 울다지쳐 쓰러진 어떤 남자를 손잡아 일으켜 세우지는 못할 망정, 총으로 쏴버리는 게 처음부터 예정되었더라면 한동안 몰려오던 당혹스러움을 기이함으로 돌리고 말았을 수도 있겠다.
&nbsp;
알렉스는 댄스 오디션에 참가한 후 닉이 몰래 통과시켰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내며 싸운다. 닉은 알렉스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강영걸은 이가영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하고 또 해주고 싶어하지만 여자들에게 단순히 당신이 이룬 것을 받기만 하는 것은 꿈이 아니다. 꿈은 내 힘으로 이뤘을 때만 의미있다는 사실에 반발하는 순간 세상은 청춘을 내동댕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인에게 편승해 이루는 꿈은 꿈이 아니라 재물에의 욕심이고, 그래서 다 가졌을 때 사람은 항상 변하거나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되거나 한다. 청춘영화에는 거의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뛰는 가슴과 미친 열정, 올바른 방향과 제대로된 질주가 필요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 위로한대도 위로를 받는 그들 자신이 받아야 할 바로 그 위로의 질을 가장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적이 있다는, 꿈을 버리면 안된다는 뻔한 말이 가장 필요하다. 그들에게도 실패와 성공과 꿈꿀 자유에 대한 명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 무너져도 오늘은 집을 짓고 들어가 앉고 싶고, 내일 죽어도 오늘은 절정을 선물할 길고 황홀한 섹스를 하고 싶고,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딱 내일이 오기 전까지 살아갈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것만으로 청춘을 위로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가. 이렇게 옛날 영화 한 편이면 괜찮은 것을. 절제할 때 절제하고 폭발할 때 폭발하는 조화로운 음악 한 곡과 춤 사위 한 판이면 다 괜찮아질 것을.
&nbsp;
&nbsp;

&nbsp;
&nbsp;
아메리칸 드림이 별건가. 아메리카에서 원하고 바라는 일 할 수 있으면 그게 아메리칸 드림이지! 오래된 영화의 촌스럽고 일직선 방향의 플롯마저 멋있다. 때로는 정주행이 역주행보다 더 감동적이기도 한 법. 근데 춤출 때마다 엉덩이,다리부분을 지나치게 클로즈업하는 게 보는 내내 불편하기는 했는데, 이것도 배드걸 굿걸 영향 받은 내 구질구질한 편견 때문인지 아님 감독취향인지. 필모그래피가 이런 거 보니까 취향이군.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0/51/cover150/9192646557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92646557</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다가오지마, 타버릴 거야. -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638000</link><pubDate>Thu, 24 May 2012 0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6380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9274&TPaperId=563800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3/28/coveroff/89828192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9274&TPaperId=56380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a><br/>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br/></td></tr></table><br/>배를 두드리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정식 암기는 수면 중에 이뤄진다던 강사의 말은 실현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잠은 더이상 죄책감을 실어나르진 않았다. 그때 만났다. &lt;고령화 가족&gt;은 읽었는데 늘 이 책이 명치에 걸려 있어서 최근작을 읽기 위해 먼저 읽었다. 폭발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현실로 꿈으로 삶의 부분들을 하나하나 갉아먹었다. 빠져들기 쉬웠기에 나오기도 쉬웠고, 다시 들어가기도 쉬웠다. 시도때도 없이 먹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짜릿했다. 8년째 책장에 자리하고 있는 소설이 이것 뿐인 건 아니었다. 장식용이었던 시절, '스토리'는 무작정 매력적인 소설의 요소가 아니었다. 그래서 읽지 않았다. '폭발하는 힘'이나 '이야기의 끊임없는 향연'이란 뻔한 수식어 말고 다른 말로 설명할 수는 없나 싶던 우려는 금세 반감되었다. 내 영역이 아닌 곳을 넘본 것 같은 민망함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한 줌 쥐고 머리로 걸러 손으로 타이핑 했을까. 나는 비로소 내 안에&nbsp;존재하던 모든 이야기를 지웠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nbsp;
누구보다 잘 안다.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은 사실 쓸 거리가 없어 쓰지 '못하는' 거란 거. 그만큼 표현력은 중요하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가 동시에 충족 되어야 가능한 영역이 소설이고, 서사력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봉이다. 물론 이야기만 하는 것이 소설의 역할인가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문학인들이 고민해야 할테지만 독자로 존재하는 동안만큼은 골치 아픈 판단을 피해갈 수 있어 좋다. 물론 판단을 종용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흡인력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들이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정작 이&nbsp;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앞서 출발한 모든 소설의 서사 앞에 우뚝 섰다. 어디서 본 듯도 하고 들어본 듯도 하며 약간 신파 같고 또 뻔한 여자의 일생이 담겨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우리 모두의 생활이고 삶이다. 신화이자 전설이고 현실이자 판타지다. 모든 영역에서 이처럼 또렷하고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벽돌공장의 신화는 모든 이들의 삶을 그러모은다. 그들은 살아왔지만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갈 것이다. 소설의 '실용성'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일테지만 소설이 실용적이길 원하는 사람에게 &lt;고래&gt;를 들이밀고 더이상 책임지지 않겠어,하는 건&nbsp;문학도로서 아쉽긴 할 것이다. 어딘가에 존재할 듯한 가깝고도 먼 세상을 묘사한 이런 장면이 고스란히 상상돼서 좋다. 이 소설은 정말로 차라리 영화를 닮았다. 
&nbsp;

그리고 바다를 보았다. 갑자기 세상이 모두 끝나고 눈앞엔 아득한 고요가 펼쳐져 있었다. 곧 울음이 쏟아질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해의 섬들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멀리서 아른거렸고 그녀가 앉아 있는 바위엔 끊임없이 파도가 부딪쳐 포말이 일었다. 무심하게 고깃배 위를 오가며 끼룩대던 갈매기들이 어느샌가 쏜살같이 해수면으로 날아들어 물고기를 낚아올리기도 했다. (p.49)
&nbsp;
읽던 날은 하늘에서 강아지가 떨어진 날이었다. 독수리 먹잇감이 될 뻔하다 땅으로 낙하한 귀여운 강아지는 좋은 주인의 품에 날아들어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 정도가 어울린다. 금복과 춘희와 이 특이한 모녀를 둘러싸거나 둘러쌌었던 모든 이들의 이야기 만찬으로 초대되려면 말이다. 나보다는 부모님과의 나이차가 더 세기 빠른 이 훈남 작가의 프로필 사진과 약간은 촌스러운 시대에 대한 삶의 수다.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자꾸만 다음 페이지로 빨려들어 얼른 끝을 보고 싶었다. 춘희와 금복과 쌍둥이자매와 노파와 애꾸눈 딸. 남자보다는 여자의 삶에 눈길이 더 갔다. 그리고 춘희와 점보(코끼리)의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에 더 눈물 지었다. 이 시대, 소설은 얼만큼 위로할 수 있나. 얼만큼 소통할 수 있나. 얼만큼 빠져들 수 있나. 문학을 배운 적이 없고 소설가를 꿈꾼 적이 없다던 등단이 늦은 어느 작가의 첫 장편소설 이후 8년. 한국문학의 길이 늘 새로웠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낱 출판사의 작품상 하나가 문단 전체를 뒤집을 순 없을 터, 여전히 고민하고 지리멸렬하며 난삽하고 재미없고 진부하고 뻔하고 미숙하다. 훌륭한 한국문단의 작가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독자들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기에 만족할 만큼 작품수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nbsp;
의도적으로 주어(나)와 뻔한 수식어(아름다운 꽃)와 뻔한 연결어를 걷어내야겠다는 생각을 수년 전부터 했지만 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결심한 것보다 더 빈번하게 써왔다. 고민의 길에는 정답이 없었다. 시간이 변화를 예고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좋다. 3대로 흘러내려오는 노파-금복-춘희의 삶이, 토속 역사소설처럼 깔리는 배경에도 굴하지 않고 전복해버리는 시공간적 배경, 환상적 수다가 작렬하는 멈춤없고 끝없는 이야기가, 그녀들이 늘 조금 넉살스럽고 단단하고 헤프고 고풍스럽지 않은 것이 전부 다 좋다. 
&nbsp;

그날 이후, 완전히 앞을 볼 수 없게 된 대신 그의 눈앞엔 기억 속에 담겨 있는 풍경들이 아무 때고, 순서도 없이 불규칙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먼 과거에서부터 눈이 멀기 전까지의 긴 시간에 걸쳐 그의 인생을 모두 기록한 사진첩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엔 아름답고 평화로운 유년희 풍경과 전쟁터에서 목격한 온갖 끔찍한 장면들, 그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벽돌공장을 다닐 때 보았던 낯선 이국의 풍경들, 그리고 떠오를 때마다 언제나 가슴이 미어지는 가족들의 얼굴,&nbsp;또한 버드나무 아래에서 벌이던 금복과의 정사와 혼자 남발안에 남아 벽돌을 굽고 있을 때의 한없이 쓸쓸했던 겨울의 풍경 등, 그의 전 생애에 걸핀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었다. 누군가 그 장면을 필름에 담아둘 수 있었다면 한 평범한 사람의 생애에 그토록 많은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 또한 한 사람의 기억 속에 그토록 많은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는 한편, 인류학과 사회학, 역사학과 심리학 등 여러 인문학 분야에서 더할 수 없이 귀한 자료가 되었을 터인데, 불행하게도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 모든 장면들은 몇 년 뒤, 그가 버드나무 아래 개울가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p.266)
&nbsp;
文은 이웃소년, 어부, 걱정, 생선장수, 칼잡이 등 그밖의 모든 금복의 남자 중 가장 오래 남는다. 집안력으로 눈이 멀어갈 때나 의붓딸 춘희에게 벽돌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동시에 점보 잃은 그녀의 새 친구가 되어준 것, 금복에 대한 소유욕이 집착적이지 않은 것 등 온통 외로움과 고독으로 뭉친 사내지만 그의 눈이 멀었을 때 본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한 사람의 생애가 남긴 이미지가 위 네 문장에 보편성을 띤 채 담겨있다. '고래'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광경을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고래문양으로 만들어진 금복의 영화관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얼마나 많은 고래들의 인문학이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인가. 삶이 하나의 수수께끼 혹은 미로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수련은 은교 같다. 이미 여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남성성을 획득하려 하는 순간 금복에게 수련은 다시 태어나면 훔치고 싶은, 젊고 아름다워서 훼손하고픈 대상이다. 결핍과 질투는 계열이 같고, 젊음과 늙음, 남자와 여자, 세대는 필연적으로 전복된다. 전반적으로 전쟁 겪은 세대가 금복이라는 여성의 권력에 의해 주물러지는 현실이 그렇다. 남자의 꿈은 여자의 영역에 존재하고, 단 한 번도 금복을 능가하는 남성성을 가진 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nbsp;
술술 흘러간다고? 작가는 여자가 아니면서, 여자 금복에게 남자를 투여했다. 그러고보면 이 소설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 중 없는 이야기가 없고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없다. 신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기 전에 이 둘은 하나였다. 성이 전복되는 순간 이야기는 성경, 전설, 신화, 구전 등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채 진행된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것들(불온한 것들)이 이해도 되고 수긍도 되고 동의도 되고 그런 것 같다. 바깥에서 보기에 고래는 그저 거대한 한 덩어리일 뿐이지만 고래(상어) 뱃속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크고 넓은 각각의 방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바깥의 화자와 속의 화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고래 등과 고래 뱃속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면서 확장했다 축소했다를 반복할 수 있는 읽기다. 남은 기간이 길면 세세한 부분을 보고, 시간이 짧을 경우 전체적으로 덩어리를 기억하라던 말은 암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마 그 방법이 이 시대 소설의 영역확장에도 도움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흡인력은 숨가쁜데 앙금처럼 남은 이 미친 몰입감의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작가는 이런 말도 안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나를 끌고 들어갔단 말인가. 삼키면 언젠가는 뱉는 것이 세상의 이치건만 여전히 당혹스럽고 낯선 영역이 단지 나만의 체험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그나저나 춘희를 빼먹었네. 얘는 왜 이렇게 몸매,성격,운명 뭐 하나 멀쩡한 데가 없는데도 자꾸만 자꾸만 예뻐해주고 싶을까.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3/28/cover150/898281927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9274</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당신과 나 사이 - [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626307</link><pubDate>Thu, 17 May 2012 17: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6263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35319&TPaperId=562630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80/52/coveroff/89914353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35319&TPaperId=56263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a><br/>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03월<br/></td></tr></table><br/>고마운 사람, 예쁜 사람, 좋은 사람을 모두 기억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나 보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네왔을 때 나는 사실 확인해야 할 정도로 인상이나 친분에 대해 기억하고 있지를 못했다. 과도한 친분은 내게도 상대에게도 불편하고, 어떤 상황이 왔을 때 의도치 않게 구속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터라, 고맙지만 고맙다고, 예쁘지만 예쁘다고, 좋지만 좋다고 말하지 못한 친구가 많았다. 그녀도 그 중 하나였다. 말을 걸어오지 않으니 내게 관심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니었어도 내 쪽에서도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관심과 무관심의 끝은 같다. 급격히 좋아진 것은 급격히 나빠지기도 쉽다. 다 안다 생각한 순간 팽 당하기 일쑤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도 모두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섣불리 다 알아버렸다며 이 정도면 괜찮다고 결정지어 버린다. 그녀가 말을 건네온 건 서재나 블로그가 약간 회의적으로 느껴질 때였다. 평소 댓글로 안부 묻는 지인에 비해 즐찾수가 좀 과도하게 많기 때문에 나도 간혹 남들의 즐찾목록이 궁금할 때가 있었다. 혼자 지켜보며 어떻게 생각할까 싶은 적도 있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말걸지 않는, 친분 없는 서재는 즐찾에서 정리했다. 마음은 정말로 한분한분 다 가서 따뜻한 말을 걸고 싶은데 마음이 반대로 작용한 것이다. 내 글이 우연히 읽히는 것까진 어쩔 수 없지만 일부러 다른 서재를 더이상 찾아다니지 않게 되었다. 내가 그랬듯 그녀도 내 글을 종종 읽어줬을까. 그 정도에서 생각은 단절되곤 했다. 내 쪽에서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열올리는 건 무의미하니까 그런 건 잘 잊는 편이다.
&nbsp;
들키고 싶지 않지만 나는 빈틈이 많고 수줍음도 많고 정도 많고 어쩔 때는 쿨하기도 아주 뜨겁기도 하다. 좋아하던 글이 일순간 싫어진 적도 있고, 좋아하던 사람이 밉게 보인 적도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꽂혀 있던 대한민국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 한 권을 함께 펴들었다. 나는 책보다 여행이 주는 치유의 힘을 더 믿는 편이고, 책보다 여행을 더 좋아한다. 물론 책을 들고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책은 책이고 여행은 여행. &lt;치유하는 책읽기&gt;와 여행지를 소개하는 여행기가 아닌 여행 안내서를 함께 읽는(다기 보다는 보는) 것은 색다르면서도 지루한 현실을 조금은 몽환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향해 '우도'에 가자고 카톡과 문자를 날리기 시작했다. 여행은 혼자가 제일 편할 것 같으면서도 일시적으로 찾아올 무기력과 외로움을 감당 못할 것 같은 걱정에 또 다시 친구들을 마구 끌어들이게 되는 것이다. 
&nbsp;
이 책의 좋은 점. 그녀가 책을 선물하면서 말했듯, 꾸준하고 성실하게 예쁜 독서를 하는 그녀의 성향에 딱 맞게 우리 것 그러니까 only 한국문학만 다룬다. 역자는 없고(있을 수도) 저자만 있는 책은 여러가지 의미로 특별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도 장르, 성향, 기호, 스타일에 따라 기호가 달라지듯, 한국사람이 한국문단에서 글을 쓰려면 한국문학일 수밖에 없다는 틀을 아는 나도 졸업 후에는 자연적으로 멀리해온, 잊어버린 한국문학들. 현대소설도 있고 시절이 좀 지난 소설도 있다. 장단편 가리지 않는다. 시도 있고 에세이도 있다. 그녀는 정말로 우리 언어로 된 한국소설을 사랑한다. 작가, 장르, 소재 불문하고 꽤 많은 텍스트들을 다루고 있고 뻔한 줄거리로 풀기 보다는 그 책이 어떻게 다가왔는가에 대해 조목조목 가녀리게 설명한다. 그녀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기대되는, 책으로 읽는 따뜻한 치유력이 여기까지 전해져와서 한동안 뭉클한 마음이었다. 많은 말이 오고가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어주는 사람. 앞으로 그녀와 내 관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는 하늘만 알겠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과&nbsp;나 사이, 딱 이만큼의 거리가 참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nbsp;
그녀가 나를 (아니 내 글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나를 알아본다는 것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좋아하는 책을 틈틈히 읽어서 이렇게 예쁜 책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이 제일 고맙다. 문학을 밥처럼 읽으며 대학시절을 보냈으면서 내가 읽은 책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문득 그리워졌고, 소설 한 문단에 담았을 그녀의 마음이 치유로 다가오는 놀라운 감수성을 발견하게 된 건 이 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돌이켜보고 다시 꺼내보았다. 읽은 책을 불러오고 읽지 않은 책을 담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문장을 찾아헤맸을 고민의 시간들을 찾고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가에 이르러 비로소 내려놓는다. 아무 것도 필요없다. 한 권의 책에서 반짝이는 문장과 그 문장을 전복할 자기만의 세계 혹은 감수성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매력적인 사람일 수밖에 없다. 삶의 모든 것, 성장, 가족, 사랑, 권태, 여가, 상실, 외로움 등의 원초적 감정들을 차례로 풀어가면서 가만히 묻는다. 당신, 이제 괜찮습니까,하고.
&nbsp;
나는 오늘을 살고 누군가는 어제를 살고 또 누군가는 내일을 산다. 
&nbsp;

하구의 맨 끝 쪽에서 강은 서쪽으로 커다랗게 굽이쳤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의 힘이 깊숙이 닿아서 바다가 밀어올릴 때 강물은 도심 쪽으로 거꾸로 흘렀고 썰물 때는 바다 쪽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흐름이 돌아서는 밀물 때는 내려가는 강의 힘과 거꾸로 올려붙이는 바다의 힘이 부딪혀서 강물은 흰 거품을 곤두세우며 일어섰고 물이 한꺼번에 빨려나가는 저녁 썰물 때는 내려가는 강의 밑창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 다 빠져나간 저녁 무렵에는 낮게 엎드린 강의 양쪽으로 젖은 갯벌이 드러나고 강은 문득 고요해지면서 굽이침의 뼈대만을 드러내는데, 그 굽이침의 보이지 않는 먼 쪽에서 다시 밀물은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nbsp;
김훈,「언니의 폐경」, 40쪽 (p.274)
&nbsp;
책을 읽으며 헛헛한 마음에 여행 안내서도 뒤적이며 모든 여행이 내가 있는 곳이 아니라 수도 서울에서 일률적으로 시작되는 여정임을 안다. 그럼 나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세찬 바람이 햇빛을 걷어가버린 늦가을 같은 날씨였다. 우울해졌다. 여행 가지 않을래,라고 친구들마다 문자를 넣었다. 시간, 경비, 방법, 장소 등에서 모두 첨예한 대립의 결과를 불러올 것을 알고 있다. 계획과 제안은 매번 정식 루트의 문턱도 못 넘은 채 좌절이지만 이번에 알았다. 내가 진흙탕의 갯벌에 두 발 묶여 동동거린다면 누구의 힘이 아니라 나 혼자 힘으로도 나올 수&nbsp;있는 용기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슬프겠지만 누구도 없을 때를 대비해야만 한다는 것을. 장바구니를 뒤져 포구기행집을 넣고 결제버튼을 누른다음, 아무도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때 나, 오로지 나만을 위한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그게 옳다. 
&nbsp;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해는 지고, 바닷물은 썰물로, 청춘은 안녕하고, 과거의 나와도 점점 작별하고 있다. 옳은 일이다. 이 모든 것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착한 마음이 들게 하는 에세이, 날선 생각들을 버리고 꽤 단정치 못한 나도 미련없이 꽃피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좋다. 따뜻해서. 특별하거나 특출나지 않아서. 당신도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만만하지.]]></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80/52/cover150/899143531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35319</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헤밍웨이의 빛과 그림자 - [파리는 날마다 축제]</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623936</link><pubDate>Wed, 16 May 2012 1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62393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228349&TPaperId=562393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70/36/coveroff/899422834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228349&TPaperId=562393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리는 날마다 축제</a><br/>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01월<br/></td></tr></table><br/>지난해 말쯤 쓴 헤밍웨이 저작권 만료 페이퍼 후에 딱 두 권을 샀다. &lt;무기여 잘 있거라&gt;와 &lt;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gt;는 가지고 있는 옛날 전집에 있긴한데 관심 밖이었다. 예전에 읽은 건 &lt;노인과 바다&gt; 뿐인데 사실 그것도 기억에 없긴 마찬가지다. 읽으나마나. 어쨌거나 처음부터 장편 초기작 &lt;태양은 다시 떠오른다&gt;와 &lt;파리는 날마다 축제&gt;에 관심이 있었다.&nbsp;첫 아내 해들리와의 추억을 담아낸 소설 &lt;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gt;에 나오는 여인이 바로 이 회고록에 나오는 아내일 것이다. 폴라 매클레인은 헤밍웨이가 쓴 1920년대 파리 시절에 대한 회고록 &lt;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A Moveable Feast)&gt;를 읽다가 해들리 엘리자베스 리처드슨을 두고 말한 대목, "해들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를 마주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해들리에 대한 전기 작품을 읽기 시작했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lt;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gt; 도서상세페이지에서) 그가 계기로 삼았다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또 한 권은 &lt;킬리만자로의 눈&gt;인데 이건 아직이다.(중,단편 편식이라서)&nbsp;초기의 &lt;태양은 다시 떠오른다&gt;와 &lt;파리는 날마다 축제&gt;를 번갈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은 산문체라 더 빨리, 더 현실적으로 잘 읽혔다. 개인적으로 재미는 별로였지만(여긴 파리도 아니고, 파리에는 헤밍웨이를 능가하는 나만의 눈부신 추억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감정이입이 힘들 수밖에)&nbsp;흥미를 능가하는 소소하지만 특별한 그 무엇이 여기에 있었다. 
&nbsp;
제목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부신가.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과의 친분과 그녀 집에 드나들던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 피카소가 있었던 것, 뒷부분에 자세히 할애되는 스콧과 젤다와의 인연 등은 이미 우디앨런의 영화 &lt;미드나잇 인 파리&gt;에서 봤던 바, 아, 이 책을 토대로 파리에서의 헤밍웨이를 생각하면 당시(1920년대) 거리마다 카페마다 반짝였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혼이 파리를 떠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헤밍웨이는 작품을 위해 고뇌하는 외로운 영혼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아내 해들리가 언제나 함께 있으므로 가난과 고독, 무료한 일상을 더욱 풍부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들도 태어난다. 그야말로 평화로움 속에서 일렁이는 풍요로운 삶이다. 경제력으로만 보면 그럭저럭이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야 한다는, 써야 한다는 일념이 있었기에 단 한 번도 삶의 지위에서 바닥인 적이 없었다. 헤밍웨이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다양한 파리의 인간군상과 경마 혹은 경륜에 대한 단상, 좋아하고 또 영감받은 여러 명의 작가에 대해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 
&nbsp;

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 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 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p.51)
&nbsp;
화려하지 않지만 특별한 일상은 더 큰 화려함보다 더욱 수려하게 휘어잡는다. 걷고, 사색하고, 글쓰고, 책읽고, 다른 작가나 화가를 만나면서 얻은 소소한 영감을 그는 소중히 여긴다. 호오로 가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해주는 것이 글쓰는 이의 미덕이기도 할터,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축제처럼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가난한 것마저도 탐스럽게 느껴졌다. 배고플 때 빵냄새가 더 고소하게 느껴지고, 세잔의 그림이 더 또렷이 보인다는 헤밍웨이가 뤽상부르와 여느 카페들을 오갈 때, 나도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관심은 작가에 한하지 않고 음악과 그림에까지 미친다. 에밀 졸라, 에즈라 파운드, 스타인 여사,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투르게네프, 고골, 톨스토이, 캐서린 맨스필드, 장 콕토, 콜 포터, 제임스 조이스, 헨리 제임스&nbsp;등에 대해 얘기하는 모든 의견들이 한 줄기 빛처럼 독서의 밑거름이 되어주기도 한다. 헤밍웨이니까, 파리니까 이 모든 것이 축제다.
&nbsp;

나는 장편 소설을 써야 한다. 그러나 정제된 문장으로 소설을 완성하려고 애쓰다 보니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장거리 달리기를 연습하듯이 우선 조금씩 조금씩 긴 글을 쓰는 훈련이 필요했다. 전에 리옹 역에서 가방과 함께 원고를 잃어버린 그 소설을 썼을 때 나는 앚기 젊음 그 자체만큼이나 허망하고 변덕스러운 젊은 나이의 순진한 정서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원고를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새로 소설을 써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nbsp;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이다. (p.87)
&nbsp;
파리의 거리마다 책을 파는 노점상이 있고, 무엇 하나 허투루 보는 법 없는 이 젊은 미래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당시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원고료로 아내와 함께 알뜰살뜰 살았다. 넘치는 돈은 아니었지만 부족하다면 부족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럭저럭 함께 의논하고 나누며 좋아하는 것들을 사고 하고 즐겼다. 진정한 예술가들의 의미 그 자체로. 그는&nbsp;파리에 체류했던 20대(1921-1926)를 1957년 가을에서 1960년 봄 사이에 회고록으로 썼다. 그리고 1964년 출간되었다. 덧붙여진 헤밍웨이의 상세한 연대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사진 컷을 구경하면서 비로소 환상의 그가 실제의 그로 환생하는 느낌이다. 작품을 읽는데 작가를 꼭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 않는다. 영화를 보는데 배우를 반드시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작가를 먼저&nbsp;알고 작품을 읽는 것과 작품을 읽고나서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많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자를 실행하려 한다. 기억나지 않는 &lt;노인과 바다&gt;를 뒤로하고 장편소설 대신 회고록의 에세이를 먼저 고른 건 분명 의지였지만 한편 그를 만나는 가장 쉽고 아름다운 방법이긴 했다. 헤밍웨이의 화양연화.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내라는 헤밍웨이의 말 전에 나는 이미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 가서 여전히 또렷하지만 약간은 빛바랜 추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내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 파리도 헤밍웨이 못지 않은 나의 화양연화다. 
&nbsp;
가난했다. 모든 것이 없었다. 젊었다. 가장 행복했다. 가진 게 없어 모든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간절히 바라고 느낄&nbsp;수 있었다. 한때 지독하게 글과 책에 매달렸던&nbsp;젊은 날의 순간이 바로 나의 화양연화였다. 비록 파리는 아니지만 내게도 그렇게 지금을 표현할 날이 과연 올까.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벗은 채 오롯이 과거로만 쓰인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더 크다. 아무 것도 없어서 모든 것이 있었던, 가난과 고독이 인생 가장 혹독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그런 날들을 나는 지금 만들고 있을까. 후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노트르담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생루이섬과 시테섬, 센강의 차가운 반짝임이 아름답다고는 느꼈지만 대부분의 경우 파리는 내 것이 아닌 적이 많았다. 마레 지구로 들어섰다 길을 잃었고, 작가(및 예술가)들의 아지트를 찾아다니다&nbsp;지쳐 나가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 지금도 제 2의 헤밍웨이들이 파리의 어느 대로와 골목에 늘어선 노천카페와 술집을 어슬렁거리고 있을까. 간절히 쓰여지길 바라는, 쓰고싶은 어떤 글 한 줄기를 생명줄처럼 붙잡고서. &nbsp;
&nbsp;
주류를 꽉 잡은 미국문학보다 선호해온 건 늘 유럽문학이었다. [외국문학감상]이라고 이름 붙여진&nbsp;대학 때 전공수업은 그래서 지금까지 어쩌면 먼&nbsp;훗날까지 여전히 유용할텐데&nbsp;'이방인,&nbsp;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 금각사'를 능가하는 문학이 내게는 오랫동안 드물었다. 작가편식이 뿌리 깊었던 탓에 박혀있는 기억이 쉽게 순위를 내어주지 않았던 것. 샐린저보다 헤밍웨이를, 헤밍웨이보다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헤밍웨이의 파리. 기호야 어쨌든 문학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만큼은 국가,지역,시대를 따지지 않았던 문학의 거장들. 그들의 한때와 헤밍웨이의 20대를 들여다보는 여정은 즐겁다.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내는 기회와 영광, 나는 분명 파리에 있을 때조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곳이, 추억이 앞으로 나를 얼만큼 괴롭히고 또 살게 할 지를. 그때도 지금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며 엉뚱하게도 조지 오웰의 &lt;나는 왜 쓰는가&gt;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글쓰기 열정을 가능하게 하는 그 힘. 언제쯤 온전히 그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잘 사는 것 그리고 잘 쓰는 것.&nbsp;나는 아직 멀었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70/36/cover150/8994228349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228349</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세상을 다르게 보는 한 가지 방법, 다시 보기 - [태왕사신기 : 보급판 (13DISC)]</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618240</link><pubDate>Sun, 13 May 2012 17: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6182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36444411&TPaperId=561824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60/28/coveroff/34224300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36444411&TPaperId=56182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태왕사신기 : 보급판 (13DISC)</a><br/>김종학 외 감독, 문소리 외 출연 / 이엔이미디어 / 2009년 04월<br/></td></tr></table><br/>누구에게나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다시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좋아했기 때문에, 좋아서, 계속 좋아하려고 등 여러가지 이유로 '다시'를 실현하겠지만 이건 단순히 다시 본다는 것보다는 끌려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는 편이 더 옳다. 세상에, 살다가 &lt;태왕사신기&gt; 보급판에 리뷰를 쓰게 되는 날이 오다니, 진짜 나도 참 웃기는 애구나. 24부작. 그래, 정확히 24시간 이상을 봐야 한 번 달릴 수 있는 이 드라마를 다 보기가 쉬운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닌 걸 안다. 모든 건 마음에 달렸다. 
&nbsp;
비교적 선과 악이 뚜렷한 편이고 태왕이 아주 천사처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시종일관 내뿜지만 결말은 어쩔 수 없이 구제가 안된다. 김종학 프로덕션에서 김종학 피디와 송지나 작가가 호흡맞춰 만든 &lt;여명의 눈동자&gt;와 &lt;모래시계&gt;를 잇는 이 고구려 태왕 담덕의 일대기는 사극상 거의 최초로 판타지 요소를 가미했다.&nbsp;정통사극이 아니라 픽션으로 만든 퓨전사극이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태왕+사신(고구려 사신도-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일대기를 다룬다. 정확히 말하면 일대기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광활한 정복전쟁이랄까. 악당이 있고, 신탁을 받은 담덕이 네 개의 신물을 찾아 주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고구려에 평화가 찾아오는데, 그게 하늘의 뜻이다. 
&nbsp;
새로운 시도 치고는 재미, 감동, 판타지 요소, 샛별 이지아를 여주인공으로 한 것까지 꽤 좋았는데 하필이면 결말을 말아먹는 실수를 보여주고 만다. 당시 드물게 사전제작으로(그래픽 작업 때문) 방송됐는데 결말이 아쉬운 건 정말 굉장히 아쉬운 일이었다. 한창 더 보여줄 게 남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대충 마무리한 느낌이 보고 또 볼 때마다 들고 또 든다. 별로 유쾌하지 않다. 아쉬워ㅠㅠ 
&nbsp;
왕의 자리를 유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신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왕이 되어야 하는 담덕이 아버지를 음모로 여의고 제대로 왕이 되어보기로 하는데, 늘 자리와 목숨을 위협 받는다. 악당으로는 최민수, 윤태영이 나왔다. 사랑하는 소녀가 있었지만 그 소녀 또한 얻지 못한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나서 늘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nbsp;고독한 존재인데, 어느 날 놀러나갔다가 장터에서 귀여운 사기를 치고 개구쟁이처럼 돌아다니는 수지니를 만난다. 담덕과 수지니의 애틋한 멜로는 이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되는데 이 사내 같고 위험해 보여서 항상 보호해줘야 할 듯한 수지니를 지키는&nbsp;일이 점점 왕의 자리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된다. 비밀은 많다. 끝도 없다. 거기다가 아주 작은 조연들까지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판타지로 돋보이게 하려는 사신의 얘기가 왕이 왕으로 변신해가는 걸림돌 혹은 지름길이 되어준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기만의 리더십으로 모든 이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또 그들을 지킬 줄 알기에 많은 부하들을 얻게 되는 담덕의 성장, 사랑, 태왕이 되기까지의 빛나는 여정을 볼 수 있다. 
&nbsp;
예전에는 주로 멜로 부분에 끌렸는데 이제 왕의 개인적이고 사소한 아픔들과 나라를 위해 고민하는 거사가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라 어쩔 수 없이 군데군데 오글거리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판타지는 어느 정도 유치하기 때문에 더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기 때문에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고, 애초부터 주신이 된다던가, 신탁을 받았다던가, 신물을 네 개 모두 찾아야 담덕이 힘을 얻는다던가 하는 부분들은 만화나 판타지가 아니면 애초 불가능한 설정들이다. 또 여느 왕처럼 아버지를 여읜 불우한 어린 시절의 세자인 것도, 수지니와 기하가 자매이면서 둘 중 하나가 주작이기에 우연히 닥친 위험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헤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것, 언니는 흑의 세계에 있고 동생은 저잣거리를 떠돌다 돌봐준 스승님에게 은혜 입고 살고 있다는 것, 언니와 동생 둘 다와 연인의 인연이 닿아있는 담덕, 담덕과 한날한시에 태어나 신탁을 욕심내는 연호개까지 이 모든 설정이 우연성과 고전성에 기인한다. 그래서 낯설지 않다.
&nbsp;
첫 회에 나오는 환웅신화는 기대치를 높였지만 그들이 환생하며 끌어내는 이야기는 결국 목표가 멜로였기에 볼 거리와 감동에 치중한 나머지, 왕의 일대기라기엔 미화된 역사의식으로 표현되고 말았다. 
&nbsp;
그러니까 엄청난 서사력과 볼 것에 치중된 미화된 색감 때문에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작품성이라도 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들었기에 좋아하는 것 같은데, 생각해봤더니 조직애와 협동에 나는 항상 뿅 간 것 같다. 이토록 아래에 있고 싶어하는 왕, 왕이 사랑하는 여자, 왕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웅장한 전쟁사와 악당들과 싸워야 하는 조직력 그리고 협동심 등. 사실 볼거리는 나중이고 결말을 빼고는 진부하게 양분된 이 선악 대결구조와 신화에 기여한 신물 찾기도 꽤 마음에 든다. 한 예로, 청룡 같은 경우는 관미성의 성주였다. 성을 뺏기고 아버지를 잃은 뒤 늘 가려진 채로 숨어 살았는데 몸 안에 신물을 간직해야&nbsp;했기 때문에(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신물을 지키기 위해 아들의 몸 속에 넣었음)&nbsp;늘 철의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하는 저주를 받았다. 그런데 수지니를 만나고, 담덕을 만나면서 이 가면을 벗게 되고 왕을 왕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한다. 나머지 백호와 현무도 상태는 다르지만 이런 식으로 담덕을 모신다. 
&nbsp;
마지막으로 주작은 중요하다. 앞에서 말했듯 사랑한 예전 여인 기하와 기하의 여동생이자 현재 사랑하는 수지니가 얽혀있는 신물이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는 진짜 주작, 또 하나는 흑주작이다. 흑주작은 모든 것을 타버리게 한 뒤 점멸하는데 이유는 주작이&nbsp;사신 중 유일하게 신의 힘을 지닌 인간으로 주작의 힘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스토리는 기묘해진다. 이해할 듯도 한데 이해를 못하겠다.&nbsp;말하려면 막힌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명료하지 못한 것이다. &nbsp;
&nbsp;
엔딩은 여러 개였다고 작가가 얘기했는데 당연히 그랬을 것 같다. 여러가지 방향으로 이야기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아주 마지막까지 배우들도 누가 흑주작인지 몰랐다고 얘기했었다. 파멸이 필요했다면 파멸의 이유를 충분히 깔아뒀어야 했고, 치밀한 복선도 필요했지만 이 엔딩은 분명 아쉬운 점이 많았다. 급작스럽게 터진 예고 없는 반발처럼 툭 솟아올라 지금까지도 엔딩의 감동을 괴롭힌다. 이랬으면 좋았을텐데, 저랬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스토리를 아는 드라마를 보면 손보고 싶은 구석이 얼마나 많은지 대본을 구하고 싶어진다.(응?)
&nbsp;
하지만 이미 끝났다. 볼 때마다 좀 더 큰 상상력으로 빈 공간을 채울 뿐이다. 보는 동안 배우고 느끼고 행복했으므로 괜찮은 것이다. 아빠네 두고 온 외장하드를 찾아오면서 그 안에 고스란히 저장된 &lt;태왕사신기&gt;를 아주 좋은 화질로 다시 한 번 보면서 이렇게 덮어두어도 조만간 또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 모두 떠올릴 수 있을 만큼은, 한 해에 한 번씩 혹은 계절마다 한 번씩. 순응과 보조는 지도자가 훌륭하면 훌륭해진다는 걸 알려준 것도, 강하게 떠밀거나 완력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카리스마 발휘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기대하며 보는 여배우 이지아를 내려준 것도 모두 고맙다. 처음 볼 때는 스물 다섯살이었는데 딱 5년이 더 지났다. 시간 속에서 무언가가 차곡차곡 더 자라는 느낌인데, 작품일 리는 없고 단지 내가 보는 내가 조금은 더 자라고 있다는(어른이 되고 있다는)&nbsp;뜻이었으면 좋겠다. 아 진짜 내가 느끼는 나와 세상이 바라는 나의 괴리, 너무나 크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60/28/cover150/3422430088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36444411</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나는 지구라는 별을 떠도는 라이카 - [스푸트니크의 연인]</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611598</link><pubDate>Wed, 09 May 2012 18: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6115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492&TPaperId=561159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70/63/coveroff/89701284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492&TPaperId=56115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푸트니크의 연인</a><br/>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03월<br/></td></tr></table><br/>이야기는 사랑스럽다. 하루키의 것들 중 제일 쉽다. 물론 이 순간 기억나는&nbsp;어떤 장면도 없다.&nbsp;그의 이야기들은 무거운 일상 속으로 붙잡고 늘어지기엔 너무 가볍고도 고찰적이라서 곁에 머물지 못한다는 걸 수많은 경험을 통해 나는 안다. 그는 여전히 존재와 상실에 대해 얘기한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그의 이야기란 걸 알아볼 수 있다. 이제는. 나는 등장인물 중 각자 아니 모두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라이카다. 이 사실은 변함 없다. 얇은 분량인데 꽤 오래 옆에 두고 읽었다. 그리스에서의 이야기는 절반 뿐인데 내내 그리스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설렘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스푸트니크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뮤와 스미레와 나의 이야기다.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면 알려주겠다. 둘은 여자고 나는 남자다. 스미레와 나는 친구 사이, 뮤는 스미레보다 열일곱 살 연상이다. 끝. 
&nbsp;

식당 밖으로 나오자 염료를 부어넣은 듯 선명한 저녁노을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공기를 마신다면 그대로 가슴속까지 물들어버릴 듯한 파란색이었다. 하늘에는 별이 자그맣게 빛을 내기 시작하고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지역 주민들이 여름의 늦은 일몰을 기다렸다는 듯이 집을 나서서 항구 근처를 느릿느릿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가족이 있고, 커플이 있고, 사이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싱그러운 바다 냄새가 거리를 감싸고 있었다. (p.160)
&nbsp;
뮤는 스미레가 종종 얘기해서 처음 만나면서도 이미&nbsp;알던 사람 같다며 나를 맞았다. 파란 물결이 새하얀 거품을 물고 팔랑거리는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그녀는 스물두살의 '내가 사랑하는 스미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자다. 스미레가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나는 스미레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튼, 나는 어젯밤 뮤의 급작스럽고 다소 무례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이 섬으로 오게 되었다. 스미레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채. 조금 늦게 나를 마중나온 뮤는 올리브 오일과 흰 살 생선 요리, 화이트 와인을 대접하면서 용건을 얘기했다. '스미레가 사라졌다'고.
&nbsp;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카자흐공화국의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다. 직경은 58센티미터, 무게 83.6킬로그램인 이 인공위성은 96분 12초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다음 달 3일에는 라이카라는 개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라이카는 우주 공간으로 나간 최초의 생물이 되었지만, 그 위성은 회수되지 못하고 우주에서의 생물 연구를 위한 희생으로 기록되었다.
(고단샤 발간 &lt;&lt;크로니크 세계전사&gt;&gt;에서)
&nbsp;하루키의 여느 소설이 그렇듯, 초반 100페이지를 스미레, 나 그리고 둘의 관계설정에 신경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들어간 대학의 문학부마저 관둘 정도로 열정이 상당한 스미레의 열렬 상담가이자 문학적 동반자는 나 뿐이다. 그녀는 늘상 새벽에 전화를 걸어 상황과 행동의 타당성 아니, 감정의 쓰나미를 멈춰줄 대답을 구한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화내거나 짜증 부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답하고 위로한다. 스미레에게 나는, 나에게 스미레는 언제나 그곳에 있는 움직이지 않는 인공위성 같은 존재다. 내가 스미레에 대한 애정을 깨달은 건 스미레가 연상의 뮤를 만나고, 그녀의 제안에 응해 사무실로 출근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다며 만지고 느끼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였다. 스미레는 뮤와의 밤을 궁금해했고, 나는 스미레에게 정말로 사랑인 것 같냐고 반문했다. 그리스의 어느 섬으로의 여행은, 간혹 떠나던 뮤의 출장에 스미레가 동행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 새벽에 뮤에게 그리스로 와달라는 다급한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nbsp;
나는 스미레가 흔들리거나 좌절할 때 이렇게 말해준다. 나로서는 위로가 격려가 아니라 솔직한 사실이었다. 
&nbsp;

"나는 그런 것에는 거짓말을 하진 않아. 네가 지금까지 쓴 문장 안에는 멋지고 인상적인 부분이 많아. 예를 들어, 네가 오월의 해변을 묘사하면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리고 바다 냄새가 나. 따뜻한 태양이 온기를 두 팔에 느낄 수 있어. 또 네가 담배연기로 꽉 찬 좁은 방에 대해서 쓰고, 그걸 읽고 있으면 정말로 숨이 막히고 눈이 아파져. 그렇게 생명이 느껴지는 무장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냐. 네 문장에는 그 자체로 호흡하고 움직이고 있는 듯한 자연스런 흐름과 기운이 있어. 지금은 그것들이 아직 하나로 제대로 연결되고 있지 않을 뿐이야. 피아노 뚜껑을 닫을 필요는 없어." (p.87)
&nbsp;
그리고 덧붙였다.
&nbsp;

"당신이라는 사람은 가끔 대단히 상냥해질 때가 있어. 마치 크리스마스와 여름방학과 갓 태어난 강아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p.88)
&nbsp;
나에게 스미레는 불안과 평온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상실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nbsp;
그런데 지금 나는 그리스의 어느 섬에 있는 것이다. 뮤와 앉아, 스미레의 실종 얘기를 들으며.
&nbsp;
잠시 다른 이야기.
&nbsp;
그리스의 섬에 머물며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하여 자국으로 돌아가 유명해진 수많은 예술가들이 과연 당시 부서질 듯 아름다운 그리스의 혼란함, 전쟁, 독립에 관심이나 가졌을까. &lt;코렐리의 만돌린&gt;이 그리스에서 벌어진 전쟁(독일군과 무솔리니가 손잡고 연합군과 벌인 2차대전)을 그리고, 그리스의 섬에서 아름다운 시를 썼던 칠레 시인 네루다의 시는 오늘날까지 유명하다. 그보다 이전에는 터키(오스만투르크제국)를 상대로 힘겨운 독립전쟁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이 평온한 그리스의 섬 이면에 숨겨진 역사와 아픔을 사람들은 볼 줄 모른다. 하루키는 이것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다. &lt;먼 북소리&gt;를 쓸 정도로 그리스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또 스미레가 걷는 유야무야한 작가로서의 길은, 문학부에 들어가&nbsp;세속적 분위기에 박차고 나올 정도로 깊게 갈망하는 문학의 길을 나 또한 고민하게 한다. 
&nbsp;
스미레는 어디로 갔을까. 스미레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는 뮤의 얘기는 스미레가 나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다음 시점부터 시작된다. 부르고뉴에서 만난 영국인이 그리스에 있는 별장을 빌려주었고 둘이 함께 세상의 끝과도 같은 이곳에서 꿈결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스미레가 사라진 사흘 전까지. 
&nbsp;
계속 쓰려고 했다. 하지만 사흘 전의 일과 그 이후의 일들을 찾아가는 건 각자의 몫인 것 같아 여기서 접기로 한다. 나 또한 언젠가 훌쩍 사라지고 싶은 충동이 없는 건 아니니 스미레의 사라진 그림자를 추적하는 건 뭔가 옳지 못한 느낌이다. 내가 싫어하는 건 그녀도 싫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지구로 내던져졌고 이 행성이 어디든, 누가 곁에 있든 없든 나는 살아야 한다. 라이카도 그랬을 테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있었을 테고, 살아있고 싶었을 테니까. 자기연민이 기본적으로 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원래 많은 것에 계획적인 타입이 아니라서 언젠가 계획을 세우고 나면 그 계획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 쓴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런 게 없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그냥 두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 아무 것 하지 않은 채로 그냥 두는 건 나를 지구라는 행성에 내던진 조물주가 아니라 목적을 위해 인간에 의해 스푸트니크에 탄 채로 사라져버린 라이카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관둬야겠다. 더이상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은.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도 뭘 하지 말아야 할지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사랑에 관한 한, 하루키의 이 문장은 시작이자 끝이다. 소설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파노라마다. 자,&nbsp;이것이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자 모든 것이 끝난 이유다. 
&nbsp;
사랑이란,
&nbsp;

스물두 살의 봄, 스미레는 난생처음 사랑에 빠졌다.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며 돌진하는 회오리바람처럼 격렬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지나가는 땅 위의 형태가 있는 모든 사물들을 남김없이 짓밟고, 모조리 하늘로 휘감아올리며 아무 목적도 없이 산산조각 내고 철저하게 두들겨 부수었다. 그리고 고삐를 추호도 늦추지 않고 바다를 가로질러 앙코르와트를 무자비하게 무너뜨리고, 가련한 한 무리의 호랑이들과 함께 인도의 숲을 뜨거운 열로 태워버렸으며, 페르시아 사막의 모래폭풍이 되어 어느 곳엔가 있는 이국적인 성곽 도시를 모래 속에 통째로 묻어버렸다. 그것은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진 상대는 스미레보다 열일곱 살 연상으로, 결혼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덧붙인다면 여성이었다. 그것이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자 (거의) 모든 것이 끝난 장소였다. (p.7)
&nbsp;
실제로는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자 모든 것이 끝난 장소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 할 때, 결국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한다. 
&nbsp;
나는 어디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는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져버린다면 그것 또한 일상적이었으면. 
&nbsp;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멀리서 보면, 그것은 유성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수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거죠. 두 개의 위성이 그리는 궤도가 우연히 겹칠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고 어쩌면 마음을 풀어 합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잠깐의 일이고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 속에 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타버려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p.197)
&nbsp;
자유는 위험을 동반하는데, 내 손을 떠나 행복하길 바라며 세상 속에 던져놓고 상실을 견디는 마음과 구속이 사랑이라 착각하며 내 책임감을 내세우는 마음 중 어느 것이 더 이기적인 생각일지 몰라 언저리를 서성대는 날들이다. 나를 떠난 것이 불행할 거라고만 생각하는 건 내 오만이 아닐까. 대신 너는 자유를 얻을텐데. 내일 죽을 지라도. 사랑해서 보내준다는 대사를 이해할 것도 같다.
&nbsp;
답이 들려올 리 없어 눈을 감았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70/63/cover150/897012849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8492</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어느 날 내게 낯선 세상이 찾아왔을 때 -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606521</link><pubDate>Sun, 06 May 2012 23: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6065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86&TPaperId=560652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06/37/coveroff/89527649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86&TPaperId=56065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a><br/>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03월<br/></td></tr></table><br/>다 읽은 지금,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것에 관한 가장 쉬운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며칠 아프리카에 빠져 지내며(또다른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 중)&nbsp;오랜시간 이어져 내려온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여기고 있는데, 뉴스에서 진보당에 터진 비교적 더 가까운 일들을 보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살게 해줄 이 나라 정치인들이 난리인데, 아무리 아프리카 사정을 잘 알게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회의마저 들었다. 국내사정은 모르겠다. 원래 '국제' 관련 일을 하고 싶었고 언어도 되도록 많이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싶었다. 내 영역이 그곳까지 미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의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프리카는 단 한 번도 꿈꾸지 못한 대륙인 줄로만 알았다. 기후는 원래 무덥고 건조하며, 먹을 것을 재배하기는 어렵고, 운도 없게 그곳에서 태어난 아프리카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들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조금 더 커서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당연히 그곳의 실상황에 대해서나 일련의 역사적 부조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곳인 줄 알았다. 반성한다.
&nbsp;
아프리카의 기후가 저주 받은 건 틀림없다. 사하라 사막이 횡단으로 가르는 아프리카는&nbsp;자연스럽게 남과 북의 지리적 상황을 감수해왔다. 지금의 아프리카는 뭉뚱그려 아프리카로 일반화하기에 사정이 좀 다르다. 남아공, 에피오피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nbsp;등의 북아프리카로 나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상황으로 접하는 절대적 빈곤, 에이즈, 말라리아, 낙후된 여건 등 언론 속 모습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블랙 아프리카)의 일들이다. 사하라 사막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나타난 지리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유럽 식민지배에 의해 인위적으로 쪼개져 분할된 이후로 나타나게 된&nbsp;역사적 현상이기도 하다. 원래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부족의 지배자 혹은 지도자를 선출하여 다스려온 아프리카의 민족 특성상, 유럽과 서구가 제멋대로 통합 혹은 분리를 실용노선으로 정한 다음부터는 내전과 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nbsp;
부족 개념의 여러 집단을 임의적으로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아무렇게나 국경선을 그으면서 부족의 역사, 인종, 종교, 특성 등을 간과하고 국가로 만들었다. 어제까지는 옆 동네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하나의 국가로 거듭났으니,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전이 있는 나라는 특히 심한데, 서구와 선진국들의 점유전쟁으로&nbsp;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는 돈을 벌 수 있다. 이 돈으로 한 번 지배자 위치에 오른 이들이 부정선거와 내전을 치를 무기를 구입하고 외국은행으로 개인재산 불리기를 시도하면서 끊없는 정쟁이 계속된다. 세계 각국과 UN이 원조하는 상당수 구호품들도 이런 식으로 독재자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지키는 자와 뺏으려는 자는 인종/종교/혈족 등 여러가지 요인을 시발점으로 내전을 벌이는데, 이럴 경우 피해는 가난한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되풀이되는 악순환. 실제로도&nbsp;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날마다 당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곳이 바로 오늘날 바다에서 공공의 적이 되는 해적의 나라 소말리아다.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이며, 아주 어린 소년들이 먹고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바다를 누비는 범죄를 막을 아무런 국가적 장치를 기대할 수 없다. 
&nbsp;
가난, 에이즈, 말라리아, 식수 등은 사소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최소한의 것들로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부패이며, 국제사회가 아무리 모기장과 식량, 물을 보내도 소수 지도자들과 공무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아프리카인들은 자력으로&nbsp;상황을&nbsp;나아지게 할 수&nbsp;있다는 희망 자체를 잃어버렸다. 말라리아는 모기장만 제대로 쳐도 죽음을 막을 수 있는데&nbsp;모기장 공수는 물론,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마을까지 운반할 도로,교통 인프라가 없다는 것, 모기장을 만드는 공장과 식용으로 쓸 우물을 파는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공사를 진행하는 국가가 발을 뺄 경우 중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던 다른 국가들도 점점 아프리카인들의 무대책과 무대응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외국에 팔기만 하면 돈을 버는 유전과 광물자원을 팔며 돈을 벌지만 자기 배불리기와 권력유지에만 신경쓸 뿐이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불거진 재스민 혁명(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벤 알리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일어난 민중혁명으로 후에 이집트 무라바크와 리비아 카다피 축출 등으로 이어지는 아프리카와 아랍 민주화 혁명의 발단이 됨)은 조금씩 사회적 의식수준이 높아진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갈망이 표출된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아프리카 및 중동 곳곳에서 진행중이며, 내전으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고 있다.
&nbsp;
왜 이래야만 하는가. 앞서 얘기한 빈곤, 독재, 기후, 내전&nbsp;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정치적 제도마련이 필요한 것일까. 지금까지 서술한 것만으로도 이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급격히 나빠진 게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부패, 자국의 가난을 유럽 식민주의의 잘못으로 전가하는 점, 곳곳에 만연한 종교분쟁(크게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지만 역사적으로 부족적 전통을 가진 만큼 셀 수 없는 숫자만큼의 전통 종교들이 부딪침), 도움의 손길을 가장한 선진국들의 유전/광물/시장 쟁탈전, 시민들의 질낮은 교육수준, 기후변화, 한없이&nbsp;부족한 인프라와 기술, 무엇보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구조 등 총체적 난국이란 걸 알 수 있다. 아프리카를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들의 권력과 재물에의 집착이 오히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을 병들게 한다. 이들은 무조건 역사 탓, 서구 탓, 그렇지 않으면 자국의&nbsp;자원을 내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nbsp;한 치 고민도 없이, 자원을 더 내다 팔거나 원조를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국들 입장에서&nbsp;영원토록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물론, 아프리카의 결단력이 필요한 때이다.
&nbsp;
독재자를 축출하는 것만으로 민주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nbsp;잎만 떨어져 나갔지, 뿌리는 그대로라서 다음 지도자가 다시&nbsp;독재와 부패를 답습할 수도 있고, 군부독재가 시작될 경우 권위주의는&nbsp;뿌리 뽑히기 힘들다. 실제로 재스민 혁명이 성공했으나 해당국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선거제도 역시 부정부패가 만연해&nbsp;여론조사에서는 늘 당선을 예견했던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 진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다. 선거철만 되면 내전에 불이 붙고,&nbsp;국내문제불간섭 원칙을 어겨서라도 UN이나 선진국이 아프리카의 선거에 관여해야 했다. 실제로도 원조 규모나 시기 등을 협상카드로 제시하며 아프리카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런 궁여지책이 얼마나 통하겠는가. 아프리카에 묻힌 자원이 유한한 것만도 아니고, 1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유럽 식민주의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한 이 대륙이 자연스럽게 민주와 풍요의 탈을 쓸 리도 없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대륙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제 전 지구촌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대륙의 크기 또한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포기하거나 내려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nbsp;
저자는 서구의 아프리카 쟁탈전을 염려한다. 과거 미국과 유럽이 닦아놓은 길은 유용했으나 간섭이 심했기에 아프리카로서는 마다할 제안이었다. 현재 중국은 서구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아프리카의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국영 기업들은 아프리카에 정착해 유전과 광물을 캐고 자원을 탐낸다. 값싼 생필품을 만들어 팔고, 아프리카인들은 일시적 유용을 누린다. 그들은 당장의 먹거리가 너무나도 급하기에 현재 낭비되고 있는 자국의 지하자원 같은 것들을 지킬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틈새시장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자국의 투자와 국가와 기업의 윤리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서구는 배불리기에 급급한 중국을 비난하지만 이들 또한 가능하다면 중국처럼 하지 않을 리 없다. 아프리카는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실타래는 하나씩 또 총체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국가정체성이나 국민을 지키는 마음이 아쉬운 이유다.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지금으로선 지나친 낙관론 또한 비극으로 여겨진다. 이대로라면 아프리카의 침몰에 울어줄 국가는 없을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는 있어도 아프리카 대륙을 위해 슬퍼할 진정한 친구는 없을 것이다.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아프리카 대륙에도&nbsp;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우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깨끗한 정치를 맡아줄 지도자가 더 많이 나타나 전통과 문화를 오롯이 지켜낼 날은 언제일까.
&nbsp;
그런데 헤겔은 왜 이랬을까?
&nbsp;

헤겔에 의해 아프리카는 유아기의 인류, 고차원적 사고 능력이 없는 흑인들의 땅이자 어두운 밤의 장막에 둘러쳐 있는 대륙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흑인들의 검은 피부는 어둡고 몽매한 밤의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져 '흑 아프리카'라는 부정적 개념을 정형화하는 데 일조했다. 헤겔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인간성마저 부인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아프리카인에게 종교적으로도 편향된 시각을 투영했다. 고차원적인 기독교는 야만인들에게 적합지 않으며, 욓려 이슬람교가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흑인이 인간성에 대한 부정은 19세기 노예무역업자와 노예를 필요로 했던 이들에게 양심의 가책 내지는 죄책감의 방파제가 되어주었다. (p.42)
&nbsp;
오늘부터 헤겔 안티 하겠음.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는데..(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06/37/cover150/895276498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4986</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밤에 피는 장미 - [Norah Jones - ...Little Broken Hearts]</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581516</link><pubDate>Sun, 22 Apr 2012 21: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5815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55970048&TPaperId=558151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20/36/coveroff/93559700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55970048&TPaperId=55815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Norah Jones - ...Little Broken Hearts</a><br/>노라 존스 (Norah Jones) 노래 / 이엠아이(EMI) / 2012년 05월<br/></td></tr></table><br/>'Sunrise'와 'What am I to you'는 내게 국보급. 악보가 어딨는지 모르겠는데 피아노 치면서 흉내내려고 했다. 체르니 100번,30번 친 동생은 피아노를 전혀 못치는데 나는 40번,50번도 뗐기 때문에 까먹은 상태는 아니라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아노는 가능하나 노래를 못-_-해서 첫 번째 좌절. 두 곡은&nbsp;몇 년&nbsp;동안 자장가였고, 'Young Blood'는 여전히 벨소리인데다가, 'Sinkin' Soon'을 듣다보면 반드시 레이 찰스 앨범도 듣게 되는데, 그럼 그날 밤 잠은 완전히 설치게 된다. 이건 부활하고는 또 다른 이유로. 자꾸 찾게 되는 무의식이 취향과 관심, 애정을 반영하는 거라면, 그녀의 정규앨범들을 얼마나 닳도록 듣고 또 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완전, 엄청, 많이, 노라 존스를 좋아한다. 물론, 그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함께 줄세울 엄청난 수의&nbsp;다른 뮤지션들이 있다. 좋아하거나 좋아하고 있는 건 언제나 문어발로 존재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유 없이.
&nbsp;
처음부터 노라 존스는 바르게 안착했다. 첫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중적이지만 듣는 대중 개개인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어떤 지점을 개척했다. 혼자 좋아하면서 분위기 잡고 싶지만 굉장히 많은 이들이 은밀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 절망스러울 만큼. 노라 존스가 누구에게나 친근한 뮤지션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못됐다. 취향을 나누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그런 의지가 별로 없다. 실제로 재잘재잘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걸 얘기하는 사람은 J 뿐이다. 함부로 재단하지도, 맞장구치지도 않지만 든든한 힘이 되는 유일한 가족 아닌 가족. 다들 아는 분야, 읽은 책, 들어본 음악에 숟가락 하나 더 못 얹어서 난린데 얘는 그런 게 없다. 늘 헬스장 뛰어다니고 드라이브 하는 것 같은데 책은 언제 읽는지,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 우리는 닮아간다. 정확히는 내가 닮고 싶다. 늘 머리 보다 가슴이 먼저 뛰어나가는 얘를. 글을 쓰려면 가장 먼저 나를 견뎌야 하는데(그럴 경우 타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가려고할 때면 동갑내기 남자친구의 진중함은 늘 나를 붙잡는다. 나를 부여잡은 적이 많았다. 나는 늘 아무 것도 아니니까. 
&nbsp;
시도때도 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것,&nbsp;도착해서 짐을 풀&nbsp;때부터&nbsp;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lt;비밀과 거짓말&gt;을 쓰고나서&nbsp;은희경 작가가 애기했던 '역마살'인데 나는 그건가. 여튼 뭔가 궤도에 올리면 울궈먹는 대신 제자리로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소설가에게는 역마살이 낯설지 않아 보인다. 없는 인물을 끄집어내어 살붙이고 숨결 불어넣고 사랑하고 애증하다 언젠가 보내야 하는데, 그걸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이 모자라면 책을 더 읽거나 공부를 더하면 되는데, 공감력이나 감성이 모자라면 바닥을 치는 느낌이 든다. 소설을 쓰는 일은 비로소 이성과 감성과 공감력을 비롯한 모든 감정이 일반인을 넘어서야 가능하다고 느낀다. 가식이 아니라 뼈저리는 고통으로 느껴야 한다고. 그래서 오늘도 탐색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노라 존스는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선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nbsp;
사실 잡식성이고 딱히 취향이랄 것도 없어서 재즈에 대해 모른다(음악잡지 재즈피플을 몇 달 받아보면서 알았다,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클래식이 쉬웠다). 두 번째 좌절. 굳이 비교하면 나는, 재즈 &lt; 컨트리,인데 그래서 노라 존스 &lt; 올리비아 뉴튼 존,이다. 제이슨 므라즈는 두 장르 모두를 넘나들지만 그의 곡들은 한국사람 정서에 유난히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니,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기가 쉽고, 좋아하는 사람 찾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찾기가 더 쉽고, 싫어한다고 하면 모두 확 달려들어 공격해올 태세. 참고로, 나는 안 싫어한다. 좋다. 부산 콘서트. 라이센스 공연은 예전에 갔던 스위트 박스 이후로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비싼 돈 들여 공연 갔다가 얄궂은 일로 죽어라 싸워서 헤어질 뻔;;(갑자기 이게 왜..)해서 안 좋은 기억이 있다.&nbsp;어쨌든 제이슨 므라즈의 새 앨범 월드투어 첫 스타트가 부산이란 게 신기하고, Cirque Du Soleil(태양의 서커스)를 동경하던 언젠가처럼 아련해진다. 좋겠다, 가수는.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온 세계 도시들을 누빌 수 있다니. 그래도 본분을 잊지 말아야지. 나는 지금 노라 존스 새 앨범에 리뷰를 덧붙이고 있다. 
&nbsp;
얼마 전 맛보기로 싱글이 발매되었다. 'Happy Pills'는 여전히 상큼하고 부드럽고 강했지만, 그동안 귀가 예전 곡들에 적응했는지 쉽게 마음으로 듣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가능해졌다. 비슷하면서도 매번 미묘하게 달라지는 곡들의 느낌이 나를 나이먹게 한다. 이게 3월이었나, 어쨌든 그러면서 잊었는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건&nbsp;참을 수 없는 충동이다보니, 우연히 앨범을 구하게 돼서 들을 수 있을 때 얼른 들었다. 처음부터 귀에 확 꽂히지는 않았다. 가사의 뜻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감동이 한걸음 늦게 도착하는 건 당연하다. 여느 때처럼 오래 말리는 마음의 느낌으로 한 곡씩 마음에 넣었다. 다음 앨범이 나올 때까지는 또 이 곡들로 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녀가 어떤 노래를 부르든 상관 없었다. 
&nbsp;
노라 존스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피아노' 때문인데, 우연찮게 [Live in Paris] 앨범을 듣다가(다이애나 크롤도&nbsp;파리 라이브 앨범 있는데! 그것과 달리 노라 존스의 이건 해외앨범인 것 같다)&nbsp;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모든 곡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 놀랐다. 편곡의 힘에 대해 모르는 바도 아니고, 라이브의 현장성도 물론이고, 새삼 감탄하다가 역시, 좋겠다, 가수는. 으로 귀결. 사실은 가수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가 부러운 거지만. 전에 데이트 하던 날, 걔 성격 답게 말 꺼내자마자 114에 묻고&nbsp;서면 뒤져서 '애플스토어' 가서&nbsp;아이팟 충전기 사왔다. 2만원 생각하고 갔다가 4만원이래서 잠시 놀랐지만, 전화를 몇 번이나 한데다가, 어차피 없으면 안되고, 안사고 나갈 분위기도 아니고,해서 샀다. 산 건 잘 한 일이었지만 4만원 충전기+USB잭이 불안하게 덜렁거리는 걸 보면서는 좀 무서웠다. 기존고장도 그래서 났는데, 원래 쉽게 고장나도록 만들어 놨던 거군, 하면서 애플 씹다가 그냥 잊었다. 며칠 지나니까 역시 돈이 좋아,이러면서 아이팟으로 밤마다 &lt;패션왕&gt; 무한반복과 각종 영화들 섭렵을...( '') 자연히 노트북은 자료 옮길 때만 쓰고, 그즈음 엄청나게 인문서를 사모으고, 다 읽기 전에는 절대 인터넷을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어이없는 결심으로 무장한 다음, &lt;데인저러스 메소드&gt;를 보고는 이제 프로이트와 융을 읽겠다며 책장을 다 뒤져서 엉망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nbsp;
군데군데 파전과 부추전을 굽고, 돼지고기 엄청나게 넣어서 보글보글 매운 김치찌개도 끓이고, 두부랑 호박 숑숑 썰어서 구수한 된장찌개도 끓이고, 양념소고기를 엄청나게 볶아서 상추쌈을... 먹긴 했다. 먹고 살아야 해서. 노라 존스와 상추쌈은 좀 아닌 것 같지만, 노라 존스는 충분히 갖다 붙이는 대로 간다니까! 무거우면서도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진중하고, 격동적이면서도 나른하고, 슬프면서도 달콤하다. 이건 틀렸다. 슬픈 거랑 달콤한 건 반대말이 아니니까. 그래도 맞다. 낮을 슬퍼하면서&nbsp;밤에만 피어나는 장미 같다. 노라 존스를 들으면서 생각도 안 나는 많은 악기들을 배워볼 생각을 했다. 처음 'Sunrise'를 듣게 된 건 누가 피아노 치며 그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었는데, 여성스러우면서도 그렇게 강해 보이는 거다. 연약할 때 연약하고 강할 때 강해서 사랑받는다. 강약을 잘 알아야 지루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노라 존스는 그런 여자처럼 노래하고, 그녀의 여성성에 환상을 품게 한다. 부드럽고 강인하고 희미한 첫사랑의 느낌. 그녀를 보며 늘 피아노 치던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에만 관심이 있던 내가 드디어 피아노 연주하는 타인에게로 눈을 돌린 거였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노라 존스가 있는 한, 그 세계는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nbsp;
p.s. 내가 딱 보편적 취향이다 싶은 게, 매번 '미는 곡'이 좋다. '숨겨진 곡'이나 '끼워진 곡'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특이하다는 말이나 욕도 안듣고 이러고 대충 사는 거겠지,싶어서 세 번째 좌절. 이번 앨범자켓은 이전보다 더 예쁘다. 통에 든 포스터도 저 자켓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실 문 앞에 붙이면 욕실이 환해질 것 같아서 내 방 말고 욕실 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20/36/cover150/9355970048_1.jpg</url><link>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55970048</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흑인 여자들이 사는 곳 -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577872</link><pubDate>Fri, 20 Apr 2012 17: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5778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079&TPaperId=557787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68/88/coveroff/89374620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079&TPaperId=55778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a><br/>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04월<br/></td></tr></table><br/>토니 모리슨, 앨리스 워커를 잇는 미국 흑인여성작가.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는 이 짧은 문장이 맘에 들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도 토니 모리슨의 &lt;가장 푸른 눈&gt;을 읽고 영감 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하니, 이 평가는 넘치는 것도 모자란 것도 아닐 것이다. '미국흑인'이나 '여자들', '페미니즘'에 꽂힌 건 아니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촘촘히'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드 &lt;멜로즈 플레이스&gt;를 떠올렸다. 시즌1로 막내린 미스터리 형식의 멜로인데, 흑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멜로즈 플레이스라는 펜트하우스에 세들어 사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의 변주곡이라는 점에서만 닮았다. 세입자들은 각자 비밀을 갖고, 사랑과 우정, 배신과 질투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평범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멜로즈 플레이스의 마당에 있는 수영장에서 주인여자가 시체로 떠오르지만 않았다면. 이 죽음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세입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미스터리 구조다. 옴니버스라기에는 뭣하지만, 같은 장소의 공동체적삶을 묘사해내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이 책은 참 따뜻하면서도 무엇보다 쉽게 읽히고 재밌다. 
&nbsp;
토니 모리슨은 원래 몇 권 갖고 있어서 앨리스 워커와 글로리아 네일러를 함께 사들였다. 이들은 흑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태생이든 문학의 주제든 인종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비슷한 선에 존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는 이제 내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서 저지른 주문이었다. 한동안 누구의 아픔에도 발 담그기 싫은 무료함이 계속되긴 했어도, 브루스터플레이스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여자들의 인생은 나를 실망시키지도, 들뜨게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마지막까지 응시한 나는 마음으로만&nbsp;오래도록 그녀들의 거칠 것 없는 행복을&nbsp;빌었다.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명제를 상기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대상불문하고 누구나 신파가 아닐까 싶어서 짧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nbsp;
흑인여자 일곱. 이들은 모두 과거나 현재에 내면의 상처, 한정된 상황, 흑인이라는 인종 안에 갇혀 부당한 어떤 일들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이다. 고정된 세상의 시선에 맞서 싸우는 여자가 있는 반면, 그저 살아가는 여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체념하는 여자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녀들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하나 더 공통점을 찾자면 어떠한 연유로 이곳, 브루스터에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nbsp;

기억을 통한 시간의 흐름은 마치 용해된 유리와도 같아서 분명하지 않다가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구체화할 수 있다. 3년이란 세월이 한 번의 대화, 한 번의 눈길, 한 번의 고통 속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다. 또한 한 번의 정신적 고통이 산산이 부서져 3년이란 세월에 고루 뿌려질 수도 있다. 시간은 말이 없고 아리송하여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날마다 조금씩 사라지지도 않는다. 한평생이 거품처럼 사람을 현혹시키는 투명한 파도를 타고 흘러가다가 이따금 기대하지 않았을 때 제멋대로 의식 위로 튀어 올라 물보라는 일으키는 한편으로 시간은 소용돌이치며 사람의 마음속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p.70)
&nbsp;
매티는 사탕수수 내음이 온 초원을 가득 채우는 고향에서 부모님과 살았다. 아버지는 교인에 아주 엄격한 분이어서 딸의 안전을 위해 많은 것을 금지시키며 키웠다. 집집마다 넘치는 일거리를 도와주기 위해 와있던 일꾼 부치와 걷다가 의도하지 않게 그에게 남자 냄새를 맡게된 건 울퉁불퉁한 그의 팔근육과 사탕수수를 쳐내는 화려한 칼놀림이 아니라 푸른 초원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전해준 사탕수수 내음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혼모가 되었고, 아버지는 용서하지 않았다. 죄인처럼 고향을 떠나 아들 바질을 낳았고, 아무도 받아주는 곳 없이 떠돌다가 아무 대가 없이 자기와 아들을 받아준 미스 이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 손녀 시엘까지 넷이 한 집에서 산다. 20대에 미혼모가 된 그녀는 장장 30년을 이 집에서 보낸다. 아들 바질을 물고 빨고 감쌌던 매티의 母情의 끝은 결코,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바질의 엇나감과 나약함을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nbsp;

매끄러운 길
청명한 날
그런데 나는 무엇 때문에 홀로
이 길을 여행하고 있는가
얼마나 기인한가
사랑이라는 길이 그토록 쉽다니
저 앞에 우회 도로가 있는 걸까? (pp.132-133)
&nbsp;
본격적 이야기는&nbsp;느즈막히 브루스터로 오게 된 매티와 한때 매티가 고향을 떠났을 때 함께 지내다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헤어졌던 에타가 매티가 있는 곳으로 오면서 시작한다. 옴니버스 식이라 일곱 명의 흑인여자들의 삶을 조명하고는 있어도 그녀들의 이야기는 연대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에타는 남자에게 기대 한평생 편안하게 살아간다. 남자들을 탐색하여 사랑을 빙자하지만 개중에는 정말로 사랑한, 사랑받은 남자들도 있었다. 그 순간이 지나치게 짧고 마지막은 항상 보잘 것 없었다는 사실만 빼면. 착실한 신도인 매티를 따라나섰다가 교회에 출장예배 나온 우즈 목사와 서로, 감정의 교란을 벌인다. 에타는 그가 자기 목적을 모르는 줄로 알지만 우즈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영특하다. 이 능숙한 게임은 보는 나마저 아릿하게 한다. 이 여자들에게는 어째서 하나같이 편리한 삶이란 없는가 하고. 그녀의 사랑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룻밤의 정사는 사랑으로 시작되지 못한 관계를 반영하는 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nbsp;
키스와나는 흑인계 중에서도 꽤 안정적인 삶을 일군 부모님 품을 떠나 브루스터로 왔다. 아프리카계 이름으로 바꾸고,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브루스터 주민들과 연합하여, 흑인에게만 유독 가혹한 많은 상황들을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엄마의 잔소리가 달갑지 않지만 키스와나는 그것 또한 사랑에서 나온 거란 걸 안다. 엄마는 딸이 부모님 그늘에서 편히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궈내겠다는 '혁명'의 동기가 보잘 것 없다거나 중요치 않다고 여긴다. 한편, 말다툼은 본질을 벗어나 바깥 궤도를 공전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거나 가만 두게 될 것이다. 엄마와 딸이니까. 매티를 처음 받아줬던 미스 이바의 손녀 시엘은 집을 들락날락하는 남편 대신 홀로 딸을 키우다시피 한다. 시엘의 남편 유진은 매티 또한 달가워하지 않으며 뱃속에 든 아이를 부정하기까지 하다가, 어느 날 일자리를 얻어 다른 도시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남편을 붙잡으려는 시엘의 간곡함과 그녀를 뿌리치는 남편의 실랑이가 반복되는 동안, 방치되어있던 어린 딸은 감전되어 죽었다. 딸의 장례식 후, 처음에는 울부짖지도 못하던 시엘은 따스함이 남아있는 브루스터의 여자들틈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응어리진 마음을 토해낸다. 그녀의 슬픔과 아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아내는 단 한 사람은 역시, 매티 뿐이다.
&nbsp;
코라는 어릴 적부터 인형을 좋아했다. 열세살이 넘도록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만 찾아대서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인형이 아니라 진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녀에게는 아빠가 다른 아이들이 여럿 생긴다. 열여덟 즈음부터 낳은 아이들은 커갈 수록 도로 뱃속으로 넣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게 하는데, 그녀를 찾아온 키스와나가 남자친구가 책임자인 &lt;한 여름밤의 꿈&gt; 공연을 보러 오라고 제안한다. 그날밤, 코라와 아이들 모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요한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삶은, 이전과도 이후와도 다를 것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두 여자가 브루스터로 들어온다. 소리소문도 없이 마을 주민이 된 테레사와 로레인을 사람들은 레즈비언으로 오해하고, 키스와나 주재 하에 열린 회의 차 모인 자리에서 주민 소피와 에타의 비난 섞인 다툼에 의해 크게 상처 입는다. 그녀를 위로하는 건 브루스터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중년남자 벤이다. 그는 로레인을 보며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 벤의 사연은 앞선 모든 슬픔을 압도할 만큼 마술적이고 환상적이다. 과거의 일과 상상 속의 일이 뒤섞여 설명되는 벤과 아내, 딸은 평범한 가정이 사소한 일로 어떻게&nbsp;산산조각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로레인과 벤의 불행은 우연히 일어난 슬픈 비극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nbsp;

2008년은 미합중국의 대전환의 해였다. 미국 정치사상 최초로, '백인'이 아닌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제4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미래의 시작이다. 미국은 유럽의 백인들이 16세기부터 몰려와 토착 미국인(이른바 인디언)들을 멸절, 희생시키고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데려온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만든 나라다. '노예'로 시작된 흑인들의 위상은 '검둥이'와 '흑인'을 지나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치적 정의'에 따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이르렀다. 토착 인디언을 제외하면 미국 역사상 가장 착취되고 억압되고 차별됐던 미국 흑인들의 지위가 날로 새로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342)
&nbsp;
브루스터로 몰려든 흑인들 중 특히 여자들의 삶을 조명한 '소수자 담론'이자 '타자의 서사'라고 옮긴이가 덧붙인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그 속에 든 아픔은 미국흑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가난, 차별, 가족해체 같은 것들이다. 흑인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인종과 성, 두 가지 차별이 복합화되어 더욱 부조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백인이 사는 거리와 벽 하나의 차이를 두고 형성된 브루스터, 일곱 명의 여자들에 대한 사연이 끝나고 덧붙여지는 마지막 장의 '구역 파티'에서도 여전히 그들은 이 안에서조차 하나가 될 수 없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억눌린 감정이 비슷한 위치의 이웃들에게 화살처럼 튕겨져 나가는 것이다. 이들의 협동체를 구상하고 실현하려는 중심에 일곱 명 중의 한 명인 키스와나가 있고, 오랫동안 마을에 살며 모든 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실제로 大母같은 역할을 해내는 매티가 있다. 그들이 바꾸려는 평등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백인 집주인이 터무니없이 올려달라는 월세에도 개인적으로는 저항하지 못할 만큼 주눅들어 있거나 힘이 없다. 단결이 힘이건만, 여자들은 여전히 이웃과 으르릉 거린다. 후반부, 브루스터의 벽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은, 흑인과 단절되어 있던 세계와의 화합 혹은 소통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소 모호하지만, 그들의 도전이 실패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nbsp;
첫 술에 배부르랴, 의아해하면서도 한 번 힘을 모아본 이들은 다음 번에 더욱 필사적으로 힘을 모을 것이고, 다다음에는 비로소 같은 슬픔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다다다음에는 서로의 불신을 완전히 깨고나와 불의에 대항할 것이고, 이후에는 완전히 그들만의 자리를 찾을 것이다. 언제나 흑인들의 요구는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달라는 것이었다. 네일러는 그 과정을 특히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아주 드라마틱하게 잘 그려놓았고, 이 소설은 단지 흑인 틈에서가 아니라, 백인들과 맞물려 상대적으로는 더 가혹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미국 흑인 여성들의 의지와 인내로 빚어진 삶에 대해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처절하게 묘사하면서도 절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아주 희망적이다. 그래서인지, 막막하긴 하지만 아주 기분이 좋다. 나아가야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생겨난다. 따뜻한 힘을 주는, 바닥에서 시작하지만 아주 발랄한 시작이다. 갑오개혁으로 법제적 신분제가 폐지되고 완전한 노비해방이 되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흑인 대통령이 나오고 신자유주의 물결로 온 세계가 휩싸여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1982년에 발표된 이 소설과 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변하고 있고, 변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감정적이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소설은 연애소설 같은 데가 있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68/88/cover150/893746207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079</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달빛이 먼 훗날 불 밝힐 영웅을 잉태하리라. - [조드 1 - 가난한 성자들]</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565166</link><pubDate>Fri, 13 Apr 2012 2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5651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34033&TPaperId=55651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532/42/coveroff/8957076034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34033&TPaperId=55651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조드 1 - 가난한 성자들</a><br/>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02월<br/></td></tr></table><br/>
조드: 유라시아 내륙 평원에서 일어나는 대재앙. 물이 부족한 건조지대에서 겨울철 가뭄과 추위가 겹치며 정점에 이르렀을 때, 유목민의 생명줄인 가축이 한꺼번에 수천 마리씩 죽어나가는 사태를 지칭한다. 섬나라나 해안에 인접해 있는 땅에서 맞이하는 기후적 재앙인 '쓰나미'와 정반대 개념.
&nbsp;
&nbsp;
광활하고 호전적인 몽골땅에 늑대(족)의 후손들이 살았다. 납치결혼 당해 남편을 일찍이 보낸 어떤 여자가 달빛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 중에 '바보'라는 뜻을 가진 막내가 있었는데, 부모의 죽음 후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재산다툼이 벌어지자 지나치게 온순해서 투미한 데가 있던 막내(보돈차르 몽학)를&nbsp;형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nbsp;

...내 소중한 자식들아. 절대로 흩어지면 안 돼. 이 가녀린 배가 화살 다섯 발을 세상에 쏘았어. 그리고 봐주는 남자도 없이 혼자서 지켜왔다. 나는 머지않아 죽지만 너희는 누구도 함부로 꺾지 못하도록,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만은 세상이 무섭지 않도록 반드시 뭉쳐서 살아야 해. 알았니? (p.24)
&nbsp;
병들어가는 약한 말에 태워 다른 곳으로 쫓아버린 것이다.&nbsp;혼자가 된 '바보'는 오히려&nbsp;절정에 다다른 꽃봉오리처럼&nbsp;활짝 피어난다. 싸움보다는 지혜를, 욕심보다 우정을 택해 인고의 기다림으로 차츰 실현해가면서,&nbsp;인정을 느낀&nbsp;매가 자기 앞에 먹이를 물어다 나르도록 만든다. 지혜의 힘은 위대하다. 정말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nbsp;자가 아니라 (타인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만드는 자이다. 전혀 가늠하기 힘든 이야기는 바로 이 예기치 못한 땅의 과거로,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바보'는 씨앗을 널리 퍼뜨린다. 씨앗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멀리멀리 커간다.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후손을 길러 거대한 민족이 탄생한다.
&nbsp;

초원의 삶은 눈이 생명이다. 혹독한 겨울과 고립무원의 고독, 사방을 둘러봐도 그지없이 막막한 일망무제의 벌판밖에 없는 땅에는 지평선 너머에도 지평선이 있고, 그 너머에도 또 지평선이 있었다. 한 생명이 좁게 갇혀서 지내거나 사방팔방으로 열린 세상에서 드넓게 살도록 해주는 건 오직 눈의 능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nbsp;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p.16-17)
&nbsp;
녹록치 않은 초원의 삶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 외에 어떤 원칙도 존재할 여지가 없다. 섬세한 투박함이 거친 난세를 헤쳐나갈 유일한 무기. 늑대는 말과, 말은 늑대와, 인간은 땅과 한판 사투를 벌인다. 버려진 씨앗 중에,&nbsp;아버지 죽음 후 성골이라는 이유로 무리로부터 배척 당한 테무진이 있다. 테무진이 뺏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끊임 없이 죽이려 하는 키릴툭. 그리고 같은 씨앗으로부터 왔지만 테무진이 흰 뼈라면, 그는 검은 뼈이다. 남몰래 테무진을 질투하는, 껴안을 때와 돌아설 때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자무카. 대립각이 이게 전부일 리 없다. 
&nbsp;

목숨을 잃는 자는 죽어서도 많은 일을 하지만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한다. (p.48)
&nbsp;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고, 살겠다는 몸부림이 처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용맹과 강직의 땅. 유럽사에 스며든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몽골. 13세기. 난세에 영웅이 출몰한다 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나고 싸우고 스러져갈 것인가. 모든 것들의 중심에 영웅 테무진이 있다. 몽골 고원의 생생한 역사는 오로지&nbsp;테무진을 실감시킨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에&nbsp;의해 복원된다. 한낱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다. 대단한 역사의 기록 앞에 현실은 고요히 침잠하고, 쓸데없는 에너지는 자취를 감춘다. 눈을 감으면 푸른 초원의 한복판에 서있는 내가 느껴진다.
&nbsp;

"하늘에는 기러기들의 세상이 있고, 물에는 물고기들의 세상이 있어. 초원에는 사내들의&nbsp;세상이 있지. 그걸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다들 고통을 참으면서 자기&nbsp;다리를 견디는 걸 좀 봐. 이럴 때 한 명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하찮은 자리로 떨어지고 말 거야. 너는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확인시켜주었어. 그래,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라." (pp.61-62)
&nbsp;
초원에서는 유목보다 사냥이 쉽다. 혼자 남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물과 불을 가르는 일은 곧 전쟁으로 치부된다. 서로의 삶이 어떤지 알기에 쉽사리 귀를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제게 기댈까 걱정부터 한다. 삶은 아름답고 참혹하고 몽롱하다. 산 사람들은 반쯤 미쳐있거나&nbsp;저마다 붕 뜬 세상을 산다.&nbsp;짐승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 함부로 울음을 울지 않는 자들, 현세에 귀 기울이는 자들, 바로 그들이었다.
&nbsp;

테무진은 천지사방에서 엄습하는 초원의 위험 앞에 전면 노출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했지만 도망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딱히 방법이 없으니, 언제나 침묵했고 날마다 고독했다. 제길, 운명은 하늘의 것. 간밤에도 그가 볼 수 없고 확인되지 않는 세상 밖에서 천 개의 별이 태어나고 천 개의 별이 죽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p.79)
&nbsp;
나코 어른의 손에서는 말이 초원을 가르며 달리는 바람 소리가 났다. 말과 함께 한 세월과 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코 어른과 그의 아들을 사람들은 말 부자(父子)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초원의 적이 되어 쫓기고 쫓기면서도 한 가족 못지 않게 정다운 체온을 나누었던 황금 말을 도둑 맞은 테무진에게 나코 어른의 아들 보오르추가 다가온다. 테무진은 보오르추와 가족들을 통해 처음으로 초원에서의 정을 느낀다. 한 뿌리에서 났지만 뒤춤에 칼 꽂아 돌진하는 이들 틈에 버텨온 그에게, 한 번도 무리에 낀 적 없어도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는 이들이 감탄스러울 수밖에. 초원의 정은 끈끈하고 뜨거웠다. 팔딱팔딱 심장이 요동칠 만큼 절박하면서도 고요한 시간을 선사하였다. 힘줄과 뼈로 만든 악기, 백마의 기마술, 고운 노래 그리고 협동심. 모든 것들이 초원의 광활함 앞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nbsp;

괴팍한 날씨 때문에 초지가 피폐해져서 가축들이 지쳐 죽는 걸 조드라 한다. 조드는 근본적으로 고원에 물이 없어서 생기는 것인데, 피해의 양상은 크게 네 가지로 드러난다. 하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가축이 초지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 이게 하얀 조드이다. 둘, 여름이나 가을부터 초지가 말라서 겨울 뿌리까지 고갈되는 재난, 이것을 검은 조드라 한다. 셋, 극심한 눈보라가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되거나 콧구멍을 막는 흙바람 때문에 가축이 한 발짝도 나다닐 수 없게 되는 재앙이 눈보라 조드이다. 넷, 일찍 내린 눈이 따뜻해지는 바람에 철철 녹아서 흐르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강추위에 아주 두꺼운 얼음이 되는 것, 그래서 눈에 번히 보이는 풀뿌리에 입도 대지 못한 채 굶어 죽는 것이 거울 조드이다. (p.116)
&nbsp;
테무진은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온통 혼자의 그림자 뿐인 질주하는 대지에서 비로소 친구와 가족의 정을 만난 것이다. 산 너머 산, 산 너머의 산에도 산이 있을, 지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 희미한 땅의 달빛에서 그는 지금도 슬픔으로 치장하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nbsp;

돌이켜보면,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조차도 그 어디엔가는 사랑의 숨결이 숨어 있었다. (중략) 인간을 기르는 건 세상이다. (중략) 그런데 왜 못 죽였을까? 칼을 쥔 손에 몇 번이나 힘이 들어가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왜 휘두르지 않고 돌아갔을까? 테무진에게는 그것이 언제나 수수께끼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의문이 풀렸다. 매번 남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 비겁한 이웃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된다는 말이 백번 옳다. 아버지를 잃고 죄도 없이 붙들려온 어린 소년을 뚜렷한 잘못도 없이 죽였다가 인심을 잃게 되면 키릴툭의 권세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목이 자신을 살린 것이다. 그 이목을 일컬어 사람들은 세상이라 부른다. (pp.173-174)
&nbsp;
테무진은 길을 떠날 때 하늘에게 묻고 말에게 물었다. 광야에는 숨을 곳이 없다. 도망치고 또 도망하고 숨는 삶 도중에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보오르추의 열린 귀에 테무진이 속삭였다. 여자의 가슴과 닿았던 추억담과 약혼녀를 찾으러가기까지의 결심을. 초원에는 지도자가 없었다. 통솔, 화합, 통합 대신 분열, 경쟁, 싸움만이 있었다. 전쟁이 아니면 죽음이었다. 약혼녀와의 잠자리에 실패하고 아버지의 위독소식을 듣고 돌아가던 그날 아버지를 보내며 비로소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배운다.
&nbsp;
테무진은 버르테와 혼인한다. 그녀는 언젠가 찾아들 하늘의 별빛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밤의 흔적을&nbsp;지붕에 올려 푸른 하늘에&nbsp;알리는 것과 말 떼 속에서 진짜 수컷을 없애는 이유,&nbsp;사막에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낙타 새끼를 함께 묻는 이유, 절망에 눈멀고 낙담, 후회 같은 감정 기관을 잘라야 하는 것 등 초원의 모든&nbsp;위험에 노출된 테무진의 아내가&nbsp;되는 길은&nbsp;멀고도 멀다. 시어머니 후엘룬의 뜨거운 보살핌 속에,&nbsp;오래된 그녀의 슬픈 사연을 벗 삼아, 그들의 간격은 좁혀지고 또 좁혀진다. 게르의 중앙에 화덕을 피우고 웃음을 꽃피운다. 행복을 배운다. 오래가지 못하더라도 행복은 행복이다. 곧 다가올 미래는 예상하지 못해 애처로운 短歌다. 
&nbsp;
초원의 삶은&nbsp;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오로지 삶 뿐이었다.&nbsp;막힘 없이 푸르고 넓은 초원을 달리고 달려 인간을 결박하는 기후로부터, 다른 생명체로부터&nbsp;도태되지 않고 생존하는 일이 전부였다. 테무진의 어깨가 무거웠다. 한때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진&nbsp;케레이트 왕, 토오릴칸에게&nbsp;목숨을 구하러 가면서도 그의 눈은 별똥 같은 반짝임을 감출 수 없었다. &nbsp;&nbsp;
&nbsp;
전투가 일어난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유한 친구들과 어제까지 행복한 웃음을 지었던 게르를 떠나면서 그만 생모와 아내 버르테를 두고 온 것이다. 유목민 그리고 초원의 전투란 生과 死 혹은 女人에게서 시작되고 女人에게서 끝났다. 하지만 전쟁이란 언제나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일 터였다. 지금 버르테가 처한 상황과 똑같이 아버지 예수게이의 부족에게 납치되어 뿌리내린 어머니는 테무진에게 일생일대의 선택을 자연의 섭리처럼 요구한다.
&nbsp;

"버르테는 다른 남자와 살 거다. 그래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너의 아내야."
(중략)
"울 생각 마라.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하기에 인간은 너무 작아. 인생은 아주 크단다. 우리는 자기 발밑도 온전하게 볼 수가 없어. 사랑의 생명이 끝나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걸 누가 알아? 한데 그것도 하나의 생명이란다." (p.290)
&nbsp;
테무진은 버르테를 찾기 위해 토오릴칸, 자무카와 삼자동맹을 결성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기에 각자 발톱 숨긴 채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 메르키드를 처치하기 위한 작전의 지휘는 자무카, 어린 몽골의 겁없는 지도자에게 남몰래 대립각 세우는 지도자는 토오릴칸이었다. 테무진은 보르칸 산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비로소 초원의 중심에 자기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도움을 구해야 할 자가 아니라 도움이 되어줄 자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비극은 경탄의 강을 흘러 뜨거운 성공의 세월을 예감하고 있었다.
&nbsp;

'버르테! 초원의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광야를 횡단하는 구름만 남더라도 나는 당신을 찾을 것이오.'
&nbsp;
테무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옹기라트에서 데려와 버르테의 피가 흐르는 곳이라면 손가락 발가락까지 입 맞추던&nbsp;날, 한없이 높으면 높은 곳, 한없이 깊다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천 마리의 벌 떼들이 마치 꽃잎을 누비는 것처럼 부끄럽지도 지치지도 않고 덤비던 밤에 한 약속이었다. (p.321)
&nbsp;
어려움을 아는 자, 어려운 자를 거둘 줄 안다. 버려짐을 아는 자, 버려진 자의 마음을 꿰뚫는다. 전쟁통에 버려진 아이를 만나면 데려와 달라던 어머니의 부탁을 거스를 수 없는 것 또한 앞으로 테무진이 가야 할 길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그 가치를 드러낼 체제이자 가치관일 것이다. 삼자동맹의 시작은 성공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영웅이란 무릇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 또한 그 영웅은 절대로 포기와 타협을 모르는 법. 지혜로운 자, 영웅이 되리라. 
&nbsp;
알랑고아의 후손, 하얀 뼈를 물려받은 테무진에게 늘 가혹하기만 했던 초원의 삶이 드디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532/42/cover150/8957076034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34033</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Touch me, Love me - [은교]</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561755</link><pubDate>Thu, 12 Apr 2012 02: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5617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TPaperId=556175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77/11/coveroff/8954610684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TPaperId=55617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은교</a><br/>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04월<br/></td></tr></table><br/>사랑에는 귀천도, 국경도, 원칙도, 의미도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들을 그러모으면 얼마나 큰 사랑덩어리가 만져질까. 여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정통적 사랑이론을 처절하게 반전시킨 한 노시인이 있다. 70대 노인과 30대 수제자, 10대 소녀. 마치 트라이앵글의 한 점이 다른 두 점에 가닿듯이 그렇게 사랑과 질투와 재능을 시험당한 세 남녀가 있다. 여기서 유일한 사실은 10대 소녀는 곧 20대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될 거란 것. &lt;아저씨&gt;의 소미를 &lt;레옹&gt;의 마틸다나 &lt;롤리타&gt;의 롤리타의 연장선에 놓을 생각은 없지만 나는 여전히 소미가 아가씨가 되어 어릴 적 자기를 구해준 아저씨를 찾아가는 달콤한 상상을 하고 있다. 내게 은교는 소미의 여고생 시절을 상상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nbsp;

"연애가 주는 최대의 행복은 여자의 손을 처음 쥐는 것이다." (중략) 추억이란 단순히 쌓여지는 것이 있고, 화인처럼 내 몸에 찍혀 영원히 간직되는 것이 있다.
&nbsp;
그들에게 사랑은 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제 존재, 타인의 피부, 자기 욕망, 절제, 억압, 분출의 과정들이 황홀하게 펼쳐진다. 문학과 금지된 사랑의 접점. 아마도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하리라. 사랑에 있어, 몸이 먼저 가는지, 마음이 먼저 가는지를.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야 상대를 간절히 욕망하게 되는 것인가. 
&nbsp;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그런 게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나의 사랑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명사였다. 
&nbsp;
서점에 갔더니 &lt;은교&gt;가 영화개봉과 맞물려 한창 인기몰이 중이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만 반영된 것은 아닐 것이다. 조르주 바타이유의 &lt;에로티즘&gt;이 소설 중 언급될 정도니, 스토리와 수위는 이미 알려진바, 모든 소재들이 흥미를 끌만한 힘을 충분히 갖고 있다. 잘못 이해하면, 부도덕적한 미성년자와의 섹스신으로 치장될 이 소설의 힘은 사실, 문학적 테두리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아마 호기심 지수가 높은 반면, 이해불가라는 평가와 부도덕하다는 평가는 소설로서의 특성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소설이 현실과 같기만 하다면 굳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nbsp;
생각보다 은교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열일곱의 여자아이란 사회적 시선으로는 미성년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이미 성인여자 보다 훨씬 매력적인 법인데, 누가 이 유혹적 부도덕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실행에 옮김과 옮기지 않음이 있을 뿐, 모든 노년에게 젊음은 그 자체로 욕망의 불덩어리가 아니던가. 이적요와 서지우, 은교의 관계는 남녀보다는 연령,세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야 순수함이 치명적인 은교, 그런 은교에게 빠진 이적요, 이적요의 문학재능을 존경함과 동시에 질투하는 서지우의 캐릭터가 이해된다. 남녀 사이에 몸과 마음 외, 어떤 욕망이 있을 수 있다면, 욕망이 비로소 몸과 마음으로 스며드는 게 이해하기 쉬울 지도 모른다.
&nbsp;

질투심은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며, 맹목적 잔인성을 갖는다는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다. 질투심이 꼭 정열의 증거는 아니라고 했다. 정말 질투심이었다면, 나의 질투심이, 은교를 선생님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질투심인지, 아니면 선생님을 은교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질투심인지, 그것이 아니면 재능에 있어 선생님의 그림자조차 따라갈 수 없는 고통에 따른 질투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nbsp;
비교적 단순한 배열 속 캐릭터에 힘을 불어넣는 건, 여느 이야기가 그렇듯, 아슬아슬 비껴가는 감정의 토로와 숨김, 들킴이다. 이적요가 은교를 욕망함을 서지우에게 들키고, 서지우가 은교를 탐하려는 것을 이적요에게 들키고, 은교는 내내 둘 사이 혹은 둘의 외곽에서 모호한 사제지간의 혼란스런 질투와 욕망을 받아낸다. 열일곱. 소리내어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젊음.&nbsp;손을 타지 않은 웃음은 이적요에게는 詩想과 젊음에의 열망을, 서지우에게는 이적요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라곤 은교를 안을 수 있는 자기 젊음 뿐이라는 인식을 가능케 한다. 
&nbsp;

그는 스승을 배반했고, 늙는 것을 '범죄'이자 '기형'으로 취급했다. 단순히 스승인 나를 모욕하고 나를 배신한 것만이 아니다. 전체 인류가 직면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짊어져오고 짊어진, 짊어져갈 존재의 장엄한 법칙을 가장 부정직한 방법으로 철저히 부정했으며 철저히 모욕했다.
&nbsp;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장면을 채우는 건 역시, 에로티즘이다. 욕망은 에로티즘에서 시작, 호기심이 질투로 바뀌는 건 순간적, 계기도 없이 이뤄진다. 왜, 욕망하는지 질문해보면 역시, 육욕이기보다는 젊음에의 회한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못 가지는 것에 목매는 일은 얼마나 가혹한가. 원하는 대상이 명확할 경우에는 다른 젊음을 안아도 그 갈망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이적요와 서지우가 각각 다른 여자를 안아보려는 발로와는 반대로, 은교를 욕망하는 두 사람의 강도는 점점 커질 뿐이다. 
&nbsp;
작가는 가장 '이질적이고 젊은' 노인 이적요의 입을 빌어, '늙는 것'을 말한다. 늙는 것과 젊은 것은 반대말이지만, 늙음이 젊음을 포함하는 것과는&nbsp;달리, 젊음은 늙음을 감싸안지 못한다. 상황이 역전되는 것은 늙음이 '범죄'도 '기형'도 아니라는, 전체 인류가 직면한, 만인의 자연적 흐름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내가 젊음에 대한 욕망과 어린여자에 대한 성적욕망, 문학적 호기심에서 시작된 능력에의 질투 대신, 세대 간의 형평과 질투 혹은 열망과 욕망으로 읽은 까닭이 여기 있다. 
&nbsp;
두 사람의 중심을 잡아주는 은교를 빼더라도, 이적요와 서지우의&nbsp;문학적 열망과 맞대결로 읽어도 어느 정도 팽팽하다. 현재 진행되는 일이 아니라, 이미 관 속에 있는 이적요의 일기를 통해 이 모든 일들의 정황을 하나하나 파헤쳐 맞춰가는 구조를 택한 것도 단조로움을 피하려는 미스터리 요소로 느껴진다. 막판까지 두 사람을 향한 은교의 감정을 한 치 앞도 짐작할 수 없어 답답했다. 열일곱이 서른 일곱의 중년남자나 칠순 노인 앞에 한 송이 꽃 같을지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은교에게서 넘치는 매력을 찾기 힘들다. 그 애는 그저 나이 보다 조금 성숙하고, 나이에 맞게 싱그럽고, 약간의 상처를 가진, 순수하고 장난스런 여자애일 뿐이다. 
&nbsp;

젊다는 것은 그 값이 하늘에 닿으려니와, 동시에 준비되지 않은 여린 영혼으로 불온한 앞날과 자기 모반의 유혹을 상시적으로 받을진대, 울고 싶은 일이 왜 없겠는가. 바람만 불어도 웃을 때인 것처럼 바람만 불어도 울 때이다. 그러니, 울고 싶을 때는 가만히 두는 게 상수였다. 
&nbsp;
남자가 아닌 자들도 남자는 남자. 남자 앞에 뽀얀 허벅다리가 드러날 만한 짧은 반바지를 입는다거나 무방비 상태로 잠든다거나 하는 일은 욕망을 수습하지 못하게 할 만하다. 욕망한다 해서 죄가 된다면 불공평할 것이다. 비난 받아야 할 것은 욕망이 아니라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노인이 어린 여자에게 불온한 감정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쌍욕을 해댈 정도의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지 않는 게 낫다. 어린 새를 세상의 어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품 안에 넣고 싶은 욕심을 이해한다면 소설을 읽고나서 욕망이 관능적인지, 부도덕한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흑백논리 대신, 젊음과 늙음의 이분법 대신, 대체 그들은 왜, 욕망했을까 같은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nbsp;
여자와 남자의 욕망은 애초부터 다를까. 단추를 푸는 남자의 손길보다는 열린 옷깃을 살며시 여며주는 남자의 손길에 더 애닳아하는 여자의 마음과 억제보다 욕망이 큰 남자의 본능이 겹치는 지점을 사랑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아니겠는가. 그래서 은교가 더 사랑스러워지고, 이적요와 서지우가 경쟁자가 되기도 하는 재미난 세상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 소설이, 영화가, 외설적인 베드씬만으로 흥행몰이 하거나 비난받지 않길 바란다. 이 세상이, 보편 상식에서 조금 벗어난 일에 대해 '이해'나 '대화' 대신 무조건적으로 욕하고 비난하는 건 달갑지 않다.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타인의 심장 안에서 일어나는 박동의 강도와 소리를 조절할 권리는 없다. 욕망은 자유롭게 허락되고, 욕망의 회복은 오로지 자기 안에서만 일어나는 물질적 화학작용이므로.
&nbsp;

아름다움에 대한 충만한 경배가 놀라운 관능일 수 있으며, 존재 자체에 대한 뜨거운 연민이 삽입의 순간보다 더 황홀한 오르가슴일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어찌 꿈엔들 상상할 수 있으랴.
&nbsp;
사랑이 몸과 몸을 섞는 일로만 가능할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난 소설이 나는 여전히 좋다. 그들이 그런 것처럼 나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갈망과 질주를 알게 될 것인가. 모두 사라져버려도 슬프지 않다. 진실은 나만 알면 충분하니까. 사랑과 질투로 인해 파멸과 몰락으로 가는 길에 당신을 만나도 아프지 않다. 알 듯 하면서도 모르겠는 이 모든 감정들이 들락날락 하는 동안 폭풍같은 질주가 황홀했다.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수많은 욕망이 달려든다. 잠이 오지 않는다.
&nbsp;

개가 달을 보고 짖는 것은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세상을 보고 짖는 것은 무섭기 때문인데
&nbsp;
그대는 오늘도 개보다 많이 짖는다
&nbsp;
욕망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나와 나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이 욕망하는 일 뿐이라는 것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밤 모든 욕망을 태워버릴 것이다. 공허하게 떠도는 말들과 의미없는 눈길들에 상처받던 나날들을 없애기 위해, 모든 것에 불붙일 것이다. 침묵은 밤처럼 잔혹하다. 나는 이 세 사람의 모든 애정과 갈망 그리고 질주 앞에 침묵한다. 오늘밤만은 그러는 게 좋겠다.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망과 사랑 받고자 하는 갈망을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77/11/cover150/8954610684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0684</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일상으로 달려든 어떤 몽상 - [파리5구의 여인]</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556842</link><pubDate>Mon, 09 Apr 2012 19: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5568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71130&TPaperId=555684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74/0/coveroff/89843711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71130&TPaperId=55568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리5구의 여인</a><br/>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01월<br/></td></tr></table><br/>오랜만에 책 읽은 티를 리뷰를 부르지 않는 장르소설에 가뜩이나 마땅찮은 침체를 가득 담아 날려보내며. 
&nbsp;
싫증 잘 내고 끈기 부족한 또 하나의 인격체가 내 안에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좋은 점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한눈 팔지 않는 집중력이다. 예상치 못하는 당신들 때문에 산다. 이야기에 빠질 때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자정이면 정체가 들통나는 서슬퍼런 신데렐라마냥 다시 냉혹하고 가차없는 현실로 컴백해야 하지만 상관없다.&nbsp;짧은 섬광이라도 고대하고 또 고대하는 순간이 바로 몰가치하고 무관심한 세상을 향해 내뱉는 보통 사람의 자존심의 발로니까.
&nbsp;

"우리는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영화관을 찾지만 사실은 영화관에서도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영화 속에도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탈출하고자 하는 세계를 영화에서 다시 보게 되는 셈이랄까요."
&nbsp;
우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종종 도피를 시도한다. 누군가처럼 하루아침에 평생 동안 공들여 쌓아온 삶을 버리고, 갑자기 파리 행 비행기 표를 사기도 하는 것이다. 
&nbsp;
한때 모자랄 것 없던 교수 해리 릭스는 어쩌다 파리로 왔을까.&nbsp;파리는 아내 수잔 그리고 딸아이와 함께 꾸는&nbsp;삶의 테두리 안의 지상낙원이었다. 돌아갈 곳도 반겨줄 곳도 없이 이리저리 천덕꾸러기로 떠돌기 전, 그에게 파리는 세상 어느 곳보다 더 달콤한 도시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 도착하자마자, 호텔 체크인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침 거리를 떠돌다 쓰러져 의도치 않게 의사 신세를 지면서 가져온 돈의 상당 부분을 낭비한다. 그토록 낭만적일 듯했던 파리 호텔 어디에도 인정이라곤 없다. 돈, 돈, 돈, 그는 졸지에 돈 뱉어내는 기계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비슷한 처지의 아드낭을 따라나선다. 집이 필요한 해리에게 집을 소개해주겠다는 아드낭은 구세주나 다름없다. 파리10구. 터키 출신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
&nbsp;

하지만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파리에서 살기를 꿈꿨다. 파리에서 작가로 살기. 삼류대학에서 날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벗어나 센&nbsp;강 근처에 아담한 작업실을 구해 글을 쓴다.&nbsp;작업실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들이 있다. 오전에는 소설을 쓰고, 오후에는 루이 말 감독의 영화를 보고,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메건을 데려온다.
&nbsp;
파리여서가 아니라 함께라서 꿈은 아름다워지는 것. 그곳이 낙원인들, 밑바닥 삶 하나 없겠는가. 울음 하나, 처절함 하나 없을 수 있겠는가. 더글라스 케네디는 반전을 기가 막히게 그리는 독특한 세련됨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아름다운 파리를 처절하게 그려냈다는 점에 더 기대를 건다. 아름답다고만 여겨지는 수많은 관광 명소들.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추억을 가진 많은 사람들. 하지만 이방인이 팔다리 붙이고 살아야 하는 뒷골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의 삶에는 에펠의 화려한 야경도, 거룩한 중세와 르네상스를 떠받친 루브르의 명작들도, 스티커처럼 반짝이며 흐르는 봄날의 세느강도 의미 없다. 해리가 그런 것처럼, 해리와 비슷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들 대부분의 삶이 그런 것처럼, 그곳은 그저 파리라는 화려함 뒤에 숨은 어설프고 팍팍한 인생들이다. 비로소 몽상 속에 뛰어든 해리의 일상. &lt;파리5구의 여인&gt;은 희미하게 비추는 캄캄한 산 속 손전등 같다. 내 속에 숨겨놓은 불법을 조장하는 버튼 같다. 아름답지 않다. 
&nbsp;

"나는 셸리를 사랑했어. 당신은 한심한 중년남자의 자리합리화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난 진심으로 셸리를 사랑했어. 셸리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 나이 차이는 문제가 아니었지. 셸리는 영화, 책, 재즈 같은 주제로 나와 언제든지 즐겁게 대화할 수 있을 만큼 똑똑했으니까."
&nbsp;
나는 오늘만도 수없이 많은 얘기를 만들어 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잘 못 살았으면 좋겠고, 나와 관련된 내가 아는 사람에게 특별한 일이 생겼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이 대신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면 꼭 붙잡을 테고, 당장이라도 화려하거나 수수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휴양지 아닌 유적지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고 싶다.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 박는 이들은 당장이라도 지옥에 떨어졌음 좋겠고, 상관없는 일에는 당사자들이 더 상처받기 전에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나오고, 서점에서 모든 책들을 한꺼번에 사와서 숨도 안쉬고 읽어 치우는 동시에, 냉장고 가득 들어찬 아이스크림과 피자를 먹고 싶다.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라도 행복만이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내게 좋지 않은 일만 생긴다고 절망하면서도 가까운 곳에 있는 행운이 내 손에 든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왜 까먹었을까. 
&nbsp;
철저히 스토리 중심인 이 소설을 읽은 건 단순한 호기심과 시간 죽이기였지만 상상속에서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실제 삶조차도 온전히 행복하거나 온전히 불행한 인생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의 생 안에는 파리 5구의 여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내 삶에 당신이 있다는 것조차 잃어버릴 때 비로소 삶이 다시 눈 앞에 나타나 어떤 의미를 찾게 해준다는 것도. 내 속에 유령이 산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 환상도 있고 진짜도 있고 현실이었음 하는 꿈도 있다. 
&nbsp;

"받아들여야 해. 아니, 받아들여! '믿음'의 반대말은 어쩌면 '증거'인지도 몰라. 하지만 당신에게는 증거가 있잖아. 나. 당신. 여기 이 집."
"당신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
"아니, 나는 지금 여기에 분명 존재해. 당신이 존재하는 만큼 나도 존재해. 이 방, 이 순간, 이 시간. 이게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게 우리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어.(중략)"
&nbsp;
소설이 끝난 그날밤, 어떤 몽상이 나를 덮쳤다. 상상 속에서는 아무도 불행해지지도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공평했다. 불법을 조장하는 불운 따위는 없었다. 나쁜 일이 없으니 좋은 일도 있을 리 없었다. 지옥이었다. 그러나 잊고 있었다. 불운이 없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존재에는 둘 모두 적절한 강도와 양으로 필요하다는 것과 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도. 일상이었다. 파리 5구의 여인을 만난 건 해리에게 혹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생은 끝나봐야 아는 것. 믿음은 증거 없이도 믿어주는 것.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란 걸 아는 것. 더이상은 요구하지 않는 것. 
&nbsp;
진부한 스토리 속에 숨어있는 지독한 의미는 내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 사랑과 이별의 경계에서, 행운과 불운의 경계에서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오늘도 데쓰노트에 누군가를 추가했다. 살아가는 일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의 전부라는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편했을까. 불안한 과거가 특별히 억울하지 않지만 다가오는 미래는 천천히 억울하고 싶다. 내가 잘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해리는 물론 내게도 필수적이다. 백열등이 깜빡인다. 밤도 아닌데, 이 현실이 여전히 비현실 같다.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 내가 튀어나와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없어도 되는 일은 없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74/0/cover150/898437113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71130</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다른 무엇이 되어서라도 당신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 [레이디 호크(1disc) - 할인행사]</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515811</link><pubDate>Wed, 21 Mar 2012 20: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5158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29835536X&TPaperId=551581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8/68/coveroff/32624309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29835536X&TPaperId=55158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레이디 호크(1disc) - 할인행사</a><br/>리처드 도너 감독, 매튜 브로데릭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02월<br/></td></tr></table><br/>포스터가 뭐 이래,가 솔직히 이 영화를 처음 대할 때 느낌이었는데 보면서는 제목이 왜 이래,가 됐다가 끝나고 나서는 특이하면서도 환상적인 매력을 지닌 러브스토리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어요? 라고 물으면 끄덕끄덕, 하진 못하겠는데 볼까요? 물으면 보세요,라고 대답할 것 같고, 물론 어느 정도의 시대극과 판타지 소화능력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해주겠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시대사조가 중세와 르네상스라 시대극을 좋아하는 편이고, 판타지도 그럭저럭 거부감 없다.&nbsp;그리고 당신은 진짜 사랑을 해봤느냐고도 물어봐야지. 실은 더이상 영화리뷰를 안쓰려고 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별로 떠오르지 않는 영화들을 계속 봐왔고, 극장에 더이상 가지 않고, 남들 다 보는 영화 리뷰쓰기는 좀 꺼려져서. 박스오피스 순위를 점령한 한국영화를 보니 할리우드 영화가 침체기라는 것도 알겠고, 평소라면 좋아할 듯한 어떤 영화를 봐도 감흥이랄지, 재미랄지, 그런 게 한동안 사라졌었다. 
&nbsp;
자본이 독점한 문화산업이라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내가 해야 할 고민은 아니지만 늦든 빠르든 상투적이고 진부한 시스템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돈만 많이 쏟아부어 번듯하게만 만드는 게 관객을 사로잡을 거라는 생각은 애초 잘못된 환상이다. 최근 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어떤 신간 에세이에서 저자가 그렇게 마음 먹는 걸 봤다. 같은 작가 두 번 이상 고르지 않기, 읽은 책은 반드시 리뷰쓰기 등등. 내가 맨날 마음 먹기도 하는 거였다. 오버 좀 해서 듣는 음악, 보는 드라마까지 쓰고 싶었는데 영화쯤은 당연한 거였는데, 내가 아무리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 쓰고 싶어도&nbsp;배운 게 뻔하고 그걸 매일 끄집어내는 한, 뭐가 됐든 뻔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쓰기에 비하면 읽고 보는 건 더 쉬워서,&nbsp;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것도 있는 법이라, 들어가는 게 더 많으면 좋겠다고 채찍질 아닌 몰아치기를 시작하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부문 파워블로그로 뽑혔다. 세상에, 계속 쓰라는 거지? OK.
&nbsp;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그러니까 2전 3기라서 나가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되면 또 기분이 좋아져서 처음에는 막 들떠서 장르별 목록도 쟁여놓고, 꼭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 중심으로 작은 계획도 세웠는데 그것도 어느새 증발됨. 미안, 이런 나여서. 다시 쓰고 싶어졌다. &lt;레이디호크&gt;는 요즘 뒤늦게 빠져있는 반전영화 보는 재미보다는 덜 해도 확실히 명작이다. 다른 세상으로 관객을 몰고가는 집중력과 인류 불멸의 법칙, 사랑. 그걸 방해하는 요소가 주교의 신탁이라는 것이 어찌 사소하겠는가. 나는 사실상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신탁에서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들의 신봉자다. 영웅적 탄생신화와 어려움을 거쳐 왕이 되는 것 그리고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것까지. 내가 좋아하는 우연과 운명에 기인하는 이야기는 이 비극의&nbsp;텍스트 안에서 거의 다 설명 가능했다. &lt;레이디호크&gt;에서 서로 사랑하는 남녀 나바르와 이자보의 훼방꾼은 이자보를 사랑하여 질투하는 추기경의 신탁이다. 본인이 못 가지므로 남도 갖게 하지 않겠다는 오만하고 잘못된 생각이 추기경을 지배하여, 악마와 손잡은 그는 나바르를 밤에 늑대로 변하게 하고, 이자보를 낮에 매로 변하게 하여 둘을 영원히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nbsp;
그들이 서로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되는, 각자가 늑대와 매로 변하기 전의 짧은 시간 뿐인데, 그마저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게 비극이다. 편집과 CG가 세월을 반추하는 건 어쩔 수 없되, 서로 변하기 직전 아쉬움으로 응시하는 눈빛이 아련하고도 슬프다. 그저 한 번 만날 수 있다 해도 인간으로 돌아가면 동물이었을 때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나바르는 낮동안 매가 된 그녀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항상 함께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비극적 신탁을 받은 남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음악은 1986년도 영화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고 세련되었다. 음악 듣는 재미, 신탁이 풀려 사랑이 이루어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nbsp;중세라는 배경이 주는 그로테스크함이 삼박자로 맞물려 돌아가서 아름다운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단과 전개, 절정과 결말이 지극히 전통적인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고전영화임을 속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 앞에 모든 것이 부질없다. 추기경의 행차를 막아 그를 치려는 나바르의 계획 중 추기경의 호위병이 쏜 화살에 맞은 매로 변한 이자보가 죽음의 위기에 이르기도 한다. 
&nbsp;
그러나 추기경의 죽음이 목표가 아니라 마법에서 풀려나는 것이 목표인 나바르는 추기경을 물리치고 신탁을 풀기 위해&nbsp;영웅적 행보를 걷는다. 나바르는 풀려날 방법을 알려주며 도와주려는 신부와 아퀼라 성의 끔찍한 지하감옥에서 불가능한 탈출에 성공했지만 위기에 처해 도움준 적&nbsp;있는&nbsp;필립의 지원으로&nbsp;이 신탁에서 벗어날 길을 마련한다. 이쯤하면 이 영웅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사랑의 결말이 어떠할 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통.적.이라는 한 마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사랑은 상대가 어떤 모습이어도,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지더라도 변하면 안되는 것. 변할 수 없는 것.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 아마 교훈은 이런 뻔한 해답에 있을테고, 나는 늘 시대극의 판타지를 보고싶음 이 영화를 봐, 하면서 &lt;레이디호크&gt;를 추천할테고, 그렇지만 이 포스터는 계속 용서가 안돼, 이러기도 하겠지. 아, 그리고 미쉘 파이퍼가 나오는 &lt;천 에이커&gt;(A Thousand Acres, 1997)로 그녀를 다시 만나봤으면 좋겠다. 청순하고 매력적이다. 항상 생각하지만 배우들은 좋겠다. 젊고 예쁠 때 모습, 우린 고작해야 사진 정도로만 간직하는 게 다인데, 그들은 영상으로 이토록 생생하게 담겨 시절과 느낌으로 자신을 회상할 수 있으니, 참 아름다운 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8/68/cover150/3262430961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29835536X</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욕망 앞에 망설이지 않을 자유 - [벨아미]</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494870</link><pubDate>Tue, 13 Mar 2012 14: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4948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230&TPaperId=54948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69/8/coveroff/89374622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230&TPaperId=54948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벨아미</a><br/>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09월<br/></td></tr></table><br/>조르주 뒤루아는 다행히도 여자가 아니다. 모파상은 &lt;목걸이&gt;, &lt;여자의 일생&gt;&nbsp;등으로 유명한데, 대부분이 그렇듯 학창시절 읽는 세계문학전집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즈음 읽은 것들은 줄거리나 교훈 보다는 배경과 이미지로 기억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모파상의 것은 포우와 같이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 스타일이 아니었다. 여러번 말했듯, 나는 소재나 주제보다 문체에 더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lt;벨아미&gt;를 읽게 된 건 단연코 내세울 만한 이유가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은 접어두고 나는 이 작품이 매우 맘에 든다. 다만, 뒤루아가 여자였다면 만인의 여자들이 재수없어할 부류였다는 것만은 명확히 알겠다. 나는 이런 여자들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매우 싫다. 대신 나라면 엮여서 감수하는 쪽보다는 다가가지 않고 무시하는 편을 택하겠다. 그래왔고 또&nbsp;그럴 것이다. 가진 걸 휘두르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 겉으로는 명쾌한 척 하지만 뒤에서 온갖 수작 부리는 이들, 알고보면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가능한 많은 일들 앞에서 자기논리는 명료하고 남의 것은 그 반대라는 식으로 일갈하는 이들. 무엇보다도 내 욕망, 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주는 피해를 정당화하려는 이들. 말하지 않는다 해서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 것처럼.
&nbsp;
처음에 벨아미-이는 나중에 뒤루아가 얻게 되는&nbsp;별명이다-는 평소 너무나도 경멸하고 싶은 부류라서 읽으면서 또는 읽고나서 그에게 동화되고 이해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여전히&nbsp;욕망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원한다는 것과 원하는 것을 가지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적어도 그 반대인 것보다는. 
&nbsp;
벨아미는 전직 하사관이었지만 지금은 그저그런 철도회사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남자다. 군대에서 알았던 신문기자 친구 포레스티에를 만나면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욕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짧은 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옮긴이는 내가 놓친 부분을 얘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뒤루아에게는 단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nbsp;
19세기 중후반 파리의 상류 사회는 퇴폐와 자유, 향락, 불륜 혹은 이 모든 것들이 넘실대는 막&nbsp;걷힌 장이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다 같이 미쳐있으면 오히려 제 정신인 보통 사람이 이상해보이는 것처럼 경계를 넘어있는 시대였다. 몰라도 아는 척만 하면 되고, '욕망'이 그 어떤 도덕적 가치와 의미보다 상위에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종종 서로를 속였고, 자신도 속였다.
&nbsp;

"누구나 그 이상을 알진 못하지. 궁지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스무 명가량의 멍청이들은 예외지만 말일세. 강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무식하다는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네. 교묘하게 처신해서 어려움에서 빠져나오고 장애물은 피해서 돌아가고 그 나머지 모르는 것들은 사전을 이용해서 남의 눈을 속이는 거지. 인간이란 거위처럼 어리석고 잉어처럼 무식한 법이네." (p.18)
&nbsp;
무대는 활짝 열려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닫을 마음이라곤 없었다. 벨아미는 친구로부터 신문사 영입제의를 받고-정확히는 기사를 써보겠냐는 제의-그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면서 국회의원이자 신문사 사장 왈테르 가족을 만나 그 자리에서 알제리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면서 처음으로 모두의 시선을 끌게 된다. 특히 포레스티에의 아내 마들렌이 소개한 먼 친척 마렐 부인이 이 날부터 자기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자신의 외모와 말투와 대화방식이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한 마디로 자신이 먹힌다는 사실을 안 것-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빳빳하게 온 사교장을 누빈다.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반하는 데는 때로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번드르르한 외모와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 자기에게 호감이 있다는 듯 살짝 다가가면서도 튕기는 태도. 무엇보다 빨리 이것들을 깨달은 벨아미였다. 그의 깨달음이 머지않아&nbsp;모든 이의 희극과 비극을 양성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벨아미를 응원할 것인지, 만류할 것인지. 전자를 선택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지만. 끌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씁쓸한 그의 성공에 박수치며 이건 아니야, 라고 외쳐도 그때는 이미 늦다.
&nbsp;
&nbsp;
여기서 이 노래를 떠올렸다. 나는, 뜬금없게도.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 말했고, 몇 번이나 페이퍼에 등장시키고, 얼마 전에는 무려 현빈이 부르는 것도 올렸던, 바로 그 노래.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 이 곡을 떠올리면 아무 것 없어도 밤은 언제나 완벽해진다. 
&nbsp; 

&nbsp;

접힌 부분 펼치기 ▼ 


It's late in the evening <BR>: 늦은 저녁입니다 <BR><BR>She's wondering what clothes to wear <BR>: 그녀는 무슨 옷을 입을까 망설입니다. <BR><BR>She puts on her make-up and brushed her long blonde hair <BR>: 화장을 하고 긴 금발머리를 빗어 내립니다 <BR><BR>And then she asks me "Do I look all right?" <BR>: 그리고 내게 묻지요 "나 괜찮아 보여요?" <BR><BR>And I say "Yes, you look Wonderful tonight." <BR>: 나는 대답합니다. "그래요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BR><BR>We go to a party and everyone turns to see <BR>: 우리는 파티에 나갑니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고 <BR><BR>This beautiful lady who's walking around with me <BR>: 나와 함께 춤추는 이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지요 <BR><BR>And then she asks me "Do you feel all right?" <BR>: 그녀는 나에게 묻습니다 "기분 좋아요?" <BR><BR>And I say "Yes, I feel Wonderful tonight." <BR>: 나는 대답하지요 "그래요 오늘 밤 난 정말 황홀해요" <BR><BR>I feel wonderful because I see the love light In your eyes <BR>: 나는 정말 황홀하다오 그대 눈 속에서 사랑의 빛을 바라볼 수 있기에 <BR><BR>And the wonder of it all is that you just don't realize How much I love you <BR>: 그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대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BR><BR><BR>It's time to go home now <BR>: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BR><BR>And I've got an aching head so I give her the car keys <BR>: 나는 머리가 아파서 그녀에게 차 열쇠를 건네 줍니다 <BR><BR>She helps me to bed and then I tell her as I turn out the light <BR>: 그녀는 나를 침대 위에 누이고 나는 불을 끄면서 그녀에게 말합니다. <BR><BR>I say "My darling, You are wonderful tonight" <BR>: 내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BR><BR>Oh my darling, you are wonderful tonight. <BR>: 오 나의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nbsp;&nbsp;
펼친 부분 접기 ▲
&nbsp;
&nbsp;
&nbsp;
이 노래를 처음 듣고 가사를 찾아봤을 땐, 이 감미로운 가사가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스토리를 알려줘서, 확장시켜 소설을 지어냈다.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좋다. 파티에 가려고 제일 예쁜 드레스를 꺼내 입은 여자가 자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분. "나&nbsp;괜찮아 보여요?" 
&nbsp;
하나 더 있다. 
&nbsp;
파티에서 실컷 즐기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술 탓인지 살짝 어지럼증을 느끼는 남자가 여자에게 차 열쇠를 건네주고, 집에 도착해서 남자를 부축해 침대에 부드럽게 눕혀주는 여자.&nbsp;남자가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불을 끄고 여자도 그 곁에 눕는 부분. 
&nbsp;
사실, "내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라는 부분에서는 그다지 설레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리고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미국에 가고 싶었다. 사치와 화려함이 뒤죽박죽된 파티에 초대받고 싶었다. 허영으로 똘똘 뭉친 &lt;가십걸&gt;의 주인공들처럼이라도 상관 없었다. 거기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랑하는 상대를 가지고픈 욕망, 에만 끌린다. 처음에는 꿈도 얘기했지만 점점 사랑하는 대상과 경제력을 얻을 기회만 호시탐탐 넘본다. 때때로 자조하며 짐승도 한낱 지조는 지키는데, 하면서도 계속 본다. 재밌으니까. &lt;파리의 연인&gt;처럼 파리에서의 파티도 좋을 것 같고, 무도회도 좋을 것 같고, &lt;오만과 편견&gt;의 영국풍 사교계도 상관 없었다. 나는 그저 파티면 되었다. 실제 나는 파티의 분주함이나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기웃거리는 것 등을 즐기지는 않는데도.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술집 보다 광장을 좀 더 좋아하는 게 흠이라면 흠. 
&nbsp;
&nbsp;
&nbsp;
어쨌든, 이 남자 좀 재수없는데 한편으로는 멋지다. 자기가 얼만큼 유혹할 수 있는지, 자기가 무얼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남자라.. 역시 나는 다시 생각해도 그 반대로 서툴게 다가오는 남자가 훨씬&nbsp;낫지만&nbsp;벨아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재수없어할 수는 있지만 미워지지는 않는다. 남녀 관계에 있어 계산적일 수 있음은 여러가지 의미로 볼 때 서로 다른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밀당이 필요하고, 밀당이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맞다고 보지만 자기의 가치와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고 느낀다. 벨아미는 그렇게 한다. 그리고 자기가 나쁘다는 의식조차 없다. 잘못하고 있다는&nbsp;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벨아미의 입을 빌어서는 절대 선과 악, 옳고 그름, 가능과 불가능 같은 것들이 말해지지 않는다. 그 지점이 바로 문학으로서의 예술로 기능하고, 나는 이게 굉장히 마음에 든다. 모파상이 그려낸 벨아미가 좋아진 이유다. 그럼 이제부터는 모파상이 한 짓들을 낱낱히 고하고 분석해볼까, 라고 하기에 뭐 있을까. 사교계에서 자기 장점이 어필됨을 알았으니 점차 자기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날개를 찾아 동분서주하겠지. 뻔한 거 아닌가.
&nbsp;
&lt;벨아미&gt;는 두 가지만 이해하면 된다. 선악의 경계를 흔들며 사교계에서 귀부인들의 마음을 훔치며 고급 정보를 얻으면서 언론사의 고지위까지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는 욕망의 화신인 남자의 모습과&nbsp;배경으로 등장하지만 프랑스가 가장 타락한 시기의 언론계를 상세히 묘사함으로서 프랑스 언론역사의 발전과정을 되짚어보는 것. 모파상의 사실적 문학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처럼 문체에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nbsp;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에밀 졸라를 잇는&nbsp;프랑스 19세기&nbsp;작가이자, 스승 플로베르를 통해&nbsp;콩쿠르 형제, 알퐁스 도데, 투르게네프 등과 교류했던 모파상은 이들보다 더 사실적 묘사를 통해 철저히 묘사로만 파리의 상류사회와 사교계의 귀족부인들을 그려낸다. 서정성 있는 문체를 썼던 알퐁스 도데나 투르게네프와는 짐짓 다른 모습이다. 
&nbsp;

그러자 지껄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자기에게 모든 주의를 끌고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대단치 않은 말 하나하나까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음미하면서 듣도록 하는 저 말재주가 탁월한 남자들처럼 칭찬을 받고 싶었다. (p.42)
&nbsp;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본능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인정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누구나 두 가지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아슬아슬 넘나드는 불편한 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비난 당하는 일은 면하기 위해 욕망과 인정 사이에서 간신히 균형 맞추며 살아간다. 이제 벨아미처럼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대도, 무시되는 시대도 아니다. 오늘의 선이 내일의 악이 될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돌이켜보면 온라인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타인에게 이끌려가기 쉬운가, 나는 얼마나 쉽게 타인을 이해한다 하거나 판단하는가. 이왕이면 끌려가는 것 보다는&nbsp;서로를 통해 하나로 모아지는 관계가 좋다. 하지만 나를 강조함으로서 타인을 간과하는 무심한 사람인 적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내 무관심을 사과하고, 더 많이 애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나를 부탁하는 날이다. 내가 벨아미인 것도 당신이 벨아미인 것도 싫으니, 부디 서로 맞춰가자고 제안하는 날이다. 나는 판단이&nbsp;필요한 게&nbsp;아니라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 그리고 나를 인정하는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nbsp;어쩌면 벨아미도 그랬던 게 아닐까. 반대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상처받아 여자와 권모술수를 이용해서라도 왕의 자리에 한 번쯤 서서 호령하고 싶었을 뿐이지 않을까.
&nbsp;
다 갖기 위해선 다 걸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는 한 남자의 상류층 편입기. 모파상은 벨아미를 통해 당시 파리의 속은 텅 비었음에도 겉만 꾸며대는 상류사회의 구멍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69/8/cover150/893746223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230</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최후의 왕 - [농담 (반양장)]</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484051</link><pubDate>Fri, 09 Mar 2012 17: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4840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297&TPaperId=548405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off/89374602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297&TPaperId=54840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농담 (반양장)</a><br/>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06월<br/></td></tr></table><br/>그는 늘 내게 어려웠다. &lt;농담&gt;을 잘 안 읽히면 농담으로 치부하고서라도 끝까지 읽어내겠다, 하는 오기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nbsp;다른 두 작품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만든 기회였다. 하나는&nbsp;읽다 말았다를 반복했고 하나는 책장에 그저 꽂히기만 했다. 나는 체코에 무궁한 호기심이 있었다. 이 나라는 유럽에 있지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도연과 김주혁의 &lt;프라하의 연인&gt;을 나만 그 전작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데 그건 파리는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프라하는 절망스럽고 슬퍼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풍경에 나는 늘 울고 싶었다. 그런 우울이 뚝뚝 떨어지는 도시에서 난 작가라면, 나도 모르는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해서 끊임없이 쿤데라 옆을 서성였는지도 모른다.
&nbsp;
나름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nbsp;생각과 달리 잡는 순간부터 너무 잘 읽혀서 놀라웠다. 여자들은 군대 얘기를 싫어한다지만 내가 겪지 못할 일이라 그것도 너무 재밌다. 물론 수감생활도, 탄광생활도 루드빅에게는 비극이지만 내게는 활력. 그런데 이렇게 리뷰를 써도 될까. 이 놀랍고 경이롭기만한 위대한 농담을 나는 반의 반이나마 이해하긴 한 걸까. 쿤데라의 국가가 낯설고 이질적인 만큼 작품 속 인물과 배경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이름 달린 몇 명의 인물들로부터 각각 반추되는 루드빅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삶의 다양성에 얽힌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설명하게 한다. 그 와중에 쿤데라의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온다. 잘 읽히면서도 어렵다.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 같은&nbsp;용어에 얽힌 지식들을 나는 단편적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만 알고 있다. 처음에는&nbsp;불안하게 시작했다. 지금은 그것들을 모르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굵게 관통하는 이 작품의&nbsp;줄기는 결국 한 인간의 정체성, 존재의 농담일텐데 그것을 체코의 공산화 시기의 혁명 이후로 배경을 맞추어 전개해나간다. 이데올로기, 사랑, 정체성, 이것들이 한 선으로 연결된다. 남자의 대학시절은 공산주의 운동으로 점철된 지식터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트로츠키 옹호자를&nbsp;처치하려는 시대였다. 당시 체코는 막 공산주의화 되려 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드빅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 이 소설은 진행된다. 한 사람의 우스갯 장난이 궁극적으로 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지게 하는지. 
&nbsp;
학창시절, 모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루드빅이 여자친구와의 장난스런 편지에 쓴 트로츠키 만세! 라는 글 하나 때문에 강제로 입대하게 된다. 그로인해 그가 꿈꿨던 모든 것과 가지고 있었던 생각, 사상, 친구, 지식들까지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당해 부대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모든 것이 착오로 인한 것이며, 진실을 말하기만 하면 받아들여질 것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한때의 잘못을 쉽사리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으며, 바꿀 힘 같은 건 애초 자기에게 없었다는 것을 차차 알아간다. 그는 무언가를 희망했던 이들이 그것을 포기하거나 버려가는 과정의 3단계를 차례로 밟는다. 오랜시간 공을 들여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nbsp;

나는 그 생각을 하기 싫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오늘날 자신들이 신봉하던 시대의 움직임에 의해 나처럼 거부당하고 떠밀려나간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떠벌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추방된 자라는 내 운명을 나 역시 영웅화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자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검정 표지 속에 보내지게 된 것이, 내가 용감했기 때문도 아니고, 투쟁을 했기 때문도 아니며,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에 대항하여 싸웠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냉정하게 상기해야만 했다. 그렇다, 나의 전락에는 그 어떤 진짜 드라마도 선행하지 않았고, 나는 내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상에 가까웠으며, 그러므로 (괴로움, 깊은 슬픔, 실패 등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내 이야기를 가지고 무언가 대단한 척 내세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p.173)
&nbsp;
그는 오해로 얼룩진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위협받는 동안 운명처럼 만났던 루치에와의 만남이 환상보다 한없이 처져버리자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이제 그에게는 원래의 것도, 돌아갈 곳도, 밝혀내야 할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는 옷을 입고 여자는 홀딱 벗은 채로 한 방에 있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의 섹스에 대한 환상은 올곧고 순결하여 새침하기까지 한 루치에의 옷을 단 한 번도 벗기지 못함으로서, 그녀에게 화를 내고 외면하고 윽박지르게 되면서 그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과 싸우던 틈을 타, 루치에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림으로서 끝난다. 사랑하는 남녀에게 있어, 섹스의 농담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너무 솔직하면 떠나버리고, 너무 가리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화를 유발하게 된다. 
&nbsp;
내가 딱 하나 경이롭다고 생각했던 &lt;농담&gt;의 구절은 이것이다. 쿤데라가 루드빅의 입을 빌려, 민속 예술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는 배경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열변했던 부분. 이 단락이 대단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체제라는 것을 이토록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대단해서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서.
&nbsp;

예전의 농촌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마을의 한 해 행사는 이런저런 의식들로 이어졌다. 민속 예술은 이러한 의식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들판의 농가 여인에게 영감이 찾아오면 그 입술에서 곧 샘물처럼 노래가 샘솟아 나온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민속 노래는 지적인 시와는 다르게 생겨난다. 시인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자기에게만 있는 유일한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하여 시를 쓴다. 그러나 민속 노래를 통해서 사람들은 남과 구별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섞이려고 한다. 그것은 종유석처럼 형성된다. 새로운 모티프, 새로운 변형들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져 덮이면서 민속 노래가 형성되는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마다 새로 어떤 요소를 덧붙이는 가운데 그 노래는 대대로 전해 내려간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들을 지은 사람은 여러 명인데, 그들은 모두 자기가 한 공헌 뒤로 겸허하게 사라져버렸다. 그 어떤 민속 노래도 혼자서 존재하지는 못했다. 제각기 자기 기능이 있었다. (중략)
&nbsp;
자본주의는 이러한 집단 생활을 파괴했다. 민속 예술은 그래서 자신의 기반, 존재 이유,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사람이 타인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그것을 부활시키려 해보아야 아무 소용 없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이런 고립된 삶의 올가미로부터 해방시켜 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집단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동일한 공동의 이익으로 연대하여. 그들의 사적인 삶은 공적인 삶과 일체를 이룰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의식들로 하여 서로 결합될 것이다. (중략)
&nbsp;
어느 곳에서든 민중의 예술은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제 이해하겠는가? (pp.202-203)
&nbsp;
하지만 한 마디 농담으로 동무들에게 내쳐진 그는 자기를 사실상 망가뜨린 친구에게 복수심을 품고 그의 아내 헬레나에게 접근한다. 단지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점령한다면 친구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만 생각해서다. 그에게 여자의 본질은 이런 것.
&nbsp;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lt;나에게&gt;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lt;텍스트&gt;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p.232)
&nbsp;
처음에 바란 것은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 복수를 실행에 옮기며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 행동을 타당화하려는 것에 불과한.
&nbsp;

올곧고 투명하다. 그런데 그게 어떤 거죠? 있는 그대로 살고, 자기가 원하는 것, 욕망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러면 다 아닌가요. 사람들은 규범의 노예들이에요. 누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말해 주면 그렇게 하려고 애쓸 뿐, 그것이 뭔지 자신들이 무엇인지 절대 알게 되지 못하죠. 대번에 그들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과감히 자기 자신이고자 해야 해요. 헬레나, 결혼을 하셨다고 해도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마음에 들었고 당신을 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어떻게 다르게 할 수도 없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p.259)
&nbsp;
돌고돌아 그는 인간이란 '욕망'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농담으로 내뱉은 말을 책임지기 위해 원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제자리에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그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쿤데라의 말대로 옳은 것과 나쁜 것,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차이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본질'에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조차도.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 또한 가장 억압받고 왜곡되고 엇나가기만 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아니던가. 그가 그 한 마디에 이끌려 이 먼 곳까지 떠밀려 온 것처럼. 지금 헬레나를 통해 실현하려는 바로 그 복수처럼.
&nbsp;
겉으로 사랑 이야기, 더 들어가 꼬여버린 인생에 대한 반추 같은 거지만 체코가 낯선 나라다보니, 배경과 체제 이해가 자동적으로 되지는 않는다. 간신히 이해해보지만 온전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의 체코 공화국이 되기까지의 과정 이해와 역사적 지식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그것 없이도 &lt;농담&gt;은 충분히 유머와 풍자와 조롱 조의 소설로 읽히지만, 알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소설은 타인의 자료조사와 지식창출에 기댄 기본적으로는 아무리 사실적이라도 '픽션'이다. 그래서 소설은 이해를 도와주지만 소설적 이해는 결코 실제와 같지 않다. 공부가 필요하다.
&nbsp;

접힌 부분 펼치기 ▼&nbsp;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nbsp;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社會主義 共和國, 체코어, 슬로바키아어: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은 체코슬로바키아의 1960년부터 벨벳 혁명 직후인 1990년초까지의 공식 국가 명칭이다.
&nbsp;
1943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망명 정치가 에드바르트 베네시 (Edvard Beneš)는 소련의 외교 정책에 무조건 따르라는 스탈린의 요구에 응하여, 베네시 선언에 따라 백만여 명이 넘는 주데텐의 독일인을 "부자"로 치부하여 추방하고, 헝가리인들도 쫓아냈다.[1]:45 베네시는 스탈린과 군사ㆍ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전후 협조"를 약속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를 향한 인민의 길"에 따라 대지주의 재산, 공장, 광산, 제강소, 은행을 몰수하여 국유화하였다.[1]:45 베네시는 러시아의 하수인은 아니었으며, 그의 계획에서는 다른 동구권 국가의 몇몇 내정 개혁과 다른 점이 있었으나, 스탈린은 베네시가 재산 몰수를 실시했고, 여타 소비에트 블록 나라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자 세력이 강하다는 점에도 만족하여 그를 반대하지 않았다.[1]:45
&nbsp;
1945년 3월 베네시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1]:79 소련 내무인민위원회의 질문 목록에 답변한 뒤 베네시는 주데텐에 사는 이백 만 여명의 독일인과 400,000명에서 600,000명 사이의 헝가리인을 국외로 퇴거시키고, 붉은 군대와 긴밀히 공조하는 강력한 군대를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소련 정부를 기쁘게 하였다.[1]:79 1945년 4월 세 개의 사회주의 정당이 지배하는 거국 연정인 제3공화국이 창설되었다. 공산당의 힘이 강했고(이들은 300석 가운데 114석을 점하였다) 베네시가 소련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다른 동구권 국가와 달리 소련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블록 정치를 강제하거나 "믿을 만한" 간부를 최고위직에 앉히도록 요구하지 않았으며, 행정부과 입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예전대로 하던 구조를 계속 유지하였다.[1]:86 그러나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1946년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자신의 입지를 펼치지 않는데 처음으로 실망하였다.[1]:152 이들은 지방 정부를 공산당이 장악한 새로이 구성된 위원회로 대체하여 기존의 행정 실권을 빼앗았으나, 군대내에 "부르주아"의 영향을 제거하거나 실업가와 대지주와 재산을 몰수하지는 못하였다.[1]:152
&nbsp;
체코슬로바키아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처음부터 소비에트 블록의 전형적인 정치ㆍ사회ㆍ경제 체제를 갖추지 못했으므로 소련 당국은 이를 문제시하게 되었다.[1]:108~9 "애국 전선" 바깥의 세력들은 정부에서 배제되었으나, 이들은 아직 건재하였다.[1]:152 붉은 군대가 점령한 나라들과 달리, 체코슬로바키아에는 공산당이 이미 주도적인 역할을 주장할 수 있어서 소련의 군정 당국이 없었다.[1]:152
&nbsp;
소련 당국은 다가오는 1948년 선거에서 공산주의자가 승리하리란 기대를 잃어갔다.[1]:110 1947년 5월에 크렘린의 어느 보고서에서는 서방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반동적 요소"가 강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1]:110 체코슬로바키아가 마셜 계획의 자금을 얻을 것을 잠시 고려하고,[1]:138 그리하여 1947년 9월 시클라르스카 포렝바에서 코민포름이 여러 공산당을 비난하면서, 루돌프 슬란스키 (Rudolf Slánský) 는 국가 안보국(StB)이 당내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자를 숙청하여 권력을 잡을 계획으로 프라하에 돌아왔다.[2]:134 1948년 2월 초에 공산주의자인 내무 장관 바츨라프 노세크 (Václav Nosek) 는 국가 경찰대에 남은 비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려 하는 월권 행위를 하였다.[3]:370 소련의 발레리안 조린 (Valerian Zorin) 대사는 쿠데타를 준비하기 위하여 프라하에 도착하였으며, 비공산주의자가 장관직에 오르고 군대가 병영에서 출금 조치되자 정변을 일으켰다.[3]:371 붉은 군대에 복무하는 조린 (Zorin) 과 함께 공산주의자 "행동 위원회"와 노동조합 민병대가 이내 조직되어 무장하고, 반공주의자를 숙청할 준비를 갖추었다. 베네시는 내전이 일어나고 소련이 간섭할 것을 두려워하여 1948년 2월 25일에 항복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이 장악한 정부를 인명하였으며, 그 지도자는 스탈린주의자인 클레멘트 고트발트 (Klement Gottwald) 로, 이틀 뒤에 총리직 취임에 선서하여 독재를 이끌었다.[3]:370~371 [2]:134~5 [4]:15 유일하게 고위직에 있던 비공산주의자인 얀 마사리크 (Jan Masaryk) 는 2주 뒤에 시체로 발견되었다.[2]:135 소련이 지원한 쿠데타는 대놓고 잔인하게 행동하자[5] 서방 국가들은 이전의 어떤 사건보다도 충격을 받았으며, 일시적으로 전쟁 자세를 취하여, 미국 의회내에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마셜 계획에 반대하던 소수의 사람들조차 찬성으로 돌아섰다.[6]:19
&nbsp;
1948년 2월 쿠데타가 일어나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새 헌법이 발효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이라는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 후 공산주의 체제의 안정을 위해 1960년 신헌법을 채택, 시행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의 상징과 마찬가지로 1960년 7월 11일에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국호로 바꾸었으며 1990년 벨벳 혁명 때까지 유지되었다.
&nbsp;
1969년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갖는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두 구성공화국이으로 이루어진 연방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행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휩쓴 개혁, 개방 물결 속에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다당제가 도입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1990년 4월 1일 공식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칭은 사라졌다.
&nbsp;
한편, 이후의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은 1992년,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여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소멸하고 두 독립국인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나누어졌다.
&nbsp;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펼친 부분 접기 ▲
&nbsp;
&nbsp;
아씨.. 공부.. 하지 말 걸 그랬어..( '') 하루에 한 문단씩 읽어야겠어..( '')
&nbsp;
루드빅은 자신을 이렇게 불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파벨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굴복시켜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그녀를 정복했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헬레나와 제마넥의 오래된 관계, 과거에 묶인 사이일 뿐 현재의 둘 사이는 애틋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음을. 한때 증오하는 그 남자의 모든 것인 여자였지만 이제 그에게 있어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 여자를 정복함으로서 그에게 복수하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과 이제는 그가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바로 그 실수로 썼던 엽서 속 편지, '트로츠키 만세'라는 농담에 길들여져버렸음을. 그는 돌이킬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 자신의 욕망 앞에 끝내 꼬리 내리지 못한 채 흐느끼다 소리없이 안개처럼 떠나버렸던 루치에를 다시 만나게 된 지금이 바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할 계기인가.
&nbsp;
그가 헬레나를, 여자를 다루는 방식은 남녀의 차이를 관통하는 사유인 동시에, 쿤데라의 의식 속 여자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nbsp;

여자의 생각을 다루는 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이성으로 여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아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여자의 의견을 반박한다거나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이미지(원칙이나 이상, 신념 같은 것)을 파악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녀의 행동과 그 이미지가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궤변을 동원하여)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p.259)
&nbsp;
그는 친구 코스트카를 기다리며 루치에의 소식을 애타게 갈망한다. 코스트카에게 듣게 된 루치에의 비밀과 자기를 떠난 이후의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는 한 사람이 가졌던 세월과 시간, 비밀에 대해 떠올리며 이제 그녀가 완전히 저를 떠났다는 것을 느낀다. 제마넥에게 복수하려 헬레나에게 접근했던 이유, 그 시작이 되려 굴욕적으로 자신을 사로잡는 걸 느끼며 루드빅은 괴로워한다.
&nbsp;

내가 복수하고자 했던 나의 과거, 그러나 여기서 마주쳤는데도 마치 나를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린 나의 과거, 그 과거 전체가 나에게 보여준 것과 동일한 그런 차가운 무관심.
&nbsp;
나는 굴욕과 수치로 숨이 막혀왔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헬레나와 제마넥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그제와 어제와 오늘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마지막 흔적까지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p.385)
&nbsp;
그는 겨우 과거를, 이제 나에게 밖에는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못하는 과거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헬레나에게도 자신의 모든 꼼수와 계획적 언행을 털어놓는다. 승리의 문턱에서,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이전부터 루드빅은 과거를 원망하고, 과거를 향해 복수하려는 이 모든 계획들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쭉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은 채 질주함으로서 마지막에서 맞닥뜨린 건 결국 패배와 좌절 그리고 자기 바닥을 확인하는 일 뿐이었다. 그는 절망한다. 세상에 나서 제 바닥을 스스로 자초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nbsp;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15년 사이의 기나긴 일들보다 더 폭풍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루드빅은 야로슬라브의 연주 악단에 참여하여 여지껏 겪었던 일, 저질렀던 잘못, 존재와 영혼의 상관관계, 처음에는 고쳐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잊기로 한 부질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또 잊어간다. 역사 속에서 혹은 개인의 일생 안에서 생성되는 존재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nbsp;어떤 인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던져준 채로. 다른 말로는 책임. 
&nbsp;
나는 비로소 루드빅 아니면 코스트카의 입으로만 과거, 현재를 드러내는 신비의 여인 루치에가 궁금했다. 존재의 가벼움, 영혼의 무거움, 현실의 영면화 등 쿤데라가 늘 드러내왔던 작품세계가 여기 &lt;농담&gt;을 지나치지 못한다. 여전히 이해불가에 어렵고 난해하고 나 자신이 별 것 또는 별 것 아니게 느껴지게 하는 이 모든 힘. 이미 있어왔던 것과 새로 생겨날 것에 대한 조화의 힘. 존재와 영혼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루드빅의 아니, 쿤데라의 모든 농담이 존재한다. 쿤데라는 읽고나서도 여전히 어렵다. 빛을 비추는 곳마다 어둡다. 기교가 아닌데 기교처럼 느껴지는 문체가 암담하면서도 아름답다. 삶의 지혜를 찾고싶다. 오래된 것을 무시하지 않고 새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갖고 싶다. 함부로 농담을 건네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당신에게 건넬 새로운 농담을 찾아보기로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150/893746029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297</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너를 통한 끊임없는 내 존재의 증명 - [사랑의 사막]</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459858</link><pubDate>Thu, 01 Mar 2012 1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4598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36198&TPaperId=54598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46/63/coveroff/89011361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36198&TPaperId=54598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의 사막</a><br/>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br/></td></tr></table><br/>프랑수아 모리아크(1885-1970)는 프랑스 보르도(거대 포도농장이 있어 와인 원산지로 유명한 곳) 출신으로 195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여 그의 작품들은 '레지스탕스 문학'으로도 분류된다. 법정 체험을 그린 &lt;테레즈 데케루&gt;(1927)가&nbsp;대표작이지만 읽기는 연대가 더 빠른 &lt;사랑의 사막&gt;(1925)으로 시작했다. 짧은 분량으로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nbsp;"그의 소설에 드러난 깊은 정신적 통찰, 그리고 인간 삶의 드라마를 관통하는 예술적 강렬함"을 이유로 노벨상을 수여한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에 걸맞는 압축된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다.&nbsp;
&nbsp;
모리아크는 보르도 지방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nbsp;모친의 영향으로 인간의 타락과 죄악, 인간 본연의 내적 갈등과 고통, 신의 은총 등을 통찰하는 이야기를&nbsp;아름답게 그려낸다. 스토리 보다는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고, 자유와 갈망의 수단으로 '사랑'과 '소통'을 택하여&nbsp;자기 존재를 새롭게 증명하기 위해 안달하는 주인공들을 만들어낸다. 
&nbsp;
그래서 &lt;사랑의 사막&gt;은 정확히는 자기 존재를 증명함으로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구를 두 남자가 같은 여인을 바라보며 얻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랑'으로 환원시킨다. 단조로운 이야기 속 빛나는 통찰과 돋보이는 문체. 두 남자는 어떤 파국을 맞게 될 것인가. 혹은 누가 행운아가 될 것인가.
&nbsp;

종종 레몽은 회상 속에서, 그해 여름의 무더위와 자신을 휩쓸었던 내면의 뜨거운 불을 혼동했다. (p.35)
&nbsp;
이야기는 어른이 된 레몽이 어느 술집에서 복수를 위해 기다리고 기다린 마리아와 우연히 마주치는&nbsp;것으로 시작한다.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곧이어 시대를 20년 전 그가 열일곱의 소년이었던 시절로&nbsp;되돌린다. 
&nbsp;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의사 아버지와 수다스럽고 경박한 어머니, 결혼한 누나와 매형, 예쁜 조카들과 함께 사는 레몽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지루하고 의미 없는 삶의 단면으로 느낀다. 학교에서 집, 집에서 학교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지만 학교는 돌벽으로&nbsp;둘러싸인 창살 없는 감옥처럼,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지루한 존재들로 다가올 뿐이다. 집에는 남편과 자식들 닦달하는 게 유일한 낙인(본인은 애정인 줄 앎) 어머니와 제 가족 살 길과 행복 외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누나 부부, 그저 우호적이기만 하면 부모 역할 다인&nbsp;줄로 아는 아버지 때문에 피곤함을 느낀다. 안팎 어느 곳에서도 인정 받지 못하는 레몽은 하물며 또래의 관심사인 '여자'나 '과시'에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방황한다.
&nbsp;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사랑을 위한 빈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다. (p.40)
&nbsp;
레몽의 어머니는 남편이 무뚝뚝하고 무관심하며 늘 한 걸음 뒤에 있는 듯한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그의 직업적 특성으로 이해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남편 쿠레주 박사와 아들 레몽이 자신이 제일 비난하는 이웃집 마리아에게 빠져있을 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 어쨌든 아버지와 아들,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각각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마리아 또한 마찬가지다. 
&nbsp;
그녀에게 사랑과 남자는 이러했을 뿐이지만.
&nbsp;

"저를 타락시킨 것은 가난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나쁜 무엇이에요. 근사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싶은, 혹은 다시 결혼해서 확실한 자리를 잡고 싶은 욕구 같은 것.. 현재 저를 라루셀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은, 치러야 할 전투 앞에서 도망치는 비겁함, 박한 월급으로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은 허영이에요." (p.73)
&nbsp;
그녀는 아들을 잃은&nbsp;슬픔을 달래려&nbsp;매일 묘지로 가는 여섯시 전차를&nbsp;타면서 열일곱의 레몽을 본다. 처음에는 침묵 속에 서로의 암묵적 존재를 인정하던 사이에서 점차 각자의 환상을 키워가다 비로소 한 인격체로서 서로를 대하면서 아찔한 혼란을 느낀다. 치료 명목하 집에 오던 쿠레주 박사가 관심을 표해온다는 것을 알고도&nbsp;철저히 무관심으로 응한&nbsp;그녀다. 칭송받는 인격에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마리아에게 그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남자일 뿐이다. 
&nbsp;
마리아는 더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즈음 레몽을 만나면서 자기 안에 다시 사랑의 불씨가 타오름을 느낀다. 그것은 강렬하고 강력하다. 들킬까 겁이 난 그녀는 처음으로 찾아와 함께 방안에 있게 된 그를 "혼자 있고 싶어요"란 말로 내치면서 훗날 그를 거칠고 정복에 열올리는 자존심 강한 남자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사실은 흔들리는 자신을 견디기 위해서였을 뿐이지만 레몽에게 그것은 평생에 걸쳐 극복해야 할 남성으로서 거절당한 트라우마로 남는다.
&nbsp;

당신은 한 여자의 가혹하고 혼란스러운 인생 속에 유일한 기쁨이었어요. 이번 겨울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 안에서, 저는 당신으로 인해 휴식할 수 있었지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그렇지만 당신이 보여준 그 영롱한 얼굴은, 내가 소유하길 갈망하는 영혼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당신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당신의 모든 불안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함께 헤쳐가는 것, 당신에게 친구, 어머니 그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 나는 그런 것을 꿈꿔 왔어요.. 그러나 마음대로 나 말고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답니다. 당신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 인해 타락한 공기를 마시게 될까 봐 겁이 나요.. (pp.139-140)
&nbsp;
쿠레주 박사와 그의 아들 레몽, 마리아. 세 사람은 상대를 사랑함으로서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 가장 상처 입힌다. 때로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인지 자기애인지 혼동된다. 쿠레주 박사는 자신의 본질적 비극을 넘어서야 한다는 걸 알고 체념함으로서 사랑 앞에 절망하고, 레몽은 드디어 닿을 뻔 했던 그녀에게 내쳐짐으로서 상처 입는다. 마리아는 그녀대로 금지된 사랑과 현실의 안락함 혹은 주위 시선을 저울질하다 레몽을 거절함으로서 현실에 안주한다. 셋의 사랑은 자기 것이 아닌 곳에 다다르기 위해 안간힘 쓰다 갈구하던 것을 갖지 못하고 다시 제 세상에 처박히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닮았다. 
&nbsp;
그래서 이 소설은 불륜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러브스토리를 빙자한 인간 본연의 자기탐구에 가닿는다. 인간은 고립되었고, 결국 고립된 자기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타인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발버둥 친다. 상상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하고 현실에 죄가 되지 않는다며 포기해버린 쿠레주 박사나 그녀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것을 알고 20년이 지난 후까지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레몽, 여전히 원래 남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안주하고 있는 마리아. 그들이 원한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랑이 고립된 자신을 꺼내줄 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믿었을까. 
&nbsp;

내가 꿈꾼 건 어떤 침묵이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침묵. 욕망이 태어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 안에 있는 욕망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통하는 침묵. 쓰다듬고 애무하는 모든 행위는 두 존재 사이의 간격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만약 두 존재가 너무나 가까워져, 둘 사이의 경계선이 흐려지고 혼동된다면.. 그때는 결합이, 수치심을 동반하는 이 포옹이 필요 없어지지 않을까?.. (p.169)
&nbsp;
모든 욕망이 전율했다. 욕망과 쓰다듬고 애무하는 모든 행위, 포옹이란 이름은&nbsp;존재하는 두 존재 사이의 간격을 전제로 한다는 말에서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나는 껴안아야 했다. 사랑은 바로 이 순간의 감정과 흐느낌과 욕망 뿐이니까.&nbsp;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사랑의 무의미, 몰가치, 허무를 가장 잘 알고있는 여자가 아니었을까. 내 존재가 사라지면 타인을 원하는 마음도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자. 그런 여자가 먹고 사는 고단함에 지쳐 꺾인 날개로 사랑, 그러니까 욕망하지 않는 남자의 부유함 뒤에 숨어 수치심으로 살아간다. 
&nbsp;
우리는 각자의 섬일까. 
나를 몰라서 나를 알기 위해 자꾸만 너를 괴롭히는 게 아닐까. 
내게 있어, 널 괴롭히거나 네게 괴롭힘 당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nbsp;
이쯤했을 때, 난 더이상 그들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이 소설은 그저그런 단순한 러브 스토리나 불륜의 소재로 빚은 의미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 주인공의 결말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nbsp;일찍이 알고 있었다. 다들 불꽃처럼 정열적이고 반짝거리는 삶을 꿈꾸지만 애초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nbsp;
사랑과 존재와 삶은 허구도 아니고 허무도 아니지만 그것들에게 다가가는 감정과 욕망은 허구이자 허무일 뿐이었다. 이전 사랑에 속으면서도 또 시작하는. 끝에 데여봤으면서도 또 끝낼 수밖에 없는. 당신이 아니라 나를 알기 위해 자꾸만 다가가는. 불꽃 같고 굴레 같고 지옥 같지만 때때로 황홀한 삶 그리고 사랑. 그리고 나의 삶. 존재함으로서 완벽해지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욕망은 타오를 때라야 아름다운 것이다. 나를 알기 위한 여정이 당신에게로 닿는 일 전부라면 아무리 잔혹하고 비극적이더라도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 나를 향해 오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nbsp;
모든 것은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슬프게도. 좀 더 오랜시간 또렷한 존재로 각인되고자 하는 방법이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거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감으로서 박제되는 일 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46/63/cover150/890113619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36198</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내 전부 위에 당신의 전부를 놓아요.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415502</link><pubDate>Sat, 11 Feb 2012 0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4155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0972&TPaperId=541550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7/93/coveroff/89374809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0972&TPaperId=54155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a><br/>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08월<br/></td></tr></table><br/>아무리 넓은 지면이 주어져도 못 쓰는 건 못 쓰는 것이다. 책이 아무리 재밌어도 못 쓰는 건 못 쓰는 것이다. 아무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어려운 책을&nbsp;읽었다는 티를 엄청 내고 싶어도 못 쓰는 건 못 쓰는 것이다. 읽는 일과 쓰는 일은&nbsp;명확하게도 따로 존재해서 나는 잘 읽는 사람이&nbsp;반드시 잘 쓴다고는&nbsp;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송강호가 영화를 잘 안 본다고 말하는 거나 원작이 있는 작품에 캐스팅 된 배우에게 감독이 일부러 원작을 보지 말라고 주문하는 경우와도 같다. 읽는 일과 쓰는 일은 너무나 또렷하게 별개라 나는 종종 당황스럽다. 읽어내는 일과 별개로 쓰고 싶은 걸 쓰지 못할 때 자신에게 답답해진다. 글을 쓰고 싶잖아. 사실 글을 쓰고 싶어 담고 또 담아놓는 거잖아. 
&nbsp;
구혜선이 첫 소설을 냈을 때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왔고 그걸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놓고 종종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보기에도 앙증맞고 귀여운데 소위 전문 작가에게 좀 어설퍼 보여도 배우,감독,소설을 다 만들어내는 그녀는 놀랍다.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세상에, 어설프게 해놓고 어설픈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잘한다 하면 진짜 잘하는 줄로 아는 멍청한 사람보다는 하나하나 도전하는 게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욕심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열 살, 열 다섯 살, 스무살, 스물 셋에 쓴 일기 속 내가 전부 다르다고.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그래서 그때의 일기를 뒤적이면 지금은 떠올릴 수 없는 그 나이 또래의 캐릭터가 나오고, 그렇게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몰랐던 것도 아닌데 새삼 세월과 시간을 간직한다는 것은 추억을 저장하는 것 외의 역할이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내 오래된 일기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도 없었다. 아쉬워하기도 전에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증명들을 다시 찾아내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nbsp;

서로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얼 하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일까? (p.148)
&nbsp;
&lt;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gt;을 이야기하면서&nbsp;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산산이 부서져내린 '9.11 테러'를 빼놓을 수 없다.&nbsp;아홉 살 소년 오스카는 바로 그 역사적 사고로 아빠를 잃는다. 기약 없이 떠나버린 사람으로&nbsp;남은 사람을 괴롭히는 영원한 화두는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것과 잃어버린 사람의 마지막을 두 눈으로 봐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무엇으로도 누를 수 없는 북받치는 공허감일 것이다. 심지어 아홉 살 꼬마 오스카에게도 슬픔은 온전하다. 오스카는 매일 아빠가 보고싶고 그립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아빠의 빈자리는 세상 전부일 만큼 커서 아무리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보려 해도 슬픔이 옷자락을 놔주지 않는다. 몇 번이나 집에 전화를 걸어왔는데 수화기를 들지 못한&nbsp;사실이 자꾸만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이걸 알면 엄마와 할머니가 더 슬퍼할텐데 어떡하지. 결국 오스카는&nbsp;엄마와 할머니에게 숨긴 채 혼자만 아빠의 마지막 목소리를 간직하기로&nbsp;한 채 옷장 안에 꽁꽁 숨긴다. 그리고 비로소 아빠의 '마지막'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소설은&nbsp;아빠의 아빠(할아버지)가 겪은&nbsp;오래된 사랑 이야기와 전쟁의 상흔 그리고 오스카의 아빠 찾기가 똑같은 농도로 혹은 어느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 더 뜨겁고 뭉클하게 진행된다. 잘 버무려진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처럼 황홀하기까지 해서 읽기를 멈출 수 없을만큼.
&nbsp;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내 마음도 그녀를 따라갔어, 하지만 나는 내 껍질과 함께 남겨졌어, 그녀를 다시 만나야 했어, 왜 그래야만 하는지 나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그 욕망이 아름다웠던 거야,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잘못이 있을 수는 없는 거란다. (p.160)
&nbsp;
지드의 &lt;좁은 문&gt;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구절은 아무도 가지 못하는 자신만의 길 혹은 누구도 이르지 못한 어렵고 중요한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었다. 헤세의 &lt;데미안&gt;에서 '알을 깨고 나오라'는 말은 한낱 작은 알갱이 같은 존재에서 좀 더 커지기 위해 혹은 존재의 가벼움을 인식하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라는 말이기도 했다. 나 또한 아프락사스(abraxas)가 여기 아닌 어느 곳에 있을 거라 믿으며 그곳에 도달하려 안달했다. 성경을 비트는 헤세의&nbsp;카인과 아벨에 대한 해석은 기발했다. 그즈음 내 안에 늘 두 사람이 존재했다. 우리는 그 누구도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을 제대로 분간하지는 못했다. 내 안에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하는 한 내게는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다는 것을 어릴 때 그 책을 읽으며 절감했다. 
&nbsp;

아버지는 세계를 구하고 싶어 하셨어.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어. 하지만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생각도 없으셨어. 그것도 아버지다운 일이었어. 아버지는 내 생명을, 당신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를 한 생명과 저울질해 보았던 게 틀림없어. 혹은 열 사람의 생명. 어쩌면 백 사람의 생명. 아버지는 내 생명이 백 사람의 생명보다 더 무겁다고 판단하셨던 거야. (p.253)
&nbsp;
오스카는 어땠을까. 오스카를 따라가다보면 작고 여린 오스카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죽은 아빠에게 보내는 목소리와 아버지가 죽은 아들에게(실제로는 태어나지 않은 아들 혹은&nbsp;어딘가 살아있는 아들) 보내는 편지가 같은 온도로 들끓는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방해한 드레스덴 폭격이나 오스카의 행복을 방해한 9.11 테러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끝나지 않은 불협화음을 상징하고, 이는 할아버지와 오스카가 어쩌면 영원히 무거운 돌을 안고 살아야 함을 뜻한다. 시대의 불행 속에서 개인의 아픔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의미 없는 싸움이 비로소 끝나면 그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 속 모순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군인? 국가? 아니면 전쟁? 묻는다 치자.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nbsp;

아무도 이 문장을 가리키지는 않았지, 당신을 사랑해요.
&nbsp;
그 주위에는 길이 없었어. 우리는 그것을 기어올라 넘을 수도 없었고, 끝이 나올 때까지 걸어갈 수도 없었어. (p.255)
&nbsp;
할아버지는 폭격에서 겨우 살아남아 할머니와 결혼했지만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떠나버린다. 그는 많은 사람이 곁을 떠나버린 이 세상에 혼자만&nbsp;살아남은 슬픔이 너무나 커서 어느 곳에도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다. 살아있되, 죽어버린 삶. 아내와 아들 뿐만 아니라 말도 잃었지만 끊임없이 시간을 글로 남긴다. 일기를 쓰고 아들에게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쓴다. 그는 쓰면서 시간 안에 숨죽인다. 모든 시절이 글로 변한 노트가 폭삭 물에 젖어 회색빛이 되면 할아버지의 그 시간들도 온전히 사라질 것인가. 그러지 못한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스카는 네 개의 메시지 다음에 다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피해버림으로서 소년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비명과 솟구침,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아빠의 메시지를 외면한 순간 이 모든 것은 시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제때 해야 했던 말과 제때 들어야 했던 말을 제자리에서 밀어냈기 때문에 말들이 공기 중을 오랜 시간 떠돌다 결국 제자리를 찾아&nbsp;오고야 만다.&nbsp;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고, 피하기 보다는 자기만의 쿠션 한 줌 깔고 씩씩하게&nbsp;부딪치는 것만이 떠난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에게 결국 더 나은 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니, 내가 말한다.
&nbsp;
요즘 &lt;해를 품은 달&gt;에서는 운명을 이기려는 인간의 오만이 극에 달한다. 달이 해를 품겠다는데 달이 해를 품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이&nbsp;세상을 주무른다.&nbsp;왕위의&nbsp;왕이 제 뜻대로 하는 일이 없다.&nbsp;세상이 뒤집어져도 달과 해는 서로 만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달이 해를 품겠다는데, 행여 달이 해를 품다 소멸한다해도 그게 운명이라면 막아서는 안 되는 일 아닐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야 하는 말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nbsp;세상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nbsp;

아예 갖지 못했던 것보다는 잃어버리는 편이 낫죠. (p.433)
&nbsp;
누군가의 위에 누군가를 완전하게 올려놓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인디언은 친구를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 했는데 하물며 가족이란! 피를 나눠가지고 서로의 몸에서 서로의 몸을 탄생시킨 하물며 가족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가족을 말하는 데에 이 소설은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존재인지 묻지 않아도 가족은 모두가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존재들. 태어나기 전과 죽은 후의 세상이 같다면 가족은 어떤 이름으로든 보이지 않는 실로 꽁꽁&nbsp;묶여&nbsp;있을 것이다. 가족은 이름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무겁고 때로 헐겁다. 나는 그들로서만 증명된다. 그래서 알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얹혀 가는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nbsp;
너에게 얹혀볼까.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골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체를&nbsp;알지 못해&nbsp;늘 애태웠다. 스스로의 확신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나는 그래야 움직였다. 고집스럽게 세상이 흘렀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조금씩 컸다. 오스카가 아빠의 마지막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을 후회하고 아쉬워하다&nbsp;나중에 아빠가 남긴 열쇠의 주인을 찾기로 하면서 아빠 곁에 가까이 가듯, 보이지 않는 실이 이제부터의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 알 수 없다. 내 뿌리와 잎이 사정없이 흔들린다.&nbsp;슬픔이 태어나겠지. 언젠가&nbsp;증발하는 날도 오겠지. 언젠가 눈물과 비로 뿌려진 이 세상에 아빠를 데려다주겠지. 아홉 살 오스카는 생각할 것이다. 
&nbsp;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사랑을 말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7/93/cover150/893748097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0972</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나는 나무, 모든 것을 알고 있지요. - [어느 나무의 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398682</link><pubDate>Fri, 03 Feb 2012 21: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3986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707474&TPaperId=539868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61/20/coveroff/89637074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707474&TPaperId=53986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느 나무의 일기</a><br/>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01월<br/></td></tr></table><br/>리뷰에 나는 없다. 대신 나무가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 그녀일 수도 있지 않냐고? 아니다. 이 나무는 남자가 맞다. 여자나무는 따로 있다. 계속 읽다보면 나온다. 그녀의 이름은 '이졸데'다. 그는 당연히 '트리스탕'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오, 차라리 애증이라면 모를까. 트리스탕, 그러니까 나(나무)는 이졸데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게 쏟아져야 마땅한 스포트라이트와 내가 받아야 할 눈부신 태양의 햇살을 가린 몹쓸 그녀였을 뿐이다. 나는 이졸데에 대해 말할 생각이 거의 없다. 그녀 보다는 '란 박사'가 내게 더 소중하다. 그리고 나로 인해, 나를 향해 비춰질 모든 이야기들이 중요하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자.
&nbsp;

내 이름은 트리스탕, 삼백 살이 조금 못 되었으며, 란 박사가 키우는 배나무 두 그루 중 하나다. (p.8)
&nbsp;
이 나무가 배나무라는 게 이 소설에 영향을 미칠 지는 모르지만 이 나무가 남자라는 것은 대단히 영향을 미친다. 어느 날 강한 돌풍을 맞고는 트리스탕이 쓰러진다. 혼자만 희생되었다.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지만 중요한 것들은 아니다. 트리스탕이 쓰러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쓰러진 트리스탕이 자신의 일기를 쓴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가 들어야 할 모든 것, 우리의 모든 것, 나무의 모든 것이 트리스탕의 독백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단지 나무, 오로지 나무, 그것보다 훨씬 더 깊고 크고 놀랍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nbsp;

나무는 누군가 자신에게 토로하는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은 갖지 않는다. 자신이 지각하는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풍이 불고, 화제가 일어나고, 가뭄이 닥치고, 나무꾼이 나타나리라는 예감 외에 다른 불안은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들도 느낄 수 있는 이 같은 불안감은 인간들이 느끼는 불안과는 다른 데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아니다. 조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pp.13-14)
&nbsp;
나(나무)는 그렇다. 인간들은&nbsp;제 눈(기준과 잣대)으로 나를 봐서는 안된다. 내 불안을 재단하려 해서도 안된다.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내가 하려는 얘기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nbsp;만도 한데, 그래도 모르겠다면 귀찮지만 계속 이야기해보자.
&nbsp;
나는 죽어가고 있다. 쓰러진 건 처음이지만 이미 뿌리가 하나 밖에 남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내 주인 조르주 란 씨가 돌아오자마자 장작이 될 것이다. 나는 루이 15세 치하에 태어났다. 1727년생. 나는 당신들이 모르는 300년 가까이의 역사를 살았으며 그중 몇몇은 실제로 겪기도 했고, 당신들이 아는 나 외에도 나만이 가진 '인간화 된' 추억들이 있다. 아, 물론 내가 죽는다는 것이 내게 무척 슬플 거라고 슬프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그건 내 뜻이 아니다. [죽음=슬픔]의 등식은 인간들의 의식일 뿐 내게는 아니니까. 
&nbsp;

마을에서 나는 평판이 나빴다. 마을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은 나를 이 외진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연루시키더니, 결국은 그 책임자로 만들고 말았다. 나는 한 마녀를 불태워 죽였고, 신부들을 목매달았으며, 한 시인을 자살로 몰아갔고, 한 영국인을 불구자로 만들었으며, 아이 하나를 총살시켰다... 게다가 가지 치는 일꾼이 머리를 땅으로 향한 채 곤두박질치게 했다. (pp.21-22)
&nbsp;
내 몸에는 '자크'의 두개골을 박살 낸 총알이 박혀있다. 프랑스에서 제일 작았던 레지스탕스 '자크'는 내 주인 조르주 란 씨의 아들이다. 그는 총알의 추억으로 나를 사랑한다. 조르주 란의 도움을 받아 나(트리스탕)에 대한 책을 쓰려던 야니스, 내 이름을 붙여주었던 조르주 란의 오페라 가수 아내 자클린, 옆 집에 살며 나의 일부로 새로운 나(나무의 꿈)를 만들어준 꼬마 마농. 많은 식구들이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 다음 얘기는 열세 살 마농을 훌쩍 키워 아리따운 숙녀로 만들어준다. 15년 후. 
&nbsp;
갑작스런 차사고로 부모를 잃은 마농은 조르주 란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랐지만 양부모의 죽음 이후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에 의해 쫓겨난다. 하지만 나(나무의 꿈)만은 항상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조각실력과 사랑하는 남자 야니스를 찾아주었으니 대체 내가 행운의 나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둘은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나눈다. 게다가 그보다 더 중요한 일마저도 해치우기로 한다.
&nbsp;
그들의 추억과 꿈이 담긴 나(트리스탕)의 역사와 세월과 이야기가 담긴 영화와 책을 만들기로. 제작의 기회는 마농(이제 트리스탄)의 능력으로 붙잡고,&nbsp;야니스는 글(시나리오와 책)을 쓰기로 한다. 아참, 트리스탄은 트리스탕의 여성단어로 마농의 자작 닉네임이기도 하다. 사랑스런 나의 트리스탄. 
&nbsp;

그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요. 게다가 등장인물도 다들 쟁쟁하잖아요. 루이 15세, 발자크, 나폴레옹 2세, 드레퓌스 대위, 파블로 피카소... (p.113)
&nbsp;
사실은 이와는 많이 다르고 훨씬 사소한 주인공들이 등장해야 하지만 알다시피 영화와 책은 허구일 수록, 저 너머 세상을 다룰 수록 더더욱 부풀어 가는 성질의 것이라서.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그들의 아이가 생긴 것이다. 야니스는 바라지 않고 마농(트리스탄)은 죽도록 원하는 바로 그 아기. 그녀는 몰래 낳으러 가고 그는 오로지 나(트리스탕)에 대해서만 골몰한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내가 가진 이야기들은 아는 것부터 모르는 것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흘러넘친다. 
&nbsp;
그들이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거두지 않아서 기쁘다. 물론 그것들이 거의 사라져버려 헛간 구석이나 집안 난로의 장작으로만 멀뚱히 지내야 한 적도 꽤 오래 있었지만 슬프지 않다. 나는 그들에게 추억을 되찾아주는 소중한 기억이자, 과거 300년 역사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존재다. 기죽을 필요 없어. 기죽지 마. 
&nbsp;
들어봐, 이제부터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는지. 사실 나는 내 이야기가 마음에 들거든. 때때로 야니스가 꾸며낸 이야기마저도. 그 시작은 클래런스 해트클리프 경이 조르주 란(그러니까 내 주인)의 지붕 위에 불시착하게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게 나의 모든 것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는 레지스탕스(제2차 대전 때 독일점령하에 놓인 국가들의 지역에서 일어난 저항운동)를 피해 -사실은 영국으로 밀려드는&nbsp;레지스탕스들을 피해 망령한 것- 공군을 꼬드셔 기어이 낙하산으로 날다가 떨어진 잉글리쉬(영국인)였다. 내가 나의 기능과 인간의 정신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그였다. 그는 기발하고 무모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무질서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의 종식을 내 주인의 초가집 지붕 아래에서 지켜보았다. 당연히 나도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nbsp;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트리스탄, 야니스, 그들의 아들 토에, 나를 훔쳐 달아났던 샤픽 그리고 트리스탄이 죽은 후 야니스에게 생긴 애인 오드리, 토에를 키워낸 아마존 부족, 환경과 나무를 파괴하려는&nbsp;이들과 싸우는 과정,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던 야니스와 토에가 한 경매장에서 기적적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모습 등 아주 크고 긴 이야기다. 트리스탄이 자신을 떠나 죽어버린 후&nbsp;삶의 끈을 놓으려 했던 야니스의&nbsp;부활기이기도 하며, 야니스가 나(트리스탕)에 대해 쓰기 위해&nbsp;내 과거, 현재, 미래를 탐험하는 동안 나 또한 동시에 나의 모든 것과 이들의 모든 것, 나에 관한 모든 것을&nbsp;알아가는 과정이다.&nbsp;오래 전부터 내게만&nbsp;들리는 두 아이의 목소리, 드레퓌스 사건, 히틀러의 출생, 비시 정부 등의 오브제를 좇아 낚으러 간다.&nbsp;탄생과 소멸까지 내 위대한 비밀들이 드디어 풀리는 순간은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끝을&nbsp;알 수 있을 것이다.
&nbsp;

나는 망각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인간의 학살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지구는 스스로를 제어하고, 땅은 피를 마시고, 나무들은 그대로 머무른다. 종교라는 말이 지성이라는 말과 같은 유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말고 누가 기억하겠는가? 관계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상호작용을 하도록 강조하는 것... (p.199)
&nbsp;
아, 나는 인간의&nbsp;비루함, 낭비, 실수, 오욕을 너무나 많이 또 정확히 보고 있다.&nbsp;인간들은 자신들 뿐 아니라 우리도, 모든 자연(환경 혹은 생태계) 또한 조정하고&nbsp;진화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늘 불평할 뿐이다. 
&nbsp;

21세기 말 인간 전문가들이 예언하는 기후온난화와 핵겨울 대신 이루어질 인간 재고 정리는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많은 수의 인간들이 갑작스레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우울증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발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생명 형태가 지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공감을 통한 인식의 확대이고, 이 같은 기능은 증오와 무분별한 이기주의와 절망 속에서는 완수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p.239)
&nbsp;
시간이 흐르고 야니스는 어느새&nbsp;백발이 되었다.&nbsp;더이상 사랑을 나누지 못하게 된 그가 몰두하는 것은 과거다. 그가 나이를 먹고 더욱 더&nbsp;현재나 미래에서 등 돌릴 수록 과거에 집착하게 되었고, 나는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루이 15세 통치&nbsp;하,&nbsp;생메다르 묘지의 얀센파 광신자 사건과 왕의&nbsp;두 아이에 대한&nbsp;은밀한 살인. 그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던 "루이 14세가 좋아해서 매일 아침 먹었고, 모든 귀족에게 하사했던 품종인 빌구테 배"(p.250). 배의 씨까지 남김 없이 먹다 경련을 일으켜 숨을 거두어 매장된 아이들. 쌍둥이의 위 속에서 싹을 틔워 자라난 배나무 두 그루가 바로 나(트리스탕)과 이졸데였다. 이후 내게 생긴 모든 비극적 사건들과 내 아래에서 죽어간 사람들, 내가 흡수한 피들은 모두 쌍둥이의 저주 때문이었나. 
&nbsp;
하지만 나는 달라지고 있다. 상시 전시 박물관에 안착된 유일한 나(나무의 꿈)는 이미 사람들에게서 잊혀진지 오래다. 설상가상 야니스가 죽어버린 이후로 나에 대한 책, 그러니까 내 자서전은 그다지 인기도서가 되지 못했다. 이제 나는 없다. 나는 폐기되는 걸까. 이토록 오랜시간 동안 내가 뿌리고 흩어놓은 기억들을 따라 이리저리 시간여행과 공간여행을 했던 나는 나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가장 많이 알게 된 지금, 이 세상을 떠나야 할까. 
&nbsp;
아니었다. 나는 70년 전 어린 마농이 뱉어놓은 한 알의 씨로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느껴졌다. 나는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고, 가고 싶은 모든 곳들에 갈 수 있었고, 다른 모든 이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휴면 중이지만 곧 깨어날 것이다. 
&nbsp;

나는 그 씨앗에서 내 존재의 향기가 풍기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을 알고 놀랐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깐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새로운 성장에 나 자신을 맡겼다. 내 기억은 멈췄다. 그리고 다시 삶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p.256)
&nbsp;
나는 부활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전생을 잊게 될까 기억하게 될까. 기억해도 좋겠고 잊어도 좋겠지. 하지만 더이상 인간의 의식과 정서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싶다. 나는 나무니까 그들과는 다르니까.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많은 것을 기억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즉, 역사를 담고 있는 나무니까.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무로 태어날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61/20/cover150/896370747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707474</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당신이 정말 원하신다면. - [삶의 한가운데]</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397945</link><pubDate>Fri, 03 Feb 2012 15: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3979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289&TPaperId=539794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off/89374602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289&TPaperId=53979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의 한가운데</a><br/>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06월<br/></td></tr></table><br/>이 소설에는 극단과 기다림이 삶의 전부라고 말하는 두 자매가 나온다. 이건 초반이니, 자매의 가치관이 쭉 가게 될 지 어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상관도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늘 선택에 강요 당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극단이 아니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니나가 딱히 이상할&nbsp;것도 없다. 1930-1940년대 독일을 살았던 니나의 정신상태와 결정과 경험에서 오는 삐뚤빼뚤한 착란들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극단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치는 의견이&nbsp;때때로 더 옳게 보인다. 명확한 것을 안정으로, 불명확한 것을 불안으로 느끼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알레고리와 알고니즘, 추상성 속에 놓인 시대의 상처와 불안이 개인의 삶을 어찌 좌지우지하지 못하겠는가. 
&nbsp;
이제 믿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것이 살아있는 증명이라는 것을. 대신 믿는다. 죽은 듯 고요한 삶 속에도 아니, 평온해보이는 심장 안에 요동치는 불꽃이 숨어있기도 한다는 것을. 니나는 모든 것이고, 니나를 탄생시키기에 그즈음 독일의 불안은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다름을 향해 그토록 처절하게 내달려왔으면서 차이를 알기 무섭게 상대를 쳐내는 교묘함. 고통과 격정이 살아있는 증거라면, 어째서 니나는 지금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왜 슈타인을 받아주지 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녀로 인해&nbsp;온전히 그에게 안기지 못하도록 만든 것일까.&nbsp;
&nbsp;

내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어떤 의미 있는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내 인생은 그냥 사라지고 있으며 나는 살지 않았다는 불안감, 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영원히 내 인생은 작은 궤적 속에서 움직일 뿐이라는 불안감들입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한테서 어떤 의미 있는 것이 나올 수 있겠어요. 이 무슨 오만인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당신한테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lt;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어&gt; 하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lt;무언가를&gt;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까봐 불안합니다. 그 무언가를 영원히 상실할까봐 불안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안의 가장자리, 아직 포착 가능한 불안의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뭔지 모릅니다. (pp.20-21)
&nbsp;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던가. 사랑을 내려놓음으로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 말하는 대신 침묵을 택하는 일, 묻기 전에 끙끙앓는 일, 니나처럼 뒤늦게 안 사실에 대해 이제와서 돌이키려 하지 않는 일 모두 용기로만 가능했다. 고전문학이 다 그렇지만 지독하게도 밑줄을 많이 그었다. 누구에게나 좋게 읽히는 책, 누구든지 좋다고 하는 책, 작가도 작품도 너무 유명해서 흠이 없는 책은 유난히도 태클을 걸고 넘어지고 싶은 법. 그래서 더 줄줄이 문단마다 밑줄을 아니 포스트잇을 붙여뒀을까. 붙이는 것도, 떼어내는 것도 모두 내 것이나, 붙이는 나와 떼어내는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nbsp;
삶이 불편한 사람은 니나를 보며 전후 불안에 미쳐버린 광기어린 여자의 하염없는 독백, 쓸데없는 하소연으로 일축할지 모른다. 니나의 갈구하는 삶 전부를, 그녀 안에 도사리는 불안과 광기와 체념을&nbsp;감싸기가 벅차다. 그래, 이건 벅찬 일이다. 동시에 어린 날들 날 괴롭힌 모든 고민이기도. 어째서 내가 너로 인해서만 증명되나. 모든 화두를 풀지 못하는 숙제에 맞춰놓고 낑낑대다 날이 새도 그때는 두렵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못된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런 내가 요즘&nbsp;데스노트를 쓴다. 없어져버려라, 쓰고나서 멈칫, 어쩔&nbsp;땐 움찔, 그렇게 심장에 못을 하나쯤 박아넣는 기분을 느낀다. 피노키오 인형이 되어가는 고독을 맛본다. 흔들리지 않도록 꽝꽝 박혀버린 못, 스며들 수도 튀어나갈 수도 없는 불안. 불안 속에 더욱 또렷한 나의 존재감. 나는 불안으로만 존재한다. 그러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nbsp;
&nbsp;

그렇지만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폭풍우에 의해 약간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았다. 이 배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자기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으로 가게 되리라고 믿을 것이다. 니나의 절망이 진정에 와닿고 나의 가슴을 후벼팔지라도 내가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지. (p.101)
&nbsp;
몸이 다 커버렸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망설임없이 니나를 만나야 한다. 흔들리는 배에 올라탄&nbsp;힘 없는 승객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내 안에 무엇을 키우며 사는지 알고 싶다면 그래도 니나를 만나야 한다. 니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비로소 모든 것이 된 여자. 슈타인의 마음 속이나 언니의 삶의 지표에서도, 니나 자신의 의식 안에서도 모두 불완전함으로서 완벽해진 여자다. 니나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곁에 가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재능을 타고 났지만 더 쓰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러고도 집시여인처럼 하염없이 헤맨다.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삶. 흔들림이 그녀를 뿌리째 털어낸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을 노래하는 건&nbsp;시인만이 아니었나 보다. 늙은 남자 슈타인이 어린 여자 니나를 욕심낼 때 슈타인은 이러한 모든 니나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녀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하겠다는 뜻이다. 
&nbsp;
누가 누군가를 가질 수 있는가.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갖지 못한&nbsp;건 니나였을 뿐인데 슈타인은 모든 것을 갖지 못한 것과 같다. 뿌리, 용기, 안정, 평온, 사랑이 그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nbsp;대신 많은 것을 가진다. 불안, 흔들림, 경이, 전율, 열망, 폭발하는 삶의 의미들. 척박한 삶의 빈틈으로 하염없이 스며드는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퇴치가능한 불안이 아니었다. 훨씬 더 밑바닥에 존재했다. 소극적인 그의&nbsp;사랑을&nbsp;비웃을 수 없었다. 그를 홀대할 수도 없었다. 나는 완전한 절망을 원했다.
&nbsp;

내 시가 형편없다면, 정말로 형편없어서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나 자신의 내부에도 감상벽과 싸구려 경향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거야. 누구든 그가 쓴 것과 똑같아. 이걸 분리시킬 수는 없어. 만약 언니가 좀더 날카롭게 주의해 본다면, 모든 가짜를 꿰뚫어볼 수 있을 거야. 슈타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아.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 (p.119)
&nbsp;
나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유혹 당하는지,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지, 인간적으로 매료 되는지 비교적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소용돌이 치는 느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알 것 같으면서 알 수 없어 다시 안달한다. 그래, 나는 안달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할 때 소용돌이는 얼마나 미치도록 안락한가. 여기도 저기도 아닌 곳이 삶이라던가. 숨을 곳과 증발할 곳이 있어 평온함을 느끼던 삶. 뽐내고 아는 체 하고 싶어 안달하던 삶. 
&nbsp;
나는 니나가 느끼는 감정과 니나의 삶, 부러워하면서도 선뜻 니나처럼 살지 못하는 언니, 니나를 사랑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사랑하지 못하는 슈타인의 심장, 어느 한 곳에 놓이지 않는 수선화 같은 삶을 알 것 같다. 강처럼 흐르고 싶지만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는. 갖기는 싫고 남주기도 싫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원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어 고뇌하는. 모든 것들. 이름 없는 뚜렷한 것들.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지배하는 어떤 영역의 중요한 혹은 사소한 일부분들. 무엇을 사랑했었나,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가,&nbsp;내 심장은. 내가 원하는 것과&nbsp;이루어진 결과가&nbsp;꼭 같아지는 날이 오기나 할까. 나의 질문은 공허한 공간을 떠도는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nbsp;

니나는 엘베 강과 같은 존재다. 유혹적이고 순진하며 도덕에 얽매여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게 느껴져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또한 니나가 언젠가 여자가 되었을 때 가지게 될 얼굴을 이미 보았다. 니나가 자신의 인간적인 영혼을 인식할 때까지 무슨 일이 더 일어나야 할 것인가? (p.123)
&nbsp;
얽매이기 싫은 삶을 감당하려면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본능대로 살기 위해 원하는 것 앞에 더 원하는 것을 놓을 수밖에 없다. 선택의 순간에&nbsp;비교적 즉각적으로&nbsp;반응하는 것이 영혼이라면 여자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을 감싸야 한다. 총소리, 숨소리, 한숨소리가 지배하던 땅이 있었다. 인종 싹쓸이가 위험한 이유는 숙청 자체가 아니라 남은 자들의 혼란 때문이다. 혼란. 대재앙. 홀로코스트. 테러. 척결.&nbsp;땅과 지배 전쟁이 타당성에 골몰할 때, 니나는 내면에 귀기울임으로서&nbsp;침잠한다.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그녀는 더이상 이 땅에서 사람 답고 여자 답고 어른 답게 살지 못한다. 겪지 않고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버린다. 
&nbsp;
버림 받은 삶, 책임 지는 삶, 극단의 삶, 본능의 삶은 되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않던가.&nbsp;아는 것이&nbsp;거의 없는 삶도 있지 않던가. 어떻게 나를 빼고 나에 대해 말할 것인가. 편린으로 가득 찬 편협한 경험을 전체의 보편적 진리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좋아하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으로 어떤 영혼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하물며 살아가는 일이 벅찬 감동이라는 걸&nbsp;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영혼을 어느&nbsp;누가 증명해 보일까. 만약 내 안에 이것들이 없다면&nbsp;나는 어떻게 나아가며 무엇으로 나를 멈추게 할까. 아무도 자신의 심장을 들여다보지 않음으로서 타인에게 상처주는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 알겠다
&nbsp;

그런데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불편합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몰아갑니다. 당신은 나를 수줍은 소녀로 만들고, 어떤 때는 성숙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나는 그중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자유롭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 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신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정말로 나를 모릅니다. (p.127)
&nbsp;
초반에는 이해할 수 없던 사실들이 중후반을 지나며 차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니나의 삶. 슈타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자유, 평화, 고독, 용기, 어둠, 갈망, 열정 등등. 니나의 언니가 읽는 슈타인의 일기와 편지, 니나와 함께 머문 며칠 간의 대화, 마지막 니나의 언니와 슈타인의 만남 등으로 꾸려진 이 소설은 정확히 누군가의 가슴 정중앙을 겨냥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순응하게 하는 특유의 힘을 가진 소설이었다. 자유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거대담론이 없었다. 니나는 바로 그 자유를 위해 사랑마저 회유당한 장본인이었고, 슈타인이나 니나의 언니 의견과는 달리, 나는 니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가 누군지 그게 슈타인인지 끝까지 알 수가 없어 초조했다. 
&nbsp;

아마 그녀는 나를 사랑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나는 그녀가 내 안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만 사랑할 수 있었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노여워했다. 그러나 나는 자기 합리화나 안일한 생각들을 폄훼하는 그녀의 고귀한 습관이 나 때문에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pp.177-178)
&nbsp;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로 종결짓기에 이야기는 너무나 크고 무겁다. 니나 신드롬. 우리가 니나에게서 본 것, 내가 니나에게 마지막까지 바란 건 사소하고 잔인한 사랑은 아니었다. 어째서 니나가 되길 바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까. 어째서 니나는 그 불안과 흔들림으로 모든 남자들의 불씨가 되었나. 하는 것들에서 자주 멈칫했다. 도망가지 않는 것과 손을 맞닿아 보는 것. 하지만 그를 위해 피해버리는 것. 이 모든 것을 글로 쓰기가 두렵고 벅차다. 니나는 글로는 표현되지 않는 더 깊고 은밀한 곳의 간절함인 것 같다. 모든 순간에 나서 싸움으로서 존재를 드러내었던 니나가 결국 슈타인을 만나지 않고 영국으로 가버린 것으로 나는 모든 생의 의지를 본다. 어째서 슈타인에게만 그토록 냉정하고 모질게 굴었는지. 삶의 위험한 순간들마다 그에게 상담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를 거부했던 까닭은 무엇인지.
&nbsp;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봐라. 너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에,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들어가라. 노인을 보고 너 자신을 보라. 비록 두렵기는 하겠지만 전혀 해는 안 되는 법.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p.190)
&nbsp;
마지막에 이르면서 드디어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와 도전으로 얼룩진 삶이야 말로 니나가 불안했던 이유이자 용기였다는 것도. 평온한 세상이었다 해도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기에 적절치 않은 여자였을 것이다. 모험과 도전으로 너울거리는 격정스런 일생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바랐던 삶이니까. 가만히 앉아 정말 신나고 즐거운 일 없을까 외치는 우리의 심장에도 니나의 붉은 열정 한 가닥이 박혀있음을 이제는 알겠다. 무언가는 유혹하고 나는 유혹을 외면하고 유혹은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 들어가 똬리 틀고 기다린다는 걸. 꺼내줄 날만을 학수고대 한다는 걸. 
&nbsp;

내가 우는 것이 슈타인의 지난 고통과 니나의 엄청난 이별 때문만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리고 축축하고 촘촘한 회색빛 그물에 얽혀 있듯 자신의 운명에 얽혀 있는 인간들 때문에 우는 것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p.370)
&nbsp;
그러면 이제 우린 니나처럼 한치 두려움 없이 -행여 두렵더라도-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그물에 걸려 징징대고만 있을 것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것인가. 내 삶에만 도전과 모험과 기적이 없다고 목소리 높일 것인가. 다 여기, 삶의 한가운데 있는데!&nbsp;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고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내 인생의 주도권은 원하지 않는다 해서 넘겨줄 수도 없는 일. 아마 니나는 불꽃으로 장미가시로 빛으로 모두의 안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안에서 니나는 열정이고 용기다. 오래도록 꺼져서는 안될 빛이다. 빛은 나를 향해서만 비친다. 한 줄기 빛은 나를 따를 것이고 나는 눈감지 않을 것이다. 니나가 그러했듯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켰듯이. 
&nbsp;
그렇게 모두 그물을 찢어낸 작은 구멍 사이로 진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구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것이므로. 그 안에 진짜 내가 있을 것이므로.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9/82/cover150/893746028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289</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차마 마주 대하기 힘든 핓빛 진실 - [관타나모로 가는 길 - The Road to Guantanamo]</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388946</link><pubDate>Tue, 31 Jan 2012 00: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3889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M402435474&TPaperId=538894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14/3/coveroff/m4024354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M402435474&TPaperId=53889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관타나모로 가는 길 - The Road to Guantanamo</a><br/> / 영화 / 0001년 01월<br/></td></tr></table><br/>전쟁의 땅을 아냐고 또래에게 묻는다. 알 리가 없지. 우린 전쟁의 상흔을 안은 곳에 사는 거지 전쟁의 땅에 살고있는 게 아니잖아. 전쟁을 끝낸 게 아니라 잠시 휴전하는 중이라고 해도 알 리가 없지. 설상가상 내겐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줄 어른도 안계신다. 폭격기 한 번 맞아보고 싶다거나 최루탄, 화염병 날아다니는 거 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할아버지만 중3때 돌아가시고 모두 건강하시다)는 분명 그 시절을 사셨는데도, 내가 듣기론 그저 가난 뿐이다. 가난. 뿌리 없고 실체만 있는 그것만이 명확했다고 식구들 모두가 아니, 아빠와 엄마가 말했다. 전쟁영화를 잘 못 본다. 목이 달아나는 장면에 몸서리쳐져서가 아니고 지독한 학살이 오히려 지루하기 때문인데, 그게 인간이 동물을 학살하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어서 비위 상한다. 그건 내 사정이고, 세계는 또 나와 상관 없이 제멋대로&nbsp;잘 돌아가기 때문에&nbsp;그걸 알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nbsp;
요 몇 년간 전쟁에 대해 그러니까 전쟁으로 인한 부수적 갈등이나 해당 국가의 관계들,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주로 중동이긴 했지만 모두 서구 선진국들과도 관련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식민 쟁탈전이 결국 모두 전쟁과 관련 있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연장선상에서 전쟁영화가 봐지기도 한다. 외면한다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맘 편한 것도 아니라서 바로 그것들이 끈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쏟아지는 전쟁영화 수집에 꽤 열을 올렸다. 그러니까 '제목' 말이다. 어느 영화가 어떤 전쟁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정보. 그리고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관련된 &lt;관타나모로 가는 길&gt;을 보았다. 오바마 대통령이&nbsp;없애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1세기 역사를 가진 관타나모 수용소는 여전히 굳건히 살아남아 전쟁범이나 정치범의 자유를 뺏고 있으며, 영화는 세미다큐 형식으로 만들어진 실화 바탕의 작품으로 사실감과 진정성을 두루 갖춘 수작이다.
&nbsp;
관타나모는 쿠바 동부에 있는 관타나모주의 도시로, 미국-에스파냐 전쟁의 결과로 1903년 이래 미국의 해군기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관타나모는 미국의 중남미 군사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 기지 역할을 한다. 미군 관할 아래 거대 수용소가 생겼고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사상,전쟁범에 대한 구속과 구타,고문,학대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정치범 수용이 아니라 무관한 이들을 정치범으로 둔갑시키려는 강압적 처우에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우리 역사에도 공공연했던&nbsp;인권유린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잘못된&nbsp;진실과 제멋대로식 억압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한다. 혐의 있는 자, 혐의가 진실로 밝혀진 자에 대한 심한 고문에도 하물며 인권유린이라는 단어가 붙는데,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죄 없는 자, 혐의는커녕 상관없는 자를 잡아와 고문하는 것에는 응당 책임이 따라야 한다. 관타나모 수용소가 생긴&nbsp;지 1세기가 지났는데도 지금껏 처우나 시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nbsp;
더군다나 미국의 이득과 기득권 보호를 위해 방해되는&nbsp;이들이 모진 대우로 죽어가거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유엔과 안보리가 아무리 '국가안전보장'을 외쳐도 해당 국가(미국)만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실제로 미국은 국제사회에 나와 인권에 관한 가장 높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실상 자국 보호라는 명목 아래 엄청난 인권유린을 타당화 시키고 있다. 제 나라에 불리한 것은 법으로 취급도 안할 뿐 아니라 모두 중동 테러리스트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lt;관타나모로 가는 길&gt;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영화다. 그들이 좀 더 신중을 기하고, 명확한 법집행에 매달렸다면 이런 실화는 있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잘못된 일을 타당화 시키기 위해 또다른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매커니즘이 반복된다. 어느 날 영국 청년 셋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간다. 결혼식을 위해 먼저 떠난 주인공까지 모두 넷. 파키스탄계이기는 하지만 오래 전 영국에 터전을 잡은 이들은 중동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도 친밀감도 갖지 않은 채 단순한 목적으로 향했을 뿐이다. 하필이면 9.11 테러 며칠 후. 그리고 돌아가지 못할 줄 몰랐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도록. 3년 가까이 가족들과 친구들 얼굴을 못 보게 되고 친구 하나를 잃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nbsp;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도 술렁이긴 마찬가지다. 도착 전에는 몰랐지만 막상 파키스탄 전역이 긴장과 도가니 상태였다. 소문이 꼬리를 잇고, 소문이 소문을 물고 늘어져 진실이 되었다. 청년들은 궁금했다. 파키스탄에만 있자니 지루해서 무작정 국경을 넘을 생각을 한다. 별로 어렵게 보이지도 않았다. 칸다하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멀미나 먹는 문제 빼고는 비교적 잘 도착했지만 현지 상황은 달랐다. 밤마다 낮마다 엉뚱한 곳에서 폭격이 시작됐고, 폭탄이 터져나가 많은 사람이 죽었다. 소문은 더 흉흉했다.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가는 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곳곳에 팔,다리,목이 없는 시체가 즐비하고, 피투성이로 울부짖는 사람들도 다반사. 단테가 묘사하지 않은 지옥이 그곳이었다. 미군에게 붙잡히거나 수상한 낌새를 주게 되면 한참을 잡혀 있어야 했다. 깊은 구덩이를 파서 수상한 사람들은 한 번에 사살한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영국인 청년들은 자신이 영국인이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기만 하면 미군과는 친구가 될 수 있고, 금새 풀려나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차츰 현실이 그렇지 않아지고, 미국 정부의 아프간 압박과 폭격은 도를 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잡혔다.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순식간에 탈레반 추종자가 되어 알 카에다의 정보와 빈 라덴의 주거지 실토를&nbsp;압박당해야 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고 있었다.
&nbsp;
아무 이유없이 수상하다는 점만으로 눈이 가려진 채 총구에 겨눠져 군용차에 올라타 수용소로 끌려가는 영국 청년을 비롯한 각계 중동계 출신들. 그들이 간 곳은 쿠바 관타나모. 부시가 대우는 적당하고 인도적이라고 발표하는 바로 그 관타나모 수용소다. 영화는 생각했던 그대로 진행된다. 실제 주인공들의 인터뷰가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어 생동감 있는 현실을 전해준다는 것과 비교적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점, 영화라기 보다 다큐라고 하는 게&nbsp;훨씬 어울린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수업용으로도 교육용으로도 교양용으로도 좋은 작품이다. 간단해서 이해 못할 구석이 한군데도 없는데 자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는 인도주의적 인권대우라니, 이런 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나. 나라는 존재는 티끌보다 더 작아서 제 나라 부당 재판에도 뭐라하지 못할 처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재판 하나 없이 주황색 죄수복을 입혀 눈도 가린 채 아무렇게나 끌고 와서 수용소에 갖다 넣고 인권을 유린하는! 어이없는 정부가 말이다. 이게 과연 전시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대처법이란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일까. 무작정 끌고 와서 살인자 취급하는 게? 검색 몇 번으로도 관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끔찍하고 잔인한 실상들을 볼 수 있다. 그 고문법 하며, 진실 찾기가 아니라 겁주기식 군 작전들로 점철된 곳에서 과연 진짜 중동 테러리스트 탄생을 바라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보복 공격을 낳을까 두렵다.&nbsp;그곳은 그런 식으로 미 해병대에 의해 접수되고 있었다. 멀쩡한 사람을 테러리스트, 살인자로 만드는 비밀의 장소로. 
&nbsp;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전혀 유쾌한 내용이 아닌데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엄청난 몰입을&nbsp;당한 건 오랜만이었다. 인간 살인병기들이 아니라면 이건 전혀 무의미한 일이다. 테러범 축출이나 살인범죄 퇴출에도 전혀 도움될 리 없는 인력 낭비였다. 이런 소모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겁주기나 협박용인가. 중동계 유럽인까지 전부 테러리스트로 치부하려는 게 목적이라면&nbsp;적어도 기준을 정해야 한다.&nbsp;자국의 타당성을 내세우기 위한다거나 본때를 보여주려고&nbsp;피부색 판별로&nbsp;무조건 잡아들이는 건 인도적이고 합리적인 선진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테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풀어야 할 매듭이 딴 데 있고, 미국이 그 문제를 바로 서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바, 절대 관타나모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어쩌면 영원히 인권유린의 사각지대가 될 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처럼 무고한 영국 청년이 2호, 3호 계속 나올 것이고 나오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전시라 해도, 재판 없는 구금과 살인이 있을 수 있을까. &lt;관타나모로 가는 길&gt;은 많은 것을 묻지만 대부분이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행여 오해가 풀렸다 해도 몇 개월간 고통 받은 무고한 이들의 인권유린과 고문,구타를 어떻게 보상할지 궁금하다.&nbsp;선진국이라는 이유로 힘 없는 국가들이 늘상 이렇게 당해줘야 하는가. 이럴 때 보면 유엔과 안보리, ICJ의 존재는 더없이 무의미하다. 이미 벌어진 일 수습을 위해 존재하는 국제기구. 그것만으로 이 세계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nbsp;
이 청년들은 곧 꺼내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듣게 되고, 서로 친구들이 자신을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고발했다는 억측 아래 부당한 자백을 강요 당한다. 고급 정보는 고급 '수' 아래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던가. 비밀정보원이라던가. 비로소 미국이라는 나라에(이 수용소가 미국의 아래서만 힘을 과시하는지, 러시아,독일,영국도 가세하는지 모른다) 눈먼 돈이 어마어마할 지도 모른다는 눈먼&nbsp;감상법이 나온다. 한둘도 아니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사람 하나 사형시키는 데에 어마한 돈이 든다는데, 배보다 배꼽이 큰 격 아닌가. 하나 잡겠다고 둘셋넷다섯, 몇인지도 모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 자국민들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을까. 제 나라 세금이 쓰이는 요량을 좀 보면 화가 날 만도 한데! 그곳은 서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게 하고는 이리 끌고갔다 저리 끌고갔다, 전통이랍시고 행해지는 명예살인 욕할 가치도 없는 체제 속에 운영되는 곳이다. 벽도 없이 동물원 우리 같은 철창 안에 한 명씩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게 생활하는 삶은 이미 동물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nbsp;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이 한 트럭인데 포로로 잡혀와 얼마간 보낸 이들의 삶이 최악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덜하다고 볼 수도 없다. 일반인을 포로로 잡는 전쟁은 문명의 것이 아니다. 과거 아이들이나 여자를 인질이나 포로로 잡았던 전쟁들은 최고 악질 전쟁으로 손꼽혀 왔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러면서 테러가 끊기기를 바라고, 테러를 축출하기를 바라며, 중동과 화해하기를 바란다.&nbsp;양심이 사라졌나 보다. 특별구역이라는 수용소 D구역은 더 심하다. 가지도 않은 아프간에 갔다며 비디오를 보여주고는 니가 저기 있는데 설명해 보라거나, 손과 발을 바닥에 묶어놓고 못 움직이게 하고&nbsp;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그런 인권유린은 그야말로 장난이다. 미쳐버리거나 버티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는 걸 이 강한 청년들은 머지않아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강해졌다.
&nbsp;
청년들은 거짓 자백을 강요 당하고, 미군은 억지 자백을 받아내어&nbsp;겨우 재판대에 세운다. 그 어린 청년들이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 대단한 정보통 미국이란 나라가 청년 하나의 거주와 발자취를 과연 조사할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했을까. 너무도 확연하게 영국에 존재했던 청년들의 출입국 기록을 증명할 능력이 없어서? 폭력, 사기 등으로 국가에서 내린 명령의 일환인 사회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알리바이는 더 명확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들은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윽박지르기만 했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그들의 아집과 오만과 위험은 상당했다.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는 21세기 선진국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 공공연하나 없는 일도 치부하는 여전히 통용되는&nbsp;일들. 좋은 국가는 좋은 점을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nbsp;나쁜 점을 줄여나가야 한다고&nbsp;생각한다. 잘 먹고 잘 사는 척 까짓 수치에 불과한 GDP 순위로 위선 떨어도 슬럼가나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노인이 버려지고 아이들이 굶는 국가를 좋은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99%가 죽지 못해 사는데 1%가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잘 산다고 그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나중에는 지친 청년이 비협조적이고 호전적이라는 이유로도 억압하고 학대한다. 더 엄격하고 심한 폭력이 묘사되지는 않지만 없는 죄를 고백해야 하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이 있을까. 
&nbsp;
가족과 변호사와의 면회가 허락되지 않고, 알리바이가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건을 들먹이면서 수용소에 더 붙잡아놓는다. 마침내 죄가 있어 수용되었었다는 서류에 사인을 요구하며 하지 않을 경우 집에 보내줄 수 없다고 협박한다. 그들로선 인권유린과 거짓자백요구, 고문,감금,부당심문 등에 자물쇠를 채울 근거가 필요했고, 관타나모 수용소의 타당성을 인정 받아야 했을 것이므로. 청년은 거부한다. 세 청년이 구분 되지만 나로선 셋을 구분하여 이해하기가 벅찼다. 셋에게 내려오는 모든 불합리가 한 사람 아니 전체 포로에게 가해지는 불평등처럼 보였다. 이들이 여기서 이렇게 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소의 죄수들에게도 자국 죄수들에게도 이렇게 하는 국가처럼 보였다. 1000명에 달하는 무혐의 죄수들 중 단 10명이 기소됐지만 그들에게서도 역시 혐의를 찾을 수 있는 강력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으며 그러고도 한 마디 사과나 본인들 잘못을 인정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자유 수호를 위한 명예로운 구속'이라는 수용소 D 앞의 글귀가 그들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입증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nbsp;
거의 3년을 죄없이 수용소에서 보낸 후 억류가 풀린 영국인들이 돌아온다. 비로소 석방되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영국이라는 국가에서도 별 수 없었던 셈이다.(테러범죄는 '정치범 불인도' 사유에 해당해 설사 영국이 나섰더라도 석방시킬 수 없었을 것) 이유와 배경이 어쨌건 현 지구에 알 카에다는 테러리스트가 맞다. 그래서 피부색과 인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일이 타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행여&nbsp;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중&nbsp;한 명이 알 카에다나 탈레반 수장이었다&nbsp;하더라도&nbsp;미군이 수용소에서 행하는&nbsp;모든 것들이 용서될 것인가. 형법에 '한 명의 가해자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선 이것이&nbsp;누군가에 의해 언젠가 피의자가 될 지도 모를 선량한&nbsp;사람을&nbsp;보호해주는 유일한 단서인데, 지구 어느 땅도 이 말이 또렷하게 지켜지는 곳이 없어 씁쓸할 뿐이다. 죄 없는 이가 끔찍한 곳에 잡혀갔다 3년 만에 겨우 나왔는데 이게 석.방.인.가. 한 명의 청년은 실종되었고, 영국으로 돌아온 세 청년 중 하나는 예의 그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셋은 여전히 영국에 살고,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으며,&nbsp;수용소 생활 이전과 이후의 삶이 분명히 달라졌음을, 더 좋은 쪽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생경했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14/3/cover150/m40243547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M402435474</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잊지 못하는 어린시절에게 - [플립]</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360862</link><pubDate>Tue, 17 Jan 2012 0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3608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23142603&TPaperId=536086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71/83/coveroff/93081810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23142603&TPaperId=53608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플립</a><br/>로브 라이너 감독, 레베카 드 모네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1년 02월<br/></td></tr></table><br/>무엇에 빠져들었는지 콕 집어내지는 못하지만 20대 초반 하염없이 빠져들었던 중국인이면서 프랑스어로 쓰는 작가, 샨사의 소설&nbsp;&lt;바둑 두는 여자&gt;는 중국문학을 잘 몰랐던 내게 일제침략기의 만주를 배경으로 낯설고 아련하고 기이하면서 신비롭고 안타까운 시대의 이야기를 펼쳐주며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 소설은 만주로 파병 온 일본군 장교와 한 중국 소녀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1930년대 급박한 도시의 모습과&nbsp;개인의 삶을 바둑판 위의 게임이 진행되는 것마냥 보여준다. 그래서 바둑게임은 영화의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며, 현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바둑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이 게임은 누군가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되는 것, 굴러가고 흘러가야 할 모든 것이었다.&nbsp;소녀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을 떠안고 온 힘을 다해 바둑을 둔다. 할 수 있는 일이 그뿐, 절망과 슬픔과 고독의 구렁텅이가 아무 것도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와 소녀가 만난&nbsp;것 또한&nbsp;바둑 두던 광장이었다. 서로의 아픔과 간절함, 고독과 절망을 알아채&nbsp;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둘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런 시대, 그런 시절, 그런 시간들. 그럴 수 밖에 없는 정황들이 명명백백하다. 아픈 만남은 비극적 결말을 낳고, 소설은 비로소 이보다 더 희망적일 수 있겠는가,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수&nbsp;있겠는가를 묻는다. 모든 것이 반어법이었다. 이보다 절망을, 이보다 구속을 느끼냐고 묻는 소설에서 나는 비극으로나마 서로의 가까이에 옮겨 앉는 두 주인공들을 보았었다. 총소리, 시체, 울음, 데모, 억압,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흘러 넘치던 꽉 막힌 슬픔의 시대였다.
&nbsp;
그리고&nbsp;&lt;플립&gt;은 바로 그 바둑게임을&nbsp;온전히 화면으로 옮겨온 영화다. 하지만 &lt;바둑 두는 여자&gt; 속 처연함과 결연함, 안타까움이 이 영화에는 없다. 사실 두 작품은 서로 비교할 만한 대상도 아니고 비교될 대상도 아니며, 내용상으로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nbsp;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마음, 상황이 교차한다는 것이 닮았다. 이곳에&nbsp;소녀가 있고, 저곳에 소년이 있다는 것이 닮았다.&nbsp;여기 소년의 마음이&nbsp;있고, 저기 소녀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 닮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판 &lt;그 남자, 그 여자&gt; 아니, &lt;그 소년, 그 소녀&gt;다. 눈치챘겠지만, 소년과 소녀다. 작은 남자와 작은 여자 아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말이다. 쾌활하고 발랄하고 천진하고 순수하고 어여쁘고 밝고 화사한 아이들.&nbsp;우린 이 영화를 보며 어린시절을 불러오게 된다. 그 시절에는 내 옆에 누가 있었던가, 자전거가 있었던가, 인형이&nbsp;아니면&nbsp;우산이 그것도 아니면 사탕이, 장미꽃이, 문구세트가, 숨바꼭질이, 귤 한바구니가 있었던가. 그 시절이라면 나, 할 말이 끝도 없이 쏟아질 것처럼 하염없지만&nbsp;매몰차게 막아버린다. 감당할 수 없다. 그 밞음, 수줍음, 눈부심, 순수함들을 감히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다. 다른 모든 것 앞에 단 하나, 작은 손! 그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손은 참 작고 희고 깨끗했다. 아무 것에도 노출되지 않아 무엇에도 닿은 적이 없는 손. 세상 때 묻지 않고, 세상 짐 얹지 않고, 세상 아픔 스며들지 않은, 서로를 향해 반짝거리며 서로 잡아주기를 기대하던 작은 손. 그것만이 떠오른다. 전부가 아니지만 거의 모든 것인듯, 달뜨게 떠오른다. 해질녘 풍경도 떠오른다. 좀 더 놀고 싶은데 들어오라고 저녁 먹자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와 찌개 냄새, 아쉬워하던 우리의 고무줄 놀이, 숨바꼭질, 달리기 계주 그런 것들. 결국 완전한 어둠이 거리를 잡아먹고 나서야 잔뜩 잔소리를 듣고&nbsp;우리들은&nbsp;집으로 끌려들어갔다.&nbsp;그것들은 파노라마처럼 두서없고 정처없이 자꾸만 흐른다. 찰칵.
&nbsp;
첫 시나리오를 쓰면서 불이 켜졌다 꺼졌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페이드인,아웃 기법을 의도적으로 많이 넣었다. 나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씬이 끝날 때마다 계속 하얘졌다 까매졌다 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시나리오가 빈약해 기술적으로 채우려는 욕심의 발로였는데, 그날 작품 발표 시간에 태클이 엄청 들어왔다. 말이 토론이지, 토론당할 시나리오들이 아니라는 걸 민망하게도 우리끼리 잘 알고 있었다.&nbsp;빨강 머리에 빨강 코트, 빨강 구두를 신은 여자가 새벽마다 이부자리에&nbsp;누군가를 눕혀놓고 흰 이불을 덮어준 채&nbsp;얼그러진 화장을&nbsp;하고서 또각또각 출근하는 장면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인기척 없는 이불 속 인물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nbsp;언제나 이인분의 밥상을 차린다. 심지어&nbsp;느릿느릿 움직이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천천히 흔드는 섹스도.&nbsp;기이하면서 고독한 지하방 인생.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말이 안되는 퇴폐적 시나리오는 사실 어디선가 졸업작품으로 감상했던 독립영화 장면을 나름 포착해온 거였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붉은 빛이나&nbsp;불안한 듯 흔들리는 흰 조명,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카메라 기법이 필요했던 거였다. 어떤 애가 F.I/F.O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읽기가 부담스럽다고 했고 거기에&nbsp;교수님이 종지부를 찍었다. 교수님은 우리의 빈약한 글에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 신사였다. 나는 내용상 의도였다고 어쭙잖은 변명이라도 하려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못했고,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나는 내가 쓴 작품에 타당성을 주장하지 못했던 자책을 안고 지금까지 지내왔다. 왜 그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설사 그게 타인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대도 나는 말해야 했던 것이다. 알지만 그게 필요했다고, 나는 이 시나리오가 영화가 된다면&nbsp;잦은 F.I/F.O이 등장해도 좋다고 해야 했다. 그게 내 의도였으니까.
&nbsp;
여자아이(줄리)는 옆집에 사는 남자아이(브라이스)가 좋다.&nbsp;항상 남자아이를 주목하고 다른 여자 애에게 다정하거나 친절하면 신경 쓰인다. 그래서 졸졸 쫓아다니며 묻고, 관찰하고, 신경쓴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귀찮다. 왜 날 따라다니는지 어째서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는지 짜증날 지경이다. 마을 어귀 무화과 나무에 올라가 나더러 올라오라고 소리친다. 친한 척 하고 날더러 자꾸 뭘 해주려거나 해달라 한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가 나무 위에 올라와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 나무에 오르면 세상이 짠 하고 펼쳐지면서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그것들이 다 발밑에 있는 듯 행복한데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른들이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거기에 새집을 짓는 것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줄리네 꼬꼬들은 달걀을 참 많이 낳는다. 동네 아주머니는 줄리에게서 그 달걀을 사기로 하고, 줄리는 종종 꼬꼬가 낳은 달걀로 용돈을 번다. 브라이스가 이 달걀을 먹어봤으면 좋겠다. 내가 기르는 꼬꼬가 낳은 달걀은 식구들이 다 못먹을 정도로 많다. 브라이스에게도 갖다 줘야지. 브라이스는 줄리가 주는 달걀이 달갑잖다. 줄리네는 돈이 없는 걸까. 어째서 정원 관리를 안하고 저런 곳에서 닭을 기르는지 모르겠다. 더러운 정원에서 사는 닭이 낳은 달걀에는 균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족 누군가의 말에 줄리가 매일 가져다주는 달걀을 버리기로 한다. 줄리는 브라이스가 내다버린 달걀을 발견한다. 처음부터 어째서 말하지 않았니. 줄리는 다시 심하게 상처받는다. 이제 정말로 브라이스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줄리네 아빠는 정신이상을 앓고 있는 동생(줄리의 삼촌) 때문에 많은 돈이 든다. 그래서 정원을 가꾸는 데에 큰 돈을 들일 수가 없다. 줄리의 부모님은 종종 다투지만, 줄리도 아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느 날 아빠를 따라 삼촌을 만나고 온 다음, 알게 된다. 아빠가 옳다는 것을. 도서관에서 브라이스를 본다. 눈길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외면하기로 했지만 우연히 브라이스가 친구와 하는 대화를 듣게 된다. 그들은 내 삼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브라이스의 친구가 말한다. 난 그 아이의 삼촌이 그렇다는 걸 들으니까 그 아이가 그런 이유를 알겠다. 그 아이가 이상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줄리는 완전히 상처 받는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동조해버리는 브라이스 때문에. 이제 브라이스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nbsp;
브라이스는 줄리의 무화과 나무, 달걀, 삼촌 이야기를 모두 안 이후로 그녀를 무시하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애의 뒷모습과 표정에 늘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그 애는 날 없는 사람처럼 대한다. 삼촌에 대한 일로 많이 기분이 상했을 거야. 줄리가 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못지 않게 속이 상한다. 어쩌지. 아 어쩌지. 이제 줄리는 더더욱, 더군다나 나를 봐주지 않는다.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녀는 매몰차게 나가 버리고 친구들에게 비웃음만 듣는다. 그래도 괜찮다. 어떻게 하면 줄리의 화가 풀려, 예전처럼 나를 귀찮게 하며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줄까. 어떻게 하면. 딱 하나 있다. 내가 줄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줄리를 위해 무화과 나무를 심기로 한다. 그녀의 집 정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자랄 때까지는 날 용서해주지 않을까. 그래, 무화과 나무를 심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 그녀가 나온다. 우리 같이 나무를 심는다. 우리. 그애가 내 정원에 묘목을 가져왔다. 무화과 나무를 심고 있다. 세상에, 브라이스의 눈이 달라 보인다. 아무래도 여전히 브라이스와의 첫 키스 기회는 지나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심은 나무가 자랄 때까지. 예쁜 나무와 다정한 우리들과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마을 풍경. 추억은 그런 것들일 것이다. 사람과 풍경, 인상 속에 숨어있던 많은 시간들. 그것을 편리하게 추억이라는 두 글자로 뭉뚱그려 부리는 것일 테다. 브라이스와 줄리가 나무를 심는 광경은 내가 가진 모든 추억을 압도할 만큼 멋졌다. 함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그 시절에서 해방된 건 언제였을까. 그때, 내가 아홉 살이고 그가 열 살이었을 때에 소년은 종종 옷걸이로 맞았다. 뭘 잘못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소년은 다락방으로 기어서 도망갔다. 우리집 하고 똑같이 생긴 방인데도 소년의 집에 들어갔다가 무척 경이로운 기분을 느꼈다. 거기 짜부러진 옷걸이가 아무데나 널려 있었다. 옷이 걸린 것과 매로 변용된 옷걸이. 아 옷걸이.
&nbsp;
기억은 때로 단편적이고, 그&nbsp;단편적 기억을 차례로 늘어세우면 그것이 종종 전부가 된다. &lt;플립&gt;은 작은 여자아이와 작은 남자아이의 순수하고 화사한 연애 이야기지만, 순수한 발랄함과 아직 어린 마음과 공존하는 영악함을 보자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때 나도 그가 전부였었다. 그를 보기 위해 잠을 자고, 일어나고, 피아노를 치고, 공부를 했다. 참 작은 소년, 소녀였는데(당연히 우리 둘 뿐인 건 아니었다, 동네에는 족히 한 다스는 될 법한 소년,소녀들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주 다 커버린 어른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감정은 커서는 가질 수 없는 거였다. 학생 때의 사랑은 기념일을 챙기는 데에 열올리는 "보여주기식 사랑"이었고, 성인이 된 후의 사랑은 상대가 아니라 나를 더 가여워하는 "나를 향한 사랑"이었다. 참 예뻤다, 어린 시절.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꽈배기 공장이 있고 친구들이 엄청 많던 동네. 나는 그곳에 살았던 어린시절을 따뜻하고 안락하고 조용하지만 함께 뛰어놀 친구가 없는 아파트에 살던 시절보다 훨씬 영예롭게 기억한다. 누구에게나 아련하게 떠오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을 불러오는 것은 자유,&nbsp;그 시절을&nbsp;빨강 머리를 고수한 주근깨 빼빼 마른 앤이나 안소니와 테리우스 사이를 방황하던 캔디, 이집트를 호령하던 피부 검은 왕비 클레오파트라, 오스트리아 공주에서 프랑스 왕비가 된 비운의 여인 마리 앙투와네트와 함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책이나 TV 속에 존재했지만 그 시절, 온 동네를 휘감으며 몰려 뛰어다니던 우리는 오로지 우리 아니, 내 안에만 살아있다. 불러올 추억이 있다는 것은, 이미 몸이 다 커버린 여자가 아주 작아서 서로 부딪칠까 겁이 났던 작은 손을 기억하는 일은, 기가 막힐 만큼 매혹적인 일이다. 강렬하면서 신비롭고 그래서 아무 데나 가라앉아 버려도 좋을 만큼 황홀한 일이다. 안녕, 내 어린시절. 그리고 당신의 어린시절. 내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는 어린 날의 시간들이 버겁지만 보물이다. 이건 정말이지 감동이고 매혹이고 황홀 그 자체다. &lt;플립&gt;을 볼 때만큼은 어깨에 얹힌 어른의 무거운 짐 살며시 내려놓고 잠시나마 줄리와&nbsp;브라이스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지. 내가 줄리라면 브라이스가 있을 것이고, 브라이스라면 반드시 줄리도 옆에 있을 것이다.
&nbsp;

브라이스가 줄리를 잃지 않는 법
&nbsp;
1. 세상이 한 눈에 보인다는 줄리(가 좋아하는)&nbsp;무화과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함께 올라가줄 것
2. 줄리네 집 정원에서 자란 꼬꼬들이 낳은 달걀을 맛있게 먹어줄 것
3. 줄리가 사랑하는 삼촌, 줄리의 삼촌을 사랑하는 줄리의 아버지, 그로인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될 줄리의 가족을 존중할 것]]></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71/83/cover150/9308181016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323142603</link></image></item><item><author>아이리시스</author><category>무지개 너머</category><title>기적은 우리 모두의 것 - [포미니츠 SE (2disc)]</title><link>http://blog.aladin.co.kr/irisis83/5339046</link><pubDate>Sat, 07 Jan 2012 2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irisis83/53390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9659425X&TPaperId=533904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01/88/coveroff/35224307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9659425X&TPaperId=53390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포미니츠 SE (2disc)</a><br/>크리스 크라우스 감독, 모니카 블리브트리우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12월<br/></td></tr></table><br/>내가 자고 있을 때 엄마는 홈쇼핑에서 검은콩과 땅콩&amp;호두 맛의 대용량(크다는&nbsp;뜻 아니고 많다는&nbsp;뜻)&nbsp;두유를 구입했다. 주문했으니 택배 아저씨를 외면하지 말고 잘&nbsp;받으놓으라는 지침이 있었는데 다행히 내가 아니라 엄마가 두유를 맞이했다. 무거운 박스를 경비실에서 낑낑대며 들고올 뻔 했으니 이런 구세주여. 스물 네 개들이 네 박스.&nbsp;자그마치 아흔 여섯 개. 내가 허리띠 졸라매야 되니까 당분간 홈쇼핑에서 뭘 좀 사지 말라고 바로 어제 얘기했는데, 푸하하, 엄마 또 질렀어ㅋㅋㅋ&nbsp;이왕 산 거 맛있겠네,&nbsp;식전에 하나 받아들고 낼름 빨대 꽂아 몇 모금, 그리고나서&nbsp;김치볶음밥을 먹었는데 그만 배탈이 나는 바람에&nbsp;먹다 남은 두유는 식탁에 놓고 화장실 다녀온 다음 혹은&nbsp;한끼 식사 더한 후 또 한 모금, 다시 배가 살살 아파질 것 같은 기우에 또 식탁 위. 이게 바로 하나를 세 개처럼 먹는 방법이다. 96개를 언제 다 먹을 거며, 이걸 다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탈이 날지 무서워졌다. 그리고 &lt;포 미니츠&gt;를 봤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보려고 고른 영화지만 크리스마스즈음부터 연말까지 북적북적 부웅 하고 뜬 마음은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다. 정작 크리스마스는커녕 연말에도 단 한 편의 영화조차 보지 못했다. 
&nbsp;
두유와&nbsp;&lt;포 미니츠&gt;는 어쩐지 잘 어울려서 하루쯤 밥 안 먹고 커피 안 마시고도&nbsp;거뜬할 것 같다. 행복하다. 전기매트의 온도를 한껏 올려 엉덩이가 뜨거울 만큼 따뜻한&nbsp;곳에 앉아있자니&nbsp;안락함에 벅차오른다.&nbsp;노트북 옆에는 읽어볼까 하면서 방금 책장에서 뽑아온 버지니아 울프의 &lt;자기만의 방&gt;이 제발 날 좀 읽어주세요, 소리친다. 못 읽어줄 것 같은데, 새삼 너무 두꺼워보여.&nbsp;
&nbsp;
처음에는 4분이라는 제목을 가진 촌스러운 영화에 대해 써볼 생각일랑 없었다. 제목이 이게 뭐야. 영어로 바꾼다고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 적막함을 못 이겨&nbsp;틀어둔 영화가 30분쯤 혼자&nbsp;재생되고 있는 걸 몇 번&nbsp;건성으로 눈길 주었던 영화다. 껌뻑이는 눈으로 보다가 반쯤 눈을 감기도 하고 졸고&nbsp;그러다 푹 빠져버렸다. 일어나서 맨 정신으로 봐야겠다 하면서 다시 일어나 끄고 잤다. 영화는 무의식과 무지로도, 혼돈과 적막 속에서도 봐지는 거란 걸 깨닫고는 경이로웠다. 피아노 연주(연습)가 나오기 전이었는데도(지리한 스토리였는데도)&nbsp;홀랑 빠져버린 것을 두고 그 흔한 "감동"이라고도 못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nbsp;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음악영화가 좋았다. 평범한 사람의 천재성을 아름다운 하모니와 연주의 혼합으로 그릴&nbsp;때 감동은 뻔할 만큼 닳아있는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꽤 오래 배웠다는 것과 학창시절&nbsp;예고나 음대를&nbsp;진지하게 생각했었다는 사실만으로 피아노는 특별했다. 클래식을 들을라치면&nbsp;꼭 피아노로 연주된&nbsp;곡만을 원했다. 씨디도 그렇게 골랐다. 그런데도&nbsp;내 인생이 아니 내가&nbsp;피아노를&nbsp;피해버린 건, 피아노를 전공하면 정말 하고 싶은 작곡도 배울&nbsp;기회가 생길거라는 사실을&nbsp;염두에 두면서도 나는&nbsp;종종 피아노를 지겨워했고, 악보 없이 즉흥연주 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nbsp;천재들은 다 그렇게 하던데, 난&nbsp;악보 없이는&nbsp;아무런&nbsp;건반도 누를 수 없다는 걸&nbsp;알아차린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음악천재가 아니었다. 악상이 절로 생각나고 마음 가는대로 변조하여 연주하는 황홀스런 연출은&nbsp;진정 천재적 피아니스트에게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orz
&nbsp;
예고와 수능 예체능반과 예술대 음대 같은 것들의 특수성을 스폰지보다 가볍게 버린 나는 딱히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 길이 내 길이 될 수도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지만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나 두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를 보면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종종 떠올려보는 것 외에 내 인생은 피아노와 어떠한 관련도 없다.&nbsp;엄마가 거실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피아노를 자꾸 버리자고 하는 것과 싸우는 일 말고는. 
&nbsp;
나와는 반대로 &lt;포 미니츠&gt;의 제니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도 다른 길로 가기 위해 악착같이 애쓰는 아이다. 피아노를 쳤었고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아빠가 원하는 것만을 칠 수 없었던 그녀는 피아노를 버렸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크뤼거는 어느 날 행동과 말투가 거칠고 난폭해서 교도관조차 혀를 내두르는 냉소적인 제니를 만나고는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nbsp;거부하는 그녀에게 억지로 피아노를 가르치려 한다. 둘이 처음 만난 날 여느 때처럼&nbsp;분노와 발작에 휩싸여 담당&nbsp;교도관을 때려눕히고 감금되는 제니가 안쓰럽고도 아쉬운 크뤼거는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장에게 제니의 피아노 콘테스트 참가 허락을 받아낸다. 이제 매일 제니와의 피아노 연습을 진행해야 하는 크뤼거는 피아노 뿐 아니라 아직 작고 여린 여자아이의 투정과 상처, 외로움과 침잠하는 자아까지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한다.&nbsp;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좋아지는 관계에도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제니는&nbsp;시기하는 재소자들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하고&nbsp;교도관은 연습 중에도 수갑을 풀어주지 않는다.&nbsp;거대한 벽 앞에 닫혀가는 서로의 마음들.&nbsp;
&nbsp;
제니가 교도소에 온 이유, 크뤼거가&nbsp;오랫동안 매일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이유가 설명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황홀하고 아름답다.&nbsp;나이를 뛰어넘은 두 여자의 우정, 서서히 열려가는 마음과 싹트는 믿음, 서로의 비밀공유, 예술혼으로 결합되는 잔잔하면서도 안고 싶어지는 거대한 피아노 선율까지 감동의 준비와 발사를 온몸으로 갖춘 완전한 영화다. 눈치 챘겠지만 영화는 내내 제니의 첫 연주 "4분"을 향해 달려간다. 그녀가 제 안의 슬픔, 분노, 오열, 자아, 고독을 온전히 꺼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크뤼거가 되어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며 가슴 졸인다. 때로는 제니가 되어 연주를 하기도 하고 작은 가슴 안에 흐르는 예술의 혼을 쥐어보려 애쓰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nbsp;"4분"은 더없이 황홀했다고 많은 리뷰가 쓰고 있었다. 새삼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연주였다고 쓰지는 않으려 한다. 그저 연주, 누구보다 멋졌지만 누구와도 달랐던 미숙하기만 했던 말썽부리는 발작쟁이 제니의 연주만을 가슴 깊숙이 기억할 것이다. 
&nbsp;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는 않지만 어느 곳에서나 온다. 가슴 안의 감정들을 폭발시킬 수 있을 때에, 어떤 것을 제 진심을 다해 온 마음으로 잡으려 할 때에, 같지 않지만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니가 무엇을 하든 내가 지켜보고 웃어줄 것이라는 마음이 집결할 때에 비로소 기적은 일어나고 감동은 탄생하며 한 편의 영화는 사소하기 그지없을 지라도 내게 최고가 된다는 것을, 아직 모자란 나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2012년은 겨우 일곱 번 째 날을 지나고 있을 뿐이니까. 앞으로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계획은 사소하고 큰사람이 되기를 바란 적 없지만 감동있는 해가 되기를, 감동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꿈이 하늘에 닿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감동이었음을 뒤늦게나마 전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01/88/cover150/3522430787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9659425X</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