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의 출간은 나뿐 아니라 많은 독서애호가들에게 반가웠을 것이다. 각 출판사마다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 문학 전집을 퍼내지만 정작 독자의 입장에서는 겹치는 작품도 많고 권수도 방대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창비는 달랐다. 국가별로 구성된 점이나 단편을 중심으로 엮은 점이 반가웠다. 아홉 개의 국가들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결국 모두 읽게 될 테니 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가장 끌리는 곳부터 손 내밀어 보기로 했다. 마침 내가 여행을 다녀온 프랑스와 영국이 포함되어 시작은 한결 수월했다. 경험상 프랑스 문학은 어려워서 그나마 귀족적이고 로맨틱할 것 같은 영국을 택했다. 가본 나라가 영국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미국을 택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영미 문학이 편하고 좋다. 늘 읽으려고만 애썼지 정작 읽은 작품은 몇 되지 않아 따지고 잴 필요도 없이 읽어나갔다. 최근의 독서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고, 덕분에 고전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깨달았다. 영국편 <가든파티>는 여덟 작가의 열 한 작품을 담는다. 고전이라고 하지만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중엽까지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쓰인 작품들이라 특별히 고루하거나 낯선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점도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의 완성도를 드높이는데 한 몫 한다. 아마 실린 단편 하나하나가 소중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찰스 디킨스나 토머스 하디, 버지니어 울프, D.H 로런스는 나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들은 내 학창시절을 지킨 몇 안 되는 작가들에 속한다. 네 명의 작가가 완전 소중한 반면, 또 다른 넷은 새롭다. 작품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이 가진 성향이나 문체, 또 다른 작품들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 나는 되도록 <가든파티>에 실린 텍스트 중심으로 글을 구성해나가려 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화려한 향연이다 보니 주제나 소재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하지만 억압되어 있던 사회가 급변하는 틈에서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으며 탄생하다보니 대부분의 작품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다.  

<신호수>는 철도역의 외딴 초소에서 신호등을 관리하는 신호수의 일상에 유령이라는 존재를 등장시켜 삶의 고독함과 끝없는 기다림을 통해 자신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던 무감각한 자의 전도된 비극을 그린다. 다른 작품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그라든 팔>은 돈 많은 농장주인 남자를 둘러싼 본처와 후처, 두 여인의 기다림과 고독을 통해 성과 계급의 문제를, <진보의 전초기지>는 섬을 지키는 두 군인의 나태와 욕망을 통해 지독한 전쟁을 겪은 세대의 두려움과 절망을 보여준다. 제임스 조이스의 두 작품 <애러비>와 <구름 한 점>은 각각 아동기와 성년기를 통과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인간이 거쳐야 하는 필수 시기의 일상성과 깨달음에 대해 다루어, 당시의 허무주의나 오갈 데를 몰라 갈팡질팡하는 이들의 내면을 잘 통찰하고 있다. 버지니어 울프의 <큐 가든>은 아름다운 이미지가 깔려있지만 줄거리보다 의식의 흐름에 치중한 탓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반대로 <유품>은 흥미 있게 읽었다. 아내의 유품인 일기를 읽으며 남편이 느낀 배신감이 주된 줄거리인데 아내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숨은 사연을 짐작하면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릴 정도의 아픔이 배어나는 것 같다. D.H 로런스의 <차표 주세요>와 <말장수의 딸>은 역시 작가 특유의 주제인 남녀관계나 성문제를 피해가지 않는다. 자칫 선정적일 수 있는 민감한 소재로 남녀의 역할을 분명히 가르면서도 새로운 성 역할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한편 유일하게 단편 전문작가라 해도 과언 아닌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품이면서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의 영국편 표제이기도 한 <가든파티>는 삶과 죽음, 계급과 윤리의 문제를 소녀 로라의 시선을 통해 다소 이중적 시선으로 그린다. 가든파티를 열만큼 호화스런 중산계급의 딸 로라가 죽어가는 사람을 직접 마주하며 마침내 깨달은 진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느 한 편에선 가든파티가 열리고, 또 다른 한 편에선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란 걸 깨달았을까. 이 작품이 주는 열린 결말은 내가 한 번쯤 로라가 되어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지붕 위의 여자> 역시 여자의 몸을 엿보는 남자 인부 셋을 내세워 성과 계급이 얽혀드는 지점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배경과 소재가 모두 다른 작품이지만 놀랍게도 비슷한 분위기와 이어진 주제들이 엿보인다. 억눌린 이들의 고립감과 고독, 외로움이 전면에 깔렸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일라 치면 다시 비극으로 치닫는 상황에선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말 그대로 빅토리아 시대에서 세계대전을 거치며 현대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소설들. 급박한 변화는 부적응을 낳기에 충분했고, 전쟁이 준 폐해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가슴 하나하나에 스펀지처럼 스며들었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은 기껏해야 스스로 고립되거나, 비극적 인생을 맞이하거나, 서로의 몸속에서 위안을 찾는 것뿐이었다. 페미니즘 작가가 아니라도 여성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나 D.H 로런스, 도리스 레씽이 여성과 계급에 관련된 작품을 여럿 쓴 것도 그들만의 위안이나 치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계급사회가 평등사회로 바뀔 때, 남성 우월적 가부장제 사회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사회로 변할 때, 생산 중심의 사회에서 소비 중심의 사회로 탈바꿈 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이겨냈을까. 이겨내지 못하는 이들은 또 어떻게 살았을까. 영국편에 실린 작품 하나하나는 모두 영국의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를 사진처럼 잘 포착하고 있다. 보통 한 권의 책에 여러 단편이 엮이는 것이 통설이지만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주제나 특징 등 그 관련성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찾아내거나 글로 표현하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창비 세계문학> 영국편의 구성은 깔끔하고 탐스럽다. 다양한 이야기를 거쳐 하나의 주제에 가 닿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영국편을 통해 다른 국가의 작품들에 호기심과 기대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고전은 그래서 고전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읽혀도 당시의 시대와 삶을 느낄 수 있기에 오래 그리고 널리 읽히는 것이다. 영국뿐 아니라 대한민국 땅에서도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다. 어느 때보다 급박한 사회변화 속에 내던져져 살아가고는 있지만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시대에 태어나 절대적 가난과 정신적 고통 같은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나는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마치 직접 살아내기라도 하듯이 생생히 겪을 수 있는 시간은 독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는 누구의 삶도 내 것이고, 그 곳이 어느 시대의 어디든 모두 내 것이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지금부터 당신을 가든파티로 초대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 응하든 응하지 않든 그건 당신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