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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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미 시리즈 열풍을 몰고 다니는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내겐 지난해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후 두 번째 요코미조 세이시 作이다. 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연속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요코미조 세이시를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작가가 현시대인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 것이다. 정작 작가는 내가 나기도 전인 1981년에 영면했다.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가는 <밤 산책>을 전후시대인 1948년 2월부터 1949년 12월까지 잡지에 실었다. 그런데 놀랍다. 지금 읽혀도 전혀 손색없는 멋진 추리소설이기 때문이다. 전후세대다운 탐미적 문체가 매력적이고, 현 과학의 잣대로 보면 한없이 시시해질만 한데도 여전히 탄탄한 논리를 발휘하는 트릭은 쓰인지 60년이나 지났다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만큼 치밀하다.

이 소설은 밤에 걸어다니는 병을 가진 후루가미 가문의 끔찍한 연쇄살인을 추적한다. 어느날 후루가미 가문의 딸 야치요에게 '나 조만간 그대에게 가서 결혼하리다'라는 편지와 함께 목이 잘린 꼽추의 사진이 배달된다. 이후 어느 바에서 전후의 유명한 꼽추화가 하치야가 총을 맞는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바로 야치요. 그녀는 왜 하치야에게 총을 쏘았을까. 마침 야치요가 꼽추화가 하치야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면 그 일은 그저 헤프닝으로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시작이었다. 하치야와 결혼을 선언한 야치요가 그를 후루가미 저택으로 초대하자 이상징후를 느낀 나오키는 삼류추리소설을 쓰는 작가인 나, 야시로 도라타에게 함께 저택에 가달라고 부탁한다. 나오키의 아버지 데쓰노신을 비롯, 센고쿠 집안은 대대로 후루가미 가문의 가신혈통이다. 저택에는 야치요를 비롯해 몇 년 전 죽은 후루가미 오리베를 대신하여 그 자리를 차지한 데쓰노신, 엄마 류, 아홉 살 많은 오빠이자 오리베의 아들인 모리에, 그리고 나오키가 함께 지낸다.

야시로가 나오키의 부탁으로 저택을 방문했을 때, 머리 없는 꼽추의 몸사체가 발견된다. 꼽추화가 하치야 뿐 아니라 후루가미 가문의 유전병으로 모리에 또한 꼽추였기 때문에 사체의 신원은 쉽사리 밝혀지지 않는다. 과연 사체는 누구이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또한 후루가미 가문의 야치요나 데쓰노신, 나오키는 모두 밤에 걸어다니는 병, 몽유병을 갖고 있다. 누구든 언제라도 범인이 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사건의 실체는 미궁으로 빠진다. 죽은 사람이 꼽추이므로 희생자는 하치야 아니면 모리에가 되는데 사건 후 둘 모두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체의 다리에서 발견된 상흔은 야치요가 저격한 하치야와도, 모리에의 유모가 말하는 모리에의 숨겨진 상처와도 모두 일치하는 부분에 있다. 도중에 야치요가 사라지면서 사건은 다시 중지된다.

야치요는 귀수촌에 있다. 사건의 전말은 공개되지 않은 채 다시 장소를 옮기는 소설은 또 한 번의 끔찍한 살인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으로 접어든다. 몽유병 증세로 밖에 나간 야치요가 머리 없는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야치요와 체격이 비슷하고, 방금 전까지 야치요가 입고 있던 잠옷을 입은 몸의 사체는 과연 누구의 사체일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때 나타난 우리의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그는 어떤 추리로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가. 또 살인자는 무슨 이유로 머리만 가져가는 이런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걸까. 야치요를 둘러싼 나오키와 모리에의 불꽃튀는 결투. 그 속의 탐욕과 질투를 눈치챈 삼류추리소설가 야시로는 과연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드러나는 비밀은 충격적이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전작들이 그런 것처럼 가문에 얽힌 추악한 비밀의 복수이자 증오가 이번 사건을 만든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비밀이 숨겨진 것인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 사람만 안다. 물론 성급하게 마지막 페이지만을 넘겨본 사람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밤에 걷는 병에 걸린 후루가미 일족의 불륜과 질투로 얼룩진, 깔끔한 전후 추리소설의 탐미를 맛보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다. 머리 없는 시체, 몽유병, 꼽추. 이 세 가지 요소만으로도 어딘지 모르게 오싹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참, 나오키의 숨겨진 여인 시즈카의 정체와 야시로와 야치요와의 관계 또한 끝까지 읽어야만 알 수 있는 진실이다. 밤에 산책하지 말자. 대신 <밤 산책>을 읽는 것은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