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조지오웰, <동물농장>

[무지와 무책임이 낳은 상실과 아픔.]


독일 나치 히틀러의 부하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법정에 섰을 때, 수백만 유대인들의 사라진 목숨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맡겨진 일을 지시에 따라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부하의 정당한 의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
조지오웰 <동물농장>에 나오는 동물들도, 글(계명)을 읽지 못하는 무지함도 있었지만, 왜 수퇘지 나폴레옹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는지, 그들의 농장 생활이 언제부터 고생스럽고 피곤한 삶으로 변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나폴레옹이 하는 말을 의심없이 듣고, 믿고, 행동했을 뿐이다. 간혹 '이것이 우리가 꿈꿔온 평등한 농장인가' 하다가도 이내 '생각하기'를 주저했다.

한편, 나폴레옹과 그의 일당들 역시, 처음에는 선한 의도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변질된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농장 주인 존즈가 자신들을 다스릴 때 느꼈던 동물들간의 우애와 동지의식,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수고하던 그 시절을, 이제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평등 그 이상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서로에 대한 '책임'을 더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p117)

-
이렇듯 평등의 개념이 껍데기만 남고, 그 본질적인 의미는 사라져버린 분위기 속에서 '소수'와 '다수'가 탄생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나는 주로 다수(희생되는 동물들)의 편에 서 있었다. 조지오웰 역시, 다수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기 위해 이 글을 쓴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시대의 나폴레옹은, 스탈린은 누구일까 살피기 바빴다.

그런데 후기를 다시 정리하며 드는 생각은, 소수든 다수든 어느 한 편에 서 있는 것이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동물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약육강식 생태계가 사실 인간들의 세계에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자는 약자를 괴롭히고, 약자는 또 자기보다 더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이 이 시대가 가진 아픔이다. 그래서 소수가 괴롭히는 다수는 또 다른 소수가 되어 자신들보다 더 무지하고 힘 없는 또 다른 다수를 괴롭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가인은 "모릅니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자입니까"(창4:9)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인간이 서로에 대한 '책임'의식이 사라지고, 자신과 타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될 때, 공동체는 상실과 아픔을 겪게 된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무지와 무책임이 낳은 진정한 국가의 상실과 아픔을 목도하는 현재, <동물농장>이 주는 교훈과 유익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인간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 인간은 서로를 책임지는 존재다.

나는 인간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서 어떤 책임을 지며 어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