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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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해보지 않고 상처도 받지 않는 것보다

사랑을 해보고 상처도 입는 편이 훨씬 더 좋다는 어떤 작가의 글을 읽었다.

아마 이 작가는 평생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았으리라.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러고 나서 그것이 끝나고 난 뒤의 무참함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말은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만일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

생애 단 한 번의 허용된 사랑이라고 해도

그 단 한 번의 사랑이 무참히 끝나고 말 것이라면 선택하지 않겠다고.

그저 사랑을 모르는 채로 남아 있겠다고.

p. 152



 

이 구절때문에 공지영의 고등어는 오랜 시간 마음 속에 담겨 있던 소설이었다.

고등어를 처음 만난건 1994년, 20년이 훌쩍 넘어 세기가 바뀌었다.

그땐 가슴으로 이 구절을 읽었더랬다.

은림이처럼 나도 가슴 아픈 사랑을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시절이었으니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해한다.

내 안에 있는 감수성이 사라진걸까?

그럼에도 고등어를 읽는 동안은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름답지만 괴로웠던 그때였기에, 평소라면 술술 넘어갈 수 있는 분량이었음에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때의 추억들을 곱씹어본다.

추억은 또다른 추억을 만드나 보다.


다른 내용들은 거의 기억을 잃어버려 다시 읽는 동안 아...그랬었구나 새삼 새롭게 읽었더랬다.

어찌보면 여경의 말대로 이상한 방법으로 과거에 집착하고 이상한 방법으로 서로에게 상처입히고 있는 구질구질한 이야기다.

스물한 두 살의 나이에, 강가에 나가서 강물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조차 죄책감을 가졌던 세대를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80년대를 몸으로 겪은 세대가 아니라서 그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소설속 배경은 삐삐가 등장하는 84년.

80년대도 90년대도 겪어보지 못한 지금의 세대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가 가장 궁금했다.


왜 그 많은 제목중에서 하필 '고등어'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은

소설속 내용과 작가후기를 통해 고등어가 상징하는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오래전 출간된 책이라는 편견때문인지, 작품 속 배경때문인지 약간 올드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속에서도 내 맘속에 와닿는 빛나는 표현들이 있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읽는 동안 내내 우울해진다.

20년전 읽을 당시의 상황도 그랬지만, 그들의 사랑, 그리고 그럴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때문이었나 보다.

어지간해서는 재독하는 일이 거의 없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마주 앉아 담배를 피울 동안이라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그토록 간절하게 붙잡고 싶었던 것은 담배가 아니라 단 몇 분간의 시간이었다. 생선회칼로 저며낸 듯한 그 얇고 투명하고 짧은 시간.

- P51

산다는 것은, 이런 안개 낀 밤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아주 가까운 앞과 아주 가까운 뒤만 볼 수 있는 일 같은 것, 아니다. 어쩌면 안개 낀 밤보다 더 뿌연 일이리라. 왜냐하면 산다는 것은 한 치의 앞조차도 보여주지 않는 일이니까 말이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안개 낀 밤보다 그러니까 더 지독한 것인지도 모른다.

- P148

사랑을 해보지 않고 상처도 받지 않는 것보다 사랑을 해보고 상처도 입는 편이 훨씬 더 좋다는 어떤 작가의 글을 읽었다. 아마 이 작가는 평생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았으리라.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러고 나서 그것이 끝나고 난 뒤의 무참함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말은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만일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 생애 단 한 번의 허용된 사랑이라고 해도 그 단 한 번의 사랑이 무참히 끝나고 말 것이라면 선택하지 않겠다고. 그저 사랑을 모르는 채로 남아 있겠다고.

- P152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 P255

그녀의 속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시간들은 뜨거워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 P287

- 작가후기
나 역시 한때 그들과 함께 넉넉한 바다를 헤엄쳐 다니며 희망으로 온몸을 떨던 등이 푸른 자유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등이 푸른 자유를 포기할 만큼 소금에 절여져 있지는 않았으니까.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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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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