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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평점 :
절판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p.109(이사야서 11장)
인간들 마음상태가 겨우 이 정도이니 어쩔 수 없이 하느님도 천국과 지옥이란 상벌을 정해놓고 다스려보시는지는 몰라도, 내 생각으로는 하느님께서도 다시 한번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직 철이 안들어 그런지 아니면 철이 들어 그런지 상벌이 없는 세상은 그리 어려운 건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p.134
그가 바라는 세상은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다. 상벌이 없는 세상. 하느님이 정해놓으신 세상에 상벌이 있다면 하느님도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한다.
모든 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이든, 알라이든, 예수님이든 칼을 들게 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p.151
저자의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평화다.
나무와 바위한테 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하느님의 자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p.178
저자의 하느님은 나무요, 바위요, 풀이요, 인간이요, 하느님이요, 이 모든 것이 뒤엉킨 우주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했거든요. 그래서 그는 진리대로 살다보니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고요.......자유라는 게 이렇게도 무서운 것이네요.-p.190
조금 불편하고 어울려 살며, 조금 덜 가지고 나눠 살자고 하던 저자가 자유에 이르러 자유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평화와 자유...자유...
어디서나 언제나 인간은 아무도 고통 없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p.185
[레미제라블]을 읽고나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안목에 대한 저자의 말이다.
결국 우리는 평화라는 환상을 어떻게든 현실에서 이루어보려 하지만 안된다.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한 이후 결코 한번도 평화는 없었다. -p.53
평화란 무엇일까? 노예처럼 숨죽이며 겨우 목숨만 이어가는 삶이 평화가 아니라면 투쟁으로 평화를 쟁취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싸움은 정당한 것일까? 그리스도의 비폭력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저자는 묻고 있다. 그도 고민중이다. 고통이 따르는 자유?, 자유가 필요한 평화?...평화에 필요한...? 마음과 몸은 한 덩어리이고, 나와 지구는 한 덩어리인데 지구는 한번도 평화롭지 않았는데 내 맘은 평화로운 때가 있지 않았던가...평화는 심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전쟁 없는 외적인 상태를 이르는 것인가? 혹시 우리가 평화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모르는 것 투성이다. 섣불리 답을 내리지 않으련다.
어쨌든 저자의 말대로 한번도 평화가 없었던 이런 세상에서 동물처럼, 식물처럼, 그런 자연처럼 어찌 살아갈까? 고민중인 투쟁은 뒤로 두고서라도 오늘 어찌 실천할까? 덜 소비하고, 더 나누고, 자연을 자연으로 두고 그리고...이 책 속에선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실린 단편 같은 장면들이 몇 차례 나온다. 가난한 이웃이 알고보니 예수였다는..."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장)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람도 자연도 모두 하느님이니 하느님 대하듯이 고개 숙이고, 나누고, 예배하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사춘기 때 나는 톨스토이의 책을 읽고 실천했다. 억지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여겨져서 실천할 수 있었다. 술취해 누워 있는 아저씨를 보다가도 예수께서 저런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시면 나는 어쩔까, 이 추위에 저가 얼어 죽기라도 하면 어쩔가...어디에서 용기가 솟는지 술취한 아저씨가 무섭지 않고 가엾게 보였다. 아저씨의 어깨를 치며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그러고보니 그때는 두려운 게 별로 없었다. 이웃들이 죄다 예수가 되었더니 두려운 게 없어졌었다. 내게는 하느님이 무서운 분이 아니었나 보다. 하느님이 이웃이 되고, 이웃이 하느님이 되었구나.
읽는 내내 조금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슬픈 것 같기도 한 저자의 목소리가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와 자연과 아름다움과 정겨움으로 가득찬 이야기 속에 전쟁과 폭력과 이기와 편견이 마주 서 있었다. 내 사는 곳 이야기라 편하지 않은 게다.
그런 불편함 가운데에서도 사춘기 때의 순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렇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어디에 숨어 있다 불러주기만 기다리는 순수와 평화가, 우리들의 하느님...이 손을 잡는다. 아야, 너무 꽉 잡았잖아요? 이렇게 잡지 않으면 제가 놓쳐 버린다구요? 그래요, 저는 자주 놓쳐 버린 것 같아요. 다시 잡아요, 제가 먼저 잡을께요. 생각보다 부드러워요, 하느님의 손...하느님, 이렇게 손을 잡고 걸으면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닿게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