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웃 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 들려도 왕래하지 않는 곳그래도 만족하는 마을, 그곳이 이상향이라고 노자가 말했지. 난 그런 삶이 충만한 삶이라고 생각했어. 더 이상 무언가 갈망하지 않는 상태가 아닐까 하고.

 

난 어릴 때 지금 사는 동네에서 강을 건너면 있는 곳에 살았어. 근데 초등학교가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 있어서 집에서 3,40분을 걸어 학교를 다녔어. 그 때문에  마을의 어제를 나는 알아.

 

한쪽 팔만 벌려도 서로 닿는 대문들이 뱀처럼 이어져 누군가 모두 다 죽자고 소리치면 정말 모두가 죽을 수 있는 골목. 거기엔 간질에 걸린 친구가 살고 있었어. 아파서 자주 결석을 했어. 어느 날 우연히 만나 그 친구 집을 갔어. 너무 좁은 골목에 놀랐던 기억이 나. 그 친구가 담임선생님이 아무도 모르게 자기에게 주신 학용품을 보여 줬어. 훌륭하신 선생님이야. 학기가 끝났을 때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더 마음 아프게 기억나.

 

친구의 골목 가까이 사람으로 출렁거리는 시장이 있었어. 시장을 지나려면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쳐야 했지. 시장은 이 부근에서 가장 번화가여서 영화관도 있었어. “코리아 극장”.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온 적도 있었어. 그때 귀신 영화가 한창이었어. 무덤에서 튀어나온 그 귀신이 밤마다 내 목을 졸랐지. 아버지와 함께 본 첫 영화였어. 내게 맞지 않는 영화였지만 아버지와 영화를 볼 수 있는 난, 골목의 사람들보다 마음으로나마 여유가 있는 셈이었지.

 

너무 낡았던 걸까, 너무 좁았던 걸까? 삐걱대던 마을은 순식간에 사라졌어. 재개발로 친구의 골목은 20, 시장은 40층 아파트가 되었어. 무너진 마을 위에 세워진 어쩌면 무너질 마을에 나는 살아.  쌍둥이를 낳고 친정과 가장 가까운 동네를 찾다 보니 이곳이었어. 아이들이 11살이니 10년 이상 살았지그러나 한 번도 그 친구를 만난 적 없어. 어디로 갔을까? 재개발 때 이곳을 떠났을까? 문득 궁금해져. 그 애의 이상향은 어떤 곳이었을까?

 

 

 

 

_강현덕

 

 

길이 새로 나면서 옛집도 길이 되었다

 

햇살 잘 들던 내 방으로 버스가 지나가고

 

채송화 붙어 피던 담 신호등이 기대 서 있다

 

옛집에 살던 나도 덩달아 길이 되었다

 

내 위로 아이들이 자전거를 끌며 가고

 

시간도 그 뒤를 따라 힘찬 페달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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