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큰애가 반장이 되었어. 큰애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학급선거에 나갔어. 한 번은 자기만 자기 이름을 써서 1표를 받은 적도 있고, 또 한 번은 3차 투표까지 가서 부반장이 되었는데 규정이 2차에서 생일 빠른 친구가 선출되는 거라 선출이 취소된 적도 있어. 나 같으면 낙담해서 선거 같은 데는 나가지 않을 것 같은데 선거일만 되면 단상에서 할 말을 적어서 가방에 넣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어. 몇 번이나 머리를 빗고 씩씩하게 학교에 가.

 

큰애는 어려서 또래보다 늦었어. 아기 때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어. 4살이 되었는데도 말을 하지 않았어. 기다리면 된다고, 괜한 짓 하지 말라고 친정 식구들이 말렸는데 난 언어치료를 시켰어.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너무 빨리 해서 또래인 동생만 친구가 있고, 큰애는 늘 혼자 있더라고. 치료 후에 아이가 정말 밝아졌어. 그 효과가 얼마가 컸는지 지금도 친정 엄마는 아이들이 마음에 힘든 일이 있으면 심리치료나 언어치료를 받으라고 하셔.

 

작은애가 쉽게 하는 걸 큰애가 어렵게 해내는 게 안타까웠어. 큰애가 쉽게 하는 건 관계에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았어. 큰애는 지도 보기와 길 찾기를 비상하게 잘해. 작년부터는 혼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녀. 길을 잃지 않아. 처음 간 장소나 건물에 대해 도착 즉시 파악해. 입학한 날, 학교 전체 학급 배치도를 그리고 있더라고. 그런 게 친구를 사귀는 데 무슨 필요가 있나 싶었어. 아이의 친구들은 관심이 없어. 서울로 가는 데 기차로는 어떻게 가고, 차로는 무슨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지. 모두 다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작은애는 보드랍고, 친절하고, 공감을 잘해. 사람들은 늘 아이가 배려를 잘 한다고 이야기를 해. 나는 다행이라 여기고 마음을 큰애한테 더 썼어. 입학해서 큰애가 내 염려보다는 괜찮게 그럭저럭 적응하자 작은애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어. 상담을 했더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거래. 내가 큰애한테 마음이 쏠려 있어서 작은애가 응석을 부릴 자리가 없었다는 거야.

 

아이가 어릴 땐 아이에게 엄마가 너무 큰 존재야.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특히나 나는 맏이가 둘인 거나 다름없어서 아이들이 불편한 점이 많아.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그 아이들이 아닐지도 몰라. 큰애가 낙담할까 염려했지만 큰애는 툭툭 털고 일어서고, 작은애는 뭐든 잘해낸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엔 부담과 불안이 있었어. 친구를 사귀는 데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길 찾기는 큰애에게 자신감을 준 것 같아. 계획하고 일정을 짜고 떠나는 게 즐거운 큰애는 아무도 자신을 찍어주지 않아도 선거를 하나의 여행쯤으로 여겼나 봐. 인기 많은 작은애가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고.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확신을 버려. 내가 알지 못하는 존재구나. 때로 내가 안다고 착각하면서 뭐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내가 조금만 아는 존재라서, 대개는 모르는 존재라서 불안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해.

 

 

 

그대가 아이들처럼 되려고 애쓸 수는 있지만

아이들을 그대처럼 만들려고 애쓰지는 마시오.

왜냐하면 삶은 되돌아가지도 않고

어제에 머물러 있지도 않기에

-칼릴 지브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