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

 

 

기슭아, 네 이름을 부르니 너는 아주 멀리 있구나. 2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야 거기 네가 있어. 꿈속에서야 언제든지 볼 수 있었지만 그건 나만의 시간이지, 우리의 시간은 아니잖아. 아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 기억이란 건 시간의 물결에 너무 잘 씻겨서 아예 사라지기도 하고, 빛이 물에 굴절될 듯 다르게 그려지기도 하니까 우리의 시간이란 건 없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러면 나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걸까?

 

어긋난 기억을 경험한 적 있어?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집에 어려움이 생겼는데, 그걸 친구의 친구가 나한테 얘기해줬대. 근데 왜 나는 다르게 들었을까? 친구는 내가 알면서도 자신의 어려움을 모른 척해서 섭섭하고 화가 났어. 난 까닭도 모르고 그 친구의 짜증과 무시를 받았어. 1년이 지나 화해를 했지.

 

서른 살이 넘어서 친구가 그 얘기를 했어. 그때서야 알았어. 친구가 화낸 까닭을. 나는 몰랐어. 내 기억 속에는 친구의 친구가 말했다는 그 장면이 없어.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 나는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그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나를 오해하면서 어떻게 화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자기 스스로 마음을 풀었다는 거야. 그 친구와 나는 마치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을 보낸 것처럼 느껴졌어.

 

우리도 만나면 그런 이야기가 있을까. 밤에 화왕산 산장에 간 적이 있었지. 거기까지 함께 오를 때 그 뚜렷한 어둠이, 어둠 속의 별이 내게는 동화 같은 기억인데 혹시 네게는 그 어둠이 두려웠던 기억일까?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시간을 보냈을까? 혹시 기억도 못하는 거 아냐? 

    

물결이 아득해. 물에 비친 내 얼굴이 반듯했다 일그러졌다 사라졌다 또렷해지기도 해. 시간이 흐르고 있어.

 

 

   

굴절   

_이승은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입니다

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

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속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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