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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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기로 악명 높다는 하이데거 철학. 그래서 더 도전심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는 하이데거 철학을 처음 접하는 저로서는 정말 난해한가라는 의구심을 품을 만큼 무척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이데거의 책이 얼마나 어려운가하면, 지성계를 뒤흔든 대표작 <존재와 시간>은 서울대 선정 권장도서 100선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너무 어려워서'라고 말이죠.

 

하이데거 사상을 쉽게 풀어주는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명강의를 책으로 먼저 만난 건 저로서는 행운이었지 싶어요. 하이데거 철학의 첫만남은 이 책으로 꼭 시작해보세요. 

 

 

 

20세기 사상이지만 하이데거 철학이 최근 각광받는 까닭은 미래 예측을 잘 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할겁니다. 과학 기술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현대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하이데거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이 시대를 '궁핍한 시대'로 규정합니다. 에너지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삶은 궁핍한 세계라는 거죠. 공허하고 삭막한 현대의 정신적 상황은 고향 상실의 시대입니다. 현대는 풍요로운 시대가 아니라 우리 삶이 진정 충만해지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말합니다.

 

 

 

1942년에 이미 인간의 유전자 조작을 예견한 하이데거. 과학과 기술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통념을 지적합니다. 현대인들은 과학기술을 도구로 보는 것을 넘어 의존하고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책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등장하죠.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자 기술의 주체처럼 보이지만 실상 객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개개인은 한낱 노동 에너지로밖에 취급되지 않는 시대라며 현대문명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현대기술문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세계를 기술적으로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의지와 탐욕이고, 인간은 탐욕의 노예인 셈입니다. 과학기술시대라 불리는 이 시대에 더없이 딱 맞는 하이데거 사상입니다.

 

 

 

하이데거는 "오늘날 인간은 존재를 망각했다"고 말합니다. 노동과 향락으로 이루어진 삶은 공허한 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고독감, 무력감, 허무감을 느끼는 인간. 삶을 짐으로 여길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라고 합니다. 이 세계에 던져졌지만 나 자신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기에 존재 가치를 잃는다는 두려움이 삶을 부담으로 느끼게 하는 겁니다. 특히 죽음은 가장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사건입니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해 문제삼는 인간만의 독특한 존재방식을 하이데거는 '실존'이라 부릅니다. 고독감, 무력감, 허무감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뇌가 바로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존재 상실에서 오는 공허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서양 전통철학은 과학에 가깝지만 하이데거는 시가 갖는 심미한 의미에 주목합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 깊었어요. 직접 시를 쓰라는 건 아닙니다. 매순간 시적 태도로 세계와 사물을 대하라는 의미입니다. 시야말로 사물을 그 자체로 바라보려 하기때문입니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시는 시적인 정신으로 충만합니다. 순수한 산문 역시 시적이기에 시와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시의 반대는 진부해진 일상어와 정보언어입니다.

 

시적 태도는 평소 자명하고 진부한 것으로 보아 넘겼던 것들에 대해 놀라워하는 세계의 사물을 '경이롭게' 봄으로써 가능해집니다. 하이데거는 그저 단순하고 소박한 것을 경이로운 것으로 느끼고 그것들을 존중하며 살면 된다고 합니다.

 

우리 삶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고,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기쁨을 느끼려면 '경이'라는 기분 속에서 세계와 사물의 신비를 경험할 때 가능해진다는 하이데거. 세상이 정한 가치들에 집착하는 것을 벗어날때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행위에 시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하이데거 철학은 헨리 데이빗 소로처럼 우리는 자연의 지배자 대신 자연에서 태어나 의존해서 살다가 죽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세계와 사물의 경이로운 존재를 경험하는 삶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난해했지만, 거창한 개념이 아니었어요.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서 발휘합니다. 우리는 그걸 잊고 살 뿐이지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권태와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현대인의 행동은 타인에 대한 비교의식과 잡담과 호기심이 지배하는, 자기 삶의 주체로 살지 못하게 하는 행동으로 악순환에 빠져있는건 아닌지 짚어주고 있습니다. 궁핍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알아야 할 하이데거 철학입니다.

 

"인간은 본래 시인이며 시인으로서 지상에 거주해야 한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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