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의 사생활
박찬용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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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때문에라도 한 번쯤 사본 잡지. 잡지 천국이라고 할 만큼 잡지 전성기 시절을 몸소 체험했던 저로서는 <잡지의 사생활>에서 다룬 주제가 무척 반가웠어요. 당시엔 잡지를 통해서만 핫한 신상품과 유명 연예인들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지금으로 치면 인플루언서의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었죠. 디지털 세대로 들어서면서는 종이 잡지 시장이 예전만큼은 아닌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종이 잡지 브랜드는 여전히 생성되고 어느 순간 또 사라지길 반복하는 걸 보면 잡지 시장이 죽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습니다.

 

패션·라이프 스타일 잡지에서 일하는 현직 에디터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잡지 에디터의 직업윤리와 일의 의미를 살펴보는 책 <잡지의 사생활>. 생생한 목소리에 공감을 표할 편집자들은 물론이고, 이 직업을 선망하며 궁금해하는 이들이라면 만족스럽게 읽을 만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여행잡지 에디터로 시작해 남성잡지 <에스콰이어> 에디터로, 그리고 현재는 매거진 <B> 에디터로 일하는 현직 잡지 에디터 박찬용 저자.

 

잡지는 누가 만드는 걸까? 그들의 연봉은 얼마일까? 잡지 에디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잡지에는 왜 비싸거나 가격미정인 물건이 대부분일까?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니 싱글 몽크 스트랩 슈즈 같은 외래어를 꼭 사용해야 하는 걸까? 등 잡지 독자와 잡지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이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알려줍니다.

 

 

 

나에게 잡지 에디팅은 페이지를 만드는 일이다. - 책 속에서

 

잡지 에디터란 완성된 페이지의 모습을 상상한 후 각자의 과정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원고 작성은 물론이고 촬영을 진행해 페이지에 들어갈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잡지 에디터의 일입니다. 혼자서 뚝딱 해내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한 페이지 안에 관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페이지 편집에 가까운 업무이기에 잡지 에디터에게 요구되는 기술과 덕목은 문필력, 기획력, 협상력 등 무척이나 많은 편입니다.

 

교정사, 사진가, 디자이너 등 프로페셔널한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잡지 에디터는 오히려 기술적인 부분 외 인간관계에서 특히 관리자로서의 소양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기획과 창작을 넘나드는 잡지 에디터의 일. 일의 영역이 넓어 뭐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매력으로 와닿는 반면 그만큼 기력 소진이 크다는 게 함정! 하지만 1인 미디어 시대인 요즘에는 오히려 이런 경우가 흔해졌지 않나요. 잡지 에디터들이야말로 디지털 시대, 미래 직업에 잘 적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생활 대부분을 잡지 에디터 생활을 한 저자의 경험담은 누군가에겐 희망을, 누군가에겐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잡지의 사생활>에서는 당근과 채찍을 모두 드러냅니다.

 

동경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들인 시간에 비해 물질적인 보상은 적은 편이니까요. 열정을 강조하고 공짜 노력을 은근히 바라는 상황을 견디는 건 참 힘듭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애써 자발적 노력을 한다 해도 그조차 한계가 옵니다.

 

그래서 생계형 직업으로는 이 일을 권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말도 꺼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데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일로 눈을 돌려야 하거나 생계를 위한 투잡 상황에 이르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매월 마감이 있는 월간지는 체력과 정신력이 보통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지만, 어쨌든 마감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과 그 결과물이 매월 나오니 쾌감도 동반한다는 건 매력적입니다.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 글도 볼 수 있습니다. 봉소형 교정사, 김참 사진가, 홍국화 <보그> 에디터 3인방의 인터뷰는 잡지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잘 보여준 코너였어요. 함께 노력하는 이들의 업무 방식과 직업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패션 에디터 직업 덕분에 한때는 인기를 누렸던 잡지 에디터. <잡지의 사생활>에서는 보이는 삶과 실제 삶과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잡지 에디터의 환상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프로 잡지 에디터가 될 수 있는 경로, 갖춰야 할 소양 등 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이 많습니다.

 

 

 

라이선스지, 로컬지, 패션 에디터, 뷰티 에디터, 피처 에디터 등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낯선 용어들도 많았어요. 그동안 잡지를 보며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콕콕 짚어주며 잡지를 만드는 이들의 마음을 보여준 <잡지의 사생활>에서 잡지 페이지 너머의 세계를 엿봅니다.

 

국내 잡지 시장에서 겪는 실질적 고충과 고민은 잡지뿐만이 아니라 감각과 경험을 아우르면서 기획과 창작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 살 만한 내용이었어요. 두꺼운 분량의 책이 아닌데도 곰곰이 생각하며 읽느라 꽤 오랜 시간 붙잡았던 책입니다.

 

저자가 평소 책 많이 읽는 에디터라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하드보일드 거장 로스 맥도널드의 책 <블랙머니> 주인공 대사를 언급하기도 하고, 존 르 카레 스파이 소설 작가는 인터뷰 섭외하고 싶은 인물에 포함될 정도. 이렇게 깨알 취향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더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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