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는 마음


최근 여러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받거나, SNS를 통해 괜찮은지 묻는 연락을 받는다. 한 이삼년 가량 서로 연락을 못하고 지낸 사람들도 있었고, 몇 달 만에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 칠팔년 만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소식이 없던 이들이 자꾸 연락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 내 활동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이기에, 최근 내 선택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을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만난 한 분은 아주 걱정스런 눈빛과 말투로 내게 "정말 괜찮으시냐?"고 "너무 힘드실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위로와 격려 몸짓을 전했을지도 모르지만, 코로나로 인해 둘 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2미터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어색하게 대화만 주고 받았다. 이 분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지만, 실은 이 상황은 좀 어색했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나는 늘 여성들의 공감능력에 감탄하는데, 이 분이 내 상황을 이렇게 잘 알고 계신지 몰랐고, 그래서 이 분의 진심어린 걱정에 한 편 놀라웠고, 한 편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어렵고 힘들었던 결정을 내렸던 날엔 최근 유난히 가까워진 지인들을 밤 늦게 만났다. 처음에 두어명이 시작했던 술자리는 점점 판이 커져서 나중에는 10명 가까이 늘어났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친해지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가장 자주 의견 다툼으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한 동지는 술집에 들어오자 마자 나를 부둥켜 안고 등을 토닥였다. 갑작스런 포옹에 조금 놀랐지만, 나도 힘껏 그를 안았다. 그 역시 나 처럼 많이 괴롭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어렵고 슬픈 선택을 먼저 내렸던 사람이었다. 


그 날 밤엔 코로나19 따윈 안중에도 없이 여러 사람들과 여러 차례 서로 껴안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울고 웃으며 술을 마셨다. 아마 평생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껴안고 울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실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염려해주는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한 편으로 너무 낯설기도 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친밀함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을텐데, 가끔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 SNS를 통해 몇 년 만에 한 분이 연락을 했다. 앞에도 썼듯이 그때 이후로 그런 연락들이 많이 오긴 하는데, 이 분은 그리 친한 관계가 아니었고, 잠시 알고 지내다가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긴 사이였다. 그가 갑작스레 건넨 위로의 말은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무슨 말로 답을 써야할 지 몰라서 무척 오래 빈 커서만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났고, 그날 밤 술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문득 생각나서 폰으로 답을 하려다가 또 답을 쓰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결국 하루가 지나서야 내가 쓴 답은 그냥 무척 고맙다는 표현 정도였다. 뭐라 더 쓰고 싶었으나 쓸 말을 찾지 못했다.


어떤 이별, 어떤 슬픔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내게 위로와 염려의 마음을 전하는 이유는 최근 내가 공개적으로 어떤 이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게는 그것이 이별이었다. 비록 그 대상이 사랑하는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가 그것과 함께 동고동락한 8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사랑이라는 표현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 실은 그 긴 시간동안 마음이 맞는 좋은 인연을 수없이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이었기에, 한 사람과의 사랑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과의 사랑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모든 시작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이었던가! 나는 이 사랑에 끝이 있을거라고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내가 공개적으로 이별을 선언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너무너무 슬프고 아프고 힘들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매 순간 한숨을 내쉬고, 매 시간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이 나를 덮쳤다. 내 잦은 음주를 자주 걱정하고 잔소리하는 친구는 이번만큼은 "술을 그만 마시라."거나 '술을 좀 줄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속 버리지 않도록 조심히 먹어"라고 했다. 이번만큼은 그대 도 내가 술이라도 먹어야 속이 문드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으리란 걸 짐작했을 것이다.


잘 쓰는 글과 못 쓰는 글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가 쓴 공개적인 이별 선언이 무척 잘 쓴 글이라고 추켜세워줬다. 그 글은 내 가장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풀어쓴 것이었다. 사실 그 글을 쓰기 전에, 그러니까 공개 이별 선언 전에, 이별을 하리라고 마음 먹기 전에, 이별 대신 어떻게든 이것과 함께 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며,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을 때에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그때는 내 글이 꼭 필요한 시기였는데, 나는 이상하게 평소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글이 써지지 않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해야 했었던 말과 써야했었던 글은 아마도 아주 논리적인 글이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자꾸만 감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이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도저히 논리적인 말과 글을 토해낼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의 개인적인 이별 선언 후에, 앞서도 말한 최근 급격하게 친해진, 이 일련의 흐름에서 같은 입장을 견지한 소수의 그룹들은 단체로 공개 이별 선언을 다시 쓰기로 했다. 그 글을 내게 써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이 사태에 대해서는 더는 논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대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논리적인 글을 잘 쓸 수 있는 선배에게 요청했다. 그는 바쁘다고 하면서도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은 정말 너무나도 잘 쓴 글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대체 누가 쓴 거냐고 궁금해 할만큼 대단한 글이었다. 평소 그 선배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도와줘서, 그 선배가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결국 도와줄 이를 찾지 못해 그냥 썼다면 얼마나 망신이었을까? 내 개인의 소회를 담은 글과 여러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입장을 담은 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입당신청서와 탈당신고서


그렇다. 최근 나는 녹색당 전국사무처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2011년 늦가을부터 녹색당 창당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내가 당을 탈당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실은 도저히 더는 방법이 없다 여겨서 주위 여러 지인들이 이미 탈당을 정해놓고 있을 때에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여겼다. 이 이야기는 강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나는 그랬다. 현재 탈당한 많은 당원들 중에서도 나는 마지막까지 당에 남았으면 좋게다. 탈당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랬다. 나는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창당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지 8년 6개월만이다. 작년 늦가을 좀 이상하고 수상한 흐름이 느껴진다고 생각한지 6개월만이다. 어! 이러다 이 당이 망하거나 쪼개질 지도 모른다고 여겨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행동해야지 하면서, 그동안 바빠서 못가던 각종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그리고 나는 많이 노력했다. 평일 저녁에도 자정 가까이 이어지는 회의들, 주말을 다 바쳐야 하는 회의, 일요일 오후 1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 40분에 끝난 회의(그것도 대전에서), 또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난 회의(또 대전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회의를 한다면서 카톡으로 10시간 넘게 이어지는 회의들, 심지어 3일 연속으로 짧으면 5시간 길면 8시간 이상 있었던 시간들. 그 외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보낸 시간들.


탈당신고서라는 문서를 받아놓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다가 문득 녹색당과 함께한 기나긴 시간들이 떠올랐다. 한참을 멍하니 빈 화면을 쳐다보다가 다른 글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까 언급한 개인적인 탈당 소회를 적은 글이었다. 그 글은 내가 얼마나 녹색당을 사랑했는지를 구구절절히 밝혀놓은 일종의 연애편지 같은 글이었다고 본다. 짝사랑에 실패한 후에 적은 연애편지.


탈당신고서를 보내면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당에 들어올 때는 입당신청서를 쓰고 당을 나갈 때는 탈당신고서를 써야할까? 어쩌면 신청과 신고라는 단어 사이의 간극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구원투수 등판


작년 가을부터 어떻게든 당을 살려보겠다고 나섰던 내게 남은 것은 무력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 사실 작년 늦가을 내가 이 문제를 인지하고 회의 체계에 본격적을 참여하기 시작했을때, 전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 중 몇 몇이 이런 표현을 썼다. "결국 저 사람이 등판했네." 저 '등판' 이라는 표현은 마치 나를 구원투수 처럼 여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친한 지인 중에는 '구원투수'라는 표현을 그대로 쓴 사람도 있었다.


그랬다. 부끄럽지만 당시엔 나도 스스로를 마치 구원투수 처럼 여겼다.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판 안에 들어가 같이 노력하다보면 분명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이기도 했다. 그 실마리를 잘 풀 수 있을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애초에 구원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투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애초에 내 능려으로 부족한 일이었다. 아니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책임


어쨌거나 나는 실패했고, 나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부당한 과정과 흐름들에 대한 책임은 언젠가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내가 떠나지만 그들의 명백한 잘못은 분명 어떻게든, 어떤 형태로든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본다.


글이 또 엄청 길어질 것 같다. 일단은 여기까지 하고 나중에 이어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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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3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습니다. 좀 쉬세요.

감은빛 2020-04-20 18:32   좋아요 0 | URL
거의 20일만에 답글을 드려요.
20일이나 늦었지만, 저를 위해 한 말씀 남겨주신 그 마음,
무척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0-03-3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년동안의 사랑!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그냥 지금은 많은 생각보다는
푹 쉬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감은빛 2020-04-20 18:33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마음 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수이 2020-03-3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어요 감은빛님, 오래 쉬지 못하셨으니 충분히 휴식 취하시면 좋겠어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건강 꼭 챙기시면서요.

감은빛 2020-04-20 18:34   좋아요 0 | URL
수연님, 고맙습니다!
많이 먹고 많이 쉬고 싶었는데,
몸은 쉬어도 마음이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다만 많이 먹는 것 만큼은 원없이 먹었답니다.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단발머리 2020-03-31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어요, 감은빛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은빛 2020-04-20 18:35   좋아요 0 | URL
답이 한참 늦었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2020-04-18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감은빛 > 꿈,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한 그 기억!

알라딘이 내가 9년 전에 이런 글을 썼다고 알려준다. 실제로 당시에는 이 비슷한 내용의 악몽을 자주 꾸었는데, 요즘은 거의 악몽을 꾸지 않는다.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하다. 언제나 삶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극적이라는 사실을 해 바뀌고 며칠 지나지않아 깨닫는다. 올해는 연초부터 정말 스펙타클하구나. 차라리 이 가혹한 삶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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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 안 맞잖아

큰 아이는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패드로 만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누워서 폰으로 외국어 단어를 따라하고 있었다. 몇개의 단어를 다 익히고 나면, 짧은 음악이 나왔다. 나는 외국어를 따라했듯이 그 음악 멜로디를 따라했다.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터키어, 인도네시아어, 힌디어, 스페인어 이렇게 여러개의 언어를 돌아가며 몇 개의 장을 따라했고, 매번 그 멜로디를 따라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 멜로디를 따라할 때마다, 큰 아이가 쳐다보며 ˝왜 그것까지 따라해?˝ 라고 물었다. 나는 ˝그냥˝ 이라고 답했다. 정말 아무생각없이 그냥 따라했으니. 아이는 매번 내가 그 음악을 따라할 때마다 한 마디씩 했고, 나는 그런 아이의 반응이 재밌어서 그 짧은 음악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따라했다.

계속 하다보니 아이가 조금 언성을 높이며 ˝아니 왜 그걸 따라하냐고.˝ 라고 했다. 듣기 싫다는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재밌어하는 표현처럼 들리기도 했다. 제대로 말해주시 않으면 사람 생각은 알수 없는 거니까. 나는 그냥 계속 진도를 나가 다음 단어들을 따라했고, 아이도 다시 드라마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 장이 다 끝나자 또 그 음악이 나왔고, 나는 또 따라했다. 아이는 ˝아니, 음이 안 맞잖아!˝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맞지않는 음으로 반복해서 따라하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것이었다.

큰 아이는 신기하게 어릴 때부터 한번 들은 음악의 계이름을 바로 알아내곤 했다. 절대음감이라고 해야하나? 처음 들은 노래도 바로 따라할 수 있었다. 기타를 튜닝할 때마다 음을 잘 찾지 못해 애를 먹는 나로서는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아, 물론 기타를 거의 치지 않기 때문에 튜닝할 일 역시 거의 없지만) 아이는 음이 맞지 않는 것에 민감한 편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따라했던 그 소리가 거슬렸던 것이리라. 나는 아이처럼 절대음감이 아니니 아이가 얼마나 거슬려했을지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수동형, 피동형 문장이나 맞춤법,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보면 거슬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음에 그 음악을 따라할 때는 최대한 음을 맞추려고 노력해본다.

이 자리 앉아도 될까요?

지하철을 여러번 갈아타고 몇 군데를 오갈일이 있었다. 붐비는 열차, 완전 만원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꽉 끼어있었던 열차가 대부분이었지만, 도중에 텅 비어서 앉아갈 수 있는 열차도 있었다. 한 번은 완전 만원 열차를 탔는데, 도중에 어느 역에서 사람들이 왕창 내려서 숨 쉴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 때 내 앞에 앉아있던 분이 일어나면서 자리가 났다. 나도 앉고 싶었지만, 서있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서있기 힘든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서 그냥 서있었다.

잠시 후 뒤에서 어느 여성이 ˝이 자리 앉아도 될까요?˝ 라고 물었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손짓으로 앉으시라고 답했다. 자리가 비면 말도 없이 앞에 있던 사람을 밀치고 앉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렇게 물어보고 앉는 사람은 처음보는 것 같다. 심지어 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각도 상 그 분이 내 귀를 못 봤을리 없었는데, 그렇게 물었다. 다행히 내가 듣던 음악 볼륨이 작아서 그 분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분이 자리에 앉고 일행인 여성들이 함께 와서 서느라 나는 옆으로 조금 물러나야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눴고, 그 소리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음에도 내게 들렸다. 음, 자리를 양보한 대신 나는 서있던 자리에서 밀려나고 소음 때문에 음악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계단

가끔 무릎이 아픈 날이면, 계단과 내리막길이 정말 두렵다. 무릎이 아프기 전에 나는 계단을 좋아했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부실했던 나는 따로 하체운동에 시간을 투여할 여유가 없으니 뜀박질과 계단 오르기로 하체 운동을 대신했다.

지하철 6호선은 계단이 높고 가파른 역이 많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며 그걸 타고 오르는 사람들보다 먼저 계단 끝까지 올라가는 걸 즐겼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들도 걸어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 사람들보다 빨리 가는 일은 쉬울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근력을 바탕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계단을 올라야한다. 매일 퇴근길 계단이 높고 가파른 역에서 계단을 오르며 연습을 했다. 몇일이 걸렸는지 몇달이 걸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결국 계단을 오르며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오르는 사람들보다 항상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계단 오르기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계단을 오르며 근육을 쓰고 나면 그 감각이 좋았다. 뜀박질 후 가쁜 호흡 속에서 느껴지는 쾌감이나 근력운동 후 약간의 통증과 함께 느끼는 쾌감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데 무릎이 아픈 이후로는 계단을 예전처럼 빠르게 오르내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예전처럼 뜀박질을 즐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예전처럼 빠르게 에어 스쿼트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거울

몇 년 전이었다. 한창 운동을 즐기던 때였고 매일 아침 공복에 속을 비우고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은 아름다웠다. 근육이 크지 않으면서도 선명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내 몸을 보는 일이 이 재미없고 힘든 세상을 견디는 작은 만족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무릎을 비롯한 관절 통증으로 운동을 못한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

먹는 양과 횟수가 줄어서 살이 빠졌고, 그래서 날씬한 몸을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근육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거울로 내 몸을 보는 일이 즐겁지 않다. 오히려 자꾸 줄어드는 근육 때문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래도 최근에는 관절이 안 아픈 날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서 조금씩 다시 운동을 시작해보고 있다. 워낙 오래 쉬어서 당장 예전처럼 힘을 쓸 수는 없었다. 이렇게 조금씩 하다보면 다시 운동을 즐기던 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관절들이 다시 운동을 버텨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을거라는 절망감이 들 때도 있고,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부딪히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 그게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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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20-01-1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관절에 좋은 약을 좀 드세요.
나이 많아지면 제일 소중한게 관절입니다. 특히 무릎관절이 중요하죠,
그린홍합이나 msm 그외에도 요즘은 관절을 위한 효과 좋은 약들이 많더군요.
몸매는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안아픈게 제일 중요해지는 시기가 다가 오고 있답니다.
경험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ㅎ ㅎ
 


아빠는 끄곰이


최근 작은 아이는 웹툰의 영향을 받아 만화를 그리고 있다. 이런걸 유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현세, 이상무 화백 등의 영향을 받아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의 딱 지금 작은 아이 나이였다. 그때는 소년 만화 잡지들이 종이로 출간되던 시기여서 만화책을 보면서 비슷하게 배껴그렸는데, 작은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동거의 법칙]이라는 웹툰을 보고 가족을 특정한 캐릭터로 그려서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만화를 그린다. 아마 애들 엄마가 그 웹툰을 아이에게 알려줬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이가 내게도 보여줘서 함께 봤다.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 여성의 가족들 중 할머니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시골로 귀촌하면서 할머니와 단 둘이 동거를 하게 된 계기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살구를 좋아하셔서 별명으로 살구라고 부르고, 캐릭터도 살구 모양으로 그렸다. 만화가 본인의 캐릭터는 나무늘보로 그렸고, 그의 절친한 친구는 뭐였더라, 수달이었던가 뭔가 물에 사는 작은 동물이었던 것 같은데, 암튼 그런 식으로 그리면서 아주 사소한 부분들에서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가는데, 그 따스한 시선과 일상의 잔잔한 재미들이 꽤 괜찮았다.


아이가 내게 보여준 부분은 앞 부분 조금이어서 나중에 시간 날때 최근 소식을 찾아보려 검색했더니 중간부터 거의 연재가 이뤄지지 않다가 얼마 가지 않아 완결이 되었던데, 살펴보니 살구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마지막화 내용이었다.


암튼 그 만화에 영향을 받은 작은 아이는 엄마와 언니와 자신의 캐릭터를 각각 만들었는데, 아마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고 만든 느낌이었다. 엄마는 소를 귀엽게 형상화 한 캐릭터로 엄마가 소띠라서 그랬던 것 같고, 언니는 토끼로 그렸는데, 아마 언니가 귀여운 토끼 이미지를 원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자신은 다람쥐로 그렸다. 언니가 귀엽다고 다람쥐라고 부르며 볼을 잡아당기곤 했기에 그렇게 정했으리라.


그리고 아이는 내게 물었다. "아빠는 어떤 캐릭터로 할까?", 나는 아이가 애들엄마를 소로 그린 것을 보고 별 생각없이 "아빠는 용띠니까 용으로 해줘."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더니, 아빠는 곰이 어울린다고 북극곰으로 그리겠다고 했다. 왜 북극곰이냐고 물으니, "아빠는 북극곰을 살리는 일을 하잖아." 라고 답했다.


기특하게도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아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아빠가 하는 에너지 운동이 지구를 살리고, 북극곰을 살린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물론 나는 아이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 이면에 숨은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덩치가 큰 남자 어른인 아빠는 아무래도 곰의 이미지와 비슷할 수 밖에 없음을. 게다가 겨울이면 집에서 군대 제대할 때 가져온 깔깔이를 입고 늘 누워서 뒹굴거리는 모습을 주로 보기 때문에 더욱 곰 이라는 이미지에 가깝게 느꼈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암튼 그래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는 북극곰 캐릭터를 부여받았고, 아이는 캐릭터 이름을 '끄곰이'라고 지었다. 참고로 엄마는 '움마', 언니는 '단토끼', 자신은 '람쥐'라고 이름을 지었다.


부모 참관 수업


이미 한참 지난 이야긴데, 그간 서재에 글 쓸 여유가 없어서 이제서야 끄적인다. 지난 달 중순 즈음 아이가 낮에 전화를 걸었다. 왠일인가 싶어 받았더니, 곧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부모 참관 수업이 열리는데, 엄마는 그날 바빠서 올 수 없다고 했단다. 엄마 대신 아빠가 꼭 와달라고 부탁했다. 내 기억엔 작년에도 내가 한 번 부모 참관 수업을 갔었다. 그때도 애들 엄마가 바쁘다고 했었다. 일정을 보니, 그 시간에는 비어있었지만, 앞의 일정을 마치고 가면 시간이 빠듯했다. 그리고 사실 무척 바쁜 시기여서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아이가 꼭 와달라고, 엄마 아빠 아무도 안 오면 안된다고 하길래, 어쩔수 없이 가겠다고 약속했다.


당일 학교로 갔더니 예상대로 아빠는 나 혼자였다. 작년에도 그랬다. 대부분은 엄마들이 왔지만, 가끔 할머니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참여하는 반 외에 다른 반에 또 거의 한 명 꼴로 아빠들이 있었다.


아이가 속한 반은 뭔가 작은 물품을 만드는 공예 수업 같은 것이었고, 그날은 손거울을 만들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하나씩 만들도록 시킨 후에 부모들에게도 따로 또 하나씩 만들라고 제안했다. 어쩔수 없이 나도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거울을 하나 만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어쩌면 참 불편한 일인데, 선생님도, 주위에 앉은 다른 엄마들도 어쩐지 나를 어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는 열심히 거울을 만들었고, 나중에 완성해놓고 보니 제법 잘 만들었더라. 선생님은 아마 일부러 그랬겠지만, "어머! 아버님, 너무 잘 만드셨네요!" 라고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강의, 원고, 교정지, 일, 일, 일, 서류, 서류, 서류


연말부터 그 다음해 3월까지는 정말 일이 엄청나게 몰리는 시기다. 매일 야근이고, 매일 철야고, 매일 잠이 모자라고, 매일 죽을 것처럼 피곤한 날이다. 지난 주에는 주초에 좀 무리를 했다가 감기몸살에 걸려 정말 죽을 것처럼 아팠다. 살면서 그렇게 심하게 아팠던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창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아파 누워버리는 바람에 일이 더 밀렸다. 


사실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아플 일도 없었을텐데,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문제다. 이번 주에도 또 이틀 연속 철야하고, 하루는 저녁 늦게 들어가고 다시 이틀을 밤샘 작업했다. 지금 또 몸과 마음의 피로가 한계치에 도달했음을 느낀다. 그래서 몸은 어쩔수 없더라도 마음의 스트레스라도 좀 풀어보고자, 이 바쁜 시기에 여기다 이 글을 쓴다.


게다가 올해는 유난히 외부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내일 오전에 잡힌 강의까지 이번 주에만 강의가 3건이다. 일주일에 3건의 외부 강의라. 이런 일이 또 생길까 싶을 정도로 강의가 몰린다. 바쁜 시기가 아니라면 강의를 하는 건 나도 좋아하는 일이고 부수입이 생기니 감사한 일이지만, 이 바쁜 시기에는 내 몸과 마음의 피로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


청탁 받은 원고와 교정지도 있고, 연말 안에 마무리지어야 할 무수한 행정서류와 기획서와 보고서들이 까마득히 멀리까지 줄을 서있다. 


얼마나 바쁜 시간을 보냈으면 최근 몇 주간은 거의 술도 못 마셨다.



절판도서 구매


절판도서 알림 설정을 해놓았더니 부산 어딘가의 중고 매장에 책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떴다. 나는 일을 하다말고 곧바로 배송 주문 후 결제부터 했다. 그리고 3일 후에 책을 받았다.














지난 달에 산 10여 권의 책들 중 절반은 한 번 펼쳐보지도 못했다. 이 책은 또 언제 펼쳐보려나. 어려서 나는 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곰을 겨울잠을 자기 때문이다. 곰 외에도 여러 동물들이 동면을 하지만, 유독 곰을 떠올린 건 겨울잠을 자는 대표적인 동물이라서였겠지. 작은 아이가 그려준 캐릭터 그림을 보며, 차라리 진짜 북극곰이 되어 겨울 내내 잠만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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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고 일은 줄어들지 않아


한동안 야근을 안했다. 일은 많이 밀려 있었지만, 일부러 야근만은 피했다. 쭈욱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다가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건물에서 늘 야근하는, 자주 밤샘하는 이웃 일터 몇몇 분들이 저녁 8시나 9시쯤 퇴근하는 나를 보며 "왜 요즘은 야근 안 해요? 맨날 야근하던 사람이."라고 묻기도 했다. 그렇다고 저녁 시간을 푹 쉬거나 한 것도 아니다. 저녁에 외부에서 회의가 있었던 날도 있었고, 집에서 일터 일이 아닌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들이 있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피로에 찌든 몸과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관절 통증까지 매일 야근을 할 몸 상태가 아니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야근을 자주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일단 일이 엄청나게 몰리는 시기이기도 하고, 낮엔 회의와 찾아오는 사람들과 강의 등으로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고, 저녁에도 이것저것 급하게 치고 들어오는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늘 새벽이 되곤 했다. 정작 밀린 일은 계속 손을 대지 못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급격하게 느껴진다. 지난 번에는 딱 하루 밤새 일하고, 오전에 현장 답사를 갔는데, 거기서 만난 친분이 있는 업체 담당 부장님께서 나를 딱 보더니 곧바로 "밤새 일하고 오신 거예요?" 물었다. 얼마나 상태가 안 좋아보였으면 첫 마디가 저 질문이었을까? 그리고 또 다른 날엔 밤새고 오후 늦게까지 일한 후에, 집에서 조금만 쉬다가 다시 밤에 일해야지 했는데,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깨지 못하기도 했다. 불과 3년 전에만해도 3일 연속 밤새 작업하며, 잠깐씩만 졸아도 잘 버텼다. 3일 연속 밤샘 작업하고 하루 쉬고, 또 3일 연속 이런 식으로 일을 이어가기도 했다. 최고 기록은 87시간 동안 연속 일하면서 집에는 잠깐씩 들어가서 씻고, 옷만 갈아입고 나왔던 것. 물론 그 시간에 잠깐씩 졸았던 시간은 포함되어 있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 예정보다 훨씬 늦게 퇴근하면서도 애초에 생각했던 일의 10분의 1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계속 밖에 있었고, 오후에 사무실 돌아와서도 두 건의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 건마다 그 정도로 시간이 걸릴줄 몰라서 둘 다 시간이 더 걸리는 바람에 나는 컴퓨터 앞에 전혀 앉아보지도 못했고, 앞 타임의 방문자는 논의를 다 마치지 못하고 다시 날짜를 잡았고, 뒷 타임의 방문자는 제 시간에 도착하고도 나를 기다리느라 한참을 시간을 허비했고, 결국 서로 다음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 대화를 나눠야했다. 결국 또 해야할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금요일은 아이들을 만나는 날인데, 기다리는 아이들이 혹시 배고파할까봐 걱정이 되어 마음이 급했다.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 애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안심하고 토요일인 내일 발전소 청소를 가기 위한 준비물들을 챙기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 한 두건을 마친 후에 퇴근했다. 가면서 생각했다.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으니, 밤엔 애들하고 장난치고 놀다가 자야겠다. 내일도 발전소 청소를 마치고, 하루종일 고생한 나를 위해 술 한잔 해야하니 또 일은 못 하겠구나. 일요일 저녁에 애들을 보내놓고, 지역 녹색당 운영위원회 회의 자료를 만들어서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나서 사무실로 가서 밤새 일을 해야겠다. 일요일 밤을 사무실에서 보내면 월요일부터 또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내겠지. 분명 밀린 일을 다 처리하려면 며칠을 밤을 새도 모자랄거야. 


그리고 그 생각 그대로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보내고, 지금 월요일 아침을 맞는다. 사실 어제 오후에 아이들을 보내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전날 발전소 청소 하느라 무리해서 등과 어깨쪽에 근육통이 있었고, 시원찮은 무릎과 발목으로 수백번 사다리를 오르내리느라 관절 통증도 있었다. 너무너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맡아 놓은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급하게 안건지를 만들어놓고 회의 장소로 갔다.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 춥고 비까지 내려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길어졌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사무실로 출발했고,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분명 가볍게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었고, 회의하면서도 간단한 간식을 먹었는데, 사무실 오자마자 급격하게 배가 고팠다. 졸릴 것을 대비해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를 사면서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등을 잔뜩 사서 먹었다. 집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과식을 하고도 자꾸 뭔가가 먹고 싶었다.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밤새 일을 했음에도 별로 피곤하지는 않다. 공동사무실에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능률이 좋을때 일을 더 해야지 생각했는데, 아까 마을에서 활동하는 선배 한 분이 불이 켜진 우리 사무실 문을 열고 밤새 일한 거냐고 물어서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흐름이 깨져 버렸다. 잠시 쉬며 담배를 피우고 이왕 흐름이 끊어진 것, 알라딘에 짧은 글이나 하나 남겨야지 생각했다.


사실 쓰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었는데, 그걸 다 쓰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여, 그냥 금요일부터 바쁘게 지낸 주말 이야기를 짧게 전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월요일인 오늘도 저녁 늦게까지 회의가 있다. 그리고 아마 오늘도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해야할 것 같다. 과연 언제 집에서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일단 빨리 일이나 계속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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